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강해
김효성 목사
2020년 4월 2일 수정
머리말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고 보인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차례
1장: 미련한 자는 지혜를 멸시함
2장: 지혜가 우리를 악에서 지킴
3장: 지혜가 복됨
4장: 지혜를 얻으라
5장: 음녀를 피하라
6장: 근면, 교만, 거짓, 간음에 대해
7장: 음녀의 길은 사망임
8장: 지혜가 부른다
9장: 참된 지혜
10장: 지혜, 근면, 사랑, 입술 제어
11장: 겸손, 의, 신중, 구제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
13장: 교만, 친구, 자녀 징계
14장: 지혜로운 여인, 분노, 구제, 의
15장: 유순한 대답, 사랑, 분노
16장: 하나님 의지, 의, 교만, 노 억제
17장: 화목, 용서, 말 절제
18장: 게으름, 겸손, 신중함, 아내
19장: 노, 아내, 구제, 인자(仁慈)
20장: 술, 잠, 말
21장: 의, 별거, 구제
22장: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
23장: 물질, 자녀 징계, 술
24장: 의인, 결혼 준비, 게으름
25장: 말, 충성, 온유, 원수 사랑, 별거
26장: 미련한 자, 게으른 자
27장: 면책, 충고, 목양
28장: 의인, 악인 칭찬, 경책, 구제
29장: 의인, 왕, 자녀징계
30장: 아굴의 잠언
31장: 르무엘 왕의 잠언
서론
잠언의 히브리어 명칭(미슐레 쉘로모)은 ‘솔로몬의 잠언들’이다. ‘잠언’이라는 원어(마솰)는 ‘비교, 비유’라는 뜻으로 ‘진리의 간결한 교훈’을 가리킨다.
잠언의 대부분의 저자는 솔로몬이다. 잠언 1:1-9:18과 10:1-22:16과 25:1-29:27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솔로몬은 잠언을 3천개 이상 썼으나(왕상 4:32), 이 책에는 800절만 나온다. 솔로몬이 썼으나 후에 히스기야 시대에 편집된 것들도 있다(잠 25-29장). 그 외에는, 야게의 아들 아굴이 쓴 것(30장)과 르무엘 왕이 쓴 것(31장)이 있고, 24:23-34의 내용은 “지혜로운 자들(하카밈)”에게 돌려지는 것 같다. 아굴이나 르무엘이 누구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잠언의 정경성(正經性)은 그것이 구약성경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증거되고, 디모데후서 3:16 같은 말씀에서 증거되지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암시하거나 증거 혹은 인용하신 데서도 확증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 6:11(잠 30:8), 눅 7:35(잠 8장), 눅 14:7-9(잠 25:6-7), 롬 12:20(잠 25:21-22), 히 12:5-6(잠 3:11- 12), 약 4:6(잠 3:34), 벧전 2:17(잠 24:21), 벧전 4:8(잠 10:12), 벧전 4:18(잠 11:31), 벧후 2:22(잠 26:11).1)
잠언의 특징적 주제는 지혜이다. 지혜는 진주나 은이나 금보다 더 귀하다(3, 8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과 근본이다(1, 9장). 의로움, 거룩함, 겸손, 자비, 구제, 화평, 근면, 말의 절제, 자녀 징계, 좋은 아내 등이 지혜의 예들이다. 지혜의 결과는 생명이다(3장).
잠언의 교훈들은 주로 세상에서의 실제적 지혜에 관한 것들이지만, 내세와 영생에 대한 진리도 있다. 예를 들면, 잠언 12:28,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언 15:2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지옥]를 떠나게 되느니라.”2)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11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1장: 미련한 자는 지혜를 멸시함
1-9절, 여호와를 경외함
[1-6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메짐마 사려 깊음, 분별력)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라고 증거한다. 우리는 이 증거가 진실한 증거인 줄 안다. 성경은 진실한 증거의 책이다. 그러나 잠언을 포함하여 모든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며(딤후 3:16) “다 한 목자의 주신 바”이다(전 12: 11). 물론 우리는 신약성경도 동일한 권위로 인쳐진 말씀이라고 믿는다(살후 2:15; 계 22:19-20). 모든 성경의 참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잠언은 진리의 간결한 교훈들을 모은 책이다. 솔로몬은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기 위한 것이며 바르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혜와 경건과 도덕성은 함께 간다. 잠언의 지혜는 이 세상에서의 실제적 지혜, 즉 실생활의 지혜이다. 그 특징은 경건과 의, 즉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어서 이 세상에서도 평안과 건강과 물질적 윤택의 복을 받고 장차 영생에 이르지만,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는 어리석은 자이어서 이 세상에서도 불행하고 또 장차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사람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갓난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익힌다. 조금 크면 동그라미나 네모나 세모 등의 모양을 구별하고 색깔을 구별하며 숫자와 글자를 배운다. 또 더 크면서 많은 지식을 배우며 습득한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식의 근본이다. ‘근본’이라는 원어(레쉬스)는 ‘시작, 첫 번째의 것’이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이 첫 번째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가 영원히 스스로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심을 알고 그의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위엄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엎드려 경배하는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시작, 즉 가장 첫째로 알아야 할 지식이며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홀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또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씀한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참 지혜를 존중하고 그 지혜를 사모하지만,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훈계’라는 원어(무사르)는 ‘훈계, 징계, 훈련’이라는 뜻이 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고 또 부도덕한 데에 떨어질 것이다. 지혜는 사람으로 의와 선을 행케 하고 세상에서의 복과 장차 영생에 이르게 하지만, 미련함은 사람으로 죄를 범하게 만들고 세상에서의 불행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8-9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본문은 바른 자녀 교육에 대해 말한다. 첫째로, 자녀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자녀 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네 아비의 훈계’ ‘네 어미의 법’이라는 말씀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들을 바르게 교훈하고 교육해야 함을 보인다. 신명기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 . .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 교육은 국가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고 심지어 교회에 맡겨진 일도 아니며,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맡겨진 일이다.
둘째로, 자녀 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 ‘네 아비의 훈계’와 ‘네 어미의 법’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앞절에 말한 ‘여호와를 경외함’을 가리킨다. 그것은 넓게는 잠언의 모든 내용과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 교육의 바른 내용이다.
셋째로, 자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도록 교훈하고 훈계해야 한다. 물론 부모가 먼저 경건하고 의롭게 살면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넷째로, 자녀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솔로몬은,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은 지킨 자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과 같고 그의 목의 금사슬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이다. 그것은 천천금은보다 더 낫다(시 119:72). 그러므로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가장 큰 복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경건 교육의 가치는 참으로 크다.
우리는 잠언을 통해 지혜의 교훈을 잘 받아 지혜롭고 경건하고 의로운 자가 되자.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교훈을 듣고 실천하자. 우리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자. 모든 부모는 자녀 교육의 책임을 다하자.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고 그것을 다 지키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자.
10-23절, 이(利)를 탐하는 자
[10-19절] 내 아들아, 악한 자(캇타임)[죄인들]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알 토베)[찬성하지 말라](NASB).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무릇 이(利)를 탐하는 자(보체아 바차)[‘폭력으로 이익을 얻는 자’(BDB), ‘불의의 이익을 취하는 자’(Langenscheidt)]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우리는 악한 자들을 따르지 말고 찬성하지 말아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시 1:1). 본문은 악한 자들의 특징을 묘사한다. 그들은 은밀히 남을 해치는 자이다(11-12절). 또 그들은 남의 피를 흘리며 남을 죽이는 자이다(16절). 또 그들은 불의의 재물을 취하는 자들이다(13-14, 19절). 악한 자들은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려 하지 않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 하고,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 본문은 악한 자들의 종말을 증거한다(18-19절). 악한 자들은 결국 생명을 잃고 죽고 만다. 그것은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가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이다(시 1:6).
[20-23절]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의 주님이시다. 골로새서 2:2-3,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 전도와 참된 설교로 증거된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공개적이다. 악인들은 비밀이 많고 그들은 이웃을 속이고 거짓되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말을 잘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되거나 이중적이지 않고 솔직하고 진실하며 공개적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7), 또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다(요 18:2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不淨)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고 말하였다(살전 2:3, 5).
본문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고 한다. ‘어리석다’는 원어(페시)는 ‘단순하다’는 뜻이다. 단순한 자는 악한 꾀임에 잘 빠지는 어리석은 자이다. 단순한 자들, 거만한 자들, 미련한 자들은 다 돌이켜야 한다. 모든 죄인은 다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죄악에서 온전히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신’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가리키든지 혹은 ‘지혜의 영’ 곧 지혜의 정신(NASB) 혹은 지혜의 심령(NIV)을 가리키는 것 같다.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성령과 지혜의 정신을 주시며 또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에베소서 1:17-19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하였다.
우리는 악한 자가 되지 말고 죄인들을 좇지 말자. 우리는 그들의 죄악된 생각에 동의하지도 말고 찬성하지도 말며 그들에게 굴복하지 말자. 또 우리는 불의의 이익을 취하지 말자. 우리는 자신의 노동의 대가인 정당한 이익만 취해야 한다. 속여서 취하는 이익은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할 뿐이다. 우리는 범사에 깨끗해야 하며 특히 돈에 대해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죄 짓는 일이 되며 결국 자기 생명을 잃게 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악한 것을 생각지 말고 불의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13:5-6). 우리는 불의의 이익을 구하며 취하려는 모든 탐심을 버려야 한다(약 1:14-15).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거절하지 말고 사모하고 규칙적으로 읽고 듣고 믿자. 우리는 거만함과 미련함을 버리고 지혜의 책망을 듣고 온전히 회개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지혜의 정신을 주시고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지혜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딤후 3:15), 또 모든 경건한 성도들에게 원수보다, 모든 스승보다, 노인보다 더 지혜롭고 명철하게 한다.
24-33절, 나를 듣는 자
[24-28절]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본문은 평소에, 평안할 때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의 말을 거절한 것에 대해 말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떠나라, 의롭고 선하게 살라’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말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그것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였고 하나님의 책망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었다.
본문은 그들이 재앙을 만날 때와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대해 말한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재앙의 때가, 심각한 재앙의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병이나 경제적 파탄일 수 있고 화재나 폭발이나 대형사고일 수 있고 전쟁이나 지진이나 천재지변일 수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들, 즉 공의의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두려운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을 그 재앙에 버려두실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의 손을 거두실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 그를 찾아야 한다(사 55:6).
[29-33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본문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증거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받지 않았다. 또 본문은 ‘어리석은 자의 퇴보’ ‘미련한 자의 안일’이라는 표현을 한다. ‘퇴보’라는 원어(메슈바)는 ‘변절’이라는 뜻이며 ‘안일’이라는 원어(솰와)는 ‘안이함’이라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신앙의 변절자들이며 안이한 자들이다.
본문은 어리석은 자의 결말에 대해 증거한다. 어리석은 자의 행위는 불경건이며 인본주의이고 자기 중심, 세상 중심, 물질 중심, 쾌락 중심이며 그 열매는 세상과 함께 다 불타고 멸망하며 허무하다. 그들은 결국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지혜로운 자는 어떤 자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과 교훈을 듣는 자들이다. “나를 듣는 자.” 지혜와 어리석음의 경계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다.
지혜로운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본문은 말한다. ‘안연히’라는 원어는 ‘안전하게’라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안전함이 없지만, 지혜자에게는 안전함이 있다. 또 지혜자는 재앙의 두려움 없이 평안히 산다. 재앙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것이요 의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는 죽음과 멸망이 있다. 그러나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다. 그들은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할 것이다. 그들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평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진지하게 듣고 그를 사모하며 그의 말씀의 교훈과 책망을 달게 받고 그 말씀을 지키며 힘써 순종하자.
2장: 지혜가 우리를 악에서 지킴
[1-5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본문은 지혜를 얻는 길을 증거한다. 우리가 참된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다. 또 사람은 지혜와 지식을 간절히 사모하며 원해야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열심을 낸다. 만일 그런 부지런함과 그런 열심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그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구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본문은 사람이 그렇게 간절히 지혜를 구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곧 지혜이시며, 그를 아는 것이 지혜요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6-7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그는 그의 충만한 지혜와 능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는 지혜를 구하는 죄인들에게 지혜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완전한 지혜’라는 원어(투쉬야)는 ‘건전하고 유능한 지혜, 그로 말미암은 영속적인 성공’을 의미한다(BDB). 의로운 자는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얻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재앙이나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함을 얻을 것이다.
[8-9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시느니라](KJV, NASB). 그런즉(아즈)[그때에]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성도들은 의와 공평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신다. 구약시대의 한 예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침으로 행실의 의를 지켰다. 비록 그가 감옥에 얼마 동안 갇혔으나,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고 그의 기이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성도들은 정직하게 행하여 완전한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할 때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선한 길’이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 복이 되는 길을 말한다. 본문의 요점은, 사람이 정직하게 살면 지혜를 얻으며 또 그는 의와 선을 더욱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3:12).
[10-12절]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메짐마)[분별력]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사람이 의롭게 살려 힘쓰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완전한 지혜를 얻고 또 그럴 때 의와 선을 더욱 깨닫는데, 그것은 지혜가 그의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그의 영혼에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며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또 지혜와 명철은 우리를 보호하여 우리를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지키며 구원한다. 사람이 지혜와 명철과 분별력을 얻으면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보호와 구원을 얻는다. 그는 악한 자들의 길에 떨어지지 않고 악한 자가 되지 않고 악하게 행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13-15절]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악한 자들은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바른 길이며 복된 길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저버리고 무지와 거짓, 양심의 거리낌과 불행의 길로 행한다. 또 그들은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한다. 성도는 자신의 악을 통회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의 악을 탄식하며(사 66:2; 겔 9:4) 참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지만, 악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지고 그들의 행위는 패역하다. 즉 그들은 불순종적이며 반항적이다.
[16-19절]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지혜는 우리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한다. ‘음녀’라는 원어(잇솨 자라)는 ‘이상한 여자, 낯선 여자’라는 뜻이다(NASB). 정상적인 여자는 단정하고 순결을 지키며 남편과 자기 자녀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만, 이상한 여자는 단정치 않고 다른 이에게 마음과 눈길을 두며 가정에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그는 젊은 때의 짝을 버리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이다. 남편과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결혼 서약을 했을 것이지만, 그는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저버렸다. 그는 이제 남자들의 마음을 말로 유혹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이 세상의 음란 풍조를 멀리해야 한다. 음란 풍조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 퍼져나간다. 텔레비젼의 드라마들은 불륜의 주제로 넘쳐나고 젊은 가수들의 노래들과 춤들까지도 음란성이 많다.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인터넷은 음란의 바다이다. 성경은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6:9-10). 성도는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전 6:18).
음녀의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다. ‘음부(陰府)’라는 원어(레파임)는 ‘죽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음녀의 집은 잠시 동안 육신적 즐거움이 있겠지만, 사망과 멸망으로 향한다.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한다. 음행은 마약같이 중독성을 가져서, 남녀노소, 초신자, 직분자 할 것 없이 누구든지 거기에 빠지면 돌아오지 못하며 생명길을 잃고 말 것이다. 행음자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그러므로 성도는 음행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
[20절]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선한 자의 길은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베풀며 유익을 주는 길이다. 지혜는 선한 길을 알게 하는 정도가 아니고 선한 길을 걷게 한다. 또 지혜는 의인의 길 즉 인생의 정로를 지키게 한다. 지킨다는 말은 보수(保守)한다는 뜻이다. 보수주의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배교와 타협의 시대에 시대의 풍조에 따라 속화되지 않고 옛길, 바른 길을 지키는 입장은 바른 입장이며 좋은 입장이다.
[21-22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본문은 지혜가 선한 길, 의로운 길을 지키게 하는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의롭고 정직한 자가 땅에 거하고 악인이 땅에서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는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직하고 완전한 자는 땅에 거하고 땅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의인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다. 땅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곳이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땅은 본래 죄 없는 자들이 살도록 창조된 곳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악인들이 땅에 가득하게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땅에서 일시적 평안과 번영을 누리고 의인들은 일시적으로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악인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땅에서 제거될 것이다. 악인들의 일시적 평안과 번영은 결국 갑작스런 멸망으로 끝날 것이다. 이 땅은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전혀 없고 의인들만 영원히 거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금은보화를 구하듯이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풍성하게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더욱 지혜로운 자가 되며 또 더 의와 선을 깨닫고 의롭고 선한 자가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방패가 되셔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평안과 안전도 보장하실 것이다.
지혜는 우리에게 크게 유익하다. 그것은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며 건져준다. 또 지혜는 음란한 여자들로부터 우리를 건져준다. 성도는 음란한 시대의 풍조에 물들지 말아야 하고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지혜는 우리로 정직하고 선한 길, 의롭고 완전한 길을 걷는 자가 되게 한다. 또 지혜는 마침내 땅 곧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지혜를 붙들자. 우리는 지혜를 얻어 정직하고 선한 길을 걷다가 다 천국에 들어가자.
3장: 지혜가 복됨
1-10절, 그리하면
[1-2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본문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한다. 솔로몬의 이 교훈은 성령의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육신의 본성의 죄악성을 따라, 욕심을 따라, 세상의 풍조에 따라 행하기 쉽고 마귀의 시험에 떨어져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2절의 ‘그리하면’이라는 원어(키)는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성도가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할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장수(長壽)와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함이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장수(長壽)를 누린다. 장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사람들은 단명(短命)을 재앙이라고 보고 그것을 다 싫어한다. 사람들은 장수를 위해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며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장수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한다.
성도는 또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평안을 누린다.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심적 평안뿐 아니라, 육신의 건강과 경제적, 환경적 안정까지 들어 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문안 인사 속에는 이런 포괄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 ‘안녕’의 비결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3-4절]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는 선한 마음을 가리킨다. 악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살인자이다(요 8:4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다. 인자는 실상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이다. ‘진리’(에메스)는 진실, 성실을 가리킨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요 8:44). 본문은 그 덕성들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고 그것들을 우리의 목에 매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자(仁慈)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본문은,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은총’은 호의와 사랑을 가리킨다. 또 ‘귀중히 여김’이라는 원어(세켈 토브 בוֹט ל������������)는 ‘좋은 이해’라는 뜻으로 ‘좋은 평판과 인정’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사람이 악하고 거짓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사람들도 그를 멀리하고 배척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자하고 진실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욱 사랑하시고 그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해와 평판과 인정을 받을 것이다.
[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되 반심(半心)으로가 아니고 전심(全心)으로 해야 한다. 반심(半心)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와 명철, 지식과 실력, 건강과 재산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자시며 섭리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본문은 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주권적 섭리자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주권적 섭리자로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본문은 ‘범사’에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영적인 일이든지 육적인 일이든지, 개인적 일이든지 단체적 일, 즉 가정의 일이나 교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든지,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실상, 거기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도 나온다.
본문은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혹은 평탄케 하시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지도하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길 앞의 장애물을 피하게 하시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좋은 길, 선한 길, 유익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7-8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본문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적 지혜와 판단이나 처세술로 살지 말아야 한다.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불의와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 참 지혜이다. 실상 이것이 성경의 요점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또 사람이 참으로 악을 떠나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날 수 있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본문은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양약’이라는 원어(리프우스)는 ‘치료’(BDB, NASB), 혹은 ‘건강’(KJV, NIV)이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이 의와 선을 행하면 건강을 누릴 것이다. 본문은 “네 뼈속까지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출애굽기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사람의 건강은 단지 영양식을 하고 보약을 먹고 충분한 잠을 자고 규칙적 운동을 함으로써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지으면 건강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적인 건강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다.
[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원문에는, “네 재물로 또 네 모든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재물, 즉 우리의 돈과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실상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주신 모든 좋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네 소산물’이라는 원문은 ‘네 모든 소산물’이다. ‘소산물’이라는 원어(테부아)는 ‘소산’(product) 혹은 ‘수입’(income)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득과 수입의 첫열매, 즉 가장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정성으로 구별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바로 그런 것이다.
본문은,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한다. 물질로도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것은 죄 짓는 일이며 그럴 때 궁핍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에 무관심하고 자기들의 호화로운 집에 거주하는 것을 정죄하시며 그들의 물질 생활에 어려움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학 1:4-6). 또 그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말 3:8-9). 그러나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길 때,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유여함, 즉 양식의 풍족함과 은행 잔고의 풍성함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에 대해 풍성한 복을 약속하셨다(말 3:10). 또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사르밧 과부는 기근 동안에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왕상 17:12-1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지키자. 성경말씀을 읽고 듣기를 사모하자. 또 그것이 우리의 몸의 장수와 평안의 길임을 알자.
우리는 인자와 진실을 간직하자.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범사에 진실하자.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과 인정을 받자.
우리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받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것이다. 또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과 병의 치료도 주실 것이다.
또 우리는 정성껏 구별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 생활에 안정과 여유를 주실 것이다.
11-20절, 지혜의 유익
[11-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은 때때로 성경말씀을 읽을 때 오고(딤후 3:16)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성경적 설교를 통해 온다(딤후 4:2). 그것은 때때로 질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도, 또는 환경적 어려움으로 온다. ‘경히 여기고 싫어한다’는 말은 옛날에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러하였듯이 그것을 무시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신다. 징계와 저주는 다르다. 하나님의 징계는, 성도의 죄를 미워하시지만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표이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부모의 책망과 징계를 잘 받은 자녀가 좋은 인격자가 되며 선생의 책망과 징계를 잘 받은 학생이 좋은 학생이 되듯이,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은 사람은 좋은 성도가 된다. 그는 더욱 거룩하여진다. 히브리서 12:10-11,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3-15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자는 행복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의 일생이 결국 불행으로 끝날 것이다. 지혜를 얻은 자가 복된 이유는 지혜가 금이나 은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즉 돈과 물질적 부요가 행복의 한 요소이기는 하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입고 싶은 옷을 사 입을 수도 없다. 돈이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은 맞다.
그러나 지혜는 돈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이 세상에는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사람은, 돈만 가지곤,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없고, 또 죄씻음과 의(義), 영생과 부활과 천국을 얻지 못한다. 또 사람은, 돈만 가지곤, 예상하지 못하는 대형사고의 예방, 무서운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보장하지 못한다. 부자도 예상치 못한 큰 사고를 당하고 무서운 질병으로 죽는다. 그러나 지혜는 진리를 알게 하고 구원의 복을 얻게 하고 평안을 보장한다.
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며 우리의 사모하는 모든 것보다 낫다. 그 이유는 16절 이하에 나온다. 여인들은 대체로 진주목걸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여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장식품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아하고 사모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혜는 그 모든 것보다 귀하다.
[16-18절]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가 복되며 금과 은보다, 진주보다 나은 이유는 그 우편 손에 장수(長壽)가 있기 때문이다. 잠언 3:2는 우리가 하나님 계명에 순종하면 장수한다고 말했다. 본문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지혜이며 지혜는 영생의 길이다.
또 지혜의 좌편 손에는 부귀(富貴)가 있다. 부귀는 부요와 존귀를 말한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준다. 가난과 궁핍은 복이 아니다. 잠언 3:9-10도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의 창고가 가득 찰 것이라고 말했다. 경건한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었다(창 26:12-13).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토지 소산과 우양과 떡 반죽 그릇의 복을 받을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 꾸어주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신 28:2-6, 11-12).
지혜는 또 존귀함도 준다. 지혜자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얻을 것이다. 다니엘은 고난의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위기를 잘 극복하였고 그 후에는 더욱 높임과 존귀함을 얻었다(단 2:48; 3:30; 5:29). 또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며 그 지름길은 다 평강이다. 즐거움과 평안은 복된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데서 얻는 참 지혜는 평안의 길이다(사 48:18).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가운데 항상 기뻐함과 평안함을 누린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을 것이다(사 48:22).
[19-20절]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땅[지구]을 세우셨다. 지구는 공중에 떠 있는 약 6섹스틸리온 톤 무게의 거대한 공이다(1섹스틸리온은 10의 21제곱이다). 이 공이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스스로 돌며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돈다. 지구에는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있고, 지구의 중심에는 약 5,000도의 불이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또 지구 표면에는 35만종 이상의 식물들이 있고 약 4,000종의 동물들과 약 6,000종의 파충류(기는 짐승들), 약 80만종의 벌레들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이 땅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다.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이다. 그것들은 규칙적이게 하늘에서 움직인다. 지구가 속한 은하수는 1,000억개 이상의 별들로 구성되었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들이 약 1,000억개 있다고 한다. 또 창공에는 약 8,600가지의 새들이 있다고 한다. 하늘은 참으로 광대하고 신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다. 지구가 가진 물의 총량은 약 1억 3,600만 입방킬로미터이며 그것은 지구 전체를 약 2.7킬로미터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며, 이런 물들은 5대양 6대주, 및 작은 바다들과 호수들을 이룬다. 또 바다 속에는 약 21,700가지의 바다 생물들과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다. 그는 공기 중의 수증기들과 바람의 이동을 주관하신다. 기상대는 우리나라의 고기압과 저기압 전선의 이동을 예측해 알려주지만, 그것의 원인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와 지식으로 비와 눈, 구름의 이동, 기압과 바람을 주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달게 받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순종하며 즉시 회개하고 고치자.
지혜를 얻은 자는 복되다. 지혜는 금과 은보다, 또 진주보다 귀하다. 우리는 지혜를 가장 귀히 여기며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지혜는 장수와 부귀, 즐거움과 평안의 길이며 또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복된 지혜를 사모하며 소유하자.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고 하늘을 펴셨고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 즉 성경 교훈을 순종함으로 지혜를 받아 복된 삶을 누리자.
21-35절, 지혜자의 삶
[21-26절]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창졸간의[갑작스런]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완전한 지혜’라는 원어(투쉬야)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2:7) ‘건전하고 효력 있는 지혜’를 뜻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건전하고 효력 있는 지혜이다. ‘근신’은 ‘분별력’을 말한다. 우리는 완전한 지혜와 분별력을 항상 소유하고 지켜야 한다. 지혜는 유익이 많다. 지혜는 우리의 영혼에 생명이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를 행하는 자마다 영생에 이를 것이다. 또 지혜는 우리의 목에 장식이 된다. 지혜와 의는 사람의 인격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혜를 소유하고 산다면 아무리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 많은 세상일지라도 안전하게 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누워 잘 때 단잠을 잘 수 있다는 뜻이다. ‘안연히’라는 원어(라베타크)는 ‘안전하게’라는 뜻이다. 그것은 귀한 복이다. 성도는 갑작스런 두려운 일들과 악인이 당하는 재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섭리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을 지켜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7-31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본문은 이웃에게 선을 베풀라고 교훈한다. 이웃 사랑은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선을 베푸는 것은 주로 구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베풀 힘이 있거든’이라는 말은 ‘경제적 여유가 있거든’이라는 뜻이다. ‘마땅히 받을 자’는 의식주에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자들을 가리킨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소유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받을 자’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본문은 우리가 구제할 여유가 있고 구제받을 대상이 있으면, 우리는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훈한다.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다(잠 19:17). 그러므로 우리는 손을 움켜쥐고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손을 펴서 가난한 자들에게 넉넉히 구제해야 한다(신 15:7-11).
또 본문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라고 교훈한다. 이웃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 ‘안연히’라는 말은 ‘안전히, 편안히, 안심하며’라는 뜻이다. ‘모해(謀害)’는 은밀히 계획하여 남을 해치는 것이다. 또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하지 않았으면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고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에게 악을 행한 자를 책망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악을 행하지 않은 자와 정당한 이유 없이 다투는 것은 악한 일이다. 그것은 이웃 사랑과 정반대 되는 행동이다.
[32-35절]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본문은 우리가 의롭고 선해야 하며 악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증거한다. 본문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증거한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으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다. ‘교통하심’이라는 원어(소드)는 ‘함께 앉아 이야기함, 친밀한 교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뚤어진 자를 미워하시지만, 정직한 자와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다.
또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으나,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다. 악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의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사람은 자신의 가정과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악을 버리고 의롭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
또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교만과 거만을 미워하신다. 피조물인 인생, 특히 범죄의 경험이 있고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히 처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또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지만, 미련한 자의 현달(顯達)함은 욕이 된다. 35절 후반부는 “미련한 자는 수치를 일으키느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NASB). 의인은 지혜로운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지혜자이며 의인이다. 그는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미련한 자요 악인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수치를 당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지혜가 생명과 평안의 길임을 알고 완전한 지혜와 분별력을 항상 구하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중하게 여기고 실천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재앙을 두려워하지 말자.
또 우리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모해하지 말고 까닭 없이 이웃과 다투지 말자.
우리는 패역과 악과 교만과 미련을 버리고 정직과 의와 겸손과 지혜를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와 복과 은혜와 영광을 누리자.
4장: 지혜를 얻으라
1-13절, 경건한 교훈, 지혜의 가치와 유익
[1-5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이는]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전함이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본문은 솔로몬이 자기 아들들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녀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모세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했고(신 6:6-7),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했다(엡 6:4).
경건한 부모의 교훈과 법은 선하고 유익한 가르침이며 지혜와 명철을 주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자신도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이었고 그의 어머니 보기에는 유약한 외아들이었다고 말한다. ‘외아들’이라는 표현은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뜻 같다. 왜냐하면 역대상 3:5는 솔로몬이 외아들이 아니고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은 네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이었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부친 다윗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그는 그에게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며 살라(원문, KJV, NASB).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피하지 말라(원문)”고 말했었다. 자녀의 의무는 경건한 부모의 교훈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두고 그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그 명령이 지혜와 명철이다. 그것을 얻어야 한다. 그 입의 말을 잊지 말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
[6-9절]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지혜는 중요하다. 우리는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하고 얻고 높이고 품어야 한다. 참으로, 지혜는 제일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그의 뜻과 계명대로 사는 것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지혜가 없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헛되지만, 지혜가 있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잠 3:13-18).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얻은 모든 것, 곧 건강과 시간과 돈 등을 가지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 지혜가 가장 귀한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힘과 시간을 쓰고 돈과 물질을 아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혜는 유익하다. 지혜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준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주는가? 그것은 죄로부터, 위험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준다. 만일 우리가 지혜를 높이면 지혜는 우리를 높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를 품으면 지혜는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지혜는 내세의 천국 영광을 줄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존귀와 영광을 줄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10-13절]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경건한 부모의 교훈은 지혜로운 길이며 정직한 첩경이다. 길은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다. 우리는 그 지혜의 교훈을 받으며 붙잡아야 한다. 그것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1: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附從)하면[그를 꼭 붙잡으면].”
지혜의 길은 복되다. 거기에는 장수(長壽)가 있다. 병이나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해 단명(短命)한 것은 재앙이지만, 장수(長壽)는 복이다. 또 거기에는 다닐 때에 걸음이 곤란치 않고 달려갈 때에 실족지 않음이 있다. 우리는 여러 문제들로 믿음을 잃고 방황하고 곁길로 가고 범죄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함을 얻을 것이다. 안전과 평안의 약속이다. 또 지혜의 결과는 영생이다. 그것은 가장 귀한 복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로서 가정에서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의무를 다하자.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교훈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의 가치를 알자. 그 지혜를 얻기 위해 힘과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말자. 그 지혜를 얻고 사랑하고 높이고 마음에 품자. 또 그 지혜를 주는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믿고 힘써 지키자.
우리는 지혜의 유익을 깨닫자. 지혜는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에 복이 된다. 지혜는 우리를 죄와 재앙으로부터 지키며 보호하고 우리에게 장수와 평안, 그리고 존귀와 영광을 주며, 또 지혜는 영생의 복을 준다.
14-27절, 악인, 빛, 마음, 입과 눈
[14-17절]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이는]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우리는 악인의 길에 들어가지 말고 그 길로 다니지 말고 그 길을 피하고 그 길로 지나가지도 말고 그 길로부터 돌이키고 그 길을 떠나야 한다. 악인들은 항상, 날마다, 악을 행하며 불의와 강포를 밥먹듯이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의 길을 멀리해야 한다. 성도가 악인들과 함께 있으면 악에 물들 수밖에 없고 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악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기 쉽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8-19절]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 길은 삶을 가리킨다. 돋는 햇볕은 새벽빛을 말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밝지 않다. 그것은 서서히 밝아져 대낮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 의, 진실, 기쁨, 행복 등을 상징한다. 의인의 빛은 이 모든 상징들에 다 적용될 수 있다. 의인의 지식과 의와 진실, 또 의인의 기쁨과 행복은 비록 처음에는 작은 것일지라도 점차 커지고 마침내 충만해질 것이다. 그는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함에 이를 것이며 그의 기쁨과 행복은 마침내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어둠은 무지, 불의, 거짓, 슬픔, 불행 등을 상징한다. 어두운 길은 거쳐 넘어지기 쉽다. 그래서 사실 빛이 필요한 것이다. 밤길에 가로등이 없다면, 밤길에 자동차에 전조등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할까? 악인의 길이 그러하다. 악인은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거쳐 넘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죄와 재앙에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또 그 죄의 결과로 어떤 재앙이 그에게 임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이성과 양심은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읽지 못한다.
[20-23절]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솔로몬의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말씀을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고 마음에 지켜야 한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며 또 그것을 얻는 자에게 육신의 건강이 된다.
우리는 생명, 건강, 가정, 자녀들, 재산 등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 까닭은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기 때문이다. ‘근원’이라는 원어(토츠오스)는 ‘나오는 것들’이라는 뜻으로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의 행위는 마음에서 나온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행위가 나오고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위가 나온다. 우리가 중생한 새 생명을 소유한 자라면 우리는 거룩하고 선한 마음을 지켜서 거룩하고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24-27절]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우리는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거짓된 말과 잘못된 말을 매우 조심하고 진실하고 바른 말만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눈을 조심해야 한다. 눈을 조심하라는 말은 생각과 생활의 목표와 방향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즉 실수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잘못된 길에 한눈 팔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의 진리만 생각해야 한다. 히브리서 12:1-2,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혹은 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혹은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
셋째로, 우리는 발을 조심해야 한다. ‘평탄케 한다’는 원어(팔라스)는 ‘주목한다’(KB, NASB), ‘(길을) 평평케 한다’(BDB, NIV)는 뜻을 가진다. 발을 조심하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경솔하거나 조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또 좌우로 치우쳐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하고 또 악에서 떠나야 한다.
본문은 특히 “악인의 길에 들어가지 말고 다니지 말고 피하고 지나가지 말고 돌이키고 떠나라”고 말한다. 우리는 악인의 길을 피하고 멀리해야 한다.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는 우리로 악에 물들게 만든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 빛의 세계에 들어온 의인들로서 빛의 길, 곧 지식과 의와 진실, 기쁨과 행복의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성경말씀 곧 하나님 말씀에 관심을 두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하게 지키자.
우리는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입과 눈과 발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말을 조심하고 생각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5장: 음녀를 피하라
[1-6절]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이는 너로 생명의 길을 주목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의 길은 안정이 없어서 네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니라(KJV).
‘내 지혜,’ ‘내 명철’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전하는 하나님의 교훈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의 말씀이며 분별력과 지식을 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 그 말씀의 교훈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지혜의 교훈을 지킴으로 음녀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가르친다. 잠언 6:23-24에서도 그는 훈계가 사람을 음녀의 호리는 말에서 지킨다고 말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그리고 특별히 남자들과 청년들이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음녀의 미혹은 처음에는 즐거워 보인다. 음녀의 말은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고 기름보다 부드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결말은 불행과 비극이다. 음녀에게 미혹된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잠언 7:25-27에서도 그는 음녀가 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고 그의 집은 지옥의 길이라고 말한다.
[7-14절]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
솔로몬은 아들들에게 음녀를 멀리하라고 교훈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음녀를 멀리해야 한다. 음란한 환경에서는 음행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성도는 음녀를 멀리하며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솔로몬은 음녀를 멀리해야 할 이유를 네 가지 말한다. 첫째로, 그는 네 존영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하라고 말한다. 존영은 사람에게 복이다. 그러나 음행하게 되면 존영을 빼앗기고 수치를 당할 것이다.
둘째로, 네 수명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하라고 그는 말한다. 장수(長壽)도 복이다. 그러나 음행하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
셋째로, 네 재물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하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이 손으로 수고한 대가를 받아 누리는 것이 복이다(시 128:2). 그러나 사람이 음행에 빠지면 그가 수고하여 얻은 재물을 다 탕진하며 다른 사람이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넷째로, 네 몸이 쇠패할 때 후회하게 될 것이므로 멀리하라고 그는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의 몸이 병이 드는 것이나 늙어 쇠약해지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잘 모르나 병들어 몸이 심히 쇠약해지면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15-17절]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물이 귀한 시대나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서 물을 쓴다. ‘네 우물’이나 ‘네 샘’은 ‘네 아내’를 가리킨다.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라’는 말은 외도하지 말고 정당한 부부관계를 지키라는 교훈이다.
16절에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는 말씀은 두 가지로 번역되고 해석된다. 원문을 의문문으로 보면, 고대 헬라어역과 한글개역이나 대부분의 영어성경(NASB, NIV)처럼 번역되지만, ‘네 샘물들’과 ‘네 물들의 도랑들’(원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대략적 의미는 외도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문을 보통 문장으로 보면, 옛날 영어성경(KJV)처럼, “네 샘물들을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물들의 도랑들을 거리에 흘러가게 하라”고 번역되며, 이 경우 ‘네 샘물들’과 ‘네 물들의 도랑들’은 주석가들의 해석대로 ‘네 자녀들’을 가리킬 것이다(Poole, JFB). 부모는 샘의 근원이며 그 자녀들은 작은 샘물들과 여러 줄기의 도랑물들과 같다. 그들은 장차 부모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 구절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에서는 많은 자녀들이 출산되며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확실히 큰 복이다.
또 17절,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는 말씀도, “그것들[네 자녀들]로 오직 네 것이 되게 하고 타인들이 너와 함께 소유하지 못하게 하라”고 고쳐 번역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구절은, 우리의 많은 자녀들로 하여금 여러 명의 아버지들을 가지게 하지 말고 한 부모의 자녀들이 되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18-23절]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고 교훈한다. ‘샘’(마코르)이라는 말은 15절의 ‘우물’(보르)과 ‘샘’(베에르)과 함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아내를 우물과 샘으로 표현한 것은 자녀 출산의 근원이 됨을 뜻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복되게 해야 한다. 그것은 그를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함으로써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스러운 암사슴, 아름다운 암노루같이 여기고 그를 즐거워하고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해야 한다. ‘연모한다’는 원어(솨가)는 ‘취하여 비틀거리다’는 뜻이다(BDB, KB). 남편은 아내의 사랑에 취해서 살아야 한다. 그는 아내를 학대하지 말고 그에 대한 관심과 존중하는 고운 말씨와 물질적 공급과 함께 다정한 사랑을 나눠야 한다.
솔로몬은 또 남편들에게 음녀를 사랑하지 말라고 교훈한다. ‘연모한다’는 말은 역시 ‘취해 비틀거리다’는 뜻이다. 성도가 음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평탄케 한다’는 원어(팔라스)는 ‘저울에 단다, 주목한다, 주시한다’(KB, KJV, NASB)는 뜻이다. 또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린다. 그는 미련함이 많고 마음이 어둡고 바른 훈계를 받지 않다가 결국 그의 악으로 인해 패망할 것이다.
성도는 음녀의 미혹을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즐거워 보이나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잃고 후회함이 없도록 음란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조심하고, 오직 지혜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우리는 혼인과 부부의 관계를 귀히 여기며(히 13:4) 결혼생활의 순결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부부의 관계와 부부의 사랑을 만족하게 여겨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들의 출산과 출세를 복으로 누려야 한다. 우리는 결코 음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하고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더러운 음행죄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6장: 근면, 교만, 거짓, 간음에 대해
1-19절, 게으름, 악함, 교만, 거짓
[1-5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리는 이웃을 위해 담보하거나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위해 보증을 하는 것은 상대가 빚을 갚을 때까지 내 재산을 빌려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 부담 능력을 점검함이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함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일을 기억하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세계적 경제 위기가 발생한 것도 보았다. 잠언은 재정 보증하지 말라고 교훈한다. 잠언 11:15, “타인을 위해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언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잠언 20:16,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 잠언 22:26, “[너는]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또 본문은 우리가 잘못 보증했을 때 빨리 가서 겸손히 간구하여 자신을 구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남은 지혜이다.
[6-11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개미는 감독이 없어도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야 하며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계획을 세워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또 개미는 여름 동안에 양식을 모은다. 여름은 덥고 일하기 싫은, 어려운 계절이지만 땀 흘려 일하면 양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계절이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배워야 한다.
단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시 127:2), 과도히 자는 것은 게으름이다. 사람은 하루 보통 7~8시간 자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그 이상 자는 것은 게으름일 것이다. 게으름의 결과는 궁핍이다. 사람이 부지런하면 돈도 벌 수 있으나 게으르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부지런한 자가 부요함을 누릴 것이다.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교훈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종용[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명하였고(살전 4:11), 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살후 3:10).
[12-15절]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입의 사곡(邪曲)함으로 행하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
본문은 ‘불량하고 악한 자’에 대해 증거한다. ‘불량하다’는 원어(벨리야알)는 ‘무가치하다’는 뜻이다. 악한 것은 무가치한 것이다. 본문은 무가치하고 악한 자의 특징을 몇 가지 말한다. 첫째, 그는 입의 사곡함을 가지고 행하는 자이다. 사람의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내는데, 악인의 말은 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져 있고 남의 말을 오해하고 왜곡하기를 잘한다. 둘째, 그는 악한 표정과 몸짓을 한다. 그는 눈짓을 한다. 아마 불쾌한 눈짓을 말할 것이다. 또 그는 발로 뜻을 보인다. 그것은 발로 물건을 차거나 땅바닥을 세게 밟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또 그는 손가락질로 알게 한다. 그것은 손가락으로 남을 멸시하거나 대적하는 몸짓을 가리킬 것이다. 이와 같이, 악인은 표정과 몸짓에서 나타난다. 셋째, 그는 마음에 악을 품는다. 악인은 항상 마음에 악하고 패역한 일을 계획한다. 넷째, 그는 다툼을 일으킨다. 사람이 선하고 겸손하면, 다른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그의 마음도 평안하고 다른 이들과 화목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교만하고 악하면, 형제간이라도 다투고 분열하게 만들 것이다.
본문은 악인의 결말에 대해 증거한다. 악인은 일시적으로 번영할지 모르지만, 재앙이 갑자기 그에게 임할 것이며 그때에 그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즉시 패망할 것이다.
[16-19절]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본문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6, 7가지를 증거한다. 첫째는 교만한 눈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남을 낮게 여기는 것이다. 교만한 눈이라는 말은 교만이 눈빛에서 나타남을 보인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 우리에게 있는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는 결코 교만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이다. 거짓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다(요 8:44). 거짓은 천국에 가지 못할 죄이며(계 21:27; 22:15) 지옥 갈 죄이다(계 21:8).
셋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이다. 무죄한 자를 미워하고 죽이는 것은 큰 악이다. 남을 해치려는 악한 계획을 꾸미는 것도 큰 악이다. 그것은 요셉의 형들이나 다니엘의 동료들이나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죄악이었다.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도 큰 악이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밤중에도 모였고 새벽에도 모였었다.
넷째는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즉 형제들 사이에 불화(不和)를 심고 싸움을 일으키는 자이다. 분쟁은 오해와 거짓말, 미움과 시기와 욕심 때문에 생긴다. 야고보는 교인들 간의 다툼이 욕심에 난 것이라고 말했다(약 4:1). 성도의 특징은 그것들과 정반대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 5:9).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고전 13:5). 성령의 열매는 화평을 포함한다(갈 5:22).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그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다(약 3:17).
우리는 각자 자기의 경제 능력과 신용 정도로 살고 자기 분수를 넘지 말고, 자기의 수입에 비해 과도하게 돈을 씀으로 빚을 져서는 안 되며, 상대를 위해 손해를 보아도 될 경우 외에는 보증을 서지 말자.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통제하고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생활 계획을 세워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악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의 입, 눈, 발, 손가락, 마음이 악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화목하자. 물론, 진리의 선한 싸움이 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는 일치하며 단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를 버리되, 특히 교만한 마음, 거짓된 말, 모든 악, 형제 사이를 이간시키는 것 등을 버리자.
20-35절, 음란과 간음
[20-24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아비의 명령’ ‘네 어미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다. 우리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듯이, 열쇠뭉치를 가방이나 주머니나 손에 가지고 다니듯이,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말씀을 규칙적으로, 시간 나는 대로, 또 시간을 내어 읽고 듣고 배우고 복습하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하며, 그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떠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되다(시 1:2-3).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길 갈 때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우리를 바른 길, 의의 길, 복된 길, 평강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 때 우리를 보호한다. 그것은 도둑이나 위험한 사고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또 그것은 우리가 자고 깰 때 우리 속에 기억이 나게 하여 우리를 교훈한다. 우리는 새벽기도할 때 성경말씀이 더 잘 기억됨을 경험한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본문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음녀에게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고 증거한다. ‘호리는 말’이라는 원어(켈캇 라숀)는 ‘부드러운 말’(NASB, NIV), ‘아첨하는 말’(KJV)이라는 뜻이다(BDB).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함을 지킨다.
[25-29절]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이는]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성도는 음녀의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색’이란 여자의 외적 아름다움을 가리키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는 말씀은 그의 눈웃음과 눈짓에 홀리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는 사람의 외적, 육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최고 가치로 여기겠지만, 실상 인간의 외적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음녀를 조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경제적 궁핍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 조각 떡만 남는다는 말은 궁핍을 의미한다. 음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돈이며, 음녀를 가까이 하면 결국 돈을 탕진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생명의 낭패와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음녀를 가까이 하면 병을 얻고 건강을 상실하며 육신의 생명을 잃고 영적 생명 즉 구원과 영생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본문은 간음죄를 불에다 비유한다. 그것은 불을 품는 것과 같고 불을 밟는 것과 같다. 남의 아내를 만지기만 해도 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간음은 순간적 열정과 쾌락이 있을지 모르나 그 불은 큰 화상을 입을 불, 즉 건강의 파탄, 가정의 파탄, 경제의 파탄, 영혼의 파탄을 가져올 불과 같다.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
[30-35절]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이는]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도둑은 잡혀야 하고 그가 훔친 것을 갚아야 한다. 도둑이 너무나 배가 고파서 무엇을 도둑질하면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지 못하고 그의 사정을 동정할 것이다. 그러나 도둑도 그 도둑질이 발각되면 훔친 것의 일곱 배를 갚아야 한다. 만일 그가 갚을 것이 없다면, 그는 그의 모든 소유를 다 내어주어야 하고 심지어 자기 몸을 종으로 팔아야 할 것이다(출 22:1-4). 그러나(KJV, NIV)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도둑보다 더 큰 해를 받을 것이다. 그는 ‘무지한 자’이다. 잠언에는 ‘무지한 자,’ ‘지혜 없는 자’라는 말(카사르 레브)이 11번 나온다.3)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큰 해를 받으니 무지하고 지혜 없는 자이다. 음행의 대가는 크고 무섭다. 우리는 그것을 피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의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에 그는 아무도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않고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관계에서 자기 배우자의 외도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등불과 빛이며 생명의 길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떠나지 말고 가까이 하며 그 교훈을 힘써 지켜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의와 평안과 영생을 얻으며, 특히 음란을 피하게 될 것이다.
성도는 외적인 데 끌리지 말고 사람의 인격성과 도덕성을 중시해야 한다. 간음죄는 특히 사람의 경제와 건강과 영혼과 가정을 파탄시킨다.
간음죄를 짓는 자는 무지하다. 그 대가는 크고 두렵다. 그것은 가정과 부부관계에 큰 파탄을 가져올 것이다. 남녀관계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7장: 음녀의 길은 사망임
[1-5절]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솔로몬은 자신의 말과 명령과 법을 지혜나 명철과 동일시한다. 그가 말한 ‘내 말’ ‘내 명령’ ‘내 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과 법,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이 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조심스럽게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명철이다(신 5:32).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말과 명령과 법을 친근히 하라고 교훈한다. 그는 아들에게 그의 말을 지키며 그의 명령을 간직하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의 명령을 지켜 살며 그의 법을 그의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말하며 그것을 기념 반지처럼 그의 손가락에 매며 그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한다. 또 그는 지혜와 명철을 ‘내 누이’ ‘내 친족’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이 좋다.
본문은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잠언 2:16도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라고 말했고, 또 6:24도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범죄치 않게 지켜준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저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119:11). 사람이 죄 짓지 않는 것이 지혜요 복인데, 죄 짓지 않는 길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6-23절]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이 계집은 떠들며 완패하며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솔로몬은 그의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들 중에, 소년들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다. 그 소년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이었다. 부부관계 외의 남녀관계는 가까이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특히 음녀의 집은 멀리하는 것이 지혜인데, 그 소년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때 창녀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자가 그를 맞았다. 음녀는 단정치 못한 옷을 입고 간교하다. 그는 떠들며 완패하였다. 음녀는 수다스럽고 억세다고 묘사되었다. 또 그의 발은 집에 머물지 아니하였다. 그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가 아니다. 그는 때마다 거리나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렸다. 그는 그 소년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그 여자는 육신적 쾌락과 사랑을 사모하였고 그 상대를 찾았다. 그는 부드럽고 아첨하는 말로 그 어리석은 소년을 유혹했고, 그 소년은 곧 그를 따라갔다. 그 소년이 그를 따라간 것은 마치 소가 도살자에게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었다. 음녀를 따르는 자는 결국 실패하고 죽게 되고 멸망케 될 것이다.
[24-27절]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에 주의하고 우리의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고 그 길에 미혹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은 잠언에 여러 번 나온 교훈이다. 잠언 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언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잠언 6:25,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이 음녀로 인해 상하여 엎드러졌고 죽음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옛날 삼손의 실패는 대표적인 한 예이다. 삼손이 블레셋 가사의 한 여자에게 들어가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자에게 들어간 것이 실패와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삿 16장). 세상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성도도, 심지어 목사도 음녀로 인해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음행의 죄는 항상 조심하고 피하고 멀리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솔로몬은 음행의 결과가 죽음이요 지옥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구약성경에서 ‘음부’라는 말(쉐올)은 ‘무덤’ 혹은 ‘지옥’을 가리킨다. 본문은 ‘지옥’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KJV). 잠언 2:18도 “그[음녀의]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레파임 ‘죽은 자들’)로 기울어졌다”고 말하고, 또 잠언 5:3-5도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눈동자같이, 우리의 손가락의 반지같이 여기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고 우리의 누나같이 친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이 거룩의 길이다. 시편 119:9, 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둘째로, 우리는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본문은 음녀의 특징들을 열거한다. 첫째, 음녀는 특유의 옷을 입는다. 그것은 단정치 못하고 음란한 옷이 분명하다. 둘째, 음녀는 떠들고 소란스럽다. 셋째, 음녀는 완패하다. 즉 완고하고 반항적이다. 넷째, 음녀는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않는다. 다섯째, 음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을 가졌다. 여섯째, 음녀는 아첨하는 말을 한다. 일곱째 음녀는 육체적 사랑을 추구한다. 성도는 이러한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음녀에게 미혹을 받는 어리석은 자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성도는 마음과 말과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여성도는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셋째로, 우리는 음녀에게 미혹되는 것은 곧 지옥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음란은 사람의 죄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성경은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고전 6:9)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 밖에 있을 것이며(계 22:15), 또 행음자들은 지옥불에 참여한다고 말한다(계 21:8). 성도는 모든 죄를 멀리하되 특히 음란의 죄를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8장: 지혜가 부른다
[1-11절]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페사임)[단순한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네기딤)[고상한 것들, 귀한 것들]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페니님)[산호들(BDB, KB), 홍보석(KJV, NIV), 보석(NASB)]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인격체처럼 표현한다. 지혜는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사람들을 소리 높여 부르며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 외친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지혜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내용은 고상하고 선한 것이며 정직하고 의롭고 진실한 것이다. 지혜의 훈계와 지식은 은이나 정금보다, 진주보다 낫고 사람이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낫다.
[12-13절] 나 지혜는 명철(오르마)[사려깊음, 신중함](KJV, NASB, NIV)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메짐마 )[분별력](NASB, NIV)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지혜는 사려깊음 속에 있다. 또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지혜는 사려깊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불의와 악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와 선과 진실을 택하는 것이다.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이 악이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교만은 대표적인 악이다. 잠언 6:16-17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악 중 첫째가 ‘교만한 눈’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내용은 선과 사랑이며, 죄와 악은 그것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다. 또 패역한 입도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거역하고 의와 선을 거절하며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것이다.
[14-17절] 내게는 도략(에차)[계획]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비나)[이해력]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참 지식’이라는 원어(투쉬야)는 ‘완전한 지혜’라고도 번역된 말로서(잠 2:7; 3:21) ‘건전하고 유능한 지혜’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일의 배경과 건전한 진로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리킨다. 지혜 안에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고, 또 명철이 있다. 지혜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힘이 있다. 왕들은 지혜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며 방백들은 공의를 세우며 재상(宰相)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지혜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특히 지혜는 의와 선을 분별하게 하고 그것을 택할 힘과 용기를 준다.
지혜를 얻는 길은 무엇인가? 지혜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거나 미워하는 자들은 지혜를 알지 못한다. 또 지혜는 그것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나지만, 그것을 간절히 찾지 않는 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의(義)와 영생을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나며 의(義)와 영생을 얻듯이, 우리가 지혜를 간절히 찾으면, 지혜를 만나며 지혜를 얻을 것이다.
[18-21절]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지혜의 유익과 가치는 크다. 첫째로, 지혜는 부요를 준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가져오고, ‘장구한 재물’(KJV, NASB, NIV) 혹은 ‘물려줄 재물’(KB)을 가져온다. 둘째로, 지혜는 영예를 가져온다. ‘부귀’는 부(富)와 영광 혹은 영예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지혜로웠고(단 1:17, 20) 존귀와 영예를 얻었다(단 2:48; 5:29). 셋째로, 지혜는 의(義)를 가져온다. 지혜는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며(딤후 3:15), 또 의로운 인격으로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천은[순은]과 정금[순금]보다 낫다. 잠언 3:14-15,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22-31절]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인격체처럼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혜를 가지셨고, 창세 전에 지혜가 세움을 입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7:35). 창세 전, 즉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산이 세움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땅도, 들도, 세상의 흙의 근원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을 때, 지혜가 이미 났었고 또 하나님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에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었다(요 17:5).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였다(골 1:15).
솔로몬은 또 하나님께서 구름 하늘을 견고케 하시고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고 바다의 한계와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 지혜가 하나님 곁에 있어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고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창조자’라는 원어(아몬 ןוֹמאָ)는 ‘기술자, 장인’이라는 뜻이다.4) 요한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했다(요 1:3).
[32-36절]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코트이)[나를 잃는 자(NIV), 내게 범죄하는 자(KJV, NASB)]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날마다 지혜를 듣고 지키고 기다리라고 교훈한다. 또 지혜를 얻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지혜를 버린 자는 화가 있다고 말한다. 36절,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기를 거절하면, 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범죄하는 자요 지혜를 잃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얻지 못한 죄인 그대로이며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지혜가 무엇인지 말한다. 지혜는 가장 선한 것이며 정직한 것이며 의이며 진실 혹은 진리이다. 또 지혜는 곧 명철이며 지식이고 근신 곧 분별력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그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악 중에 첫 번째 악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 교만과 패역을 버리는 것이다.
둘째로, 본장은 지혜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지혜는 은이나 정금보다 더 가치 있고 진주나 산호보다 더 가치 있다. 지혜는 왕들과 재상들이 그것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처리할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또 지혜는 물질적 부요와 존귀와 영광을 가져오고, 우리에게 의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고 또 구원받은 자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통해 거룩해지고 의로운 인격자가 되게 한다. 실상,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가지고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신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셨다. 또 이 지혜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준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하며,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소유해야 한다. 또 우리는 교만과 악을 버려야 한다. 또 우리가 지혜를 얻으려면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간절히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은 바로 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믿고 행함으로써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9장: 참된 지혜
[1-6절]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집을 짓는 것은 교회 건립을 상징한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고전 3:9). 일곱 기둥을 다듬는 것은 견고하게 집을 짓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시는 견고한 집이다(마 16:18). 지혜는 잔치를 베푼다. 바른 교회는 풍성한 잔칫상을 마련한다. 짐승을 잡아 고기를 굽고 맛있는 포도주를 음료로 준비하듯이, 바른 교회는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지혜는 여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사람들, 특히 어리석은 사람들을 부른다. 그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곧 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은, 우선 “이리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요청이다. 또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라”고 한다. 지혜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는 것(요 6:54-56)은 그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또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말한다. 지혜의 말씀을 믿는 것이 곧 영생의 길이다. 또 “명철의 길을 행하라”고 말한다. 신앙은 결국 삶이다.
[7-12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테킬라)[시작]이요 거룩하신 자(케도쉼--강조의 복수형)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우리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미워함과 모욕을 받고 흠을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거만한 자는 자신을 높이고 남을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는 마음이 높기 때문에 남의 교훈이나 충고와 조언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면, 그는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책망을 들으면 잘 받고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고치기 때문에 자기를 책망한 자를 사랑하게 된다. 또 우리가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면, 그가 더욱 지혜로워져서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고 그의 학식이 더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나 의로운 자는 교훈을 받아 더 지혜로워지고 더 지식이 있는 자가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시작]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데서 시작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데서 자라간다. 경건과 도덕성이 없는 곳에는 참 지혜가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불경건, 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와 부도덕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또 지혜는 유익하다. 지혜는 장수(長壽)의 복을 주며 지혜자에게 유익을 줄 것이나, 거만한 자는 홀로 해를 당할 것이다.
[13-18절]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지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지혜가 사거리에서 어리석은 자들을 부르듯이(잠 8:1-5), 그 여종들을 보내어 그들을 생명의 길로 초청하듯이(잠 9:1-6), 미련한 여자도 사람들을 부른다. 미련한 여자는 떠들며 말이 많다고 묘사된다. 빈수레가 요란하듯이 어리석은 자가 말이 많으나, 여성의 아름다움은 온유함과 조용함이다(벧전 3:3-4).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묘사된다. 그는 진리의 지식이 없고 의롭고 선한 것을 알지 못한다.
미련한 여자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부른다. 마귀의 시험과 죄의 유혹은 자기 길을 바로 가는 자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마 6:13). 그 여자는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를 부르며 유혹한다. 누구든지 지혜로 무장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과 죄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그는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은밀한 음행을 선전하는 말인 것 같다. 은밀한 음행은 순간적으로는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나, 심히 죄악되며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다. 성도는 은밀한 악을 버리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야 한다.
미혹받은 자의 결말은 불행이다. 음행의 죄의 결과는 죽음이요 지옥 형벌이다. 행음자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참 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지혜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얻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거만함을 버려야 한다. 거만한 자는 참 지혜를 저버린다. 셋째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의 시작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참 지혜이다. 넷째로, 지혜자도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음행에 빠진 자들이 지옥의 불못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구약[舊約]강해 > ◆ 시가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Proverbs) 23장 23장: 물질, 자녀 징계, 술-31장 르무엘 왕의 잠언 [현자들의 잠언, 아굴, 르우엘] (0) | 2020.04.15 |
---|---|
잠언 10장 지혜, 근면, 사랑, 입술 제어-22장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Ⅲ.솔로몬의 잠언 10:1-22:16] (0) | 2020.04.15 |
시편 제5권 130편 긍휼의 구원을 기다림-150편 각종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0) | 2020.04.15 |
시편 제5권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신 일들을 찬양함-129편 시온을 미워하는 자 (0) | 2020.04.15 |
시편 제4권 90편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106편 이스라엘의 거역함과 하나님의 인자하심 (0) | 2020.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