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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19>-<20> / 목회 초기 야생마·부흥회식 설교 “시끄럽다” 외면

영국신사77 2020. 6. 12. 11:30

“가락동 성도 어찌 버리나” 분당으로 교회 이전 고민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19>

 

입력 : 2020-05-26 00:05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1995년 경기도 성남 분당구 정자동 예배당에서 부활절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지 4년째 됐을 때다. 그간에 예배당도 76㎡(23평)에서 396㎡(120평)로 옮겼고 뜨거운 총동원 전도 행사도 두 번이나 치렀다. 성도 수도 300여명으로 부흥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건축위원회가 구성되고 인근의 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근에 마땅한 땅이 없었다. 특히 가락동 지역은 상업지역이었기에 땅값이 너무 비쌌다. 겨우 100평, 150평밖에 살 수 없었다.

그즈음 인근에서 우리 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개척한 작은 교회 목회자가 경기도 성남 분당신도시에 가서 새롭게 시작했는데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가락동에서 가까운 분당신도시로 이전하자고 제안했다. 분당 시범단지 입주가 끝나고 양지마을 입주를 앞둔 때였다.

건축위원들과 함께 분당 지역을 답사해보고 몇몇 교회도 탐방해봤다. 교회 부흥에 대한 확신이 오고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이라도 이곳에 오면 단숨에 1000명, 2000명을 이룰 것 같았다.

교회가 많지 않은 데다가 이제 막 구름 떼같이 사방에서 사람들이 입주하는 신도시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었다. 이곳에 와서 내 특기를 살려 새에덴교회의 바람을 불게 하면 성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는 그림이 보였다.

교회에 돌아와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설득했다. 모두가 이 일에 전적인 희생과 헌신을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분당 양지마을의 G상가 5층을 계약하기로 했다.

문제는 집을 가진 성도들이었다. 전세로 사는 분들은 분당으로 가는 데 찬성했는데, 가락동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반대했다. “왜 꼭 분당으로 가야 합니까. 100평이든 150평이든 이곳에 땅을 사서 지으면 되지, 왜 가려고 합니까.”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 심각하게 기도했다. 기도원에 들어가 3일을 금식하며 하나님 뜻을 여쭸다. 목회 평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만약에 교회 이전에 반대하는 성도들을 버리고 분당으로 훌쩍 떠나버린다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나를 뭐라고 평하겠는가.

기도원에 가서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분당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사람이라도 이 일로 상처를 받을까 염려가 됐다. 개척 초창기 강단에서 기도하던 중, 주께서 주신 말씀도 생각났다. 많은 사람을 먼저 원하지 말고 내가 보내준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교회 성장이 좀 더디더라도 먼저 하나님이 맡겨주신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단했다.

오직 가락동에서 보내주신 성도들을 죽도록 사랑하며 목양 일념으로 목회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분당으로 이사를 간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갈 일이 있어 그 전에 계약하기로 했던 G상가를 가봤다. 이미 그곳에 다른 교회가 들어왔는데 개척 1년 만에 800명이 모이고 있었다. 짧은 기간에 부흥한 모습을 보니 충격이었다. 가슴을 치며 울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안 교인들이 들고 나섰다. 특히 분당행을 반대했던 분들이 찾아와 분당으로 가자고 졸랐다. “목사님, 이제는 우리 교회가 분당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집을 팔고 분당으로 이사를 해도 되고 승용차가 있으니까 집을 팔지 않아도 분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목사님은 분당에 가서 더 큰 목회를 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헌신하겠다”고 나섰다. 그다음 주부터 분당 땅을 사거나 상가를 분양받자며 건축헌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신년 축복성회에서 찬양을 하는 모습.

 


그즈음에 종교부지가 하나 나왔다. 원주민 교회에서 소유한 것인데 도저히 건축할 능력이 되지 못해 타 교회에 매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땅을 계약했다. 분당에 제일 늦게 늦깎이로 가서 이삭줍기 목회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분당으로 이전하면서 단 한 사람도 실족하게 하지 않았다. 부득이 오지 못하는 성도도 눈물로 축복해 줬다. 물론 교인 대다수는 분당으로 왔다.

나는 원래 성격상 뭐든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그때 기질대로 밀어붙였다면 분명히 성도들에게 아픈 상처를 주고 교회에도 회오리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고집과 생각을 누르고 인내하면서 사랑과 섬김의 꽃씨를 뿌리니 그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도하고 헌신하며 분당행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정말 중요한 목회원리를 깨달았다. 급할 때일수록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회는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일, 하나님이 맡기신 한 영혼, 한 영혼을 생명처럼 여기며 돌보는 것이다. 그렇게 분열과 다툼을 하지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결정한 분당행은 새에덴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서막이었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선악과 따먹은 아담과 하와, 흑암의 노예로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생명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영혼이 순결하며 투명한 영성을 소유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얼마나 영혼이 순결하며 투명한 영성을 소유했는가. 그 영혼의 생명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속했고 하나님만 의지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이 그런 순결했던 하와를 유혹해 죄로 부정하고 오염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고후 11:3)

그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굉장히 영민하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영민하고 총명했느냐면 아담이 그 많은 동물과 산천초목의 이름을 다 지었다.(창 2:19~20)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담과 하와의 영혼이 순결했으며 투명한 영성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눈만 감아도 하나님이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교통했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고 생명나무를 선택했더라면 그는 순결 중의 순결, 지혜 중의 지혜, 총명 중의 총명을 계속 누렸을 것이다. 영적 투명함, 곧 영원히 투명한 영성을 소유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어 버렸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채 어리석음의 종이 됐고 영혼이 부패하고 오염돼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스스로 두렵고 떨려 동산나무 아래 숨어 버렸다. 스스로 심령이 캄캄하고 흑암의 노예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가졌던 그 지혜와 총명함을 다 빼앗겨 버리고 사망과 저주와 온갖 어리석음의 노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의 유혹을 받는 순간부터 영혼의 순결함과 영성의 투명함이 조금씩 흐려졌다고 할 수 있다. 사탄의 유혹을 받으면서 선악과를 다시 보니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창 3:6)

여기서 지혜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는 정반대다. 이건 전적으로 사탄이 주는 선악의 지혜를 말한다. 유혹을 받는 순간 하와는 이미 정신이 흐려지고 판단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그것을 따 먹고 하와는 온갖 저주와 어리석음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먼저 영혼이 순결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명한 영성이 생긴다. 이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고 복잡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독대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을 먼저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명을 먼저 선택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영혼이 순수해지고 내면의 영성이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이 지혜와 판단의 눈으로 보면 어떤 길이 망하고 어떤 길이 형통한 길인지 다 보인다. 이때의 판단력과 지혜로 결단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고 형통하게 된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지혜가 생명나무이고 생명나무가 곧 지혜라고 말씀한다. 우리 삶 속에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8)

나는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선악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과 깊은 독대의 관계를 갖는 생명나무를 선택하라고 강조한다. 먼저 영혼이 순결하고 그 순결성 안에서 깊은 지혜와 영감을 얻도록 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하나님의 손길을 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어찌 원망과 불평, 불통과 패배의 노예로 살아가겠는가.

교회는 순결한 영혼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 영혼이 오염되고 마음이 더러워지면 말은 옳은 것 같지만, 그 말에는 남을 죽이는 독성이 있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해악적 파동이 있다. 새에덴교회는 오늘도 성도들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기 위해, 아니 순결한 교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생명나무 목회를 한다.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9562&code=23111211&cp=nv

 

목회 초기 야생마·부흥회식 설교 “시끄럽다” 외면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0>

 

입력 : 2020-06-02 00:06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왼쪽 두 번째)가 1994년 12월 경기도 성남 정자동 지하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서울 가락동 시대를 마감하고 1994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으로 넘어와 정자동 건물 지하 456㎡(138평)를 계약하고 교회를 시작했다. 처음엔 3층을 계약했으나 2층과 4층의 상가임차인들이 교회 입주를 반대하며 지하로 내려갈 것을 호소했다.

할 수 없이 상가 지하로 옮겨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지하에는 기둥이 4개나 박혀 있는 데다 유리창도 없었다. 화장실이 지하실 안에 있어 냄새도 났다. 분당신도시 사람들이 오자마자 나갈 형국이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가 8차선의 큰길 건너편에 있어 바다 가운데 있는 섬과 같았다. 그래도 계약할 마땅할 상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건물 지하를 계약했다. 인테리어는 엄두도 못 내고 얼마 동안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의자와 음향시설도 가락동 것을 그대로 가져다 설치했다. 교회 겉모습만 보면, 신도시인들이 오기 힘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자동에서 교회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왜 분당에 늦게 오게 하셨는지 알게 됐다. 신도시 목회는 이미지와 전략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도 거친 야생마나 야수처럼 부흥회식 목회를 했다.

가락동 성도들은 지방에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가락동으로 와서 밤을 새워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많았다. 한이 많고 거친 삶을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분당에도 실패를 경험하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있지만, 신도시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분당에 와서도 초기에는 외침형, 광야형, 야수형으로 폭격기처럼 설교를 쏟아부었다. 신도시 현대인들은 ‘설교가 너무 시끄럽고 소리가 커서 귀가 찢어지겠다’면서 왔다가 가버리곤 했다. 주일설교보다 특별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에 더 집중한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분당시대 초기에 복음의 대중성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은혜를 유별나게 사모하고 영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이삭줍기처럼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야성의 영성에 코드가 맞는 성도들이 너무 열심히 전도하니 감동을 받은 낙심자, ‘교회 안 나가’ 신자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그때 내 평생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목회의 소중한 자산을 깨닫고 얻었다. 신도시라고 하는 특수한 콘텍스트에서 복음을 대중적으로 어떻게 잘 마케팅하고 교회 이미지와 브랜드를 높일 것인가를 배운 것이다.

또 하나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은 가락동에서 따라온 성도들과 함께 분당 초창기에 전도되고 등록된 성도들이 대부분 교회 중직자가 된 것이다. 그분들이 오늘의 새에덴교회가 공적 사역을 하는 데 절대적인 지지를 해주고 있다.

분당에 처음 왔을 때 전도특공대를 조직해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 모른다. 밤 11시가 넘도록 전도하고 다녔다. 그러니까 다른 교회 교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새에덴교회는 무슨 전도를 이렇게 극성맞게 합니까. 담임목사가 하라고 시킵니까. 우리 교회는 이렇게 전도하지 않아도 장로도 오고 안수집사도 오고 권사도 오는데 말이죠.”

그러자 전도하던 새에덴교회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러신가요. 우리 교회는 분당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전도를 안 하면 스스로 찾아오지 않아요. 물론 전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오는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설사 그때가 오더라도 우리는 지금처럼 전도할 거예요.”

전도가 끝나고 11시가 넘어서 배가 출출해도 갈만한 식당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24시간 하는 식당이 없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집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기도해줬다.

“하나님, 밤늦도록 전도하느라 우리의 배는 굶주렸지만, 영혼은 부요하게 해 주시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전도의 사명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나도 울고 성도들도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그때 밤늦게 집에 돌아가서 라면 먹고 찐 살이 아직도 안 빠지고 있다고 말이다.

 

소강석 목사가 목회비전을 담아 분당지역에 배포한 ‘찬란한 약속’.

 


분당시대에 새에덴교회를 알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도구가 있었다. ‘찬란한 약속’이라는 소책자였다. 그때는 컴퓨터도 할 줄 몰라서 2박 3일 동안 직접 손으로 다 써서 집필했다. 나의 소명의 간증과 수기 겸 미래에 뻗어 나갈 새에덴교회의 비전을 그려 넣었다. 이 책자를 1만부 이상 인쇄해 분당 지역에 배포했다.

소책자를 받아든 성도들은 가슴이 뛰었고, 미래에 새에덴교회를 통해 부어주실 하나님의 찬란한 약속을 생각하며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늦추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훈련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이제는 신도시 현대인의 심성에 맞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폭격기의 근성, 야생마적이고 표범 같은 기질이 남아 있지만, 많이 억누르고 절제해 다듬어진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새에덴교회는 분당에 오자마자 복음의 불바람을 일으켰다. 급성장의 기록을 세우며 견고하고 탄탄한 교회로 서게 됐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선악과 선택하면 ‘선악의 노예’로 살아간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영혼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가득 얻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를 선택했다면 말할 것도 없이 영생의 삶, 완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오늘날도 선악과를 선택하면 선악의 노예로 살아가고 선악의 열매만 풍성히 맺을 뿐이다. 다시 말해 육체의 열매만 가득 맺는다. 언제나 선악의 지식만을 추구하고 선악의 노예로 살아가면 당연히 육체의 사람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갈 5:19~21, 6:8)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생명의 열매만 가득 맺는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생명나무는 곧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삶은 성령의 열매를 가득가득 맺지 않겠는가. 오늘날도 생명나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의 감동을 따르는 사람은 항상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된다.(갈 5:22~23, 6:8)

미국 댈러스로 집회를 간 적이 있다. 바쁜 일정 중에도 크리스웰 목사님이 사역하셨던 댈러스침례교회를 방문했다. 신학교 때 크리스웰 목사님이 쓴 ‘목회자 지침서’라는 책으로 공부했을 정도로 한국교회에까지 대단한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그때 교회 안내원이 들려준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크리스웰 목사님은 젊었을 때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는 사냥을 가서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기에 노루이거니 생각하고 총을 쐈다. 그런데 가서 확인해 보니 노루가 아닌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크리스웰 목사님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윤리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담임목사직도 사임해야 하는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다. 교인들은 사람을 죽인 목사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느냐고 당장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교회를 나가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중직자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목사님을 이대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은 감동이 왔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목사님의 허물을 덮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허물을 사랑과 용서로 덮읍시다. 오히려 더 훌륭한 목사님이 되도록 눈물로 기도합시다.” 교인들은 결국 크리스웰 목사님의 허물을 덮고 오히려 목사님을 위해 더 눈물로 기도했다.

크리스웰 목사님은 성도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보니 설교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주님이 우리의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는다는 사랑과 용서의 내용을 설교할 때마다 엉엉 울고 말았다. 담임목사도 울고 성도들도 울면서 교회는 울음바다가 됐다.

이후 댈러스침례교회는 미국 최대 교회 중 하나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웰 목사님은 댈러스를 복음화하고 미국침례교 총회장, 세계침례교연맹 총재까지 지냈다.

누가 그런 훌륭한 목사님을 만들었는가.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영혼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때 선악과나무를 선택해 목회자를 비난하는 성도들로 가득했다면 크리스웰 목사님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이 눈부신 생명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위대한 부흥의 업적들을 이뤘다. 그래서 잠언서는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했다.(잠 15:4)

이처럼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내면이 먼저 생명으로 풍성해지고 입술에서 생명의 말, 온순한 말만 하게 된다. 입술을 통해서도 생명의 열매만 맺게 된다.

오늘날의 성도도 교회 생활을 하며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한다. 특별히 주님의 새 계명인 사랑과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내 가슴이 아프고 말지’하며 상대방을 향한 비난과 공격과 파괴적인 말을 자제한다. 양이 목자를 따라가는 것처럼 새에덴교회 성도들도 목회자의 행동을 따르고 있다.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0504&code=2311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