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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5권 130편 긍휼의 구원을 기다림-150편 각종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영국신사77 2020. 4. 15. 09:38


130편: 긍휼의 구원을 기다림

[1-2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 세상에 비 오는 궂은 날이나 폭풍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있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극심한 날이나 숨막히는 뜨거운 태양볕이 쬐는 날이 있고 또 폭설이 내리는 날이 있듯이,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고난과 환난이 많다. 이런 고난과 환난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에게도 때때로 찾아온다. 그것은 몸의 질병으로 오기도 하고 물질적 궁핍으로 오기도 하며 원수들의 위협으로 오기도 하며 때로는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화재나 폭발 같은 대형사고나 혁명이나 전쟁 같은 사회적 혼란이나 불행으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고난과 환난이든지,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창조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일어나며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섭리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큰 환난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부르짖어 기도한다. 성도가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특권이다. 시편 107편의 저자도 사람이 고난 가운데서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고백한다. 13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19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28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사람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창조자-섭리자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포자기하거나 도리어 허랑방탕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저자는 또한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3절]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사람은 고난 중에 자신의 부족과 죄악됨을 깨닫는다. 많은 경우에 고난이 우리의 부족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책이라는 것은 우리가 양심적으로 아는 일이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시 119:67, 71).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을 감찰하시면 그의 감찰과 심판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멸시하고 싫어하고 행치 않고 배반하는 죄에 대한 징벌로 여러 가지의 고난의 일을 경고하셨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그는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16-17절). 또 그 외에도 가뭄과 들짐승의 공격과 전염병과 양식의 궁핍과 마침내 국가의 멸망과 온 세계에 흩어짐 등의 일들을 경고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왕국 역사에서 이 경고를 그대로 경험하였다. 그들은 멸망했고 온 세계에 흩어졌었다.

[4-8절]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救贖)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救贖)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는 죄의 사유하심이 있고 거기에 죄인들이 피할 길이 있고 죄의 징벌로 받는 고난 중에도 구원의 소망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긍휼의 용서를 체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의지하며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성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며 바란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약속의 말씀을 붙든다. 그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하나님을 더 기다린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救贖)이 있고 그는 자기 백성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救贖)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던 시편 107편은 성도들이 큰 고난 중에 근심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으로 그들을 도우셨음을 반복해서 말하였다(6-9, 13-15, 19-21, 28-31절).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징벌로 유다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이 완전하게 파괴되고 불타버렸을 때에도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애 3:19-22).

시편 13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큰 환난 중에서 낙심치 말고 개인과 세상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며 그의 구원을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환난과 고난을 주신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혹시 죄를 깨달으면 즉시 회개하자.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죄를 버리는 것은 평안의 첫걸음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만 의지하고 우리의 죄의 용서와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하자.

131편: 큰일을 힘쓰지 않음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높지 않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할 것을 교훈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크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여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도 좋지 않지만, 자신을 크게 평가하는 것은 바로 교만한 마음이다. 사람이 열등감을 갖는 것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과 의욕을 상실하여 좋지 않지만, 그래도 그것은 죄는 아니다. 그러나 교만은 큰 죄악이다. 마귀의 죄는 교만의 죄이다. 디모데전서 3:6은 교만을 마귀를 정죄하는 죄라고 말한다. 마귀와 악령들 즉 귀신들은 범죄하고 타락한 천사들이다. 그들의 죄는 교만한 죄이었다. 이와 같이 교만은 죄 중에 근본적인 죄이다.

잠언 6:16-19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 6, 7가지 중 첫 번째로 교만한 눈을 꼽았다.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나타나므로 교만한 눈을 말한 것이다. 잠언 8:13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하였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징벌하실 것을 말하였다. 이사야 2:11-12, 17,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또 예레미야는 모압의 죄와 심판을 말하면서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모압이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했다(렘 48:29, 42).

그러므로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했고(벧전 5:5), 야고보도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했다(약 4:6).

본문에서 시편 저자는 또 자신이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부족을 아는 자는 그런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조수 바룩에게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大事)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렘 45:5). 야고보는, 사람이 어떤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는 계획에 대해 그것은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것이라고 말하며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약 4:13-16).

[2-3절]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저자는 자신이 젖뗀 아이가 어미 품에 있음같이 그의 심령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였다고 말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바른 마음가짐이다. 모든 일은 엄마가 다 하며 어린 아기는 엄마의 품에 있기만 하면 되듯이, 우리는 모든 일을 전능하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맡기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모든 교훈들을 다 믿고 소망하며 힘써 행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62편에서도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라고 말하였다(시 62:1, 9-10).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 . .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 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 . .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2:3-8, 11; 5:7; 12:13).

시편 13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늘 가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요히 섭리자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로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좋은 길이다.

132편: 하나님의 성막을 사모함

[1-5절]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다윗과](KJV, NIV)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다윗과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말한다. 젊은 다윗은 사울 왕의 총애 속에 공직을 시작했으나 10여년간 그의 칼날을 피해 피신 생활을 해야 했고 사울이 전사(戰死)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힘든 과정을 지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시온 성에 모셔오기를 소원하였다(삼하 6:2). 본문은 그가 이 일을 위해 근심하였다고 말한다. 또 그는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그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않고 그의 침상에 오르지 않고 그의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않고 그의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였다. 그는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의 성막을 찾았다. 여기의 성막은 법궤를 위한 성막이었던 것 같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는 사울 시대에 방치되었던 것 같다. 사울도 한번 하나님의 뜻을 묻는 용도로 법궤를 사용하였으나(삼상 14:18) 역대상 13:3에 보면, 사울 때에는 법궤 앞에서 항상 묻지 않았다. 법궤는 기럇 여아림(나무 밭 혹은 삼림의 성이라는 뜻)(예루살렘에서 약 13km 서쪽)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삼상 7:2). 그러나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와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다.

[6-9절]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다윗은 드디어 하나님의 법궤를 찾았다. 그는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곳의 나무 밭에서[삼림의 땅에서](KJV) 혹은 야알의 땅에서(NASB, NIV) 그것을 발견하였다. 다윗은 법궤를 찾았고 유다에 속한 기럇 여아림[삼림의 성]으로부터 다윗 성으로 그것을 옮겨왔다(삼하 6:2; 대상 13:6). 그러나 다윗은 황폐해진 실로에 있었을(수 18:1; 삿 18:31; 삼상 1:3; 2:32; 4:3) 모세의 성막 자체를 옮겨온 것 같지 않다. 역대하 1:3-5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시대에 모세의 성막과 번제단은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고 증거한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약 10km 북쪽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라고 말하였고 또 “주의 제사장들은 의(義)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라고 말했다. 제사장들의 제사는 죄사함과 의를 상징한다. 제사는 의의 제사이다. 또 거기에 성도의 즐거움도 있었다.

[10-12절]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혹은 ‘다윗 때문에’]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본 시편의 저자는--아마 솔로몬일지 모름--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아들을 그의 위에 두며 그의 후손도 영원히 그의 위에 앉으리라고 맹세하신 것을 지키시기를 간구한다. 물론 그 언약과 맹세는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교훈하신 바를 지킨다는 조건 아래서 맺어진 것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적 의무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13-15절]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다윗이 법궤를 시온 성에 옮겨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셨다. 그는 시온을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 식료품의 풍족한 복, 즉 물질적 유여의 복을 주기를 원하셨다. 그는 사람의 삶의 기본적 요소인 육신의 양식을 풍족하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16-18절]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시고 그 성도들이 즐거움으로 그를 찬송하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복, 곧 구원과 그 기쁨을 가리킨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뿔이 나게 하시고 등을 예비하실 것이다. 뿔은 힘을 가리키는 말로 능력의 구주이신 메시아를 가리킨 것 같고, 등은 지식과 의, 기쁨과 행복을 가리킬 것이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능력의 구주이시며 우리의 의와 기쁨이시다. 원수들은 수치를 입을 것이나 메시아에게는 승리와 영광이 있을 것이다.

시편 13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광야 같은, 고난이 많은 세상의 여정에서 법궤 중심, 성막 중심의 삶을 살자. 구약 시대의 법궤와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 그리고 신약교회를 상징한다. 신약 시대에 법궤 중심, 성막 중심의 삶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를 굳게 믿고 그의 말씀과 그의 몸된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이며, 또 하나님의 교훈 곧 성경교훈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힘쓰자. 거기에 의와 기쁨과 평안의 복이 있다.

133편: 형제가 동거함이 아름다움

[1절]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는 한 부모에게서 난 자녀들을 말한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들, 곧 영적인 형제들이다(고전 5:1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좋으나,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쟁하고 분리한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 곧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은 살인죄가 된다. 요한일서 3:14-1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생각의 일치가 필요하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뜻이 서로 합하지 못하면 동거하기 힘들다. 둘째, 겸손과 온유의 덕이 필요하다. 교만은 분열의 원인이다(빌 2:2-3). 셋째,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교훈하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본을 보이셨는데, 그것은 서로 상대의 부족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상대의 부족을 용서함이 없이는 서로 사랑할 수 없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선하고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원어(나임 םי������������)는 ‘사랑스럽다, 기쁘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미워하고 다투고 분열하는 것은 보기 흉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지만, 서로 이해하고 연합하는 것은 아름답고 기쁜 일이다. 사람에게는 의리와 정과 사랑이 있다. 개도 주인에 대해서나 자기 친구에 대해 의리와 정과 사랑이 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족 간에나 친구나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고 돕고 위하는 것은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2-3절]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본 시편 저자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대제사장 아론의 임직식 때에 머리에 붓는 보배로운 관유가 흘러 수염을 적시고 그 옷깃까지 내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였다. 그 관유는 지극히 향기로운 기름이다. 출애굽기 29장에 보면, 모세는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울 때에 회막 문으로 그를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속옷, 에봇[조끼] 받침 겉옷, 에봇[조끼]을 입히고, 흉패를 붙이고 머리에 관을 씌우고 관유를 그 머리에 부으며 발라야 하였다(출 29:1-9). 레위기 8:12는 모세가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케 했다고 기록한다. 대제사장의 임직식에 사용되는 관유는, 출애굽기 30장에 보면, 품질이 좋은 액체 몰약 500세겔과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250세겔과 계피 500세겔을 감람 기름 한 힌에 섞어 거룩한 관유를 만들었다. 1세겔은 10g이며 1힌은 약 4kg이다. 관유는 지극히 거룩한 기름이므로 사람이 자기 몸에 사용하려고 이런 기름을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출 30:22-33). 대제사장의 임직식 때 사람들은 관유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이와 같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또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표현한다. 헐몬은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에 있는 높은 산들의 지역이다. 높은 산들은 새벽마다 이슬들이 많이 내릴 것이다. 그 이슬들은 초목들에게는 수분을 공급하는 복이 된다. 이와 같이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이 광야 같은 세상, 나그넷길을 걷는 동안 서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윗은 특히 성도들이 교제하는 시온에는 하나님의 영생의 복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복을 말할 때 오래 사는 것을 말하며 불노장생(不老長生)을 갈망하고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만수무강이나 불노장생이 없다. 영생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복이며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복이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1:2에서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을 죽는 자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몸의 죽음은 사람의 죄 때문에 왔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은혜의 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천국은 영생의 나라이다. 거기에선 결혼관계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선 우정과 사랑이 넘치는 친구 관계만 있을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질투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4-5). 이 사랑은 영원하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덕은 사랑이며(롬 13:10; 고전 13:13) 천국에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이다.

시편 13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분쟁하지 말고 사랑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며 동거하는 자들이 되자. 그것은 우리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서로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교회는 참으로 이 세상의 여정에서 피곤하고 지친 영혼들의 쉼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받은 자들로서 장차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이다.

134편: 밤에 성소에서 하나님을 송축함

[1절]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밤은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는 몸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지만,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는 순번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이다. 출애굽기 2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출 27:20-21). ‘간검한다’는 원어(야라크)는 ‘정돈한다, 준비한다’는 뜻이다. 제사장들은 성소 안에서 밤새도록 그 등불을 정돈하고 지켜야 했다. 그때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 ‘송축한다’는 말은 찬송하고 높이며 영광 돌린다는 뜻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상징하였다. 또 신약성도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다(벧전 2: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19-20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교훈했고, 또 히브리서 13:15에서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교훈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속죄사역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2절]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라는 원어(코데쉬)는 ‘거룩함’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성소에서’(KJV, NIV)나 ‘성소를 향하여’(LXX, Vg, NASB)라는 번역보다 ‘거룩함으로’(Targum)라는 번역이 더 좋다고 생각된다. 본문은 “거룩함으로 너희의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뜻일 것이다. 손을 드는 것은 간절함과 진심을 나타낸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사람은 손으로 죄를 많이 짓는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한다(4:8). 우리는 더러운 손을 씻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3절]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으로 온 우주와 세상, 곧 존재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창조자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예레미야 10:10-16,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창조자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복의 근원이시다. 시편 저자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라고 말한다. 시온 산은 성전이 있는 곳, 곧 하나님의 언약과 속죄가 있는 곳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우리가 받을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하나님의 은혜 언약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렇게 축복해야 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3-2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육의 모든 좋은 것을 주셨고 또 더 주실 것이다.

시편 13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신약 성도는 제사장으로 낮에도 밤에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거룩한 손을 들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찬송하며 감사하자.

둘째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자녀 됨과 영생과 기쁨과 평안을 주셨고 또한 영육의 모든 좋은 것들을 세상 끝날까지, 아니 영원토록 주실 것이다.

135편: 살아계신 주권자 하나님을 찬송함

[1-4절]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殿庭)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아름다우심이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할렐루야’라는 원어에서, ‘할렐루’는 “너희는 찬양하라”는 뜻이고, ‘야’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의 줄인 말이다. 즉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종들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 뜰에 섰는 자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려 성전 뜰에 모인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가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원어(나임)는 ‘사랑스럽다, 기쁘다’라는 뜻이다. 죄인들을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는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기쁜 일이다.

시편 저자는 또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해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유’라는 원어(세굴라)는 ‘특별한 보화’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시대에 예수님 믿는 자들을 선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광을 위해 그들을 택하셨고 특별한 보화로 삼으셨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주셨다.

[5-14절] [이는]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광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보다 높으시도다[높으심이로다].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안개를 땅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저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 징조와 기사를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복에게 임하게 하셨도다. 저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리로다[여기심이로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위대하시며 세상의 모든 신보다 크심을 알기 때문에 찬송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사랑의 풍성함을 무엇에다 비교할 수 있으랴!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신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끝없이 넓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것을 다스리신다. 또 여호와께서는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다. 그는 살아계셔서 그의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신다. 그의 섭리에서 제외된 일은 없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는 안개를 땅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신다. 그는 안개와 비와 바람, 즉 자연 세계를 주장하신다. 그는 그의 기쁘신 뜻 가운데 그것들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또 그것들을 물러가게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인간 세계를 주관하신다. 그는 이전에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 땅에 징조와 기사를 보내셔서 바로와 그 모든 신복들에게 임하게 하셨었다.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대항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마지막 재앙으로 모든 사람들의 장자들과 모든 짐승들의 첫 새끼들, 특히 애굽 왕 바로의 장자까지 다 죽이셨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뿐 아니라, 또한 모든 이방 나라들도 다스리신다. 그는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다. 그는 아모리인들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들을 죽이셨고 그들의 땅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시고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계 열국을 다스리시는 한 증거이었다. 그는 온 세상과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하시며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특별히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와 허물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징벌하시지만, 또한 그들을 긍휼로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찬송해야 한다.

[15-18절]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氣息)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시편 저자는 열방의 우상이 헛됨을 증거한다.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들이다. 그것은 사람이 나무나 돌로 깎거나 다듬어 만든 다음 금이나 은을 입힌 것들이다. 그것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호흡의 기운도 없다. 그것들은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만든 자들과 그것들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그와 같이 허무하게 될 것이다. 시편 115편도 우상은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내지 못한다고 말하였다(시 115:6-7). 우상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들은 허무하다. 그것들은 실상 속임수에 불과하다.

[19-21절]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레위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예루살렘에 거하신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이라고 본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신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영원자존하신 참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는 생명 없는 우상들과 다르시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 족속아,” “아론의 족속아,” “레위 족속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말한다. ‘송축하라’(bless)(KJV, NASB)는 원어(바라쿠 וּכ������������)는 ‘무릎을 꿇고 송축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BDB).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특히 “예루살렘에 거하신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라고 말한다. 시온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예표한다(요 2:21; 고전 3:16).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13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종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아름다우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고 주권적 섭리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찬송해야 한다. 그는 자연만물을 다스리고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헛되다. 돈도 권력도 육신적 쾌락도 헛되다. 우리는 살아계신 창조자, 섭리자 참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송축하고 믿고 순종하자.

136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함

[1-3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는 원어(호두 וּדוֹה)는 ‘찬송하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영원자존(自存)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이시다. 그는 참된 신이시며 실상 유일한 신이시고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저자는 본 시편 전체에서 그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여호와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의 모든 행위에서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깨닫는 성도들은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4-9절]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서는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이한 일(기사 奇事)을 행하시는 자”라고 표현한다(출 15:11; 욥 5:9; 시 72:14; 77:14; 86:10). 그의 창조 사역이 그 사실을 증거하며 그의 섭리 사역, 특히 이스라엘을 향하신 그의 사역이 그것을 증거한다. 우리의 짧은 삶도 그의 기이한 손길을 체험한다.

그는 지혜로 하늘을 지으셨다.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1000억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 있고 그 직경은 약 10만 광년의 거리라고 한다. 그것은 약 9조 킬로미터의 10만배이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로 이 광대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우리를 위해 만드셨다.

또 그는 땅을 물 위에 펴셨다. 지구는 큰 공과 같은데, 바다가 약 70퍼센트이며 육지가 약 30퍼센트라고 한다. 땅은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산인데 높이가 8,848미터이며 가장 깊은 바다는 태평양의 괌 남서쪽 마리아나 해구인데 깊이가 약 11,000미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대한 바다들과 대륙들을 우리를 위해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큰 빛들을 우리를 위해 지으셨고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태양은 지구보다 약 109배 더 크며 가스가 불타는 불덩이이다. 그 표면 온도는 약 5,500도이며 그 중심 온도는 약 1,500만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태양은 지구로부터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지구를 밝고 따뜻하게 만든다. 달은 지구의 4분의 1정도의 크기로서 빛을 반사하여 밤에 지구를 은은하게 비친다. 별들은 주로 가스 뭉치로서 우주에는 약 2억조 개 이상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10-15절]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심한 고역과 학대로부터 건져내셨다. 그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열 번째 재앙, 즉 애굽 왕의 장자를 비롯해 모든 사람의 장자와 모든 짐승의 첫 새끼까지 죽는 재앙을 통해 애굽 왕 바로는 비로소 하나님께 굴복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친히 인도하여 내셨던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셨고 바로와 그 군대는 홍해에 엎드러지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가 자기 백성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그들을 구원하신 후에도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을 생생하게 나타내신 사건이었다. 만일 애굽 군대가 홍해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좇아와서 그들을 죽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과 홍해를 통과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돌아보신 일이었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난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고 인도하셨으며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게 하셨다.

[16-22절]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광야는 물이 없고 사람들과 가축들이 살기 어렵고 여러 가지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자신들의 부족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낮추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고 그들로 광야를 잘 통과하게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큰 왕들을 치셨고 유명한 왕들을 죽이셨다. 그는 특히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셨고 바산 왕 옥을 죽이셨다. 바산 왕 옥 같은 이는 거인 족속의 남은 자로서 그의 철 침상은 길이가 약 4미터나 되었다(신 3:1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도우심으로 그 왕들을 이겼다.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땅의 참 소유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레 25:23). 땅의 참 주인이신 그가 그 땅 원주민들의 우상숭배와 음란 때문에 그 땅을 빼앗아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것이다.

[23-26절]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기억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비천한 데서 기억하셨다. ‘기념한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뜻이다. 또 그는 그들을 그들의 대적에게서 건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비천한 데 처해 있었을 때, 즉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을 때나 하나님의 징벌로 이웃 나라의 지배를 받아 학대를 당했을 때, 그들을 기억하셨고 그들을 그 대적에게서 건져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수들의 지배와 학대로부터 빠져나올 힘이 없었을 때에 그들을 도우셨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것이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든 육체에게 먹을것들을 주신다.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며 들의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백성에게 먹을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26-32). 욥기 38:41은 하나님께서 까마귀 새끼가 그를 향해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 오락가락할 때 그것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신다고 말했다. 시편 104편은 하나님께서 들짐승이나 물고기 등 모든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고 말했다(시 104:27-28).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땅 위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분이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다. 그는 하늘 보좌에서 땅의 모든 일들을 그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13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들을 바로 알고 그의 선하심과 그의 인자하심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신들과 우상들이 많이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며 오직 그 분만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참 소유자이시며 주인이시다. 또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시다. 그는 그의 창조와 그의 섭리의 일들에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자이시다.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그의 일들은 놀랍고 신기하다. 그는 그가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을 그 학대받던 애굽으로부터 그의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내셨다. 그는 그들로 홍해를 통과케 하셨고 뒤따르던 애굽 군대를 죽이셨고 광야를 통과케 하셨고 요단강 동편의 땅과 가나안 땅의 왕들을 다 멸하셨다. 그는 그들이 어려울 때마다 그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 사역으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또 우리는 창조자와 섭리자와 구주이신 하나님만 믿고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

137편: 시온을 가장 사랑함

[1-4절]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온 곧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찬양과 기도가 있는 곳이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우상들을 섬기며 서로 미워하고 의인들의 피를 흘리고 서로 속이는 등 많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왕이 포로로 잡혀가고 두 눈이 뽑히고 죽임을 당하고 결국 나라가 망하여 백성들이 온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의 강변들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신약교회와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서로 미워하고 음란하고 죄만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실 것이며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기도하며 성경 강해를 듣는 일을 더 이상 자유로이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옛날을 기억하며 울지도 모른다. 아모스 8: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씀하셨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은 버드나무에 그들의 수금을 걸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을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그들에게 노래를 청하며 그들을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노래’ 즉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이방인들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를 수 없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은 언제나 부를 수 있으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노래로 그것을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찬송과 노래는 사람의 기쁨과 만족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기쁘심과 만족을 위하여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계 4:11; 5:12-13).

[5-6절]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편 저자는 예루살렘 성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그의 오른손의 재주, 즉 그의 음악적 재능과 기술, 그의 악기 연주의 재주도, 그리고 그의 노래의 목소리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만 드려지기를 원한다. 만일 그가 예루살렘 성을 잊어버리거나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의 혀가 그의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그의 참된 경건을 잘 증거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에서의 예배와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책의 가치와 성경 강해의 소중함을 얼마나 인식하고 사모하는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는가? 과연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는가? 과연 하나님과 성경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가? 과연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일들이 참으로 귀하고 사랑스러운가?

[7-9절]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멸망할 바벨론의 딸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有福)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有福)하리로다.

유다 나라는 주전 605년경 여호야김 왕의 때, 주전 597년경 여호야긴 왕의 때, 주전 586년경 시드기야 왕의 때, 이렇게 세 차례 바벨론에게 굴복하였고 마침내 완전히 멸망케 되었다. 그것은 유다 백성의 많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과 사촌 간인 에돔 자손들은 유다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무정하게 저주하였다. 또 그때 바벨론 사람들은 유다 백성의 어린것들을 바위돌 위에 메어쳤다. 그들은 거칠고 인정이 없었다. 어린것들은 죽기도 하고 불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 날을 기억하시고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사람의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전도서 12:14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하였고, 로마서 2:6-8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말자. 구약교회가 범죄했다가 멸망한 것같이, 신약교회도 범죄하면 멸망할 것이다. 참으로 중생한 자는 계속 범죄치 않는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 즉 교회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며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하자.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성도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신다. 우리는 교회와 성도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힘쓰자.

138편: 간구하는 날에 응답하심

[1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본 시편은 다윗의 시이다. 다윗은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형식적으로나 반심(半心)으로 적당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전심(全心)으로, 마음을 다하여 감사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경건이다. 그는 또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신들’이라는 말은 천사들(LXX, Vg, 칼빈)이나 왕들(Targ, Syr, 델리취)을 가리킬 수 있으나, 그보다 이방신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헹스텐버그, JFB).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모든 신들보다 크신 하나님이시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2절]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다윗은 또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한다”고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 곧 성막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법궤와 속죄소, 곧 속죄의 피 뿌림이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표가 있었다.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장 높이고 사랑하며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집을 중요하게 여기며 성전 중심의 생활을 힘쓴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감사의 이유를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해 좀더 설명한다. 그것은 주께서 그의 말씀을 그의 모든 이름 위에(KJV) 혹은 이름대로(NASB) 높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들은 그의 능력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역사에서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에 그의 말씀을 밝히 증거하셨다. 그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때로 그러하신다.

[3절]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특히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그가 응답하시고 그 영혼을 격려하시고 강하게 하신 일을 체험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고난 중에 심령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받음으로 심령에 힘을 얻게 된다.

[4-5절] 여호와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주의 입의 말씀을 들을 때에 주께 감사하리이다](KJV, NASB)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다윗은 땅의 모든 왕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들을 것이기 때문에 혹은 그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왕들은 보통 백성에게서 감사와 칭송을 받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과 영생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일반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왕들도 그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이다.

다윗은 또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크신 영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기적들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의 광채가 복음 안에 비친다(고후 4:4). 사도 바울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치셨느니라”고 말하였다(고후 4:6).

[6절]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떠 있는 별들보다 더 높이, 더 멀리 계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낮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 특히 죄로 인해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비천한 인생들을 돌아보시며 도우시고 구원하시고 위로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한 교만한 자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웃 사람을 무시하는 자들도 아신다. 그는 악한 자들의 교만한 마음과 악한 말들과 행실들을 보시고 들으시고 판단하시고 그것들을 미워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7절]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신다”고 말한다. ‘소성케 한다’는 원어는 ‘소성케 한다’는 뜻도 있고 ‘계속 살게 한다, 생명을 보존한다’는 뜻도 있다(BDB, NIV). 성도는 환난 중에 낙망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위로 격려하시며 새 힘을 주시고, 또 때로는 죽음의 위기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지키시고 그 생명을 보존하시며 계속 살게 하신다.

다윗은 또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이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성도들의 삶에 개입하시고 도우신다. 그는 그 손으로 성도의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고 그들이 성도를 위협하거나 비방하거나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또 그는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그를 그 환난과 위기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8절]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다윗은 또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고 말한다. ‘내게 관계된 것’이라는 원어(바아디 י������������������)는 ‘나를 위하여’라는 뜻으로 ‘나를 위하신 그의 뜻’(NIV)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계된 일, 우리를 위해 작정하신 바, 우리를 위한 그의 선하신 뜻을 다 이루실 것이다. 우리에게 관계된 모든 일은 합력해 선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다윗은 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우리는 죄가 있고 흠과 점이 있는 부족한 인생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인자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공급하시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죽은 후에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시편 13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 간구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신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때 하나님을 부르는 자는 그를 만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그를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 혹시 우리가 어떤 부족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부족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구할 때 그는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신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셔서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능력의 말씀이다. 거기에 구원의 약속과 구원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고 구원의 능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환난 중에 받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과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일마다, 시시때때로 교회에 모여 이 세상의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를 더욱 찬송하며 감사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

139편: 하나님의 전지하심

[1-2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감찰’은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세히 살피신다. ‘앉고 일어섬’은 육신의 활동을, ‘생각’은 영혼의 활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활동을 다 아실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활동 즉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향 등 우리의 내면의 활동도 다 아신다. 그는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4:12-13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했다.

[3-4절]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내 혀에 말이 없을 때(말이 있기 전에) 주께서 그것을 다 아시나이다](KJV, NASB, NIV).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과 눕는 것, 곧 우리의 활동들과 쉬는 것까지도 감찰하신다. ‘감찰한다’는 원어(자라 ה������������)는 ‘체질한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를, 우리의 쉬는 시간까지도, 마치 체질하듯이 자세히 살피신다. 인간은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산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말하기 전에도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신다.

[5-6절]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감싸 안으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신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이 지식은 얼마나 놀라운 지식인가. 누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7절]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즉 그는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예레미야 23:24에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신다. 그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또 우리 안에 계신다.

[8절]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거기도 계신다. 그는 오바댜 선지자를 통해 오바댜 1:4에서,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깊은 바다 속에 던지웠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도 계신다. 선지자 요나는 요나서 2:2에서, “내가 스올[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고 고백하였다.

[9-10절]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새벽 날개’는 새가 날아오듯이 빠르게 오는 새벽빛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우리가 바다 끝으로 날아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도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도 그의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드실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어디에서도, 아니 우주의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 밖에 있지 않다.

[11-12절]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들을 다 아시는 자이시다(단 2:22). 사람은 어두운 곳에 숨어 있으면 찾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어두움과 빛이 일반이다. 세상에서 사람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 그러므로 욥기 34:22는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말했다. 전도서 12:14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2:16에서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고 말하였다.

[13-14절]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사람의 몸은 수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 약 2백만개의 세포가 낡아지고 교체된다고 한다. 사람은 200개 이상의 뼈들과 600개 이상의 근육들로 구성되어 있고, 뇌, 심장, 폐, 위, 간, 창자, 쓸개, 신장 등의 기관들이 있다. 뇌는 80억개 이상의 세포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심장은 매일 쉬지 않고 약 10만 번의 수축운동을 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몸은 참으로 신비한 조직체이다.

[15-16절]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모태에서의 우리의 존재의 시작부터 다 아신다. ‘나의 형질이 이루기 전에’라는 원어(골미 י������������������)는 ‘나의 태아’라는 뜻이다. 그는 우리의 태아를 다 보셨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삶을 다 책에 기록하시듯이 작정하셨다. 그는 창세 전에 우리의 날들을 다 작정하셨고 다 아셨다.

[17-18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생과 성장, 구원과 봉사의 모든 부분을 다 작정하셨고 섭리하신다. 우리는 그 일들을 다 셀 수 없고 그 지식은 우리에게 참으로 보배롭다. 특히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었다는 사실은 보배로운 사실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또 죽음을 맞을 때에도, 또 죽은 후에도, 그리고 부활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19-20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악인은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하나님께 대해 악하게 말하는 자,’ ‘그를 미워하는 자,’ ‘그를 치러 일어나는 자’로 묘사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고 엄위하신 심판자이시다. 그는 악인들의 악행을 벌하시고 그들을 죽이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요한계시록 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1-22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다윗은 악인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싫어한다. 악인들은 그의 원수들이다. 성도는 악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전도하고 선을 베풀 수 있으나, 그들의 악을 인정하고 용납하거나 그들과 친근히 교제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이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다.

[23-24절]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것은 다윗의 담대한 고백이며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신다. 평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바르게 살고자 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려움을 가질 것이다. 평소에 바로 산 자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길’은 ‘영생의 길’을 가리킨다고 본다. 성도는 진실한 믿음과 순종 속에서 구원과 영생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아신다. 그는 전지(全知)하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의 모든 날들을 다 작정하셨다. 또 그가 우리의 몸을 다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서 숨기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뜻을 바르게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다 죽이시고 공의로 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성도들은 영생의 복을 얻을 것이다.

140편: 악인에게서 건지소서

[1-5절]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저희가 중심에 해하기를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셀라).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는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셀라).

다윗은 악인에게서 그를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호소한다. 악인은 강포한 자이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거칠다. 그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그들은 남을 해치려고 중심에 꾀하고, 싸우기 위해 매일 모인다. 그들은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며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다. 그들은 교만한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높인다. 또 그들은 성도의 걸음을 밀치려 하며 그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둔다. 남 앞에 올무와 함정을 놓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다윗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그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그를 도우시고 건져주시고 그를 지켜주실 것이다.

[6-8절]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며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가 자고(自高)할까 하나이다(셀라).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겼다. 그는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였고 그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려 하였다. 그것이 참된 경건이며 믿음이다. 선지자 엘리야도 아합 왕에게 하나님을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라고 표현하였다(왕상 17:1).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단 6:16, 20)이라고 불렀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불렀다(행 27:23). 엘리야나 다니엘이나 바울은 다 하나님을 늘 섬기는 경건한 자들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과거의 체험을 말한다. 그는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윗이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 등과의 전쟁에서 체험한 바이었다(삼하 8장).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위험에서 그의 목숨을 지켜주셨다. 그는 능력으로 그를 지켜주셨다. 다윗의 과거의 체험은 그의 현재와 미래의 안전과 보호를 보증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었다.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며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가 자고할까 하나이다.” 악인들의 소원과 악한 꾀는 성도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해치고 죽이려는 것이며 그 소원과 그 꾀가 이루어지면 그들은 더욱 자신들을 높일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아룀으로써 대처하였다. 어려운 현실에서 기도는 성도의 최선의 대처 방법이다.

[9-11절] 나를 에우는 자가 그 머리를 들 때에 저희 입술의 해(害)가 저희를 덮게 하소서. 뜨거운 숯불이 저희에게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저희로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악담하는 자는 세상에서 굳게 서지 못하며 강포한 자에게는 재앙이 따라서 패망케 하리이다.

악인들은 입술의 해(害), 즉 남에 대한 비난과 저주와 악담을 일삼는다. 악인들과 의인들은 말부터 다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교훈했다(엡 4:29). 악인들의 악한 말은 자기에게 해가 된다. 잠언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시편 7:16, “[악인들의] 그 잔해(殘害)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악인들에게 불의 징벌이 있다는 것은 성경 진리이다. 시편 11:6은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악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악인들, 즉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은 증거한다(계 21:8).

또 이웃에게 악담하는 강포한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여 결국 멸망케 된다는 것도 성경의 진리이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것이며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시 1:4, 6). 잠언 12:21은,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고 말하였고, 잠언 13:21은,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고 말했다.

[12-13절]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伸寃)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때때로 악인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비난과 따돌림, 부당한 대우와 핍박을 당하며 또 경제적 어려움도 당한다. 사도 바울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욕과 핍박과 비방을 당하였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말했다(고전 4:11-13). 히브리서는 증거하기를, 어떤 이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말했다(히 11:3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공의로 처리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고난 당하는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는 무조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공의로 처리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환난을 주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자들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살후 1:6-9).

마침내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는 것은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때문이다. 성도는 고난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거할 것이다. 의인과 악인은 마지막이 다를 것이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시편 125: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편 14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에는 악인들이 많고 악인들의 악한 계획, 올무, 함정도 많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받음으로 그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을 경험한다. 기도는 성도가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사는 비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해치려는 악인들의 악한 꾀를 폐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고 건져주신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악인들의 악에 대해 엄하게 다스리시며 벌하실 것이다. 그것은 두렵고 무서운 벌이며 재앙이다. 그 마지막 벌은 주께서 밝히 증거하신 영원한 지옥 불못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악인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고 악하고 강포하며 이웃 사람을 해치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유하고 겸손하며 화평하고 선하게 산다.

141편: 악인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2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의 음성을 들으시고 속히 그에게 오시기를 구하였다. 기도는 성도에게 짐이 아니고 특권이다. 기도는 특히 성도가 환난과 궁핍과 위험을 당할 때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께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그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였다. 성도의 기도들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향을 피움과 같다. 성도의 찬송과 감사, 죄의 고백, 선한 소원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내용들이다. 또 성도의 기도는 저녁 제사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저녁마다 어린양을 번제로 드리되 소제와 전제와 함께 드려야 하였다(출 29:38-42). 그것은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을 상징한다.

[3-4절]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珍羞)를 먹지 말게 하소서.

다윗은 선한 말만 하도록 그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며 또 악한 자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먹고 악한 일을 함께하지 않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나쁜 마음에서 나쁜 말과 나쁜 행실이 나온다. 또 잘못된 교제는 사람의 마음을 부패시킨다. 우리는 나쁜 말과 나쁜 행실을 버리고 나쁜 교제도 피해야 한다.

[5절]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다윗은 의인이 그를 치거나 책망한다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며 그것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 거절치 않겠다고 말한다.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의 충고와 책망을 들으려 하지 않지만,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남의 충고와 책망을 달게 듣는다. 잠언 25:12는,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의로운 자의 책망을 감사하게 받는 것이 좋다.

다윗은 또 재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저희’가 의인들인지 악인들인지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성도는 재난 중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원수까지라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6-7절] 저희의 관장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지웠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같이 우리의 해골이 음부[무덤] 문에 흩어졌도다.

악인들은 지금 형통한 것 같으나 장차 하나님께서 그들을 재난에 던지시고 그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때, 그들은 늦게나마 깨닫고 다윗의 말을 달게 들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들의 극심한 고난을 표현하기를, 흙을 부서뜨림같이 우리의 해골이 무덤 문에 흩어졌다고 하였다. 그들은 죽은 자들과 같았고 다시 살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에스겔의 환상 중에 본 골짜기의 많은 마른 뼈들이 살아남같이(겔 37:1-10), 하나님께서 하시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8-10절]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나를 지키사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행악자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는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다윗은 절망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에게 피한다. 하나님 안에는 구원과 보호와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하는 영혼을 빈궁한 대로 낭패하거나 죽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악인들은 다윗 앞에 은밀한 올무와 함정을 설치하여 그로 큰 낭패를 당하게 하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악인의 올무와 함정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체험한다. 하나님 없이 살거나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것은 믿음이 아니요 실패하는 길이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를 따라가면 승리할 것이다.

다윗은 또 악인이 자기의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그는 온전히 면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악인은 자기가 쳐 놓은 그물에 자신이 걸릴 것이다. 시편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시편 57:6,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 성경에는 그런 예들이 있다. 에스더서에 보면, 파사 왕의 신임을 받던 악한 신하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 설치한 높은 장대에 자신이 달려 죽임을 당하였다(에 7:10). 또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의 동료 총리들과 방백들은 다니엘을 던져 넣어 죽이려 했던 사자굴에 자신들과 자신의 처자들이 던지워 죽임을 당했다(단 6:24).

우리는 분향함같이 늘 기도하고 특히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하자. 또 우리는 우리의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 말이나 먹는 것을 조심하자. 우리는 선한 말을 하고 선한 교제만 하고 선한 일만 하기를 힘쓰자.

또 우리는 의인의 충고와 책망을 달게 듣는 자가 되고 또 피차 권면하는 자들이 되자.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11,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악인들의 올무로부터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며 기도하자. 하나님 안에 보호와 구원과 영생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절망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여건 속에서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믿고 구하자.

142편: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1절]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요 믿음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그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는 특권이다. 주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는 기도 응답의 약속을 주셨다(마 7:7).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되, 소리내어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했다. 때때로 우리의 심정은 묵상 기도로 만족지 않고 소리내어 부르짖어 간구하게 된다.

[2-4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우리는 특히 어렵고 답답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다윗은 그의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하며 그의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였다. 그는 심령이 상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의 원수들은 그의 길에 올무를 숨겼고, 그에게는 그를 아는 자도, 그의 피난처도, 그의 영혼을 돌아보는 자, 즉 그를 도울 자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였음을 뜻한다. 그 믿음이 그로 기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자는 하나님께 힘있는 기도를 올릴 것이다.

[5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라고 고백하였다. 사람이 환난 중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참된 믿음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모든 일을 섭리하심을 믿는 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시편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다윗은 또 하나님을 그의 분깃이라고 고백하였다. ‘분깃’은 ‘기업, 몫’이라는 뜻이다. 또 그것은 ‘만족, 행복’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아론 자손들인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서 기업과 분깃을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소득의 십일조와 각종 제물들을 받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업이 되시고 분깃이 되셨다(민 18:20; 수 13:33). 그러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경건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기업과 분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기업과 분깃으로 삼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보화이시며 그들의 행복과 만족이셨다. 시편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편 119: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6-7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심히 비천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피난 생활로 인해 육신적으로, 환경적으로 심히 낮아져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아무리 부모에게 귀한 자식이라도 중한 병이 들었거나 물질적 궁핍 속에 여러 날 처하면 매우 비천해질 것이다.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자기보다 강한 자라고 표현한다. 그를 죽이려 했던 사울 왕은 그보다 강한 자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옥에 갇혀 있다고 표현한다. 그가 지금 심히 부자유스럽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도 확신한다. 그는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너그러이 대하실 것이며 의인들이 그를 두르며 그와 함께 기뻐하게 하실 것이다.

시편 14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는 때때로 어려운 현실에 처한다. 다윗은 원통한 현실에 처했고 그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있었다. 원수들은 그에게 올무를 놓아 그를 넘어뜨리려 했고 그에게는 피할 곳이 없었고 그를 도울 자도 없었다. 그는 심히 비천해졌다. 핍박자는 그를 핍박했다. 그는 옥에 갇힌 것과 같았다. 우리에게도 그런 어려운 현실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현실에서 낙심치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와 분깃으로 여기자. 다윗은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와 분깃으로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피난처이시다. 또 그는 모든 성도들에게 기업과 분깃이 되신다. 구약시대에 레위 지파뿐 아니라, 시편 73편의 저자 같은 경건한 성도들은 다 그러하였다.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는 땅의 헛된 것들을 사랑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업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평안, 건강, 돈, 기쁨, 행복을 주실 수 있고 내세에서 천국과 영생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의 특권이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께 인격적인 대화의 기도를 하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때때로 소리내어 부르짖어 간구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어려운 현실에서 건져주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실 것이다.

143편: 원수의 극심한 핍박에서 건지소서

[1-2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그러나]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호소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께서 인격적 신이심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다윗은 시편 65:2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실과 의에 호소하며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시고 의로우시며 그의 공의대로 행하는 자이심을 인정한다. 그의 기도는 평소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자 힘쓴 성도가 아니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불의에 대하여 공의로 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의 심판에 호소하는 것이 아님을 부언(附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3-6절]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다윗은 지금 원수의 핍박을 받고 있다. 다윗의 원수는 그의 영혼을 핍박하며 그의 생명을 땅에 엎어 그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어두운 곳에 거하게 했다. 다윗은 심령의 상함과 참담함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심적으로 고통 속에 있고 육신적으로도 죽음의 위험 속에 있다. 그러나 그는 옛날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사모한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억하며 오늘도 그를 위해 역사하실 것을 사모하며 기대한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그 영혼이 마른 땅같이 하나님을 사모한다.

[7-8절]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다윗은 이런 고난 중에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사모하며 기도한다. 그의 영혼은 피곤하고 그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은 지경에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마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아침에 하나님의 인자하신 응답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다닐 길을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한다. 다윗은 시편 50편에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시 50:15).

[9-10절]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안전한] 땅에 인도하소서.

다윗은 지금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그 원수들로부터 그를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는 그 원수들의 공격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여 숨어 있다. 그것은 그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쳐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여야 한다. 모세는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했다(신 10:12-13). 미가 선지자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미 6:8).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며 또 그가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공평한 땅, ‘의의 땅’(KJV), ‘평평한 땅’(NASB, NIV), 혹은 ‘안전한 땅’(BDB)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11-12절]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그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의로 그의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그의 원수들을 멸하시기를 호소한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원수들은 사탄과 악령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 발 아래 두시고(롬 16:20)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계 20:10).

시편 14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의 뜻대로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모든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환난 날에 담대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호소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여전히 그를 의지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들에게서 건지시며 원수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실 것이다.

144편: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은 복됨

[1절]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반석이시다. ‘반석’이라는 말은 사람이 의지하고 피할 곳이라는 뜻이다. 성도의 삶은 영적 전투의 삶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전투에서 우리가 의지하며 피할 곳이 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투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신다. 성도는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과 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며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엡 6:11, 16-17).

[2절] 여호와는 나의 인자(仁慈)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山城)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인자(仁慈)시요”라고 말한다. ‘나의 인자(仁慈)’라는 말은 ‘나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때문에 만세 전에 택함을 얻었고 또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또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조금씩 성화(聖化)를 이루어간다.

다윗은 또 전쟁터 같은 이 세상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요새, 그의 산성, 그의 구원자, 그의 방패, 그의 피난처시라고 고백한다. 그는 시편 18:2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성도는 환난 때에 하나님 안에 피하며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서 우리의 목숨의 안전과 미래의 보장을 얻는다.

다윗은 또 하나님을 자기의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는 자라고 고백한다. 백성이 나라의 치리자인 왕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항상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일은 그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면서 직접 체험한 것이었다.

[3-4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다윗은 인생이 헛것 같고 인생의 날이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데, 하나님께서 왜 이런 허무한 인생을 선대하시는지 묻는다. 우리는 그 이유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좋은 조건 때문이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다. 디모데후서 1:9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하였다.

[5-8절]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가 발하게 하소서. 번개를 번득이사 대적을 흩으시며 주의 살을 발하사 저희를 파하소서.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거짓]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다윗은 원수들과 싸우고 있다. 그는 그 싸움을 ‘큰 물’에 비유한다. 그것은 큰 어려움의 환난이다. 원수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들의 오른손은 거짓을 행한다. 다윗은 8절과 11절에서 “저희 입은 궤사[거짓]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라고 거듭 말하며 또 10절에서 그를 해치려는 칼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을 구한다. 그는 특히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들을 사용하셔서 원수들을 징벌하시기를 호소한다. 옛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천둥과 벼락, 우박 등의 자연 현상들을 사용하셨다(수 10:11; 삼상 7:10; 사 29:6).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들의 해치려는 위험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는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펴셔서 성도들을 도우실 수 있다.

[9-11절]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종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거짓]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다윗은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함에서 나온 고백이다. 그래서 그는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종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새 노래’는 바로 구원의 체험에서 나온 감사와 감격의 노래이다. 다윗은 열 줄 비파의 악기까지 사용하여 하나님께 찬양하겠다고 말한다. 구원의 체험을 하는 자들마다 새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것이다.

[12-15절] [그리하면]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없을 것이오며]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원문에는 12절 초두에 ‘그리하면’이라는 말(아쉐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막으시고 파하시며 다윗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면”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의 결과로 그의 백성이 복된 자들이 될 것을 증거한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이 장성한 나무같이 자라고 딸들이 궁전의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같이 아름답게 자란다고 표현한다. 또 그는 곡식 창고에 온갖 곡식이 가득하고 들에 양들이 많고 수소들이 무겁게 짐을 싣는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모습이다. 또 그는 이스라엘 나라가 침략을 당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이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안정이 있다는 것이다. 또 거리에 백성의 슬피 부르짖는 소리가 없을 것이다. 그 나라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탄식함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안정과 평안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복을 얻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평안의 원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정직하고 선한 삶은 평안하고 복될 것을 약속하셨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죄악된 삶은 슬픔과 근심과 불행이 많을 것을 경고하셨다(레 26장; 신 28장).

시편 14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자. 그는 우리의 인자(仁慈)이시다. 우리는 그의 은혜와 자비로 구원을 받았고 성화(聖化)를 이룬다. 또 그는 우리의 요새와 산성과 방패와 피난처이시다. 또 그는 우리의 일을 도우시는 자이시다. 그는 백성을 왕에게 복종케 하시듯이, 우리 각자의 일들에서 그는 우리를 도우시는 자이시다. 그는 특히 우리를 위해 우리의 대적들을 치시는 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죄와 환난과 원수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기도 응답과 도우심을 체험한 자마다 그렇게 할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는 자들이 되자.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뜻대로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가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물질 생활에, 또 우리의 사회에 평안을 주실 것이다.

145편: 하나님께서는 광대하시고 은혜로우심

[1-6절]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 만물의 섭리자 곧 통치자이시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광대하시다고 말한다. ‘광대하시다’는 말은 ‘크시다, 위대하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위대하시다. 그는 그의 능력과 존귀하심과 영광스러운 위엄에 있어서 크시고 위대하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을 다 측량하지 못하며 조금 이해하고 느낄 뿐이다.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의 크심과 광대하심을 고백하며 그를 높이며 날마다 그를 송축하며 영원히 그의 이름을 송축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를 높이고 칭송한다.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능하신 일들을 묵상하며 선포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하며 그를 송축하고 전파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귀한 것을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또 귀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우리가 연구하고 전해야 할 가장 귀한 보배이시다. 시편 111:2,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7-9절]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의 그의 속성들에 있어서도 크시고 위대하시다. 특히 그는 의로우심에 있어서 크시고 위대하시며 또 그의 은혜로우심에 있어서도 크시고 위대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 그는 죄인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시지만, 특히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러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든 피조물을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신다. 그는 사람들뿐 아니라, 산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도 선대(善待)하신다.

[10-13절]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 즉 들짐승들과 새들과 물고기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대하심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자비를 인해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송축하며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을 느끼며 의식하는 모든 피조물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의 크심이 나타나는 나라이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은혜와 긍휼의 영광이 나타나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통치하심도 영원하다. 그는 온 세상에 영원하신 왕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전도의 중요한 주제이었고(마 4:17; 행 28:31)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되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衆生)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비굴하다’는 말은 ‘엎어지다’는 말로서 낙심하고 비천해짐을 말한다. 사람은 시험에 넘어져 범죄하거나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거나 비천해진다. 사람은 악한 세상 환경과 마귀의 시험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보통 자신의 부족 때문에, 즉 생각과 감정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하고 교만이나 자존심이나 욕심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와 마귀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낙심하고 비천해진 자들을 일으키신다. 시편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다윗은 또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한다”고 말한다. 중생(衆生)은 ‘모든 것’이라는 말로 모든 짐승을 포함하는 뜻이다. 성경은 짐승도 하나님을 앙망한다고 말한다. 시편 104:27,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영혼과 육체의 필요를 가진 사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은 조물주 하나님을 앙망한다.

다윗은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시편 104:28은, 주께서 먹을 것을 주신즉 그들이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시니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며, 시편 147:9는 하나님께서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실 뿐 아니라, 심령의 소원도 만족케 하시며 평안을 주신다. 그는 특히 그의 자녀들이 낙심하거나 환난을 당할 때 그들에게 심리적 위로와 힘도 주시며 그들을 구원하신다.

[17-19절]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행하신다. 그는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다. 그는 또한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그는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비록 그들의 죄가 클지라도 그들이 회개할 때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찾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모세는 신명기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위험에서 건지신다. 시편 34:9-10에서 다윗은,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하였다.

[20-21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와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거룩한 이름을 송축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인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는 자들이다.

시편 14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그의 나라는 영원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위대하시다. 그는 그 능력에 있어서 크시다. 그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기이한 능력의 일들을 많이 행하셨다. 그는 그의 의와 선하심에 있어서도 크시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악인들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는 자기의 백성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며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는 그를 경외하며 진실히 간구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며 공급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하자. 우리는 온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그 능력과 의와 선하심이 크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자. 하나님을 아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능력과 은혜를 체험한 자마다 그에게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진실히 간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자들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나아와 그에게 감사와 찬송, 죄의 고백과 결심, 간구의 내용을 아뢰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다 보호하시고 좋은 것들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그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자.

146편: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가 복됨

[1-2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친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1절은 이 말을 두 번 반복한 셈이다. 시편 저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영혼으로 즉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생전에’ ‘그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결심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모든 참된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결심이며 행위이다.

[3-4절]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방백들이나 인생을 의지함이 헛됨을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참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도움은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그의 모든 계획들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2:22도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했다.

[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복 주심을 간절히 사모했으나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은 야곱을 용서하시고 많은 고난 중에도 그를 돌보시고 도우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야곱의 생애는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성화의 과정과 같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만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줄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만 우리의 소망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이 세상의 삶은 허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신다.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우리가 의지하고 소망을 두어야 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시다. 맨 처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 세계를 초월해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인생에게 참 도움이 되신다.

또 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진실하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거짓되고 믿을 만하지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 그는 변함이 없으시다. 그는 특히 그의 약속하신 말씀에 있어서 진실하시다. 그는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7-10절]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둘러엎으시는도다](KJV).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천지만물과 인간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섭리’라는 말은 보존과 통치의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이시다. 사람이 자기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지만, 부당한 압박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판단하시고 그를 구원하신다. 또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로 기근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 기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근 중에도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자를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고 소경의 눈을 여시고 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신다. 그는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시고 또 객이나 고아나 과부를 보호하시고 붙드시고 도우신다. 그는 악인들의 행위는 미워하시고 그것을 막으시고 좌절시키신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신다.

시편 14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자. 우리는 세상의 권력자도 돈 있는 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와 그의 모든 일들이 다 허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자.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118:8-9,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세상의 것들은 다 허무하지만 하나님만 영원하시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며 하나님께만 찬송과 감사를 돌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이유는 그가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자께서는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자이시다. 그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해 공의로 판단하시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를 놓으시고 소경의 눈을 여시고 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시고 의인을 사랑하시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악인은 멸하신다. 통치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자들은 복되다.

147편: 이스라엘을 복주신 하나님을 찬양함

[1절] 할렐루야. [이는]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마땅함이로다].

시편 저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로, 그것이 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치 않거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높이는 것은 나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둘째로,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시며 그를 찬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셋째로, 그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생명과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2-4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해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시며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신다. 그는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부르시듯이, 그 백성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신다. 그는 자기 백성을 영육으로 구원하신다.

[5-6절]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광대한 우주는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자, 곧 영원히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도 무한하시다. 그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그가 창조하신 이 놀라운 우주에 잘 나타낸다. 그는 또 지극히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신다.

[7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노래해야 한다. 감사는 찬송의 동기요 찬송의 내용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생을 창조하심과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 악기는 목소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8-9절]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세계를 다스리신다. 그는 구름을 주관하시고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신다. 그는 날씨까지 주관하시고 식물세계도 돌보신다. 또, 그는 들짐승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만물을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가장 존귀하게 만든 사람들을 향해서 얼마나 더 그러하실까?

[10-11절]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옛 시대에 말은 전쟁의 필수품이었다. ‘말의 힘’은 군사력을 가리키며 ‘사람의 다리’는 군인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오늘날 세상적, 인간적 의지물들, 예컨대 우리의 건강, 돈과 재산, 자녀들 등을 가리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적인 것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를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 즉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뻐하신다. 물론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고도 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책망과 저주를 받았는지(마 23:13-36)와, 사도 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의 일부를 헌금으로 바치고도 왜 죽었는지(행 5:1-10)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외식을 미워하신다. 그는 우리가 진심으로 그를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며 그를 섬기기를 원하신다.

[12절]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예루살렘 성과 시온산은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곳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께 경배함과 찬양함과 기도함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교회와 같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섬겨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은 진심으로 그를 찬송해야 한다.

[13-14절] [이는]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배불리심이로다].

시편 저자는 찬송의 이유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복주심을 말한다. 국가의 안보는 단지 군대와 군사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나라의 문빗장을 견고히 해주셔야 나라가 안전하다. 또 자녀들의 형통, 사회적 평안, 경제적 유여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들이다.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들이다.

[15-18절]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일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으로 자연만물과 인간 세상을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생각은 말씀으로 표현되고 그의 말씀은 신속하게 시행된다. 그는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신다. 그는 눈과 서리와 우박을 주관하신다. 그가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혹독한 추위를 보내신다. 그러나 그는 또 그 말씀을 보내어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이 흐르게 하신다. 추위를 물리치시고 봄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19-20절]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으로 교훈하신다. 그는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이셨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않으셨고 그의 규례를 안 자들도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의의 규범이며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며 그들을 구주 앞으로 인도하는 말씀이었다.

시편 14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 무한하시고 영원하심, 그의 지혜와 능력의 크심, 그가 친히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알고 그에게 합당한 진심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짐과 근심 걱정을 다 하나님께 맡기자. 우리는 부족과 실수가 많고 이 세상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용서하시며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성품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주시고 죄씻음에 근거한 참된 평안을 주신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며 그와 동행하며 그의 계명과 교훈에 순종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마땅한 삶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의 문빗장을 견고케 하시고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풍성한 평안과 복을 주시고 현세와 내세에 영육의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이다.


148편: 모든 피조물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1-2절]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하늘을 만드신 자이시다. 광활하고 높은 저 하늘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특히 저 하늘에는 천사들이 살고 있다.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큰 군대와 같다. 그들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다. 시편 103:20-22,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16에서 “만물이 그에게[그에 의해]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만드신 자이신데, 그가 만드신 만물 안에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는 천사들도 포함된다. 천사들은 육체가 없는 영들이다.

[3-6절]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시편 저자는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밝은 별들이, 하늘의 하늘과,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을 정하셨다. 그 ‘폐하지 못할 명’은 아마 자연법칙을 가리킬 것이다. 천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대로 매우 규칙적이게 운행되고 있다. 지구는 약간 기울어진 팽이처럼 스스로 돌고 있으면서(이것을 자전이라고 한다)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돌고 있다(이것을 공전이라고 한다). 또 태양 주위에는 지구를 포함하여 여덟 개 혹은 아홉 개의 행성들이 이와 같이 규칙적이게 돌고 있다. 지구 가까이에 있는 달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역시 규칙적이게 돌고 있다. 각 행성은 일정한 중력을 가지고 태양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지구나 달도 일정한 중력을 가지고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신기하고 오묘한 법칙이다. 자연법칙은 매우 신비하다.

[7-13절] 너희 용들(탄니님)[큰 바다 짐승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 말씀을 좇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이는]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시편 저자는 또 큰 바다 짐승들과 바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불과 우박, 눈, 안개, 광풍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열매 맺는 나무들과 모든 백향목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새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시편 저자는 또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과 청년 남자들과 처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온 세상에 홀로 높으시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자가 세상에 누구인가? 또 하나님의 영광은 온 천지에 뛰어나신다. 그가 창조하신 광대하고 신비한 온 우주와 세상은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14절]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시편 저자는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즉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한다. ‘뿔’은 힘과 기쁨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힘과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을 항상 찬송할 것이다.

시편 14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자. 온 하늘과 땅, 하늘의 천사들과 하늘과 땅의 모든 자연만물들, 짐승들, 새들, 모든 남녀노소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세상의 자연만물과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자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얻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의 뿔을 높이시고 힘과 기쁨을 주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과 기쁨을 잃어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기쁨을 주신다. 이사야 40:28-31,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친근히 하자. 성도는 하나님을 친근히 해야 한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부종(附從)하고, 꼭 붙들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신명기 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附從)하고.”


149편: 하나님의 백성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1절]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며 찬송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말한다. 새 노래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지난날들에 즉 구원받기 전에 불렀던 옛날 노래들과 대조된다. 그것은 민요나 명곡이나 유행가 같은 노래들이다. 새 노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을 아는 자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옛날 노래들에 비하여 노래 내용이 새롭고, 노래 방식이나 노래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새로운 노래들이다.

시편 저자는 또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성도의 회중은 교회를 가리킨다. 우리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송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었다(사 43:21).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의 첫 번째 임무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몰랐을 때는 그러하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한다.

[2절]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모든 피조물들은 마땅히 창조자를 찬송해야 한다. 그것은 마땅한 의무가 아닌가? 그러므로 시편 100:1-3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사도 요한은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그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찬송하는 광경을 보았다(계 4:10-11). 우리는 온 천지만물과 사람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늘 찬송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시온의 자민(子民)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왕’은 통치자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자요 그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과 인간 사회의 통치자이시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늘 찬송해야 한다.

[3절]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춤은 사람의 기쁨을 표현한다. 사람은 마음이 상할 때 몸도 움츠려지고 마음이 기쁠 때 몸도 활기차진다. 사람은 너무 기쁠 때 저절로 몸을 움직여 춤을 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가 우리를 위해 어떤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기쁨의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또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쁘고 좋은 방식으로,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를 높이며 찬송해야 한다.

[4절] [이는]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구원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기인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4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에베소서 1:4-5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했다.

시편 저자는 구원받는 성도를 ‘겸손한 자’로 표현한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복종치 않는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자신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다. 구원의 결과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되었다. 죄는 사람을 추하게 만드나 구원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셨다고 말했다(엡 5:26-27).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5절]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전에 죄로 인해 고통과 슬픔이 많았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었다. 그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변화를 얻었다.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 자녀의 특권과 천국 기업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또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전에 밤에도 평안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다. 죄인들은 휴식의 밤에도 참된 휴식이 없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제 평안을 누린다. 성도는 침상에서 참된 휴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9절]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報讎)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시편 저자는 성도가 심판의 영광을 누림을 증거한다. 본문은 성도가 증거하는 복음의 효력을 가리키는 동시에 장차 성도가 하나님의 심판의 수종자가 됨을 뜻하는 것 같다. 복음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인간의 죄악성을 드러내고 죄인을 굴복시키며 회개시킨다. 또 성도는 장차 세상을 심판하는 자가 될 것이다(고전 6:2).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광을 모든 성도들에게 주실 것이다.

시편 14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자.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섭리자, 구원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께 새 노래로 찬송하자. 우리는 교회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하며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며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고 더욱 믿고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과 사람들을 만드신 자이시며 천지만물과 인간 사회를 통치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그의 왕권을 인정하고 복종하자. 호세아는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알자고 말했고(호 6:3)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교훈하였다(빌 2:12).

셋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법을 지키자.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복종치 않는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법을 지킨다. 우리는 불의와 죄와 악 대신에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자.

넷째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자. 죄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는 슬픔과 근심이 많지만, 죄사함의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항상 기뻐함과 늘 평안함이 있다(살전 5:16; 살후 3:16).


150편: 각종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1절]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그의] 성소’는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높은 하늘, 곧 천국을 가리키며, 이차적으로는 지상에 있는 성전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며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왕상 8:30),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왕상 8:32, 34, 36, 45), 혹은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왕상 8:39, 43, 49)라고 반복해 표현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9). 천국에서는 천사들과 완전케 된 의인의 영들(히 12:23)이 하나님을 늘 찬양할 것이다.

물론, 땅 위에 있는 그의 성막과 성전도 그의 성소이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열왕기상 8: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오늘날에는 성도 개인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 . .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서,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섭리 사역과 그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이 광대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가! 그가 만드신 온 세상을 홀로 다스리시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가! 범죄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작정과 섭리는 얼마나 측량할 수 없이 높으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과 긍휼의 크심을 찬양해야 한다.

성경의 몇 곳의 찬송의 예들을 보자. 출애굽기 15:1-2, 11,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여, 신(神)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시편 95: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시편 96:1-5,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편 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3-5절]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小鼓)[작은 북]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테루아)[울리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우리가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나팔이나 퉁소 같은 관악기나 비파와 수금 같은 현악기나 작은 북과 큰 소리 나는 제금과 작은 소리 나는 제금 같은 타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관현악단의 아름다운 연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피아노와 전자오르간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면 좋을 것이다. 여성들의 소프라노와 앨토, 남성들의 테너와 베이스의 어우러진 목소리는 가장 훌륭한 악기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악기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크시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22)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저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찬송의 주체를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을 주신 자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과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동안, 또 우리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생물들과 모든 분야의,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148:10-13,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士師)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시편 15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모신 성전이며 또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께 찬송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히 13:15).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찬송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역과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시고 인류 역사를 다스리시는 놀라우신 섭리 사역을 생각하며 늘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그는 우리의 구주이시며 목자이시며 기쁨과 소망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기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가다듬고 각종 악기를 연습하여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노래나 악기 연주를 하지 말고 무엇보다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하자. 우리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면 악기를 연습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자.

넷째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하자. 호흡이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고, 그들은 그 호흡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다. 시편은 찬송의 교훈으로 끝난다. 찬송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또 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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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글리이슨 아처, 구약총론, 김정우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496쪽.

2) 위의 책, 509쪽.

3) 위의 책, 497-498쪽.

4) Delitzsch, Commentary on Psalms, trans. Francis Bolton (Eerd- mans, 1949), p. 28; 아처, 구약총론, 501쪽에서 재인용함.

5) ‘셀라’라는 원어는 ‘소리를 높이라’ 혹은 ‘쉬라’는 뜻일 것이라고 한다.

6) BDB사전은 ‘밤마다’라는 원어(베콜 라옐라)가 ‘온 밤을’ (KJV, NIV)보다 ‘밤마다’(NASB)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구약성경에 ‘온 밤을’이라고 번역된 여러 구절들의 원문은 콜 할라옐라이다.

7) 본절 후반부에 대하여, 근래의 영어성경들도 우리말 번역과 같으나(NASB, NIV), 옛날 영어번역(KJV)은 “그의 얼굴은 정직을 보시는도다”라고 번역하였다. 원문에 ‘본다’는 동사(에케주)는 3인칭 복수이며 ‘정직한 자’(야솨르)(단수형용사)보다 ‘그의 얼굴’(파네모)(복수명사)을 주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8) 출 22:25; 레 25장; 신 23장; 느 5:7; 시 15:5; 잠 28:8; 겔 18장; 22:12에서, KJV는 모두, 그러나 NASB는 잠 28:8에서만 고리대금으로 번역했다.

9) ‘소리’라는 히브리어(카왐)는 ‘그것들의 줄’이라는 뜻이지만(KJV, NASB), 고대 번역들(LXX, Symachus, Vg)은 ‘소리’라고 번역하였다(NIV).

10)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어는 ‘다윗의 집의 봉헌시와 노래’라고 읽는 것이 옳은 것 같다(KJV). 마소라 본문의 액센트에 맞아 보인다.

11) 원문에서 17, 19, 34, 38절의 액센트와 비교해 보면 그러함.

12) ‘잠잠하다’는 원어(엘렘)의 뜻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단어는 ‘침묵’이라는 뜻이 있는 것 같으나(BDB), 학자들은 ‘신(神)들’(엘림)로 읽기를 제안한다(BDB, KB). 고대역본들은 a[ra(그러므로)(LXX)나 utique(확실히)(Vg)라고 번역했고, NASB는 'gods'로, NIV는 'rulers'로 번역하였다.

13) 히브리어 본문은 ‘나의 자비의 하나님’(케레)이라고 읽기도 하지만(Targ, Vg, KJV), 쓰여진 대로(케팁) ‘그의 자비의 하나님’ 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 가운데서’라고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LXX, NASB, 한글개역).

14) 시편에는 ‘부르짖음’이라는 명사 린나가 6번, 솨웨아가 6번, ‘부르짖다’는 동사 자아크가 5번, 차아크가 5번, 카라 가 16번 등 모두 38번이 사용되었다(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15) NASB와 NIV는 2절에서 시작된 따옴표를 5절 끝에서 닫는다. 즉 3절 끝의 “하시도다”라는 말을 5절 끝에 둔다. 그러면 4-5절은 시편 저자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해석된다.

16) 국한문 성경에 記事(기사)라는 말은 奇事(기사)로 수정해야 한다.

17) 히브리어 전치사는 ‘곁에서, 가까이에서’라는 뜻도 있다(BDB).

18) ‘눈물’이라는 원어(바카)는 ‘발삼(balsam)’(나무진액)’이라는 뜻이지만(BDB), 히브리어 바카나 아람어 베카 는 ‘눈물 흘린다’는 뜻이다. 영어성경들은 ‘바카의 골짜기’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NIV).

19) 본 시편의 저자 에단은 열왕기상 4:31과 역대상 2:6에 언급되어 있다.

20) ‘그들이 거역하였다’는 원어(히므루)는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만 사용되었다고 한다(BDB).

21) 원문성경 시편 119편은 8절씩 단위로 된 22개의 문단으로 되었고, 각 문단 8절들의 첫 글자는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의 순서대로 동일하다.

22) ‘여호와’라는 원어(야)는 일반적인 ‘여호와’(예호와)라는 말의 줄인 말로 보이며 시편에서 43회, 다른 곳(출 15:2; 17:16; 사 12:2; 26:4; 38:11; 아 8:6)에서 6회 사용되었다(B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