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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절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렵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렵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단 1:8)
1.다니엘서 1장의 사건은 어느 때 일어났는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애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단 1:1, 2). [설명] 총론에 기록된 대로, 바벨론(신 바빌로니아)은 세 차례에걸쳐 남방 유다를 침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다니엘서 1장의 사건은 느부갓네살왕 즉위 직전에 이루어진 기원전 605년의 일차 포로였으며, 당시의 유다왕은 18대 왕 여호야김이었다. 2.포로에 포함된 대상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단 1:3. 4). [설명] 바벨론은 무력(武力)으로 정복한 유다 나라의 왕족과 귀족 가운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을 볼모로 데려가, 효과적인 식민지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쓰기위해, 삼년 과정의 바벨론 교육을 시켰다. 이 일을 위해 뽑힌 사람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였다. ▶ 바벨론의 식민지 정책과 대응 3.바벨론의 식민지 동화(同化)정책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졌는가?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단 1:5~7). [설명] 첫째로, 바벨론의 교육을 통해서였다. 인류를 범죄에 빠뜨린 사단은 바벨론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무력으로 짓밟고, 나라의 장래가 달린 젊은이들을 인질로 잡아갔으며,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 교육을 받아온 그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교육을 강화했다. 둘째로, 창씨(創氏) 개명(改名)을 통해서였다.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라는 뜻을 가진 "다니엘"의 이름 대신, 사단을 대표하는 바벨론의 신인 "벨"의 이름을 넣어 "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바꾸고, 모두 하나님의 성호(聖號)가 포함된 다른 세 젊은이들의 이름도 그렇게 바꿈으로써, 창씨 개명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말살(抹殺)하려고 하였다. 셋째로, 바벨론의 음식을 통해서였다. 교육과 개명으로 사람을 바꾸는 세뇌(洗腦)교육을 강화한 사단은, 정신의 바탕인 체질을 바꾸기 위하여 음식도 술과 육류로 이루어진 바벨론의 식단으로 바꾸었다. 음식이 건강은 물론 정신과 성격 형성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그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왕의 식탁에 오른 육류는 우상숭배에 쓰여진 재물인 경우도 허다하여, 시험이 되었다. 4.다니엘은 바벨론의 파멸적인 동화정책에, 일차적으로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구하니" (단 1:8). [설명] 자동차는 핸들로, 비행기는 조종간으로, 배는 키로 방향(方向)이 결정된다. 인생의 방향인 운명은 의지(意志)로 결정된다.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에의하여 이루어진다. 배우자, 직업, 신앙 모두가 결정에 의하여 선택되며, 그 결과가 운명이 되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지 (desti-nation)는 떠날 때 이미 결정되듯이, 인생의 운명(destiny)도 그렇게 살기로 선택할 때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다니엘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먼저 뜻을 정했다. 다니엘은 자신의 몸이 비록 바벨론에 사로잡혀 온 포로의 신분(身分)이지만, 정신만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를 거절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바벨론의 음식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지정하신 음식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은 먹는 음식에 의해,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지배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신앙과 건강에 좋은 음식 5.하나님께서 먹도록 지정하신 음식은 바벨론의 음식과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食物)이 되리라" (창 1:29). [설명] 하나님께서 본래 인류가 먹도록 지정하신 최초의 음식은 식물성 식품이다. 그것은 장수(長壽)는 물론, 건강과 도덕성에도 최선임이 입증되었다. 노아의 홍수로 온 세상이 파멸된 후 하나님께서는 육류와 어류도 식품에 포함시켜 먹을 수 있게 하셨지만, 건강에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하여 놓으셨는데, 그 기준이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동물 가운데는 가축임을 구별하는 족발과, 초식성(草食性) 동물임을 가리키는 새김질 기능 등, 두 조건을 구비한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이 허락되었으며, 몸에 해로운 동물성 지방질이 많은 돼지는 새김질을 하지 못하므로 금지되었다. 물고기 가운데는 깨끗한 물에서 좋은 먹이를 먹고사는 조건이 되는 비늘과 지느러미를 구비한 어류들이 허락된 반면, 심장병의 원인이 되고 콜레스테롤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는 뱀장어 등, 비늘 없는 물고기와 조개류 등은 건강 식품에서 제외되었다. 현대 의학과 일치하는 최선의 건강 식품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6.다니엘과 세 친구는 왜 바벨론의 음료인 술을 거절했는가?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 1:5). [설명] 바벨론의 식품은 "왕의 진미"로 표현된 기름진 육류였으며, 음료는 "포도주"로 표현된 주정음료였다. 술은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과 의지력과 판단력을 행사하는 신경계(神經系)를 마비시키는 진정제(鎭靜劑)이다. 소량의 알코올로도 뇌세포는 손상되고 단백질 생성 능력이 저하되며, 백혈구의 기능을 약화시켜서 병균에 대한 저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간 기능에 엄청난 손상을 초래하여 간경화, 간암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시키는 것과 동시에, 정신병에 속하는 알코올 중독을 비롯한 각종 정신 질환을 일으킨다. 치명적인 음주운전을 비롯한 각종 사고와 가정 파괴, 막대한 경제적 손실, 온갖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음주의 폐해를, 성경은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특별히 성직자(聖職者)들의 경우, 어떠한 형태의 주류도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레 10:8~11), 오늘날 신자들은 물론, 성직자들조차 음주를 허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성경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7.바벨론의 음식과 성경적인 음식의 우월성은, 어떤 방법에 의해 시험되었는가?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단 1:12. 13) [설명] 다니엘과 세 친구는 우상숭배와 연관된 바벨론의 육류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신앙과 건강을 근본부터 약화시킬 바벨론의 음식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습관대로 성경에 지정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정중히 요청했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두려워하는 환관장에게, 그들은 10일 동안 실험한 후에 결과에 따라 판정해 달라는 합리적인 요구를 했고, 그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8.성경적인 음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그 우월성은 어떻게 입증되었는가?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단 1:14~16). [설명] 다니엘과 세친구가 요청한 음식인 "채식"은 "식물(植物)로부터 온 음식"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제로임"인데, 모든 채소와 과실은 물론 모든 곡식류와 견과류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다. 히브리 청년들이 선택한 음료는 왕이 제공하는 일품 포도주가 아니라, 깨끗한 물이었다. 우리의 몸은 3분의 2가 물로 구성되어 있고, 150억의 뇌세포로 이루어진 두뇌의 경우 4분의 3인 75퍼센트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인체에 깨끗한 물을 넉넉히 공급할 때, 혈액순환과 신진대사가 원활함은 물론, 각종 질병의 예방과 명석한 두뇌 활동을 보장하는 기본이 된다. 식사 사이 공복(空服)에 적어도 하루 8컵의 물을 마시는 것을 최선의 건강 습관이다. 이러한 음식을 선택한 히브리 청년들의 건강은, 육류 위주의 식사와 포도주를 마신 바벨론의 청년들을 압도했다. 우선 부드럽게 윤택이 나고 깨끗하며 혈색이 좋은 피부와 고상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용모, 패기가 넘치는 자세는 채식의 우월성을 당장에 입증했다.
[해답] □ 1978년판「대영 백과사전」의학특집 부록(81쪽)에는 100세 이상의 장수(長壽) 인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세계의 장수촌 세곳을 소개했다. 캐시미르 산맥의 훈자(Hunza), 코카서스 산맥의 아브카지아(Abkhazia), 안데스 산맥의 빌카밤바(Vilcabamba) 사람들인데, 생활 습관에 있어서 이들은 서로 공통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산지에 살며 왕성한 육체 활동을 하면서도 하루 2,000칼로리도 안 되는 식물성 식품 위주의 저(低) 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있었으나 영양실조도 없었으며, 폐경기 이후의 여성이나 나이 많은 남성들도 여전히 원활한 부부생활을 영위하며 장수하고 있었다... □ 1995년판「대영 백과사전」의 「의학과 건강 연감」(402~408쪽)은 "시대에 걸맞는 채식주의(菜食主義)"라는 주제로, 현대 의학이 확증한 채식주의의 탁월함을 7쪽에 걸쳐 진술했다. 특별히 콩류와 과실, 곡류를 충분히 섭취하면 임산부, 어린이, 청년들에 필요한 단백질, 칼슘, 철분까지 모두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음을 실증적(實證的)으로 제시했으며, 각종 심장병, 고협압, 당뇨병 등 성인병과 각종 암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 현대 의학의 증언 9.현대 의학은 이러한 성경적인 음식이 건강에 최선임을 어떻게 입증하고 있는가? 10.올바른 선택은 어떤 결과로 보상받았는가?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 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단 1:17~20). [설명]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자신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하여 일찍이 뜻을 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정하실 수 있으셨다. 건강 습관과 그들의 신앙으로 계발된 머리는 명석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고상한 인격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자아냈다. 3년간의 교육 과정을 마칠 때 치른 국가고시에서 그들은 탁원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왕의 보좌관들로 발탁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선지자의 자격과 기능을 부여하셨다. 이리하여 다니엘은 포로에서 왕의 보좌관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다니엘서의 주인공이 된다. 11.다니엘의 일생이 어떻게 요약되어 있는가?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단 1:21). [설명] 18살 어린 나이에 포로의 신분으로, 정든 고향과 부모님 곁은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나그네의 일생을 살아간 다니엘의 삶은, 사람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살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예증(例證)이다. 그는 바벨론의 총리와 왕의 수석 보좌관을 지냈고, 기원전 539년 바벨론이 정복국인 메대 · 페르샤에 의해 패망한 후에는, 다시 페르샤의 수석총리가 되어 천하를 호령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온 나라에 폈다. 페르샤의 국부(國父)인 고레스 대왕 원년(537년 BC)에, 80이 넘은 고령의 다니엘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렘 29:10), 동족 유대인이 70년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귀국하게되는 제1차 석방령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감격을 느끼게 된다. 다니엘1장은 기원전 605년 제1차 포로로부터, 70년이 지난 후인 기원전 537년 제1차 석방까지도, 다니엘의 빛나는 삶이 계속되었음을 요약하고 있다. ▶ 마치는 말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다. 직업(職業)의 선택으로 일생 동안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가 결정된다. 배우자(配偶者)의 선택으로 평생을 누구와 살 것인가가 결정된다. 그리고 신앙(信仰)의 선택으로 인생을 무엇을 위해, 왜 살 것인지가 결정된다. 신앙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것이 의지의 선택에 달렸다. 무엇을 하며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살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결과가 곧 운명(運命)인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영원한 선택은 신앙의 선택이다. 지금 바로 그 신앙을 바르게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니엘이, 다니엘처럼 살기로 뜻을 정한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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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속의 경륜의 현장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3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단 1:1). 다니엘서 1장에서 우리는 범죄 직후 하나님에 의해 발표된 창세기 3장 15절의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이 진전되어 가는 역사의 현장을 답사(踏査)하게 된다. 구속의 경륜을 발표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불법 점유(占有)로 훼손되고 상실된 지구를 구속의 경륜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 구속주(救贖主)의 신분으로 개입하신 것이다. 이리하여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구약의 이스라엘, 신약의 교회)을 표상하는 「여자」와 사단을 표상하는 「뱀」의 싸움은 시작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여인의 후손」과, 사단을 추종하는 무리인 「뱀의 후손」 사이에는 적의(敵意)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의 대전쟁을 이끌어가는 의지(意志) 곧 전의(戰意)인 것이다. 이러한 구속의 대경륜은 범죄 직후에, 에덴 동산 입구에 쌓아진 제단과 그 위에 드려진 희생 제물로 이루어진 최초의 성소 제도에서 그 윤곽을 드러냈으며, 피흘리며 죽어가는 희생 제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지구를 사단의 불법 강탈(强奪)로부터 되찾으시고 침해받은 주권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와 계획을 확인하는 것이다. 구속의 경륜의 청사진(靑寫眞)이기도 한 성소제도는「뱀」곧 사단의 머리를 부수어 치명상을 입힐 「여인의 후손」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타당하게 하는 근거가 될 뿐만아니라 방편(方便)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즉 성소제도에 관한 사단의 필사적인 적의(敵意)와 그 계획을 따르는 백성에 대한 훼방과 도전은 인류의 처음 형제인 가인이 양을 희생제물로 바친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사실로 노골화된 것이다. 동시에 가인에 의해 쌓아진 유사(類似)제단과 유사(類似)제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제도에 대한 사단의 모방과 훼방과 시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엿보게 된다. 이러한 배경과 저의(底意)의 전개가 범죄 이후의 인류 역사요 선악의 대쟁투의 전말(顚末)인데, 그 현장이 다니엘서에 공개돼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단의 권좌(權座)가 차려진 바벨론이 하나님의 성전이 자리잡은 예루살렘을 훼파하러 온 이유요, 유대인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간 까닭이며, 하나님의 전(殿)기구를 가져간 연고인 것이다. 이리하여 지상의 성소와 선민(選民)은 세계역사의 표적(標的)이 되어, 다니엘서에 맹수로 표상된 대제국들에 의해 거듭 거듭 짓밟히다가, 마침내는 서기 70년 무섭고 놀라운 짐승(단 7:7) 로마에 의해 끝내 완전히 훼파된다(단 8:9). ... 2.바벨론의 종교적 배경 주께서 유대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殿)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단 1:2). 다니엘서는 바벨론과 유다의 대결이 단순한 군사적,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에 대적하는 시날(바벨론)땅의 신과 그 신전의 대치(對峙)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바벨론 종교의 배후를 아래에 요약해 본다. 바벨론의 종교의 기원과 특성은 바로 하늘에서 최초의 반역을 시도했다가 뜻을 이 루지 못하고 추방당한 루스벨에 의해 시원(始原)되었다. 즉 이사야 14장 13, 14절과 에스 겔 28장 12-17절에 나타난 정신이 곧 바벨론 종교의 특성이 된 것이다... ). 하나님의 최상권에 도전하고 그 분의 주권(主權)을 훼손하려는 음모로 인하여 하늘에서는 전쟁이 있었으며, 루스벨과 그의 추종 천사들은 하늘에서 추방당했으나(계 12:7, 8),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지구에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계 12:9-12). 사단이 되어버린 루스벨(새벽별)은 그가 하늘에서 이루지 못한 그의 야망을 땅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단의 이러한 노력이 적어도 조직적으로 결실을 본 것은 노아의 증손 니므롯을 통한 바벨탑의 건립으로, 군주국가를 형성하고 백성을 집단화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공공연히 대적한 때부터였다. 「사람들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경멸하도록 선동한 사람은 니므롯이었다. . . 그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마련하는 수단에 의해 그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점진적으로 폭정을 행했으며, 사람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을 떠나, 계속해서 그의 힘에 의지하도록 했다. . . 그 탑이 세워졌던 장소를 지금 바벨론이라고 부르는데, 그 까닭은 전에는 쉽게 이해했던 언어가 혼잡을 이루었는데, 히브리어로 바벨(Babel)이 "혼잡"(Confusion)이기 때문이다.」 니므롯의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의 힘의 개입으로 일시 중단 되었으나(창11:5-8) ,그의 정신과 계획은 고대 세계에 확산되어 메소포타미야 전역의 도시마다 축소형 바벨 탑에 해당되는 신전고탑(神殿高塔)이 세워져, 이것을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우상 숭배가 번져갔다. 이 신전고탑(지구랏: Ziggurat)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바벨론 성 안에 있던 "에테메난키"(Etemenanki)인데, 그 뜻은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며, 함께 세워진 주신(主神) 마르둑(Marduk)의 장엄한 복합신전은 "에사길라"(Esagila)로, 그 뜻은 "그 꼭대기가 하늘처럼 높은 집"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니므롯의 바벨탑을 쌓을 때의 이상(理想)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 뿐더러(창 11:3, 4), 하늘에서의 루스벨의 의도 (意圖)가 표현된 작품임에 틀림 없다(사 14:13, 14). 특별히 바벨론의 주신(主神)인 마르둑(Marduk)은 하늘의 대신(大神)인 이(Ea)의 아들로, 사람을 비롯하여 지면의 식물과 짐승을 창조하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만든 후, 거기에 이들을 살게 했다는 신으로 당당히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직권을 모방한 루스벨의 참람된 모습이다. 마르둑은 성경 여러 곳(렘 50:2, 51:44, 사 46:1)에 "벨"(Bel)로도 불리워지는데, "벨"은 "주"(Lord)를 뜻하는 "바알"과 같은 명칭으로, 모든 신의 주로서 왕권을 베푸는 권위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도 마르둑과 상통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성경의 하나님을 뜻하는 "엘"(El)신의 아들로, 히브리어로 "주"(Lord)를 뜻하는 "바알"로 불리우면서, 자신은 "멀리 북쪽 하늘 놓은 산 위에 좌정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하늘의 주"(Baal-shamem)로 불리우고 있어, 이사야 14장 13, 14절의 루스벨 의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괄목해야 할 사실은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의 신전인 에사길라가, 하나님의 전인 예루살렘 성전과 구조 뿐만 아니라, 제사 방법도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성소에 해당 하는 외전(外殿)이 있었다. 외전 중앙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단(祭壇)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정결을 위해 씻을 수 있는 물대야도 놓여 있었다. 「바벨론 신전은 솔로몬의 성전과 거의 흡사함이 보여 질 것이다. 바벨론 신전도 두 개의 뜰과 제사장들을 위한 방들과 성소와 지성소를 갖고 있다. 겉 모양이 건축미나 설계상의 다양성도 없는 직사각형의 궤짝들 같다는 점에서도 같다. 이스라엘 성전과 바벨론 신전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베론 신전에 는 신전고탑(에테메난키)이 있는 것 뿐이다. 심지어 기구의 세목에서도 같다. 바벨론 신전의 두 제단이 예루살렘 성전에도 있고, 시은좌(施恩座)며 진설병의 떡상도 그렇 다.」 특별히 고고학에 의해 알려진 의식과 조직은 우리에게 새로운 빛이 된다. 「바벨론 신전들은 제사장의 집단에 의해 섬겨졌다. 그들의 최고의 머리는 바벨론의 초기 역사에서는 왕의 기능을 수행했던 "파테시"(Patesi)라고도 하는 대제사장이었다. 이 "파테시"는 본질적으로 신의 대리자였다. 신이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위임하였으며, 지상에서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사제(司祭)중보의 교리를 논리적인 결론으로 이끌어간 교리이다. 바벨론에서는 이미 보여진 대로 양자(養子)규례에 의해 신권(神權)이 부여되었다. 즉 벨(마르둑) 신의 대리자(왕)가 신의 "손을 잡음으로써" 신의 아들이 되어 인간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행사할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 . . 바벨론 군주 정치의 시초는 근본적으로 신정(神政)이었으며, 왕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대제사장이었던 것이다. . . 신의 대리자인 왕은 신의 모든 속성(屬性)들을 자신이 취해버렸으며, 신의 양자인 왕은 그의 거룩한 아버지가 되는 신의 모든 권리와 능력을 계승하였다. 최고의 군주는 어디에서나 그의 이름으로 다스리는 치리자를 가지고 있게 되며, 이는 그의 이러한 신권을 대표하는 사람을 가진 셈이 되었다. 이리하여 하늘에 있는 신들의 대제사장이 있게 되었음과 아울러, 땅 위의 신(군주 자신) 의 대제사장도 있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밝혀진 바벨론 종교의 진상에서, 우리는 적어도 몇 가지 사실을 쉽사리 확인하게 된다. 첫째는 사단이 가인을 통하여 아벨의 성소(제사)와 유사한 위조(僞造) 성소 (제사)를 차리게 함으로써, 진정한 구속의 경륜을 혼란하게 하고 오해시키려 한 것과 같은 시도를, 고대 바벨론을 비롯한 이교의 종교를 통해 전개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단의 시도는 현대의 영적 바벨론을 통해서도 여전히 추진되고 있는 사실인데, 하늘의 참 성소를 모방한 지상의 유사성소인 미사(Mass)의식과, 인간 사제(司祭)를 중보로 한 간접 신앙, 고해 성사 등 많은 요소들이, 바로 이러한 고대 바벨론 종교의 배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지상권(至上權)을 주장해 온 교황권의 거금(距今)의 역사와,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을 아우러 나라들과 교회들의 머리로 군림해 온 사실들은, 고대 바벨론 종교체제의 "파테시"적인 역할의 재생인 것이다. 참으로 고대 바벨론과 현대 바벨론의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배후를 쉽사리 알게 된다(살후 2:4). 고대 세계는 오직 두 개의 종교제도를 가졌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구속의 경륜에 입각한 제도였으며, 다른 하나는 바벨론에 중심을 두고 "벨"(마르둑)의 신전인 에사길라에 집약된 유사(類似) 위조(僞造)종교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참 성소에 입각한 바른 신앙과(히 4:16, 8:1,2), "귀신의 처소"로 화한 지상의 바벨론에 속한 거짓 신앙인 것이다(계 18:2, 3)... 3.포로의 상반(相反)된 목적 「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 . .」 (단 1:2) 어떻게 다니엘서의 현실처럼, 그토록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에게 짓밟혀 황폐해지고, 언약의 선민(選民)이 포로로 잡혀 갈 수가 있는가? 적어도 구속의 역사 관점에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그 백성을 잡아간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사단의 목적과, 그분의 백성과 성전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단 1:2) 하나님의 상반된 목적이 교차하고 있다. 가.포로에 대한 바벨론의 목적과 방안 하나님의 성소(성전)에 대한 사단의 증오는, 전절에서 언급한대로 구속의 경륜(창 3:5)의 선언과 함께, 숙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뱀 곧 자신의 머리를 상하여 죽게 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마스터 플랜(기본 계획)인 성소에 대한 사단의 증오와 훼방은, 자연히 필사적(必死的)일 수 밖에 없다. 「사단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숨기고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성전에 서 떠나게 함으로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였다」(시대의 소망 Ⅰ, 36). 이리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성전(성소)를 훼파하기 위해, 고대의 대제국들을 끊임없이 충동하고 조종했다. 솔로몬이 죽은 지 5년도 못되어 쳐들어온 이집트 22 왕조의 창시자 시삭(SheshonkⅠ)왕에 의해 솔로몬의 성전은 크게 약탈당했으며(왕상 14:25, 26, 대하 12:2-9), 아람(다메섹)왕 하사엘의 예루살렘 침공(왕하 8:28, 29, 9:14, 15), 앗시리아 왕 산헤립에 의한 기원전 701년과 689년의 예루살렘 공격(왕하 8:14, 17, 19:8), 기원전 605년, 597년, 586년등 세 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 및 파괴, 그 후 폐르샤 왕들에 의한 예루살렘 중건(重建) 저지(스 4:5-16), 사마리아, 암몬, 아스돗, 아라비아등 인근 백성들에 의 한 중건 방해 공작(느 4:7), 그후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통한 성전 모독과 훼파(마카비 1서 1, 2장),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의 예루살렘 침입, 마침내 서기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훼파되고 말았다... 물질로 지어진 성전은 이렇게 훼파하였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수(傳受)한 또 다른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전들인 택한 백성들을(고전 3:16) 사단은 어떻게 다루었는가? 학살하거나 핍박으로 괴롭히거나 포로로 잡아가거나 때로는 회유(懷柔)시켜 더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 구속의 경륜에 대한 지식을 망각(忘却)하게 하려한 것이 곧 선민의 역사였다. 이러한 시도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종살이를 통해서, 사사시대의 이민족의 침입과 억압을 통하여,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에서, 남방 유다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그리고 폐르샤 시대의 유대인 전멸령(에스더서)이나 마카비 시대 동안 시리아에 의한 헬라화 운동, 그리고 로마제국에 의한 유대인의 박해와 시련 등 끊이지 않는 도전에서 명백해진다. 신약시대 동안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가해졌던 두려운 핍박과 순교, 중세기 1260년 간 교황권을 통한 성도들의 박해,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들에서의 박해등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단의 분노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바벨론 포로도 그 일단(一端)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교육과 후대(厚待)를 방편으로 한 회유책(懷柔策)을 써서, 이들을 바벨론 국정(國政)에 기용(起用)함과 동시에, 속국(屬國) 유다에 대한 효과적인 지배를 보장하는 한편, 무모한 반역을 억제하는 볼모 즉 인질(人質)이 되게도 한 것이다. 「 왕은 우상숭배를 위하여 저희 믿음을 포기하도록 히브리 청년들에게 강요하지 아니하고, 이 일이 서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에게 우상숭배의 의미를 가진 이름을 주고, 날마다 그들을 우상숭배의 풍습과 밀접한 접촉을 하게 함으로써, 이교 예배의 유혹적인 의식의 감화로, 그들로 하여금 저희 민족의 신앙을 버리고, 바벨론 사람의 예배에 연합하게 하고자 하였다. 교육을 통한 동화책(同化策) 「. . . 그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고」(단 1:4).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 특히 이들 젊은이들을 자신의 이상에 일치하도록 동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첫번째 방편은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변화"(變化)를 초래하는데 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구속의 경륜에 직결되어 있다. 「교육하는 일과 구속하는 일은, 결국의 의미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니, 이는 교육 하는 일도 구속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1)」(교육, 40). 사단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은 무엇인가? 갈대아인(Chaldeans)은 노아의 아들 셈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람을 조상으로 하는 아람족에 속하는 칼두(Kaldu) 족속을 가리킨다(창 10:22, 23, 대상 1:17). 이들 갈대아족이 바벨론을 중심으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했으므로, 성경에서나 고대의 역사가들도 그 나라를 자주 갈대아라고 불렀다. 나보포랏살이나 느브갓네살등은 모두 갈대아족에 속했는데, 이들 갈대아족은 신바빌로니아의 지배 계급이 되어, 제사장 직분을 비롯한 모든 고위 직분을 차지했다. 갈대아인이란 명칭은 바벨론의 제사장들, 최고의 학자들, 천문학자, 점성술사들, 마술사등 특수 계급을 가리키기도 했다. 갈대아 학문과 방언이란, 이러한 분야에 관해 베풀어진 최고의 교육으로, 3년 동안 각 분야의 학문을 비롯하여 아람어의 숙달과 쐐기문자의 습득도 포함되었다. 「거기에는 자국 바벨론을 비롯해서 메디아, 폐르샤, 이집트, 페니키아, 시리아 등 고대 나라들과, 정복당한 나라들로부터 모여든 가장 똑똑하고 민활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교과 과정은 언어, 갈대아 문학, 과학, 수학, 철학, 천문학, 점성술학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연관된 것으로 현대의 고고학은 수 많은 바벨론의 교과서들과 참고서들을 발굴해냈는데, 그 가운데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한 70권 짜리 논문도 있었음은 흥미있는 일이다.」 이러한 학문들을 통하여 지적인 위해함만을 추구하는 동안, 하나님은 잊혀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경시되어, 마침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근본임을 망각하고,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갈대아 형태의 학문의 결과로, 그동안 세상은 각 분야의 학문에 있어서 인지(人智)의 발달은 현저했고, 온갖 지식은 축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성(人性)은 개선되는 대신 오히려 타락하여 왔으며, 도덕적으로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본다... 현대의 모든 파멸적인 무신론, 회의론,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들이, 이러한 갈대아식의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들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이를 분쇄하고자 일어난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제수이트)의 교육 사업을 통한 반종교 개혁에 의해, 거의 무력하게 되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현대 바벨론의 주축이 되고 있는 교황권의 유지와 교권 확장의 기틀이, 바로 가장 강력한 교육제도를 통해 수행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갈대아식의 학문, 즉 하나님 없는 탁월 한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육을 통해, 사단은 지금과 같이 세상을 그의 뜻에 일치하도록 바꾸어 놓은데 크게 성공한 것이다. 식생활을 통한 동화책 「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 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 . .」(단 1:5). 사람의 몸은 골격이나 근육이나 신경조직이나 할 것 없이 그가 먹는 음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는가 하는 문제는, 그가 어떠한 몸과 정신, 나아가서는 성품을 가지게 될지를 결정해준다. 「정신과 신체의 능력은 물론, 영적 능력도 비건강적인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 양심은 마비되며, 선한 감화에 대한 감수성은 감소된다」(CD, 230). 「우리의 신체는 정신과 영혼이 계발되어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원수는, 육체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퇴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 육 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죄악의 세력에 굴복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MH, 130).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가 영적, 도덕적, 건강적 원칙을 일체 고려하지 아니한 바벨론 왕궁의 식생활에 아무 저항 없이 동화되었더라면, 그들의 신앙과 품성, 나아가서는 운명까지도 결국 그들과 동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고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시 69:22). 사단은 세상을 타락시키는 일에, 이 올무와 덫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는가! 개명(改名)을 통한 동화책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단 1:7).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은 단순한 호명(呼名)이상의 뜻이 있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언약관계를 나타내거나(창 17:3-5, 15, 16, 32:27, 28), 종교적인 소원을 표현하는 예배적 의미를 포함하기도 했다. 「히브리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주는 이름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때때로 이 이름들은 부모가 그 아이에게서 계발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었다」(선지자와 왕, 460). 잡혀 온 히브리 네 소년들의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이름들은,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 부모님의 자녀들이며, 얼마나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기대에 넘친 귀중한 존재들임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이름들이었다. 그들의 히브리 본명(本名)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기도 했다. ○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God is my judge) ○ 하나냐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Yahweh is gracious) ○ 미사엘 - "누가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 (Who belongs to God) ○ 아사랴 - "여호와께서 도우신다." (Yahweh helps) 그들의 이러한 이름들이 환관장에 의하여 각각 아래와 같이 바뀌어 불리움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인식(自己認識)을 망각하게 하고, 오히려 우상숭배적인 신앙에 공명(共鳴)내지 최면적(催眠的)인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 벨드사살 - "벨(Bel)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다." (Bel will protect his life) ○ 사 드 락 - 뜻을 분명히 알 수가 없으나 월신(月神)을 경배하는 자라는 뜻 을 지닌 것 같다. ○ 메 삭 - 역시 분명치 않으나 포도주의 여신에게 몸 바친 자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 아벳느고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아들인 "나부(신)의 종" (Servant of (the god) Nabu). 후대(厚待)와 번영을 통한 동화책으로, 포로의 신분으로 잡혀 온 이들 히브리 소년들은, 육신적인 생활에 관한 한 가장 부러워할만한 환경에 처해졌다. 대제국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편의가 그들에게 제공되어, 그들의 신상(身狀)을 직접 책임진 궁중 고급 관리들이 배정되었고, 모든 필요가 넉넉히 공급되었으며, 왕의 은총 가운데 우대받는 입장에 놓였다. 번영과 호의는, 역경과 적의(敵意)보다 자주 자주 더 어려운 시험이 되어왔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거듭된 시험이었으며(신 28:47),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소돔의 죄악이었으며(겔 16:49),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필요를 넉넉히 공급받으면서도 오히려 "영혼은 파리"하였었다(시 106:15). 오늘날도 생활이 부요한 사회 계층과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들이, 도덕적으로는 더욱 부패해 있음을 본다. 이토록 나이 어린 소년들에게는 거의 불가항력적인 안팎의 시험들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을까? 나. 포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주께서 . . . 붙이시매 . . .」(단 1:2). 다니엘서 1장의 사건은,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고, 그 분의 백성들이 포로돼 감으로써, 일견 하나님 편의 일방적인 패배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불행한 사태 아래서도, 이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즉, 성전과 백성의 얼마를 바벨론의 손에 능동적으로 "붙이신"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고 성전이 황폐하게 되는 사태는, 불순종에 대한 조건적인 저주와 심판과 치유의 방편임이, 일찌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된 사실이다(레 26:14, 15, 31-33, 신 28:15, 36, 64, 65). 이는 백성의 죄악을 고치고, 타락의 길에서 돌이키기 위한 사랑의 징계가 그 목적인 것이다(레 26:13, 21, 27, 40, 렘 9:21, 22, 10:11-14). 실제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바로 그것이 포로되어 가게 만든 주요 죄악이었던 우상숭배에 다시는 빠져들지 않았으며, 안식일 준수에도 보다 철저하게 되었다(겔 20:13, 20-26, 22:15-26, 느13:15-22)... 온 세상에 참 하나님을 소개하고, 구원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포로가 허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했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의 전달자로 택함받은 그들의 사명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성취될 것이었다(신 26:19, 28:10, 4:6).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로 말미암아 이 사명은 고난과 역경중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당시의 세계적인 세 대륙, 즉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서로 마주치는 육교(陸橋)에 두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진리와 구원의 등대로 삼으려 하신 까닭이다(사 60:1).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바벨론의 위대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 사람들이 히브리의 종교를 알게 되고, 모든 나라를 통치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7T, 161).... 결국 포로의 경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돌이킬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로 멸망해 가는 "바벨론을 치료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렘 51:9).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바벨론인이나 구분 없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의 계획을 추진시키고(창 3:15), 이를 실현하기 위해(요 3:16) 각 시대 만민에게 차별이 없는 은혜를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다(창 12:2, 3, 롬 1:16). 그리고 이 일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를 통하여 바벨론에서 훌륭히 성취되었음을 본다 (단 2:28, 47, 4:17, 25-27, 34-37, 5:1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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