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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권 73편 악인의 종말과 참 성도의 복-89편 주의 인자와 신실을 간구함

영국신사77 2020. 4. 15. 09:35


73편: 악인의 종말과 참 성도의 복

[1-3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편 저자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시기하였기 때문에 낙심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부정할 뻔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중 마음이 정결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확신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깨끗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깨끗하고 선한 말과 행동을 하며 사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케 된 것이다.

[4-9절]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발리 울람)[그들의 몸이 살찌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무크)[조롱하며](NASB, NIV)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하늘을 대적하고](KJV, NASB)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편 저자는 악인들의 형통함에 대해 증거한다. 그들은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나 재앙도 없다. 그들은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난다. 그들은 또 경제적 유여함도 누린다.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다. 그들은 환경적으로도 평안하다. 그들은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다. 욥과 예레미야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욥 12:6; 21:7-10; 렘 12:1). 또 악인들은 교만하고 강포하다. 또 그들은 남을 조롱하며 악하게 압제하며 거만하게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또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다닌다. 악한 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악한 말을 퍼뜨린다.

[10-12절]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하나님의 백성, 특히 형식적인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대신 악한 자들에게로 돌아와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듯이 그들과 친근히 하며 그들의 말을 자꾸 들음으로써 악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찌 아시겠는가라고 불신앙적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평안과 풍족함과 형통함을 누린다.

[13-14절]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편 저자는 악인들의 평안과 형통을 보면서 자신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을 깨끗이 하며 산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그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마음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손을 깨끗이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손은 사람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일마다 성도를 간섭하시고 어떤 잘못이 있을 때 그를 징책하신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히 12:5-6).

[15-17절]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백성을 배반하여 잘못을 범하는 일이 될 뻔하였다고 반성한다. 그는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믿음 없이 잘못 판단하는 죄를 범할 뻔하였다. 사람은 어떤 사건의 현재만 보고 잘못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 사건의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말이며,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가장 중요하다. 시편 저자는 성소에 들어갈 때 그것을 바르게 깨닫게 되었다. 성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곳이다. 그곳은 성령의 감동이 있는 곳이다. 성령께서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자주 진리의 깨달음을 주신다.

[18-20절]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악인들은 참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악인들이 평안하고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일이다. 악인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재앙은 졸지에, 한 순간에 임한다. 대형사고가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작스럽게 일어나듯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한 순간에 황폐케 하시고 전멸케 하신다. 사람이 잠을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는 그들의 부귀 영광과 권세를 멸시하실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멸망할 것이다.

[21-23절] 내 마음이 산란하며(잇캄메츠)[쓰라리며, 괴로우며] (BDB)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자신의 잠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쓰라리고 괴로웠다. 그는 자신의 우매무지함을 깨닫고 자신을 “주의 앞에 짐승”이라고 고백한다. 지혜로운 인간이 세상의 기본적 진리를 알지 못했으니 어둡고 무지한 일이며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인간의 인간다움은 지혜와 지식에 있는데, 이런 기본적 지식이 없었으니 어찌 짐승과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이렇게 무지하였지만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한 자이었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는 하나님의 붙드심을 받는다.

[24절] 주의 교훈(에차)[조언, 충고](BDB, KJV, NASB, NIV)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본문은 성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성도를 그의 교훈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교훈과 조언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교훈과 조언이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캄캄한 밤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나침반과 지도와 같고 등대와 같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구주 예수님을 알게 한다. 성경은 또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한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삶을 가리킨다. 성경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의의 길로 가도록 교훈하는 책이다(딤후 3:15-16).

또 하나님께서는 후에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실 것이다. ‘후에’라는 말은 죽은 후를 가리킨다. 사람의 일생은 죽음으로 내세와 이어진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성도가 죽은 후 들어갈 천국은 영광의 세계이다. 성경은 성도가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갈 것을 밝히 증거한다.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25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치 않는다. 그것이 유일신(唯一神) 신앙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명령하셨다(출 20:3). 시편 저자는 또 땅에서도 하나님밖에 다른 사모할 자가 없다고 고백한다. 성도는 부모, 남편, 아내, 자식,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더 사모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뿐이다.

[26절]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사람의 심신은 피곤하고 쇠약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다. ‘반석’이라는 원어(추르)는 ‘지지물, 방어물’이라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힘’이라고 번역했다(KJV, NASB, NIV). 우리는 힘이 없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의지할 곳으로 삼는다. ‘영원한 분깃’은 영원한 기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실 뿐 아니라, 장차 우리를 영원한 천국, 영생복락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27-28절]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고 사모하며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반석과 영원한 분깃으로 삼는 이유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망할 것이며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그가 다 멸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섭과 속박으로 여겨 싫어하여 그것을 멀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영적 음행과 같다. 모든 피조물의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헛되고 죄악된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음녀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망한다. 그것은 단지 위협의 말이 아니고 진리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되며 또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온갖 죄악에 떨어지게 되며 따라서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류 역사와 성경 역사에서 증명된 바이다. 지옥은 악인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를 가까이 하기를 결심하였다. 그는 늘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의지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기를 결심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그에게 복이라고 고백한다. 사죄와 의, 평안과 위로와 힘, 영생이 다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또 그는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로 삼는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있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신다. 또 그는 하나님의 모든 행사 즉 그의 기도 응답과 구원과 도우심의 복된 체험들을 남은 여생 전파하겠다고 말한다.

시편 7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인의 평안과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허락하신 동안 일시적으로 평안과 형통을 누릴 뿐이다. 이 세상의 삶은 짧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악인들의 형통의 삶도 짧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갑자기 멸망을 당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참 신자로만 살자.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교훈 속에서 사는 삶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사모하는 삶이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며 오직 하나님만 가까이하는 삶이다. 또 그것은 우리의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고 그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를 증거하는 삶이다.

셋째로, 그런 삶이 참으로 복된 삶이다. 그것은 현세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과 기도 응답을 받는 삶이다. 이 세상은 광야 같은 세상이며 우리는 날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보장이 되신다. 또 그것은 내세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분깃이 되신다. 그는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가장 가치 있고 복된 나라이다.

74편: 원수들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함

[1-3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救贖)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의 거하신 시온산도 생각하소서.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 주의 발을 드십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불같은 징계는 오래 계속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버리셨는가 생각될 정도이었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징계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여 자기 기업을 삼으셨고 그 가운데 거하심을 말하며 이제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생각해주시기를 간구한다. 지금 성소는 심히 파괴되어 다시 복구하기 어려워 보이며, 원수들은 그 거룩히 구별된 곳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 황폐한 곳을 돌아보시기를 간구한다.

[4-8절]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에서 훤화하며 자기 기를 세워 표적을 삼았으니 저희는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이제 저희가 도끼와 철퇴[국한문 ‘철추’(鐵椎)]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저희의 마음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것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모아데)[집회소들]을 불살랐나이다.

하나님의 대적자들 곧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모욕하였고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그 땅을 자기의 소유물로 표시했다.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과 같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의 모든 조각품들이 세상 물건들처럼 부서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불사르며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다. 그들은 그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집회소들을 불살랐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이스라엘 백성만 모독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섬긴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다. 성소의 조각품들을 부수고 성소를 불사른 죄악은 심히 컸다.

[9-11절] 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훼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빼사 저희를 멸하소서.

이스라엘의 상황은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회복의 표적 즉 구원의 가망성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회중의 갈 길을 지시하는 선지자도 없었다. 또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더욱이, 대적자들은 계속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비방하였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훼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라고 말한다. 시편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간구하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빼사 저희를 멸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의 오른손을 거두시면 대적들이 이기겠지만, 그 손을 빼어 그들을 향해 펼치시면 대적들은 패배하고 멸망하고 말 것이다.

[12-15절]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탄닌)[(고래 같은) 큰 바다짐승]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리웨야산)[(악어 같은) 바다 괴물]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으며 바위를 쪼개사 큰 물을 내시며 길이 흐르는 강들을 말리우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왕이시며 우리가 출생한 때부터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우리를 만드셨고 통치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는, 왕이신 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왕권은 특히 그의 구원하심에서 나타난다.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건져주시고 또 우리의 원수들로부터도 구원하신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원수인 사탄과 악령들로부터 또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또 악어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들에게 식물로 주신다. 용과 악어는 애굽 왕과 그의 장관들을 비유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을 뒤쫓아오던 애굽 왕과 그 장관들을 죽이셨다. 그들의 시체는 사막에 거하는 새들의 식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위를 쪼개셔서 큰 물을 내셨고 늘 흐르는 강들을 말리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위에서 샘물을 주셨고 요단강을 마르게 하셨다.

[16-17절]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의 섭리적 손 안에 있다. 낮도 하나님의 것이요 밤도 그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해를 예비하셨다. 그는 빛과 어두움, 낮과 밤을 주관하신다. 천지만물이 그의 것이며 우리의 모든 시간도 다 그의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땅의 경계를 정하셨다. 땅도, 바다도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셨고 각 나라의 경계도 정하셨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산도, 들도, 흙도, 나무들과 풀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며, 강도, 호수도, 바다도 다 그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만물의 혜택들을 누리며 산다. 하나님께서는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다. 그는 계절들도 주관하신다. 그는 사계절을 주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절들이다. 더위도, 추위도, 더운 지방도, 추운 지방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계절들 속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였다.

[18-19절]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아니)[핍박당하는 자](NASB, NIV)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사탄과 악령들과 악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원수이다. 그러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이다. 그는 큰 진노의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가운데 있다. 시편 저자는 그들을 ‘주의 멧비둘기’이며 ‘주의 가난한 자’라고 표현한다. 집비둘기는 늘 보호를 입고 먹이 공급을 받을 것이나, 멧비둘기 곧 산비둘기는 항상 들짐승들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안고 산다. 시편 저자는 이런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비방과 악행들을 기억하시고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들과 위협들을 돌아보시기를 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의 악행을 기억하시고 자기 백성의 상황을 돌아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이다.

[20-21절] 언약을 돌아보소서.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 학대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

세상에는 죄악된 곳이 많고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다. 성도는 ‘학대받은 자’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표현된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사는 자들은 때때로 미움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가난하고 궁핍하기도 한다. 물론 성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실 속에서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더욱 성숙해진다. 시편 저자는 고난 속에서 특히 하나님께 “언약을 돌아보소서”라고 말한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도덕법과 의식법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우리는 세상에서 항상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할 것밖에 없다.

[22-23절]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주의 대적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를 항거하는 자의 훤화가 항상 상달하나이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종일 하나님을 비방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며 떠들어댄다. 그런 대적의 절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과 싸워 이길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당하며 비난을 받을 자가 아님을 증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행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잊지 않고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이다.

시편 7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자. 12절,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에 왕이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는 우리의 삶의 왕이셔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어야 한다. 20절, “언약을 돌아보소서.” 구약 백성은 옛 언약 아래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의무가 있었다. 그들은 의식법이 예표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본다. 그러나 신약 백성은 새 언약 아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신약성경도 강조하는 도덕법을 즐거이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자. 신앙생활은 마귀와 악령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는 오직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말씀의 검을 갖추고 기도로 생활해야 한다(엡 6:11-18). 우리는 선한 싸움을 잘 싸우며(딤전 1:18) 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자.

75편: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악인들을 꺾으심

[1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이 많다. 우리의 모든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우리의 생명도, 재능도, 건강도, 일용할 양식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특히 우리의 구주 예수님과 구원과 천국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풍성한 감사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특히 하나님의 이름이 가까움을 감사한다. 주의 이름이 가깝다는 말은 악인들에 대한 그의 심판이 가깝고 우리에 대한 그의 구원도 가깝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 모세는 신명기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神)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1절 끝부분에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라는 구절은, 옛날 영어성경처럼, “주의 기이한 일들이 그것[하나님의 가까우심]을 전하나이다”(KJV)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3절]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2절의 “내가”라는 말은 성경의 영감성을 보인다. 원문에는 “주의 말씀이”라는 구절이 없다. 시편 저자는 갑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성경 저자들의 특별한 영감을 보인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에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실 때 의와 선을 행한 사람들은 칭찬을 받을 것이지만, 불의와 악을 행한 사람들은 진노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땅의 기둥들을 견고하게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땅에 살면서 악을 행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들로 인해 땅에서 멸망을 당할 것이다.

[4-5절]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하시도다].15)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히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행악자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만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악을 행한다. ‘뿔을 든다’는 말은 힘을 자랑하듯이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교만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됨과 무가치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크게 여기는 태도이므로 참 어리석은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함을 매우 미워하신다. 잠언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사람은 교만하면 멸망한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6-7절]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사람이 높임을 받고 존귀한 지위에 오르는 것은 그 주위의 유력한 사람들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율법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수 있다. 신명기 28: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킬 때에 약속된 내용이다. 또 다니엘 4:17은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8절]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시편 저자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해 말한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표현한다. 그는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내신다”고 말한다. 혼합된 술은 더 취하게 하는 술로서 하나님의 크신 진노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적당한 진노가 아니고 두렵고 무서운 진노이다. 또 그가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철저함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노를 쏟아 부으실 것이며 악인들은 그 진노를 남김없이 다 받게 될 것이다.

[9절]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시편 저자는 이제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야곱이 인간적 약점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단련시키신 하나님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가 야곱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은 그가 연약한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의 악한 원수들을 공의로 징벌하셨기 때문이다. 참된 찬양과 전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체험할 때 나온다.

[10절]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악인들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크고 강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깨뜨리시고 파해버리실 것이며 참된 성도들도 그와 같이 행할 것이다. 또 의인의 권세는 비록 지금 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강하게 하시고 마침내 높이 세우실 것이다.

시편 7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와 심판자이시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된 우리와 늘 가까이 계신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신 4:7). 그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마 28:20).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요 14:16; 롬 8:14).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시 7:11). 의인에게는 갚음이 있고 세상에는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시 58:11). 영원한 심판은 성경의 기본 교리이다(히 6:2). 사람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히 9:27). 마지막 하나님의 흰 보좌 심판 때에 모든 사람은 다 그 앞에 서서 그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13).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창조자, 심판자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하고 특히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후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만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잠 16:18). 우리는 서로 인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한다(엡 4:32). 우리는 온유하고 유순하며 서로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약 3:17).

76편: 전쟁을 파하신 하나님을 높임

[1-3절]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히 모세와 선지자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을 알리셨다. 그는 이방 백성들에게 그렇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은 백성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역사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으로 크셨다.

하나님의 장막은 살렘 곧 예루살렘 성에 있으셨고 그 처소는 시온에 있으셨다. 살렘과 시온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과 그 수도 예루살렘에 거하셨고,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출 25:8)이며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이었다(왕상 8:13).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특권이었고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거하셨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거기서 즉 예루살렘에서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뜨리셨다고 말한다. ‘화살’이라는 원어는 ‘활의 불꽃’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은 육적으로, 영적으로 전쟁터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보호자이시며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7절] 주는 영화로우시며 약탈한 산에서 존귀하시도다[주는 약탈하는 산들보다 더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KJV, NASB).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약탈하는 산들’이라는 말은 세상의 왕들과 나라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인 세상의 왕들과 나라들이 비록 외적인 영광이 크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들보다 더 영화로우시며 더 존귀하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능력이 지극히 크시며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이방 나라들을 치시면 마음이 강한 용사들이라도 탈취를 당하며 자기의 잠을 잘 것이다. ‘자기 잠을 잔다’는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또 힘이 센 장사들도 자기의 손을 놀리지 못하고 그 손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패배를 당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 병거와 말도 다 죽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주는 경외할 자시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창조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만 참으로 모든 피조물이 경외해야 할 분이시다.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그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노(怒)는 심히 두렵다. 그것은 모든 것을 태우는 불과 같이 두렵다. 선지자 나훔도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라고 말하였다(나 1:6).

[8-10절]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진실로 사람의 노(怒)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怒)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최고 법정의 대법관처럼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 세상에는 마지막 대심판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재판장이시다. 요한계시록 20:11-12,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시편 저자는 또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 잠잠할 것이다. 왜 그들이 두려워하며 잠잠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엄위하신 공의가 나타나는 그 심판이 심히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원수들의 분노가 위협적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인해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또 주께서는 그들의 남은 노를 금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이다. 성도는 온유한 자라고 표현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 중에 온유와 겸손의 인격으로 단련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악인들을 벌하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날에 악인들은 벌을 받을 것이지만, 고난 중에 있던 성도들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11-12절]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너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 서원(약속)한 바가 있으면 그 서원을 갚아야 한다. 또 본문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방에 있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에게 예물을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예물을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긴다는 뜻을 내포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실 것이다. 그들의 심령은 대체로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이기보다는 교만하고 강포한 심령이다. 교만은 사람들 앞에서나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태도이다. 강포는 사랑으로가 아니고 힘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지위가 높아지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과 강포를 미워하신다. 그는 세상의 방백들보다 더 권세와 능력이 크시며, 또 그들의 교만과 강포한 심령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방백들의 교만하고 거친 심령을 꺾으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며 세상의 왕들을 심판하시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악한 왕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며 그의 심판과 징벌은 참으로 두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날 때 세상의 모든 왕들은 그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시편 7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파하신 자로 자신을 알리셨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전쟁에 능하신 자이시다. 그는 이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신다. 그는 참으로 영화로우시고 존귀하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할 만한 분이시다. 그는 특히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진노하시며 그가 노하시면 그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다. 그는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을 다 꺾으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기 백성을 고난에서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참는 가운데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으로 단련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정직하고 선하고 온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악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징벌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원을 갚으며 예물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영원자존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경외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합당한 찬송과 경배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77편: 환난 날에 옛적 기사들을 기억함

[1-2절]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그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음성으로 하는 기도는 묵상 기도보다 더 명확하고 자세한 내용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고 공상과 졸음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음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아뢰는 간절한 기도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음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시편 저자는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밤에 그의 손을 들고 거두지 않았으며 그의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응답받기까지 기도를 중단치 않았다.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끈질긴 기도를 해야 한다. 심리적 위로는 참된 위로가 아니다. 참 위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

[3-4절]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자카르)[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하나님을 기억하였다. 그는 과거에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과거에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할 수 있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지금 시편 저자는 불안하고 근심하며 그의 심령은 상해 있다. 그는 밤에도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지내고 있다. 그가 지금 이런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현재를 비교해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과 능력을 체험했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하나님의 버려두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를 고난 가운데 버려두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진다.

[5-9절]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오메르)[약속](BDB, KJV, NASB)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시편 저자는 옛날 곧 이전 해들을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이 밤에 한 노래를 기억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었다. 그는 그 일들을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에 궁구한다. ‘묵상’은 조용히 되새기는 것이고, ‘궁구’는 좀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환난을 대처하기 위하여 우리의 과거의 일들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고 더 이상 은혜과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12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칼로시)[찔림, 쓰라림, 괴로움]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필에카)16)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기억하리이다](KJV, NASB, NIV).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절망적 상황에서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하나님과 그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했다.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라는 표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셨던 시대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놀라운 기적들을 베푸셨다. 시편 저자는 지금 그 기적들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또 우리의 과거의 삶에서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힘을 얻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며 따를 수 있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그의 행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13-15절] 하나님이여, 주의 도(道)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神)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救贖)하셨나이다(셀라).

‘주의 도(道)’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 곧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가리킨다. ‘극히 거룩하다’는 원어(바코데쉬)는 ‘거룩함 안에 있다, 거룩하다(NASB, NIV)’는 뜻이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은 거룩하시다. ‘거룩함’은 초월함과 성결함을 다 포함한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사(奇事)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셔서 천지에 충만하시며(렘 23:24), 지혜와 능력, 긍휼과 은혜도 충만하시다. 특히 그는 그의 능력이 크셔서 때때로 기사(奇事)와 능력의 일들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 중에서 그의 능력을 알리시고 그의 팔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한 점들이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백성이며 그 고난 중에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백성이었다.

[16-20절]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물들을 인격처럼 묘사한다. 바닷물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하였고 바다 깊은 곳도 두려워 떨었다. 또 아마 구름기둥은 물보라를 쏟았다. 또 시편 저자는 번개와 천둥도 묘사한다. ‘주의 살’ 즉 ‘주의 화살’은 번개나 벼락을 표현하는 말이다. 궁창은 천둥소리를 발하며 땅을 뒤흔들었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번개나 벼락은 화살같이 빠르게 세계를 비취었다. 하나님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그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지만 그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다. 이런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다. 이것은 출애굽과 홍해 사건을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구원과 인도를 위해 자연현상들을 사용하셨다.

시편 7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환난의 날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성도는 때때로 환난을 당하며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더 이상 은혜와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는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러나 성도는 그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둘째로, 우리는 음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자. 묵상으로 하는 기도도 좋으나 성도는 때때로 음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셋째로, 우리는 옛날 일들을 기억하며 기도하자.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삶 속에 그리고 성경 역사에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의 일들을 기억하며 그 긍휼과 능력을 믿고 기도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믿자.

78편: 거역하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심

1-33절,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함

[1-8절]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세우시고 이스라엘에게 정하신 증거와 법도는 그들 모두가 듣고 아는 바이며 그들 열조가 그들에게 전한 바인데 그것을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말하고자 한다. 그가 그것을 ‘옛 비밀한 말’이라고 표현한 것은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을 열조들이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일”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곧 성경의 내용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말씀을 깨닫고 우리 자신이 교훈을 받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야 하며 또 우리 자녀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알게 하는 것은 부모의 첫 번째 의무, 즉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신 6:7; 잠 22:6; 엡 6:4). 하나님께서 이것을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딤전 4:9-10; 6:17) 그의 행하신 바들을 잊지 않고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치 않은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행복이다.

[9-16절]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奇事)를 잊었도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火光)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水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패전하였다. 잘 훈련된 많은 병사들과 좋은 무기들은 전쟁에 필수적 요소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패전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 율법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하며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기사(奇事)들을 잊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세상의 모든 일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들, 곧 10가지 재앙을 행하셨고, 홍해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로 지나게 하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샘에서 나는 것 같은 물을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고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라면,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이 역사적 사실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였던 것이다.

[17-22절]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계속 범죄하였음을 지적한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함으로 계속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특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였다. 그들은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하며 고기 먹기를 구하였다.

그들은 또 마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해 고기를 예비하시랴”고 하였다. 그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의심하고 말로 그를 대항하였던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신앙의 말을 들으시고 노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노가 맹렬하셨다. 하나님께서 노하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평과 불순종에 대해 노하신 것이다.

[23-28절]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같은 나는 새라.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둘리셨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양식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는 저가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셨고 사람들이 그 떡을 배부르게 먹었다고 말한다. 만나는 ‘하늘 양식’이라고 불리었고 또 ‘권세 있는 자들 혹은 천사들(KJV, NASB, NIV)의 양식’이라고 불리었다. 아침에 이스라엘 진들 사면에 있던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만나이었다(출 16:13-14). 만나는 깟 씨나 흰색 진주 같은 모양이었고 맛은 꿀 섞은 과자와 같았다(출 16:31; 민 11:7). 그들은 날마다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거나 솥에 삶아서 과자를 만들었다(민 11:8). 그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다(출 16:35).

하나님께서는 또 그의 권능으로 동풍과 남풍을 불게 하셔서 바다 모래같이 나는 새인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진영 중에, 그들의 거처들의 둘레에 떨어지게 하셨다. 민수기는 메추라기가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땅 위 두 규빗(약 90cm)쯤 내렸고 백성이 일어나 이틀 동안 그것을 모았다고 말한다(민 11:31-32). 출애굽기는 메추라기가 저녁마다 와서 진에 덮였다고 말한다(출 16:1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모든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도 그러하셨다.

[29-33절]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바쿠림)[‘청년들’ 혹은 ‘선택된 자들’(BDB, KJV, NASB)]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갑자기](원문)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그들은 먹고 배불렀었다. 그는 그들의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그들의 음식이 아직 그들의 입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하여 노를 발하셔서 그들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로 만족지 않고 애굽에 있을 때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을 생각하며 고기 먹기를 원했다(민 11:4-6). 민수기는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었고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컸고 또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말한다(민 11:10, 33). 그래서 그곳을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고 불렀다(민 11:34).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많은 은혜와 능력의 일들을 베푸셨고 필요한 것들을 주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언약과 계명들을 거역하였다. 그 내용들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역사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교훈이 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함보다 땅의 헛된 것들을 탐하였다. 그들의 탐심은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죄를 징벌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며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를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을 힘써 지키는 것, 곧 죄악된 모든 일들을 멀리하고 그의 계명대로 거룩하고 바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34-72절, 하나님께서 징벌하심

[34-39절]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忿)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음식을 탐하던 자들을 죽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석이시며 구속자(救贖者)이심을 기억하였다. 사람은 징벌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의 율법을 배운다. 성도에게 주시는 고난은 그의 영적 성장을 위해 유익하다(시 119:67, 7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는 온전치 못하였다. 그들은 입으로 하나님께 아첨하며 그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했다. 행함이 없는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아첨에 불과하다. 그것은 감히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또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정(定)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견고한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며 그의 율법에 순종함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자비로 그들의 죄악을 사하셨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셨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고 그의 분노를 다 발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까닭은 인생이 육체뿐이며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있다.

[40-42절]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救贖)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고 그의 분노를 다 발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번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하였다. 교만한 자는 반복하여 하나님께 반항하고 범죄하며 그를 슬프시게 하고 근심시킨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KJV)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돌이켜’라는 원어(와예슈부)는 ‘반복하여’(NASB, NIV)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격동하였다’는 원어(히테우)는 ‘표시하다’ ‘제한하다’(KJV)는 뜻이 일반적이고, ‘괴롭게 하다’(NASB, NIV)는 뜻이 언어학자들의 추측으로 제안되기도 하였다(BDB). ‘제한하였다’는 말은 아마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의 능력을 믿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의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실상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죄이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대적에게서 구속(救贖)하신 날도 생각지 않았다. 그 구속의 날이란 그들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짐을 받았던 날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열 가지 재앙을 눈으로 보았었고 홍해를 통과하는 기적을 체험하였었다. 만일 그들이 그 일을 기억했었더라면,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며 믿었을 것이며 경외했을 것이며 범죄치 않았을 것이다.

[43-53절] 그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그 노를 위하여 치도(治道)하사[길을 만드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12절에서도 말했지만,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소안 들에서 징조와 기사를 나타내셨음을 말한다. 소안은 고센 땅의 중심도시인 타니스로 라암셋(창 47:11; 출 1:11; 12:37)과 같은 도시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눈 앞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었다. 본문은 그 중에 몇 가지만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마실 수 없게 하셨고(첫째 재앙), 파리 떼를 그들 중에 보내어 물게 하셨으며(넷째 재앙),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고(둘째 재앙), 메뚜기와 황충으로 그들이 수고한 토산물을 먹게 하셨고(여덟째 재앙), 우박과 서리로 그들의 포도나무와 뽕나무, 가축과 양떼를 죽이셨다(일곱째 재앙). 마지막으로, 그는 맹렬한 노로 벌하는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셨다(열째 재앙).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양떼같이 안전하게 인도하여 내셨고 그들의 원수인 애굽 사람들은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하셨다(출 14:27-29).

[54-58절]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출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그는 그들을 그 성소의 지경 곧 그가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셨다. 그는 거기 거하던 가나안 족속들, 심히 우상숭배적이며 음란하였던 이방 족속들을 그들 앞에서 쫓아내셨고 그 땅을 분배하여 이스라엘 지파들로 거기서 그들의 장막에 거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과 땅 분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곧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들은 배은망덕하였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고 시험하였고 하나님께 반항하며 그의 율법과 증거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 앞에 거짓을 행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이 회개하였고 거짓되이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속이는 활같이 빗나갔다. 특히, 그들은 산당에서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였다. 불경건과 우상숭배는 모든 죄의 근원이다. 거기에서부터 모든 부도덕한 죄들이 나온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 악에서 떠날 수 있다(잠 16:6).

[59-64절]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사람이 회개치 않고 패역을 부릴 때 마침내 그에게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섭다. 그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하는 말들을 들으시고 진노하셨고 그들을 크게 미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실로에 세우셨던 그의 성막을 버리셨다. 그가 친히 명하시고 세우신 성막(聖幕), 그에게 거룩히 드려진 성막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버리셨고 그것을 떠나셨다.

또 그는 그의 능력을 베푸셨던 자들을 포로에 붙이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 61절의 원문은 “그의 힘을 포로로 주셨다”인데, 그것은 그가 그의 능력을 보이셨던 그의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는 뜻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심판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전의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범죄함 때문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칼에 붙이셨고 전쟁에서 죽게 하셨다. 그는 자기 기업된 그들에게 분내셨으며 그 청년들을 불에 타 죽게 하셨다. 또 그 처녀들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어졌다. 혼인은 처녀들에게 가장 기쁜 일인데, 그러한 기쁨의 일이 사라졌다. 존귀한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졌다.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했다. 포로 상태에서는 장례식을 치루는 일도, 심지어 우는 자유도 가지지 못했다. 이스라엘 땅은 죽음과 슬픔의 그림자로 뒤덮혔다.

[65-72절]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저를](원문, KJV, NASB, NIV)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톰 레바보)[마음의 온전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이방인들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케 하셨다. 그러나 잠잠하시던 그는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해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셔서 그 대적들, 즉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이방 나라들을 쳐 물리치셨고 영원한 수욕을 당케 하셨다. 하나님께서 깨어 일어나시면 원수들은 패하여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장막도 버리셨다. 그는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않으셨다. 그 증거는 실로에 세워진 성막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에브라임을 버리셨다. 그 대신에, 그는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거기에 그의 성소를 높은 곳같이, 영원히 세우신 땅같이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택하시고 거기에 성소를 세우신 것은 그의 전적인 긍휼이었다. 또 그는 그의 종 다윗을 양치는 자리에서 취하셔서 그의 기업된 백성 이스라엘을 기르는 자가 되게 하셨다. 다윗은 마음의 성실함과 지혜로운 손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능력의 구원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들을 능력으로 구원하셨다. 그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애굽에서 놓여나게 하셨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고 그들의 뒤를 따르던 애굽의 마병들로부터 건져주셨고 애굽인들을 몰살케 하셨다. 그는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셨고 그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해주셨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의 삶에서도 때때로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잊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참된 회개를 힘쓰자.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에 진실함과 정함이 없었고 언약에 불성실하였고 거듭 범죄하였고 하나님께 반항하였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그들을 대적들에게 붙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그의 진노를 돌이키셨고 그들을 용서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에 근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모든 죄를 멀리하고 다윗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79편: 황폐한 성을 구원하소서

[1-4절]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시편 저자는 예루살렘의 황폐한 정황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기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낼 지도자로 삼고자 하실 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憂苦)를 알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3:7, 10).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으로 ‘내 백성’(암미 י������������)이라고 거듭 부르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께서 소유자이신 예루살렘 성에 이방인들이 들어와 그것을 파괴하였고,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표이었던 성전을 그들이 더럽혔던 것이다. 도적이 집에 침입했듯이, 이방인들이 그 땅에 침공해 와서 그 땅을 더럽혔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종들과 그의 성도들의 귀한 생명을 단지 미움과 이욕 때문에 많이 죽였고 많은 피를 흘렸다. 그 시체들은 공중의 새들에게와 땅 짐승들에게 밥이 되었다. 사람들의 피가 물같이 흘렀고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다. 모욕과 조롱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유다 백성은 이방인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였다. 이 모든 일이 그들의 죄 때문에 왔다.

[5-8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 저희가 야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함이니이다.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는 크고 두려우며 또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리이까?”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구원은, 그들을 삼키고 황폐케 했던 이방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심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가 그렇게 간구한 까닭은 불경건한 그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그들의 많은 죄를 용서하심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우리 열조의 죄악’이라는 원어(아오놋 리쇼님)는 ‘이전의 죄악들’(BDB, KJV)이라는 뜻 같다.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물론 선조들의 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들의 이전의 죄악들을 기억하며 고백한 것이라고 본다. 또 그는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만나소서]”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과거에 지은 죄의 징벌을 면하고 심히 천해진 상태에서 구원 얻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다. 멸망의 문 앞에 있는 죄인들은 살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9-13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흘림 당한 보수(報讎)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7배나 갚으소서.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테힐라)[찬송]를 대대로 전하리이다.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고 포로로 잡혀가 감금되어 탄식하고 있고 사형이 작정된 자들같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 시편 저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도우시고 건져주시기를 구한다. 선민 이스라엘의 실패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었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도한다. 죄사함은 모든 불행의 원인적 치료이다. 또 그는 하나님께 원수들을 일곱 배나 갚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보존하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그러면 주의 백성된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시편 7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교훈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 그의 백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섭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할 때 많은 사람이 피흘려 죽임을 당했고 이방인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심히 천해졌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섭고 혹독하였다.

셋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또 사탄의 권세와 불행으로부터 구원을 얻었고 또 얻는다.

80편: 우리를 돌이키소서

[1-3절]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용력(勇力)을 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요셉’은 북방 이스라엘을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이시다. ‘그룹 사이’는 언약궤 위, 속죄소 위의 두 천사들 사이를 말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속죄와 긍휼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과 속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구하고 그들에게 빛, 곧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시기를 간구한다. 그의 얼굴빛은 그의 긍휼과 능력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그의 긍휼과 능력을 베푸실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힘을 내셔서 구원하러 오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우리를 돌이키소서’(하쉬베누)라는 말은 회개와 회복을 다 가리킬 수 있다. 회복은 죄의 회개에서 시작된다. 회복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이다(행 11:18).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 5:21에서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라고 말했다.

[4-7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천사들을 사용해 이루신다. 천사들은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받들며 행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그의 백성의 고통 당하는 현실을 고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대해 호의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계속 불쾌히 여기시고 분노하시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눈물의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수들에게 학대를 당하였고 눈물을 먹고 마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웃 나라 사람들에게 다툼의 대상이 되게 하셨고 원수들은 그들을 보고 비웃었다. 이런 고난의 현실 속에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한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참으로 회개할 수 있다. 또한 고난의 현실에서 구원해주실 수 있는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8-14절]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편만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헐으사 길에 지나는 모든 자로 따게 하셨나이까? 수풀의 돼지가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때때로 포도나무에 비유된다. 시편 저자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선지자 이사야도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라고 하였다(사 5: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셔서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들을 거기에 심으셨다. 그는 그들 앞에 땅을 준비하셨으므로 그들의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히 퍼졌다. 그 그늘은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지들은 하나님의 백향목 같았고 그 가지들이 바다 곧 지중해까지 뻗고 그 넝쿨이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미쳤다. 그 나라는 매우 번창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대를 접으시고 포도원의 울타리를 허시며 길에 지나는 모든 사람들로 따먹게 하셨다. 수풀의 돼지들은 그것을 해치며 들짐승들은 그것을 먹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이스라엘의 패망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시편 저자는 이제 하나님께서 돌보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다시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그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을 돌아보시기를 기도한다.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그는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고 상하게도 하시며 낫게도 하시는 자이시다(신 32:39).

[15-19절]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그것이 소화(燒火)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人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그를 위해 힘있게 하신 가지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불에 타도록 버려두셨다. 그것은 찍힘을 당하였고 주의 얼굴의 책망을 인해 멸망했다. 이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간구하기를,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人子)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과 능력의 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얹으시면 이스라엘 백성은 힘을 얻고 구원을 얻고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것이다.

또 시편 저자는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말한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시고 부흥케 하실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부흥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또 시편 저자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본 시편에서 세 번이나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소서”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 우리를 회개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실 것을 구한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긍휼의 얼굴빛을 비추어주시면 이스라엘은 힘을 얻을 것이며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편 8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때때로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다. 눈물의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징벌로 고난을 받고 원수들의 비웃음도 받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구원과 회복을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그러나 사람의 회개와 구원 자체도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며 의와 선을 행하기에 무능력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심판자이실 뿐 아니라, 능력의 구원자이시다. 구원의 능력이 그에게 있다. 그는 죄인들을 죄와 파멸로부터 친히 구원하신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빛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회개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죄인을 구원하여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다.

81편: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순종을 원하심

[1-4절]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小鼓)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월삭(月朔)과 월망(月望)과 우리의 절일(節日)에 나팔을 불지어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시편 저자는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며 그 구원을 즐거이 노래하라는 뜻이다. 또 그는 “시를 읊으며 소고(小鼓)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연주하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글과 목소리와, 작은 북과 수금과 비파 등 악기의 아름다운 소리로 찬송하라는 것이다. 또 그는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節日)에 나팔을 불라”고 말한다. ‘월삭(月朔)’은 초하루이며 ‘월망(月望)’은 보름이다. 정해진 절기들에 나팔을 불라는 것이다. 민수기 10:10,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또 그는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이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시시때때로 찬송하고 즐거이 노래해야 한다.

[5-7절]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

5절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시 114:1) 애굽 땅에서 나갈 때 요셉의 족속 즉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를 증거로 제정하셨도다”(KJV, NIV)라는 의미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종살이하며 부르짖었을 때 그들을 건져주신 일을 가리켰다. 출애굽기 2:23-25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었고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였다. ‘은은(隱隱)한 곳’이라는 원어(세세르)는 ‘은밀한 곳’이라는 뜻이다(KJV, NASB). 하나님께서 뇌성의 은밀한 곳에서 응답하셨다는 말씀은 시내산에서 나타나신 사건을 가리켰다고 보인다(출 19:18-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다. 그들은 거기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였었다(출 17:3, 7).

[8-12절]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바는 분명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신, 곧 이방신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고 오직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님 앞에 입을 넓게 열라는 것이었다.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는 입과 기도하는 입을 넓게 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찬송하며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육의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셨고 그들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셨다.

[13-16절]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미워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저희 시대는[징벌의 날은] 영원히 계속하리라. [그러나](NASB, NIV)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가장 좋은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권면하신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道) 행하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택하신 백성 곧 아브라함과의 언약 속에서 할례의 표를 가진 백성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진실한 순종의 삶이었다. 오늘날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받아 하나님의 백성된 신약교회의 성도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도(道) 곧 그의 모든 교훈들을 행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매우 강조하셨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도 바울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의와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빌립보서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순종하면 그가 그들의 원수를 속히 제어하며 그의 손으로 그들의 대적들을 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5절은 삽입구절로 보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징벌의 날이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16절은 다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순종하며 그의 도를 행하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밀로 먹이시고 반석의 꿀로 만족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순종의 대가는 영생뿐 아니라, 현세에서의 의식주(衣食住)의 풍족함을 포함한다.

시편 8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찬송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영생의 새 생명을 얻었고 죄와 사망과 영원한 멸망의 속박에서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님의 그 능력은 오늘날에도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능력을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우리를 죄와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신 분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뿐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성경을 주신 자이시다. 그 외의 모든 신들은 다 우상에 불과하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입을 넓게 열자. 우리는 찬송과 기도의 입을 넓게 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영육의 좋은 것으로 우리의 삶에 채워주실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청종하고 그의 도를 행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그 모든 교리를 믿고 그 모든 교훈 행하기를 힘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을 물리쳐주시고 우리에게 영육의 필요한 것들을 풍족하게 주실 것이다.

82편: 불의한 재판들과 하나님의 판단

[1-2절]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셀라).

‘재판장들’이라는 원어(엘로힘)는 ‘신(神)들’이라는 단어이다(KJV, NIV). 이 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재판장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재판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회’라는 말은 판사들이 판결하는 재판정을 가리킨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정에 서시며 판사들 중에서 그들을 판단하신다. 그는 판사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들로 공의를 시행해야 하였지만 악인들의 낯을 보아주며 불공평한 판단을 하였다고 지적하신다. 사회와 국가의 부패는 법정의 부패, 사법부의 부패에서 증거된다.

[3-5절] 가난한 자[약한 자](KJV, NIV)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환난 당하는]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약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저희는 무지무각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판사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로서 약한 자들, 고아들, 환난 당하는 자들, 빈궁한 자들을 위해 판단하며 그들을 위해 공의를 베풀며 그들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내어야 한다. 사회에서 재판이 필요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서다. 동물의 세계와 달리, 인간 세계에는 도덕적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패한 인간 사회의 실상은 그렇지 못해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부자들이 가난한 서민들을 억울하게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 왕은 궁궐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자신의 채전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였다. 그때 왕후 이세벨은 자기가 그 포도원을 왕에게 주겠다고 말하며 한 악한 일을 도모하였다. 그는 금식을 선포케 하고 비류[무가치한 자, 악한 자]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거하게 한 후에 그를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게 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 것도 불의한 판결에 의한 것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소하면서 그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였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의 주장은 로마 황제 가이사를 반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총독을 압박한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죽일 죄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세 번이나 그렇게 말하였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간계와 백성들의 소요로 인해 십자가형이라는 극형의 판결을 내리게 되었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셨던 것이다.

어떤 사회이든지 법정이 바로 선 사회라면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판사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사사로운 물질적 탐욕을 가지고 불의한 판결들을 내린다면, 그런 사회에는 소망이 없다. 그들이 무지하고 깨달음이 없어 어두움 중에 왕래하고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도덕적 기초는 흔들리고 만다. 세상의 극심한 도덕적 부패와 혼란은 법정의 부패에서 드러난다.

[6-7절]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엘로힘)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더지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판사들에 대해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인정하셨다. 판사들의 권위와 직무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의한 재판을 통하여 그 직무와 권위를 저버렸으므로, 그들은 평범한 사람같이 죽고 방백의 하나같이 엎드러질 것이다.

[8절]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판단하소서.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이는 주께서 모든 열방에서 기업을 얻으시겠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일어나실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농부가 가을에 곡식을 추수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 구원받은 백성은 복된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회개치 않고 죄 가운데 살던 자들, 즉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형벌, 곧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해 말하였다. 로마서 2:5, 1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으로 모든 불의를 벌하시고 땅 위에서 도덕 질서를 세우실 것이며 세상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증거하실 것이다. 그런 후 우리는 “의(義)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을 보게 될 것이다.

시편 8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의 판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 줄 알고 두려움을 가지고 항상 법과 이성과 양심을 따라서 공의의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들은 특히 약한 자들, 고아들, 가난한 자들, 환난 당하는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억울하지 않도록 공의를 시행해야 한다.

둘째로,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판사들 위에 계신 큰 판사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판사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공의롭고 공정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의와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

83편: 연합군을 멸하시기를 구함

[1-2절]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시끄럽게 떠들며] 주를 한하는[미워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때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깨어 일어나듯이 일어나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깨우는 것과 같고 하나님께서 일어나 일하시게 하는 것과 같다.

시편 저자가 하나님을 깨우려는 까닭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교만하게 머리를 쳐들고 대항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핍박자들과 대적자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대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뢰는 것이다.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고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3-4절]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의 숨긴 자(KJV) [혹은 ‘주의 보배로운 자들’](NASB)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치려고 간계를 꾀했고 그의 보배로운 자들을 치려고 서로 의논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말살시키려 계획했다. 후에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 멸망당했을 때나 남방 유다가 바벨론 나라에 멸망당했을 때도 그러했다. 에스더 때에도 그런 위기가 있었다. 원수들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이 있었다고 보인다.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원하고 오늘날에는 기독교회들의 쇠약과 멸망을 원하고 있다. 세상 곳곳에 참 교회들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고 그런 교회들의 건립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사탄의 원하는 뜻이다.

[5-8절] 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연맹을 맺으니](KJV, NIV)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거민이요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셀라).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나라를 말살하려는 계획에 여러 나라들이 일치단합하였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의논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나라를 대적하는 연맹을 맺었다. 에돔, 이스마엘, 모압, 하갈인, 그발,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심지어 앗수르까지 연합하였다. 역사상 참된 교회는 항상 소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말살하려는 계획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악한 일이다.

[9-12절]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패망시키신 사건들을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 사람들을 굴복시키셨고(삿 7-8장), 드보라 때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죽게 하셨고 그 왕 야빈을 진멸하셨다(삿 4장). 미디안 사람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의 거름같이 되었다. 엔돌은 미디안 전쟁에서의 격전지이었다.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은 죽임을 당했고 두 왕 세바와 살문나도 그러하였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원수들을 물리치셨듯이, 즉 시스라와 야빈에게, 또 미디안 사람들에게, 오렙과 스엡에게와 또 세바와 살문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하나님의 목장을 자기 소유로 취하자고 말하는 저 연합군을 물리쳐 주시기를 간구한다.

[13-15절] 나의 하나님이여,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초개 같게 하소서.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화염같이 주의 광풍으로 저희를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 하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검불 같게 하시고, 삼림을 사르는 불같이, 광풍과 폭풍같이 그들을 쫓으시며 두렵게 하시기를 구한다. 그는 또 그들로 그 얼굴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게 하시고 그들로 영원히 놀라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시기를 구한다. 기드온이나 드보라의 하나님은 또한 시편 저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실 수 있고, 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6-18절]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저희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편 저자는 또 악인들이 징벌 받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찾게 되고 또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에 지극히 높으신 자로 알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 즉 그의 구원과 심판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한다.

시편 8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렘 10:10-11). 그는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말살시키려는 원수들을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 징벌하신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난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도는 잠잠하신 하나님을 깨우는 일이요 체험하는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유일하신 지존자이심을 알고 그를 섬기며 순종하자.

84편: 하나님의 집을 사모함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宮庭)(카체르)[집뜰]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성막과 멀리 떨어져 있고 그곳에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성막을 심히 사랑하스럽게 여기며 성막 뜰을 사모하여 그의 영혼이 쇠약할 정도이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는 그가 거하시는 집을 사모할 것이다. 거기에는 그의 임재하심이 있고 그의 영의 감동이 있고 그의 말씀의 교훈이 있고 그의 사랑하시는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집과 그의 말씀과 그의 성도들을 사랑할 것이다.

또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생존하시는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믿었고 그에게 부르짖었다.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생명의 근원이 그에게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의 창조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므로 우리가 그와 동행할 수 있고 그에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다.

[3-4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엣-미즈베코세카)[주의 제단 곁에서]17)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또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왕이시며 또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우리는 그의 통치에 복종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의 하나님,’ 즉 내가 교제하며 섬기는 하나님이시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를 의지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의 의롭고 선한 말씀의 교훈을 따라 의롭고 선하게 사는 삶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제단 곁에서 참새도 자기 집을 얻고 제비도 자기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보잘것없는 새들도 거기에서 쉴 곳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이것은 아마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말한 것일 것이다. 그는 지금 어떤 이유로 성막을 떠나 있고 성막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려 해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저 새들이 자기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 곧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그의 말씀의 교훈을 받는 자는 참으로 복되다. 세상에서 사람이 하는 일들 중에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이다.

[5-8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大路, 메실라)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18)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편 저자는 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大路)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향하여 간절한 마음을 가지는 자는 힘을 얻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힘을 얻고 마음으로 시온을 향해 힘있게 나아가는 자는 복이 있다.

세상은 눈물 골짜기와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시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게 하신다. ‘샘’과 ‘이른 비’는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기쁨과 위로와 만족을 뜻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4).

[7-8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시편 저자는 이제 하나님의 성막과 그 뜰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자들이 힘을 얻고 더 얻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구한다. 그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가 되기를 구한 것 같다. 하나님을 멀리서 사모하던 그는 마침내 시온에서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9-10절]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이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집의](원문)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저자는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많은 원수들의 공격을 막아주시는 방패와 같은 분이시다. ‘주의 기름 부으신 자’는 자신을 가리킨 것 같다. 성도에게 고난이 없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죄와 불신앙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그 고난을 이기게 하신다. 시편 저자는 또한 “주의 궁정[집뜰]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집에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 보기를 심히 원한다. 그는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집의(KJV, NASB, NIV)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다. 악인들의 장막에서는 육신적, 세상적 쾌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러한 생활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그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11-12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또 ‘해’라고 부른다. 이사야 60:19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영한 빛이 되시리라고 말했다. 햇빛은 지식과 깨달음과 기쁨과 힘 등을 뜻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식과 깨달음과 기쁨과 힘을 주신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는 자는 악을 떠나며 하나님의 교훈대로 바르게 행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그를 경외하며 그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 영육의 복, 현세와 내세의 복을 주실 것이다.

시편 8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귀히 여기고 사모하자.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고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 우리는 신약교회를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 나라나 세상의 것들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과 늘 교제하고 하나님을 해와 방패로 삼고 복을 누리자.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과 기도로 사는 자들에게 지식과 깨달음과 기쁨과 힘을 주시고 원수들을 막아주시며, 또 그를 믿고 바르게 사는 자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85편: 하나님의 구원을 기도하며 기대함

[1-3절]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셀라).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이미 베푸신 은혜를 인정하며 고백한다. 그것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온 일을 말하는 것 같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으며 그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고 그의 진노를 돌이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의로 징벌하셨고 멸망시키셨고 바벨론 나라 사람들의 포로가 되게 하셨으나 그가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 진노를 거두실 때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땅에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4-7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發忿)하시겠나이까?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온전한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른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소서”라고 말한다. ‘돌이킨다’는 말은 ‘회개시킨다’는 뜻도 되고 ‘회복시킨다’는 뜻도 된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완전치 못하였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방인들과 혼인하고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고 또 주위의 원수들은 그들을 대적하고 어지럽히려 하였다(에스라, 느헤미야).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분을 내시겠나이까?”라고 말하며 또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들의 죄와 연약과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 날 동안 노하신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고 패망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리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시기를 간구하며, 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아뢴다. 그것은 심령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온전한 구원과 회복을 하나님께 구한 것이다.

[8-9절]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솰롬)[평안]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키슬라)[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평안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이다. 평안이라는 말은 마음의 평안과 육체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와 사회적 안정을 포함한다. 죄는 근심, 질병, 가난, 자연적, 사회적 재난을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평안을 가져온다. 하나님께서는 일마다 때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평안의 하나님이시다(살후 3:16).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의 구원으로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영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그 영광을 잃어버렸고 세상도 그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영광에 이를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장차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롬 8:18; 계 21:10-11).

그러나 시편 저자는 두 가지 단서를 말한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그의 긍휼을 구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망령된 것’은 어리석고 죄악된 일을 가리킨다. 우리는 다시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의를 행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죄를 짓는다. 어리석게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10-11절]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긍휼’은 하나님의 구원의 동기이며, ‘진리’는 구원의 내용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진리로 구원을 얻었다. 또 ‘의’(義)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며 ‘평안’은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평안을 얻었다. 그 평안은 심적, 육적, 물질적, 환경적 평안을 다 포함한다. 또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에서 탄생하셨고,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선언되었다.

[12절]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는 좋은 것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은 마음의 평안, 육신적 건강, 물질적 안정, 환경적 평안을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죄는 땅의 저주를 가져왔지만, 구원은 땅의 회복을 가져와 땅이 그 좋은 소산을 낼 것이다. 즉 구원받은 자들이 거주할 땅은 물질적인 복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3절] 의(義)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踪跡)으로 길을 삼으리로다[우리로 그의 걸음의 길로 가게 하리이다](KJV).

복음은 하나님의 의(義)의 소식이다. 이것은 인류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은 죄인들을 의인 만드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내용은 의(義)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의의 길을 걷는다.

시편 85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와 긍휼인 것과, 그 내용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순종하는 의(義)의 회복인 것과, 또 그 결과가 평안과 영광임을 잘 증거하고 있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감사하며 이 세상 사는 동안 항상 그를 의지하고 그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사모하자. 우리는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온전한 성화를 이루기 위해 계속 그의 은혜를 사모하자.

둘째로, 우리가 이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실제로 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법적으로 의인이 될 뿐 아니라, 실제로 의의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의 안에서 의와 선의 길을 걸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 사는 동안 평안을 누리며 또 장차 천국의 영광을 누리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평안하며 또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주실 부활의 몸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86편: 곤고함 중에 도움을 구함

[1-4절]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아니)[가난하고, 고난 당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다윗은 고난 중에, 곤고하고 궁핍한 중에 처해 있었다.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는 기도는 그가 목숨의 위험까지 느끼고 있었음을 보인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믿음이 있는 자이었다. 그는 “나는 경건하오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주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주를 의지하는 종’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과 주관자로 섬긴 경건한 자이었다. 또 그는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소망하였다. 그의 믿음은 그의 기도로 나타났다. 그는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콜 하이욤 םוֹיּ������־ל������)[계속하여] 주께 부르짖나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내용은, 첫째 내 영혼을 지켜주소서, 둘째 나를 구원하소서, 셋째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는 것이었다.

[5-7절] [이는] 주는 선하사 사유(赦宥)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는 근거로, “이는 주께서 선하시고 죄를 용서하시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며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다 용서하셨고 또 용서하신다. 또 그에게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도우심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기도를 받으시고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간구의 소원을 들으신다. 특히 환난 중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의 영육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신다. 그는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과 위로, 힘과 용기를 주시고, 육신의 건강과 일용할 양식과 거처할 집을 주시고, 또 사회적 평안도 주신다. 특히, 그는 우리의 환난 날에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신다.

[8-10절]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 대저 주는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한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대저 주는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주만 하나님이심이니이다(원문).”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과 다르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까닭은, 그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때때로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기적들은 그가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일들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복음화의 전망을 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므로 온 세상의 모든 열방은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에게 경배하며 그의 뜻을 행함으로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온 땅에 복음이 충만하게 전해질 것이며 택한 백성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될 것이다.

[11-13절]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주의 이름을 경외하도록 나의 마음을 묶으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지옥]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다윗은 성도의 본분에 대해서도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道)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의 도’란 하나님께서 교훈하신 말씀을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 진리대로 믿고 살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우리는 나뉘거나 흐트러지지 않은 마음으로, 곧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길 배우기를 사모하는 자는 복되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요한이서와 삼서에서 강조된 교훈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훈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 그의 진리를 믿고 그 교훈을 행하는 것이다.

다윗은 또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를 전심으로 찬송하며 영원히 그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사 43:21).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크신 인자를 베푸셔서 그를 깊은 지옥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소원한다고 말한다. 지옥에서 구원받은 자마다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 돌릴 것이다.

[14-17절]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종에게 [주의]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다윗은 그를 치는 교만한 자들과 그의 생명을 찾는 강포한 무리를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악한 자들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포하여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여럿이 무리를 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롭고 선한 자들을 대적한다. 다윗은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고 자격 없는 자들을 사랑하셨고 분노를 오랫동안 참으셨고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을 굳게 믿었다. 그는 원수들의 핍박이 심할 때 은혜의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그의 도우심을 호소했다. 부족과 실수가 많고 죄성을 가진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과 힘과 구원을 구할 것밖에 없다. 다윗은 또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자기 종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식으로 도우시고 위로하시며 시시때때로 ‘은총의 표증’을 주실 것이다.

시편 8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위대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은혜가 풍성하시고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또 그는 교만하고 강포한 자들에게 핍박받는 곤고하고 궁핍한 성도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시시때때로 은총의 표증을 보여주신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전심으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모든 말씀을 믿고 행해야 한다.

87편: 하나님께서 시온을 사랑하심

[1-3절] 그 기지(基址)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시편 저자는 그것의 기지(基址)[기초]가 성산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의 기초가 거룩한 산에 있다는 뜻이다. 시온산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해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산 위에 예루살렘 성을 세우셨다. 예루살렘 성은 구약교회를 대표하였다. 구약교회의 기초는 시온산이며 그 중심은 성전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교회의 기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는 거룩하고 튼튼한 기초이시다(고전 3:11).

시편 저자는 또한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문들이 많이 있었다. 느헤미야 3장에는 아홉 개의 문이 언급된다. 양문(羊門), 어문(魚門), 옛 문, 골짜기 문(대하 26:9), 분문(糞門), 샘문(느 2:14), 수문(水門), 마문(馬門), 함입갓문(검사문)(NASB, NIV) 등이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에브라임 문(왕하 14:13; 느 8:16; 12:39), 감옥문(느 12:39)[시위대 문](NASB, NIV)(왕하 11:6, 19; cf. 느 3:25), 성 모퉁이 문(왕하 14:13; 대하 25:23; 26:9; 렘 31:38), 하시드 문[질그릇조각 문](렘 19:2)(아마 분문과 같을 것), 베냐민 문(렘 37:13; 슥 14:10) 등이 언급된다. 모두 12개 이상이다.

야곱의 모든 거처가 다 하나님의 나라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시온의 문들은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가 있었고 또 사람들의 죄를 씻는 속죄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은 참 교회와 천국을 예표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린다(계 21:2, 10).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의 성이여, 너에 대해 영광스런 일들이 말해지는도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하나님의 성이다. 거기에서는 죄인들의 속죄와 구원이 있고 인류와 세상의 완전한 회복에 대한 예언과 약속이 있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의만 가득하고 평안이 넘친 새 예루살렘 성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4-5절]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고 말한다. 그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代言)한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성을 보인다. 라합은 ‘바다 괴물’을 가리키는 말로서 애굽에 대한 상징적 명칭이다(사 30:7). 애굽과 바벨론은 남쪽과 북쪽의 강대국들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원수들이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원받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시편 저자는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고 말하며 또 “시온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고 말한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나라의 서쪽에 있는 나라요 두로는 북쪽에, 구스는 남쪽 먼 곳에 있는 나라이다. ‘거기서 났다’ 즉 시온에서 났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로 다시 태어났다, 즉 중생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주위의 여러 나라들, 심지어 먼 곳의 나라들에서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고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성전 건립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된다(슥 4:6). 주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친히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교회의 건립은 하나님의 일이다.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며 죄인들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다(요 3:5).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나 구원받은 자를 양육하는 목회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을 중생시키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고전 3:7).

[6-7절]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콜렐림) [피리 부는 자들](BDB, KJV, NASB)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들, 즉 시온에서 난 자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하실 때 그 수를 하나도 빠뜨림 없이 다 세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영생을 주실 자들을 택하셨다(엡 1:4).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을 주셨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고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고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요 6:39).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요 10:27).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행 13:48). 택함 받은 자들은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노래하는 자들과 피리 부는 자들은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기쁨의 간증을 묘사한다고 본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근원, 즉 구원과 영생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들은 노래하며 피리를 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 때문에 그들은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사실, 슬픔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형제들을 볼 때에 기쁨을 가진다. 바울은 성도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다(빌 4:1). 또 그는 그가 복음을 전하고 양육했던 성도들을 그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했다(살전 2:19-20). 물론, 성도들은 장차 들어갈 영광스런 천국과 복된 영생을 소망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롬 5:2; 12:12).

시편 8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신다.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은 장차 임할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을 상징한다. 신약교회는 불완전하지만 그 시작이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요 3:3, 5). 그들만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계 20:15). 또 중생의 표는 회개와 믿음이다. 요한일서 3:9-10,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영광의 천국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사모하자.

둘째로,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택자들을 남김 없이 다 구원해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

88편: 곤란 중에 부르짖음

[1-2절]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른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이시며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직면하는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분은 그 하나님뿐이시다.

시편 저자는 또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은 기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열심으로, 간절히,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후 그의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바른 태도이다.

[3-7절]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쉐올) [무덤]에 가까왔사오니 나는 무덤(보르 רוֹב)[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구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까닭은 그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무덤에 가깝다고 말하며 자신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힘이 없는 자와 같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큰 고통 중에 있다. 그는 자신을 사망한 자들 중에 던지웠다고 말하며 살륙을 당해 무덤에 누운 자와 같다고 한다. ‘던지웠다’는 원어(코프쉬)는 ‘자유롭다’(BDB) 혹은 ‘버림을 받았다’(NASB)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다시 기억지 않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들인데, 그는 자신이 바로 그런 자와 같다고 말한다. 지금 시편 저자가 이러한 슬픔과 절망의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노하셔서 심히 누르시고 그의 모든 고통의 파도로 그를 괴롭게 하셨다.

[8-9절]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로 저희에게 가증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친구들로 그를 멀리 떠나게 하셨고 그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게 하셨고 또 갇힌 자같이 친구들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하셨다. 또 그는 곤란으로 인해 그의 눈이 쇠하게 하셨다. 사람이 심신으로 피곤하고 고통스러울 때 눈이 쇠한다. 그것이 지나치면 눈의 핏줄이 터져 시력에 손상을 입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곤란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는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루 이틀 기도하다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날마다, 여러 날 계속해서 기도하였다. 그는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아마 복종을 결심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10-12절]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奇事)를 보이시겠나이까? 유혼(幽魂)(레파임)[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시편 저자는 자신을 사망한 자나 무덤에 있는 자 또는 흑암 중에, 잊음의 땅에 있는 자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죽고 말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奇事)를 보이시겠나이까?”라는 말은 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기사 즉 그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기 원함을 나타낸다. 또한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라는 말은 그가 살아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선포하기를 원함을 나타내며, 또한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라는 말도 그가 살아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과 그의 의를 체험하기를 원함을 나타낸다.

[13절]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편 저자는 아침에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는 새벽기도를 한 것 같다. 혹은 밤새도록 한 기도가 아침에 하나님께 상달할 것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새벽기도는 세상일을 하기 전, 가장 좋은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친히 본을 보이신 일이었다(막 1:35). 하나님께서는 고난받는 성도가 밤새도록 올리는 기도나 새벽이나 아침에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14-17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 내가 소시(少時)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렀나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자신이 처한 고통의 현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고 그를 향해 은혜의 얼굴을 숨기신 듯하였다. 시편 저자는 또 “내가 소시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고난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고난을 주셨고 그를 두렵게 하셨으며 시편 저자는 그때에 당황하였고 죽을 지경이었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시 34:19).

시편 저자는 또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렀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홍수가 그를 덮치듯이, 두려움이 온종일 그를 에워쌌었다.

[18절]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멀리 떠나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외로움은 사람의 큰 고통들 중의 하나이다. 그를 사랑하던 자들이나 친구들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었다.

시편 88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정신적인 혹은 육체적인 큰 고난이 있다. 우리의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 조차도 우리를 버릴 때가 있다. 아마 가장 큰 고난은 죽음의 문 앞에 버려지는 것일 것이다. 죽음을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런 고난은 주로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에 오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노하시는 까닭은 우리의 죄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 사람은 고난이 없을 때 죄 가운데 살기 쉽지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성도는 그런 때 회개하며 복종하며 구원의 하나님께 주야로, 날마다,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믿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구원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믿는 자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침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89편: 주의 인자와 신실을 간구함19)

1-18절, 주의 인자와 신실과 능력을 노래함

[1-2절]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에무나)[신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이는]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신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하였음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국가적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언급하였다고 보인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죄인들을 공의로 갚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심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특히 그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심을 나타난다. 성도들은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송하며 증거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을 확신했다. 그는 그런 확신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노래하며 전하겠다고 말한다.

[3-4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位)[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셀라).

원문에는 ‘주께서 이르시되’라는 말이 없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을 선언한다. 그는 내가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경 저자의 영감성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자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며 맹세하시기를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케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5-7절] 여호와여, 주의 기사(奇事)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신실]도 거룩한 자[들]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들]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주의 기사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신실도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라고 말한다. ‘거룩한 자들’은 천사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은 창조와 섭리의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기사(奇事)와 신실하심을 찬양할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이는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들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함이라”고 말한다. ‘권능 있는 자들’도 천사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시며 찬송을 받으실 만한 자이시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들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 가운데서 심히 엄위하시며 그를 둘러 있는 모든 천사들이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자이시다.

[8-10절]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여호와여, 주는 강하시니이다](NIV, 원문 액센트). 주의 성실하심[신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주께서 라합을 살륙당한 자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시편 저자는 또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여호와여, 주는 강하시니이다. 주의 신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라고 말한다. 능력이 크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한 신실하심이 충만하시다. 또 시편 저자는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주께서 라합을 살륙당한 자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라합은 ‘바다 괴물’을 뜻하는 말로 애굽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자연만물 가운데서 바다의 흉용함을 잔잔케 하심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하심에서도 나타났다.

[11-14절]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시편 저자는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온 우주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는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건설하신 자이시다. 시편 저자는 또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라고 말한다. 동서사방이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다. 아시아의 북쪽 시베리아의 추운 땅도, 저 남쪽의 호주 대륙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다볼은 갈릴리 남쪽의 산이며 헤르몬은 먼 북쪽의 산이다. 시편 저자는 그것들이 창조자 하나님의 이름을 인해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시편 저자는 또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증거한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이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또한 도덕적 하나님이시다. 그는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신다. 그는 무지와 오해, 편견과 편협함을 가지고 행치 않으시고 항상 바르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사물을 판단하시고 다스리신다. 또 그는 인자하시다. 그는 피조물을 향해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시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 또 그는 진실하시다. 그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신다. 그는 처음과 끝이 같으시다. 그에게는 거짓이나 속임이나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인 것이 없으시다. 그는 항상 진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

[15-18절]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이는] 주는 저희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이는]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아는 자들이며 복을 받은 자들이다. 그는 또 “저희가 주의 얼굴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나이다”라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어린 아기가 엄마 얼굴을 쳐다보며 놀듯이,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서 살며 기쁨과 평안,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이의 이름을 기뻐하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또 하나님의 의, 즉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죄사함과 구원의 의로 인해 높임을 받을 것이다.

원문에는 17절과 18절 초두에 각각 ‘이는[왜냐하면]’(키)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성도들의 기쁨의 이유를 보인다. 성도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며 그들의 뿔[힘]이 그의 은총으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 저자는 이어서 말하기를, “이는 우리 방패가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한다. 이 구절은 옛날 영어성경(KJV)의 번역대로 “여호와는 우리의 방패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우리의 왕이심이니이다”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이시다. 환난 중에, 절망적 상황에서 그는 우리의 힘이 되신다. 성도가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이 힘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의 방패이시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원수들과 악한 자들의 간교한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평안히 살아갈 수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다. 좋은 왕은 그 백성을 잘 다스리고 인도하며 원수들을 물리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가장 좋은 왕이시다. 그는 우리들을 잘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며 마귀와 악령들과 인간 원수들까지도 물리쳐주시고 또 우리를 항상 보호해주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사랑하셨고 우리의 많은 죄와 부족들을 용서하셨고 또 오래 참으시며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또 그는 진실하시고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다. 그의 모든 말씀은 다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값없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 의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의 회복과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신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신실하시고 의로우심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다. 하나님의 속성들은 그의 계명의 내용이며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올바르게, 인자하게,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19-52절, 주의 인자와 신실과 능력을 간구함

[19-24절] 주께서 이상(異像) 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돕는 힘(에제르)[도움]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내 손이 저와 함께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내 손이 그와 함께 견고하며 내 팔이 또한 그를 힘있게 하리로다].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恨)하는[미워하는] 자를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능력 있는 자’나 ‘백성 중에서 택한 자’는 다윗을 가리킨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 다윗에게 어릴 때부터 힘을 주셨다. 그는 후에 그를 백성 중에서 구별하여 거룩한 기름을 부으셨고 그로 존귀한 왕이 되게 하셨다. 그는 다윗에게 이미 주셨던 은혜 위에 더 풍성한 은혜를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윗에게 힘을 주셨다.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하여 견고케 하시고 그의 팔이 그를 힘있게 하실 것이다. 그는 또한 그의 원수들을 막아 주시며 물리쳐 주실 것이다. 그는,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미워하는 자를 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또 다윗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실 것이며 끝까지 신실하게 행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부족과 실수를 불쌍히 여기시며 끝까지 언약을 지키실 것이다. 그로 인해 다윗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25-29절]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位)[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윗의 손을 바다 위에 세우시며 그의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실 것이다. 이 말씀은 다윗 왕국의 세력이 지중해와 유브라데 강까지 확장될 것을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또 신약교회가 온 지구에 확장될 것을 암시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고 부를 것이다. 그 고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증거한다. ‘나의 아버지’라는 말은 자신을 창조하시고 양육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또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또 ‘나의 구원의 바위’라는 말은 자신을 죄와 환난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윗을 향해 베푸실 그 외의 복된 은혜들에 대해 증거하신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자로 삼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든 성도 중 ‘맏아들’이라고 불리신다(롬 8:29).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다(계 19:16).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그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의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은 언약을 굳게 세우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히 9:15).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영원히 있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 믿는 성도들의 모임인 신약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있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보좌를 하늘의 날과 같이 영원하게 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영원한 왕이시다.

[30-37절]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位)[왕위]는 해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셀라).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그의 자손들이 죄만 짓는데도 유효(有效)한 언약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들이 그의 율법을 버리며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의 범과를 다스리실 것이며 그들에게 평안 대신 징계의 채찍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다(히 12:8).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징책은 미움의 표현이 아니고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히 12:6).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맹세로 하신 언약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에 충실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에는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왕위는 해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 ‘그 후손’이라는 원어는 단수명사로 일차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모임인 신약교회도 가리킬 것이다. 또한 메시아의 왕위는 해와 달같이 하나님 앞에 항상 있고 영원히 견고케 될 것이다. 히브리서 13:8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38-45절]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하사 물리쳐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저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길로 지나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 주께서 저의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저희 모든 원수로 기쁘게 하셨으며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저로 전장(戰場)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저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 위[왕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그 소년의 날을 단촉케 하시고 저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셀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여러 번 체험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노하셔서 물리쳐 버리셨으며 그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다. 그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언약을 맺어 친밀한 관계를 가지시고 영광의 관을 씌우셨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행하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려고 주셨던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요새들을 부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길로 지나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 이웃 나라들에게 욕을 당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 모든 원수들로 기쁘게 하셨으며 그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그로 전쟁터에 서지 못하게 하셨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힘있게 하셔서 우리를 이기게도 하실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우리를 힘있게 하셔서 원수를 이기게도 하실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칼날을 날카롭게도 하시고 둔하게도 하신다. 그가 이전에 이스라엘 나라에 승리를 주셨었으나, 지금 그는 원수들이 그들을 이기게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의 보좌를 땅에 엎으셨다. 또 그는 그 소년의 날을 단축하게 하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다. 개인과 국가의 영광과 존속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광과 장수를 줄 수 있으시나 지금 그들에게 영광 대신 수치를, 장수 대신 단명(短命)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노하시고 그들의 울타리와 요새를 파괴하시고 그들로 패배케 하시고 그들에게 수치와 죽음을 주셨다.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신 까닭은 그들의 범죄 때문이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증거된 진리이다.

[46-52절]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셀라).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주는 주의 종들의 받은 훼방을 기억하소서. 유력한 모든 민족의 훼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여호와여, 이 훼방은 주의 원수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훼방한 것이로소이다.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의 응답하심과 도우심을 주지 않으신 것이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 때문이라고 깨닫고 있다.

시편 저자는 또 지금 이스라엘 나라가 죽음 앞에 서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라고 말한다. 죽음 앞에 선 자는 인생의 짧음과 허무함을 실감하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음부’(陰府)라는 말(쉐올 לוֹא������)은 무덤 혹은 지옥을 가리킨다.

시편 저자는 또 이스라엘이 많은 원수들의 훼방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주는 주의 종들의 받은 훼방을 기억하소서. 유력한 모든 민족의 훼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여호와여, 이 훼방은 주의 원수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훼방한 것이로소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의인들은 까닭 없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예수님도, 바울도 그런 비난을 당하였었다.

시편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언급하며 의지하는 그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는,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그의 인자하심으로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셨고 맹세하셨다. 그는 그 언약을 영원히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하시고 신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된 성도들에게 능력과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약속하셨다. 그는 그가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에게 돕는 힘을 주시기를 약속하셨고(19, 21절) 그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끝까지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24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그의 인자하심을 영구히 지키실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 백성에게 노하신다. 38절,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하사 물리쳐 버리셨으며.” 46절,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까닭은 오직 그들의 죄 때문이다(히 12:6, 8).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지하면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자. 49절, “주여, 주의 성실[신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회개와 믿음의 간구를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