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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4권 90편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106편 이스라엘의 거역함과 하나님의 인자하심

영국신사77 2020. 4. 15. 09:36


90편: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

[1-2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막고 도적을 방지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집이 되신다. 그 집은 낡아서 재건축이 필요치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집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자이시며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는 온 우주와 인생의 해답이시다.

[3-6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이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대조하여, 인생은 너무 짧고 덧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며 또 “너희 인생들아,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허무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다. 사람이 노아 시대의 홍수가 있기 전의 선조들처럼 천년 가까이 산다 할지라도 죽고나면 그 긴 세월은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할 것이다. 주께서는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신다. 죽음은 홍수처럼 생의 모든 것들을 쓸어가며, 인생의 복잡다단한 삶을 꿈같이 만든다. 인생은 잠깐 잠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 풀이 자라고 꽃을 피다가 베어지듯이, 인생의 삶과 성공은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7-9절] 우리는 주의 노(怒)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모세는 인간의 죽음의 원인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한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치 않았더라면 인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죽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아담에게 범죄하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대로 그가 범죄하였을 때 죽음의 형벌을 내리셨다(창 2:16-17; 창세기 5장).

[10-12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怒)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는 인간의 수명을 70년 혹은 80년이라고 말한다. 오늘날도 80세 이상 사는 사람은 건강한 자요 장수한 자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다. 또 그 수고로운 세월도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른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흐르는 강물같이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는 이런 빠른 세월, 짧은 인생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죄 짓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지한 자인가. 그러므로 어느 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짧은 삶에서 일의 우선 순위를 두지 않고 죄를 지으며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13-15절]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 때문에 사람들을 멀리 떠나셨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삶이 되었고 세상은 죽음의 그늘진 곳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구하며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구한다.

하나님의 공의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진노와 죽음의 형벌만 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시고 영생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인생이 평생 슬프지 않고 기쁘게 사는 것이다. 구원은 우리의 기쁨을 회복시킨다. 천국은 기쁨과 희락의 나라이다(롬 14:17).

모세는 우리가 곤고함을 당한 햇수들만큼 기쁨을 얻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훨씬 그 이상을 주신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옷니엘 때에 징계를 8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고, 에훗 때에 징계를 18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80년간 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드보라 때에 징계를 20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으며, 기드온 때에 징계를 7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다. 이와 같이, 인생의 수고로운 삶은 7, 80년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은 영원하다. 천국의 복과 희락은 영원하다.

[16-17절]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노암)[기뻐하심]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주의 행사’ 곧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일이며 사람들을 죄와 죽음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영생은 택한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약속이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라고 말한다. 인류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구원은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 일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그의 영광을 죄인들에게 비추시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장차 영광스런 몸의 부활과 영광스런 천국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모세는 또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기뻐하심]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은혜와 호의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다. 그는 또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라고 두 번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온전케 하소서”라는 말과 같다.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성화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며, 또 선행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

시편 9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창세 전부터 스스로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우리의 거처로 삼아야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며 그들에게 죄사함과 참 평안과 안식이 있다(마 11:28).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이 허무한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삶은 천년을 산다 하더라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경점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신다. 그것은 죽음을 가리킨다. 인생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 이 세상의 이런 허무함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위주로 살지 말고 하나님과 천국 위주로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기쁨과 평안 가운데서 의와 거룩과 선을 힘써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세상에서의 곤고한 80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내세의 복된 천국과 영원한 삶을 약속하셨고 현세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주 안에서 평안하며 성령 안에서 기뻐하며 산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聖化)를 이루어 의와 거룩과 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도는 의와 선을 힘써 행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91편: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얻음

[1-4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분이시며 능력이 지극히 크신 분이시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와 교제하며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에는 새 사냥꾼의 올무와 같은 것이 있고 무서운 질병이 있으며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탄과 악령들이 있으나,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셔서 그것들을 피하게 도우신다. 새끼 새들은 약하고 위험한 환경을 두려워하지만, 어미새가 그것들을 품어주면 그 품이 안전하고 평안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깃으로 덮으시고 우리는 그의 날개 아래 피한다. 또 전쟁에서 튼튼한 방패와 손 방패가 있으면 안전하듯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우리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신다. 하나님을 의지함이 성도들의 힘과 방패이다.

[5-8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대낮]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성도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대낮에 황폐케 하는 파멸” 즉 한밤중에 들이닥치는 도적이나 강도, 갑자기 생긴 고열이나 복통을 동반한 무서운 질병, 대낮의 전쟁 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후좌우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기도 하지만, 이런 재앙이 성도들에게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재앙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것이며 악인들은 재앙의 날에 넘어질 것이다. 재앙은 악인들이 세상에서 받을 보응이다. 잠언 24:16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실 것을 믿는다. 혹시 성도가 그 재앙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부활과 영생을 믿음으로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11:25). 그러나 실상 성도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의 작정하신 때가 아니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유익하고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또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9-13절]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이는 네가 나의 피난처 여호와 지존자를 네 거처로 삼았음이라](KJV, NASB)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이는]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할 것임이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재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은 그가 피난처 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그의 거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피난처와 거처로 삼는 자는 그의 특별한 보호와 도우심을 체험할 것이다. 화가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며 재앙이 그의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화가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 천사들을 명하셔서 그의 모든 길에서 그를 지키게 하시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그의 명하시는 일들을 받드는 자들인데, 성도들의 모든 길 즉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그들을 지키고 그들을 도울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뜨거운 풀무불에 타지 않게 지켜주신 것처럼, 다니엘을 사자에게 먹히지 않게 막아주신 것처럼, 또 감옥에 갇혀서 내일이면 죽을 사도 베드로를 기이하게 빼어내신 것처럼,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시로 성도들을 도울 것이다.

또 성도는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를 것이다. 사자와 독사, 젊은 사자와 뱀은 성도를 해치는 악한 세력 즉 사탄과 악령들과 악인들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했다(벧전 5:8). 그러나 성도는 재앙을 피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악의 세력들을 발로 밟듯이 이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라고 말했다(롬 16:20).

[14-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자를 환난과 재앙 중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를 도와 주시고 건져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의 이름을 알고 그를 찬송하고 그에게 기도하며 그를 의지하는 자를 도우셔서 환난에서 건져내어 주시고 재앙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높이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기도 응답의 약속은 성도에게 참으로 복된 일이다. 기도 응답 속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또 “장수로 내가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을 보게 하리라”(원문)고 말씀하신다. 장수(長壽)는 영육의 생명의 강건함을 포함한다. 사람은 죽음을 가장 싫어한다.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말은 ‘죽인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복은 장수의 복이며 그 절정이 영생이다. ‘나의 구원’이라는 말은 환난과 질병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다 포함한다.

시편 9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그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에게 피하며 그를 의지하는 자는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전쟁으로부터, 각종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심을 얻는다. 이 세상은 환난과 재앙이 많은 세상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부족과 연약을 고백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 순종하는 자는 그의 보호하심을 얻으며 또 그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악인은 재앙으로 인해 넘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회개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위해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지키시고 도우실 것이다. 고난에서도 건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며 모든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위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해야 하며 또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치 말고 생각나는 죄들을 다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악인은 악행에 대해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와 부족을 회개하고 의와 선을 행하기를 결심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얻을 것이다.


92편: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찬양함

[1-4절]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신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이는]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부를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존자(至尊者)’ 곧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자이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심, 즉 우리의 구원에서 가장 잘 나타났고, 또 그의 신실하심은 그의 은혜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심을 말한다. 우리는 아침 즉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밤마다 즉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의 신실하심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에 관해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감사하며 찬양한다고 말한다. 그는 목소리로 뿐만 아니라, 악기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정숙한 소리’라는 원어(힉가욘 ןוֹי������������)는 ‘묵상’이라는 뜻(시 19:14)을 가진 단어로 ‘엄숙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는 시끄럽고 혼란스럽지 않고, 엄숙하고 부드러운 소리, 질서 있고 아름다운 소리이어야 할 것이다(시 96:9; 빌 1:10).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의 손의 행사로 그를 기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손의 행사 즉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기쁨의 이유이며 또한 찬송의 이유이다.

[5-8절]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일, 또한 그의 섭리하시는 모든 일들, 예를 들어, 노아 홍수 심판, 소돔 고모라의 불 심판,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일, 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적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 등의 기이한 일들이 그러하다.

또 하나님의 생각은 심히 깊으시다. 그는 창세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셨고 특히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다. 그는 그의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으로 모든 일들을 행하신다. 그는 성도 개인의 성화(聖化)와 세계복음화의 전 과정을 섭리하신다. 그의 섭리의 전 과정은 심히 깊고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들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역사의 흐름을 알지 못하며 심지어 인간의 존재 목적도 알지 못한다.

악인들은 일시적으로 흥왕할지라도 결국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시편 73편의 저자도 악인이 건강하고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더하는 형통을 누리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파멸에 던지시므로 갑자기 황폐케 된다고 증거했다(시 73:3-12, 18-19).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다. ‘지존(至尊)하다’는 말은 그의 존귀와 영광이 심히 크심을 나타낸다. 악인들의 영광은 일시적이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섭리의 모든 일들을 통해 영원히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9-11절]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지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하나님과 그의 진리와 그의 나라와 그의 일들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또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며 그의 진노와 심판을 가져오며 자신들에게도 해(害)와 불행이 된다. 그들은 세상에서 결국 패망하고 다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더욱 힘을 얻는다. 시편 저자는,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뿔은 힘을 가리킨다. 들소의 뿔은 가장 강한 힘을 나타낸다. 또 기름은 성령을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그들에게 신선하고 향기로운 기름, 즉 성령의 지혜와 위로와 기쁨을 주신다.

시편 저자는 또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라고 말한다. ‘주의 원수’는 또 ‘성도의 원수’이다. 그들은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고 대적한다. 그들은 악을 행한 자들이다. 이 세상은 악인들이 활개치는 세상이며 인간의 본성은 심히 악하게 변질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그들에게 지옥 형벌을 내리실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을 보고 들을 것이다.

[12-15절]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할 것이다. 요단 계곡에 많이 번식하는 종려나무는 가늘고 키가 크며 잎이 많이 달린 아름다운 나무이며, 기쁨과 승리의 상징으로 쓰이고, 또한 레바논의 백향목은 키가 매우 크고 우람하고 수명이 길고 그 향기가 좋아 집 재목으로 쓰이는 나무이다. 의인은 쇠하거나 망하지 않고 그 인격이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강건하고 마침내 영생을 누릴 것이다.

특히 의인은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흥왕할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의 돌보심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크신 감동과 위로가 있다. 그는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이다. 모세가 120세에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던 것처럼(신 34:7), 갈렙이 85세에 힘이 강건해 싸움에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수 14:10-12), 의인은 늙어도 심신의 강건함이 있을 것이다. 또 의인은 하나님의 정직함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께는 의와 정직함만 있고 불의가 없으시다. 의인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정직함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시편 9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토록 지존하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려운 마음으로 경배해야 하며 그를 찬양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아침에도 밤에도 찬양해야 한다. 그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은 그의 창조 사역과 섭리의 일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심에서 잘 나타났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자.

셋째로, 악인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무시하고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흥왕할지라도 마침내 하나님께서 공의로 징벌하심으로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장차 영원한 불못인 참으로 두려운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로,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레바논 백향목같이 번성하며 늙어도 쇠하지 않을 것이다. 의인은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살며 의와 선을 행하는 진실한 자들이며 현세와 내세에 복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93편: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통치하심

[1절]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창 1:1)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셨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약 6823회 사용된 ‘여호와’라는 명칭은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 시편 90:2에서, 모세는 고백하기를,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가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첫 사람 아담을 거기에 두시며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그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다(창 2:16-17).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그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잉태와 출산의 수고와 고통을, 남자에게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것과 그들이 죽을 것을 선언하셨다(창 3:16-19). 이것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통치자이심을 보인다. 또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패괴하고 강포가 땅에 충만하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멸망시키셨을 때(창 6-8장) 하나님께서 통치자 되심은 더욱 두렵게 증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가 만드신 우주만물을 홀로 통치하신다. 그는 왕과 재판장으로 절대적 권위를 입으셨다. 그의 명령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주만물을 붙드시므로 온 세상은 요동치 않고 견고히 서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도덕적 질서도 견고히 세우시는 자이시다.

[2-4절]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보좌는 왕권과 통치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시며 그의 왕권과 통치권은 옛날부터 견고히 섰다. 옛날에 왕의 권위와 능력은 컸다. 왕은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왕의 권세는 칼의 권세이었다. 물론 그는 그 권세로 공의와 선을 시행해야 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도 통치자의 권세는 크다.

로마서 13:4, “그[위정자]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베드로전서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왕이시다. 그는 개인이나 국가나 세계의 역사를 홀로 주장하셨고 다스리셨으며, 그는 지금도 온 세상을 홀로 섭리하신다. 그의 권세를 세상의 무엇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더 크시다고 말한다. 홍수 때 물들이나 바다의 흉용한 파도들은 매우 위협적이지만, 높으신 통치자 하나님의 능력은 그보다 더 크시다. 그가 명령하시면 그 모든 것들이 잔잔케 되고 평온케 될 것이며 또 그가 명령하시면 그 모든 것들이 두렵게 일어날 것이다.

[5절]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증거하심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증거하신 내용들이며 그것들은 다 확실하다. 시편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예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17).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다. 성경은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들, 곧 우리가 다 믿어야 할 진리들을 기록한 책이다(행 24:14).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요한복음에는 ‘진실로’라는 말(아멘 ajmhvn)이 50회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증인들인 제자들이 증거하고 기록한 책들이 신약성경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유언적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했다(딤후 4:3-5). 말세에 거짓말이 난무하며 사람들이 진리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모든 진리를 믿고 전해야 한다.

또 본문은 하나님의 집이 거룩하다고 말한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집은 성전을 가리킨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 해당한다. 교회는 거룩하고 또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영광스런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였다(벧전 1:15).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경의 교훈대로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시편 9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통치자이심을 알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셨던 영원자존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천지만물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그의 위엄 앞에 겸손히 엎드려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증거하신 내용들은 다 확실하다. 로마서 3:4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증거하신 진실한 내용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할 다 확실한 진리의 말씀들이다. 개신교회들은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무오한 규칙임을 믿는다.

셋째로, 하나님의 집은 거룩하며 또 거룩해야 한다. 구약시대의 성전뿐 아니라, 신약교회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믿는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셨고 의롭다고 여기신다. 이제 우리는 모든 죄와 불결을 버리고 거룩해야 하며 의와 선을 실천해야 한다. 로마서 6:15, 19,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94편: 악인들에게 벌을 내리실 것

[1-2절] 여호와여, 보수(報讐)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報讐)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시편 저자는 이 세상에 선악을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증거한다. 그는 하나님을 ‘보수(報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두 번 말하며 또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라고 표현한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는데, 그는 도덕적인 존재이시다. 그는 완전한 공의로 의와 불의,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시고 판단하시고 의인에게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의 상을, 악인에게는 영원한 죽음, 영벌, 즉 영원한 지옥 형벌을 내리신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가 처한 혼란한 현실을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해주실 것을 호소한다. 그는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악인들에게 공의의 심판을 내리시기를 구한 것이다.

[3-4절]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저희가 지꺼리며[지껄이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내버려두신 듯한 기간이 길었으나, 시편 저자는 이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라고 아뢴다. 그는 악인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한다. 그는 그를 ‘악인,’ ‘지껄이며 오만히 말을 하는 자,’ ‘죄악을 행하는 자,’ ‘자긍하는 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한마디로 교만한 자이다.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서는 안 된다. 교만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것이며 실상 자기 숭배와 같은 죄악이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 악인들은 마귀를 닮아 교만하고 교만하게 말한다. 그러나 성도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온유하고 겸손하게 말해야 하며 또 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생각해야 한다.

[5-7절]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주의 기업을 곤고케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악인들의 악행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스러뜨리며 하나님의 기업을 괴롭히며 과부들과 나그네들을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자기 기업으로 삼으신 백성을 부스러뜨리며 괴롭히는 일, 특히 그 중에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자들, 과부들과 나그네들과 고아들을 죽이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게다가, 악한 자들은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그들은, 살아 계셔서 모든 일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한 것이다.

[8-11절]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자가 벌하지 않으시며]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懲治)하지 아니하시랴[알지 못하시겠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거나 듣지 못하는 신이 어떻게 인간의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만드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이치에 맞는 생각이 아닌가?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악행을 아시고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징벌한다’는 원어(야사르)는 ‘교훈한다’는 뜻으로도 번역된다(대상 15:22). 사람을 교훈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의 악함과 허망함을 다 아시고 악인의 악행을 징벌하실 것이라는 뜻 같다. 무신론은 허무하고 악한 사상이다.

[12-15절]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말한다. 그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자는 환난의 날에 벗어날 것이며 악인을 위해 구덩이 곧 지옥 구덩이가 준비될 때까지 평안으로 보호함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책은 사람의 회개를 가져오고 의와 선을 행하게 할 것이다. 그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치 않는 악인들은 마침내 지옥 구덩이에 던지울 것이다.

원문에는 14-15절의 초두에 각각 ‘이는[왜냐하면]’(키)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성도들이 환난을 벗어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며 그의 기업 곧 이스라엘 나라를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의로 돌아간다’는 말은 의롭다는 뜻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불의가 득세하고 불법이 난무한 것 같으나, 장차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며 그의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정직한 자는 항상 의를 좇을 것이다. 

[16-17절]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세상의 행악자들을 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악인을 징벌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거의 죽었을 것이다. ‘벌써’라는 원어(키메앗)는 ‘거의’라는 뜻이다(BDB, KJV). 성경에서 모세, 다윗, 다니엘, 모르드개 등의 예들이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와 그 동료들에게 땅이 갈라져 묻히는 벌을 내리셨고,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블레셋 전쟁에서 죽게 하셨고,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과 그 처자들을 사자굴에 던지워 죽게 하셨고,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 전체를 죽이려 했던 하만과 그 열 아들들도 죽임을 당케 하셨다.

[18-19절]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의 인자하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붙드셨고 그의 속에 생각이 많을 때 하나님의 위안이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의 인자하심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은 사람에게 부족이 많기 때문이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신다.

[20-23절]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저희가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

시편 저자는 자신이 처한 악한 현실에 대해 말한다. 그는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에 대해 말한다. ‘악한 재판장’이라는 원어(킷세 하우옷)는 ‘멸망의 보좌’라는 뜻이다. 멸망의 보좌는 법과 율례를 운운하며 악한 일을 도모하고 의인을 멸하려 하는 재판장을 가리킨다. 또 시편 저자는 악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행한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시편 저자의 마음은 연약했다. 그는,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또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라고 말했다. 그는 연약하여 실족할 뻔하였고 그에게는 근심과 염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나의 산성’ ‘나의 피할 반석’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어떤 환난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피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또 시편 저자는 “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악을 행하는 대적자들을 마침내 징벌하시고 처단하실 것이다.

시편 9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장이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보수하시는 하나님’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이시며(1-2절),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15절).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악인들을 공의로 벌하실 것이다. 2절,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악인들이 개가를 부르고 지껄이며 교만하고 오만하게 말하고 자랑하며 주의 백성을 멸하고 주의 기업을 곤고케 하고 과부들과 나그네들과 고아들을 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환난 중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백성을 교훈하시고 때때로 징계도 하시지만,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우신다. 18, 19절,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산성이 되고 피할 바위가 되시며 그들을 해치려 하는 악한 자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구주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교훈대로 의와 선과 진실만 행하자.

95편: 하나님께 노래하며 순종하자

[1-2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편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노래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노래하되 즐거이 부르며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노래하자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찬송이다. 노래는 사람이 보통 기쁠 때 한다. 물론 슬플 때도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으나, 노래는 보통 기쁠 때 부른다.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의 노래이다. 성경에서 찬송과 감사는 동의어처럼 쓰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케 하려 하심이었다. 에베소서 1:4-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글로 표현한 것이 찬송가이다. 찬송의 글, 즉 찬송시를 써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피조세계에서 인간만의 특권이다.

[3-5절] 대저[이는]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왕이심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베야도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로 여호와께서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고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소유이다. 바다가 그의 것이며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다. 그는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며 그의 지혜와 능력은 지극히 크시고 그의 선하시고 진실하심도 지극히 크시다.

또 그는 그가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다. 그는 섭리자, 통치자이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신보다 크신 왕이시다. 세상의 신들은 다 헛되지만, 여호와는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위대하신 왕이시다. 그는 또 우리를 영육으로 구원하시는 ‘구원의 반석’이시다(1절).

[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저자는 또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자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말한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피조물의 마땅한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천지만물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는 통치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7a절] 대저[이는]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양임이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경배해야 할 이유에 대해 그가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께 두려움으로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곧 그의 손의 양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며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은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7b-11절]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40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편 저자는, 특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역사를 회상시키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한다. 그것은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는 것이다. ‘므리바’라는 원어(ה������������������)는 ‘다툼’이라는 뜻이며, ‘맛사’라는 원어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10가지 재앙을 보았고, 애굽에서 나온 후 첫 번째 장애물인 홍해를 기적으로 건넜고,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셔서 먹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 등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았고 체험하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시험하였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와 다투며 그를 향해 원망하며 대항하였다.

그 기간이 40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해 근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道)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노하셔서 맹세하며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안식’은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또한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예표한다. 천국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음성을 순종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시편 9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노래하자. 우리는 하나님께 즐거이, 감사함으로 노래하고 시로 노래하자.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섭리자 하나님이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 섭리자, 구원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체험한다면 그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시편 33:1은,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교훈하였다(엡 5:19).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굽혀,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자이시며 또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 참된 마음으로 그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시고 목자이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경배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우리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선조들의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모세와 다투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고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들의 마음은 교만하고 완고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노하셔서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안식의 땅 가나안에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거울 삼아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그를 믿고 그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96편: 하나님께 노래하며 합당하게 경배하자

[1-2절]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우리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불렀던 노래들은 다 옛 노래들이다. 그런 노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허무한 노래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 후에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난들 중에 기이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함으로써 부르게 된 노래이다. 그것은 특히 신약 성도들에게는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노래이다.

또 온 땅이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찬송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심을 알고 그에게 찬송해야 한다. 또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존재와 속성들과 사역들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과 사역들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노래해야 한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자는 날마다 그의 이름을 찬송하고 그의 구원을 전파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기이한 일들, 곧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섭리의 일들, 특히 그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일이 온 세계에 선포되어야 한다.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4-5절] [이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것임이로다. 이는]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 보인다. 우리가 그를 찬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극진히 찬양하고 경외해야 할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지만, 만방의 모든 신들은 다 헛것이요 오직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다. ‘헛것’이라는 원어(엘릴림 םי������י������������)는 ‘무가치한 우상들’이라는 뜻이다(BDB). 온 세상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 찬송해야 한다. 이방종교들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위 종교다원주의는 잘못된 사상이다. 이방종교들은 다 헛것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으시다. 이방종교들은 헛되다.

[6-9절]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존귀와 위엄이 하나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다. 성막이나 성전의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고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다. 영원하신 창조자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누구이신가? 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우신 분이시다. 그가 소리를 높여 외치시며 노하시면 누구 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시다.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분이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 곧 이 세상에서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가장 존귀하시며 가장 두려우신 하나님, 가장 능력이 크시며 가장 아름다우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권능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최상의 예배,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가야 하며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해야 한다. 사람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에게 예물을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예물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그는 창조자시요 구원자이시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라는 원어(베하드랏 코데쉬)는 ‘거룩한 예복을 입고’(BDB, NASB; 시 29:2; 대하 20:21)라는 뜻이거나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KJV)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거룩하고 아름답게, 고상하고 위엄 있게, 두려워 떠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결코 소란하거나 경박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10절]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에 대해 말한다. 이 세상은 결코 치안부재(治安不在)의 무법천지(無法天地)가 아니다. 세상에는 통치자 하나님께서 계시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는 도덕적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로 안정을 얻는다.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 마지막 심판 앞에 악인들은 변명하고 불평할지 모르나, 그것들은 정당하지 못한 변명들이요 불평들일 뿐일 것이다. 그 날에 의인들은 양심의 평안과 위로를 얻을 것이다.

[11-13절]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공의와 진실로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그때 천지만물은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하늘에 나는 모든 새들과, 땅의 모든 짐승들과,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모든 물고기들과, 산과 들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식물들, 삼림의 나무들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그때 만물의 회복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 피조 세계는 썩어짐에 종노릇하면서 고통하며 탄식하고 있다(롬 8:20-22).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계 21:5).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의가 드러나고 죄의 형벌이 다 이루어지고 죄가 없어질 때, 모든 것들은 회복될 것이다(행 3:21).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셨던 죄 없는 세계로 회복될 것이다.

시편 9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섭리자, 구원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7:10, “[흰옷 입은 큰 무리가]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방법은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새 노래로 그를 찬송해야 하며, 그의 이름에 합당하게 거룩함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으로 그에게 경배하며 찬송해야 한다. 그는 우리 모두의 최상의 찬송과 최선의 예배의 대상이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한 내용은 그가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공의로 통치하시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공의로 심판하시고 마지막 날에 더욱 더 철저하게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믿고 의와 선을 행한 자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고 상을 주실 것이지만, 그를 대적하고 당을 지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지옥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97편: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함

[1절]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섭리자, 통치자, 왕과 목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발생하고 이루어진다. 시편 135:6은,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참새]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29).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사 45:7).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또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백성들은 섭리자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2절]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통치의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구름과 흑암이 하나님께 둘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의 두려움과 심오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사람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피조물인 사람은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잘 알지 못한다. 또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통치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두렵고 심오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3-5절] 불이 그 앞에서 발하여 사면의 대적을 사르는도다.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밀랍, 초]같이 녹았도다.

하나님의 통치는 두렵다.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사면의 대적을 사른다.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은 그것을 보고 떨었고 산들은 여호와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초같이 녹았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와 통치의 일에 번개와 천둥과 벼락 등의 자연 현상들을 사용하신다. 그는 그것들을 사용하여 대적자들과 악인들을 징벌하신다.

[6절]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 하늘은 그의 의를 선포하며 모든 백성은 그의 영광을 본다. 지금 세상은 죄와 불법이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가 나타날 때, 즉 악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의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또 보게 될 것이다.

[7절]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모든]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사람이 만들고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다. ‘허무한 것’이라는 원어(엘릴림 םי������י������������)는 ‘무가치한 것들, 우상들’이라는 뜻이다. 우상은 사람들이 조각하여 만든 것에 불과하며 참 신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고 능력도 없다. 그것은 허무한 것이다. 시편 115:4-7,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며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다. 또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너희 모든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한다. ‘너희 모든 신들’은 우상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헛된 우상들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한다.

[8절] 여호와여, 주의 판단을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시편 저자는 1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해 온 땅과 모든 나라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했고, 본절에서는 유다의 딸들이 그렇게 했다고 하고, 12절에서도 의인들이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라고 했다.

[9절] [이는]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초월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신 자이시며 모든 신보다 훨씬 존귀하신 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홀로 창조하셨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며 심판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이 세상의 우상들과 다르다. 그는 참 신(神)이시다. 그는 모든 우상을 파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도우시고 변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해야 한다.

[10절]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그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10절), ‘성도’(10절), ‘의인’(11, 12절), ‘마음이 정직한 자’(11절) 등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를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또 ‘성도’라는 원어(카시딤)는 ‘경건한 자들, 친절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경건하며 하나님의 계명대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친절하다. ‘의인’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마음이 정직한 자’라는 말도 비슷하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다. 옳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악을 행하면 그가 징벌하시지만, 그들이 악을 미워하고 의와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11-12절]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또 의인을 위해 빛이 뿌려졌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해 기쁨이 뿌려졌다고 말한다. 빛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기쁨과 행복을 주신다. 시편 저자는 또한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라고 말한다. ‘거룩한 기념’은 ‘거룩한 이름’을 가리킨 것 같다. 그것은 창조자, 섭리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신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빌 4:4; 살전 5:16). 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도 기쁨의 삶이다(갈 5:22).

시편 9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심을 알고 그의 공의로운 통치를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또한 섭리자, 심판자이시다. 그가 장차 온 세상을 의로,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믿고 항상 기뻐하며 악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자.

둘째로, 세상의 모든 우상은 헛되며 여호와만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우리는 이방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헛된 말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성도답게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미가 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98편: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을 찬양함

[1-3절]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義)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시편 저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말한다. ‘새 노래’는 우리가 구원받은 후, 즉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섬기기로 결심한 후에 부르는 노래이다. 옛 노래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 불렀던 노래이다. 그것은 사람 중심의 노래이었다. 그러나 새 노래는 하나님 중심의 노래,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그것의 가사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들,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에 관한 것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노래이다.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찬송한 이유는 그의 구원 때문이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이며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해 행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질병에서의 구원이기도 했고 기근에서의 구원이기도 했으며 전쟁으로부터의 구원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다 기이한 일이며 그의 오른손의 일, 곧 그의 능력의 일이며 그의 거룩한 팔의 일이었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고 원수들을 징벌하셨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 앞에 명백히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또 시편 저자는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집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셨다. 땅의 모든 끝, 곧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다 그 구원을 보고 듣고 알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체험한 구원은 메시아께서 오셔서 이루실 큰 구원을 예표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과 죽음과 부활로 밝히 증거된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신약시대에 온 세계에 증거되고 있는 복음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소식이다(롬 3:21-22). 그것은 죄인들이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 얻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들에게 주신 은혜이며(딤후 1:9) 그의 은혜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신 것이다. 또 이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눅 24:47).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 신약 성도들의 찬송의 이유도 바로 이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

[4-6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본문은 “온 땅이여”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말한다. 3절 끝에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는데, 그러므로 온 땅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라고 한 것이다. 온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들은 자들마다 하나님께 찬송해야 할 것이다.

또 본문은 “즐거이”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말한다. 본문에는 ‘즐거이’라는 말이 3번 나오고(4, 4, 6절) 8절에도 한 번 더 나온다. 찬송은 즐거운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슬픈 자들은 찬송을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한다(약 5:13). 우리는 즐거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또 본문은 하나님께 찬양할 때 목소리와 악기를 사용하라고 말한다. 4절,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5절, “음성으로.” 6절, “소리할지어다.” 사람의 목소리는 좋은 악기와 같다. 그것을 잘 다듬어 훈련하면 찬송을 잘 부를 수 있다. 또 본문은 몇 가지 악기도 언급한다. 수금을 두 번 언급하고 또 나팔과 호각을 언급한다. ‘호각’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말한다. 시편 150편은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큰 소리 나는 제금, 높은 소리 나는 제금 등 여덟 가지 악기를 언급한다(3-6절). 악기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좋은 도구이다.

온 세계에 있는 구원받은 신약 성도들은 즐거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고 또 우리의 목소리와 각종 악기들을 사용하여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며 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사 43:21; 엡 1:6, 12, 14).

[7-9절]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이는]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암밈)[백성들]을 판단하시리로다.

본문은 우주만물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앞에 4절에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라고 말했었다. 7절, 8절에서 시편 저자는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라고 말한다. 바다에 충만한 것은 물고기들과 해초들을 가리킬 것이다. 세계에 거하는 자는 사람들, 짐승들, 식물들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은 또 큰 물 곧 홍수가 난 강물들과 폭포들이 박수하듯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또 산들과 언덕들도 함께 즐거이 하나님께 노래를 부르라고 말한다. 자연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오늘날까지 보존하시고 기르신 우주만물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본문은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다시 말한다. 앞에서도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였었다(4, 4, 6절). 찬송은 즐거운 마음으로 불러야 찬송답다. 시편 95:1-2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라고 말했었다.

본문은 특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가 그가 심판하러 오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며 공평으로 모든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9절) 온 땅은 그를 찬송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지금 불의와 불법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탄식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시행될 때 악인들은 두려워 떨겠지만, 온 세상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시편 9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신약성도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음을 감사하며 항상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둘째로, 온 세상은 하나님을 즐거이 찬송해야 한다. 온 세상은 하나님을 즐거이 찬송하고 우리의 목소리와 또 각종 악기들로 찬송해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며(사 43:21) 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엡 1:6, 12, 1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시와 찬미로 하나님께 찬송하자(엡 5:19).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이다(히 13:15).

셋째로, 우리는 마지막 날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고 악행을 멀리하고, 죄와 불법이 많은 세상에서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99편: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경배함

[1-3절]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본문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지금도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며, 그의 위엄과 영광이 크시다. 그는 땅의 지성소 법궤 위 그룹들 사이에 계시듯이, 하늘 성소에서도 그룹들 사이에 앉아계시며 천사들은 그를 옹위하고 섬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크시며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삶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들을 위해 많은 은혜로운 일들을 행하셨다. 그의 위대하심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드러났고 그의 영광은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다.

다니엘서에 보면, 포로생활 중에서도 이방 왕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라고 말하였고(단 2:47), 또 그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거슬러]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고 말했다(단 3:28-29).

본문은 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떨며 그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을 거룩하시다고 말한다. 그는 본 시편에서 세 번이나 그렇게 말한다(3, 5, 9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시고 모든 죄와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을 뜻한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4-5절]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 중에서 공(公)과 의(義)를 행하시나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본문은 왕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를 증거한다.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 그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공의를 행하신다. 그는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공평을 견고하게 세우시고 공(公)과 의(義)를 행하시고 공의로 도덕질서를 세우시고 선을 장려하시고 악을 징벌하신다.

본문은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 공의로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경배해야 한다.

[6-7절]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여호와께서 구름기둥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니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이다. 그는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또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 자이었고 아론은 하나님의 명하신 제사장 가족의 가장(家長)으로서 그의 아들들만 합법적 제사장이 되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와 교통하며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후에, 사무엘은 경건한 선지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가 부르짖어 간구할 때 응답하신다. 그는 모세와 아론의 기도를 잘 들어주셨고, 사무엘의 기도도 잘 들어주셨다. 성도의 특권은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구름기둥 안에서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33: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민수기 12:5, “여호와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행할 바를 지시하셨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다 행했다(출 40:16).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행해야 한다. 사무엘은 거역하는 것을 사술(邪術)의 죄와 같다고 말하였다(삼상 15:23).

[8-9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聖山)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응답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그 행위대로 갚으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징계하시지만, 그들이 회개할 때 그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들은 징벌의 상태로부터 회복된다. 그들은 참된 평안과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제, 시편 저자는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聖山)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물론이요 땅의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곧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참 하나님을 높이고 그를 경배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산에서 그를 경배해야 한다. 오늘날, 그 성산(聖山)은 주 예수께서 구속(救贖)하시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신약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그는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며 도덕적 불결이 전혀 없으시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의 교회에서 경배해야 한다.

시편 9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사람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떨며 그를 찬송하고 그에게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들을 통치하신다.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도덕적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그는 온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모든 사람들을 공의로 통치하시며 악한 자들을 엄하게 징벌하신다. 사람이 창조자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떨며 찬송하고 경배해야 한다.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그 앞에서 떨며 그에게 마땅히 찬송하고 경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와 같았다. 우리의 참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며(히 4:14-16) 그의 이름으로 찬송하며(히 13:15)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고(요 14:13-14) 그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선을 행한다(골 3:17).

셋째로, 우리는 날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공의를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공의를 행하시는 통치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선악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바르고 선하게만 행해야 한다.

100편: 창조자 목자 하나님께 감사 찬송함

[1-2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편 저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열방이 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세계복음화의 전망을 품고 있다.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기쁨으로 불러야 한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즐거움으로 하는 예배와 봉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기쁨이 없는 찬송은 하나님을 섬기기 싫어하는 표일 것이다. 구원은 기쁨과 평안의 소식이므로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게 찬송해야 한다.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삶의 최고 목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를 섬겨야 한다.

[3절] 여호와가[여호와 그가](원문)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 저자는 “너희는 여호와 그가 하나님이신 줄 알지어다”(원문)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신(神)들이 많지만,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들은 다 헛것이다. 시편 저자는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케레, NIV)”라고 말한다. 원문(케팁)의 뜻은, “우리를 지으신 이는 그요 우리 자신이 아니며”이다(MT, LXX, Syr, KJV, NASB).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그가 우리의 삶의 목적을 결정하신다. 또 시편 저자는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목장의 양이로다”(원문)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이며, 또 우리의 복된 특권과 순종의 의무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주이시며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양이며 그의 보호하심과 영육의 필요의 공급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4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뜰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감사하다’는 말(야다)과 ‘찬송하다’는 말(힐렐)과 ‘송축하다’는 말(바라크)은 뜻이 비슷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며 그를 높이며 그에게 감사하고 칭송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의 문에 들어갈 때, 그 뜰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 곳, 즉 그에게 예배드리는 곳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불평과 원망의 태도가 아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19-20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교훈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5절] 대저[이는]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진실하심, 신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시편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이유로서 “이는 여호와께서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칠 것임이로다”라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악하게 행하시거나 경우에 맞지 않게 행하지 않으시고 기쁨과 평안과 유익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하는 자들을 용납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또 그는 진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으시다. 그는 약속하신 말씀을 끝까지 지키신다.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천국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약속은 확실하고 불변하시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도 그러하시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시편 10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자와 목자이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도 만드셨다. 생명 세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사람도 그로 말미암았다. 더욱이, 그는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그는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셨고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주셨다. 그는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할 양들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 때 가능한 일이다.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다. 또 그는 우리를 죄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감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의 영원하심을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과 멸망을 당해야 했던 죄인들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셨고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송하자. 

101편: 완전한 길에 주목함

[1-2절]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송의 노래를 부르리이다”(원문)라고 말한다. ‘인자’(仁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공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이다. 인자(仁慈)와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도덕성의 내용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회개하는 죄인들을 향해 인자하시고 항상 의로우시고 또 그는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의인에게는 기쁨과 위로가 되지만, 악인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고 또 그 성품을 귀중히 여기고 사모하며 그 덕성을 소유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한,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완전한’이라는 원어(탐)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앞절에서 말한 인자와 공의를 겸비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개인적으로 완전한 길에 주의하겠다고 고백하며 또 가정적으로도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도덕적인 삶은 개인적인 삶인 동시에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실천되는 삶이어야 한다.

성경은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증거한다. 창세기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완전한’(탐밈)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이다(복수형). 성경은 또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증거한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여기에 ‘순전하다’는 말(탐)도 같은 단어이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도 같은 개념이다. 도덕적 완전은 우리의 성화(聖化)의 목표 곧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우리는 노아처럼, 욥처럼 완전한 삶을 힘써야 한다.

시편 저자가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평안과 위로, 능력과 환경적 회복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오시기를 사모할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를 만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고 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시면 의인들에게는 복을 주실 것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완전을 구하는 삶은 경건한 삶과 함께 간다. 참된 도덕성은 참된 경건에서 나온다.

[3-5절] 나는 비루한 것(벨리야알)[무가치한 것, 악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사특한(익케쉬)[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나는 비루한 것[무가치한 것, 악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背道者)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배도자(背道者)’는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버린 자를 가리킨다. 성도는 도덕적으로 악하고 무가치한 것을 용납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버린 자들의 행위를 책망하고 미워하며 멀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비뚤어진 마음은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마음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또 오해하기 잘 하는 마음이다. 또 이런 마음에서 악한 일이 나온다. 성도는 사특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고 또 악한 일을 멀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윽히 헌다’는 말은 ‘은밀히 비난한다’는 뜻이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것은 앞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뒤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또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이웃을 멸시하고 욕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남의 명예와 신임성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은 악한 일이다. 성도는 남의 유익을 위해 힘써야 하고 남을 그윽히 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그런 자를 물리쳐야 한다.

[6-8절]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시편 저자는,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충성된 자’는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쾌락을 따라가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그런 자와 함께 거해야 한다. 또 시편 저자는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고 말한다. ‘완전한 길’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길이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는 신앙 사상이 바르고 성경말씀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런 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행복이다. 같은 생각과 뜻,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함께 일할 만한 자들이다.

시편 저자는 또,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거짓이나 거짓말은 마귀의 속성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하시는 악이다(잠 6:16-19). 요한계시록 21:8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거짓된 마음과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 곧 위선을 다 버려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남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이 악이다. 악은 하나님의 속성과 뜻과 반대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마귀는 악하여 세상과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교회를 속화시켜 지옥에 떨어지게 하려 한다. 거짓되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합당치 않다.

시편 10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하심을 사모하며 그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경건하게 생활하면서 그의 평안과 위로, 그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실히 찾는 모든 자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완전한 길에 주목하고 가정에서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고 또 완전한 길에 행하는 충성된 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소원하자. 도덕적 완전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도덕적 완전을 실천하는 충성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한 것들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우리는 악하고 무가치한 것들, 비뚤어진 마음, 이웃을 은밀히 비난함, 교만한 마음, 거짓말 등을 다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그런 악들을 다 멀리해야 한다.

102편: 곤고한 자를 긍휼히 여기소서

[1-3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특히 괴로운 날에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신다. ‘냉과리’라는 원어(모케드 ד������וֹמ)는 ‘불타는 덩어리’라는 뜻이다. 우리말에 ‘냉과리’는 덜 타서 연기와 냄새가 나는 숯을 가리킨다. 시편 저자는 그의 날이 연기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짐같고 그의 뼈들이 불타는 덩어리같이 고통스러웠지만, 낙망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4-7절]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Pelican)[사다새--물고기 잡아먹는 부리 긴 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낙심하였으며 식욕도 잃었고 또 탄식 중에 그의 살이 뼈에 붙을 정도로 야위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자신을 “광야의 사다새,” “황폐한 곳의 부엉이,” “밤을 새우는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에 비유한다. 그것은 아마 피신 중인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8-11절]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이는]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섞었사옴이며]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원수들은 잠시 동안이 아니고 한두 번이 아니고 온종일 또 날마다 성도를 비방하고 욕하였다. 또 그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사리에 맞게 제시하는 인격자들이 아니고, 미친듯이 날뛰며 맹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 논리와 사리를 중시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맹세하며 악을 행하는 것은 심히 악한 것이다.

원문에 9절 초두의 ‘왜냐하면’이라는 말(키)은 원수들의 비방의 이유를 보인다. 시편 저자는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분노 때문임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그는 땅에 끓어 앉아 눈물로 회개하며 재를 먹고 눈물을 마셨다. 그러나 그것이 더 원수들의 비방의 이유가 되었다. 원문에 10절 앞에도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죄에 대해 무섭게 징책하셨다. 그는 그를 들어 던지셨다. 그의 날은 거의 끝나는 것 같았고, 그는 심히 쇠해졌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12-13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인간의 쇠약하여 죽음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조한다. 원문 12절의 첫자(웨)는 ‘그러나’로 번역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시기 때문이다. 또 시편 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시온 전체, 즉 예루살렘 성 전체가 고난 중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키실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14-15절] [이는]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카난)(좋아함이니이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원문 1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때가 된 까닭은 하나님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했고 그 티끌도 좋아하며 또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의 이름,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무시하고 좋아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았으나 그들이 변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변화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시는 징조로 여겨진다는 뜻일 것이다.

[16-17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또 시편 저자는 그들의 이런 변화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셨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과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재건 등에서 나타났고 보다 깊게는 신약교회의 건립에서 나타났다. 또 시편 저자는 세상 사람들은 없는 자들을 무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고 말한다.

[18절]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일’은 앞절들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며 열방들이 그를 경외하게 되는 일을 가리키며, ‘장래 세대’는 신약시대를 포함할 것이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은 신약교회의 설립을 암시한다. 이처럼 시편 저자의 증거는 그의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를 내다보았다고 본다. 그러면 ‘창조함을 받을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새 피조물이 될 신약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약 성도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한다.

[19-22절]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내려다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원문 19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땅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내려다보시고 그의 기쁘신 뜻을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시고 감찰하시는 목적은 갇힌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들을 해방하셔서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며, 그 목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다(엡 1:6, 12, 14). 구원받은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은혜를 증거할 것이다. 그때에, 즉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 곧 신약시대에 온 세상의 민족들이 모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상당히 이루어졌음을 본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의 섭리의 목표이다.

[23-24a절]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시편 저자는 다시 자신에 관해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셨고 그의 날을 단촉(短促)[단축]케 하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우리가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영양 있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영양제를 먹고 규칙적 운동을 하고 의학적 치료도 받지만, 우리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야 한다.

[24b-27절]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또다시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해 말한다. 그가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해 말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의 영원하신 생명에 근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된 천지는 영원하지 않고 지금 옷같이 낡아지고 있고 어느 날 바꾸어야 할 상태에 있다. 그러나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언제나 변함이 없이 동일하시다.

[28절]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영생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은 택하신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요 6:40; 딛 1:1-3).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에 근거한다. 사람은 범죄함으로 죽게 되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시편 10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큰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우리는 큰 고난 중에, 몸이 쇠하고 고통이 심하고 심신이 연약하고 외롭고 쓸쓸하며 원수들의 비방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또 고난 중에 진심으로 철저히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둘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고 의지하자. 영원하신 하나님, 긍휼히 많으신 그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시다. 우리는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은혜와 긍휼로 또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찬송하며 바라고 의지하고 온전히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복락을 믿고 사모하며 소망하자. 우리는 낡아지고 쇠해지는 세상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생의 약속을 붙들고 소망하며 오직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자.

103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함

[1-5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聖號)[거룩하신 이름]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인자(仁慈)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선하게 대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를 찬송하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마다 진심으로 그를 찬송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택들을 열거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한다. ‘모든 병’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병까지도 포함할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그는 영원한 멸망의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인자(仁慈)와 긍휼로 자신에게 관을 씌우셨다고 말한다. 죄사함과 병 치료와 생명 구원은 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서 나왔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자기의 소원을 만족케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하는 것들 이상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셨다고 말한다. 독수리는 언제나 지치지 않는 힘의 상징이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날마다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

[6-10절]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장이셔서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의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변호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신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의 길들을 모세에게, 그의 행사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다고 말한다. 모세가 받은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듣고 체험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의 길을 구하며 행하는 자들에게는 은혜가 된다. 또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다. 자비는, 죄의 결과인 불행 아래 있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며,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베푸시는 호의이다. 지옥 갈 죄인들이 죄사함과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천국 기업을 상속받는 것이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다. 노(怒)는 하나님의 의(義)의 한 속성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실수가 많고 흠과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하시다. 그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항상 경책하지 않으시고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공의로 갚지 않으셨다.

[11-14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다윗은 자신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고 그의 진노와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사람의 용서는 심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한 용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나간 많은 죄들을 기억하지 않으시며(사 43:25) 우리의 모든 죄들을 깊은 바다에 던지셨다(미 7:19).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은,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긍휼히 여기는 다윗의 모습에서 나타나 있고(삼하 18장),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측은히 여겨 영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눅 15:11-32).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를 경외하는 자들, 곧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 사람은 몸도 마음도 약한 존재이다. 먹어야 힘을 얻고 병에 걸리기도 잘 한다. 또 외로움과 슬픔을 잘 탄다. 게다가, 죄악된 성향이 있고 결심과 의지가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살고자 결심하며 애쓸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15-18절]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풀은 뿌리에 따라 1년 살이 풀, 2년 살이 풀, 다년 살이 풀이 있지만, 땅 위의 그 줄기 부분은 보통 1년 살고 말라버린다. 또 그 꽃도 필 때는 아름답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진다. 인생이 그와 같아서, 일평생 수고하여 영광을 성취하여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여 곧 쇠하여지고 마침내 죽음의 시간을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는 영원하시다. 그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자기의 맘대로 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를 인정하고 의지하고 두려워하며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고 행한다. 보수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입장이며 그것은 바른 길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와 긍휼에 사람의 구원의 소망이 있다. 또 그의 영원하신 의(義)는 사람에게 구원이 된다. 그 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 있다.

[19-22절]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나님께서는 섭리자 곧 왕이시다. 그는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만유를 통치하신다. 다윗은 또 천사들에 대해 증거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다. 창세기 1장에 천사 창조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아마 천지 창조의 7일 중 첫째 날에 지음을 받았을 것이다. 골로새서 1:16은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천사들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또 천사들은 능력이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우주를 빠르게,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 또 전쟁도 수행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을 행하며 그의 말씀을 이룬다. 다윗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천사들이 다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우리를 죄와 파멸에서 구원하신 목적이다(사 43:21; 엡 1:6, 14).

시편 10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그를 찬송하자. 그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고 우리의 심신의 질병을 치료해주셨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셨고 좋은 것들로 우리의 삶에 채워주셨다.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이 다 그에게서 왔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회복케 하셨고 다시 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특히 우리를 향해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셨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셨다. 그는 우리의 미련하고 부족한 행위들에 대해 공의로 벌하지 않으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들을 사하셨고 여러 번 새롭게 기회를 주셨다. 그는 우리의 죄성과 심신의 연약성을 아시고 우리가 풀과 같고 우리의 기쁨과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음을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인자와 긍휼을 늘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이 풍성한 은혜와 인자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13절,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7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자. 

104편: 창조와 섭리의 일들을 찬송함

[1-4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혹은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며”(LXX, KJV)].

시편 저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심히 크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다고 증거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광대한 우주보다 크시며 그의 지혜와 능력도 그러하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시며 가장 큰 권위를 입으셨다. 그는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셨다. 빛은 도덕적 완전성을 포함한다. 또 하늘은 크고 넓으며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나님께서는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의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신다. 대기 중 수증기량은 약 14조 4,560억톤이라고 하며 천국은 그 공중 위에 위치한다고 보인다. 또 그는 구름이나 바람을 자유로이 사용하신다. 그는 바람을 그의 사자로 삼으시고 불을 그의 사역자로 삼으신다. 그는 폭풍도 벼락도 사용하신다.

[5-9절]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그것들(물들)이 산들로 오르고 골짜기들로 내려가서 주께서 그것들을 위해 정하신 곳에 이르나이다](KJV, NIV).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다. 땅은 둥근 공 같고 팽이처럼 하루에 한 바퀴씩 시속 약 1,670킬로미터로 돌고, 또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1년에 한 바퀴씩 시속 약 10만 7천 킬로미터로 돈다고 한다. 그러나 땅은 어지럽지 않으며 그 기초는 튼튼하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탁월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며 그것이 산들로 오르고 골짜기들로 내려가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 정하신 곳에 이르렀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던 첫째 날의 광경을 묘사한 것 같다. 창세기 1:9-1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다. 그는 바닷물의 경계를 정하여 주셨고 바닷물이 넘쳐 육지로 덮쳐 오지 못하게 하셨다.

[10-18절]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雨澤)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하나님께서는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신다. 땅 속에는 물줄기가 있고 그것이 터져 샘이 되고 샘들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모여 시냇물이 되어 흐른다. 들짐승들은 그 물을 마시며 들나귀들도 목마름을 해소하며 공중의 새들은 그 물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지절거린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듯이 비를 내리신다. 그가 행하신 일들의 결과는 땅에 풍성하다. 식물들은 새싹을 내고 풀들은 자라고 꽃들을 피고 열매들을 맺힌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을 위한 풀들과 사람을 위한 채소들을 자라게 하신다(창 1:29-30). 그는 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감람유 같은 기름을 바르며 빵이나 밥을 먹고 몸과 마음에 힘을 얻는다. 여호와의 나무들, 즉 그가 만드시고 심으시고 기르시는 나무들, 예를 들어 레바논의 백향목 같은 나무들은 비를 잘 받아 크게 잘 자랐다. 새들은 그 나무들 속에 깃을 들이며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았다. 높은 산들은 산양들의 숙소와 놀이터가 되고 바위는 너구리들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었다.

[19-23절]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 굴혈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달을 만드셨고 달로 절기를 정하셨다. 사람들은 달의 변화를 따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계산하였고 한 해의 계절들을 예측했으며 농사짓는 데 활용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해가 일정하게 뜨고 지게 하셨다.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라고 불렀다. 또 한 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만들고 또 24절기도 만들었다. 그것은 한 해씩 비슷하게 반복되며 거기서 1년이라는 단위가 나왔다. 또 하나님께서는 흑암을 만드셔서 밤이 되게 하셨다. 해가 지면 밤이 시작된다. 밤은 사람들에게 휴식의 시간이지만, 많은 짐승들에게는 활동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삼림의 모든 짐승들은 기어 나온다. 젊은 사자들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먹이를 사냥한다. 시편 저자는 사자가 그 먹이를 하나님께 구한다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자이시다. 그러나 해가 돋아 아침이 되면 짐승들은 물러가서 자기의 굴들에 눕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한다. 낮은 짐승들에게 휴식의 시간이지만, 사람들에게는 활동하는 시간이다.

[24-27절]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천지만물을 만드셨고 그의 창조물들은 온 땅에 가득하다. 앞절들에 말한 대로, 하늘과 땅, 빛과 구름과 바람, 물과 샘과 강, 풀과 채소와 나무, 각종 짐승들, 해와 달 등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다.

시편 저자는 또 바다와 거기에 사는 생물들에 대해 말한다. 크고 넓은 바다 속에는 크고 작은 생물들이 무수하다. 배들이 거기 다니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악어들이 그 속에서 논다. 지구 표면의 약 70퍼센트가 바다이며 땅들은 거대한 바다에 큰 섬들 같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작은 그 모든 바다 생물들을 다 지으셨다. 또 그는 그것들을 다 섭리하신다. 시편 저자는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보존하시고 모든 생물들을 기르시고 먹이신다.

[28-30절]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물들의 양식을 주관하신다. 그가 모든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실 때 그것들은 그것을 먹고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그것들로 배부르게 하시고 만족케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식 공급을 중단하시면 모든 생물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들의 양식뿐 아니라, 그것들의 생명도 주관하신다. 그것들의 호흡 곧 생명을 취할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하시면 그것들은 곧 죽는다. ‘본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물이 흙으로 지은 바 되었음을 증거한다(창 2:19). 시편 저자는 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地面)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천지 창조 때에도 활동하셨다(창 1:2).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과 세상의 회복 때에도 성령으로 활동하신다.

[31-35절]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저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즉 연기가 발하도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영광과, 그의 공의와 긍휼의 영광이 영원하시다. 그는 자신의 행한 일들로 인해 즐거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엄위하셔서 그가 땅을 보시면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시면 산들이 연기를 발할 것이다. 세상에는 죄 때문에 슬픔과 탄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지구에서 소멸하실 것이며 죄인들이 없어질 때에 땅에는 기쁨과 평강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평생 하나님을 찬송하며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한다. 세상에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마다 하나님을 즐거이,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묵상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는 또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신다.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을 의지함, 하나님을 체험함, 그의 구원과 보호와 기도 응답이 그를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시편 10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일들로 가득하다. 13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24절,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빛, 하늘, 구름, 바람, 불, 땅, 바다, 산, 골짜기, 샘, 들짐승들, 새들, 풀들, 채소들, 포도주, 기름, 곡식들, 나무들, 학, 달, 해 등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며 섭리하시는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것들의 생명을 주관하신다. 27-29절,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그는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신다. 그는 특히 죄인들을 멸하신다. 그는 공의의 재판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지극히 위대하시고 존귀와 권위를 입으신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며 특히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평생 찬송하고 의지하고 소망하며 순종하자. 33절,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하나님 안에 참 평안과 기쁨과 영생이 있다.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의 계명들과 모든 교훈대로 바르게만 살자.

105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함

[1-4절]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奇事)[기적들]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하나님의 행사와 그의 모든 기적들이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공의로 징벌하시고 심판하신 일들과 그가 자기 백성을 긍휼과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보호하신 일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지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목적도 있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택한 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고의 자랑거리이시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홀로 섭리하시는 자이시며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능력을 주신다. 사람이 일하는 데 필요한 힘은 음식을 통해 얻지만, 믿음과 소망, 순종과 봉사, 헌신, 전도 등을 하기 위한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힘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참된 만족을 주실 수 있고 또 영원히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5-7절]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야곱은 약점과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야곱의 자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적 통치권을 깨닫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8-10절]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고 구원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다. 그 내용은 그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과 천하 만민이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창 17, 26, 28장).

하나님의 언약은 몇 가지 성격을 띤다. 첫째로, 그것은 주권적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며 ‘명하신 말씀’이라고 불린다. 언약과 명령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둘째로,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셨고 그 자손들을 구속(救贖)하셨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제사 제도를 통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증거되었다.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단지 죄를 깨닫게만 하지만, 율법의 한 내용인 제사 제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암시한다. 셋째로, 그것은 영원하다. 그 언약은 “천대(千代)에 명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은혜 언약은 영원하고 불변적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언약 아래서 동일한 성격의 구원을 받았고 그러므로 신약 성도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롬 4:16; 갈 3:29).

[11-15절]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때에 저희 인수(人數)가 적어 매우 영성(零星)하며[적어]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遊離)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을 때 그들의 가족 수는 매우 적었다. 야곱 때에라도 그들의 총수는 66명 정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에도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나그네처럼 유리하며 방황하였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실 천국을 예표하였다. 성도들의 기업은 천국,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천국의 삶은 더 이상 나그네와 같이 유리, 방황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그네처럼 유리할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셨다. 그들이 이방 세계에서 때때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러 내려갔다가 아내를 빼앗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창 12:17). 또 그가 그랄에서도 아내를 빼앗겼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 꿈에 그랄 왕에게 나타나 그를 위협하셨다(창 20:3).

[16-20절]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과 그 주위의 땅들에 극심한 기근을 주셨다. 그는 이때를 대비하여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다. 그 사람이 요셉이었다. 그는 형들의 미움으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그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그를 먼저 보내신 것이었다(창 45:5). 그러나 요셉은 종이 되었고 또 그가 팔린 집 주인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요셉의 종살이와 옥살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이었다. 젊을 때 그에게 주셨던 꿈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요셉은 고난의 여정을 가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의 기간이었다.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애굽 왕 바로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하였고 그를 자유케 하였다.

[21-25절]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사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또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종살이하고 감옥살이하던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애굽 왕은 그를 자기 집의 주관자로 삼았고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모든 장관을 임의로 통제하며 또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했다. 요셉은 야곱과 그의 형제들을 애굽으로 불러 우거하게 하였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지 22년쯤 되는 때이었다. 그 후 그들이 430년간 애굽에 거주하였던 것은 야곱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서 크게 번성케 하셨으나, 그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하셨다.

[26-36절] 또 그 종 모세와 그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저희가 그 백성 중에 여호와의 표징을 보이고 함 땅에서 기사를 행하였도다.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어둡게 하시니 그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그의 말씀에 반항치 못하였도다]. 저희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저희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그 땅에 개구리가 번성하여 왕의 궁실에도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파리떼가 오며 저희 사경에 이가 생겼도다. 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저희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 저희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저희 사경의 나무를 찍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황충과 무수한 메뚜기가 이르러 저희 땅에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 밭에 열매를 먹었도다. 여호와께서 또 저희 땅의 모든 장자를 치시니 곧 저희 모든 기력의 시작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미움과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종 모세와 아론을 보내셨고 그들은 그들 중에서 그의 기적들을 보였다. 그는 흑암을 보내셔서 어둡게 하셨다. 또 그는 그들의 물들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셨고 그 물고기들을 죽이셨다. 그 땅에는 개구리들이 번성하여 왕의 궁실에도 있었다. 또 파리떼가 왔고 사방에 이가 생겼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박을 내리셨고 그들의 땅에 화염을 내리셨다. 또 황충과 메뚜기가 이르렀고 땅의 모든 채소를 먹었고 밭의 열매를 먹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는 애굽 땅의 모든 장자를 치셨다. 그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여종의 장자까지, 심지어 가축의 첫새끼도 다 죽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었다.

[37-41절]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저희가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또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으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그들로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중노동에 시달렸던 대가이었다. 또 그들 중에는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큰 재앙을 당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여호와께서는 구름과 불 기둥으로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다. 구름은 낮의 뜨거운 햇볕을 가려 더위를 피할 그늘을 주고 불은 밤의 어두움을 밝혀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양식과 물을 주셨다. 장정만 60만명이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함하면 200만명 이상일 그 회중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때 날마다 메추라기 떼를 오게 하여 먹게 하셨고, 날마다 하늘의 양식 곧 만나를 주어 먹게 하셨고, 또 반석에서 물이 강처럼 흐르게 하여 마시게 하셨다.

[42-45절]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그 백성으로 즐거이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애굽에서 나온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이방인들의 땅이었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고 가나안 땅의 족속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을 주신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었다.

시편 10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과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셨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감사하며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항상 구하자. 3-4절,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힘과 능력이 필요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신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목적은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셨다(45절). 우리는 죄 많고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받았고 복된 천국을 기업으로 약속 받은 것을 참으로 감사하며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소망하며 그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자. 


106편: 이스라엘의 거역함과 하나님의 인자하심

[1-2절]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는]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仁慈)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뉘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事蹟)을 전파하며 그 영예를 다 광포할꼬. 

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인정하는 것이며, 찬송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이다.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그의 능력의 일들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일을 전파하려 한다.

[3절]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에 맞는 것을 말한다. 죽음과 모든 불행은 죄에서 왔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악을 버리고 의를 행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는 것은 기본 진리이다.

[4-5절]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라촌)[호의](KJV, NASB, NIV)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권고하사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

사람이 죄와 불행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 때문이다. 또 죄와 불행으로부터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형통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시편 저자는 그런 형통을 보며 그러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뻐하기를 원한다.

[6-7절] 우리가 열조와 함께[열조처럼](NASB, NIV) 범죄하여 사특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주의 많은 인자(仁慈)를 기억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베푸셨고 고센 땅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해 많은 인자를 베푸셨고 그의 구별된 호의를 보이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자비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홍해에서 바로의 마병들이 가까이 올 때에 심히 두려워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하며 모세를 원망하며 부르짖었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8-12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그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매 저희를 인도하여 바다 지나기를 광야를 지남 같게 하사 저희를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속(救贖)하셨고 저희 대적은 물이 덮으매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그들이 믿음과 순종이 없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며 그의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셨다. 그는 홍해를 꾸짖으셨고 그 물을 마르게 하셨다. 홍해는 마른 땅같이 변했고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를 광야같이 지나갔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다. 이스라엘 자손을 미워했던 애굽 왕 바로와 그 장관들의 병거들은 홍해까지 쫓아왔으나, 바닷물은 애굽 군대를 덮었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들을 삼켰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에게 찬송했다.

[13-15절] 저희가 미구(未久)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행사를 잊어버렸고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그들은 기적의 양식인 만나로 만족하지 않았고 고기를 먹기를 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였고 그의 능력을 의심하였다. 그것은 불신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들을 징벌하셨다.

[16-18절] 저희가 진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매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으며 불이 그 당 중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을 살랐도다.

고라와 그 동료들은 진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고 대적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비난과 도전을 불쾌하게 여기셨고 진노하셨다. 그는 땅을 갈라 그들을 삼키게 하셨다.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고 그들의 권위와 지도를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한 것이었다.

[19-23절] 저희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만든 우상을 숭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그는 함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일을 행하신 자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지 몇 날 되지 않아서 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를 했다. 그것은 제2계명을 범한 큰 죄악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택하신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다.

[24-27절] 저희가 낙토(에레츠 케므다)[기뻐할 땅]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이러므로 저가 맹세하시기를 저희로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또 그 후손을 열방 중에 엎드러뜨리며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멸시하며 또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다. 열두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은 믿음 있는 보고를 했지만, 나머지 열 명은 그렇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청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광야에 엎더지고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고 맹세하셨다.

[28-31절]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나 처벌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정하였으니 대대로 무궁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 함께 먹었고 그 신들에게 절했고 그들과 음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알브올에게 연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셔서 백성의 모든 지도자들을 대낮에 목매어 달게 하셨고 회중 가운데 염병을 보내셔서 2만 4천명이나 죽임을 당케 하셨다. 그때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악행하는 자를 현장에서 죽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염병이 그쳤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32-33절]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해]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루코)[그의 성령](BDB, NASB, NIV)을 거역함을20)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바타)[성급히 말하였음, 경솔히 말하였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거역했고 모세는 그들의 패역함에 노하여 경솔히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솔한 말과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그를 징벌하셨다. 모세는 이 일 때문에, 그가 그렇게 사모했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의 처분은 참으로 엄하였다.

[34-39절]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異族)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邪神)(쉐딤)[귀신들]에게 제사하였도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 저희는 그 행위로 더러워지며 그 행동이 음탕하도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멸하지 않았고 이방 민족들과 혼합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이방인들의 행위를 배웠고 그들의 우상들을 섬겼고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것을 경고하셨었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의 자녀들을 귀신들에게 제물로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가나안 땅은 다시 피로 더러워졌다.

[40-43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 기업을 미워하사 저희를 열방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저희를 치리하였도다. 저희가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 수하에 복종케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이방인들의 손에 붙이셨고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수들의 압박과 학대를 받았고 그 손 아래 복종케 되었다. 그는 여러 번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셨으나, 그들은 자기 꾀로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낮아짐을 당하였다.

[44-46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眷顧)하시며[돌아보시며]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저희로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시며 그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그 소리를 들으셨고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 그는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로 정복자들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다.

[47-48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 중에서 모으시고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로 이방 나라들에 흩어져 있으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시다.


시편 10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1절,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많은 인자하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찬송하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난날들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의만 행하자. 3절,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은 언제나 진리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죄를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죄는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죄 때문에 질병과 슬픔과 싸움과 온갖 불행한 일들과 죽음이 왔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의와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평안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주신 그의 택하신 자녀들의 형통함과 그의 나라의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하자. 5절,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다.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의 인자하심 때문에 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큰복을 주셨고 그 외의 모든 복들과 기쁨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