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다니엘서

다니엘 5장 바벨론의 멸망-벨사살의 주연-

영국신사77 2006. 8. 17. 09:09


다니엘 5장 바벨론의 멸망 -벨사살의 주연-


시작하는말 

밤은 하루를 끝내는 마지막 시간이다. 밤

이 없는 날이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마지막 밤이 있으며, 

모든 나라에도 마지막 밤이 있어 왔다. 

단지 그 밤이 언제인지 모르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뿐이다. 

본능대로 살고, 재물만을 위해 살면서, 하나님과 영원한 사물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이러한 선고를 듣게 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자신의 구주를 배반한 채 

성만찬의 빵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요 13:30)고 기록된 가룟 유다의 마지막 밤은, 

아침이 다시 없는 영원한 밤이었다.

 

기원전 539년 10월 13일은, 

대담하게도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술과 여자와 우상숭배에 빠졌던 바벨론 왕 벨사살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 밤은 벨사살 자신의 마지막 밤이었고 

동시에 대제국 바벨론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나의 마지막 밤은 언제일까.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 밤은 끝없는 암흑의 밤인가, 

아니면 밝은 아침이 약속된 안식의 밤인가.




▶ 역사적 배경 - 바벨론의 마지막 왕

바벨론(신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바벨론의 마지막 밤의 역사 기록인 다니엘서 5장은 벨사살을 마지막 왕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일반고대 역사에는 나보니더스(Nabonidus)로 기록돼 있다. 

성경을 불신하는 비평가들은 이 사실을 들어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1924년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에 의하여 

대영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고대 점토 문서 "나보니더스에 관한 이야기"가 출판됨으로써 진실이 밝혀졌다.

 

마지막 왕 나보니더스가 그의 재위 3년에 북부 아라비아의 테마(Tema)로 원정을 떠나면서 

장자인 벨사살에게 왕위를 위임하여 

그를 섭정왕(攝政王)으로 삼고 바벨론 성을 다스리게 하였다. 

바벨론 성이 페르샤에게 함락되던 당시 바벨론 성를 지키고 있던 바벨론 왕은, 

나보니더스가 아니라 벨사살이었음이 고고학의 기록에서 확인된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틀릴 수 있어도, 성경의 기록은 틀릴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역사에 관해서도 성경은 정확한 교과서이다.

 
▶ 바벨론의 마지막 밤

 
1.바벨론의 마지막 밤의 장면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벨사살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단 5:1).

 
[설명] 고대의 대제국 바벨론의 마지막 밤은 정확히 기원정 539년 10월 13일 밤이었다. 고대 역사에 의하면, 당시 바벨론은 신흥 대제국인 페르샤[성경의 바사]의 국부 고레스(Cyrus)의 연합군에 의하여 연전연패하여, 전선에 나갔던 부왕 나보니더스는 10월 10일 보르시파 성으로 퇴각하였으며, 섭정왕 벨사살은 바벨론 성을 지키고 있었다. 5장의 사건은 페르샤이 연합군이 바벨론 성을 포위한 가운데, 성안에서 베풀어진 마지막 잔치였다.

  왜 이처럼 위태로운 사황에서 술잔치를 베풀었을까.
술은 불안하고 초조할 때 뇌신경을 마비시켜 일시적인 평안을 느끼게 하는 진정제이다.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겁에 질린 왕의 공포를 달래어, 떨어진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베푼 겁쟁이의 술잔치였으며, 적에게 포위되어 불안해하는 국가 지도급 인사 1천명을 초청하여, 자신과 국가의 건재(健在)를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잔치이기도 했다.

 
2.잔치 도중 술에 취한 왕에 의해 어떤 불경스러운 일이 저질러졌는가?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 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단 5:2, 3).

[설명] 술에 취하여 정신이 몽롱해진 벨사살왕은 느부갓네 살 당시 하나님을 섬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략해 온 금, 은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여, 왕후와 빈궁들과 더불어 그것들로 술을부어 마시게 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 그릇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봉사에 쓰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서, 지극한 성물(聖物)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정례(定禮)가 아닌 후궁들과 처첩들과 더불어 그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신 것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신성모독 행위였다.

 
3.이처럼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대담하게 모독하는 한편 누구를 찬양하였는가?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단 5:4).

[설명] 바벨론은 다신교(多神敎) 국가로 우상숭배의 종주국(宗主國)이었다. 지방마다 도시마다 별개의 신들이 있었으며, 각종 금속과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들이 신으로 숭배되었다. 게다가 멸망 당시, 바벨론 성안에는 페르샤에 의해 함락된 도시들과 지방들에서 피신시킨 온갖 신들이 집결되어 있어, 가히 우상신들의 전시장을 방불하게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사용되는 성전의 거룩한 그릇에, 술을 부어 여자들과 더불어 마시면서 우상을 찬양한 난잡한 행위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신성모독의 극치였다.

4.셩경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한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필수 조건으로서 무엇을 명하고 있는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26:1. 2).

[설명] 성소(聖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場所)로서, 안식일(安息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시간(時間)으로서, 특별히 성별(聖別)되어야 하는 참다운 예배의 필수 요소이다.

 
5.마지막 때에도 영적인 바벨론에 의해 어떤 파멸적인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고되었는가?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계 18:1, 2).

[설명] 오늘날도 교회가 하나님 대신 세속적인 권력을 위지하고 유형, 무형의 우상숭배를 고집하면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기를 거절하고 영적인 판단을 그릇 가르치는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술을 허용하면, 교회는 멸망 전야의 고대 바벨론처럼 사단의 영(靈)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處所)가 된다는 두려운 경고이다.

 
▶ 심판의 기별

6.하나님을 모독하는 대담한 행위가 극치에 달했을 때 어떠한 극적인 일이 일어났는가?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춧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단 5:5).

[설명] 바벨론의 마지막 밤 술잔치가 벌어졌던 곳은 느부갓네 살이 세운 가공원(架公園)에 잇달아 지은 남궁(南宮)의 중앙홀로 확인된다. 남궁 중앙에는 길이 약 52미터, 폭 17미터, 높이 18미터 가량의 넓은 홀이 있었고, 신비한 글씨가 쓰여진 벽은 보좌 맞은편의 높다란 석고 분벽으로 생각된다.

  

손가락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양심판인 두 돌비에 십계명을 친히 쓰신 하나님의 손가락이며,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치기를 자청했던 워선자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친히 땅바닥에 글을 쓰셨던 것과 같은 심판의 손가락이었다.

 
7.이 뜻밖의 사건에 대한 왕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단 5:6).

[설명] 술에 취한 벨사살은 정체불명의 손가락이 써 놓은 뜻도 모르는 몇 자의 글을 보는 순간, 얼굴은 창백해졌고 오금이 내려앉아 공포에 휩싸였다. 죄를 지은 사람의 양심은 스스로의 정죄(定罪)에 따라 부과된 두려운 죄책감에 절로 압도되는 것이다.

 
8.이 돌발적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가?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때에 왕의 박사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벨사살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단 5:7~9).

[설명] 공포에 휩싸인 왕은 소리쳐 보좌관과 박사, 점성술사를 불렀으며 그 글을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나라의 세 번째 자리까지 약속했다. 왜 하필 "세 번째 자리"였을까. 벨사살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아버지 나보니더스의 섭정왕이었으므로 부왕(父王)과 자신을 제외한 다음 자리는세 번째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비한 글자를 읽고 해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과 참석자들의 공포는 그럴수록 증폭되었다.

9.이 때에 도움을 자청하고 나선 태후는 누구이며 어떠한 제안을 했는가?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 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피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설명] 이 위태로운 순간에 왕궁의 소란을 듣고 달려온 태후(太后)는 누구인가.  태후라는 표현은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가리킬 수 있는 용어인데, 벨사살의 할머니는 그 일이 있기 8년 전에 별세했기 때문에, 이곳의 태후는 왕의 어머니이자 느부갓네살의 딸인 니토크리스(Nitocris)로, 다니엘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10.왕은 다니엘을 불러 어떤말을 했는가?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입어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단 5:13, 14, 16).

[설명] 다니엘은 그 당시 이미 84세를 넘긴 고령으로 정계(政界)를 떠나 있었을 것으므로, 벨사살은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늠름한 다니엘을 처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다니엘을 사로잡아 온 느부갓네 살이 어떻게 벨사살의 "부왕(父王)"이 되고 벨사살은 그의 "아들"이 되는가.

  

이곳의 "아버지", 혹은 "부친"이라는 말은 아버지 말고도 조부, 증조부, 고조보, 조상등을 일컬을 수 있는 폭넓은 용어이다. 벨사살의 경우 느부갓네 살의 딸인 그의 어머니를 통해 그의 외손자가 될 수 있으며, 느부갓네 살의 의붓아들이었던 부왕 나보니더스를 통해서는 그의 의붓손자가 될 수 있어, 이곳에서는 선왕(先王)의 뜻으로 쓰였다.

11.해석에 나선 다니엘의 입장과 반응은 어떠했는가?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 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단 5:17~21).

[설명]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장하고 늠름한 다니엘은 죄책감과 불안으로 초췌해지고 공포로 떨고 있는 미결수(未決囚) 벨사살을 심문하는 판사의 모습으로 군림했다. 그는 이미 선고된 바벨론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바벨론이 제공하는 일체의 명예나 호의를 거절하고 그의 논고(論告)를 시작했다. 다니엘은 벨사살의 외조부였던 느부갓네 살의 경험을 일일이 들추어가며 벨사살의 죄상(罪狀)을 깨닫게 했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속성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면서도, 명백한 교훈을 받지 못하고 이처럼 대담한 신성모둑의 죄를 범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처신이었다. 그처럼 위대했던 대왕 느부갓네 살도 끝내 경배한 하나님을, 이처럼 무시하고 공공연히 모독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2.벨사살과 바벨론의 파멸을 가져온 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단 5:22, 23).

[설명] 한 마디로 교만과 자만이었다. 피조물인 자신을 창조주인 하나님 이상으로 높이고,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하는 존경과 영광을 빼앗은 예배 찬탈죄였으며, 그것을 자기숭배의 방편인 우상숭배로 대치한 예배 횡령죄였다. 그것은 부모의 존재와 권위를 무시하고 오히려 능멸한 패륜죄(悖倫罪)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였다.

13.마지막 때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엄숙한 기별은 무엇인가?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설명] 벨사살과 바벨론의 종말을 가져왔던 동링한 죄가 마지막 세상에 파멸을 가져올 것으로 예고되었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반응이다. 식물이 태양 빛에 반응하기를 거절하면 광합성(光合成)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꽃도, 열매도 발생할 수 없듯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존재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행이요 파멸인 것이다.

14.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끝까지 거절하고 우상숭배를 선택한 왕에 대한 선고는 무엇이었는가?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단 5:24. 25).

 
15.그 신비한 선고문의 해석은 무엇인가?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단 5:26~28).

[설명] 글자는 당시 바벨론의 공용어(公用語)였던 아람어로서, 쉽사리 읽을 수는 있었을지라도 문장이 아니어서 뜻을 바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메네"(MENE)는 "계산되다", "헤아려지다"는 뜻이며, "데겔"(tekel)은 "저울에 달려지다"는 뜻이고, "우"(u)는 접속사로 "그리고"이며, "바르신"(pharsin)은 "베레스" (peres)의 복수형으로 "조각들"이란 뜻인데, 복수일 경우 "조각들"이란 말 대신 "페르샤 사람들"(Persians)로 불리울 수도 있다.

 

해석된 선고의 내용인즉, 벨사살과 그의 나라가 헤아려 보고 달아본 결과, 기준 미달로 더 이상 존재해야 할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포위하고 있는 메대와 페르샤에게 나라를 넘기시겠다는 최후의 통고였다. 희희낙락하던 술잔치는 ,이제 공포와 불안으로 아우성치는 수라장이 되었다. 바벨론의 마지막 밤 술잔치는 죄악의 잔을 채워 마침내 심판을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16.그 신비한 글자를 읽은 다니엘의 준엄한 선고가 있은 직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단 5:30).

[설명] 여러 날 난공불락의 요새인 바벨론 성을 

헛되이 포위하고 있던 메대와 페르샤의 연합군은 묘안을 얻었다. 

바벨론 성이 유프라테스 강 위에 건설되었음을 기억하고, 

상류의 물을 분지(盆地)로 돌려 강물의 수위(水位)를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특공대들은 통로가 된 강바닥을 통해 바벨론 성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으며, 

술에 취해 있던 바벨론의 수비대를 제치고 술잔치 자리까지 돌진하여, 

방금 다니엘의 선고를 듣고 사색(死色)이 되어 떨고 있는 왕을 살해함으로써 

바벨론의 종말을 가져왔다.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느부갓네 살이 꾸었던 황금 꿈이 

70년도 못 되어 흉몽으로 끝난 밤이기도 했다.

17.성경은 이 세상의 최후가 고대 바벨론의 멸망과 흡사할 것임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계 16:12, 19, 20).

[설명] 고대 바벨론이 동방에서 온 왕들인 

메대 왕과 페르샤의 왕 고레스(Cyrus)에 의해 졸지에 멸망당했듯이, 

타락한 바벨론의 신앙과 문화로 가득 찬 이 세상도 그렇게 졸지에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동방의 페르샤 왕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면서 

포로되었던 유대 백성들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이르게 될 것이다 (히 12:22, 23).

18.오늘날 영적인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호소가 있는가?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계 18:4, 5).

▶ 마치는 말

고대 바벨론을 경고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하여 

세 차례에(다니엘서 2장, 3장, 4장) 걸쳐서 분명한 기별을 보내셨다. 

그러나 파렴치한 왕 벨사살과 바벨론의 백성들에 의하여 그 기별은 끝내 거절되고, 

마침내 바벨론의 종말(다니엘서 5장)이 신속히 이르게 되었다.

  

도덕적(道德的)으로, 문화적(文化的)으로, 신앙적(信仰的)으로 바벨론이 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도 

「세천사의 기별」로 알려진 세 차례의 메시지[기별]를 보내셨다(계 14:6~12).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기별에 대한 반응에 따라 각 사람과 세상의 영원한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귀하는 이 기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느부갓네 살의 회개와 구원인가, 아니면 벨사살의 불순종과 파멸인가?


출처 블로그 > 천성 가는 길목 쉼터
원본 http://blog.naver.com/kbs021/20013175039



다니엘서 제5장 바벨론의 멸망

1.멸망까지의 역사적 배경


가.바벨론의 신원(身元) 확인

다니엘서 5장은 여러 해 전까지만 해도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는 비평가들에 의하여 가장 혹독한 공격을 받았던 부분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5장의 주인공인 벨사살이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 아닐 뿐더러 

역사에도 없는 가공(架空)인물로 여겨져 

성경이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는 증거처럼 주장돼 왔다.


그러나 1924년 시드니 스미스(Sidney Smith)가 

대영제국 박물관에 수집돼 있던 "나보니더스에 관한 이야기"(Verse Account of Nabonidus)가 

출판됨으로써 결정적인 단서가 잡혔다(본서 총론 II. 다. 참조). 

본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한 진영(陳營)을 그의 맏 아들의 책임 아래 두었다. 

그는 군대를 그와 함께 보냈다. 

그는 그와 협정 맺고 그에게 왕권(Kingship)을 위탁했다. 

자신이 머나먼 여행으로 떠나 있는 동안 

. . . 아무루(Amurru)에 있는 데마(Tema)로 그의 얼굴을 향했다. 

옛적에 가 보지 않았던 길, 먼 여행 길을 그는 떠났다. 

그들은 검으로 테마 왕을 죽였다.  

그는 그 도시를 단장했고, 그는 그 도시를 만들었다. 

그들은 그 도시를 바벨론 궁궐처럼 만들었다.]


발견된 당대 여러 문서들을 종합해 보면 

벨사살은 부왕인 나보니더스 3년에 이미 왕권을 위임받았으며 

바벨론성 군대의 통수권을 받았다.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부왕 나보니더스가 북부 아라비아의 테마(Tema)를 정복하기 위해 출정하던 때였다. 

나보니더스는 테마를 정복한 후 이를 재건하여 그의 거주지로 삼아 

약 10년 간이나 틈틈이 거기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바벨론의 모든 공식적인 국무(國務)는 벨사살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러한 결정적인 고고학적 증거는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의 위조문서라고 우기던 고등비평가들을 

헤어나올 길 없는 궁지에 몰아 넣었다. 

이런 궁지에 몰린 하바드 대학교의 파이퍼(R. H. Pheiffer)교수는 

아래와 같은 말로 난처해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저자(다니엘서의 저자)가 

어떻게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만 나오는 벨사살이, 

다니엘서와 다니엘서에 근거한 바룩서 1장 11절에 나오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했을 당시 왕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기록했는지 

추측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고고학에 의한 벨사살의 신원 조회 확인 결과는 

20세기 성서고고학의 찬란한 승리에 속하고 있다.



나.함락 당시의 바벨론 왕

바벨론이 함락되던 날 밤, 바벨론성에는 

[벨사살왕이 그 귀인 일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였다(5:1). 

때에 부왕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바벨론 본성(本城)에는 벨사살 밖에 없었는가. 

보다 구체적인 기사가 발견된 "나보니더스의 연대기" (The Nabonidus Chronicle)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제 7년에 왕은 테마에 (머물렀다.) 

황태자와 그의 대신 (大臣)들, 그리고 그의 군대는 아카드(Akkad)에 (있었다). . . .

제 9년 왕 나보니더스는 테마에(머물렀다) 

황태자와 그의 대신들, 군대는 아카드에 (있었다). 

니산월(Nisan)에 왕은 바벨론에 오지 않았다. 

나부(Nabu)신은 바벨론에 오지 않았다. 

벨(Bel)신은 에사길라(Esagila·신전)에서 나오지 않았다. 

신년 축제는 생략되었다. ……제 10년왕은 테마에 (머물렀다)]


나보니더스는 기원전 556년부터 539년까지 왕위에 있었고 

그의 아들 벨사살은 부왕의 재위 3년 째부터 섭정왕(攝政王)으로 부임한 것으로 생각하면 

기원전 553년부터 539년까지 재위한 셈이다. 

나보니더스의 연대기에 의하면 이 기간 중 나보니더스는 

그의 재위 7년 (549 BC), 9년(547 BC), 10년(546 BC) 그리고 11년(545 BC)에는 테마에 있었고, 

바벨론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연대기에 의하면 

나보니더스는 그의 재위 17년인 기원전 539년 바벨론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고레스의 군대가 바벨론을 함락시키기 몇 주일 전, 

티스리월(Tishri·10월)에 바벨론에서 빠져나왔음이 나보니더스의 연대기에 적혀 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함락되던 당시 

성내에는 다니엘서 5장의 기록처럼 벨사살 왕만 있었고 

그 만 죽임을 당한 것이다(5:30). 

이 얼마나 성경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역사적 고증(考證)인가. 

나보니더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여 인용된 

바빌로니아의 역사가 베로수스(Berosus)의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나보니더스가 그의 재위 17년에 이르렀을 때, 

고레스(키루스)가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에서 나왔다. 

그는 이미 아시아 전역을 정복하고 나서 바빌로니아를 향해 급히 쳐들어왔다. 

나보니더스는 그가(고레스) 자기를 공격해 오고 있음을 알고서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그와 마주쳐 그와 더불어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군대 중 소수만을 데리고 보르시파(Borsippa)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아버렸다. 

이에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했고, 

그 성의 외각 성벽들을 헐어버려야 한다고 명령하였다. 

왜냐하면 그 성은 그에게 매우  두통거림임이 입증되었으며, 

그것을 취하기 위해 상당한 댓가를 치뤄야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고레스)는 나보니더스를 포위하기 위해 보르시파로 진격했다. 

그러나 나보니더스는 포위에 버티지 않고 자기 스스로 그(고레스)에게 투항했다. 

그는 처음에 고레스에 의해 친절하게 취급되다가 

그가 거하여 살 장소로 카르마니아(Carmania)를 받고 바빌로니아를 떠나갔다.]



다.느브갓네살에서 벨사살까지

우리는 앞서 4장에서 느브갓네살의 기사를 대한 뒤 

5장에서 바로 느브갓네살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지는 벨사살을 

바벨론의 마지막 왕으로 대하게 된다(5:18, 22). 

느브갓네살 이후의 왕들과 벨사살과의 관계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총론 III. 나. 참조). 


이를 간단히 개략하면 아래와같다.

느브갓네살은 43년 간 다스린 뒤 4장의 사건 후인 기원전 562년 10월 초에 죽었다. 

그의 무능하고 악한 아들 아멜 마르둑 (성경의 에월므로닥)이 

재위 2년 만에 모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렘 52:31-34, 왕하 25:27-30).

느브갓네살의 사위 가운데 하나로 반역을 주도한 네르갈샤르우스가 4년간 다스렸다(렘 39:3, 13)

다음에는 그의 아들 라바쉬 마르둑이 즉위했으나 

2개월 만에 느브갓네살의 다른 사위인 나보니더스를 지지하는 모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556 BC).

어머니를 통하여 느브갓네살의 의붓 아들이 되기도 하고 

부인을 통하여 그의 사위가 되기도 하는 나보니더스는 정치나 군사 문제보다는 

종교와 고고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문약(文弱)한 군주였다(총론 III. 나. 나보니더스 참조).

그는 신병(身病)등 이런 저런 이유로 바벨론성을 떠나 있으면서 정치문제를 등한하여 

바벨론의 지배계급에게 소외당하고 있었다. 

특히 신전들에 막대한 수익(收益)을 올리게 해주는 신년 축제의식을 여러 번 생략함으로써 

제사장 계급들과 반목이 심했다. 

더우기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보다 

자기와 자기 어머니가 이전에 섬기던 하란의 월신(月神)인 신(Sin)을 높임으로써 더욱 그랬다.


그는 기원전 553년 동부 팔레스틴 정복에 나선 동안 

와병(臥病)하여 병 회복을 위해 레바논으로 가서 요양하였다. 

이 때 맏아들 벨사살이 섭정(攝政)하기 시작하였으며 552년부터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스렸다. 

그랬으므로 그가 벽 위에 나타난 글자를 해석한 다니엘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자리는 첫번째의 아버지와 두번째인 자신을 제외한 "세째 치리자"의 자리였음이 명백해진다(5:16). 

병에서 회복된 후 나보니더스는 

서북 아라비아 정복에 나서 오아시스인 테마(Tema)를 빼앗고 

기원전 545년까지 때때로 거기 머물러 살았다. 

수도 바벨론성에는 아들 벨사살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라.느브갓네살과 벨사살의 관계

다니엘은 벽 위에 쓰인 글자를 해독(解讀)하라는 요청을 받은 자리에서 

벨사살 왕을 정면으로 견책하면서 

"왕의 부친 느브갓네살"(5:18)이라는 말과 

"왕은 그(느브갓네살)의 아들이 되어서"(5:22)라는 표현을 썼다. 

어떻게 이러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가? 

로버트 딕 윌슨(Robert Dick Wilson)의 세밀한 고증(考證)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아랍과 바빌로니아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들"이란 말이 "손자" 혹은 "양자"를 비롯하여 

적어도 열 두 가지 이상의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말도 "조상" (ancestor)을 비롯하여 

"조부", "증조부", "고조부", 그 이상도 가리키는 등 적어도 일곱 가지 용법을 지녔었다는 것이다. 

그 한 예가 앗시리아의 비문에도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왕 예후를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썼다. 

두 사이에는 아무런 혈족관계가 없고, 

오히려 예후는 오므리의 집안을 멸족(滅族)한 인물이었다(왕하 9:10).


벨사살의 경우 느브갓네살의 딸인 그의 어머니를 통하여 

느브갓네살의 외손자일 수도 있고 

느브갓네살의 의붓 아들인 그의 아버지 나보니더스를 통하여 손자(의붓)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앞서의 예처럼 단순히 선왕(先王)의 관계에서 그렇게 불릴 수도 있다.


2.바벨론 멸망의 전야(前夜)


다니엘서 5장의 사건은 정확하게는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밖에 일어난 사건으로, 

앞 서 4장의 사건을 느브갓네살이 죽은 기원전 562년 10월 초의 사건으로 기준한다면 

두 장 사이의 시대적 간격은 23년이 되는 셈이다.


5장의 사건은 금 머리와(2장) 독수리의 날개를 단 사자로(7장) 표상된 바벨론의 마지막 밤으로, 

금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은 팔 가슴이 들어서는 순간이었으며(2장), 

사자가 넘어가고, 곰이 올라오는(7장) 세계사의 엄숙한 찰나였다. 

바로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다니엘은 

5장에서 바벨론의 최후에 관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열거하고 있다.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5:1-4)

각종 우상신들을 찬양했다(5:4,23)

벨사살이 성 안에 있었다(5:1,2 6-9)

벨사살이 그 밤에 죽임을 당했다(5:30)

메대와 폐르샤에게 망했다(5:28)

메대의 다리오가 왕국을 차지했다(5:31)


실제로 이러한 사실들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얼마나 실제적이고 역사적인가



가.마지막 잔치

성경은 바벨론의 멸망 큰 잔치가 베풀어지던 밤에 있었다고 말한다(5:1-4, 28, 29). 

이 사실에 대하여 희랍의 역사가 크세노폰(Xenophon)도 바벨론이 함락되던 당시 

[온 바벨론에 어떤 잔치가 있었는데 

이 잔치가 있을 동안 바벨론이 온통 마셨고 밤새도록 흥청거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고레스는 이렇게 환락의 잔치가 바벨론성 안에서 베풀어져 

밤새 흥청거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밤을 도와 공격했다고 썼다. 

이렇게 마지막 밤이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


나보니더스 통치 초기에 동방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는 메대의 봉신왕(封臣王)인 안산(Anshan·페르샤)왕 고레스였다. 

그는 마침내 기원전 553년 종주국 (宗主國)인 메대를 반역하고 

550년에는 수도 엑바타나(Ecbatana)를 점령했다.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 나보니더스는 

고레스를 대항하기 위해 이집트와 사데(Sardis)의 리디아(Lydia)와 연맹을 맺고 대항했다.


그러나 기원전 547년 고레스에 의해 사데에서 크뢰수스(Croesus)가 패하자, 

바빌로니아는 직접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539년, 충분한 전쟁 준비를 끝낸 고레스는 

바벨론 영토로 진격하여 바벨론의 풍요한 동부 방어성인 구티움(Gutium)을 쉽사리 점령했다. 

이에 놀란 나보니더스는 바벨론의 여러 신들의 힘을 빌어 자신을 지키고, 

고레스가 들어와서 이러한 신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침략이 예상되는 성들로부터 그 성의 신들의 조상(彫像)들을, 

53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모두 바벨론 본성으로 모아들였다. 

그의 이러한 처사는 신을 도적질해 가는 것으로 여겨져, 

성들의 지방민들과 지방 제사장들을 분노하게 했으며 

마르독 신만을 최고의 신으로 받들던 바벨론성의 제사장들을 시기나게 했다.


이에 벨사살은 고레스가 티그리스 강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티그리스 강변의 요충인 오피스(Opis)에 군대를 이끌고 나갔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오피스를 점령한 페르샤 군사는 

아무 저항 없이 539년 10월 11일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충 도시 시파르(Sippar)에 진입했다.

위급해진 나보니더스는 그 전 날인 10월 10일 남쪽으로 도망쳐, 

보르시파(Borsippa)성에 들어가 성문을 닫았으며, 

벨사살은 시파르에서 남쪽으로 35마일 아래 쪽인, 

바벨론 본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임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벨사살은 그 견고한 네 겹의 성벽과 

위기에는 주변의 지방들을 물로 잠기게 하여 침입자들이 성에 이르지 조차 못하도록 설계된 

운하망으로 보호된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을 철석 같이 믿고, 

오히려 자만심에 넘쳐 있었다. 

다음은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터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성벽들 밖에 진을 치고서 그(고레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도시로부터 멀지 않은 장소에서 한 바탕의 싸움이 벌어졌으나 

바벨론 사람들은 페르샤 왕에게 패하여 자기들의 방어시설을 철수시켰다. 

그들은 바벨론 성안에 들어 박혀서 그의 포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는 그들이 고레스가 한 나라씩 한 나라씩 정복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그 정복을 결코 멈추지 않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차례가 오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 공격에 대비한 준비로 여러 해를 위한 양식을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성벽들 안에 들어 앉은 그들은 이 봉쇄를 비웃었는데, 

이는 그들이 약 20년 동안의 필수품들을 스스로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 . .

고레스는 바벨론 성안에서 어떤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온 바벨론 사람들이 밤새껏 마시고 흥청거린다는 사실을 들었다.]


[오래지 아니하여 불운이 닥쳐왔다. 

 바벨론은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메대 사람 다리오의 조카인 고레스에 의하여 포위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 견고한 성벽들과 구리문들을 가진 난공불락(難功不落)인 것처럼 보이는 성채 안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보호되고 넉넉하게 식량을 비축해 둔 주색에 빠진 군주는 

안전하게 느끼고, 환락과 주연으로 시간을 보냈다](선지자와 왕, 500)


공포를 달래는 잔치

이 위태로운 순간에, 왜 이렇게 엄청난 술 잔치가 베풀어졌을까. 

주연이 베풀어진 때는 539년 10월 13일 밤이 되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새인 시파르(Sippar)가 함락된 10월 11일 다음 날인 것으로, 

벨사살의 부왕 나보니더스는 전투에서 패하여 

바벨론 남쪽에 있는 보르시파(Borsippa)에 피신하고 있는 터였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나라와 자신과 아들을 위해 

앞서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패하여 보르시파 성에 갇힌 채 불안에 떨고 있는 때,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아들은 평안하고 안전한 바벨론 성안에 들어앉아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된 술잔치를 벌이다니! 

혈연을 같이 한 아버지가 적군으로 둘러 싸인 성 밖에 있고 생사조차도 분명치 않은 때, 

부량자요, 불효인 벨사살이 취한 이 경망한 태도야말로 

오늘날 얼마나 많은 현대의 벨사살인 불량한 자식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는 정신인가.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나가 자식들을 위해 

혼신(渾身)의 힘이 진하고 몸의 피가 마르도록 수고하는 부모님들의 노고(勞苦)를 

아랑곳하지 않는 자식들이야 말로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이 땅에 이르게 하는 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한 목석(木石)같은 사람들인 것이다(딤후 3:1-3).


왜 이러한 잔치를 이런 때에 베풀었을까. 

아마도 긴박한 상황 때문에 점증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진정시키고 

연전연패(連戰連敗)로 인하여 

떨어질대로 떨어진 사기(士氣)를 진작(振作)시키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무엇보다도 제사장들을 비롯한 지도 계급이, 

이미 이전부터 나보니더스-벨사살 체제에 대해 가져온 

노골적인 불만과 불평을 달래야 했을 것이었다. 

본성 바벨론을 버려두고, 외유(外遊) 만을 즐기며 

그토록 중요한 바벨론의 신년 축제도 걸르기가 일쑤고, 

주신인 마르둑을 경시하는 듯한 나보니더스의 태도는 특히 그랬다. 

겨우 페르샤의 공격이 있기 직전에 돌아와 제대로 싸움도 못하고 도망친 부왕과, 

바벨론이 적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기까지 

변변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벨사살에 대하여, 

백성과 지도 계급 특히 제사장들이 가진 불신감은 대단하였음에 틀림없다.


이리하여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서 불신감을 해소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술과 여자와 우상숭배 의식까지 곁들인 환락의 잔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메대와 페르샤의 대군에 의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불안하고 동요하는 백성들에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 태연하게 잔치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제스쳐일 수도 있다. 

고조되는 불안을 잊고 진정시키기 위해, 

여럿이 한 대 어울려 술을 마셔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사람이 바로 벨사살이었다.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고…… 

네 힘을 여자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잠 31:2-7).



나.술과 여자와 우상의 제전(祭典)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명하여 

그 부친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 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5:1-4).


환락의 밤- 술과 여자

1868년 마취(Daniel March) 박사가 쓴 

감명깊은 책[성경의 밤 장면들] (Night Scenes in the Bible)에는 [벨사살의 밤 잔치]가 쓰여 있다. 

끝가지 버티던 인간의 교만이 마침내 꺾이고, 

인간의 황금 꿈이 진흙 속으로 빠져 버리는 순간이다. 

고대의 대제국들이 큰 잔치를 벌이는 것은 상례였다. 

고대 희랍의 역사가 테시아스(Ctesias)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샤의 왕은 매일 15,000명을 그의 식탁에서 먹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국제적인 결혼 축하연에는 

10,000의 하객(賀客)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한 때 앗시리아의 수도였던 님루드(Nimrud)의 고대 궁전 폐허에서 발굴된 비명에 의하면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가 궁전 낙성식을 할 때, 

열흘 간 69,574명을 먹이고 수용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페르샤왕 아하수에로가 180일 동안 엄청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있다(더1:3-9). 

벨사살의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은 귀인 일 천명이었다. 

이곳의 귀인(貴人)은 "라브르반"(rabreban)으로 

어떤 직책보다는 그들이 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분류되는 

지도급의 중요 인물(V.I.P.)인 것이다.


당대의 습관대로 먼저 식사가 끝나고, 술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특히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5:2) 라고 강조한 것은 

고대 동방의 궁중잔치 관습에 따라 왕이 일반과 분리된 테이블에 앉아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마시도록 되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이교 국가라해도 

여자들이 이런 공공연한 궁중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격식(格式)이 아니었다. 

게다가 왕의 부인으로 분류되는 후궁(後宮)들 외에도 처첩(妻妾)들까지 불러들인 것은 

예외적인 처사였기 때문에 그들의 참석이 거듭거듭 지적되고 있다(5:3, 23).


과거의 모든 나라와 사회와 개인의 불행과 종말을 가져 온 징후(徵候)인 

술과 여자가 예외 없이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노크한 것이다. 

이미 동방을 거침없이 제패한 페르샤의 고레스도 

속수무책이었던 난공불락의 바벨론 성이 바야흐로 술에 의하여 함락되고 있었다. 

벨사살은 그 저녁에 마신 술에서 깨어나기 전 그의 나라와 함께 자신의 최후를 맞은 것이다. 


꼭 같은 일이 216년 뒤에 같은 장소,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30세가 되기 전에 근동의 세계를 제패한 승승장구의 정복 왕 알렉산더가 

그의 생애의 절정에 바로 이 바벨론 성에서 

자신의 무패(無敗)의 전적(戰績)을 찬양(讚揚)하며 

승리를 만끽하면서 마구 마시며 흥청거리더니 

주연(酒宴)의 날들 후에 습지열(濕地熱)에 걸려 쓰러지고 만 것이다. 

난공불락의 인간 알렉산더도 술에 의하여 정복되고 말았다.


워터루의 (Waterloo)명장 웰링톤장군이 나폴레옹의 군대와 대전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다가 

진로에 포도주 단지(團地)가 있다는 정보에 접하자 

선발대를 보내 이를 완전히 훼파한 후에야 그의 군대를 통과하게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웰링톤 장군과 워터루에서의 마지막 결전을 앞둔 전 날 밤, 

나폴레옹의 네이(Ney)장군은 늦게까지 포도주를 기울이다가, 

다음 날 무력하게 망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프랑스 범죄자의 80퍼센트가 

음주에 기인되어 범죄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다.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결혼 피로연 자리에서 미국의 한 신부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신랑과 그의 새 가정을 위해 포도주로 축배(祝杯)를 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부는 이를 거절했지만 아버지가 더욱 야단스럽게 권하자, 

마침내 이 어린 신부는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포도주의 색깔과 거품은 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이혼한 남편과 마음이 상한 아내와 근심하는 어머니와 

그늘지고 슬픔에 잠긴 우리 가정을 봅니다.]


참으로 술은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깨뜨리고 사회를 금 가게 하며 나라를 파멸케 하는 것이다. 

[마셔 넘기는 술잔 속에 아내 눈물 고여 있고, 

씹어 삼키는 안주 속에 자식 원한 섞여 있다]는 금주 표어가 

음주하는 가장(家長)이 있는 집집마다 게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 . .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 . .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怪異)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26-35).


우상의 제전과 신성모독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 된 밤 잔치는 

마구 마신 술 기운이 돌면서 의식이 몽롱해진 벨사살이 

[예루살렘 전(殿)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 오]라고 명함으로써 

신성 모독과 우상의 제전(祭典)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주귀(酒鬼·alcohol demon)의 지배를 받게 되면, 

거짓으로 담대해지고 자제력이 약화되고 흐려지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벨사살에게서 연출되었는데 

그의 부절제(intemperance)는 부적절(impropriety)한 행동을 하게 했으며 

그 결과로 불경건 (impiety)한 행동을 서슴치 않아 

하나님을 모독하여 우상숭배(idolatry)를 자행하게 했다.


벨사살의 이러한 어리석음의 극치는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명(器皿)으로 감히 술을 마시는 만행(蠻行)으로 나타났다. 

일반 다른 종교의 성물(聖物)을 모독하는 것이 당대 동방의 습관이 아니었거든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의 거룩한 기명을 

가장 불경한 왕이 가장 거룩지 못한 자리에서 

가장 저속한 목적을 위해 손을 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곳의 성전 기명들은 세 차례 

즉 기원전 605년 (단 1:1, 2), 597년(왕하 24:12, 13), 

그리고 586년 예루살렘이 마지막 함락될 때 옮겨 온 것들이었다(왕하 25:13-17). 

에스라의 기록에 의하면, 그 숫자는 5,400개였다(라 1:7, 8, 11).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은 이미 예언된 바로서(렘 27:7, 51:39, 40, 57), 

벨사살 당시까지 거의 70년 가까이 마르둑의 복합 신전 어느 부속 건물, 

아마도 왕궁 박물관에 유다와 그들의 신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는 증거물로 전시되었던 것이었다.


취기가 돌면서 대담해진 왕은 

그의 조부 느브갓네살은 이것들을 가져 오는데 그쳤지만 

자신은 감히 이것들로 술을 마실만큼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멸할 수 있으며 담력이 있음을 과시하려 한 소치였다. 

그러한 증거로 그는 하나님 만을 섬기는데 쓰기 위해 만든 기명들에 술을 부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나서, 

이번에는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을 비롯하여 

나보니더스에 의해 바벨론성에 총집결된 각 지방의 잡다한 신들, 

곧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불경건한 태도였으며 

극도에 이른 신성모독 행위였다. 

이러한 고대 바벨론의 참람된 죄악이 

또 다시 현대 바벨론을 대표하는 큰 음녀(淫女)의 소행에서 다시 나타난다.



[. . .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 . . 

내가 보니. . .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보석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1-4).


하나님 성전의 금잔으로 우상을 경배하는 자리에서 포도주를 부어 마시는 이 행위는 

고의로 거룩한 것(聖)과 속된 것(俗)의 구분을 짓밟아 없애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다. 

그것이 고대 바벨론의 최대의 죄악이요, 

현대 바벨론을 파멸시킬 죄악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사 57:15, 43:15)에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성소(聖所)와(출 29:43),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이었다(출 20:9). 

그러므로 성소봉사에 쓰여지는 모든 물건은 거룩했으며(聖物)(출 29:37, 학 2:12).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사람(聖民)이었다(사 52:11, 고후 6:17).

이러한 근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인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하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고전 3:16, 17, 고후 6:16). 

음행과 우상숭배와 음주 흡연을 비롯한 모든 부절제가 

하나님의 전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에 대하여 같은 의미가 부여됨은 당연하다. 

안식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의 개념을 짓밟는 것은 

곧 바벨론의 죄악인 것이다.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不淨)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 22:26).


고대 바벨론의 경우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타락한 교회가 

국가 특히 미국의 힘을 빌어 고대의 모든 다신교 종교의 상징인 일요일을 드높이기 위해 

안식일을 무시하도록 법적규제를 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상징인 안식일을 짓밟게 하는 행위에서 

현대 바벨론이 벌여 놓은 금잔에 부은 음행의 포도주 잔치를 보게 된다(계 17:4, 18:3).


3. 바벨론의 멸망과 예언

[그 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5:30).


가.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예언

다니엘 이전의 이스라엘의 대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이 멸망하기 150여년 전에, 

그리고 예레미야는 70여년 전에 바벨론의 멸망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이사야의 예언

메대가 에워 쌀 것임. 사 21:2.

고레스 앞에 놋 문이 열림. 사 45:1.

고레스에게 막대한 보화가 주어짐. 사 45:3.

쾌락을 즐기다가 파멸될 것임. 사 21:4.

섬기던 우상들과 함께 망할 것임. 사 21:9.

쉽사리 함락될 것임. 사 45:2.



예레미야의 예언

바벨론의 우상을 심판하심. 렘 50:2, 51:47.

북방에서 오는 백성에 의한 멸망. 렘 50:3, 9, 41.

메대가 이르러 칠 것임. 렘 51:11, 28.

바벨론에 대해 기습을 준비하라. 렘 51:12..

함정을 깨닫지 못하는 바벨론. 렘 50:24.

싸우기에 무력해진 바벨론의 용사들. 렘 51:30.

보발군이 함락의 소식을 전함. 렘 51:31.

쾌락을 즐기고 술취하여 망함. 렘 51:39, 57.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에 의해 명령되었음. 렘 50:18, 25, 29, 31, 45, 51:1, 8, 24, 25.



나.멸망에 관한 예언의 성취

이토록 상세한 예언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과 고고학에 의해 묘사된 바벨론 성의 함락을 몇 가지 들어본다.


헤로도터스(Herodotus)의 기록

[(포위한 채) 시간은 경과되고, 그 성(바벨론)에 대한 진격을 시도할 수 없게 되자, 

고레스는 커다란 당혹 가운데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번민 중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제안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궁리한 것인지 모르는 한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강(유프라테스)이 성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 그의 군대를 배치시켰고, 

강이 성 저편으로 흘러 나가는 지점에도 군대를 배치하여 놓고, 

물이 건너기에 족할 만큼 얕아지자마자 

강바닥(河床)을 통해 진군해 들어가라고 명령을 해 놓았다. 

그런 다음에 그 자신은 그의 군대 중에 비전투 인원들을 데리고 철수하여 

전에 니토크리스(Nitocris)가 이 강을 위해 파 놓은 분지(盆地)를 향해 진군했는데, 

거기서 그는 니토크리스가 한 것과 똑 같이, 

수로(水路)를 통해 당시 늪지였던 그 파 놓은 분지로 강물이 흘러 들어가도록 

유프라테스를 돌려놓아서 본래의 강바닥으로 걸어 갈 수 있을 정도로 강물을 낮아지게 했다. 

이쯤 되자, 이 목적을 위해 바벨론의 강가에 머물러 있었던 페르샤 군사들은 

강물이 사람의 넓적다리 중간 쯤에 이를 만큼 낮아지자 강물로 들어섰으며, 

그리하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바벨론 사람들이 고레스가 하려고 한 일을 알았거나, 

그들의 위험을 알아차리기만 했어도, 

그들은 페르샤 군사들이 성안으로 들어와서 

그들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을 용납치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강 쪽으로 나 있는 가두(街頭) 성문들을 모두 굳게 잠갔을 것이며, 

강 양쪽을 따라 있는 성벽들에 올라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된 적들을 사로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페르샤 군사들이 졸지에 덮쳐서 그 도성을 점령하고 말았다. 

성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바벨론 성안에 있는 거주자들이 말한대로) 

그 성의 중앙부에 살던 사람들은 

그 성의 외각 부분이 함락되고 난지 오랜 후에도,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모르고서 

그들이 사로잡히게 되었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되기까지 

춤추고 흥청거리는 일을 계속하면서 잔치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벨론이 처음으로 함락 당한 때의 상황이다.]


크세노폰(Xenophon)

바벨론 사람들이 축제를 열어 

온 밤을 마시며 흥청거린다는 사실을 고레스가 알고나서,


[이 때를 기해 날이 어두워지자, 

그(고레스)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그와 함께 데리고 가서, 강과 연결된 도랑들을 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밤 동안 이 도랑들로 물이 빠져나가게 되자, 

그 성을 통과해 흐르던 강으로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얼마는 습격해 들어가 죽였으며, 

얼마는 도망치고 얼마는 소란을 피웠다. 

고브리아스(Gobryas)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마치 자신들도 흥청거리는 사람들처럼 그들과 합세하여 이 소란에 가담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빠른 길로 전진하여 궁전을 에워쌌다. 

군대 조직을 따라, 가다타스(Gadatas)와 고브리아스(Gobryas)를 따르던 군사들은 

궁전의 문들이 닫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수비병들 맞은 편에 배치되었던 군사들이, 수비병들을 덮쳤다. 

그들은 술을 마셨고, 주변에는 대단히 환한 불빛이 두르고 있었으므로, 

이들이 즉각적으로 반대되는 수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와 소란이 시작되자마자, 

궁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 혼란을 알아차렸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조사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달려 나와 

문들을 열어 제쳤다. 

이에 가다타스(Gadatas)와 함께 있던 병사들은 문들이 열리는 것을 보자마자, 

제치고 뛰어 들어가 밀어 닥쳤으며, 

그들 가운데서 타격을 가하며 왕에게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칼을 빼 들고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왕을 발견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가다타스와 고브리아스와 함께 있던 병사들은 왕을 제압했으며, 

그와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죽였다. 

날이 밝자 성채(城砦)들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도성이 함락되고 왕이 죽었음을 알게 되자 

그들도 성채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고레스의 원통 기념비(일부)

[나는 고레스, 세상의 왕, 위대한 왕, 권능의 왕, 바벨론의 왕이다. . . .

내가 바벨론에 개선 입성했을 때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는 나의 당당한 거처를 왕궁으로 잡았다. 

위대한 주, 마르둑(Marduk)은 내가 그를 경배하는 일에 매일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 

바벨론 거민들의 고상한 마음을 내게로 움직이게 하였다. 

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사들은 

바벨론으로 펑화롭게 행진해 들어갔다.]



이 지 화잇(E. G. White)

[거의 일세기 전에 영감의 기록은 

왕과 모사들이 서로 다투어 하나님을 모독할 그 '향락의 밤'이 

홀연히 공포와 멸망의 한 때로 돌변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였다. 

바야흐로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 태어나기 여러 해 전에 

성경 예언에 묘사된 것과 꼭 같은 사건들이 차례로 신속하게 잇달아 일어났다. 

아직도 연회장에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사람들에 위하여 둘러 싸여 있는 동안, 

왕은 한 사자로부터 그가 그토록 안전하게 여겼던 그의 계략들을 대항한 원수에 의하여 

"그 성읍이. . . 함락되었으며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 . 

군사들이 두려워하더이다"(렘 51:31, 32)라는 보고를 받았다. 

벨사살과 그 귀인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기명들을 가지고 마시며 

은과 금으로 만든 저희 신들을 찬양하고 있는 동안, 

유프라데스강의 수로(水路)를 돌려놓은 메대와 페르샤의 군사들이 

아무 수비도 하지 않고 있는 도시의 심장부를 뚫고 행진해 오고 있었다. 

이제 고레스의 군사들이 그 궁전의 성벽 아래 서 있었으며, 

적의 군사들은 '황충 같이'(렘 51:14) 그 성읍을 채웠으며, 

그들이 부르짖는 승리의 함성은 

깜짝 놀란 술주정군들의 절망의 부르짖음보다 더 크게 들렸다](선지자와 왕, 505, 506).



4.교훈과 의의 

가.바벨론 멸망의 원인 

 영원히 망할 것 같지 않은 철통 같던 바벨론이 왜 그토록 허무하게 망해야 했는가. 

성경만이 바벨론 멸망의 불가사의(不可思議)에 해답을 줄 수 있다. 

아래에 성경의 빛 가운데 드러난 몇 가지 원인을 들어본다. 

무엇보다도 교만(驕慢)이 멸망의 제일 원인이었다(사 47:5, 7, 8, 10, 렘 50:31). 

바벨론을 다스린 정신은 바로 루스벨이 하나님을 대적하려든 교만이었다(사14:12-14, 겔 28:13-18).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嫌惡)하시는 죄악은 교만으로, 

그것은 언제나 패망의 선봉이 되어왔다(잠 16:18, 벧전 5:5). 

그런데 이 교만은 마지막 때의 특별한 징조로 꼽히고 있다(딤후 3:2). 

그토록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파멸의 선봉이 되는 교만이 자신에게는 없는가. 

신성모독(神聖冒瀆)은 바벨론의 멸망을 재촉하여 죄악의 잔을 쉽사리 채우게 한 가증한 죄악이었다. 

셋째 계명에서 명시된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인들과 어울려 우상을 숭배하며 술마시기 위해 성전의 기명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기에 족했다(단 5:2, 3). 

 우상숭배(偶像崇拜)는 바벨론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렇게 타락시킨 요인이었다(단 5:4). 

바벨론은 우상 숭배의 종주국으로 

선지자들에 의해 신랄한 경고를 받아 왔었다(사 45:16, 렘 50:38, 51:17, 47). 

로마 카톨릭을 비롯하여, 지금도 우상 숭배가 기초가 된 

종교가 지배적인 나라들과 사회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음은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부도덕(不道德)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다(단 5:1,2). 

술과 여자와 우상이 한 데 어우러진 부도덕은 노아의 때의 죄악이요,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당한 이유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때의 징조이기도 하다(사 47:8, 눅 17:26-29).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강포(强暴)와 혹독(酷毒)은 

적절한 징계를 위하여 그분의 백성을 

바벨론에 맡기신 하나님의 본 뜻을 거스리는 바가 되었다(사 47:6, 렘 50:11, 17, 18). 

그분의 백성을 포로로 보내심으로 바벨론을 구원하시려 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거절한 결과로 종말을 맞게 되었다(렘 51:9). 

하나님께서는 2장의 신상을 통하여, 

3장의 풀무불 사건을 통하여, 

4장의 느브갓네살의 경험을 통하여 

세 차례나 참 하나님과 참 신앙에 대한 충분한 기별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함으로써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렘 51:24, 단 5:22, 23). 


이상의 몇 가지 현상이 고대의 대제국 바벨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졸지에 파멸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 때의 바벨론과 비교해 볼 때 조금이라도 나은 데가 있는가. 

바벨론의 박사들과 모사(謀士)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녔던 태도보다 

조금도 나은 데가 없는 불신적이고 오만불손(傲慢不遜)한 현대의 석학들과 지성인들, 

당시의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처럼 

사람의 영혼을 오도(誤導)하는 퇴폐적이고 우상 숭배적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경시하고 안식일을 유린하는 오늘날의 종교계, 

음란(淫亂)과 패륜(悖倫)과 부절제가 난무하는 사회상등 모든 것이 

현대 바벨론의 파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나.바벨론 멸망의 구속사적 의의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그분의 백성은 70년간 포로될 것과 예루살렘이 황폐하여질 것에 대하여 

훨씬 이전에 예고하셨다(렘 25:11, 대하 36:21). 

이일은 느브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605년부터 시작되어 

그로부터 70년 후인 536년 쯤에는 마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70년 기간이 끝나 포로의 마감 연대가 가까와도 

바벨론은 유대인들을 석방시킬 의향도 없었고, 

아무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공공연한 적대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기원전 551년에 해당하는 벨사살 3년에,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의 일정표가 되는 2300주야에 관한 계시를 다니엘을 통해 공개하셨는데, 

이 기간의 시작이 예루살렘의 중건과 포로 석방에 직결되어 있음이 분명히 하셨으나(단 8:1, 14),

바벨론은 백성을 포로에서 풀어 줄 의향이 전혀 없었고, 

아무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오히려 하나님을 적대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포로들이 속히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성소 봉사를 회복함으로써 

이러한 상징과 예표(豫表)의 실상(實像)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수가 있으셨다(학 2:6, 7). 

구속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을 저지(沮止)하기 위해 

사단은 바벨론을 장악하여 유다의 포로들을 석방시키지 못하도록 안간 힘을 썼다.(4.2.1.6.) 

그러나 하나님의 명예와 인류의 구원이 걸린 구속의 경륜은 

아무 세력이나 국가에 의해서도 방해받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계획이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는 국가나 세력은 하나님과 맞서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70년의 포로기간이 2년 남짓한 기원전 539년, 

끝까지 버팀으로써 죄악과 불순종의 잔을 채운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협력할 새로운 세력인 

페르샤의 고레스를 권좌에 앉히셨다(사41:2-4, 25, 45:1-7). 

 

이와 같이 바벨론의 멸망은 구속의 경륜의 진전을 위해 필수적이었으며 

여기에 진정한 역사철학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단 4:25). 

이리하여 잠시 과도적(過渡的)으로 메대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대신했다가(단 6장), 

곧 이어 페르샤의 국부(國父) 고레스가 즉위하여 

그의 통치 원년 즉 기원전 537년에 석방령을 내리고 

다음 해인 536년부터 포로되었던 백성들이 돌아감으로써 

70년 포로기간은 정확히 끝나고 

구속의 경륜은 계획대로 진전(進展)될 수 있었다

(다리오의 신원에 대해서는 6장에서, 

 2300주야 기간에 관한 의의와 배경은 8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다.인생과 역사의 무상(無常)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은 
그토록 불경건하고 교만했던 왕 벨사살의 마지막 밤이 되었으며, 
동시에 고대 세계의 우상 숭배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영원한 대제국을 구가(謳歌)하던 바벨론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벨사살을 비롯하여 아무도 그 마지막 밤이 
그렇게 갑자기 그리고 속히 이르러 올 줄을 도무지 예기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을 선언하신 개인과 나라를 파멸에서 지켜 줄 
아무 높은 성벽도, 군사력도 있을 수가 없다. 
[벨(Bel :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이여, 
왕을 보호하소서(Bel, protect the prince)]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벨사살도 
그의 신으로부터 자신의 파멸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불신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비웃으려 해도 
그것은 벨사살이 그렇게 하다가 
속절없이 [그 날 밤]을 당한 것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다. 

개인에게는 틀림없이 마지막 밤이 있다.
그 밤이 언제일는지 모르는 것 뿐이다. 
하나님과 영원한 사물을 무시하고 자신과 현실만을 위해 살다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눅 12:20)하신 선고를 듣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자신의 마지막 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평안히, 그리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생애를 산 사람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자신의 구주를 배반한 채 
성만찬의 빵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일러라](요 13:30)고 기록된 
유다의 마지막 밤을 맞는 사람은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유 13). 

자신의 사형 통지를 받고나서, 한 잠 깊이 자고 깨어난 후에 순교를 당하였다. 
영국의 순교자 리들레이(Ridley)는 그가 순교하기 전 날 밤에 동생이 찾아와서 위로하며, 
그 날 밤만이라도 함께 지내자고 할 때에 이를 거절하면서,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고 했다. 
보헤미아의 토기장이 한 사람은 화형장에 나가 순교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결혼할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가진다'고 하였다.] 

 나의 마지막 밤을, 세상의 마지막 밤을 나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0-12).

[그 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한 것 외에도 

대제국 바벨론도 영원히 함께 죽었다. 

성경과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 볼 때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일어났었는가. 

고대의 히타이트 제국, 이집트 왕조, 앗시리아 제국, 신바빌로니아, 페르샤, 메대 제국들, 

그리이스와 로마 제국들이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났다가 신속히 역사의 지평선(地平線)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등이 일어나 

세계 역사의 주름을 잡으며 역사의 지평선에 신속히 등장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이 모든 나라들도 이전의 나라들처럼 

다시 하나님이 금그어 놓으신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주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시62:11), 

하나님만이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단 14:17). 

하나님께 속한 주권을 잠시 차지한 인간들이 

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만과 불경에 빠져 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바벨론을 앞장서서 쌓았던 니므롯을 비롯하여, 

앗시리아의 산헤립, 신바빌로니아의 느브갓네살, 

페르샤의 고레스와 다리우스 대제, 크세르크스(Xerxes),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로마의 황제들, 헤아릴 수 없는 기라성(綺羅星)들이 

역사의 대행진을 주도해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우리를 묻어주기 위해 태어나듯, 

그들의 아들과 딸들도 그들을 묻어 주기 위해 태어났음을 생각할 때, 

인간과 역사의 무상함을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인생의 무상을 우리는 

[그 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당하였고 메대 왕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

라고 기록된 한 구절의 말씀(5:31)에서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인간과 역사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이 얼마나 확실한가(시 90:1-8, 13-17). 




해 넘어 가고

(찬미가 41장) Henry Elyte


1. 해 넘어 가고 어둠 덮이니 구주여 나와 함께 곕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내도움 되신 주여 곕소서



2.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세상 영광 빨리 쇠하며

이 천지만물 모두 변하나 변함이 없는 주여 곕소서



3. 주홀로 마귀 제어하시니 때마다 계심 요긴합니다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맑거나 흐린 때도 곕소서



4.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원수의 세력 두렴 없도다

사망의 쏨이 어디 있느뇨 내 승리되신 주여 곕소서

 

출처 블로그 > 새하늘
원본 http://blog.naver.com/im1155/40015828591



성경 구약에 나타난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이사야 21장] 


                                  이사야 제 21장

바벨론 멸망에 관한 묵시

1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 '해변광야'는 바벧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아라비아 사막의 남단 대평원에 위치한 초기의 바벧론은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댐을 쌓기 전까지는 , 

아비데누스(Abydenus)가 '마치 바다 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범람하는 유브라데 강물에 자주 침수되었다(Alexander). 

그러나 '해변 광야'란 상징적인 이름에는 물에 잠겨 있는 바벧론의 지형 조건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하여 선지자가 미리 내다본 바, 

바벧론의 궁극적인 운명의 불길한 전조까지 내포되어 있다(14:23;렘 51:13, Delitzsch). 

그것이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된다.


적병이...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 왔도다. 

바벧론에 임할 재난은 광대한 아바리아 사막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된다. 

이 태풍의 무서움에 대하여는 

1:19;37:9; 렘 4:11;13:24; 호 13:15; 슥 9:14 등을 참조하라.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오리라고 예언된 적병은 

다음절에 나오는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 


=====21:2

혹독한 묵시 - 이는 '묵시'(* ,하주트)의 내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 ,카솨)는 뜻이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 옛 주석가들은 본문을 포악한 바벧론 군주들에 대한 묘사로 본다. 

이에 따르면, 바벧론이 왜 멸망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선지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벧론의 침략자들에게 적용시킨다. 

두 가지가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나 후자를 취한다(Alexander).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벧론에 대한 공격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엘람과 메대에게 주어졌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엘람'은 히브리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면(창 14:1),

'바사'는 그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벧론을 정복하였다. 

'메대'에 대하여는 13;17 주석을 참조하라. 

이사야 선지자 당대에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의 연합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묵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이러한 혜안(蕙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감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21:3,4

전절의 '혹독한 묵시'는 선지자에게 두 가지 신체적인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야기시켰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환호한 데 비하면, 

본문에 묘사된 선지자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 카이저(Kaiser)는, 

이 같은 표현은 선지자들이 자기 계시의 엄중함을 부가시키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기교라교 설명한다(15:5;16:9, 11;겔 21:6, 7;단 10:2, 3, Oswalt). 

반면에 칼빈(Calvin)은 자기가 본 것을 백성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자신을 바론과 동일시하여 마치 배우처럼 

자신의 입을 통해 바론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느 쪽을 취하든지, 묵시의 혹독함이 간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 본문의 히브리어 '할할라'(* )는 '춤추다', '꼬이다'는 뜻의 '훌'(* )에서 파생된 명사로, 

몸부림치는 고통을 의미한다(겔 30:4,9). 

선지자는 이 고통을 '임산한 여인의 고통'(* ,치림)으로 비견한다(13:8).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 '희망의 서광'(네쉐프 히쉐키,*)은 직역하면 '나의 기쁨의 저녁'이니,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하리라고 기대되었던 저녁 시간조차 두려움의 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먹고 마시도다 

- 포위 공격을 당하리라고 선언된(2절) 바론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 묘사된 상황은 바벧론의 대연회 장면이다.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시점에서) 그들은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신다. 

루짜토(Luzzatto)는 본절을 대립적으로 이해한다 : '그들은 식탁을 베푼다, 파수꾼을 세워야 함에도;그들은 먹고 마신다,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발라야 함에도,' '파숫꾼을 세우고'(* ,차포하차피트)는 언뜻 봐서는 바벧론인들의 허랑방탕한 연회 모습을 기록하는 있는 본문에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융단을 깔고'(sperad the carpets)로 번역한다(Hitzig,Knobel, Leupold, Gray, Alexander). 

그러나 '차파'(* )란 '감시하다'는 뜻이며,

더욱이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파수꾼을 배치하는 최소한의 예방 조치도 없이 연회를 베푼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본래대로 해석함이 옳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 '그들은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도 

모든 준비를 다했다는 듯이 안심하고서 아무 걱정없이 연회에 빠져든다.'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름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앞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몇 가지 선행 조처들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시간까지도 방패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저들의 태만함을 증명해주는것이다. 

본문의 전체적인 상황은 바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 5장과 흡사하다.

론의 마지막 왕 벧사살은 귀인 일천 명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며 놀다가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당하였다. 


=====21:6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 다가오는 메대-바사 군대와 바론의 멸망이 선지자 자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파숫군'이라는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데, 이 파수꾼은 선지자에 의해서 객관화된 또 다른 그의 모습이다. 

파수꾼의 표상은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21: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약대 떼 

- 파수꾼이 주목해서 봐야 할 내용이 소개된다. 

기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다. 

그 외 나귀 떼와 약대 떼는 군수품과 식량 운반 등에 활용된 듯하다. 

그러나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고레스가 리다아인들(Lydians)을 물리칠 때는 나귀 떼를 이용했다고 한다(Gray). 

이로 보건대, 나귀떼와 약대 떼는 운송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전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지어 행군했음을 알려준다(Alexander). 


=====21:8

파숫군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외친다-사자-파수대 위에서'이다. 

대분분의 주석가들은 '사자'(* , 아르예)가 파수꾼의 보고 내용이 아니라 

보고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병행구는 

계 10:3의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에서 발견된다. 

수꾼의 보고는 먼저 자신이 성실과 끈기를 다하여 임무에 임했다는 것(8b절)과 

바벧론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9절)에 대한 것이다. 


=====21:9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 6절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사태의 추이가 

마침내 '바론이 함락되었다'는 파수꾼의 환호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주도하는 메대-바사 군대에 의해 바론이 멸망할 것을 선언하는 말인데, 

영적인 의미에서 그 참된 성취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론이여'(계 18:2)라고 외치는 

하늘천사들의 합창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바론과 함께 그 우상들의 몰락이 언급된 것은 

비록 이일이 직접적으로는 고레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이다. 


=====21:10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 바론에 대한 경고의 마지막에서 예언의 목적이 제시된다. 

그것은 바론에 의해 예속되어 고달픔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것이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전하는 큰 기쁨의 소식은 바론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나의 마당의 곡식'(벤-가르니, * - )은 문자적으로는 '나의 마당의 아들'인데, 

'아들'은 어떤 물건에 소속됨(관련성)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Alexander). 

이 말은 '나의 타작한 것'과 동의어다. 

마치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론이라는 징계 수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타작하였으나 

그 괴로움의 시간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렘 51:33;미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