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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Zechariah) 1장 말들의 환상 -7장 순종이 금식보다 중요함

영국신사77 2020. 4. 15. 10:46

스가랴

머리말

스가랴의 주요 내용도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49회나 나온다. 12장부터 14장까지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18번이나 나온다(12:3, 4, 6, 8, 8, 9, 11; 13:1, 2, 4; 14:1, 4, 6, 8, 9, 13, 20, 21).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날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다. 특히, 본서는 메시아를 순(3:8), 왕과 제사장(6:13)으로 표현하며, 그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고(9:9-10) 배척 당하시고(11:12-13) 못박히시고(12:10) 고난 당하시고(13:7) 재림하심(14장)에 대해 예언한다.


내용 목차

1장: 말들의 환상

2장: 측량줄 환상

3장: 대제사장의 환상

4장: 순금등대의 환상

5장: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의 환상

6장: 네 병거의 환상

7장: 순종이 금식보다 중요함

8장: 예루살렘의 미래의 모습

9장: 구원하시는 왕이 오심

10장: 이스라엘의 회복

11장: 목자들에 대한 예언

12장: 유다의 구원

13장: 죄 씻는 샘

14장: 하나님께서 오셔서 다스리심


1장: 말들의 환상

[1-3절] 다리오 왕 2년 8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고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그들의 선조들이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빠졌었으나 이제 그 후손들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회개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행복도 그를 떠나간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셨고, 그들은 전쟁, 기근, 질병 등의 재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그는 그들의 선조들과 그들의 많은 죄를 사하시고 친히 그들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평강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본서에 49회 나옴)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무리를 주관하시고 사용하시고 그의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4-6절]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열조는 악한 길과 악한 행실을 떠나 돌아오라는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 들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죄가 인생의 근본 문제이며 회개는 그 문제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열조들은 선지자들이 전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지하고 교만하고 완악했다. 그런데 그들의 열조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다 포로로 잡혀갔고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죽지 않았는가? 또 “[그]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는 말씀은 선지자들이 그 후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계속 살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선지자들도 죽는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글들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말씀과 그가 행하셨던 역사적 사건들의 교훈을 받는다.

[7-17절] 다리오 왕 2년 11월 곧 스밧월 24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紅馬)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myrtle tree, 도금양)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紫馬)와 백마가 있기로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靜穩)하더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70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는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사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고, 그 뒤에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타고 따르는 자들은 천사들을 가리킬 것이다. 홍마는 전쟁을, 자마는 죽음을, 백마는 승리를 상징하는 것 같다. 스가랴 때는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지 70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 성의 재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기는 했으나 아직 성전도 재건하지 못했고 성곽은 더더욱 재건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 성이 재건될 것을 증거하여 주신 것이다.

[18-21절]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흩어버린] 뿔이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工匠)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흩어버려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던져버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뿔은 힘과 세력을 상징한다. ‘네 뿔’은 유다와 이스라엘 사방에 있는 적대 세력을 가리킬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 주위에는 북으로는 수리아와 앗수르와 바벨론, 동으로는 모압과 암몬, 남으로는 에돔과 애굽, 서(西)로는 블레셋이 있었고 그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이었다. 이 중에 특히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키고 그들을 온 세계에 흩어지게 한 적대 세력이었다.

공장(工匠)이라는 원어(카라쉼)는 목공, 석공, 철공 등의 장인들(craftsmen) 곧 기술자들을 가리킨다. 네 뿔들이 강하며 유다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는 그것들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네 장인들을 준비하셨고 필요할 때 그것들을 파하게 하셨다. ‘네 장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대 세력을 꺾고 그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 동서사방에서 자유로이 사용하시는 섭리적 도구의 나라들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바벨론을 들어 앗수르의 뿔을 꺾으셨고 또 메대와 파사를 들어 바벨론의 뿔을 꺾으셨다.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죄로부터의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의 주시는 평강을 누리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받고 성경적 설교와 교훈에 겸손히 순종하자. 우리는 이스라엘의 열조처럼 되지 말자. 모든 종류의 죄악을 회개하고 버리자. 불경건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미움, 시기, 음란, 불결, 거짓, 탐욕 등의 모든 죄악을 다 버리자.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긍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 시작(중생)도, 그 진행(성화)도, 그 완성(영화)도 하나님의 긍휼로 된다. 교회는 사방에 적대 세력들이 있어도 하나님의 긍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 우리도 주 안에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이길 것이다.

2장: 측량줄 환상

[1-5절]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척량줄[측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측량]하여 그 장광(長廣)을 보고자 하노라 할 때에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스가랴는 한 사람이 측량줄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의 길이와 너비를 측량하는 광경을 보았다. 예루살렘 성은 전에 불타고 허물어지고 황폐했었다(왕하 25:9-10; 느 1:3). 그 성에는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만 돌아와 살고 있었고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성은 장차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므로 성곽 없는 촌락처럼 될 것이다. 그 성에 살려고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성 안의 집들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교회시대를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는 본문의 예언이 신약교회에서 풍성히 성취되었다고 본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차고 넘친다(롬 11:25-26; 계 7:9). 하나님께서는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시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실 것이다. 불 성곽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나타낸다. 그것은 마치 그를 잡으려고 성을 포위한 아람 군대로부터 선지자 엘리사를 불말과 불병거로 둘러싸 보호하심과 같을 것이다(왕하 6:17).

[6-9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북방의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온 세상에 흩어짐을 당하였었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유케 하시고 북방 땅에서 도피하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은 메시아의 사역을 보이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실 것이다. ‘영광을 위하여’라는 원어(아카르 카보드)는 ‘영광 후에, 영화롭게 한 후에’라는 뜻으로 ‘메시아께서 영광을 받은 신 후에’ 즉 그의 승천을 가리킨 것 같다. “나를 보내셨다”는 말씀에서 ‘나’는 문맥상 여호와의 사자,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본다. 온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심은 그의 제자들을 복음 전파자로 보내심을 가리킬 것이다. 메시아께서 노략자들 위에 손을 움직이시면 그들은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복종할 것이다. 이것은 메시아의 구원사역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 눈동자같이 여기실 것이다(신 32:10). 이스라엘 백성을 범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한 자들로 간주된다.

[10-13절]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계셔 역사하심으로 기쁨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갈 5:22).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찬송케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다(엡 1:6, 12, 14; 5:19). 우리가 기뻐하며 노래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고(요 1:14), 승천하신 후 그의 약속대로(요 14:16-18, 23) 성령께서는 오셔서 신약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 성을 다시 택하시고 자기의 소유로 삼으셨다. 이전에는 그들이 범죄함으로 버림을 받았었으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 오늘날 신약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며 찬송해야 한다. 스가랴는 또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세계복음화를 가리킨다고 본다. 세상의 각 나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계 7:9).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수효와 그 견고함과 복됨의 영광을 보자. 신약교회는 성곽 없는 성처럼 학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불성곽으로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비록 지교회의 현재의 작고 미미함이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눈을 들어 온 세계교회를 보고 또 미래의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을 바라보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신약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자기 눈동자같이 귀중히 여기심을 감사하자. 우리는 비록 죄성을 가진 부족한 자들이지만,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고 또 성령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 안에서 평안 가운데 거하며 항상 기뻐하고 노래하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우리의 성화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3장: 대제사장의 환상

[1-3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본문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탄이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보이셨다. 사탄과 악령들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실제로 존재한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비난하는 자이다. 여호와께서는 사탄에게,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셔서 택한 백성을 위하시고, 또 그들을 대적하고 비난하는 사탄을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죄의 징벌로 인한 포로생활에서 구출된 백성을 묘사하고, ‘더러운 옷’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위의 의가 없음을 보인다. 인생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不淨)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4-5절]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와께서는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의 복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장차 사죄와 칭의의 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신약 성도에게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사죄와 칭의의 복을 얻었다.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스가랴가 “정(淨)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정한 관도 그 머리에 씌우게 명하셨고 옷도 입히셨다. 깨끗한 관은 존귀한 신분을 뜻할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곁에 섰다.

[6-7절]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미쉬메렛 ) [명령]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며 그럴 때 그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그 뜰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성전 뜰을 지킬 자들, 곧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도를 행하며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쓰임 받는 직분자가 될 수 있다.

[8절]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표’라는 원어(모페스)는 ‘표적, 상징, 예표’라는 뜻이다.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 곧 제사장들은 예표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메시아를 예표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메시아를 ‘내 종 순(체마크)[가지]’이라고 부르셨다. 이사야도 이새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사 11:1),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23:5).

[9-10절]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메시아께서는 또한 일곱 눈이 있는 한 돌로 표현되셨다. 그 일곱 눈은 그의 전지하심을 나타낸다. “내가 새길 것을 새긴다” 말씀은 메시아께서 속죄사역을 위해 고난을 받으실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메시아의 대속사역으로 이스라엘의 죄악 곧 택자들의 죄악이 하루에 제거되었다. 그것은 다니엘 9:24에 “죄악이 영속(永贖)된다”는 예언과 같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듯이 평안과 즐거움의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우리가 누리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의 복과 하나님의 자녀의 존귀한 신분을 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섬기며 성경 교훈만 힘써 행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단번 속죄의 은혜를 감사히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義)가 되셨고 우리의 평안과 기쁨과 힘이 되셨다.

4장: 순금등대의 환상

[1-6절]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는 순금 등대를 보았다.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고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그 주발 좌우편에 두 감람나무가 있었다. 순금등대와 일곱 등잔들은 의와 진리를 밝히 증거하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 즉 그가 친히 피흘려 사신 성도들을 예표한다고 본다. 두 감람나무와 일곱 관은 성령께서 기름을 중단 없이, 풍부하게 공급하심을 상징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 건립이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됨을 보인다. 이것은 구약의 성전뿐 아니라, 신약교회도 그러하다. 개인의 구원과 성화도 그러하고, 영혼들의 구원과 교회의 건립과 양육과 성장, 그리고 완성도 그러하다.

[7-10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큰 산’은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자들을 가리킨 것 같다. 방해자들은 큰 산과 같은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의 손을 통해 성전의 기초와 머릿돌을 놓게 하셨다. 사람들은 “은총, 은총이 그것(라흐 הּ������)(KJV, NASB)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것은 성전 건축의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완성됨을 고백하고 기원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오늘날도 개인의 구원이나 교회의 건립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완성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10절의 ‘작은 일들’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교해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스룹바벨 때의 성전 재건 공사를 가리킨다. 그 일곱은 일곱 등잔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곱 등잔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 곧 일곱 영을 가리킬 것이다. 요한계시록 5:6은,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말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전지(全知)하신 영이시다. 성령께서는 온 땅에 두루 행하시며 모든 일을 보시고 행하시며 이루신다.

[11-14절]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순금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나 두 가지는 같은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두 감람나무의 두 가지에서 금 기름이 두 금관을 통하여 흘러 등대의 일곱 등잔에 공급되고 그 등잔은 빛을 내는 것이다. 두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을 금 기름이라고 부른 것은 금관에 비친 그것의 색깔 때문이거나 그 기름의 고귀한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 기름은 분명히 성령을 상징하였다. 천사는 그 두 감람나무를 온 세상의 주, 곧 하나님 앞에 모셔 섰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고 설명하였다. 구약시대에 기름 발리운 사람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었다. 여기에서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러나 단지 그들 자신을 가리켰다기보다는 그들의 직분과 사역이 예표하는 자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들은 메시아를 예표한 자들이었다. 메시아께서는 제사장과 왕으로 오실 것이었다. 대제사장들은 예표의 사람들이었다(슥 3:8). 메시아께서 일곱 눈을 가진 돌로 오셔서 친히 고난을 받으시고 죄악을 하루에 제하실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 곧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한 공급하심을 받아 세상에 빛을 발할 것이다.

구약성전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진리와 의를 비추는 순금등대와 같다. 성전 건립의 일, 곧 성도 개인의 구원과 온전함, 그리고 교회의 건립과 성장과 완성은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게 보이는 일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성전 건립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 씨를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기르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성전 건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충만한 은혜만 의지하면서 개인의 성화를 이루고 교회의 건립과 성장과 완성을 위해 힘쓰자.

5장: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의 환상

[1-4절]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20규빗이요 광이 10규빗이니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스가랴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그 크기는 길이가 20규빗, 약 9미터이고 너비가 10규빗, 약 4.5미터이었다. 두루마리는 소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이다. 그 두루마리에는 온 세상에 적용되는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모세의 율법은 복과 저주의 말씀이다(레 26장; 신 28장).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반영한다.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저주가 모든 죄인들에게 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도적질한 자는 그 율법의 저주대로 벌을 받을 것이며 거짓 맹세한 자도 그 율법의 저주대로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저주가 온 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집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는 악인들과 그 가족들과 그 재산들에 임할 것이며 그들을 다 멸망시킬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5-11절]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스가랴는 에바를 보았다. 에바는 곡식의 양을 재는 도구이며 또 그 단위이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다. 이 환상은 상거래의 죄를 암시한다고 본다. 사람의 정직함의 여부는 상거래에서 드러난다. 율법은 공평한 에바를 명하지만, 이스라엘은 경건과 의 대신 불의한 물질적 이익을 구하였다. 한 여인이 에바 속에 앉아 있고 납 조각이 그 위에 덮인 것은 이스라엘의 악을 상징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이스라엘을 에바 속에 가둘 것이다. 스가랴는 또 학[황새](원어, 영어성경들)의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을 보았다. 그 두 여인은 그 에바를 천지 사이로 들었다. 그들은 그 에바를 시날 땅으로 옮겨가서 그를 위해 집을 지으려 했다. 준공되면 그는 그의 처소에 머물게 될 것이다. 시날 땅은 불경건과 우상숭배, 그리고 부도덕과 죄악의 본거지이다. 그곳에 영구적인 집을 세우듯이, 이스라엘의 악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또한 이스라엘의 악이 멀리 제거됨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과 저주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믿고 지키는 자에게는 복이 되지만, 그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죄이며 죄의 값은 자신과 온 가족과 나라의 멸망이다.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와 선만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멀리 옮기셨다(시 103:1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복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자. 신자의 성화의 원동력은 죄사함과 칭의와 성령의 도우심이다. 이제 우리는 믿음과 순종과 의와 선으로만 살자.

6장: 네 병거의 환상

[1-8절]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바로드 ד������������)[얼룩지고](BDB)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영들](원문, 영어성경들)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바벨론 지역]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놋산은 파괴될 수 없고 변경될 수 없는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을 상징하며, 두 개의 놋산 사이에서 네 병거들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열국 심판의 섭리를 보이는 것 같다. 병거는 전쟁을 상징하며 네 병거의 말들은 온 세상에 파송된 영들 곧 천사들을 가리켰다. 홍마는 전쟁으로 인한 피흘림을 상징하고, 흑마는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죽음을 상징하고, 백마는 심판의 승리를 상징하고, 얼룩지고 건장한 말은 그 외의 여러 가지 재앙들을 상징할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국 심판을 잘 수행하였다.

[9-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면류관들]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가지]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은금으로 만든 면류관들을 쓰는 것과 순이라 이름한 사람에 대한 예언은 메시아를 가리켰다고 본다(사 53:2). 예수 그리스도는 연한 순같이 온유하고 겸손하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셨다. 그 순은 자기 곳에서 돋아났다. 메시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는 다윗의 부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고 예언되어 있었다(사 11:1). 또 그는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미 5:2). 그는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탄생하셨다. 그는 낮은 곳에서 자라셨다. 그 순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는 신약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바른 신앙고백의 터 위에 그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그는 십자가 대속사역과 그의 보내신 성령으로 그 일을 시작하셨다. 그는 지금도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구원하며 교회들을 세우고 그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진행하시고 있고 마침내 다 이루실 것이다.

[13-15절]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位)에[자기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자기 보좌에서 제사장이 되시리니](KJV, NASB, NIV)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메시아의 성전 건축은 그가 친히 죽으심으로 대속사역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영혼들을 불러 구원하시고 이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하셔서 신약교회를 건립하시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 두 사이에[곧 왕의 직무와 제사장의 직무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의논’이라는 원어(에차 ה������������)는 ‘작정, 계획’이라는 뜻이다. 평화의 계획이란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심령의 평안과 환경적 평화를 얻게 하시는 계획이라는 뜻일 것이다.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의 결과는 평안이다. 여호수아에게 씌워질 금은으로 만든 면류관들은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약속의 기념물로서 여호와의 전 안에 두어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셨다.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는 말씀은 이방인들의 구원, 곧 세계복음화를 예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며(눅 24:47; 롬 11:25),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원문, NASB)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고 말한다. 성전 건축의 일은 하나님 말씀 순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죄인이 의인 되는 것이며 거역하던 자가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강건함과 충만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열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히 다 성취될 것이다. 온 세상에 파송된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그 일을 다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믿고 감사하자.

우리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순[가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를 믿고 구원을 받으며 또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교회의 건립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임 받는 자가 되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왕과 제사장이 되셨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을 통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잘 받자. 또 날마다 그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불결을 씻음 받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복의 결과는 평안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함과 심령의 평안을 이미 얻은 것을 감사하고 또 성경말씀을 온전히, 부지런히, 더욱 더 순종하자.


7장: 순종이 금식보다 중요함

[1-7절] 다리오 왕 4년 9월 곧 기슬래월 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5월간에 울며 재계(齋戒)[성별]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70년 동안 5월과 7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

5월 금식은 예루살렘 멸망을 기억하면서 행한 금식이었던 것 같고(왕하 25:8), 7월 금식은 7월 10일 속죄일의 금식을 가리킨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를 위하여 한 것임을 지적하셨다. 종교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순종이며 그것이 평안과 형통의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나는]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고(호 6:6), 선지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였다(삼상 15:22).

[8-14절]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반항적 어깨를 내밀며](원문)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솨미르)[부싯돌](NASB)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영]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통해]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말씀하신 내용은 첫째, 진실한 재판을 행하라는 것이다. 판사는 불확실한 말이나 친분이나 안면을 따라 편벽되이 판단하지 말고 진실하고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는 것이다. 특히,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나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남을 해하려고 마음에 계획하지 말라고 하신다. 한마디로, 의롭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심히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셨다. 그는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 아름다운 유대 땅은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종교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순종이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생활하며 교회의 직분을 받아 여러 가지 봉사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다 귀하고 좋지만,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는 실패치 않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멸망을 당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살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