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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Jeremiah)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영국신사77 2020. 4. 14. 18:46

제목차례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5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쇠풀무 불 같은 고난을 받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던 때에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그 주요 내용이 십계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명령을 듣고 행하라고 명하셨다. 그 언약에는 약속과 경고가 들어 있었다(레 26장; 신 28장).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복을 누릴 것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아 멸망할 것이다.

[6-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완고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고 부지런히 명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에서 경고하신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반역하였고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다. 그러므로 그 언약의 파기는 그 언약에 규정된 벌칙을 가져올 것이다.

[11-12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재난]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가서 구해도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13절]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

유다 백성은 멸망한 북방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한 죄악이었다. 사람이 제1계명을 범하면 다른 계명들을 바르게 지키는 것도 자연히 무너질 것이다. 그들이 섬기던 신들의 수는 그들의 성읍 수만큼이나 많았다. 그들은 많은 바알들에게 분향하는 단들을 이곳저곳에 쌓았다.

[14절]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의 완고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들을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긍휼을 거두셨고 예레미야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5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제물]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

원문의 뜻은 분명치 않아서 영어번역들도 서로 다르다. 한글개역성경의 난외주에는 고대 헬라어 70인역의 본문이 소개되어 있다: “내 사랑하는 자가 가증한 일을 행하였거늘 내 집에 있음은 어찜이뇨? 서원이나 거룩한 고기가 죄악을 없게 하겠으며 혹 이것을 피하겠느냐?”(NASB와 비슷함).

[16절]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를 격동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은 특히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징벌이었다.

[18-19절]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나는 끌려서 잡히러[죽으러] 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라크모)[그것의 양식, 그것의 열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악한 유다 사람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은밀히 해하려고 하였다. ‘그 나무와 그 양식’은 선지자 예레미야와 그의 설교 사역을 가리킨 것 같다.

[20절]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冤情)[원통한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報讐)[보복]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예레미야는 뒤늦게 그들의 음모를 알고 하나님께 보복을 호소한다.

[21-23절]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의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그를 위협하였다. 공공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을 벌하시는 해에 청년들은 전쟁에서 칼에 죽을 것이며 자녀들은 전쟁으로 인해 굶어 죽고 남은 자가 없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심히 부패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었지만, 그를 거역하였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했고 영적으로 행음한 자들 즉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의 신들은 성읍들의 수효와 같이 많았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배척하였다. 우리는 사람의 심히 죄악됨을 깨닫자.

둘째로, 죄는 하나님의 재앙을 가져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의 배교와 우상숭배에 대해 재앙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긍휼을 거두셨고 그들을 그 재앙 가운데 버려두실 것이다. 그들은 칼과 기근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계명 순종은 율법의 핵심적 요구이다. 우리는 행위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선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증거가 된다. 참된 믿음은 순종을 수반한다.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2절]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내가 (주의) 공의에 대해 주께 말하리이다](KJV, NASB, NIV)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예레미야의 질문은 왜 악한 자들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들이 평안한가 하는 것이었다. 욥이나 시편 73편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하였다(욥 21:7-15; 시 73:3-12).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 공의의 보응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 가운데 그들을 버려두시는 듯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시행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과 섭리는 죽지 않았다.

[3-4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죽이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찰하심을 믿으며 그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공의로 징벌하시기를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며 담대히 호소하였다.

[5절]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안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가온)[위엄]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질문에 응답하셨다. 요단의 위엄은 ‘모맥 거두는 시기에 요단강의 넘침’(KJV)이나, 혹은 ‘사자들이 숨는 요단강변의 위험한 울창한 숲’(NASB, NIV, BDB)을 가리킬 것이다. 여하튼, 그것은 큰 환난의 때를 상징한다. 사람이 평안한 때나 작은 고난의 때에 피곤하고 낙심하면, 어떻게 큰 고난의 때에 잘 견딜 수 있겠는가? 주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고(요 16:33), 사도 바울도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하였다(엡 6:10-11).

[6절]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형제들과 친척들이라도 우리를 속이고, 때때로 우리로 믿음에서 떠나게 하며 불신앙으로 유인하거나 낙심케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6).

[7-9절]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집’(7절), ‘내 산업’(7, 8, 9절),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7절)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의 언약을 지키면 열국 중에서 그의 소유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19:5-6). 또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상 만민 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말하였다(신 7: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는 까닭은 그들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셨다.

[10-11절]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많은 목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와 동맹한 왕들과 지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땅이 황폐케 될 것이다.

[12-13절]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바벨론 군대는 ‘훼멸하는 자’와 ‘여호와의 칼’로 올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칼과 분노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에게 진노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의 불경건, 우상숭배, 불평, 원망, 하나님 대항, 부도덕, 음란, 거짓, 미움, 사악함 등의 죄악 때문이다.

[14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 을 해쳤던 ‘그의 모든 악한 이웃’인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강대국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실 것이다. 역사상,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 바벨론은 메대 파사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방 나라들의 멸망은 유다 나라의 구원과 회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내실 것이다. 이 예언은 파사 왕 고레스 때에 유다 백성들의 포로 귀환으로 성취되었다.

[15-17절]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이 내 백성의 도(道)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살아계신 여호와라고 말하며]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키신 후 그 나라들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셨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도(道)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세움을 입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으로, 세상의 최고의, 최종의 권위자로, 만복의 근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를 거스르면 화를 당할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에 성취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인해 불평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를 의심하지 말자. 5절,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사자들이 있는 위험한 곳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고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때 그를 버리셨다. 그는 자기 백성의 불경건, 우상숭배, 불평, 원망, 하나님을 대적함, 부도덕, 음란, 거짓, 미움, 사악함 등의 죄악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징벌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고 두려워하고 모든 죄를 미워하고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자.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긍휼로 구원하시고 또 이방인들도 긍휼로 구원하신다. 15-16절,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긍휼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부지런히 배우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

베띠는 교만한 유다 백성을 가리키고 그 베띠를 유브라데 물가에 감춘 것은 그 백성이 장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암시했다.

[8-10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그들을] 섬기며 그에게[그들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

사람의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며 우상숭배로 나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실 것이다.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테힐라)[찬송]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컸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의 영광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고 하나님의 복을 물리쳤다. 이것이 인생이며 인류의 역사요 세상의 현실이다. 사람은 심히 부패하고 무지하고 죄악된 존재이다.

[12-14절]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비유에서 언급된 포도주는 기쁨과 즐거움의 포도주가 아니고 죄악과 혼란과 진노의 포도주를 가리켰다. 유다 백성은 죄악이 충만하여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거칠고 혼란스러운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듯 하며 서로 다투고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징벌이다. 사람이 바른 정신을 가지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어느 정도 건설적일 것이지만, 술 취한 자들은 서로 다투고 파괴적일 뿐이다.

[15-16절]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교만이 근본적 죄악이다. 죄인은 교만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슬픔과 불행의 어두움이 오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17절]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베미스타림)[은밀한 곳들에서]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예레미야는 그들의 불순종과 교만 때문에, 또 그 결과로 이방인들에게 사로잡힘 때문에 은밀하게 통곡할 것이라고 말한다.

[18-19절]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유다 왕과 왕후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20-23절]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하나님께서 너를 징벌하실 때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는 네가 그들을 가르쳐 네 위에 대장으로 삼았음이니라](원문, KJV)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劬勞)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북방에서 오는 자들은 바벨론 군대이다. 그들은 유다의 아름다운 양떼 곧 그 백성을 다 사로잡아 갈 것이다. 유다 왕의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을 것이다. 그의 고난은 그의 죄악이 크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는 큰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증거한다. 사람은 악에 익숙하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이다. 성경과 역사와 사람의 경험은 사람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의 진리를 확증한다. 사람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24-27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應得)[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정(不淨)하겠느냐?]

이스라엘의 근본적 죄악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 신들, 즉 헛된 우상들을 신뢰한 것이다. 경건은 도덕성의 기초이며 불경건과 우상숭배는 부도덕의 원인이다. 우상숭배자들은 영적인 간음자들이며 그들은 육적으로도 음행에 떨어지기 쉽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나게 된다(잠 16:6). 이스라엘 백성은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악 때문에 그 보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당할 보응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수치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큰 교만을 썩게 하실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섬기는 것이며 죄악성의 핵심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거역하고 우상숭배에 떨어지고 서로 미워하고 다툰다.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기본적 마음가짐이다. 또 그런 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하려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고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거짓을 신뢰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서로 충돌하며 상하게 하실 것이며 긍휼히 여기지 않고 멸하실 것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가며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며 헛된 우상들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영생과 평강의 길이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해야 한다. 27절,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정하겠느냐?]” 죄는 불결이요 의는 거룩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 곧 우리가 모든 죄악을 버리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다 지켜야 한다. 온 세상이 불로 태워질 심판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심판 날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벧후 3:9-12).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6절]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 나귀들은 자산(赭山)[벌거숭이 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가뭄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성문에 모여 애통할 것이다. 부자들은 종들을 보내어 물을 길어오게 우물에 보내지만 그들은 물이 없어 빈 그릇으로 돌아올 것이다. 농부들은 땅이 메말라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들짐승들도 물이 없어 헐떡이며 힘이 쇠해갈 것이다.

[7-9절]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메슈보세누 )[우리의 변절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한다. 그는 백성들이 심히 변절하였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버리지 마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라고 부른다. 그것은 바른 신앙고백이다. 그는 유다 나라에 닥친 정치적, 외교적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 즉 가뭄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도우시기를 간구한다.

[10절]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응답 대신 재앙을 선언하셨다. 구원과 심판은 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 물론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와도 관계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된 길을 떠나지 않고 그 길에서 방황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해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11-12절]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예레미야는 이 백성을 위해 복을 구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너무 완고한 마음으로 죄에 빠져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 형식도 그 상태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13절]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유다 멸망의 시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다.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임할 하나님의 재앙 때문에 슬플 뿐 아니라, 또한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 때문에 슬펐다. 거짓 선지자들은 전쟁과 기근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평안이 약속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말들과 계시들을 전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언하시는데, 그들은 평안을 선포했다.

[15-16절]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그 거짓 선지자들이나 그들의 예언을 받았던 백성은 다 칼과 기근으로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재앙은 그대로 임할 것이다.

[17-18절]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과 반대로, 그 땅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며 이 일을 내다본 예레미야는 밤낮으로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19-20절]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베아사) [두려운 일]을 보나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멸망으로 고통 중 그들의 죄를 인정한다.

[21-22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位)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그의 이름과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며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릴 자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반드시 벌하신다. 가뭄의 재앙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고 말씀하셨다(10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그 거처를 전쟁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이치는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다. 마지막 심판 때에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이것은 불변적 법칙이다.

둘째로,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얻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며 곤란한 때의 구원자이시다.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릴 자는 창조주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하나님만 앙망해야 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계명들을 힘써 지켜야 한다.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해결자이시다. 사람이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얻는 길밖에 없다.

셋째로, 거짓 교사들을 조심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고 바른 길 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선언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선언하며 회개를 방해하였다. 예수께서는 주의 재림 직전에도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목사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다고 예언하셨다(마 24:11). 사도 시대 말에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과 이단자들이 나타났었다(요일 2:18; 유 3-4).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사람의 사상과 행위를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고 판단함으로써(사 8:20; 마 7:16, 20), 거짓 목사들을 분별하고 경계해야 한다.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14절, 절망적인 재앙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치라.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세계 열방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라](BDB, NASB).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죄악 때문이었다. 므낫세는 심한 우상숭배의 죄와 많은 의인들의 피를 흘리는 죄를 범했다(왕하 21장). 그러므로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할 수 없었고 그들을 내쫓으실 것이다. 절망적인 재앙의 선언이었다. 그 재앙의 내용은 사망과 칼과 기근과 포로 됨이며, 또 사망의 재앙은 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 땅의 짐승이었다. 또 그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게 두려움이 될 것이다.

[5-7절]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곡할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뇨?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렸고 그에게서 물러갔다. 그들은 배교자이었고 변절자이었다. 그들은 그 죄악된 길에서 회개하며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손을 펴셔서 그들을 멸하시며 그 자녀들을 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신 적이 많았으나 이제는 그가 그의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다고 말씀하신다.

[8-9절]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훼멸할[파괴할]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졸지에[갑자기] 임하게 하였으며 일곱 자식을 생산한 여인으로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오히려 백주에 그의 해로 떨어져서 그로 수치와 근심을 당케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편들이 전장(戰場)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에 과부들이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낮에 갑자기 바벨론 군대를 불러오심으로 그들로 놀라며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다. 일곱 자식을 낳은 여인이라도 기절할 것이며 그의 남편은 죽고 그는 대낮에 수치와 근심을 당할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은 그 대적의 칼에 죽을 것이다.

[10-11절]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3)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마음의 큰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는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재앙을 선언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때리고 저주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고통하는 예레미야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14절]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러나 네 모든 죄로 인하여 네 사경의[네 사방에서]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너로 네 대적과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이 북방의 철과 놋으로 비유된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할 것을 암시하신다. 또 그는 그들의 모든 죄 때문에 또 그들의 사방에서 모든 재산과 보물이 값없이 탈취를 당할 것이며 그들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의 심판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심판과 구원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주권적 작정자와 섭리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심판도 구원도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도 행하시고 구원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패역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죄를 회개치 않으면 그 심령이 무디어지고 완악해진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3:13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하고 범죄했을 때 즉시 회개하고 패역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의지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전도서 12:13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소망하고 순종해야 한다.

15-21절, 하나님의 교훈과 위로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예레미야는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시고 돌아보시고 그를 핍박하는 자에게 공의의 보복을 내리시기를 호소하고 또 자신을 멸망으로부터와 치욕 당함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16-17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메사카킴)[떠드는 자들] (BDB, NASB, NIV)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악한 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시편 1:2는,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했고, 다윗은 시편 19:10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말했고, 시편 119편 저자도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103절)라고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또 악인들과 교제하지 않았다. 그는 술이나 마시고 떠드는 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런 모임을 즐거워하지도 않았고 늘 홀로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분노로 가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18절]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그의 고통과 그의 중한 상처가 낫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셨다. 그것은 그에게 낙심할 만한 일이었다.

[19-21절] [그러므로](라켄)(KJV, NASB, NIV)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救贖)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불신앙과 의심을 버리고 믿는 자가 되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그는 또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한다는 표현은 악인들의 생각과 말, 심지어 선지자의 인간적 생각과 말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말씀을 붙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인간 선지자는 백성의 핍박과 비난 때문에 그들과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는 백성을 구원해야지 백성의 잘못된 사상이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설교자는 회중을 인도하는 자이어야지 회중의 비위를 맞추는 자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설교자가 회중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에 타협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사람들의 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하였다(갈 1:10).

하나님께서는 친히 한 가지 약속을 주신다. 그것은 그가 그를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는 원수들이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은 그가 친히 함께하시고 그를 도우시고 그를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주의 종들에게 고난은 항상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지키심과 구원하심으로 그에게 승리도 항상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만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 불신앙과 의심에 떨어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행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시편 56:3-4,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한 자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 마음이 약해질 수 있으나, 그런 때에 악한 자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 아니 불순종이며 악과의 타협이며 신앙의 변절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교제를 항상 조심해야 하며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견고한 놋성벽이 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 고난이 있으나 승리도 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과 자녀들과 함께하시고 악인들에게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그들로 세상에서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다. 많은 고난을 경험했던 사도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하였다(고후 2:14).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13절, 슬픔의 시대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이는](원문) 이곳에서 생산[출산]한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미와 그들을 낳은 아비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말함이니라]. 그들은 독한 병[병들]으로 죽고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지면의 분토(도멘)[똥]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몇 가지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하나는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이 땅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질병과 전쟁과 기근으로 죽고 슬퍼함이나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땅 위의 똥과 같이 되고 그 시체는 새와 짐승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과 재앙의 날이 올 것이며 그때에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5-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슬플 때에 떡을 떼며 그 죽은 자를 인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비나 어미의 상사(喪事)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울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상가에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통곡하지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에게서 평안을 빼앗으시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날에는 어른이나 아이나 이 땅에서 죽을 것이며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애곡하는 자나 위로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장례식은 쓸쓸할 것이다. 6절에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인들의 풍습을 가리킨다(레 19:28; 신 14:1).

[8-9절] 너는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잔칫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기뻐하지도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 까닭은, 그가 그 땅을 심판하실 때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

[10-13절]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또 너희는]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는 이유를 증거한다. 그것은 그들의 열조와 그들의 죄 때문이다. 그들의 열조의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 죄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죄는 그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쉐리루스)[완고함]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심으로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그곳에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세상의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심판의 날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취하지 말라, 상가(喪家)에 들어가지 말라, 잔칫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등의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결혼이나 출산이나 잔치나 장례식이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이런 것에 너무 큰 의미와 가치를 두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 너무 기뻐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7:29-31).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약간만 기뻐하고 약간만 슬퍼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며 내세를 사모하며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의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것 때문이다. 불의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과 멸망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그것이 의의 길이며 평안의 길이다. 전도서는 세상의 허무함을 증거한 후에, 결론적으로 12:13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모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만 믿고 바르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의 평안을 빼앗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였다고 말씀하셨다(5, 13절).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거두시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와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누릴 자는 아무도 없다. 죄인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았다. 또 우리의 평안도, 행복도, 영생 복락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하며 사모하자.

14-21절, 회복의 날이 있음

[14-1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라켄)[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4절 초두에 ‘그러나’(NIV)는 문맥적으로 맞는 것 같으나 원문에는 ‘그러므로’(BDB, KJV, NASB)라고 되어 있고 그것은 본장이 북방 포로를 강조하기 때문에 문맥에도 부합하다. 즉 유다 백성이 북방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사방에 흩어질 것이기 때문에 장차 사람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열조에게 주신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언하신 것이며 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의 돌아옴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회복의 일, 곧 북방으로부터 돌아올 일에 대해 반복해서 예언하였다. 예레미야 3:18, “그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23: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31:8,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16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암혈[동굴]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다음절에 비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징벌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그들을 포로로 잡아 북방 땅에 데려가실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경에 어부를 그런 뜻으로 사용한 예들도 있다(암 4:2; 합 1:15).

그러나 다른 하나는 앞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그 흩어진 땅에서 구원하여 내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본다. 14절과 16절 초두에 나오는 ‘보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뜻보다는 그의 회복에 대한 뜻에 더 적합해 보인다.4) ‘어부’라는 말은 주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용하신 비유이다. 주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4:19).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전도자를 의미하였다.

[17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계에 흩어져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동굴들에 있게 될 이유를 보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하실 것이고 온 세계에 흩어지게 하실 것이다.

[18절] 내가 위선[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이 먼저 그들의 죄에 대해 내릴 그의 엄위한 징벌을 전제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미운 물건의 시체’란 우상들에게 바쳐진 더러운 제물들이나 무고하게 피를 흘린 사람들의 시체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땅을 우상숭배로 심히 더럽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와 악을 엄하게 배나 갚으시며 징벌하실 것이다.

[19-20절]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쉐케르)[속이는 것, 우상](BDB, NASB, NIV) 망탄하고(헤벨)[헛된 것, 무가치한 것](KJV, NASB) 무익한 것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라고 고백한다. 참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것, 곧 그를 우리의 힘과 피난처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는 죄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과 환난과 재앙이 많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고 환난 중에 낙심치도 않고 오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예레미야는 장차 세상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 허무한 삶인 것을 고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조상으로 내려오는 헛된 풍습을 따랐다. 그것은 속이는 우상이며 헛되고 무가치한 것이며 무익한 것뿐이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런 것을 신으로 삼았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아닌 것을 신처럼 가치 있게 여기며 살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도 우상들이나 가짜 신들이 많다. 모든 비진리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돈과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육신의 쾌락에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 또 어떤 지식인들은 사람의 이성과 과학을 최고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이 참 하나님이 아니며 참으로 허무한 것들이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2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이 말씀은 본장의 전체적 방향, 즉 이스라엘 나라의 심판과 회복이라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과 택자들의 회복을 말한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통해 영원자존하신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우상들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 외에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상, 모든 인생관, 모든 가치관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과 그가 계시하신 진리들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죄에 대해 철저히 갚으실 것이다. 17-18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보응하시리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북방에서 인도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5, 16절).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는 죄와 지옥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천국 소망과 위로를 감사해야 한다.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1-2절]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할 때, 유다의 죄는 금강석(솨미르)(KJV, NASB)[부싯돌](BDB, NIV)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도다].

유다 백성은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제단들에서 또 아세라들을 통해 우상을 섬겼다. 그들의 죄 곧 우상숭배의 죄는 너무 확실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판들과 그들의 우상숭배하는 제단 뿔들에 금강석(다이아몬드) 끝 철필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3-4절]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지경의 죄로 인하여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대적을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로 맹렬케 하여 영영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니라.

‘들에 있는 나의 산’은 시온산 곧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유다 땅은 어느 한 지역만 부패한 것이 아니고 온 지역이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재산과 모든 보물이 노략을 당하게 하실 것이며 산당들도 다 파괴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이방 나라로 잡혀가 그들을 섬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불같은 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다.

[5-6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짠기 있는, 소금기 있는]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떨기나무’는 관목(bush, shrub)이라고 하는데, 키가 작고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불분명한 나무를 가리킨다(이것과 달리, 큰키나무는 교목이라고 함).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경건과 불신앙이며 인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휴매니즘, humanism) 즉 사람 중심 사상은 무신론 사상이며 저주 받을 사상이다. 그런 사람은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메마를 것이다.

[7-8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자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늘 푸르고 가뭄이 들 때에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위와 가뭄, 곧 환난과 핍박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편 1편의 말씀과 같다. 거기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하였다(시 1:1-3). 참된 믿음은 순종을 가져오고 순종은 의와 선을 낳고 의와 선은 기쁨과 평안과 형통의 복을 가져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의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기억된다. 사람의 죄들은 철필로 마음 판에 기록되듯이 기록될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지 않으면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이다. 비록 그가 자신의 행한 죄들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죄들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 심판대 앞에서 사람들을 그 행위대로 공의롭고 공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자.

둘째로, 헛된 우상숭배와 인본주의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을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겼고 하나님 대신 사람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저주를 받았고 멸망하여 온 세상에 흩어졌고 포로로 잡혀가서 오랫동안 고생스런 삶을 살았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사람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 즉 인본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사야 2:22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 시편 146:3-4도,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인본주의를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7-8절,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우리는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하며 성경말씀대로 행하자.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자들은 복된 삶과 승리적 삶을 살 수 있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그는 더위와 가뭄을 이길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길 것이다. 그는 행복자이다. 또 그는 성령의 열매 즉 인격과 삶의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9-11절, 심히 부패한 마음

예레미야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에 관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심히 악하고 부패된 상황을 보고 깊이 느끼면서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받아 그것을 책에 기록하였다.

[9-11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부를 얻는] 자는 자고새(메추라기 종류)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하였다고 증거한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의 활동이며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세 요소를 가진다. 사람의 죄악된 말과 행위들은 마음의 부패에 기인한다. 사람은 지식이 부패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과 뜻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이 없고 도리어 헛된 것을 섬기며 거기에 가치를 두고 산다. 사람은 감정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고, 난폭하고 격한 감정, 미움, 염려, 불안 등의 감정 장애를 가진 자들도 많다. 또 사람은 의지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바르고 선한 일을 알아도 그것을 행할 힘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완고하고, 또 죄악된 습관에 굴복한다.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치료 불가능하게 부패했다고 말한다. 본문에 ‘심히 부패한’이라는 원어(아누쉬 שׁ������אָ)는 ‘병든, 연약한, 치료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BDB, KB).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한 중요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성경이 전체적으로 이 진리를 확증한다. 예레미야 13:23도,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였다. 로마서 8:7-8도 말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본문은 하나님의 감찰에 대해 증거한다.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심장’이라는 원어(레브)는 ‘마음’이라고도 번역하는 말이고, ‘폐부’라는 원어(켈라요스)는 ‘신장(콩팥)’이라는 말인데 ‘영혼의 작용들, 심리적 작용들, 생각과 감정 등’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자는 사람 중에는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성경은 그것을 증거한다.

시편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시편 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시편 139:1-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그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아신다.

본문은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행위를 살피시고 그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함을 시험하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그는 사람의 선한 마음과 그 행위들을 장려하시고 복주시며, 악한 마음과 그 행위들에 대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벌을 내리신다. 요한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본문은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메추라기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한 대표적 죄는 불의로 재물을 취하는 것이다. 거짓과 사악과 탐욕은 죄악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반면에 진실과 선과 의, 절제와 검소와 자족함은 참된 성도의 모습이다. 불의의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 부도덕하게, 거짓되게, 또 탐심으로 버는 돈은 복이 되지 못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고, 잠언 20:17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자갈]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불의의 소득은 복이 되지 못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의 전적 부패성을 알아야 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사람의 마음은 심히 부패되어 있고 의와 선을 행하기에 무능하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공의로 보응하심을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불의함으로 얻는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않는다.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복과 평안을 누릴 수 없고 그의 엄한 징계와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몸의 죄성을 따라 살지 말고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의(義) 안에서 성경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12-18절, 선지자의 기도

[12절]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태초부터 있는 영화로운 높은 보좌는 우리의 성소이시로다](KJV, NASB, NIV).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창조 이전의 세계는 사람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원한 세계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태초부터 계신 영화로운 높은 보좌이시다. 그는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 보좌는 통치권을 뜻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만물을 친히 다스리신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로운 분이시다. 그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이시다. 세상의 그 어떤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가장 최선의 방식, 가장 최상의 방식으로, 가장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늘 보좌는 우리의 성소이시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며 장차 하나님과 교제하며 섬길 수 있는 곳이며 그의 충만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지상의 성전이나 교회는 천국의 한 모형에 불과하다. 우리는 장차 그의 영광을 누릴 자들이다.

[13절]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며 또 우리 모두의 소망이시다. 죄와 불행과 죽음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람의 참된 위로와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온다. 슬픔과 절망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 우리의 위로와 힘이 되신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는 허무하고 불행케 될 것이다. 본문은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문에는 “나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리라”고 말하였는데(KJV), 그것은 선지자가 갑자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며, 선지자의 독특한 영감성을 보인다. 흙에 기록된다는 표현은, 돌에 새기는 것과 달리, 지워져 버리는 것을 뜻하며, 허무하고 무가치하고 불행한 삶을 의미할 것이다. 악인의 삶은 허무하고 불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그렇게 되는 까닭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몸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따라서 사람의 건강과 연약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지만, 특히 영생은 하나님께 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고 그와 분리되면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더욱 힘써 알아야 한다. 호세아 6:3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꼭 붙잡고 따라야 한다. 신명기 10:20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고 말했다.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는 사람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는 “나를 고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아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병도 고쳐주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병인 영혼의 병, 즉 죄 문제의 해결, 죄책의 해결과 죄성의 극복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심히 부패된 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죄성을 가진 자가 변하여 거룩하고 선한 인격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신약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십자가 보혈 공로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으로 얻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의 은혜이다. 예레미야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찬송”이라고 고백한다.

[15-16절]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악한 자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그는 낙심치 않았다. 그는 목자의 직분, 곧 선지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그 직분에 충성하였다. 그는 재앙의 날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같이 그 날을 원치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에서 나온 설교들은 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고 명하신 바들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선지자의 사역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또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려 하지 않았다.

[17-18절]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예레미야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재앙의 날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이 수치와 해를 당할지언정 자기가 수치와 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를 구한다. 그는 악인들로 놀라게 하시고 자신은 놀라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또 그는 재앙의 날에 악인들이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알아야 한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그는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태초에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영광의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자이시다. 신명기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하고 평안한 처소가 되신다. 또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며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과 몸의 모든 문제들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고 해결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께 구하며 아뢰자.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참된 믿음은 쉬지 않는 기도와 순종의 삶으로 나타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증거한 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했다(15:58). 우리는 평소에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하며 고난 중에라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주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신다(계 2:10).

19-27절, 안식일을 지킬 것

[19-2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친히 말씀하셨다. 19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20절,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장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이며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장소일 뿐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면 그것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안식일에 집에서 짐을 내지도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서 안식일을 거룩히 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치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았음을 상기시키셨다. 또 그는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왕들과 방백들이 유다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드나들며 이 성이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이곳에 와 하나님께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릴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친히 예루살렘 성문에 불을 놓고 예루살렘 궁궐들을 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내산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 안에 제4계명으로 명시되어 있다. 출애굽기 31:13, 16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안식일 계명은 제7일에 휴식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출애굽기 20:8-10,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3:12,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이와 같이, 안식일은 집안의 종들과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까지 쉬는 날이다. 출애굽기 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니라.” 그들은 1년 중 가장 바쁜 때인 발 갈 때나 거둘 때에도 쉬어야 했다. 출애굽기 35:3은 안식일에는 모든 처소에 불도 피우지 말라고 명하였다.

안식일은 또한 공적 예배회로 모이는 날이다. 레위기 23:3,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聖會)라.” 성회는 공적 예배의 모임을 가리킨다. 모든 백성은 그 날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했다.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매우 필수적인 일이어서 그것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며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이었다. 출애굽기 31:14-15는,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한다.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파는 것을 보고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크게 꾸짖었다(느 13:17-18).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예표적이었다. 율법이 명한 모든 절기들은 성막과 제사 제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을 예표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이루셨을 때 성취되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되었다. 그는 믿는 우리들에게 참 안식을 주셨다(마 11:28). 골로새서 2:16-17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이었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요소는 오늘날에도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7일 중 하루의 구별과 육신의 휴식과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등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교회의 공적인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율법의 성취는 위축된 방식으로가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신약성도는 온 몸을 하나님께 바치며 모든 시간과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토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으므로, 신약성도는 주일을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과 공적 예배의 날로 구별하여 지킨다. 그것이 안식일 계명 속에 담긴 도덕적 요소이다. 주일를 거룩히 지키는 것은 신약 성도들에게 복된 의무이다. 우리는 주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얻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의식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를 가진 계명이었다. 그 내용은 제7일 토요일을 구별하여 휴식하며 성회로 모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생활에 매우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엄격한 규칙이었다. 그것을 어기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려졌다.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요소는 일주일에 하루를 휴식과 예배의 날로 구별하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토요일 대신에 주일, 곧 주께서 부활하신 날을 휴식과 예배의 날로 지키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복된 의무이다. 주일 성수는 많은 영적 유익과 복이 된다. 오늘 우리는 주일을 내 날로 사용하거나 세속적 날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신약성도는 주일을 구약시대의 안식일처럼 엄격한 법에 따라 지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해 구약시대보다 더 풍성하게 그러나 자유함과 자원함으로 한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휴식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17절, 백성들의 부정적 반응

[1-4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轆轤)(wheel)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부서지므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보았다. 토기장이는 녹로(轆轤)로 일을 하고 있었다. ‘녹로’(轆轤, wheel)는 질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물레(돌리는 틀)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손으로 부서뜨려서 그것으로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녹로로 일하는 토기장이를 통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성경책을 펼쳐서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다.

[5-10절]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이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두 번째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람의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재앙 대신 평안을 주실 것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악을 행하면 평안 대신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11-12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노아쉬)[소용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도모[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세 번째 말씀의 요점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헛된 말이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며 모욕이고 매우 큰 죄악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계명들을 버리고 자기들의 계획과 생각대로, 자기들의 굳은 마음대로 악한 길로 나가려 하였다.

[13-15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허무한 우상에게 분향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과 의인 노아가 걸었던 길,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성령의 사람 여호수아가 걸었던 길, 하나님의 종 다윗이 걸었던 그 옛길, 우리가 가야 할 그 옛길에서 떠난 것이었다.

[16-17절]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솸마)[황폐케 하고](KJV, NASB) 영영한 치소(嗤笑)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은 황폐케 되며 이방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며 다 흩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등만 보이시고 그의 긍휼의 얼굴을 감추시고 그들을 구원치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이시며 우리는 그의 손 안에 있는 진흙과 같다. 주권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악을 버리고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오직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미가 6:4,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며 평안과 형통의 길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황폐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 세상에 흩어지며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18-23절, 예레미야의 고난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꾀를 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치려 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거짓되었다. 악은 숨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은밀하고 악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설교와 다른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의 차이이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말로 비방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말로 비난을 받았다. 고라 일당은 모세에게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했고 모세가 그들 위에 왕이 되려 한다고 비방했었다(민 16:3, 13). 고린도후서 6:8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영광도 받으나 욕도 받고 악한 이름도 가지며 아름다운 이름도 가진다고 증거했다. 또 디모데후서 4:14-15에 보면,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보였고 그의 말을 심히 대적했다. 이처럼 주의 종들은 때때로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선지자 예레미야의 설교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소용이 없는 헛된 말로 여기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4:3-4). 오늘 시대는 하나님의 진리가 무시당하는 시대라고 보인다.

[19-20절]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구덩이를 팠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이런 꾀와 비방과 무시, 그리고 구덩이와 올무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컸었다. 성경 시대에나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나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이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은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오히려 영광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레미야를 대항하고 비방하고 무시하고 구덩이를 파고 올무를 놓은 것은 정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포한 말씀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선한 말씀이며, 그들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율법은 본래부터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21-23절]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戰場)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엎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이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들이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칼을 맞게 하실 것을 호소한다. 이것은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구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으로 바로 깨달아야 한다. 참된 선지자들은 책망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기원하고 축복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행복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함부로 비방치 말아야 한다. 그들은 주께서 보내신 종들이다.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을 비방하면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2-13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귀히 여기고 달게 받고 믿고 힘써 지켜야 한다. 그 말씀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행복이 되는 말씀이며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정상적 과정이며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그의 모든 계명들과 교훈들과 규례들을 지키는 것이다(신 10:12-13).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1-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오지병은 잿물을 입힌 질그릇을 가리킨다. ‘하시드 문’(솨아르 하카르시스)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시드 문 어귀 곁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재앙을 선언하여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곳을 불결하게 하여 거기서 그들과 그들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였고 무죄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고 바알을 위해 산당을 건축하였고 심지어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 죄악된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셨거나 말씀하셨거나 뜻하신 바가 아니었다.

[6-9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謀計)[계획]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숭배하며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며 그 아들들을 바알에게 불살라 드렸던 그 골짜기가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어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고 그 성을 지나는 자들이 놀랄 것이며,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은 침략자들에게 오랫동안 포위되어 너무 굶주린 나머지 자기 자녀들의 고기를 먹고 친구의 고기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레위기 26:29와 신명기 28:53-55에 이미 경고된 불행이었다.

[10-13절]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과 그 중 거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萬象)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奠祭)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오지병을 깨뜨림같이 예루살렘 성을 깨뜨리실 것이다. 그 시체들은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매장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집들 위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섬기며 분향하고 그것들을 위해 피의 제사를 드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기 때문이다.

[14-15절]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재앙이 예루살렘 성과 그 주위의 마을들에 임할 것이다. 그것은 선지자로 하여금 오지병을 깨뜨리게 하는 행위로 상징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그 성에 내리시는 까닭은 그들이 목을 곧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사람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온갖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본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들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 중 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라는 진리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오지병처럼 깨뜨림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구약시대뿐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폐지되지 않았고 마지막 대심판에서 밝히 이루어질 변함없는 진리이다. 사도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즉사하였다(행 5장). 은혜의 복음을 밝히 해설한 로마서 8:13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이것은 오늘날도 변함 없는 엄숙한 진리이며 하나님의 경고이다.

둘째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 곧 십계명을 지킬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의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의 필수적 내용이다.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다. 오늘날도 비슷하다. 성도들이 바로 살면, 서울이나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지 어떤지 잘 모른다. 실상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징벌 혹은 보상하실 일이다. 오직 우리는,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에 순종해야 한다.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본장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당한 심적인 큰 고통을 증거한다.

[1-6절]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제사장이며 여호와의 집 유사장[직원들의 수장]이었던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성이 오지병처럼 깨뜨려질 것이라고 예언함을 듣고 그를 때리고 차꼬에 채웠다. 다음날 그가 예레미야를 차꼬에서 놓아주자 예레미야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에 죽게 할 것이며 원수들이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한 물건들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바스훌과 그의 모든 친구들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거기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레미야가 핍박과 고통을 당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 곧 그의 선지자 사역, 그의 설교 사역 때문이었다. 예레미야는 그런 고난을 예측하였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참된 충성이다.

[7-8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勸誘)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원해서, 자기의 야망 때문에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권유 때문에 선지자가 되었다. ‘권유(勸誘)하다’는 원어(파사의 Piel형)는 ‘설득하다, 꾀이다, 속이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그 고생스런 길을 미리 알았더라면 피했을지도 모르나 하나님께서 그를 속이셨다는 맛을 가진다. 그는 지금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곧 유다 백성이 당할 강포와 멸망을 전하기 때문에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다.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다. 그는 간혹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그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고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다.

[10절]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방하였고 위협하였으며 또 고소하려면 고소하라고 말하며 자기들도 고소하겠다고 말하였고 그의 친한 벗들도 그의 타락하고 범죄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11-13절]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報讐)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성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는, 두려운 용사 같으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므로 그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하고 큰 수욕을 당할 것을 확신하였고, 또 의인을 시험하셔서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정을 아심으로 그들에게 갚아주실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였다.


[14-18절]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출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아들을 낳았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파괴]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예레미야는 그가 당하는 고통이 크므로 그의 출생을 저주하였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 태에서 차라리 죽은 자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탄식하며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라고 말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자. 모세와 선지자들은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말했다. 주 예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고(마 5:11-12), 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또 그 자신도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사도 바울을 포함하여 사도들도 많은 고난을 받았다. 사도행전 5:41은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기록하였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행 14:22),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딤후 3:12). 세상에서는 악인들의 핍박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구원과 도움을 확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어떤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하였다. 또 시편 50:15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을 받았으나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또 담대히 성도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도우라고 권하였다(고후 1:8-11).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대환난의 때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도들이 큰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나 이때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요구된다고 말했다(계 13:7, 10). 우리는 어떠한 고난 중에서도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