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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5권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신 일들을 찬양함-129편 시온을 미워하는 자

영국신사77 2020. 4. 15. 09:37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신 일들을 찬양함

[1-3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救贖)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감사는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마음과 말로 보답하는 것이다. 감사와 찬송은 거의 동의어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이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은혜를 베푼 이웃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로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한다. 선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고 지혜를 주셨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그는 범죄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영생을 주셨다. 그는 우리를 오래 참으셨고 여러 번 용서하셨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셔서 동서남북으로부터 모으셨다. ‘남’이라는 원어(얌 ם������)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로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가고 흩어졌었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뜻 같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4-9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거할 성이 없는 광야 황량한 길을 방황하였었다. 그들은 식량이나 물도 넉넉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것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보냈던 열두 정탐꾼들 중 열 명의 불신앙적 보고를 받아들인 잘못 때문이었다(민 14:33-34). 성도는 세상에서 종종 이런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본 시편에는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네 번 나온다(6, 13, 19, 28절). 사람은 환난과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 그것은 가나안 땅의 정복과 정착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다. 본 시편에서 저자는 네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8, 15, 21, 31절). 또 그는 “이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사모하며 간절히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그들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자이시다.

[10-16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평안 중에 사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행과 사망의 그늘에 두시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하신다. 평안은 빛으로 상징되고 불행은 흑암으로 상징된다. 노동과 수고는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낮춘다. 고난 중에 아무도 그를 도와주거나 돌보아주지 않는다. 그는 쓸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고난 중에라도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도는 성도의 믿음의 표현이다. 실상, 사람이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구원하여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다.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다. 얽은 줄을 끊음, 놋문을 깨뜨림, 쇠빗장을 꺾음 등은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들을 그 고난에서 기이하게 건져주셨다. 그것은 그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17-22절]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악을 행한다. 그는 자기 스스로 불행을 가져온다. 사람은 자신의 실수와 죄악 때문에 여러 곤란한 일을 당한다. 질병도 그것들 중에 하나이다. 범죄한 자는 심각한 병에 걸려 식욕이 떨어지므로 각종 음식을 싫어하고 몸은 쇠약해 사망의 문에 가까운 자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그 근심 중에서,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오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게 된다. 고난은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징책은 확실히 그의 영혼과 육체를 치료하는 약이다.

고난받는 성도들이 그 고난과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보내어 주셔서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그들을 그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을 깨우쳐 회개시키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며 슬픔과 낙심 중에서도 위로를 주신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과 치료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간증하며 전할 것이다.

[23-32절] 선척을 바다(메출라)[깊은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사람은 자기의 직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어부들은 바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바다에서 광풍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고 허락하셨다. 깊은 바다에서 광풍을 만난 어부들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며 그 위험을 인해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 그들은 이리저리 구르며 술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며 지각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광풍은 흔히 자신들의 죄 때문에 온다.

그들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온케 하시고 물결로 잔잔케 하신다. 그는 광풍을 잔잔케 하실 수 있다. 어부들은 광풍이 조용함을 인하여 기뻐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하며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것은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었다(고후 1:8-9).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33-43절] 여호와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며 또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케 하시며 또 복을 주사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이 감소치 않게 하실지라도 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하여 저희로 감소하여 비굴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궁핍한 자는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옥토로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소돔 땅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같이 비옥하였으나(창 13:10)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창 19:24-26) 소금 바다가 되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거친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도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주관하셔서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시며 그들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하게 하신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들이 감소하지 않게 하시지만, 그들은 또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해 감소하여 비굴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죄의 징벌 때문이거나 인격의 훈련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 궁핍한 자와 환난 당한 자를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인도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통치 기준은 의(義)이다. 그가 옥토를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것은 그 거민들의 악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들은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들은 자기 입을 봉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을 것이다. 정직한 자는 성경말씀을 달게 받으며 그 말씀대로 살며 그 뜻을 행하는 자이며, 그들이 지혜자요 복 받을 자들이다.

시편 10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들은 자신의 죄들 때문에 곤고함에 떨어진다. 10-11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7절,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34절,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며.”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13, 19, 28절).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은혜를 주시며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푸셨다. 그는 그들의 반복된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와 죽음과 지옥불에서 구원하셨다(요 3:16; 롬 5:8).

넷째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며 그의 계명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며 복된 길이다. 영생에 이르는 자마다 그 길을 간다.

108편: 하나님을 찬송하며 구원을 간구함

[1-5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케보디)[내 영광](KJV)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5절은 시편 57:7-11과 거의 같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심이다. 그는 비파와 수금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결심하였다. 찬송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믿고 사랑하고 사모하며 높일 때 나온다.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다윗은 또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한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간절함과 사모함과 정성을 나타낼 것이다. 돈 벌기를 사모하는 자는 새벽에도 잘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것이다. 새벽기도의 단을 쌓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복된 삶이다.

다윗은 또 열방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겠다고 고백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려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크시며 그의 진실이 하늘까지 미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자와 진리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님의 진리는 그가 자기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을 이루심에서와, 또 악인들에게 공의의 벌을 내리겠다고 하신 경고를 시행하심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으시다. 그의 진실하심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이며 영원한 구원의 기초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실 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구주이시며 소망과 기쁨이시요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로 구원을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찬송해야 한다.

[6-9절]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6-13절은 시편 60:5-12와 거의 같다. 다윗은,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실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그는 그 오른손 즉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하며, 그의 말씀을 전한다. “내가 뛰놀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신다. 세겜은 요단강 서쪽을 가리키며, 숙곳 골짜기나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을 가리키고, 므낫세는 요단 동서쪽에 걸쳐 있다. 이 말씀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의 확실함을 증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 즉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을 다 그의 소유로 삼으셨고 그것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라는 원어(마오즈 זוֹע������)는 ‘보호물, 투구(NASB, NIV)’라는 뜻으로 ‘내 머리의 보호자’라는 말은 그의 원수들로부터 그의 왕권을 지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는 나의 홀”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홀’이라는 원어(메콕키)는 ‘나의 법을 베푸는 자’라는 뜻으로 ‘지도자’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은 유다 족속을 통해 계승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을 지키시고 그 왕권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또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는 말씀은 모압 족속이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을 표현하신 것이라고 보며, 또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진다는 말씀도 에돔 족속에 대한 진노와 경멸을 표현하신 것이다. 또한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족속을 이길 것을 나타낸다.

[10-13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이스라엘 나라는 지금 매우 연약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버려두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고 그들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다. 그들이 이렇게 연약해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증거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서 만일 그들이 그의 계명을 어기면 원수 앞에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이미 경고해 두셨었다(신 28:25-26).

그러나 다윗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에돔의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게 하실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적 능력을 굳게 믿는다. 그는 하나님께 승리가 있음을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서 겪는 싸움들에서 승리의 원인이시다. 다윗은 또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無)로 돌리실 때에 그것들은 헛되게 된다. 이방 군대의 도움도 그렇다. 그러므로 시편 146:3-4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하였다.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그를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당한 자를 도우실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시 3:8). 또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편 18:29에서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고 말하였고, 시편 20:7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그의 약속과 인자와 진실을 믿었다.

시편 10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당한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원수들로부터 구원해주신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성도들은 여러 가지 고난들을 당한다. 그것들은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의 부족 때문에 오지만, 때로는 단순히 마귀의 시험 때문에 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유로 오는 고난이든지, 낙망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할 바가 있으면 지체치 말고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표가 된다.

둘째로, 우리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감사하며 기도하고 또 날마다 규칙적으로 성경책을 조금씩이라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교훈을 받자. 그것은 우리에게 큰 복이다.

셋째로, 우리는 환난이 많고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자.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행하자.

109편: 보응의 확신과 구원의 간구

[1-5절]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저희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거짓된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아니 테필라)[나는 기도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다윗의 하나님은 다윗이 평소에 섬기며 찬송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금 원수들의 많은 비난을 당하는 어려운 처지에서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호소한다. 그의 대적자들은 그를 미워하며 까닭 없이 그를 비난하였다. 잘못에 대한 정당한 책망의 말이라면 달게 들어야 하지만, 거짓된 입과 혀로 악한 말로 그를 비난하는 것은 몹시 마음이 상하는 일이다. 사랑은 큰 허물들도 덮지만, 미움은 상대방의 작은 허물도 크게 여기며 없는 허물도 상상해낸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이었다. 다윗은 그들을 사랑했으나 그들은 다윗을 대적하였다.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고 있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도 주께서 금하시는데, 하물며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잠언 17:13은,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경고하였다. 다윗은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그의 공의로운 처분과 자비하신 구원을 간구하였다.

[6-13절]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연수를 단촉케[단축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본문은 악인에 대한 보응을 하나님께 간구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과 같다. 첫째로, 다윗은 “악인으로 그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악인을 들어 다른 악인을 제어하신다. 둘째로, 그는 “그가 심판받을 때에 정죄받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소서”(원문)라고 말한다. 악인은 심판 날에 정죄될 것이다. 또 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가 될 뿐이다. 셋째로, 그는 “그 연수를 단축하게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일찍 데려가실 것이며 그의 교회 직분도 거두실 것이다. 그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해를 끼칠 자이나, 의인은 장수하고 충성된 자는 교회 직분도 오래 가질 것이다. 넷째로, 그는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악인은 가정적인 불행, 가족적인 불행을 당할 것이다. 다섯째로, 그는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그의 소유를 빼앗기고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을 경험케 하실 것이다. 여섯째로, 그는 “그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그의 자녀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 자가 없게 하실 것이다. 일곱째로, 그는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후손들이 땅 위에서 끊어지게 하실 것이며 그의 이름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하실 것이다.

[14-20절]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저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한 연고니이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자손들은 그 부모와 선조들의 죄로 인하여 고통과 불행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신다. 그들의 죄악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20:5).

악인들은 남을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다.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의 매우 기본적 마음인데, 그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하게 그런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던 것이다. 또 악인들은 다른 사람을 저주하기를 좋아하고 그를 저주하기를 옷 입듯했다. 악한 자를 저주하는 것도 삼가야 할 것인데, 경건하고 의로운 자를 저주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 또 그들은 남을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바르게 징벌하셨다. 악인이 남을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저주가 자기에게 임했고 그가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않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다. 그가 남을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의 내부에 들어갔으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다. 다윗은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라고 말한다. 다윗의 고통 중의 기도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과 같다.

[21-25절]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나의 가는 것은 석양 그림자 같고 또 메뚜기같이 불려가오며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나는 또 저희의 훼방거리라.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성도의 무기는 기도이다.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하시며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시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교훈한다(빌 4:6).

다윗의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다. ‘주의 이름을 인하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라는 이름 때문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백성이라는 이름이 있다. 또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라는 말은 성도가 의지할 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선하심밖에 없음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그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받았고 또 받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처한 어려운 형편을 말한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심적인 고난과 물질적 궁핍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는 그의 삶이 석양 그림자 같고 또 메뚜기같이 불려가며 금식함을 인해 그의 무릎이 약하고 그의 몸이 수척하다고 고백한다. 그는 몸도 마음도 심히 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그를 비방하며 그를 향하여 머리를 흔드는 원수들이 있었다. 이런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26-31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인 줄을 저희로 알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저희는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나의 대적으로 욕을 옷 입듯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 하소서.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그 영혼을 판단하려[정죄하려](BDB, KJV, NIV) 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이 필요하다. 그는 지혜와 힘이 필요하고 원수의 비난으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하며, 심령의 두려움, 몸의 연약, 물질적 궁핍으로부터의 구원도 필요하다. 기도는 또한 하나님의 손길을 가져오는 길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모든 문제들의 완전한 해결책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믿고 있었다.

다윗은 그를 대적하고 비난하는 원수들이 수치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악으로 갚으실 것이며 의로운 성도를 비방하는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다윗은 또 하나님의 백성이 즐거움을 얻고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릴 것을 확신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 그의 도우심의 응답으로 즐거움을 얻고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게 될 것이다.

시편 10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과 미움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선을 악으로 갚는 대적자들과 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하자. 4절,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기도는 성도의 무기이며 승리의 비결이다.

둘째로, 악인은 그 악행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의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위해 결코 악인이 되지 말자. 우리는 끝까지 선하고 충성된 의인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구원을 구하며 기대하자. 우리는 영육의 궁핍과 연약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인하여 또 그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구원을 기도하자.


110편: 메시아 시대

[1절] 여호와께서 내 주(主)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본 시편은 메시아 시대를 증거한다.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른 그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주 예수께서는 본절을 메시아 예언으로 인용하셨다(마 22:43-45). 메시아께서는 다윗의 자손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主)이시다. 이 말씀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주 되신 메시아에게 “너는 내 오른편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능력과 통치권과 영광을 가진다는 뜻이다. 메시아로 오신 주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핍박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만에 승천하셨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주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2:69). 신약성경은 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음을 증거한다(행 7:55- 56; 롬 8:34; 엡 1:20; 벧전 3:22; 히 1:3).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원수들이 완전히 그의 발 아래 굴복될 때까지 그를 그의 오른편에 두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 그의 원수들을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 지금도 그는 주님이시며 왕이시며, 성경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택한 영혼들을 구원하시며 교회들과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2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실 것이라고 말한다. 홀은 왕권, 통치권을 가리킨다(창 49:10; 민 24:17).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신다는 것은 능력으로 통치하신다는 뜻이다. 메시아께서는 지금도 능력으로 그의 왕권과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그는 지금 성령의 능력의 역사로 활동하신다. 복음 전도와 영혼 구원은 그의 능력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또 교회를 세우시고 보호하시고 원수들을 징벌하심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권능의 홀을 시온에서부터 내어 보내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시며(마 28:18),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다(눅 24:47). 주께서 행하시는 복음 전도와 영혼 구원의 일은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다윗은 또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라고 말한다. 메시아의 권능의 활동은 원수들 가운데서도 드러날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고(눅 10:19), 또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11:20). 그는 자신과 그의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 같은 이를 회개시키고 구원하셔서 그의 일꾼을 삼기도 하셨고, 헤롯 왕 같은 이를 쳐서 벌레가 먹어 죽게도 하셨다(행 9:1-18; 12:21-23).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권능의 날’은, 그의 권능의 홀을 보내시는 날, 곧 신약시대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와 성령의 능력으로 그 날에 영혼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말씀하셨고(눅 24:49),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할 것이다. ‘거룩한 옷을 입고’라는 원어는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라는 뜻이다. 신약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씻음과 거룩함을 얻은 자들이다(고전 6:11; 히 10:10). 그들은 주께서 이루신 의(義)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옷을 입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였고(롬 12:1), 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증거했다(롬 14:7).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마게도냐 교인들은 자신을 주님께 드리며 주의 일에 자원적으로 참여하였다(고후 8:1-5).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원어는 ‘새벽부터,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뜻 같다(NASB). 그 날에 주의 백성은 새벽부터, 정성을 다해 즐거이 하나님께 헌신할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헌신한 청년들이다. 사람은 아직 젊고 힘이 있을 때,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했다(엡 5:15-16).

[4절]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다윗은, “여호와는 맹세하셨고(원문) 변치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 말이다. 맹세는 인간 사회에서 다투는 모든 일에 최후 확정이다(히 6:16).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맹세하셨다(창 22:16).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는 표현은 그의 말씀이 얼마나 진실하고 확실한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게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다. ‘반차’라는 원어(디브라 ה������������������)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멜기세덱의 모습을 좇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해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그를 맞았던 인물로서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고 아브라함은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창 14:17-20). 히브리서는 그가 멜기세덱 곧 ‘의의 왕’이며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이고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같으며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증거한다(히 7:1-3). 구약시대의 멜기세덱은 신약시대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 4:14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1-12).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중보사역을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 모두는 담대히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들이 되었다(히 10:19; 벧전 2:5, 9).

[5-7절] 주의[당신의] 우편에 계신 주(主)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당신의 우편에 계신 주’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메시아의 노하시는 날이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다. 스바냐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대하여,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라고 증거하였다(습 1:14-15).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진노의 큰 날의 환상을 보았다(계 6:12-17). 바울은 그 날이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이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라고 말했다(롬 2:5, 16).

메시아께서는 그 날에 열왕들을 쳐서 파하실 것이다. 그는 용맹한 전사(戰士)이시다. 그는 그를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을 죽이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주의 재림의 때에 적그리스도와 땅의 왕들과 군대들이 모여 재림하시는 주님과 하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잡혀 지옥불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다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계 19:19-21). 메시아께서는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힘을 내시고 그 머리를 드실 것이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후 심히 목말라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한 곳을 터치셔서 샘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된 것같이(삿 15:15-19), 메시아께서는 전쟁에서 지치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11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신적인 구주를 알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신적 구주이시다. 그는 장차 재림하셔서 세상에서 사탄과 악한 종들을 다 멸하시며 벌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의 모습을 좇아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셨고 지금도 중보사역을 하신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헌신하자.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권능의 날이다. 우리는 새벽부터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같이 하나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거룩하게, 즐거이 헌신하자.


111편: 하나님의 행사를 연구하며 찬송함

[1절]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찬양은 하나님과 그의 속성들과 그의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높이는 행위이다. ‘감사’라는 단어도 비슷한 뜻이다. 그러므로 그는 또 “내가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시편 저자는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교회는 위선자들의 회가 아니고 정직한 자들의 회이어야 한다. 성도들의 특징은 정직과 의이어야 한다. 정직과 의는 하나님의 법과 기준, 즉 성경말씀에 맞는 것을 말한다. 찬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정직한 삶이다.

시편 저자는 또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단지 겉모습으로가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뜻이다.

[2절]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크시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들보다 더 위대하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일이 그러하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옛날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일이 그러하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창 7:21).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신 일이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내셨다(신 3:34).

하나님을 아는 자, 그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하신 모든 일들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즐거워하는 자마다 그것을 연구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연구한다. 별을 좋아하는 자는 별을 연구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자는 음식을 연구하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자는 자동차를 연구한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들을 연구한다. 하나님의 하신 모든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행사를 연구하는 자는 성경을 연구한다.

[3절] 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하나님의 행사는 존귀하고 엄위하시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일들이 그러하고 그의 심판하신 일들이 그러하고 그의 구원의 일들이 그러하다. 거기에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행사는 그의 의를 드러낸다. 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 어떤 일을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판단한다. 사람의 도덕적 기준은 우리의 양심과 하나님의 계명이다. 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고 벌하심을 포함한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와 속성을 침해하고 손상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와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진노하신다.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때 사람들은 공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영원하시다.

[4절]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하나님의 행사들은 기이한 일들이다. 창조도, 섭리도, 심판도, 구원도 그러하다.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이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행사들은 또한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 특히 그의 구원의 일이 그러하다. 그는 죄로 인하여 멸망할 자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신다. 그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신약성도가 받은 구원의 은혜도 그러하다(엡 2:4, 8).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이한 일들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다. 우리는 나쁜 일을 기억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들이다.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행사들은 우리가 기억할수록 교훈을 주는 유익한 내용들이다. 실상, 그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며 죄가 될 것이다.

[5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먹을 것들을 주신다.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채소와 곡식들과 과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다. 물고기도, 소나 양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양식을 주신다. 풍년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며, 기근과 흉년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근 중에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듯이, 이 세상 사는 동안 자기의 백성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다. 그는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모든 복들, 즉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사회적인 복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신 28:1-6).

[6절] 저가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

온 세계와 나라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가 모든 일들을 임의로 행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폭군이 아니시고 이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시고 악에 대해서만 징벌하시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셨다. 물론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가득했던 우상숭배와 음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 온 가나안 땅의 성읍들과 밭들, 포도원들과 과수들은 다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서 그의 능력을 보이셨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강대국 애굽의 왕 바로는 장정만 60만명, 여자와 아이를 합하여 2백만명이 넘을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내보낼 리가 없었고, 또 가나안 원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키도 크고 건장하였고 그들의 성들도 견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셨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었다.

[7-8절]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하나님의 손의 행사들은 진실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그의 말씀도 진실하시다.

하나님의 손의 행사들은 또한 공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사 30:18). 공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공의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시 99:4).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징벌하신다. 죄악된 인간은 죄를 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람이 죄를 묵인하고 용납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살피시고 죄에 대해 징벌하신다.

본문은 하나님의 법도가 다 확실하며 영원히 견고하다고 말한다. 진실하신 하나님, 진리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는 다 진실하며 확실하다. 그것은 영원히 견고하다. 그 법도를 폐지하거나 변경시킬 권한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또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라는 말은 “진실과 정직으로 행해야 할 바로다”라는 뜻 같다. 하나님의 모든 교훈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요 우리의 행위 지침이다.

[9절]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救贖)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구속(救贖)을 베푸셨다(출 6:6-7). 구속(救贖)이란 값을 주고 산다는 개념이다. 그것은 죗값을 지불하고 그 형벌을 대신 받음으로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죄 때문에 죽음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긍휼로 자기 백성을 죄와 죽음의 형벌로부터 건져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에게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다. 그의 언약은 영원하며 불변적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자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 ‘새 언약의 중보’(히 9:15; 12:24)이시며, 그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이다(히 13:20).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지존하시다. ‘지존하시다’는 원어(노라)는 ‘두려우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두려우시다. 그러므로 그의 영원한 언약으로 큰 구원을 받은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히 12:28).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다(잠 9:10). ‘근본’이라는 원어(레쉬스)는 ‘근본’ 혹은 ‘시작’(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며 생명과 평강의 길이다. 그것이 참 지혜와 지식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어리석음이다.

시편 저자는 또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그를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사 43:21; 엡 1:4-6).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할 중요한 한 일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며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 것이다.

시편 11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정직한 자들의 회, 즉 참된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또 우리는 전심으로, 즉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을 알고 즐거워하며 그것들을 연구하자.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성경책 읽기를 즐거워하고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힘쓰며 또 그것을 사모함으로 묵상하고 또 힘써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행사들은 크시고 존귀하시고 엄위하시며 의로우시다. 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일들이 그러하고 그의 섭리 사역이 그러하고 특히 그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 일이 그러하다.

하나님의 행사들은 또한 기이하시며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 그는 기이한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오직 그의 기이한 능력으로 열방을 기업으로 그들에게 주셨다. 또 그는 그들의 많은 부족과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우리는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며 그의 주권 아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열심히 전해야 한다. 영혼 구원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능하다.

하나님의 행사들은 또한 진실하시다. 하나님의 계명들과 교훈들은 다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바를 끝까지 지키시고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고 악한 자들을 공의로 징벌하신다.

셋째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지각이 있다. 그런 자들에게 참 지혜와 지식이 있고 평안과 형통과 영생이 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여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112편: 올바른 자가 복됨

[1-3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며 그의 권위와 명예가 달려 있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성경 읽기를 좋아하고 성경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실 것이다.

그런 자의 후손은 땅에서 강성하며 정직한 자의 후대는 복이 있다. 부모와 자식은 연대 관계가 있다. 부모가 의로우면 자녀들이 영적으로 강건하고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악하면 자녀들이 화를 당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리고 우리의 짧은 삶의 여정에서도 증명된다.

의인의 집에는 부요와 재물이 있고 그 의가 영원히 있다. 경건한 가정에 주시는 복은 영적인 부요가 첫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부요도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으므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부자가 되었고 양과 소는 떼를 이루었다고 기록한다(창 26:12-14).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토지 소산과 가축의 생산과 떡 반죽 그릇의 풍성한 복이 약속되어 있다(1-6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대대로 복을 얻을 것이다. 그의 의와 하나님의 복은 영원할 것이다.

[4-5절]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꾸어주는] 자는 잘 되나니[선한 자는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나니](KJV)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경건한 성도는 어떤 자인가? 그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이다. 정직함은 하나님의 법에 맞게 바르게 행하는 것을 가리키며 의로움도 도덕적 표준에 맞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정직하고 의로워야 한다. 또 경건한 성도는 어질고 자비하며 은혜를 베풀고 돈을 꾸어주는 자이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에게 너그럽고 선하고 자비롭고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도는 가난한 형제에 대해 손을 움켜쥐지 말고 손을 펴서 그의 필요를 따라 구제하고 꾸어주어야 한다(신 15:7-8).

이런 경건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신다.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난다.” 흑암은 고난과 환난을 가리킨다. 그것은 질병이나 경제적 궁핍, 혹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홍수 등의 사회적 재난을 가리킬 것이다. 경건한 자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구원과 회복이 있다. 그는 질병의 치료, 일용할 양식의 공급, 환경적 평안을 얻는다. 잠언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본문 5절 끝에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라는 원문의 뜻은 재판할 때 그의 소송을 잘 견딘다는 뜻인 것 같다(BDB, NASB).

[6-8절]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경건한 성도도 고난 중에 잠시 요동할 수 있다. 다윗도 엘리야도 고난 중에 그러하였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얻고 새 힘을 얻는다. 그는 믿음을 잃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고 완전히 망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천국의 영광에 참여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때때로 무시와 멸시와 비방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또 다른 성도들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흉한 소식’이란 무서운 질병, 지진, 기근, 전쟁 등의 소식이다. 그는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했고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환난의 때 두려워 떨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 우리의 보호함이 있다. 시편 91:1, 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또 하나님 안에 우리의 영생도 있다.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8).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대적자들을 벌하실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볼 것이다.

[9-10절]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성도는 구제에도 힘쓴다. 그는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준다. 5절에서도, 그는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이며 구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제할 때 성경의 교훈대로 넉넉히 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신 15:7-8, 10). 또 예수께서는 우리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3-4).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구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런 성도의 의는 영원히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구제하는 것은 의의 행위, 즉 의의 열매이다(고후 9:10). 구제를 힘쓰는 자는 그 의가 영원히 있을 것이다. 또 그의 뿔은 영화로이 들릴 것이다. 뿔은 힘을 상징한다. 즉 의인들은 쇠하거나 망하지 않고 힘있게, 영화롭게 번창할 것이라는 뜻이다.

악인은 의인의 형통함을 보고 한하며 이를 갈 것이다. ‘한한다’는 말은 마음이 상하여 고통스러워한다는 뜻이다. 악인은 자신을 반성함이 없다. 그는 끝까지 회개치 않고 오히려 의인을 미워하고 그를 향해 이를 간다. 그러나 악인은 소멸할 것이다. 그의 돈도, 그의 건강도, 그의 권세도 없어질 것이다. 그의 소욕도 멸망할 것이다. 악인은 의인이 망하기를 소원하였지만,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이기기를 소원하였지만, 그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소원을 다 폐하시고 오히려 그의 두려워하는 일이 그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다.

시편 11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크게 즐거워하자. 1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들을 크게 즐거워하고 지키는 자가 정직한 자이며 의인이다.

둘째로, 우리는 자비와 선을 행하자. 하나님의 뜻은 자비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바로 그것이다. 본 시편은 우리가 어질고 자비하며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가 되며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라고 교훈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딛 2:14).

셋째로, 이런 자들은 복되며 그들은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즐거워하며 자비와 선을 행하는 이런 자들은 자신도 복되고 그 자손들도 복되다. 또 이런 자들은 재앙의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원수들을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13편: 영원히, 온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함

[1-4절]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본문은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과거에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들은 영원자존(永遠自存)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고 찬양해야 한다. 시편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본문은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을 몰랐었고 죄악 중에 살며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줄 몰랐고 찬송하며 기도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죄악된 상태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며(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그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려 하심임을 알았다(엡 1:6, 12, 14).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려야 하며(계 5:13), 지옥 갈 죄인들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그에게 영원히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본문은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찬양을 받으셔야 할 자이시다. 본문은 또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나라들 위에, 모든 존귀한 왕들 위에 높으시다. 그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다.

[5-9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본문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과 능력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높은 곳에 거하시지만, 자신을 낮추셔서 하늘과 땅의 일들을 보살피시며 다스리신다. 그는 온 우주의 왕이시다. 하나님 외에 온 우주를 보살피시며 다스리시는 자가 누구인가?

특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흙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신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때때로 고난 가운데 처해 있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고 10여년의 긴 종살이를 하였었다. 어린 다윗도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10여년 간이나 피신하며 다니는 고난의 긴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들은 후에 한 사람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면 할 수 없었던 주권적 섭리의 일들이었다.

사무엘상 2:6-8에 보면,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하였다.

또 시편 본문은 하나님께서 잉태치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시고 자녀들의 즐거운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출산은 여자들에게 복된 특권인데 임신하지 못해 열등감과 수치감을 가졌을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들을 얻고 즐거움으로 그들을 안는 자가 되었다. 한나가 그 예이다. 그는 본래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고,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복을 주셔서 사무엘 대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다(삼상 2:21).

고난은 성도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성도에게서 인격적 불순물을 제거하여 거룩한 인격을 만들고 또 겸손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게 한다(시 119:67, 71; 고후 1:9; 12:7).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얼마 동안 고난 중에 두시지만, 마침내 그를 건지시고 그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능력을 증거한다.

시편 11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을 섬기거나 찬양하지 못했지만, 이제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았고 천국를 소망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둘째로,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산 위나 골짜기나, 도시나 농촌, 어촌, 섬 같은 시골이나, 모든 나라들은 다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특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고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잉태치 못하는 여자로 자녀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요셉과 다윗과 한나의 예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보잘것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가족과 존귀한 성도가 되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마 12:50; 막 10:29-30; 벧전 2:9).

114편: 출애굽시대

[1-2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본 시편은 출애굽 시대에 대해 말한다. 야곱과 그의 자손들 66명은 가나안 땅의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의 고센 땅에 내려가 요셉의 보호와 배려 아래 거주한 지 430년이 마칠 때 애굽에서 나왔다(출 12:40). 그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올 때에, 유아 외에 20세 이상의 보행하는 남자들이 60만명 가량이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하면 200만명은 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성소와 영토와 같이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고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을 보호하셨고 인도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고 능력의 손으로 그들을 도우셨고 그들을 위로하셨다(출 15:16-17).

[3-7절]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산들은 수양[숫양]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양같이 뛰었도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너희 산들아, 수양[숫양]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양같이 뛰놂은 어찜인고.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때에 홍해는 그들의 행진에 처음 만난 큰 장애물이었다. 애굽 왕 바로와 그 신하들은 특별 병거 600승과 모든 병거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았다. 바로의 병거들이 가까워 올 때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시고 그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며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졌다. 애굽 진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스라엘 진은 밤이 밝아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밀자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셔서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다. 바로의 말들과 병거들이 뒤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으나 새벽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히 어렵게 하셨고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바다가 그 세력을 회복하였고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게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행하였다(출 14:5-29).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홍해라는 장애물을 이렇게 극복케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 동쪽의 땅을 점령한 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요단강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 강을 건너야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요단강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은 그쳐서 심히 먼 곳에서 일어나 쌓이고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졌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다(수 3:14-17). 이처럼 마지막 장애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되었다.

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 산들은 어린양처럼 그 앞에서 크게 진동하며 떨었었다.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고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였고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었다. 그 연기는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은 크게 진동하였으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셨었다(출 19:16-20).

[8절]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회중이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에게 불평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잡고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셨다. 그 반석에서 물이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셨다(출 17:1-7). 또 그들이 가데스에서도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을 공박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으나, 모세는 회중을 향해 노하여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물이 많이 솟아나와 온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다 마셨으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아 그 일이 죄가 되었고 그 일 때문에 그는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민 20:2-11).

시편 11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성소와 영토, 즉 그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고(요 1:12)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엡 2:19).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벧전 2:9). 우리는 이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인 홍해와 요단강이라는 장애물들을 극복케 하셨다. 그는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들도 제거해주시고 능력으로 이기게 하신다. 그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3).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안에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것이다(롬 8:32).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실 물을 주셨다. 그는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규례들을 주셨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도 영의 양식인 성경말씀과 육의 양식인 먹을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시고 거처할 곳을 주실 것이다(마 6:33; 빌 4:19).


115편: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함

[1절]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고전 10:31; 롬 14:7-8).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이유는 

그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때문이다. 

그는 그의 은혜로 택하신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의 언약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신다.


[2-3절]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이방인들의 말을 참을 수 없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한 앗수르 왕으로 인해 

성전에 나아가 부르짖었던 믿음이 있었다(사 37:17).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자 곧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편 135:6도,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말한다.


[4-8절]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이방인의 우상은 금이나 은, 나무나 돌이며 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며 신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어 말하지 못하며 보지 못하며 듣지 못하며 냄새를 맡지 못하며 손으로 만지지 못하며 발로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또 그것은 아무 힘이 없다. 그것은 사람을 도울 수 없고 그의 삶 속에 무슨 일을 행할 수 없다.


물론 악한 영들이 있고 마술사나 무당이 그들과 교통하며 신비한 일을 행하기도 한다. 애굽 왕 바로의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약간의 기적을 행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제한적이었다. 

또 그들은 도덕성이 없었다. 악한 천사들은 악하고 거짓되고 불결하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영이시다(요 4:24). 

그는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말씀하시고 능력으로 활동하신다.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 

하나님 외에 참 신이 없고 참으로 우리를 도울 자가 없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는 

그 우상에게서 아무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생명 없는 물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11절]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자손들이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 여호와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은과 금과 나무와 돌로 만든, 생명 없고 사람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우상들과 다르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며 그에게 영생이 있다.

특히 그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신다(세 번 반복해 강조함). 

그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과 건강, 죄사함과 의, 평강과 힘과 위로를 주신다. 

또 그는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인 마귀와 악한 자들과 

세상의 죄악된 풍조로부터 지켜주신다.

시편 저자는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세 번 반복해 강조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 즉 그의 긍휼과 능력을 그저 믿는 것이다. 

물론,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다. 

참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한다(갈 5:6).


[12-15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시다. 

인생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며 생각하신다. 

그는 노아와 방주에 있는 자들을 생각하셔서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감하게 하셨고(창 8:1), 

라헬을 생각하셔서 잉태하게 하셨다(창 30:22). 

그는 모든 성도에게 복을 주신다. 그는 남녀노소의 모든 신자들에게 복을 주신다. 

여호와께서는 성도들과 그 자손들을 번창케 하신다. 

그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성장, 인격의 성화와 성숙, 

육신의 건강, 물질적 여유를 주신다. 수의 증가도 하나님의 복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영육으로 복 주시고 번창케 하셨다(창 22:17; 26:12-14).


[16절]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다. 하늘은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 전체를 가리킨다. 

아홉 개의 행성들이 해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지구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태양계라고 하는데 이 태양계는 거대한 우주 공간이다. 

1000억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 한 무리를 이루는데 이것을 은하수라고 부른다. 

그 직경은 약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하는데 약 9조 킬로미터이다. 그러면 10만 광년은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런데 우주에는 이런 은하수가 약 1000억개가 있다고 한다. 우주는 참으로 거대하다. 사람은 수천 년을 지나면서 겨우 달이나, 화성과 목성 같은 행성에 우주 탐사 로켓을 쏘아 올렸다. 하늘은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신비의 세계이다.

그러나 땅은 인생에게 주셨다. 사람은 땅을 관리할 권한을 하나님께 받았다. 

사람은 논과 밭을 가꾸어 곡식과 채소와 과일을 수확한다. 

사람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는 금은동철을 캐낸다. 

땅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일하며 사는 터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땅에서 복을 누리게 하셨다. 

우리의 복은 천국이지만, 우리는 땅에서도 하나님의 복 없이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복을 구하며 받으며 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행하면 

그가 주신 땅에서 복을 누릴 것을 거듭 말씀하셨다(신 5:32-33; 11:8-9; 28:8-12).


[17-18절]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공동묘지는 조용하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 즉 거듭나지 못한 자들도 

참된 찬양을 하나님께 올리지 못한다. 

거듭난 자들만 하나님께 참된 찬양을 올릴 수 있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편 11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우리 자신이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받지 말고, 

오직 그의 인자하심과 그의 진실하심을 인해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고 하나님만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여호와께서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시다(렘 10:10). 

이방인들의 신들은 사람의 수공물이며 생명이 없는 헛된 것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시며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자이시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환난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우리를 해치려는 악한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방패가 되신다.


넷째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116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함

[1-2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고난 중에 그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는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평생 기도할 것이다.

[3-4절] 사망의 줄[혹은 ‘고통’(KJV)]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편 저자는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사망의 고통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의 당연한 행위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에게 기도할 것이지만,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자는 그에게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실상,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성도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도우심 속에서 이 세상을 사는 자이다.

[5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시고 도덕적이시다. 그는 죄를 미워하시고 노하시지만,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며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속성, 특히 그의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심에 근거한 것이다.

[6절]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어리석은 자’라는 원어(페사임)는 일차적으로 ‘단순한 자, 순진한 자’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단순한 자는 악의 유혹에도 쉽게 빠지며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단순하고 순진한 자를 지키신다. 시편 저자는 자신이 고난 중에서 비천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7-8절]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평안을 잠시 잃었지만, 다시 평안을 회복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후대하시고 그 영혼을 사망에서, 그 눈을 눈물에서, 그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20:21). 사도들은 서신들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항상 평안을 기원하였다(롬 1:7; 고전 1:2; 벧전 1:2; 벧후 1:2).

[9-11절] 내가 생존 세계[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시편 저자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이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곧 경건이다. 그것이 말씀과 기도의 생활이며 회개와 순종의 생활이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구원을 체험했으므로 이런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 그가 큰 곤란을 당했고 경겁 중에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고난에서 건져주셨다.

[12-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비교할 만한 일이 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억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편 저자는 그가 체험한 구원의 자은 보답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찬송하며 영광을 돌린다. 또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개적으로 서원을 갚겠다고 말한다. 그 서원은 환난 날에 그가 한 약속과 결심이었다.

[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 앞에서 귀하도다].

시편 저자는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었다. 그는 지금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고 죽음을 겁내지 않고 있다. 성도들의 죽음은 짐승의 죽음과 다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다. 그것은 결코 슬프거나 허무한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의 생의 완성이며 결산이며 열매이다. 성도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간 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세상 사는 동안 그들이 행한 선행은 좋은 상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죽음은 특히 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하는 사건이다.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조금 참으면, 그들은 천국에서 깰 것이며, 천사들은 그들의 입성(入城)을 환영할 것이다.

[16절]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종이며 그의 모친도 하나님의 종이었고 그의 아들인 자신도 그러하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공언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결박을 푸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결박, 불행의 결박, 사망의 결박을 풀어주셨고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 평안과 기쁨, 영생을 주셨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신 구원이다. 우리는 이 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창조주, 섭리자 하나님께 순종한다.

[17-19절]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殿) 정(庭)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말한다. 또 그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그의 서원을 하나님께 갚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에게 한 서원을 갚을 것이다.

시편 11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환난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사모하며 기도하자. 이 세상에는 사망의 고통이 있고 환난과 슬픔이 있다. 또 성도들은 순진해서 이 세상 사는 동안 실수하고 실족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건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자.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평생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또 하나님께 서원한 바를 갚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답게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를 순종하여 바르게만 살아야 하고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한다.

셋째로,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복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가장 큰 복은 영생과 천국이다. 이 세상은 고난이 많고 죽음은 그 고난의 절정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죽음 너머에 천국이 예비되어 있다. 성도는 죽는 즉시 하나님의 품에 안기며 천국에서 깬다.


117편: 모든 나라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1절]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사 43:21).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 피조물인 사람이나 헛된 세상 것들을 자랑하거나 칭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반대되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노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죄 가운데 떨어졌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고 도리어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긍휼과 은혜로 인류 전체 중 얼마를 구원하시기로 택하시고 작정하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대속하셨고 성령께서 중생시키시고 그들 안에 거하신 자들이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원하신 자들을 통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엡 1:6, 12, 14).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교훈하였고(엡 5:19), 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다(골 3:16). 또 히브리서 13:15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했다.

본문은 모든 나라들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모든 나라들과 모든 백성들은 이스라엘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온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세계복음화의 전망을 보여준다. 이처럼 구약성경도 세계복음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다. 시편 67:2-3, 7,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이사야 11:9,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5: 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하박국 2:14,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 하나님의 뜻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도다”(눅 24:47)고 말씀하셨고, 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사도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찬송하는 광경을 보았다(계 7:9-10).

[2절] [이는]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과 불행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심을 말한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짐승의 피를 흘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중보자의 피의 속죄를 암시하셨다.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자들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았다. 그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란 그의 인자하심과 구원하심이 변함 없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다(롬 11:29).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였다(딤후 2:11-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의 사랑은 진실하시고 영원하시다.

우리는 온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은혜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졌다. 그 은혜는 시대가 지나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은혜, 잊어서는 안 될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를 찬송하자.

118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함

[1-5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언약 백성 이스라엘, 하나님을 섬기는 아론의 집 제사장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저자는 특히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그가 응답하시고 그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음을 말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원수들로 인한 마음의 고통도 있고 육체적인 질병에도 떨어지며 경제적 궁핍도 경험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여러 가지 고난의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조를 요청하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를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편안한 곳에 세우신다.

[6-9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편이심을 확신한다. ‘내 편’이라는 말은 ‘나를 위하시고 도우신다’는 뜻이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의를 행할 때 생기는 확신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이런 확신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이 되심을 느낄 것이다. 시편 저자는 이런 확신 속에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을 내리실 것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표현은 그를 의지한다는 뜻이며,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그 일을 고하고 그의 구원을 호소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낫다고 한 것은, 사람의 힘은 유한하나 하나님의 힘은 무한하시며, 또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10-14절]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이스라엘 나라는 때때로 주위의 이방나라 연합군의 침략을 받았다. 성도는 때때로 많은 대적자들의 비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세 번 반복해 말함) 즉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도우시고 역사하심으로 그들을 이길 것이다. 원수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에워싸 독침을 쏘려 하는 무서운 벌떼같이 그를 에워싸지만, 가시덤불의 불이 요란하게 타나 오래가지 못하고 곧 꺼지듯이, 그들의 공격도 그러할 것이다. 원수들이 그를 말로, 폭력으로 넘어뜨리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우셨고 원수들을 물리쳐 주셨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

[15-18절]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비록 완전한 의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이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기쁨의 소리이다. 원수들의 비난과 핍박과 위협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므로 그의 슬픔과 그의 두려움은 변해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 시편 저자는 그의 구원이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백한다(세 번 반복해 말함).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며 그의 오른손은 권능의 손이다. 그는 오른손을 높이 드시고 권능을 베푸셔서 의인을 해치는 자들을 벌하시고 그를 구원하셨다. 시편 저자는 자신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의 징책을 받아 거의 죽을 지경에 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고통 중에 부르짖었고(5절)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를 구원하여 주셨고 그는 기쁨을 얻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내가]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라고 말한다.

[19-21절]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의의 문’은 예루살렘 성전 문을 가리킬 것이다. 죄인이 그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구약의 짐승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사역을 상징했고 구약성도는 신약성도와 똑같이 그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본다. 시편 저자는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갈 2:16).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기 때문이며 심한 고통 중에서, 죽을 것 같은 곤경에서 그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이다.

[22-23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버림받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마 21:42; 막 12:10-12; 행 4:11; 벧전 2: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미워했고 그를 정죄하여 죽였다. 그러나 건축자의 버린 돌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머릿돌은 건물에 요긴한 기초석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 그는 실패처럼 보이는 일이 승리의 일이 되게 하셨고 사람들의 심히 죄악된 사건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기한 일을 행하셨다.

[24-26절]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이 날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날, 곧 메시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다. 그것이 주일(主日)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말이 ‘호산나’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원수들의 핍박으로부터의 구원일 뿐 아니라, 죄로부터와 죄의 형벌인 죽음과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또 그 구원의 결과는 형통이다. 그것은 평안, 건강, 물질적 유여를 포함하며, 영생과 영광의 나라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것은 그의 초림(初臨)과 재림(再臨)을 포함한다(마 21:9; 23:39). 메시아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이시며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의 일과 영광을 위해 천국에서 세상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27-29절]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하나님께서는 여호와시라](KJV). 우리에게 비취셨으니[비추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는 영원자존자, 주권자, 언약 이행자, 은혜를 베푸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여호와께서는 은혜의 얼굴빛을 비추셨다. 그 빛은 죄사함과 구원, 평안과 건강과 영생을 주시는 빛이시다. 번제단은 속죄의 제사가 드려지고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곳이다. 번제단의 뿔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그에게 상달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두 번 부르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고백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써만 가능한 관계이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그의 도우심과 구원과 능력의 체험을 말한다.

시편 11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시편 저자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였다. 세상에는 우리를 에워싸며 대적하는 원수들이 많으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언제나 그를 믿고 의지해야 하며, 특히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그때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환난 날에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에 여호와의 오른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는 우리의 원수들을 끊으실 것이다.

셋째로,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그것은 메시아의 죽으심과 그가 우리의 구주와 주가 되심을 예언한 것이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의 결과로 영생을 얻었고, 또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형통을 누린다.

119편: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21)

1-24절, 행위 완전함, 범죄치 않음, 말씀 사모함

[1-2절]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나차르)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복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덕적 온전함을 원하신다. 우리는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

[3-5절]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솨마르)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솨마르) 하소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굳게 정하고 그의 모든 계명에 주의해야 하고 그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며 불의를 행치 말고 주의 도를 행하며 그것을 근실히 지켜야 한다. 그것이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며 온전한 성도의 모습이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

[6-8절]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솨마르)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할 것이다. 또 우리가 주의 율례를 지킬 때 주께서는 이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이 세상 사는 동안 성경을 힘써 읽고 지킴으로써 그런 복을 누려야 한다.

[9-12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성도는 젊을 때부터 행실을 깨끗케 해야 한다. 사람은 젊을 때에 실수와 연약이 더 많을 수 있다. 그가 젊을 때 행실을 깨끗케 하면 나이가 들 때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을 가질 것이다. 죄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의 일차적 목표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우리의 행실이 실제적으로도 깨끗해지는 것 곧 우리의 거룩함이다(살전 4:3). 청년이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이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그의 계명에 거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기를 힘써야 하며 또 하나님의 규례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 가르치는 것은 배운 것을 확실케 하는 좋은 방법이다.

[13-16절]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우리는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하나님의 증거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하고 또 그의 법도를 묵상하고 그의 길에 주의하고 그의 율례를 즐거워하고 그의 말씀을 잊지 않기를 결심해야 한다.

[17-24절]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의 현실에 처해 있었다. 그는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가 지금 죽음의 위험 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또 그는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과 방백들에게 따돌림과 훼방과 멸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살게 하시면 그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고백한다. 또 그는 “내 눈을 열어 하나님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마음이 상했다. 그는 방백들이 앉아 그를 훼방했을 때도 하나님의 율례를 묵상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즐거움과 조언자로 삼았다. 고난 중에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교만하여 주의 계명에서 떠난 자를 주께서는 꾸짖으시며 주의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서는 사람들의 훼방과 멸시를 떠나게 하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행위 완전한 자가 복되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며 그 모든 말씀을 지키는 자가 그런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로 부끄럽지 않게 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는 범죄치 않는다. 성도의 삶의 일차적 목표는 범죄치 않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성도가 범죄치 않고 깨끗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따라서 조심하는 길뿐이다.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성도는 거룩한 삶, 즉 성화를 조금이라도 이룰 것이다. 성경은 성화의 중요한 도구이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극심한 고난 중에도, 사람들의 훼방과 멸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하며 지키는 자에게 지혜와 기쁨과 승리가 있다.

25-48절, 고난 중에도 말씀을 붙듦

[25-27절] 내 영혼이 진토[흙먼지]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길들]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奇事)를 묵상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의 형편에 처해 있었다. 그는 “내 영혼이 흙먼지에 붙었다”고 표현했다. 또 그가 자기의 길들을 고한다는 말은 자신의 부족한 행위들과 고난의 현실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런 형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길을 구했다. 그는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을 대조하며 바른 길을 강조한다. 그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28-32절]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꼭 붙들었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해 녹는다”는 구절은 “내 영혼이 슬픔 때문에 흐느낀다”고 번역하는 것(NASB)이 더 나아보인다. 그는 원수들의 비방 때문에 심적 고통이 컸던 것 같다(22-23절). 그는 거짓된 행동을 할 위험이 있었고 수치를 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된 행동을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라고 말하며 “내가 주의 증거를 꼭 붙들었사오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라고 고백한다.

[33-35절]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소서”라고 말하고, 또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나이다”(40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시다. 또 우리는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모해야 한다.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목적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주의 계명의 길로 행케 하소서”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전심으로 지켜야 한다.

[36-40절]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시편 저자는 탐욕과 허탄한 것을 멀리하기를 원한다. 그는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탐욕과 허탄한 것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악이다.

또 그는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라고 말한다. ‘세운다’는 말은 ‘견고케 한다’는 뜻이다. 주의 말씀이 그의 삶 속에 견고케 되기를 구한 것이다.

또 그는 “주의 도 안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의로 말미암아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말한다. ‘소성한다’는 말은 ‘심신의 회복과 부흥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또 그 말씀의 중심 내용인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기를 원한 것이다.

[41-48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원수들의 심한 비방 때문에 마음의 큰 고통을 당하고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건져주시면 자유롭게 행하며 수치를 당치 않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의지하고 붙들고 앙망하며 그것을 영영히, 끝없이 지키기를 결심하였고 또 그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즐거워하고 우리 자신의 부족을 고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배우고 그 말씀을 꼭 붙들고 항상 끝까지 전심으로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탐욕과 허탄한 것을 멀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신앙생활의 방해물인 탐욕과 허탄한 것을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지킴으로써 심신으로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체험하자.

49-72절, 위로, 계명 지킴, 고난

[49-50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세의 영생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을 약속하는 소망의 말씀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곤란 중에 위로가 되고 우리는 살리는 말씀 곧 생명의 말씀이다.

[51-52절]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교만한 자가 심히 조롱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는 것은 승리의 비결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은 위로가 된다.

[53-54절]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나의 나그네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과 그들의 악행들을 인하여 맹렬한 분노에 잡히기도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기쁨과 위로와 힘이 되었고 그의 노래가 되었다.

[55절]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시편 저자는, 사람이 해이해지거나 두려움을 가질 밤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법을 지켰다. 이것이 참된 경건이다.

[56절]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 그의 소유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은 불타 없어질 세상 것들보다 값지다.

[57절]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분깃이시며 영원한 기업이시다.

[58절]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평안과 복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밖에 없다.

[59절]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시편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고치고 하나님의 교훈으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회개를 원하신다.

[60절]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61절]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악한 자들의 무리가 나를 둘러쌌으나](KJV)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성도가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다면 승리할 것이다.

[62절]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세상이 무법천지가 아니고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은 의인들에게는 큰 행복이다.

[63절]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이 세상에서 참된 우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가능하다.

[64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말씀을 배우기를 원한다.

[65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그것은 그의 긍휼로 그를 도우시고 구원하셨음을 말할 것이다.

[66절]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투브 타암)[선한 판단력, 분별력]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은 시편 저자에게 유익하였다. 그는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던 과거를 반성하고 계명을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

[68절]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절]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시편 저자는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그를 치려 하였지만 거기에 대응하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70절]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악인들의 마음은 살쪄 지방 같지만, 시편 저자는 오직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였다. 사람의 참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성도에게 고난은 유익이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된다. 질병이나 궁핍, 대적자의 비방이나 전쟁 등의 고난은 그 자체로는 힘든 일이지만,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고 그 말씀대로 행하게 해준다.

[72절]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시편 저자는 이 모든 일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천천 금은보다 낫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곤란 중에 소망과 위로와 기쁨과 힘이 된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듦으로 늘 위로와 기쁨과 힘을 얻고 승리할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천천 금은보다 더 큰 복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성도의 바른 삶일 뿐 아니라, 승리적인 삶의 길이다.

셋째로, 고난은 성도에게 큰 유익이 된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며 그 법을 지킨다. 고난은 성도의 성화에 유익하다.

73-96절, 고난과 핍박 중에 말씀을 붙듦

[73절]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형성하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고 그의 계명을 주셔서 행케 하신다.

[74절]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진실한 형제를 볼 때 기쁨을 얻는다.

[75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에 의한 것이다.

[76-77절]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위안이 되고 그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해야 한다.

[78절]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걸고 넘어뜨렸사오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하소서. [그러나]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79절]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주를 경외하는 자들과 주의 증거를 아는 자들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KJV, NASB).

시편 저자는 참된 성도들이 돌아와 교제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80절]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성도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지킴으로 완전케 되어야 한다.

[81-82절]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성도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앙망하였다.

[83-84절]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심판]하시리이까?

시편 저자는 연기 중에 검게 그을린 가죽병같이 심신으로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율례를 잊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핍박자 심판하심을 기다린다.

[85-96절]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핍박하였사오니] 나를 도우소서.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명령]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 그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고 무고히 그를 핍박하였고 그를 거의 멸했으나, 이런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신실함을 인정하고 그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움과 심신을 회복케 하시는 그의 은혜를 간구한다.

[89-91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판단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말은 천체의 제도와 그 규칙적 운행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또 그의 성실하심도 영원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도 항상 있다. 안정된 땅이기 때문에 우리는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처럼 만물, 곧 하늘과 땅 전체가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의 규례대로 오늘날까지 변함 없이 존재한다.

[92-93절]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명령]를 영원히[결코]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법이 즐거움이 되지 않았더라면 성도는 고난 중에 멸망하였을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살게 하셨기 때문에 그의 법도를 결코 잊지 않고 지키겠다고 말한다. 사람이 영육으로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94절]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연구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백성된 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읽고 연구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구원하실 것이다.

[95절]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엿보았으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시편 저자는 악인들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96절]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의 내용은 심히 깊고 풍부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가 그의 긍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고 고난 중에도 그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고 즐거워하고 지켜 온전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때때로 고난 중에 심히 피곤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의 구원을 참고 기다리며 그의 말씀을 잊지 말고 붙들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핍박하고 해치려는 교만한 자들을 징벌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속에서 우리에게 심신의 회복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성과 가치를 알고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결코 잊지 말고 그 말씀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붙들자.

97-120절, 종일 묵상, 내 발에 등, 말씀 사랑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므로 그것을 종일 묵상하였다.

[98-100절]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항상 성도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그를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며 그의 스승들과 노인들보다 명철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인간적 지혜보다 낫고 그의 어떤 선생님의 가르침보다 낫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101-102절]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성도는 악을 멀리하도록 그의 발걸음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말한다. 영적으로 건강한 표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의 단 맛을 알아야 한다.

[104절]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지혜로운 성도는 모든 거짓 행위, 모든 악한 행위를 미워한다.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다. 인생의 여정에 무지와 죄와 슬픔과 고난의 어두운 날들이 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바른 길을 알려주고 믿음과 위로와 기쁨과 힘을 준다.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 처지를 따라 지키고 안 지키고 해서는 안 되는 말씀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지키기를 굳게 결심해야 할 말씀이다.

[107절]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심한 고난 중에도 우리의 심신의 회복을 주신다.

[108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 저자는 그의 입술로 자원하며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하나님의 규례를 그에게 가르쳐주시기를 기도한다.

[109-110절]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NASB 각주, Poole)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 짓는 것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와 멸망이 죄인들에게 임한다.

[111절]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절]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113절]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두 마음 품는 자, 곧 의와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이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자를 미워했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했다.

[114절]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하나님께서 은신처와 방패인 것은 환난 많은 세상에서 큰 복이다.

[115-117절]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행악자를 멀리하였다. 두 마음을 품는 자나 행악자는 권면의 대상이지 교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자와 교제한다면 의심과 악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며 또 그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기를 원한다.

[118-119절]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버리셨나니](NASB)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율례를 떠난 자들을 멸시하셨고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끼같이 버리셨고 마지막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행위들은 다 허무하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120절]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시편 저자의 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었고 또 그는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하였다. 이것이 바른 성도의 모습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과 지혜의 시작이며 핵심적 요소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종일 묵상하고, 그럼으로써 원수보다,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로운 자가 되고, 또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체험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이며 우리의 길에 빛이 됨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만 받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붙들면 승리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미워하시고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신다. 악인은 가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은신처와 방패로 삼고 행악자를 멀리해야 한다.

121-144절,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함

[121-122절] 내가 공(公)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저자는 교만한 자들의 압박을 받고 있었으나 그는 평소 의롭게 살았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었고 그의 보호와 복을 기도한다.

[123절]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했고 그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눈이 피곤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은 때때로 더디다.

[124-125절]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기를 원해야 한다.

[126절]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징벌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실 것이다.

[127-128절]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금보다 귀함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129절]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들은 놀라운 내용이며 시편 저자는 그것들을 지켰다.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말씀하심, 성경의 예언과 성취, 그 기적들은 다 놀라운 일들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다 믿고 행할 바를 행해야 한다.

[130절]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해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131절]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복임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사모하며 지키기를 힘쓸 것이다.

[132절]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즉 도우심과 구원으로 그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도한다.

[133-134절]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救贖)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성도는 성경말씀대로만 바르게 굳게 살아야 하고, 그것을 떠나거나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죄악된 일은 버려야 한다.

[135-136절]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지식은 참된 경건의 시작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깨닫고 배우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 때문에 그의 눈에는 시냇물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의분의 눈물인 동시에 긍휼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137-138절]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고 그의 판단들과 그의 명하신 증거는 정직하시고 의로우시고 지극히 진실하며 믿을 만하시다.

[139-141절]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精美)하므로(체루파)[깨끗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대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나, 시편 저자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변호하려는 열심이 심히 컸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극히 순결하시므로 그는 그 말씀을 사랑한다. 그는 사람들의 멸시를 당하고 미천해졌으나 그를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그 교훈대로 행했다.

[142-144절]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의로우심도 영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도 그러하다. 또 하나님의 법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환난과 우환이 그에게 미쳤으나 하나님의 계명이 그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증거들이 영원히 의로우시므로 그로 깨닫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시편 저자는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행하였다. 교만한 자들은 그를 압박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폐하였고 지키지 않았고 잊어버렸다. 시편 저자는 미천해졌고 멸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행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공의를 행하였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며 사모하였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하였고 그 말씀을 잊지 않았고 즐거워하였다.

시편 저자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의롭고 기이하고 지극히 진실하고 심히 깨끗하다고 증거하였다(시 19:7-8; 요 17:17; 롬 7:12). 우리는 성경이 이 복된 하나님의 말씀의 책임을 알고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그것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배우고 그 말씀을 지키고 보수(保守)하고 잊지 말고 즐거워하며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복이다.

145-176절, 주야로 묵상, 말씀 사랑, 큰 평안

[145절]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며 전심 기도는 큰 믿음의 표현이다.

[146절]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지만 회개하며 하나님의 율례와 증거를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147-148절]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새벽기도는 정성과 자기 부정과 간절함의 표현이다. 또 밤이 깊기 전에 성경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도 유익과 복이 크다.

[149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살리소서.

우리가 감히 기도 응답과 생명 구원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약속의 말씀 때문이다.

[150-151절] 악을 좇는 자가 가까이 왔사오니 저희는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법에서 먼 악인들이 그에게 가까이 왔지만,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와 가까이 계심과 그의 계명들이 다 진리임을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도우실 것이다.

[152절]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세우신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153절]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다.

[154절] 주는 나의 원한(리브)[송사]을 펴시고[풀어주시고] 나를 구속(救贖)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는 말이 세 번이나 사용되었는데(156, 159절), 그것은 심신을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그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의 건강과 힘과 위로를 구한 것이다.

[155절] 구원이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저희가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율례를 구하지 않는 자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156-157절]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크오니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고 그의 법을 잊지 않았고 그의 증거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사랑했다.

[158절]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보그딤)[배신자들]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절]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신 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60절]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시며 의로우시고 영원하시다.

[161-164절]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방백들은 무고히 성도를 핍박하였다. 그러나 성도는 핍박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랐다.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으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크게 즐거워하고 지극히 사랑하고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하고 그 계명을 행하고 힘써 지켰다.

[165-168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와 증거를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고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평안(솰롬)은 심리적 평안, 육체적 건강, 물질적 안정과 여유, 환경적 평안 등을 다 포함한다. 이것은 확실히 이 세상에서 경건한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된 약속이다.

[169-170절]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의 도우심과 구원을 간구한다.

[171-172절]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지니이다.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노래하겠다고 말한다.

[173-174절]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고 즐거워하였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사모하였다.

[175-176절]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잃은 양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영혼이 살게 되고 방황하는 데서 안정을 얻으면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계명을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며 새벽에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백성, 곧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혹시 부족한 죄가 있을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구원과 회복을 구할 때에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죽음의 문앞에서 건지시고 우리를 살리시고 심신에 회복과 새 힘을 주실 것이다. 고난 중에 성도의 대책은 오직 기도뿐이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배우고 깨닫기를 원하며 그 말씀을 사랑하고 잊지 말고 떠나지 말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노래하고 그것을 지키고 실행하자. 그것이 성도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고난 중에서 승리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응답을 받는 길이다. 시편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며 그들의 앞에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악인들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큰 평안을 누릴 것이다. 165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과 기도의 삶은 이 광야 같은 세상, 시험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승리의 길이다.


120편: 거짓과 불화로부터 건지소서

[1-7절]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장사(壯士)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있다. 그는 사람들의 비방 가운데 있다. 그는 그를 비방하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 대해 말한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미워하시는 것 여섯 일곱 가지를 꼽으면서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를 말하였다(잠 6:16-19). 세상 사람들은 거짓말로 남을 비방한다. 그것은 악한 일이다. 그것은 성도에게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또 시편 저자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오래 거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했다고 말한다. 메섹은 오늘날 터어키 중부이고 게달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라고 한다. 그는 유대 땅을 떠나 이방 세계에 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그가 말할 때에 그들은 그와 싸우려 하였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요 13:34).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고(롬 12:9-10), 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했다(롬 12:17-18). 또 그는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하였다(엡 4:31-32). 야고보는 교훈하기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거슬러]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였다(약 3:13-18).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다툰다. 그들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는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얻는다.

시편 3:1-4,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편 50:15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주께서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마 7:7-11). 또 주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며 특히 환난 날에 바른 대책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체험하였다. 그는 1절에서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그의 생명을 건지시기를 간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그는 그를 비난하는 자들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난한 악한 자들을 징벌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용사의 날카로운 화살을 보내주셨고 로뎀 나무의 숯불을 부어주셨다. 그것은 악인들에게 큰 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치명적 재앙을 당하였다고 보인다. 다윗은 시편 65:2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 부르짖어 기도하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며 복이다. 기도하는 자는 문제의 해결을 얻을 것이다. 또 우리는 모든 거짓을 버리고 서로 간에 항상 진실한 말을 하고, 또 예수님의 제자답게 화평과 서로 사랑함을 실천해야 한다.

121편: 하나님께서 지키시리라

[1-2절] 내가 산(헤하림)[그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저자는 예루살렘 성을 둘러싼 산들을 바라보며 그의 도움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부터가 아니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하였다고 보인다. 우리의 참된 도움은 어떤 사람, 유능한 부모님, 성공한 자녀, 세상의 권력가, 돈 많은 부자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도움은 다 제한적이며 변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점들을 의지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이나 돈이나 지식과 지혜나 세상 권력을 의지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참된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 여호와께서는 태초에 무(無)로부터 오직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온 세상을 홀로 다스리신다. 전능하신 그 하나님만 우리의 참 도움이 되시는 것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고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고 그의 임재의 영광을 시온산과 그 성전에 두셨다.

[3-4절]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실족지 않게 지키신다. 실족한다는 말은 일상 생활에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하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고 실패하며 범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자들은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나아오며 결과적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가 되고 장차 영생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복을 누린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우리가 바른 길을 벗어나거나 마귀의 올무에 걸려 범죄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신다. 그는 피곤하여 졸거나 주무심이 없이 늘 깨어 우리를 지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끝까지 지키신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 은혜 안에서 끝까지 견딘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8-29).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6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마귀와 악령들의 활동이 있고 죄악된 일들이 많은 위험한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사야 41:10, 14,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救贖者)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주 예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20).

[5-8절]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면 혹독한 더위도 혹독한 추위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셔서 우리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우리의 영혼을 지키실 것이다. 다윗은 시편 18:1-2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말했다. 또 시편 91:1-4, 7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고 말했다.

시편 12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의 참 도움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전능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구원하셨다. 그는 우리를 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건강이나 돈을 의지하지 말고 돈 있는 사람이나 세상 권세를 가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나라의 안보에 관해서도, 비록 미국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알게 되었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과 남한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을지라도, 미국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지키실 것이며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과 악령들의 역사와 죄악된 일들이 많으나 우리가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 하고 성경말씀을 힘써 읽고 듣고 믿고 행해야 한다.

122편: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축복함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본 시편은 다윗의 시이다(표제어). 다윗 시대에는 법궤와 거기에 친 장막이 성막을 대신해 ‘주의 계신 집’(시 26:8), ‘여호와의 집’(시 27:4)이라고 불리었다고 보인다. 다윗은 혼자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뿐 아니라, 서로 권면하여 올라가는 일을 기뻐하였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로 올라가는 것은 그에게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이다.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고 또한 신약 교회를 상징했다(요 2:21; 고전 3:16). 우리는 시시때때로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송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듣는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하며 또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기쁨의 열매를 맺는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다른 교우들과 함께 예배당에 올라갈 때에 기뻐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기쁜 일이다.

[2-5절]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규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은 복된 성이다. 성도들의 발은 그 성문 안에 선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이 조밀한 성읍, 즉 집들이 밀집해 있는 성같이 건설되었다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은 본래 여부스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다윗이 그곳을 점령하여 다윗 성으로 만들었다. 그 성은 본래 남북의 길이가 약 40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성이었고 확장된 후에도 동서나 남북의 길이가 1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성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은 그들의 규례대로 그리로 올라간다. 거기에 다윗의 왕궁이 있고 백성을 판단하는 보좌가 있다. 예루살렘 성은 종교적, 정치적, 행정적 중심지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 중심으로 살아야 하였다.

[6-8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친구들]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이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있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찬양과 기도가 있는 곳이다. 또 예루살렘 성은 이스라엘 왕 다윗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평안을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의 평안과 다윗 왕가의 평안을 간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온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이 될 것이다.

다윗은 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법궤를 사랑하는 자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가 명한 법도와 규례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 형통의 복을 주실 것이다.

다윗은 또다시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 안에 평안이 있어야 하고 그의 왕궁에 형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또 “내가 내 형제와 친구들을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이 평안해야 다윗의 왕가와 신하들의 삶과 온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과 삶이 평안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모든 백성에게 어떤 뜻이 되겠는가? 이것은 그들이 속한 교회의 평안과 형통에 적용될 것이다. 우리의 교회가 평안하며 형통할 때 우리는 평안하고 형통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의 공적 예배일인 주일마다 예배당에 올라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며 또 성경을 읽고 성경의 교훈을 사모하며 듣고 받기 때문이다.

[9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라는 말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 때문에’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이 평안하여야 하나님의 집도 평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와 찬송과 기도도 잘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평안해야 교인들의 심령과 삶도 평안할 것이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경의 교훈을 받을 것이다.

시편 12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사랑하며 찬송하자.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신약시대에 일차적으로 주 예수님을 상징한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교회와 교우들을 축복하자.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은 신약시대에 교회를 상징한다. 우리가 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해야 할 이유는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 때문에 우리나라와 우리의 도시도 축복하자. 우리는 교회의 평안 때문에 우리나라와 도시들의 평안을 기도해야 한다.

123편: 멸시 중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함

[1절]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다. 에녹과 엘리야는 하늘로 올리웠다(창 5:24; 왕하 2:11).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내려보시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말했다(신 26:15).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봉헌하며 기도할 때 하늘을 향하여 손을 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그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기를 여덟 번 반복해 말했다(왕상 8장). 이사야는 “주여, 하늘에서 굽어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라고 말했다(사 63:15). 다니엘서나 느헤미야서에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단 2:18, 19, 28, 37, 44; 느 1:4, 5; 2:4).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을 부르라고 말씀하셨다(마 6:9). 그는 떡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다(마 14:19).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행 7:55).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2-4절]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평안한 자(핫솨아난님)[안이한 자, 거만한 자](BDB)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시편 저자는, 거만한 자들의 많은 조소와 교만한 자들의 멸시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반복하여 기도한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만세 전에 하나님의 긍휼의 선택 때문이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원한 새 생명을 얻은 것도 그의 긍휼 때문이었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가 우리 원수들을 이기고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도 그의 긍휼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우리의 부족한 행위를 생각하면 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긍휼 때문에 구원을 얻었고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얻는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은 선하고 진실한 것이다. 로마서 12:9-10,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죄는 이기심과 욕심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싸움과 분쟁을 일으킨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몸의 죄성에서 나오는 17가지 일들(전통사본)을 열거하는 중 음란에 관한 것 4개, 우상숭배에 관한 것 2개, 원수 맺음에 관한 것 9개, 술취함에 관한 것 2개를 열거하였다(갈 5:19-21). 그러나 이런 것들과 대조하여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선함과 온유 등이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성도들에게 자기들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빌 2:3). 또 야고보도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그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온유]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많다고 말하였다(약 3:17).

시편 12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원자존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며 바라자.

둘째로, 우리는 조소와 멸시를 당하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며 구원을 간구하자.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받은 자답게 남을 멸시하지 말고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선한 인격자가 되자.

124편: 우리편에서 우리를 도우심

[1-8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그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다윗은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고, 사람들의 노가 마치 강물의 삼킴같이 우리를 향해 맹렬하였고, 사람들이 사냥꾼처럼 우리를 잡으려 했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삼키려는 원수들이 많다. 그 원수들의 우두머리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이다. 그를 돕는 타락한 천사들 곧 악령들도 다 우리의 원수들이며, 또 그의 도구들로 말하고 행동하는 악한 자들도 그러하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죄악된 문화는 마귀의 세력 아래 있어서 교만하고 저항적이고 악하고 폭력적이고 음란하고 거짓되다. 또 세상에는 그것을 퍼뜨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세상 생활은 원수들과의 싸움의 생활이다. 이 싸움은 우리 속에도, 밖에도 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죄성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그 남은 죄성과 항상 싸운다. 그 죄성은 세상의 죄악된 풍조와 다를 바 없는 죄악된 요소들, 즉 교만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음란하고 속이는 성질이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범죄케 하려 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 속의 죄악된 성질과 싸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했다(엡 6:10-12). 또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장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했다(벧전 5:8-9). 우리는 세상에서 영적 전쟁 중에 산다.

교회 역사상, 신약교회는 유대인들과 로마 황제들의 핍박, 천주교회와 이슬람 제국의 핍박을 경험하였다. 로마 황제들의 극심한 핍박 때문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 생활했었고 많은 순교자들이 생겼고, 천주교의 핍박 때문에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고문과 죽임을 당하였고 산속으로 도피하여 생활한 자들도 있었다. 천주교회는 1,200년 동안 약 5,000만명을 죽게 하였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1년에 평균 4만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을 건립한 초기 건립자들 중에는 천주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누리려고 갔던 믿는 성도들이 많았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미국 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다.

우리나라의 교회들과 성도들은 과거에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많은 핍박과 순교를 경험했다. 일본 제국은 한국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거기에 반대하던 많은 성도들이 옥에 갇혔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옥중 성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단이 예장 고신파이다. 또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핍박과 순교를 당했다. 지금도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다. 거기에서는 성경책을 소유할 수도 없고 드러나게 읽을 수도 없고 구입할 수도 없고 자유로이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또 찬송가를 부를 수도 없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은 지금 공산당의 본거지가 되었고 한두 개의 전시용 예배당만 남았고 예배당들은 다 폐쇄되었다. 1917년 이후, 공산주의는 세계에서 약 1억명을 죽게 했는데, 그 중에는 많은 성도들이 포함되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편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원수들의 노가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들의 이(齒)에 우리가 씹혔을 것이며, 우리는 올무에 걸려 사냥꾼 같은 그들의 밥이 되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않게 하셨고 그들의 올무를 끊어주셔서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말한다.

다윗은 자신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찬송한다. 특별한 경우, 순교하는 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사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체험한다.

시편 12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에는 우리를 삼키려는 원수들, 즉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이 많다.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다. 이 싸움은 우리의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다.

둘째로,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의 편에 계시고 그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신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말하였다(신 3:22). 다윗은 시편 35:1에서도,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싸우는 자와 싸우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비록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특히 성화)을 이루시며(28절)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므로 우리를 대적할 자는 없고(31절)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며(35절) 우리가 이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며(37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38-39절).

125편: 하나님을 믿는 자는 요동치 않음

[1절]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바다는 때때로 요동하지만 산은 언제나 변함 없이 서 있듯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요동치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의지한다. 그러나 돈은 어느 날 독수리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수 있는 허무한 것이다. 잠언 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화재나 건물붕괴사고나 중병으로 인한 수술과 치료 등은 짧은 기간에 많은 금액의 돈을 소모시킨다. 더욱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돈은 소용이 없게 된다. 에스겔 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사람들은 군대의 힘이나 정치 권력을 의지한다. 그러나 군대의 힘이나 세상 권력도 무너질 날이 있다. 그러므로 시편 146:3-6은,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돈이나 세상 권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전능자이시며 요동함이 없으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기 때문이다(시 102:26-28; 말 3:6).

[2절]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천국이 있다. 주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기도하셨다(요 17:3).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만 있다. 또 그가 주시는 천국은 요동치 않는 영원한 나라이다. 히브리서 12:28은,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고 권면하였다.

[3-5절]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땅](NASB, NIV)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악인이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할지라도 의인의 업, 곧 의인에게 주신 기업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인을 지키시고 의인이 범죄하지 않도록 지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땅에 미치지 못하게 섭리하실 것이다. 그는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 곧 진실한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악한 자들이나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한가지 목적지에 이를 것인데 그것은 영원한 멸망의 처소이다. 시편 1:6은,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며 의지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참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평안이 있을 것이다. 악인들에게는 평안이 없지만, 의인들에게는 평안이 넘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평안이 넘칠 것이다.

시편 12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요동치 않을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요동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그는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기업에 미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불확실하고 요동하는 바다 같은 세상에서도 요동치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을 경험할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돈을 의지하거나 세상 권력을 의지하는 자는 허망한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돈과 세상 권력은 이 세상 사는 동안 일시적으로는 유익을 줄 수 있으나 영원한 유익을 주지는 못한다. 이 세상의 것들은 어느 날 갑자가 다 날아갈 수 있다.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가 재앙을 내리실 때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그것들이 계속 유익이 될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날아가버리게 하시면 그것들은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돈이나 세상 권력 같은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우리는 전도서의 교훈대로 이 세상 것들이 다 헛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의지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이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원하고 복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세상의 죄악된 일들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대로 사는 자들은 누구나 영원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이다(요일 5:13; 벧후 1:10-11). 죄인들과 악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평안과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굳게 의지하자.

126편: 사로잡힘을 돌이키심

[1-3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돌아오게 하셨을]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大事)[큰 일]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大事)[큰 일]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셨을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멸망으로 끝났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세 차례나 침공했고 세 번째는 성전과 왕궁과 많은 집들을 불태웠고 성벽을 헐어버렸고 많은 사람을 죽였고 또 포로로 잡아갔었다. 하나님의 율법에서 경고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의 형벌로 멸망했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여러 도시들에 포로로 잡혀갔고 온 세계에 흩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기이한 역사로 바벨론 나라가 멸망하고 파사 나라가 들어섰을 때 처음 왕 고레스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유대인들은 돌아가라고 그들에게 자유를 선포했다. 그래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 아래 남자들의 수만 4만 2천여명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스 1장).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다. 그때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그들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다. 그들은 열방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큰 일을 행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온 세계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국으로의 귀환은 신약시대의 세계복음화의 일을 예표하였다. 죄로 인해 멸망 길에서 방황하였던 온 세계 각 민족의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과 교훈대로 사는 자들이 되었고 그것이 신약교회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이제 구원의 기쁨과 찬송이 넘친다(갈 5:22; 롬 14:17).

[4-6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저자는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라고 말한다. 그것은 남은 포로들의 귀환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고 보인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자들은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전부가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雨期) 때에 골짜기들이 변화하여 시내들이 되듯이, 그래서 메마른 땅을 윤택하게 만들듯이,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시편 저자는 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한다. 농부가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릴 때 이 씨가 과연 싹을 내고 자라서 곡식이 될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주심으로써 씨가 잘 자라 곡식이 되고 잘 익어 추수 때에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이다. 농부는 참으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조리며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면 그 남은 많은 포로들도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 즉 포로 귀환은 영적으로 신약시대에 세계복음화의 일을 예표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일은 온 세상에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일을 예표한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한 명의 영혼을 회개시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고 역사하시면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며 전도의 열매가 맺힐 것이며 참된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영혼들의 구원과 참 교회의 건립으로 인해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시편 12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에 포로가 된 자들을 바라보자. 아담의 범죄로 온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죄에 포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십계명에 비추어 볼 때 다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이며 부도덕하다. 그들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헛된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고 악하며 불결하고 거짓되다. 인류는 죄의 포로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육신의 쾌락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허무하고 불쌍하고 죄악된 현실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사모하자.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은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이었다. 하나님 외에 누가 그런 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세상의 창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람들의 구원도 하나님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은혜로 택하시고 아들 예수님의 피로 대속(代贖)하시고 그의 능력으로 불러 회개시키고 믿게 하신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 그들은 온 세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장차 영광의 천국에서 기쁨과 영생을 누릴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눈물로 씨를 뿌리자. 우리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수고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 구원받은 영혼들과 참 교회를 보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127편: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심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본 시편은 솔로몬의 시인데 가정의 건립에 대하여 교훈한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결혼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가정의 행복은 사람에게 매우 기본적인 복이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또 자녀들을 출산해 키우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행복한 요소이다. 그런데 본 시편은 이 가정의 행복이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며 그가 주지 않으시면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다고 말한다.

이 진리는 우리의 삶의 지나간 세월 속에서도 보고 느끼는 일이다. 나는 미국의 이민자들 중에서 십수년 동안 경제적 안정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여 경제적 안정은 어느 정도 얻었으나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하여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외로움을 타고 방황하고 부모는 자녀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고 대화가 단절되어 고민하는 가정을 보았다. 그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민을 왔고 또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돈을 벌었다고 말하지만, 결과는 자녀를 잃어버린 것과 같아 안타까워하였다. 가정적으로는 실패와 같아 보였다. 또 어떤 이들은 물질적 부요는 얻었지만, 무서운 질병의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고, 또 배우자가 외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가정적 행복이 되지 못하는 경우이다. 개인의 가정도 그러하고 한 국가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홀로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며, 또한 만복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하는 것 같아도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빠지면 그의 삶의 행복은 결국 헛되게 된다. 하나님 없는 삶은 행복이 없다.

[2절]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 없는 삶,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함이 없고 섬김이 없고 그의 계명을 알지 못하고 순종함이 없는 삶은 헛수고의 삶이다. 비록 그가 날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로이 일하며 돈을 벌어 음식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에게 성공이나 행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섬기지 않는 것 자체가 근본적 죄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하고 무신론적인 삶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에 그의 명하시는 도덕적인 삶도 살 수 없다. 그는 자기 이익을 따라 양심을 저버리고 도덕성을 저버린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다 행복한 삶을 산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지만,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질병들과 자연적인 늙음과 죽음 말고라도 세상에는 미움, 싸움, 살인, 속임, 배신, 이혼, 가난, 고독 등 불행한 일들이 많다. 이런 수고로운 세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잠은 육신의 건강과 행복에 필수적 요소이다. 보약과 같은 단잠은 수고로운 이 세상의 삶의 여정에서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3절]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세상에 나그네의 삶에서 결혼과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복이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신 기업이며 상급이다. 이 말씀은 자녀의 기원과 소유권과 의미와 양육의 원리를 잘 보인다. 자녀는 부부의 관계 속에서 우연히 생겨진 생명이 아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신론자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의 생명도 하나님의 소유이다. 자녀들도, 부모도 다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거기에 사람의 참 의미와 가치가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우연히 의미 없고 목적 없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높은 뜻 가운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존재이다. 또 거기에 자녀들의 양육 원리도 나타나 있다. 자녀는 부모가 자기 마음대로 키워도 되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으로 키워야 하는 존재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바른 방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기업인 자녀를 키우는 바른 방법이 있다. 부모는 자녀 양육의 방법을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른 방법이 바로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양육해야 한다.

[4-5절]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壯士)의 수중(手中)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본문은 자녀들이 용사의 화살통의 화살같이 많아야 복되다고 말한다. 다산(多産)은 하나님의 복이다. 앞절에서도 자녀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그의 상급이라고 하였는데, 그 사실을 안다면 부모는 자녀들을 많이 가지기를 소원할 것이다. 기업이 확장되고 상을 많이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기피하고 산아제한을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전히 인간적 생각으로 자녀가 하나 둘이면 충분하고 셋 이상을 낳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다산(多産)을 명하시고 권하신다. 다산(多産)은 복이며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또 그는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 후에도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창 9:1). 또 하나님께서는 후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셨고(창 12:2), 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22:17).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으시다.

물론 여러 명의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것이 부모에게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부모들이 근면하게 일하며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함 가운데 바르게 양육한다면 그 자녀들은 잘 자라서 부모에게 큰 기쁨과 위로와 자랑이 될 것이다. 또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교회와 그의 선한 일들 위해서 유익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확실히 다산(多産)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며 복이다.

시편 12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지 않으시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사는 삶, 그를 경외함이 없고 섬김이 없는 삶은 헛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수고로운 세상에서도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단잠을 주신다. 둘째로, 자식은 하나님의 기업과 상급이다. 여기에 자녀의 기원과 소유권과 의미와 양육 원리가 있다. 셋째로, 다산(多産)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며 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함으로써(전 12:13; 신 10:12-13) 헛되지 않는, 복된 가정을 세워기를 사모하고 또 힘써야 한다.


128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 도(道)[길]에 행한다’는 말씀은 ‘그의 교훈대로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의 교훈대로 산다.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에 있다. 시편 1편은 우리가 악을 멀리하고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 때 복되고 형통하다고 말한다.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또 시편 119편의 저자도 1절에서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며(전 12:13) 그런 삶은 복되다.

[2절]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본문은 물질적 복, 즉 물질적 안정과 유여와 형통을 말한다. 물질적 복은 게으름에서 오지 않고 근면과 수고와 더불어 온다. 사람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 곧 수고의 대가를 얻는 것이 복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세상의 일들도--공부나 직업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무슨 일이든지--부지런하게 해야 한다. 게으름은 죄악이다.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에 대해 증거하면서도 이 허무한 세상에서 우리가 수고하면서 물질적 복을 누리는 것에 대해 말했다. 전도서 5:18-19,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나그넷길 같은 인생의 여정에서 수고하고 물질적 소득을 얻어 즐겁게 사는 것이 복이다.

[3-4절]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본문은 가정적 복을 말한다. 본문은 아내를 ‘네 집 내실(內室)에 있는 네 아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바깥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또 본문은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많은 자녀들을 출산하여 기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포도나무에 많은 포도 열매들이 달리듯이, 한 어머니에게 많은 자녀들이 달린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시편 127편에서도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며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했고(3절), 또 젊은 자의 자식은 용사의 손에 화살과 같으며 그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가 복되다고 했다(4-5절). 다산(多産)은 복이다. 본 시편 6절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자는 자식의 자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의 복은 이 땅 위에서 가정의 행복의 요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들은 천국에서도 복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6). 또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교훈하기를,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고 하였다(신 4:39-40). 전도서 9:9도 가정적 복을 말하였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5-6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본문은 교회적 복을 말한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을 말한다. 그곳에는 성전이 있고 거기에는 속죄의 제사의 피가 있다.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하였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시온에서 얻는 복, 예루살렘의 복은 오늘날의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복이며 우리가 속죄 신앙을 가지고 얻는 복이며 성경말씀 안에서 얻는 복이며 참 교회를 통해 얻는 복이다. 그리고 이 복은 장차 영광의 천국의 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요한계시록 21:1-2, 9-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본 시편은 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자의 복을 ‘평강[평안]’의 복이라고 표현한다(6절). 성경에서 ‘평안’이라는 말은 포괄적인 복이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을 뜻한다. 그것은 근심과 슬픔이 없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몸의 건강도 뜻한다. 그것은 몸에 연약이나 질병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물질적 안정을 뜻한다. 그것은 가난하거나 궁핍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사회적 안정을 뜻한다. 그것은 홍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나, 폭력과 테러, 혁명, 암살, 전쟁 등의 사회적 혼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다.


시편 12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교훈대로만 행하는 것은 복된 길이다. 우리가 이렇게 바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복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수고하며 땀을 흘려 일하는 세상에서 수고의 대가를 누릴 것이다. 또 우리가 바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가정적 복도 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현숙한 아내와 복된 자녀들을 주실 것이다. 가정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 우리가 바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적 복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바른 교회, 좋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항상 얻을 것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큰 복이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들은 평안의 복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명령을 들으면 평안이 강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 48:18).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을 것이다(사 48:22).


129편: 시온을 미워하는 자

[1-3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저희가 나의 소시(少時)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 저희가 나의 소시(少時)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시편 저자는,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라고 두 번 반복해 말한다. 또 그는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시초로부터 사사 시대와 열왕 시대에 걸쳐서 이웃 나라들, 즉 서남쪽의 블레셋 사람들의 나라와 동쪽으로 암몬 자손들의 나라와 모압 자손들의 나라, 동남쪽의 에돔 자손들의 나라와 북쪽의 아람 사람들의 나라, 그리고 남쪽의 애굽 나라 등의 침략과 괴롭힘을 당해왔다. 핍박자들의 위협과 핍박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 징계와 고난의 역사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북방의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이 세상의 삶은 고난의 여정이다. 이 세상은 수고롭고 고난이 많은 세상이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자신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의 고난들도 있고 특정한 죄의 징계가 아니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이든지 마귀가 주는 시험의 고난들도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6:33). 사도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행 14:22).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고난과 환난을 경험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우리는 핍박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은 그들을 이기지 못하였다.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서 승리하였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기는 하시지만, 그 고난에서 건져주신다. 그 고난은 그를 멸망시키는 고난이 아니고 오히려 믿음과 인격을 단련시키는 유익한 고난이다.

예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친히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인내하시며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이길 것이다.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승리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하였다(롬 8:35-37).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천국의 복을 누릴 것을 말했는데(계 2:7, 11, 17, 26; 3:5, 12, 21),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이 이길 것을 암시한다.

[4절]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의 줄을 끊으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중에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고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악인들을 공의로 징벌하신다. 세상에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의 핍박의 줄을 끊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7편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라고 말한다(시 7:11-12). 또 시편 58편은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라고 말한다(시 58:10-11).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온 인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을 보게 될 것이다.

[5-8절]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줌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지나가는 자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주위의 이방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시온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 것이며 지붕의 풀같이 마를 것이다. 지붕의 풀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린다. 그런 것은 베는 자의 줌과 묶는 자의 품(혹은 뭇)에 차지 않는다. 그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지나가는 자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시편 12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신약 성도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 고난을 각오하며 살자. 마귀의 시험이 많은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많은 고난과 심지어 핍박을 경험할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를 믿고 또 고난 중에서 승리할 것도 믿자.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공의의 통치자이시며 그를 경외하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우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곧 성경말씀과 그의 교회와 그의 일들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