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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2권 58편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을 갚으심-72편바른 판단력을 구함

영국신사77 2020. 4. 15. 09:35

58편: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을 갚으심

[1절]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본절의 상반절은 원문에서 뜻이 분명치 않아서 사전들이나 고대 역본들이나 영어성경들의 번역에서 다양하다.12) 그러나 본문이 사람이 공의를 말하고 정직히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준다. 도덕성은 사람의 정로(正路)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사람은 본래 의롭고 선하게 창조되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처음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아직 죄를 모르는 순진한 상태이었고 또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의지까지 소유한 자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를 오용함으로써 범죄하였고 공의의 언행과 정직한 판단을 저버렸다. 전도서 7:29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죄는 외부의 침입자처럼 이 세상에 들어왔다(롬 5:12; 겔 28:15). 사람들은 현재 불의하고 죄악되며 부정직한 자가 되었다.

[2-5절] 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의 강포를 달아주는도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사람들은 악과 강포를 행한다. 악인들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표준에서 멀어졌고 나면서부터 인생의 정로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타고난 죄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원죄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악하다. 그들은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창 8:21).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자신의 뿌리깊은 죄성을 고백하였다(시 51:5).

악인들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다. 거짓은 마귀의 죄이며(요 8:44) 마귀와 함께 지옥에 던지울 악인들의 죄악이다(계 21:8). 또 그들의 입에서는 뱀의 독이 나온다. 즉 그들은 남을 해치고 죽이는 말을 한다. 또 그들은 완고하다.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와 같다. 그들은 바른 말, 바른 충고, 유익한 조언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다. 그들은 완고하고 교만한 자들이다.

사람은 심히 악하여졌다.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5:19).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고 말했고(롬 3:10-15), 에베소서 4장에서 “[이방인들은]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도다”라고 말하였다(엡 4:18-19).

[6-9절] 하나님이여,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저희로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저가 생 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들에 대한 보응을 호소한다. 그는 그들의 입에서 어금니를 꺾으시기를 구한다. 그것은 의인을 물어뜨고자 하는 어금니이었다. 또 그는 그들이 이리저리 흐르는 물같이(원어의 뜻) 사라지게 하시기를 구한다. 그것은 비가 오면 이리저리 흐르다가 비가 그치면 물이 마르는 사막의 시냇물 혹은 골짜기(‘와디’라고 부름)를 가리킨 것 같다. 또 그는 그들이, 겨누는 살이 꺾임[촉이 꺾임 혹은 무뎌짐] 같게 하시고 소멸하는 달팽이 같게 하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만삭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즉 태어난 후 즉시 죽은 아기와 같게 하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생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징벌로 악인들과 그들의 핍박들을 다 제거하실 것이다. 시편 1:6은,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말하였다.

[10-11절]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의인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공의의 심판을 시행하셨고 고난받는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눈물을 씻어주셨기 때문이다. 의인은 완전히 승리할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세상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다. 그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섭리자, 통치자이시며 그가 곧 심판자이신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온 세상 만민, 의인과 악인,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 날 전에도, 세상의 삶의 여정 속에서 의인과 악인에 대한 심판을 시행하셔서 악인들에게 두려움을 주시고 의인들에게 위로를 주신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세속사회의 도덕 질서를 유지하고 그 사회가 급속히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 택한 백성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시편 5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경건과 도덕성이 인생의 정로(正路)임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심어주셨고 또 도덕적 분별력과 도덕 의식을 심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한 자로 만드셨다(전 7:29).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식과 도덕성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형상을 잃어버렸지만, 사람의 사람됨과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사람이 경건과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과 도덕성을 가장 중시하자. 우리는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사람이 심히 악해졌음을 깨닫자.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인 사람들은 심히 악해졌고 강포해졌고 거짓되어졌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러하다. 사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악된 성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남을 비방함이 있고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마 15:19). 사람들은 거짓말, 남에 대한 비난과 저주 등 남에게 해를 끼치기를 잘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있다는 것을 알자. 이 세상에 공의로 보응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은 악인들에게는 두려운 일이지만,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기쁨이 된다. 세상은 악인들이 활개치는 무법천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하시고 버려두시는 동안에, 악인들은 자기들의 세상인 양 악을 행하지만,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악인들을 공의로 다스리실 것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와 보응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한다.

59편: 나의 산성이신 하나님을 찬송함

[1-5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사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저희가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 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저희가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사 감찰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일어나 열방을 벌하소서. 무릇 간사한 악인을 긍휼히 여기지 마소서(셀라).

다윗의 원수들은 그를 치고 그에게 사악을 행했다. 그들은 피 흘리기를 즐기고 은밀히 엎드려 그를 해치려 했고 강한 자들이 연합하여 그를 치려 했다. 이런 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핍박은 다윗의 죄나 허물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격은 도덕적인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였다. 성도는 세상에서 이런 고난을 당한다. 예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을 인해 비방과 핍박을 당할 것(마 5:10-11)과 또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므로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요 15:19).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살피시고 그를 그들로부터 건져주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징벌하실 것을 요청한다(4, 5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6-8절] 저희가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를 웃으시리니 모든 열방을 비웃으시리이다.

악인들은 저물게 돌아온다. 그들은 낮에는 감히 활동하지 못하고 숨어 있다. 성도는 빛의 사람들이며 정정당당하게 사는 자들이지만, 악인들은 어둠의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개처럼 운다. 그들은 먹이를 위해 찢어대는 개처럼 성도를 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신다. 순교는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된다. 또 그들은 성으로 두루 다닌다. 악한 자들은 왕성한 활동력을 가지고 동료들을 선동한다. 또 그들은 입으로 악을 토하며 입술에는 칼이 있다. 그들은 악한 말을 쏟아내며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말을 내뱉는다. 악인들은 악한 말을 내뱉으면서 “누가 들으리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실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은밀한 악들을 다 보시고 들으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매우 정밀한 감시 카메라와 같고 하나님의 귀는 고성능 도청장치와 같다. 그는 사람의 모든 행위들과 모든 은밀한 일들을 다 보시고 선악간에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전 12:14; 롬 2:16).

[9-10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엘로헤 카스도 )[그의 자비의 하나님께서]13) 나를 영접하시며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시리이다.

산성은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요새를 말한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산성과 요새와 피난처이시다. 또 그는 힘있는 자, 곧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다. 그는 고난 받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와 같이, 다윗은 능력과 자비의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또 다윗은 자비의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원수들의 보응받는 것을 보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영접한다’는 원어는 ‘만난다’는 뜻이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나셔서 그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그를 환난에서 건지시고 그를 괴롭히는 원수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11-13절] 저희를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끝까지 알게 하소서(셀라).

악인들은 말로 남을 저주하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며 또 교만한 자들이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딤전 3:6). 잠언은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대표적 죄악들 6, 7가지를 열거하면서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라고 말하였다(잠 6:16-19).

다윗은 그 악인들의 징벌을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는 그들을 죽이지 마시기를 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려 함이었다. 또 그는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시기를 구한다. 그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간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그 신분과 지위를 잃어버리고 비천해질 것이다. 또 그는 그들이 사로잡히기를 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자유를 잃고 고통과 학대를 당할 것이며 마침내 땅 위에서 없어질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 중에 다스리심이 땅끝까지 알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심이 세상에 증거될 것이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족속의 왕이시다. 그의 살아계심과 왕 되심이 온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다윗은 원수들과의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을 방패로 삼았고 의지했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방패 되신 주여”라고 불렀다. 방패는 전쟁에서 칼과 화살을 막는 필수적 무기이다. 어떤 칼이나 창이나 화살도 막아낼 수 있는 튼튼한 방패를 가지고 그 방패를 잘 사용하는 군인은 안전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튼튼한 방패이시다.

[14-17절] 저희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악인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들은 이전에 성도를 해치기 위해 밤에 성에 두루 다니며 부르짖었던 자들이었다(6절). 그러나 그들은 이제 먹을 양식을 위해 밤에 성을 두루 다니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들은 식물을 위해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투덜댈 것이다. ‘밤을 새다’는 원어(와얄리누)는 ‘유숙하다, 밤을 새다’는 뜻도 가지지만, ‘불평한다, 투덜댄다’는 뜻도 가진다(BDB). 고대 역본들(LXX, Vg)이나 영어성경들(KJV, NASB)은 후자의 뜻으로 번역했다. 그들은 투덜대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본문은 또한 성도의 노래를 증거한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악인들에게는 불만과 불평이 있을 것이지만, 성도들에게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밤 같은 고난의 날들에는 성도에게 슬픔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겠지만, 구원과 회복의 아침이 밝아올 것이며 그때 성도는 하나님께 찬송할 것이다.

성도의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힘이 되시고 산성과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며 그가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16절, “이는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절, “이는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찬송할 것이다.

시편 5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자이시다. 13절,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끝까지 알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섭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본 시편 1절에서도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라고 말하였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산성이시다. 9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16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산성은 원수의 침략을 피할 수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환난 날에 그들을 지키시고 도우신다. 시편 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우리는 하나님을 산성으로 삼고 산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늘 찬송하자. 다윗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도우심, 교만한 원수들을 벌하심, 환난 날에 산성 되심, 자기에게 베푸신 그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인해 하나님을 찬송한다(16-17절). 우리도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구원과 도우심과 긍휼히 여기심을 항상 체험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특히 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늘 찬송하자.

60편: 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을 구함

[1-5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사랑하시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환난이 있었다(3-5절). 하나님의 본심은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아니지만(애 3:33),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또 그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고난과 환난을 허용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하고 흩어졌던 것 같다.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죄와 하나님의 분노하심 때문이었다. 본문은 또 하나님께서 땅을 진동시키시고 갈라지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셔서 땅을 진동시켜 갈라지게 하셨다는 뜻이거나 또는 비유적으로 사회에 싸움과 분열을 주셨다는 뜻일 것이다. 본문은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려운 일을 보이시고 당황하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마시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런 일들은 대체로 그들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오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의 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해 주기도 하신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이여,]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그 틈을 기우소서,” “기[깃발]를 주소서,”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다윗은 그들에게 구원과 회복과 승리를 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원수들을 패배케 하시고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바른 길로 진행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다.

[6-8절]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며 그의 거룩하심 가운데서 말씀하시며 그의 말씀은 다 거룩한 말씀이다. 그 거룩하신 말씀은 다 진실하고 확실하며 엄위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뛰놀리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신 말씀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라고 말씀하신다. 세겜은 요단강 서쪽을 가리키며, 숙곳 골짜기나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을 가리키고, 므낫세는 요단 동서쪽에 걸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 즉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을 다 그의 소유로 삼으셨고 그것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라는 원어(마오즈 זוֹע������)는 ‘보호물, 투구(NASB, NIV)’라는 뜻으로 ‘내 머리의 보호자’라는 말은 그의 원수들로부터 그의 왕권을 지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는 나의 홀”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홀’이라는 원어(메콕키 י������������������������)는 ‘나의 법을 베푸는 자’라는 뜻으로 ‘지도자’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은 유다를 통하여 계승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지키시고 그 왕권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모압이 이스라엘 나라의 종이 될 것을 표현하신 것이라고 보며, 또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는 말씀도 에돔에 대한 진노와 경멸을 표현하신 것이다. 또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는 말씀은 블레셋이 나를 인해 외쳐 보려면 외쳐 보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블레셋이 더 이상 이전처럼 이스라엘 나라를 이겨 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라고 본다.

[9-10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우리를 버리셨던 하나님,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던 하나님, 주님(당신)이 아니시니이까?](KJV, NIV).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의 군대가 겪은 패전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고 그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인생의 실패와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에돔의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게 하실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적 능력을 굳게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승리의 원인이시다.

[11-12절]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하바 라누 에즈랏 밋차르)[환난에서의 도움을 우리에게 주소서](BDB, KJV).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사람의 구원과 도움은 헛되다. 사람의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고 또 일시적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無)로 돌리실 때 그것은 헛되게 된다. 이방 군대의 도움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했고(사 2:22), 시편 146:3-4는 말하기를,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고 하였다.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그를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당한 자를 도우실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시 3:8). 또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편 18:29에서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고 말했고, 시편 20:7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했다.

시편 6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사람들을 버리시고 흩으신다. 재앙은 대체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자들에게 고난과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그 원수들을 파하실 수 있는 자이시다. 12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전쟁의 승패는 단지 군사력에 있지 않고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원수들을 패배케 하신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또 사람의 도움이 헛됨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의 구원과 회복과 도우심을 구하자. 1절, “하나님이여 . . .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5절,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11절,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우리는 믿음 안에서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세상의 삶이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와 소망과 믿음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엡 6:10-18; 딤전 1:18; 6:11-12).

61편: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함

[1-2절]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마음이 눌린 상태에 있었다. 마음이 ‘눌리다’는 원어(아탑)는 마음이 ‘연약하다, 기진하다’는 뜻이다. 그는 지치고 기진해 있었다. 또 그가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리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핍박으로 나라의 변방에 쫓겨난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말은 그를 안전함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달라는 뜻이다. 그는 고난의 현실로부터 평안한 곳으로의 구출을 간구한 것이다.

성도는 기도할 대상을 가진 자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기도 대상이시다. 성도가 고난 많은 세상에서 기도할 대상을 가지지 못했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 일일까. 그러나 성도에게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가 그들을 위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이 사실은 성도에게 큰 특권이며 큰 복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신 자는 복되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부르짖음’이라는 원어(린나)는 ‘큰 소리로 외침’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많이 말한다.14)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이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그런 간절한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3-4절]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린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와,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때에 안전한 대피소같이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이시며 견고한 망대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장막 같고 그의 품은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새의 날개 같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자와 하나님의 날개 밑에 피하는 자를 해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전과 영원한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의 품은 안전하다.

시편 91:1-7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하심은 영육의 모든 면에서 그리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정결케 하시며 그는 우리의 모든 질병의 문제, 물질적 궁핍의 문제, 인간 관계의 복잡한 문제,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까지 도우시며 돌보시며 선히 인도하신다. 또 그는 우리의 이러한 현세의 문제들뿐 아니라 우리의 내세의 문제, 즉 우리의 죽음의 문제나 최종적 심판과 지옥 형벌의 문제도 도우시고 돌보신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하였다(딤전 4:8-10).

[5-6절] [이는]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주셨음이니이다].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장막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말한 까닭이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들으시고 그를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윗이 하나님께 한 서원은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 나라에서 왕권을 유지함을 포함하였을 것이다. 신약 성도에게 주신 기업은 현세의 교회와 내세의 천국이다.

다윗은 또 장수(長壽)를 확신한다. 이 말씀은 다윗의 왕권의 계속을 암시하지만, 또한 영생을 내포한다. 생명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께 달렸다. 장수(長壽)는 하나님의 복이며(출 20:12) 영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이다. 시편 133:3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고 고백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디도에게 편지했고(딛 1:1-2),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썼다(요일 5:13).

[7절]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거하는 것은 매우 큰 복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거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인자와 진리로 그를 보호하시기를 구한다.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은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이며, 하나님의 진리는 그들이 감히 하나님의 복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이다.

[8절]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시면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겠다는 것이 다윗의 서원에 포함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며(사 43:21)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이다. 신약 성도의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건져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6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1절,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기도는 성도의 복된 특권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망대와 안전한 날개이시며 또 영원한 거처이심을 알자. 3-4절,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모든 질병과 가난과 원수들과 사회적 혼란과 육신의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셨고 또 구원해주실 것이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믿음과 순종으로 사는 길은 현세와 내세에 약속이 있다(딤전 4:8-10).

셋째로, 우리는 구원자 하나님을 늘 찬송하자. 8절,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시편 33:1,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62편: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

[1-2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를 잠잠히 바라고 기다렸다.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의 반석이시며 그의 구원이시며 그의 산성이시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일하시고 완전하신 구주이시다. 또 다윗은 크게 요동치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는 환난 중에 조금 혹은 잠시 요동할 수 있지만, 크게 또 오래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위로하시기 때문이다.

[3-4절]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너희가 언제까지 사람을 공격하느뇨? 너희 모두는 기우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부서지리로다](원문, KJV, BDB)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位)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

다윗은 그를 핍박하는 악인들에 대해 증거한다. 악인들은 계속하여 이웃을 비방한다. 그들은 다윗을 그의 존귀한 지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며 입으로는 축복하나 속으로는 저주한다. 악인들은 거짓되고 이중적이요 매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우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부서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을 내리실 때, 그들은 갑자기 망할 것이다.

[5-8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다윗은 다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환난의 일이 많이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자와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할 수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만 바라는 이유는 그들의 소망이 하나님께로부터 남을 믿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나님만 그의 반석, 그의 구원, 그의 산성이심을 믿는다.

다윗은 그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그의 힘의 반석과 피난처가 되심을 믿었다. 인생의 어떤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새 힘을 주실 수 있다. 인생은 연약한 육신이므로 때때로 피곤해지고 두려워하고 낙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앙망할 때 그의 구원과 도우심과 위로를 얻는다. 그러므로 다윗은 또 자신이 요동치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성도의 힘이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잠 28:1). 성도의 안전함은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또,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까지 권면한다. 그의 확신은 고난 중에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한 권면으로까지 나아간다. ‘시시로’라는 원어는 ‘항상’이라는 뜻이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또 특히 고난 중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한다. 우리는 평소에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기도하며 살아야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의 소원을 아뢰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9-10절]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모두 다]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다윗은 고난 중에 인생의 무가치함을 더욱 깨달았다.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며 저울에 달면 모두 다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가난한 자는 이 세상에서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며 고생스럽게 인생을 사니 허무하고, 존귀한 자는 세상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며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이나 죽어 썩고 마니 속이는 것과 같다. 천한 자도 높은 자도 저울에 달면 그 가치성은 입김보다 가볍다.

다윗은 또 재물의 헛됨을 고백하였다. 그는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한다. 가난한 일꾼들을 억압하고 강탈하여 돈을 버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취하실 때 그의 재물이 헛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의지하거나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잠언 23:5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말했다.

[11-12절]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셨고 내가 이 두 가지를 들었나니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과 인자함이, 주여, 주께 속하였다는 것이니이다. 이는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다윗은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선지자적 감동을 받았었다.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권능과 인자하심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보다 능력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히 머리를 들 수 없는 자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섭리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그의 심판하심에서 나타난다. 그는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갚으시되,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능력으로 엄하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신다. 그러나 그를 경외하고 비록 부족하지만 믿음과 순종으로 살고자 애쓰는 자들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고 그의 원수들을 파하시고 그들을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시고 평안한 새 세계로 인도하신다.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믿음으로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인자와 긍휼 때문이다.

시편 6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 중에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고 그에게 기도하자. 1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8절,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반석과 구원, 산성과 피난처가 되신다. 2절,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6절,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8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로부터 구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질병들과 가난과 원수들로부터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실 수 있다. 그는 참으로 우리의 구주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이 헛됨을 알자. 우리는 특히 재물이 헛됨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전도서에 증거된 진리이다. 그것은 썩어질 양식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고 그것들을 감사히 사용하지만, 그 헛됨을 알고 거기에 큰 가치나 애착을 두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인자하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해 능력으로 보응하신다. 그러나 또한 그는 자기 백성이 비록 부족하지만, 믿음과 순종으로 살 때 그에게 죄를 이기는 성화의 힘을 주시고 기도 응답을 주시고 건강과 경제와 원수 문제까지도 도우신다.

63편: 나를 도우신 하나님을 찬송함

[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9에서 하나님을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하나님을 찾고 앙모하고 있다. 본 시편의 표제어대로, 그는 그 당시 유다 광야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환난 중에 매우 피곤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굴을 감추셨고 그를 멀리하시고 그를 버려두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계셨을 것이다. 바울은 극심한 환난 중에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었다(고후 1:8-9).

[2절]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은 이전에 하나님을 사모하였기 때문에 성소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간구하였으나, 지금은 유대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갈망하며 보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권능은 전능(全能)이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다. 또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존재의 완전함, 그의 지혜와 능력의 완전함, 그의 도덕성의 완전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그의 고유한, 독특한 영광이다. 우리는 그 영광을 인정하고 그를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그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한다는 것은 그것을 체험하기를 원한 것을 말한다.

구약의 성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며 그의 임재가 있는 곳이지만, 특히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언약의 피가 뿌려지는 속죄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25:22).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예표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다윗은 지금 광야에서도 아마 성소를 향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3-4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사람의 생명은 귀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낫고, 생명 없는 무생물보다 생명체가 더 낫다. 특히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하고 죽음을 애도한다. 그러나 사람의 이 고귀한 생명은 너무 연약하고 유한하다. 그것은 늙고 병약하고 마침내 죽고마는 생명이다. 누가 사람의 늙음과 병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기의 생명보다 더 낫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때 사람이 건강과 장수와 안전과 또 영생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의 연장과 건강과 안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러므로 잠언 3:7-8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또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16).

다윗은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라고 말한다. ‘내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바라거나 결심하는 것을 나타낸다(딤전 2:8). 재난이나 질병이나 원수들의 위협에서, 특히 지옥 형벌에서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인자가 자기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윗처럼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체험할 때 우리는 그러할 것이다.

[5-7절]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우리의 육신이 영양 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힘을 얻고 기분을 좋게 하듯이,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만족이다. 불치의 병자가 병이 나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 위기에서 구원받았고, 지옥 갈 죄인이 구원받은 것은 모두 다 기쁨과 즐거움의 일들이다.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하였다(시 4:7)

다윗은 이제 기쁜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그를 기쁘게 찬송할 것이다. 또 그는 밤중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낮에 땀 흘려 바쁘게 일하며, 밤에 고요히 잠자며 쉰다. 성도들이 바쁘게 지내는 낮에는 혹 하나님을 생각지 못했을지라도, 쉬는 밤에는 그를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밤중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도움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서도 그에게 위로와 평안과 용기를 주셨고 그를 건져주셨고 원수의 핍박을 막아주셨고 피할 길을 주셨고 승리케 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겠다고 말한다. 그 날개는 평안과 위로와 구원의 날개이다.

[8-11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붙인 바 되어 시랑의 밥이 되리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까이 따름으로 그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고백이다. ‘가까이 따른다’는 원어(다바크 ק������������)는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말로서 ‘부종(附從)한다, 꼭 붙든다’는 뜻이다(신 10:20; 11:22; 13:4).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고 꼭 붙들고 따르면 그가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이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본문은 악인에 대한 보응을 증거한다. 악인들은 성도를 찾아 죽이려고 애쓰지만, 그들은 땅 깊은 곳, 즉 멸망의 지옥에 들어갈 것이며, 그들의 육신도 칼에 죽임을 당하고 시랑의 밥이 될 것이다. 시랑은 여우나 늑대와 비슷한 사나운 들짐승이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공의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므로 악인들의 마지막은 비참할 것이다.

다윗은 또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고 말한다. 경건한 왕 다윗은 세상의 부귀 영광을 즐거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겠다고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는다(시 119:14, 24, 72, 77, 92, 103). 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다물어질 것이다.

시편 6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자. 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성소에서도 하나님을 앙망하였고 또 지금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는 환난의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앙모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며 그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특히 환난 때에 원동력이 된다. 또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영육의 구원과 생명이 되었고 또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인자하심을 늘 사모한다. 오늘날 우리도 마귀의 시험이 많고 죄의 유혹이 많은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간절히 찾자(마 7:7-8; 눅 11: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이 찬송하자. 5절,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7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즐거이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야고보서 5:13은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의 큰 구원뿐 아니라, 또한 세상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의 도우심들, 즉 작은 구원들로 인해 항상 하나님을 즐거이 찬송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자. 8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가까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에게 친근히 하고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따르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친밀히 하며 가까이 따랐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부종(附從)하라고 가르친다(신 10:20; 11:2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자.

64편: 원수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2절]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시아크)[불평(complaint)(BDB, NASB, NIV),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주는 나를 숨기사 행악자의 비밀한 꾀에서와 죄악을 짓는 자의 요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성도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당한다. 다윗은 고난 중에 근심하며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는 말을 했고 또 생명을 위협하는 원수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성도의 가장 큰 원수는 사탄이다. 사탄은 우리를 범죄케 하여 영원한 지옥으로 끌어가려 한다.

다윗은 행악자의 비밀한 꾀와 죄악을 짓는 자의 요란에 대해 말한다. 악인들은 보통 양심 때문에 공공연히 악을 행치 못하고 이중적으로, 위선적으로 행한다. 그들의 비밀한 꾀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누구이랴. 또 악인들은 처음에는 은밀히 악을 꾀하다가 때가 되면 소란을 피운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유대 지도자들도 처음에는 그를 죽일 계획을 은밀히 하다가 나중에는 공공연히 백성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소리치게 하였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행악자의 비밀한 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친한 사람을 찾아가거나 전화를 한다. 한두 시간, 또는 그 이상도 한다. 그러나 성도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자세히 아뢰며 그의 도움과 구원을 청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성도는 비상한 때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3-4절]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완전한 자를 쏘려 하다가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않도다.

본문은 악한 자들의 악행을 증거한다. 악인들은 말로 성도를 비난한다. 그들은 칼을 날카롭게 갈듯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또 쪼뼛한 화살같이 독한 말로 성도를 겨누어 쏜다. 그 말을 듣는 성도는 마음에 상처를, 때때로 큰 상처를 받는다. 또 악인들은 숨은 곳에서 갑자기 남을 쏜다. 숨은 곳에서 쏜다는 말은 자신의 정체와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공격한다는 뜻이다. 의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을 미워하고 악하게 비방할 줄 미처 예상치 못할 것이다.

‘완전한 자’라는 원어(탐)는 ‘흠 없는 자, 순전한 자’라는 뜻으로 경건한 성도를 가리킨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며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 오늘날 완전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그의 교훈대로 서로 사랑함을 실천하는 자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이런 성도를 해치려 하는 것이다.

또 악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다. 그들의 담대함은 사탄과 악령들의 역사로 완고해진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을 징벌하실 때 그들은 두려워 떨 것이다.

[5-6절] 저희는 악한 목적으로 서로 장려하며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저희는 죄악을 도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도다.

악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한다. 악인들은 당을 지어 악을 행한다(롬 2:8). 그들은 악한 일을 위해 서로 위로하고 협력한다. 또 그들은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죄악을 도모한다. 사람의 양심은 어느 정도 선한 일을 좋아하고 선한 여론을 만들기 때문에, 악인들도 드러나게 악을 행하지는 못하고 은밀하게 악을 계획하고 의논한다. 악을 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자기 얼굴을 가린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일을 연구하고 묘책을 찾았다고 좋아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선한 일에 쓰지 않고 악한 일에 쓰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과 악령들의 지혜이다. 악인들의 속뜻과 마음은 깊어서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일에 미련한 것이 좋으며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 아모스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 로마서 12:9,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6:19,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1-22,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히브리서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히브리서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7-9절] 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갑자기 화살로 쏘시리니 그들의 상함이 있도다](원문의 전통적 읽기). 이러므로 저희가 엎드러지리니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저희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갑자기 화살로 그들을 쏘실 것이다. 그가 그렇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을 그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다. ‘있도다’라는 원어(하유)는 ‘있었도다’라는 완료형인데 확실한 미래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 결과, 악인들은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갑작스런 화살로 큰 상함을 입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벌의 화살은 악인들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힐 것이다. 악인들은 엎드러질 것이다.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한다’는 말은 그들이 성도에 대하여 말한 악한 말 혹은 저주의 말 때문에 해를 당한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악행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을 받을 것이다.

악인들의 멸망을 보는 사람들은 두려워서 다 피할 것이다. ‘머리를 흔든다’는 원어(잇노데두)는 ‘멀리 피해버린다’는 뜻이다(BDB, KJV).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할 것이다. 다니엘 시대에 이방나라의 왕 다리오는 나라에 조서를 내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증거하였다(단 6:26-27).

[10절]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고난과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보호하심, 그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인해 즐거워할 것이다.

시편 6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악인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비방하고 해치며 은밀히 당을 지어 악을 도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그들을 징벌할 것이며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 악인들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본받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자. 이 세상에는 근심되고 두려운 일들이 있고 심지어 원수들의 은밀한 꾀와 요란한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며 그에게 나아가 우리의 일들을 자세하게,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건지실 것이며 악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경건하고 의롭고 온전한 성도가 되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이미 얻었다. 우리는 이제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성도답게 살고 도덕적으로 흠과 점이 없는 의롭고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하고, 모든 악을 버리고 선한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65편: 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송함

[1절]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하신 일을 인정하고 높이는 행위이다. 그것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시온은 성소, 즉 성막이 있는 곳이다. 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위에 속죄의 피가 뿌려진다. 그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그 속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마다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성소는 또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다. 성도들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송한다. 찬송은 창조의 목적이며(사 43:21) 구원의 목적이다(엡 1장).

또 사람은 서원을 하나님께 이행할 것이다.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할 때 엄숙히 약속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고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다. 사사 입다나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자신들이 서원한 바를 하나님께 그대로 이행했다.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2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소원을 아뢰는 내용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는 우리의 찬송과 감사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 고백을 듣고 용서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응답하신다. 그는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고 그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예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교훈하셨고(마 7:7-8),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에 모든 육체가 그에게 나아온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죄로 인해 연약해져서 피곤하거나 병들기 잘 하는 몸들, 정신적으로도 불안함과 두려움, 우울함과 슬픔을 잘 가지는 몸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쇠약해지는 몸들이며,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몸들, 또 원하는 선을 행할 능력이 부족하여 죄를 이기지 못하는 몸이며(롬 7:14-18), 마귀의 시험에 떨어지며(마 26:41) 죽음에 굴복하는 몸들이다. 그러나 이런 연약한 몸들이기 때문에 모든 육체가 하나님께 나아온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자신들의 소원을 아뢰어 힘과 위로와 평안과 도우심의 응답을 받는 것이다(사 40:28-31; 빌 4:6-7).

[3절]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죄악은 성도의 찬송에 걸림돌이며 기도에 걸림돌이다(사 59:1-2). 아니, 우리 삶 전체에 걸림돌이다. 사람은 죄 때문에 불행하게 되었다. 죄의 결국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멸망이다.

다윗은 “죄악이 나를 이기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죄악은 인류 전체를 삼켰다.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해 심히 부패되고 더러워지고 연약해졌다.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다윗은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죄를 이길 힘은 우리 자신에게는 없다. 죄를 이길 힘은 하나님께서 긍휼로 우리의 죄과를 사해주실 때 얻는다. 찬송과 기도에 걸림돌이 되고 삶 전체에 걸림돌이 되는 죄 문제 오직 하나님의 사유하심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미가 7:18-19,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사죄가 곧 구원이며 영생의 길이다. 거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의 이유가 있다. 거기에 성도의 찬송의 이유가 있다.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다. 우리가 그를 택한 것이 아니고 그가 우리를 택하셨다(엡 1:4).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주권적으로 우리를 택하셨다. 또 성도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게 하신 자이다. 구약의 성막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증거한다. 죄인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히 10:19-22).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뜰 안에 거하게 되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뜰 안에 거하며 그에게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자이다.

본문은 이런 성도가 복되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모신 것, 즉 하나님과 교제하며 연합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거기에 영생과 영육의 모든 좋은 것이 다 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그것이 곧 죽음과 영원한 멸망이다.

본문은 또한 성도의 만족에 대해 증거한다. 본문은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집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원어(투브 בוּט)는 ‘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성전의 복은 하나님 자신이며 죄사함의 은혜이며 영생의 약속이다. 성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의 육신적, 물질적 만족은 밑 빠진 독처럼 끝이 없지만, 하나님 안에는 인생의 참 만족이 있다.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 안에 성도의 참 만족이 있다.

[5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죄의 결과들인 병과 기근, 재난과 전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며 또 죽음, 특히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딤전 1:1; 딛 1:3).

하나님께서는 또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자이시다. 사람은 종족, 언어, 피부색, 문화, 문명 정도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똑같다. 하얀 피부의 서양 사람도 누런 피부의 사람도 본성은 똑같다. 외딴 섬에 사는 사람도 밀림 속 오지에 사는 사람도 본성은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가 의지할 수 있고 구원하며 도우실 수 있는 자이시다. 그는 온 인류,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의를 좇아 응답하신다. 그는 의로우신 일만 행하신다. 의(義)는 도덕 규범에 맞는 것, 인간의 양심에 맞는 것, 올바르고 정당한 것을 가리킨다. 그에게는 불의가 조금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운 일뿐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엄위하신 일로 응답하신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는 기이한 능력이 있으시다. 그는 인간 보기에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신다. 그는 사람들 보기에 절망적인 것을 변화시켜 소망과 기쁨이 있는 일이 되게 하신다. 그는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공의로 징벌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을 행하며 살고자 하는 자들을 모든 환난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건져내신다.

[6-7절]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셨다. 그의 능력은 ‘전능’이다. 그는 능력으로 산을 세우셨다. 저 크고 험하고 높은 산은 사람이 흙을 삽으로 파서 만들 수 없고 굴착기를 동원해도 어림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시끄러운 것들도 조용케 하신다. 그는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신다. 인류 역사상 혁명이나 구테타, 데모나 민중 폭동은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조용하게 하실 수 있다. 자연만물도, 인간 사회도 그의 손에 의해 진정된다.

[8절] 땅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자연의 특별한 현상들, 예를 들어 천둥과 번개, 지진, 홍수, 태풍 등을 보고 느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징조들을 두려워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는 우주와 지구의 운행을 주관하신다. 그는 낮과 밤을 오게 하시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순환케 하신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침과 저녁을 감사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는다. 어둠이 가고 날이 밝아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저녁이 되면 고된 일들을 끝내고 자유시간이 온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며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며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과 저녁은 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을 기뻐한다.

[9-13절]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 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 물을 주셔서 심히 윤택하게 하신다. 땅은 물을 필요로 한다. 물이 있어야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강’이라는 표현은 그가 시기 적절한 비와 풍성한 물을 주심을 가리킨 것 같다. 땅은 물이 넉넉할 때 곡식이 잘 자라고 풍성한 수확을 얻는다(행 14:17). 

한 해 전체가 하나님의 은택으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단비로 그 이랑을 부드럽게 하시고 곡식의 싹이 나오게 복 주신다. 땅이 기름지므로 곡식도 잘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내고 양떼는 좋은 꼴을 뜯어먹고 잘 자라며 새끼들도 많이 낳는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추수와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시편 6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셨다.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또 그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2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그는 특히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3절).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육적인 은혜도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환경적 평안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7절,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그는 우리에게 환경적 평안, 사회적 평안을 주신다. 또 우리는 물질적 은택도 감사하며 찬송하자. 9-13절,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 . .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 . .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 . .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그는 우리에게 모든 물질적 은택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바르게 살자.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경건과 도덕성을 가지자. 즉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경건한 삶과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자.

66편: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찬송함

[1-2절]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시편 저자는 성도 한 개인만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 아니고 또 성도들만 하나님을 찬송할 것도 아니고, 온 세상의 사람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고 외치며 선포한다. 그는 온 땅이 하나님께 즐거이 찬송하라고 말한다. 찬송은 즐거운 소리이다. 찬송은 즐겁고 기쁘게 불러야 한다. 성도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하며 또한 주 안에서 항상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기쁜 마음과 기쁜 표정으로 불러야 하겠다.

시편 저자는 또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영화롭게’라는 말은 ‘속되지 않고 엄숙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게’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이름도 영화로운 이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송해야 한다. 시편 96:8-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3-4절]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심히 엄위하심을 찬송해야 한다. ‘엄위하다’는 원어(노라)는 ‘두렵다, 놀랍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일들은 심히 두렵고 놀랍다. 우주 만물 속에 나타나 있는 그의 창조 사역이 그러하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 행하신 그의 일들이 그러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두렵고 놀라운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일들은 특히 그의 큰 권능으로 인해 그의 원수들을 복종시키심에서 나타났다. ‘주의 원수들’은 이스라엘 나라 안팎에 있었다. 그들의 배후에는 물론 사탄과 악령들이 있다. 모세에게도, 다윗에게도, 심지어 예수님께도 원수들이 있었다.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권능으로 그들을 굴복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린 열 재앙으로 바로의 교만을 꺾으셨고,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와 그 동료들과 250명의 족장들을 다 징벌하셨다. 다윗의 대적자들도 다 멸하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엄위하신 일들이었다. 이 일들을 듣는 온 땅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찬양해야 할 것이다.

[5-6절]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증거하고 기록한 책이다. 우리는 성경책을 읽고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다. 특히 그의 기적들과 능력들이 그러하다. 사람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범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며 의인들에게 구원을 주실 때 그의 엄위하신 행위가 드러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와 강을 통과하게 하신 일을 말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일과, 광야를 통과한 후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일을 가리켰다. 그것은 두렵고 놀라운 일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때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였다. 극한 위험과 위기 속에서 사람의 기쁨은 다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쁨의 이유이었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다. 땅의 것들은 다 헛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소망과 위로와 힘과 기쁨이 되신다.

[7-9절]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셀라).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영원히 통치하시며 그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신다. 그는 능력의 통치자이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왕이시다. 또 그의 눈은 완전하셔서 열방을 감찰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살피시고 바르게 판단하시고 공의롭게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말과 행위를 감찰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그를 대항하는 자는 더욱 어리석은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시며 보살피신다. 그는 자기 백성의 몸의 생명을 지키시고 연장시키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영혼을 지키신다. 그는 자기 백성의 실족함을 허락지 않으신다. 실족함이란 불신앙과 죄에 떨어짐을 말한다. 그는 자기 백성을 죄 중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믿음과 의 가운데 거하게 하신다. 성도는 잠시 동안 실수하고 범죄할 수 있지만,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주저앉아 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키신다.

[10-12절] [이는]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하셨음이니이다. 또 주께서는]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실족지 않게 하신다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쓰시려고 은같이 단련하셨기 때문이다. 은 광석은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이지만, 범죄함으로 죄악된 성질과 습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성도는 고난을 통해 거룩한 인격으로 조금씩 변화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허리에 두셨고 사람들로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고 그들로 불과 물을 통행하게 하셨다. 그물에 들게 하셨다는 말은 이방 나라에 포로됨을 말한다. 그들은 강제 노역으로 무거운 짐을 졌다. 사람들이 머리 위로 타고 다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굴복과 모욕을 당했다는 뜻이다. 또 그들은 불같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현실과 물같이 숨막히는 현실을 통과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모든 고난에서 끌어내셔서 풍부한 곳에 들어가게 하셨다.

[13-15절]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내가 수양[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셀라).

사람은 환난 때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결심하게 되며, 그것이 서원으로 표현된다. 시편 저자가 환난 중에 한 서원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번제는 소나 양을 죽여 토막을 내어 잘라서 깨끗이 씻은 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온전히 불태우는 제사이었다. 번제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지만, 또한 성도의 온전한 헌신도 상징한다. 죄인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우리를 죄와 영원한 지옥 멸망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하고 또 그의 뜻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16-20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 곧 모든 참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위해 행하신 일을 선포하기를 원하며 모든 성도들이 와서 그것을 들어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일은 기도 응답의 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성도들의 특권이며 그때 성도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간증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기도를 해도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본문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마음에 죄악을 품는다면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야고보서 4:3, “[성도가 하나님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편 저자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의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고 그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셨고 그 인자하심을 그에게서 거두지 아니하셨다. 그것은 그의 기도가 선하고 진실하였거나 회개를 동반한 기도이었음을 나타낸다. 시편 저자는 이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그의 혀로 높이 찬송하며 간증한다.

시편 6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하신 일이 엄위하시고 두렵고 놀랍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러하고 그의 섭리 사역이 그러하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그의 엄위하신 일들을 많이 나타내셨다.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이 그러했고 하나님의 원수들을 물리치신 모든 사건들이 그러하였다. 신약성도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제 온 세상은 이런 일들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또 엄숙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게 그를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단련시키신다. 그는 자기 백성을 마치 은을 단련하듯이 단련시키신다. 그 목표는 성결과 온전함이며, 그 과정은 고난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살피시고 공의로 통치하시며 특히 자기 백성의 영혼을 살리시고 그들로 실족지 않게 하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지만 그것을 통해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거룩하고 온전해진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을 누리며 영광의 천국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환난을 두려워 말고 오직 우리의 소망과 위로와 기쁨이 되신 하나님만 바라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확신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인격적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도우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단지, 우리는 기도할 때 마음에 죄악을 품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크신 인자하심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사랑하며 찬송하고 헌신하고 순종하게 될 것이다.

67편: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1-3절]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복을 구한다. 죄인은 하나님께 무슨 복을 구할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며 죗값은 죽음과 불행뿐이다. 하나님께서 긍휼로 죄인을 용납하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심 자체가 복이며 그때 죄인은 다른 복도 구하며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사죄(赦罪)와 칭의(稱義, 의롭다 하심) 곧 구원의 복을 주시며 또 부수적으로 마음의 평안과 몸의 건강과 먹을 양식도 주신다.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소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긍휼과 복을 구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민수기 6:24-2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축복 기도를 하게 하셨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의 도를 땅 위에, 그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기를 원한다. 그것은 전도의 소원이다. 구원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마 28:19; 눅 24:47; 행 1:8). 전도는 전도하는 내용이 너무 복되어서(눅 2:10) 또 멸망하는 영혼들이 너무 불쌍해서(롬 1:18) 행해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시편 저자는 세계복음화를 소원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온 땅의 각 민족, 각 나라에 전파되어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의 긍휼과 복을 받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이 되기를 구한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사 11:9; 계 11:15).

[4-5절]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 위에 열방을 치리하실[인도하실] 것임이니이다(셀라).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편 저자는 열방이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을 노래하는 동요나 인간의 간절한 사랑과 사모함과 그리움이나 이별의 슬픔에 대한 노래가 아니고,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행하신 일들과 그가 베푸신 은총에 대한 노래이다. 

원문에는 “노래할지니”라는 말 후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열방이 기쁘고 즐겁게 노래해야 할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공평하게 판단하시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가 땅 위에 있는 열방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치리한다’는 원어(나카)는 ‘인도한다’는 뜻이다(BDB, NASB). 이 두 가지가 다 열방이 찬송할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공평하게, 공의롭게 통치하시고 심판하신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불법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객관적 공정성과 우주적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통치하시며 판단하시고 선인에게 상을 주시고 악인에게 벌을 주신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열방들을 인도하신다. 특히 그는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것이 신약교회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 택자들을 인도하셔서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여 그의 친 백성을 삼으셨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것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간절한 기도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의 최대의 과제이며 모든 성도의 날마다의 기도제목이어야 한다.

[6-7절]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땅이 그 소산을 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문자적으로도 사실이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마다 주시는 땅의 소산들이다. 그러나 땅의 소산은 이런 자연적 복뿐 아니라 특히 영적인 복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온 세상에 주신 구원의 열매들을 가리킨다. 온 세상은 많은 구원의 열매들을 맺을 것이다. 수많은 영혼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6절과 7절에 반복해서 그렇게 말한다. 그는 1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취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라고 말했다. 시편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보다 구원의 복을 가리키며 또한 구원받은 자가 하는 전도의 복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복은 택한 백성의 구원이며,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곧 전도의 일도 큰 복이다.

시편 저자는 또한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놀라운 예언이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에 구원받은 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고(막 16:15), 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복음화의 그 일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한국은 땅끝의 나라이다. 그러나 아직 남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며 택한 백성을 다 구원해야 한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제일 큰 복은 구원이다. 1, 2절,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의 복은 죄인의 구원이며, 그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에베소서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미 구원의 복을 받았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세계복음화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땅 위에, 만방 중에 전해져야 한다(2절).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3, 5, 7절). 구원받은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으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며(계 7:9),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그러므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고(막 16:15), 또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그러므로 세계복음화는 교회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며 활동목표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복음을 전하는 일로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

셋째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3, 5절,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며(사 43:7, 21),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다(엡 1:6, 12, 14).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 특히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영원하신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과 그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려야 한다(계 5:12-13).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자.

68편: 원수를 파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함

1-18절, 원수들을 파하소서

[1-2절]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연기가 몰려감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초]이 녹음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하나님께는 원수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사탄과 악령들과 그 종들이 그들이다. 그 원수들은 성도들의 원수들이기도 하다(엡 6:12).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잠잠하시고 그들의 악행을 못 보신 체하시지만, 일어나 그들을 파하실 것이다. 그때 그들은 흩어지며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며 연기같이 몰려가고 불 앞에서 초의 녹음같이 멸망할 것이다.

[3-4절]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광야에서 행하시는 자에게 노랫소리를 높일지어다] (KJV, NASB, NIV).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의 주신 구원과 위로 때문에, 그의 기도 응답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죄는 슬픔을 가져오지만, 의는 기쁨을 주고 하나님을 찬송케 한다. 천국은 의와 기쁨과 찬송으로 충만한 곳이며, 성도는 세상에서도 의와 기쁨과 찬송의 삶을 살 것이다.

[5-6절]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家屬)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처소에 계신다. 그는 피조물과 구별되시며 죄와 불결이 없으시다. 그는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다(신 10:18; 시 10:14). 그는 고독한 자들을 가족들 가운데 있게 하시며 옥에 갇힌 자들을 이끌어내시며 형통케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는 외로운 자들이 없을 것이다. 지상 교회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는 또 옥에 갇힌 자들을 구원해주신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궁핍과 부족이 있을 것이다.

[7-8절]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앞에서 행하셨다. 그는 광야에서 그들 앞에 행하셔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출 13:21; 신 1:33). 또 그는 광야를 통과해 행진하셨다. 광야는 거친 땅이었지만, 날마다 만나를 양식으로 주셨고 때때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천지는 진동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며 또 그의 통치권을 나타낸다.

[9-10절]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주의 회중(카얏카 ������������������������)(BDB, KJV)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이런 곤핍하고 가난한 상황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흡족한 비를 보내주시고 그의 은택을 준비하신다. 그는 때를 따라 자기 백성의 영육의 필요를 공급해주신다. 그 결과, 성도는 다시 힘을 얻어 견고케 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산업의 땅에 거하게 된다.

[11-14절]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너희가 양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전능하신 자가 열왕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며 큰 무리가 승리의 소식을 전하게 될 것이다. 여러 군대의 왕들은 도망하고 집에 거한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큰 승리를 주시며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들의 모임은 금빛, 은빛 날개를 가진 비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것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그들은 비록 부족과 연약이 없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무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의 왕들을 살몬의 눈같이 흩으셨다. 살몬은 세겜 부근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삿 9:48). 이방의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협적 적대세력이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하시고 흩으실 것이다.

[15-16절]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하르 가베눈님)[봉우리들이 있는 산들]이로다[하나님의 산은 바산의 산과 같으며 높은 산들은 바산의 산과 같도다](KJV, NASB). 너희 높은 산들(하르 가베눈님)[봉우리들이 있는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하나님께서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하나님의 산은 시온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요단강 북동쪽에 있는 바산의 산은 높이가 약 1,900미터 되는(한라산 정도) 높은 산이다. 시온산, 즉 하나님의 산은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영적 특권에 있어서 바산의 산처럼 높다. 여호와께서는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영히 거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다. 그곳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예표하며 또 성령의 영원한 내주(內住)하심을 예표한다. 높은 산들이 하나님의 산을 시기한다는 말은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무시하고 질투한다는 뜻이다.

[17-18절]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의 병거’는 하나님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의 수는 천천이요 만만이다(계 5:11). 또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성소에(KJV, NASB) 계심같이 그들 곧 천사들 중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으로 오르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자기 백성을 도우시고 구원하시고 그 원수들을 다 멸하신 후에 하늘로 오르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승리의 귀환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로잡았던 원수들을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서 전쟁노획물을 받으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죄와 사망과 사탄 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보인다. 주께서는 이 일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후 이전에 계시던 곳으로 올라가셨다(요 6:62; 엡 4:10). 또 그는 우리 속에 영으로 거하신다. 그것은 가장 큰 복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며 가난한 자를 위해 은택을 준비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때때로 고아와 같고 과부와 같고 가난한 자와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준비하신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파하실 것이다. 그는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을 파하실 것이다. 그는 원수들을 연기같이 흩으시고 불 앞에 초같이 녹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승리케 하시고 그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것이다. 그는 친히 땅에 내려오셔서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로 승리케 하시고 그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것이다.


19-35절, 원수들을 파하시리라

[19-20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거니와.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이시다. 우리에게는 가정, 직장, 건강, 인간 관계, 특히 원수들 등의 짐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죄의 짐이 있다.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져 주신다(마 11:28; 벧전 5:7). 그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특히 우리의 죗짐을 져 주신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씻어주셨다(사 53:6; 요 1:29). 구원의 중요한 한 내용은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병에서, 원수들에게서, 사고나 재앙에서 우리 생명을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죄로부터, 사탄의 권세로부터,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신다.

[21-23절]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내 백성]를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데서 도로 나오게 하고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원수들의 머리 곧 죄 가운데 항상 행하는 자들의 정수리를 부수실 것이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또 악인들은 결국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계 19:20; 20:10; 21: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옛날 바산 왕 옥과의 전투에서 승리케 하셨듯이(민 21:33-35) 다시 승리케 하시고, 또 애굽에서 나온 후 홍해 바다 깊은 곳을 통과케 하셨듯이 극심한 고난과 위험으로부터 건져내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KJV, Poole, JFB). 그는 원수들을 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승리케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수들의 피에 발을 담그고 그들의 개들도 그 원수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원수들을 완전히 이길 것이다.

[24-27절]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와 스불론의 방백과 납달리의 방백이 있도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시는 왕,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고 그들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행차하심을 이스라엘 백성은 환호하고 축하하며, 그들의 원수들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볼 것이다. 개선 축하식은 성소에서 거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성소 안으로 행진하여 들어가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찬송한다. 가객들 즉 노래하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 연주자들은 그들을 뒤따를 것이다. 어린 딸들은 작은북을 두드리며 따를 것이다. 그 모임에는, 원수들을 주관하는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방백들과 그 무리와 스불론의 방백들과 납달리의 방백들이 있을 것이다. 쇠약해진 작은 지파일지라도 원수들을 주관할 것이다. 베냐민과 유다는 이스라엘 나라의 남쪽의 지파이고, 스불론과 납달리는 그 땅의 북쪽의 지파이다. 그들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할 것이다. 이스라엘 온 지파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28-29절]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이여, 강하소서](BDB, NASB).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시 62:11). 그는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강건함을 구한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시작하신 일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을 구한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란 전쟁에서 원수들을 물리쳐 승리케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셔서 시작하신 그 일을 다 이루실 것이다(빌 1:6; 살전 5:24). 왕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주께 예물을 드릴 것이다. 다윗은 장차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질 것을 내다보았다. 왕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말씀은 신약시대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온 세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한 것이라고 본다.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30-31절]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갈밭의 들짐승’은 애굽을 가리킬 것이다(겔 29:3). ‘수소의 무리’는 수소같이 강한 왕들을 가리키며 ‘만민의 송아지들’도 이방 나라들의 왕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대적하는 이방 나라 왕들을 책망하시기를 구한 것이다.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라는 원어는 직역하면 “은 조각들을 가지고 자신을 복종시키면서”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꾸짖고 굴복케 하셔서 그들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게 하실 것이다. 이방 나라들의 굴복은 이스라엘에게는 승리가 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즐기는 이방 백성을 흩으실 것이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 인은 하나님을 향해 속히 항복할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게 강한 적대 세력인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개입하심으로 급속히 항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32-35절]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셀라).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쉐카킴 )[구름들]에 있도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세상 나라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장차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장차 세상이 회복되고 새로워질 것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다. 우리는 지금 온 세상의 구원이 상당히 이루어졌음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 “웅장한 소리를 발하시는 자,” 능력이 많으신 자이시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내용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늘에 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낸다. 또 하나님의 위엄이 성소에 나타난다. 성소는 때때로 구름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있고 그가 그들에게 힘과 능을 주신다. 그것은 특히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시고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어서 또 그들의 원수들을 징벌하심에 있어서 그러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부족을 그에게 고백하며 속죄의 어린양의 보혈의 샘에서 씻음을 받는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그 원수들을 완전히 이기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원수들인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싸움에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에게 힘과 능을 주신다(28, 35절).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는 힘과 능력을 얻고 원수들을 완전히 이길 것이다.

셋째로, 온 세상은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송해야 한다(3-4, 19,26, 32절). 19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32절,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우리는 우리에게 힘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자.


69편: 고난 중에 구원을 간구함

[1-4절]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

다윗은 지금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다. 그는 말하기를,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라고 한다. 그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속히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는 목이 마르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을 바라며 앙망하였으나, 하나님의 응답은 더딘 것 같았다. 또 정당한 이유가 없이 그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그의 머리털보다 많았고 또 강하였다. 또 그들 때문에 억울하게 물질적 손해를 입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기도는 환난 날에 성도의 최선의 방책이다.

[5-7절]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 [이는]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덮였음이니이다].

다윗은 환난 중에 자신의 우매함과 죄악을 깨달았다. 성도는 고난 중에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다윗이 깨달은 죄는 사람들 앞에서의 죄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이었다. 또 그는 환난 중에 다른 성도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까봐 염려하였다. 다윗이 망하면, 그를 바라보았던 성도들, 곧 ‘하나님을 바라고 찾는 자들’이 낙심하고 믿음을 잃고 수치를 당할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다윗은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할 때 단순히 자신의 유익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니고, 또한 다른 성도들의 유익 때문에 기도한 것이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며 봉사하였으나 그가 믿고 섬겼던 그 하나님 때문에 지금 비방과 수치를 당하고 있다.

[8-12절]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이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미쳤음이니이다].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다윗은 형제들에게 객이 되고 모친의 자녀들에게 외인이 되었다. 그가 그의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주의 집 곧 성소를 위한 그의 열심 때문이며 또 하나님을 비난하는 불경건한 악인들의 비난이 그에게 미쳤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곡하며 금식하였고 굵은 베로 그의 옷을 삼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들은 도리어 비난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말거리가 되었다. 성문에 앉은 자들 곧 노인들도 그를 오해하며 욕했고 술취한 사람들조차도 그를 말거리로 삼았다.

[13-15절]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때에 그에게 기도한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때에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히 부르짖는다 해도 이미 은혜받기에 늦은 때가 있다(잠 1:24-28). 다윗은 심각한 곤란 중에 구원을 간구한다. ‘수렁,’ ‘깊은 물,’ ‘큰 물,’ ‘깊음’ 등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가리킨다. 또 그에게는 그를 미워하는 원수들이 있었다. 다윗은 극심한 곤란 중에서 하나님의 많은 인자에 호소하며 구원을 간구한다.

[16-18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속(救贖)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호소한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뿐이다. 지금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감추시고 그를 멀리하신 것같이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로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그에게 도움의 손을 펴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빠른 응답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의 원수들은 그를 몹시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19-21절]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받는 비난과 수치와 욕을 아신다. 다윗은 원수들의 비방으로 마음이 상했고 근심이 충만하며 그를 긍휼히 여기고 위로할 자 없었다. 원수들은 다윗에게 쓸개와 초를 마시웠다. 이것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께 쓸개 탄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려 했고 신포도주를 준 일에 예표가 되었다(마 27:34, 48).

[22-25절]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저희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로 저희에게 미치게 하소서.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다윗은 그를 비방하고 괴롭혔던 악한 원수들이 받을 저주에 대해 말한다. 그는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그는 또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것이며 가정의 황폐함을 겪으며 가정의 평안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자녀들이 장난치며 뛰노는 일도 없을 것이다.

[26-28절]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셨고 상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원수들은 그의 고난에 고난을 더하여 그를 핍박하였다. 그들은 고난 당하는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만한 일이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평소의 악행에 성도를 핍박하는 큰 죄를 더하였다. 성도도 죄성(罪性)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값없이 주시는 의를 얻는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의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또 다윗은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라고 말한다. ‘생명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그 결과, 영생할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이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대에서 아주 중요한 책이다(계 20:12; 20:12). 구원받을 자들은 창세 이후로 거기에 기록될 것이다(계 13:8).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움을 면할 것이며 복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것이다(계 20:15; 21:27).

[29-31절]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다윗은 고난 중에 처해 있으나 그 고난의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그 구덩이에서 자신을 건져내셔서 높은 곳, 안정된 곳에 세워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는 구원의 능력이 있다. 참으로 인생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이제 다윗은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이다. 감사의 찬송은 짐승 번제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형식보다 예배자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32-33절]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온유한 자,’ ‘하나님을 찾는 자,’ ‘궁핍한 자,’ ‘수금된 자’라고 표현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보고 기뻐하고 그 마음의 소생함을 얻는다. 성도는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고 마음에 힘을 얻을 수 있다. 성도가 고난 중에 기뻐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성도들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그는 그들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신다.

[34-36절]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리할지로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사역 때문이다. ‘시온’이라는 말이 원문에 있다(한글개역성경에 작은 글씨로 된 것은 고쳐야 함). 하나님께서는 시온 곧 예루살렘 성을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온 성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 거하여 그것들을 소유로 삼고 하나님의 종들의 후손이 그것들을 상속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 가운데 거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시온의 구원과 유다 성읍들의 건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기 대대로 거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장차 천국에 이르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시편 6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다. 그는 때때로 해결책이 없고 목숨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환난에 직면한다. 까닭 없이 그를 미워하는 원수들도 있다. 성도는 세상에서 때때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이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의 집을 위한 열심을 품고 산다.

둘째로, 성도는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는 환난 날에 성도가 대처할 최선의 방책이다. 성도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또 인내하며 기도한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세상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므로, 성도는 믿음과 기도로 승리할 것이다.

셋째로,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도는 고난 중에 자신의 부족과 죄를 깨닫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또한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족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구원과 도우심을 주실 것이다. 그는 성도들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시며, 그들의 거처로 황폐케 하시고 그들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실 것이다. 의인들은 영생의 천국 복을 누릴 것이지만,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70편: 속히 나를 도우소서

[1-5절]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다윗은 고난의 현실에 처해 있다. 그가 하나님께 “속히 나를 건지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1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5절)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당한 고난은 크고 심각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긴급한 도움이 아니고서는 피하거나 헤어나올 수 없는 정도의 고난이었다.

그에게는 그의 목숨을 찾고 그를 해치려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윗을 향해 아하, 아하 하며 자긍하였다. 성도에게는 그런 원수들이 있다. 사탄과 악령들과 그들의 종들이 그러하다. 성도의 신앙 생활은 영적 싸움의 연속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말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0-12).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악한 천사들 곧 악령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성도의 원수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늘 싸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면 우리는 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5:8에서,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했다. 우는 사자, 두루 다니며 삼킬 먹잇감을 찾는 사자는 참으로 무섭다. 사탄과 악령들은 그와 같다. 성도는 세상에서 그런 원수들을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영적 전쟁을 하는 자들이다.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땅 위에서 고난 가운데서 물질적 궁핍도 경험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땅 위에서 항상 굶주리지는 않을 것이지만, 늘 부유하거나 유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주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라고 하나님께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이여,’ ‘여호와여’(1절), ‘하나님이여,’ ‘여호와여’(5절)라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5절)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였다(4절).

기도는 성도가 환난을 대처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시편 46:1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50:15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약속하셨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마 7:7-8),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그는 그를 그 고난으로부터 건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65:2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한다. 기도는 응답되는 데 가치가 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이방종교인들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기도 응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참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이며, 또 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수들로 하여금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물러가 욕을 받게 하실 것이다. 그는 악인들의 악행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시 1:6). 시편 5:4-6,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편 6:10,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편 7:14-16,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과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는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시편의 많은 말씀들은 성도가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이다. 시편 4:7-8,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시편 5:11-12,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7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는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한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말했다. 사탄과 악령들과 그 종들은 성도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 또 성도는 자신의 부족과 실수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는 고난을 이상한 일처럼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대처해야 한다.

둘째로, 성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구할 수 있고 또 구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성도의 특권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믿음이 자라간다. 기도는 성도가 신앙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참되심과 선하심을 체험하며 맛보는 길이다.

셋째로, 성도는 기도 응답과 구원을 체험하며 더욱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고 찬송하게 된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파도타기와 같다. 고난은 있지만, 고난의 극복과 승리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며 우리로 그를 찬송케 하신다.


71편: 노인이 주의 의의 구원을 간구함

[1-3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영히 수치를 당케 마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피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주는 나의 무시로 피하여 거할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산성이심이니이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않는다. 사람의 행위의 의는 누더기 옷과 같다(사 64:6). 우리의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의밖에 없다.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고 그의 복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값없이 주시는 의 안에서(롬 3:21-22)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얻는다.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시로, 언제나 가서 의지할 바위이시며 우리의 반석이시며 산성이시다. 또 그는 우리의 구원을 명하시는 자이시다. 그것은 아마 천사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난 중에도 너무 염려할 것이 없다.

[4-6절]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손에서] 피하게 하소서.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개인적으로 친밀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악한 자들, 불의한 자들, 흉악한 자들 가운데서 위협을 느끼고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간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을 “주 여호와” 즉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셔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자로 부르며 그를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라고 고백한다. 그는 세상의 것들, 즉 돈이나 세상 권세나 심지어 자녀도 소망으로 삼지 않았다. 또 그는 현실의 고난 중에서 낙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으로 그의 소망을 삼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았고 그를 섬겼고 그를 의지하였다. 더욱이, 그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모태에 있을 때에 벌써 그를 택하시고 붙드셨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엡 1:4). 그것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7-9절]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시편 저자는 나이가 많이 든 자인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 든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대적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한 느낌을 가졌다. 그는 그들에게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낙망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나님께 “나의 견고한 피난처”라고 말했다. 견고한 피난처는 어떤 환난과 역경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는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라고 말했다. 참 신앙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라고 기도한다. 사람은 젊어서 힘있게 일할 때에는 자기 능력대로 대접을 받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지만, 늙어 힘이 쇠약한 때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것은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일이다.

[10-13절] [이는] 나의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나의 영혼을 엿보는 자가 서로 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함이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원문에는 10절 초두에 ‘이는[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 자신을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기를 구한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그의 원수들이 그를 위협하고 당을 지어 그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고 그를 건질 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를 모해하려 하였다. 시편 저자는 그때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말한다. 시편에는 ‘속히’ 도와주시고 구원해주시기를 구한 기도가 종종 나온다(시 22:19; 38:22; 40:13; 70:1, 5; 71:12; 141:1). 성도는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 같고 더디 도우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신다(고전 10:13).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파하셔서 그들이 수치와 욕을 당케 하시기를 구한다. 그런 기도를 올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와 의의 증거를 위해, 또 땅 위에서 도덕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이다.

[14-16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시편 저자는 ‘주의 의’ 곧 하나님의 의에 대해 또 말한다. 본 시편에는 ‘주의 의’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2, 15, 16, 19, 24절). ‘의’는 도덕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의 ‘주의 의’는 하나님의 긍휼과 대속(代贖)의 은혜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믿는 성도들을 그들의 행위대로 대하지 않으시고 그의 긍휼과 중보자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로 구원하신다. 그는 구주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증거한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의를 이루셨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롬 10:2-4),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되셨다(롬 3:21-22; 고전 1:30).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을 항상 소망하며 더욱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과 구원, 또 기도 응답과 승리를 소망하며 하나님을 더욱 더욱 찬송하기를 결심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종일 전하며 주의 의만 진술하겠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방 세계에 나아가 전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음만 전하기로 작정했었다(고전 2:1-2). 그것이 의가 되기 때문이다.

[17-18절]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白首)[흰머리]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교훈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신 6:4-7).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성경 진리로 교훈해야 하고 자녀들은 그 교훈을 잘 받아야 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흰머리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사람은 평안을 잃고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실수하고 범죄할 것이다. 생애의 끝날까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고 지켜주시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소원하는 자는 깨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르게 살고 고의로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기이한 구원을 전하는 자가 되었고 또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대해 말하기를,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벧전 2:9).

[19-2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대사(大事)[큰 일]를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하나님의 의는 지극히 높고 고상하며 순결하며 그것은 큰 구원의 일로 나타났다. 이런 큰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여주셨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지고 성도가 당하는 심히 어려운 많은 일들도 다 그러하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시 34:19). 우리의 실수에 대한 징벌의 고난이든지 단지 인격 훈련을 위한 고난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것들을 많이 경험케 하셨다. 그러나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신다(시 34:19). 하나님께서는 고난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를 위로하실 것이다.

[22-24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에메스)[진리](KJV, NASB)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비파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진리를 찬양하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악기 다루는 법을 배우고 그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참으로 복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기 위하여 노래하고 악기 연주를 해야 옳다. 또 시편 저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말한다. 찬송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고난받을 때 기도하지만, 구원을 체험할 때 찬송한다. 시편 저자는 또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하겠다고 말한다. ‘주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말한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완전한 자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로 수치를 당케 하셨으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한다.

시편 7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할 바위와 산성이 되신다. 우리는 평소에도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고 특히 환난 때에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義)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도움과 구원을 요청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긍휼로 주신 의, 곧 구약시대에는 제사 제도로 상징되었고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밝히 드러난 의이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롬 3장). 우리는 이 의를 의지하며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여 얻는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노년을 하나님께 의탁하자. 사람의 노년기는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고 친구도 가족도 떠나가는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늙어 흰머리가 될 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힘이 쇠약한 때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끝날까지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노후를 그에게 의탁하자.

넷째로, 우리는 남은 여생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전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셨고 또 지켜주심을 항상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의를 증거하자.


72편: 바른 판단력을 구함

[1-4절]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판단하게 하소서]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본 시편의 저자 솔로몬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바른 판단력을 구한다. ‘주의 판단력’이라는 원어(미슈파테카)는 ‘당신의 판단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의 ‘판단’은 ‘의’와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의 의와 판단은 바르고 공명정대한 의이다. 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바른 판단력을 구한 것은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백성의 송사를 바르게 판단하고 하나님의 가난한 자들을 공의로 재판하기 위함이었다. 2절의 ‘판단하리니’라는 원어는 ‘판단하게 하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고(NASB) 본 시편의 여러 절들에서 그러하다. 좋은 왕은 결코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감정에 따라 행하지 않고 모든 일을 바르게 판단하며 특히 가난한 자의 송사를 올바르게 재판할 것이다.

바른 판단의 결과는 평안이다. 공의로 인하여 산들과 작은 산들이 평안을 줄 것이다. 산들과 작은 산들은 나라들이나 마을들을 가리킨다. 불의는 나라들과 동네들을 혼란과 불행에 빠지게 만들지만, 의는 질서와 평안을 가져온다. 그것은 율법에 규정된 하나님의 약속이다(레 26:3-6). 또 의로운 왕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고 궁핍한 자들의 자녀들을 구원하고 압박하는 자들을 꺾을 것이다. 본 시편의 왕은 이상적인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5-7절]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리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5절의 ‘저희’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곧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해와 달을 말한 것은 우리가 해와 달에 근거해서 시간을 세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오늘까지 제 궤도에서 움직이고 있다. 왕이 하나님의 의로 나라를 다스릴 때 성도들은 해와 달이 있는 동안 즉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과 기도를 올리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의의 왕은 백성에게, 벤 풀에 내리는 비 같고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다. 벤 풀은 곧 말라지고 풀을 다 벤 풀밭도 말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풀에게도 땅에게도 단비가 필요하다. 의의 왕은, 기쁨과 행복은 사라지고 슬픔과 곤고함만 가득한 메마른 밭과 같은 세상의 현실에 단비 같은 존재인 것이다.

불경건하고 악한 왕이 다스리는 때에는 악인들이 흥왕하고 의인들이 고통과 핍박을 당할 것이지만, 경건하고 의로운 왕이 다스리는 때에는 의인들이 흥왕하고 악인들은 공의로운 형벌을 받을 것이다. 또 그때 땅 위에는 풍성한 평안이 있을 것이며 그 평강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잠언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8-11절]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본문은 의의 왕 곧 장차 오실 메시아의 통치 영역이 크심을 증거한다. 그는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곧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시편 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스가랴 9:9-10,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 . . .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요한계시록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 .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하니.”

광야에 거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주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의로운 왕 앞에 완전히 굴복할 것이다.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이나 아라비아 반도의 나라들, 즉 온 세계 열방이 이스라엘의 의의 왕을 섬길 것이다. 그것은 단지 솔로몬 왕국을 가리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예표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계의 주이시며 세계 열방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주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섬길 것이다.

[12-14절]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救贖)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메시아께서는 의의 왕이실 뿐 아니라,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왕이시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 도울 자가 없는 자, 고난 당하는 자, 압박과 강포를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그들은 참된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을 당하지만, 메시아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피를 귀하게 본다. 한 사람의 영혼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마 16:26). 장차 이 세상에 내려오실 메시아께서는 가난한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는 그들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시며 그 생명을 구원하시며 그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救贖)하실 것이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지만, 메시아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그러한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했고, 잠언 29:14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왕은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했다.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서로 마음을 같이 하고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고(엡 4:32; 벧전 3:8), 또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며(약 1:27)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와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약 2:15-16; 요일 3:17-18).

[15-16절] 저희가 생존하여(위키)[저가 살아계시며](KJV, NASB) 스바의 금을 저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禾穀)[곡식]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다. 주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20). 히브리서 저자도 “예수는[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해 간구하심이니라”고 증거하였다(히 7:24-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사람들은 살아계신 메시아께 스바의 금을 드리고 그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찬송할 것이다. 금은 세상에서 대표적 보물이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금 120달란트를 예물로 주었고(왕상 10:10)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을 드렸듯이(마 2:11),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귀한 보물을 드릴 것이다. 또 그들은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찬송할 것이다.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그의 나라와 교회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뜻일 것이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는 땅의 풀같이 왕성할 것이다. 산꼭대기는 나무나 곡식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메시아 왕국에는 산꼭대기 같은 곳에서도 구원받을 영혼들이 많고 성에 있는 자들은 더욱 왕성할 것이다. 메시아 왕국의 백성들은 그 수가 많고 왕성할 것이다.

[17-19절]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메시아의 이름은 영구하며 해 앞에서 번창할 것이다. ‘장구하다’는 원어(야닌)는 ‘증가하다, 번창하다’는 뜻이다. 메시아께서는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처럼 잊혀지는 이름이 아니고 영원하고 번창하는 이름이시다. 그의 이름은 유대 땅 갈릴리의 나사렛 마을에서 시작되어 유대 나라 전체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로마, 그리고 온 유럽과 미국과 온 세계에 퍼져나간 이름이다.

사람들은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창 12:3),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다(창 22:18). 그것은 메시아의 복을 가리켰다. 그것은 곧 구원의 복이며 영육의 영생의 복이다. 아브라함의 복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충만하게 미쳤다(갈 3:14).

열방은 다 그를 복되다 할 것이다. 온 세상의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할 것이다. 본문은 또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다.

시편 7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바른 판단력을 구하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바른 판단력을 구하며 백성을 공의로 통치하기를 소원하였다. 우리도 하나님께 바른 판단력을 구하여 범사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선하고 악함을 분별하여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공의를 행하는 자만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것이다(시 15:1-2). 우리는 의와 참된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었다(엡 4:24). 빛 가운데 사는 자들은 의롭고 선하고 진실해야 한다(엡 5:9).

둘째로, 우리는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자. 의의 왕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주며 그들을 억압자로부터 건져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이며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다.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가난한 자의 잘못을 두둔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그때 평안이 넘칠 것이다. 3절, “의로 인해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7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왕이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공의로 통치하고 가난한 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정치를 하면 그 나라는 평안하고 번영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의롭고 선한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풍성한 평안이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사모하자. 의의 왕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며 만왕이 그 앞에 굴복하고 열방이 다 그를 섬길 것이다(8, 11절). 또 그의 이름이 영원하며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고 찬송할 것이다(17-1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의의 왕, 영원한 왕이시다(사 9:6-7). 그의 나라는 의와 평안이 충만할 것이다(롬 14:17).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주로 주셨음을 감사하며 찬송하고 또 그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광의 나라를 사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