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로 부흥에 브레이크 … ‘목회는 하나님의 것’ 깨우쳐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2>
입력 : 2020-06-16 00:06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1997년 5월 경기도 성남 구미동 예배당 시절 출석 성도 2000명을 목표로 한 ‘한가족 전도대축제’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96년 11월 경기도 성남 구미동에서 입당예배를 드린 후 얼마 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다. 기업체가 부도나고 교회마저 경매에 들어가는 곳들이 많았다. 우리 교회 역시 건축 부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건축에 수고하고 희생했던 성도마저도 실직을 당하고 사업이 부도를 맞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다고 갑자기 성도들 앞에서 교회 부채가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가니 헌금을 하자고 공개적으로 요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건축비를 다 받지 못한 건설회사는 돈을 달라고 으름장을 놨다. 때로는 예배 시간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행패까지 부렸다. 그러자 성도 중에 점점 안 보이는 얼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회를 떠나려는 교인의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IMF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브레이크였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교회 성장을 이끌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막고 계셨다.
그 이유는 교회 부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으며,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셨고, 교회의 외적 부흥보다 교회 본질을 붙잡게 하셨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교만과 자기 자랑이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무엇인가 성취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 없이 성공할 수 있고,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여 스스로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목회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소 목사, 네가 나 없이 잘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넌 나와 함께할 때 잘되어야 한다. 교회가 아무리 부흥하고 세계적인 교회가 된다 할지라도 나와 상관없이 목회에서 성공자가 된다면 그것은 저주 중의 저주다. 그러므로 더 겸손하여라. 언제나 엎드려 기도하고 나와 의논하며 나의 은혜와 힘으로만 살아가거라. 그리고 교회 부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IMF 위기 속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목회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목회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마음껏 일하고 활동하시게 하는 것이 목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 후 강단에서 공개적으로 생명나무 신앙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지금부터 강단에서 기도하며 잠을 자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어렵고 힘들 때 오히려 생명나무를 붙잡고 나아갑시다. 어렵고 힘들수록 오히려 우리의 진실한 신앙의 모습을 주님 앞에 보여드릴 기회입니다. 지금은 더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더 감동하게 해봅시다. 더 역설적 생명나무를 붙잡읍시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 전도합시다. 오히려 더 자원하여 헌금합시다. 기왕에 어려운 이때, 하나님께 더 희생해봅시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날마다 눈물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찬양을 불렀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성도들과 많이 울었다. 주일 낮에도, 수요일에도, 금요 철야기도 때도, 새벽에도, 구역장 기도회 때도…. 모든 모임마다 모이기만 하면 이 찬양을 불렀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온 성도가 쏟아 흘린 눈물은 예배당을 적시고도 남을 것이다.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전도축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찬송을 부르면서 생명나무 신앙을 붙잡기 시작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어려운 가운데도 성도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도하기 시작했다. IMF로 퇴직당한 성도들이 퇴직금까지 하나님께 바치며 눈물겨운 헌신을 했다.
그리고 성도들의 눈물겨운 전도와 헌신은 놀라운 축복과 기적의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퇴직금을 드리고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놀랍게 일어났고, 불치병에 걸린 성도가 고침을 받았다. 직장을 잃었던 성도들은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며 승진을 했다. 국내 유명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분도 해외의 더 좋은 기업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그 당시 새에덴의 전도와 헌신의 역설적 행진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불길이요, 폭풍과 같았다. 성도들의 밤낮 없는 전도로 새에덴은 급속한 부흥의 행진을 이어가게 되었고 피와 땀과 눈물이 스민 성도들의 헌신으로 98년 12월 교회의 모든 부채를 다 갚고 마침내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IMF 때 헌당식을 한 교회는 전국적으로 새에덴교회밖에 없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기적의 역사를 경험했다. 모든 것이 생명나무를 붙잡고 전도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기뻐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일하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더 놀랍게 펼쳐갈 생명나무의 찬란한 축복과 기적의 서막이었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생명나무는 역전의 은혜와 패자 부활전의 축복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거룩한 역전의 은혜, 패자부활전의 역사가 일어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 얼마나 은혜가 넘치고 형통한 삶을 살았는가. 생명나무를 선택했더라면 영원히 형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저주와 멸망, 영원한 패배의 길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라도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속으로 숨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께 찾아가 회개하고 당장 생명나무를 따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역전의 은혜와 패자부활전의 은총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이지 인간의 행위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첫 언약이라는 논리 위에서 신학적 상상을 해 볼 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라도 서로 원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당장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했더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역전의 역사와 패자부활전의 은혜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예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자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자에게 자비하심을 보여주시고 역전의 은혜와 패자부활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오늘날도 우리가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역전의 은혜와 패자부활전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다. 물론 생명나무를 선택할 때 기적과 형통의 길이 열린다. 그런데 이 역전의 은혜는 그것보다 더 훨씬 적극적인 은혜요, 더 차원 높은 축복이다.
기적과 형통의 역사는 일상적 삶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역전의 은혜와 패자부활전의 역사는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오는 축복이다. 상황이 다 끝나고 망해 버렸다고 판단될 때에 기가 막히게 임하는 은혜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전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먼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역전의 은혜를 주셨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파멸의 길을 자초했을 때 그들이 생명나무를 못 따먹게 그룹 천사들을 시켜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그러니 인간에겐 전혀 소망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완전하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나무로 보여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역전의 은혜를 주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 안에는 인간의 구원과 생명, 역전의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요 1:12, 골 1:13~14)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정말 망하고 다 끝나버렸다고 할 때 그때라도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잡으면 역전의 역사와 패자부활전의 영광이 나타난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서에서 소원이 이루어지고 역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생명나무라고 말씀한다.(잠 11:30, 13:12)
다윗도 사울에게 쫓기다가 십 황무지에 있는 하길라 산에 숨어있었다. 그런데 십 사람들의 밀고로 다윗은 완전히 독 안의 든 쥐가 되어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죽음과 같은 절망 속에서 낙헌제를 드리며 감사했다.(시 54:6)
낙헌제는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해서 자원하여 드리는 헌신의 제사를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특별 감사헌금, 특별 소원헌금과 같다. 그랬을 때 사울의 군사들이 물러나고 다윗이 목숨을 건지는 패자부활전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 역시 목회를 하면서 아슬아슬한 절벽의 위기를 겪을 때가 있었다. 벼랑 끝자리에서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아니 실제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때 한탄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생명나무를 붙잡았을 때 하나님께서 날개를 달아 주시고 날아가게 하셨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항상 생명나무 신앙을 가르친다. 그랬을 때 성도들도 패자부활전의 주인공이 되고 역전 드라마의 주역이 되고 있다.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2706&code=231112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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