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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 61장: 메시아의 구원 시대 - 66장: 하나님의 심판

영국신사77 2020. 4. 14. 18:45


제목차례

61장: 메시아의 구원 시대

62장: 예루살렘의 회복

63장: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함

64장: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간구함

65장: 하나님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66장: 하나님의 심판


61장: 메시아의 구원 시대

[1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알라이)[내 위에 계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이 말씀은 메시아 예언이다. 누가복음 4:18-21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 구절을 읽으신 후에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기름을 붓다’라는 말(마솨크)에서 ‘메시아’(마쉬아크)라는 말이 나왔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메시아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요한복음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메시아께 충만한 기름부음이 주어진 목적은, 첫째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마가복음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둘째로, 죄와 그 결과인 불행으로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기 위해서이다. 마태복음 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셋째로, 포로 되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서다. 포로 되고 갇힌 자란 죄의 포로된 자를 말한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요한복음 8:34,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2-3절]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寃)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메시아 시대는 하나님의 은혜의 해(年)이며 신원(伸寃)[원통함을 풀어주심]의 날이다. 고린도후서 6:2에서 사도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했다. 메시아 시대는 은혜의 시대일 뿐 아니라, 신원의 날, 곧 심판의 날이기도 하다. 메시아의 복음이 전파될 때 믿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고 멸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요 3:17-19). 의인들을 핍박했던 악인들은 공의의 보응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죄와 불행 때문에 회개하며 슬퍼하는 자들에게는 위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죄사함과 그로 인한 평안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의 위로이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는 회개하며 애통하는 신약교인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그들은 재 대신 화관(花冠)을, 슬픔 대신 희락의 기름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죄와 그 징벌로 슬퍼하던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존귀와, 성령의 기쁨과 찬송으로 단장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죄에서 의로, 슬픔과 근심에서 기쁨과 찬송으로 변화되는 것이 구원이다. 특히,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의의 나무” “여호와의 심으신 바”라고 불릴 것이다.

[4-7절]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重修)할 것이며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것이며](NIV)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들, 곧 신약교회를 가리키며, ‘오래 황폐하였던 곳’은 구약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신약교회는 구약교회를 재건할 것이다. 그때는 외인들과 이방인들이 양을 치는 목자, 농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 신약교회를 세우는 봉사자들이다. ‘너희’는 이방인 신자들과 봉사자들을 포함해 신약교회 전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들” 또 “하나님의 봉사자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고린도후서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8-9절]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불의의 강탈’이라는 원어(가젤 베올라)는 ‘강탈과 번제’라는 뜻이든지 ‘강탈과 불의(베아웰라)’(LXX, Syr, NIV)라는 뜻일 것이다. 심판자 하나님께서는 의를 사랑하시고, 강탈과 불의를 미워하시며, 자기 백성을 성실히 다스리시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다. 그 자손들은 열방 중에 알려지며 그들이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고 인정될 것이다(엡 1:3).

[10-11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紗帽)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구원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빌 4:4).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히실 것이다.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 또 그는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드러내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복 받은 자손이다. 그들은 여호와로 인해 크게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혀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디도서 1:3,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둘째로, 구원은 죄인을 의인 만드는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의의 나무라고 불릴 것이다. 그들은 의의 겉옷을 입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를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죄인들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이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답게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계명들을 지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구원은 기쁨 충만한 것이다. 메시아의 시대에 구원받을 자들은 위로를 받고 화관을 쓰고 희락의 기름을 가지고 찬송의 옷을 입을 것이다. 그들은 영영한 기쁨을 얻어 크게 기뻐하고 찬송을 부를 것이다. 신약성경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은 구원은 기쁨의 열매를 맺는 구원임을 증거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한다(빌 4:4). 또 성령의 열매는 희락을 포함한다(갈 5:22). 우리는 주께서 주신 의와 구원, 부활과 천국과 영생 소망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다.

62장: 예루살렘의 회복

[1-3절]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아드 예체)[나타나기까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나타나며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는 때는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나라에서 돌아오는 것은 그 예표가 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위해 주신 이 복된 예언을 잠잠치 않고 쉬지 않고 선포하며 전파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며 또 그때를 준비하는 일이 될 것이며 때가 되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의와 특권을 얻었고 장차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충만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또 신약교회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다. 사람의 이름은 그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낸다. 신약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구원받은 성도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또 그들은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과 왕관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주께서는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로 비유하셨다(마 13:44, 46). 사도 베드로는 신약교회 성도들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증거하였다(벧전 2:9).

[4-5절]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버리운 자가 되었었고 그 땅은 황무지가 되었었다. 그러나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는 ‘헵시바’라 불리고 그 땅은 ‘쁄라’라 불릴 것이다. ‘헵시바’라는 말(켑치바흐)는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며, ‘쁄라’라는 말(베울라)은 ‘결혼하였다’(married)라는 뜻이다. 결혼하는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실 것이며,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성을 취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다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6-7절]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NASB)이라는 원어(함마즈키림 엣 예호와)는 ‘여호와를 부르는 자들’(BDB, KJV, NIV)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마치 메시아를 대신하듯이 말씀 사역, 설교 사역을 쉬지 않고 행하게 하겠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파수꾼들은 성벽 위에서 밤낮으로 계속 설교할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의 일을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기도를 가리킨다고 본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신약교회를 건립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힘있게 진행시킬 것이며 완성케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열심으로 그의 교회를 세우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8-9절]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과 풍족함의 회복은 하나님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의 손으로 이루실 일이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원수들에게 그 곡식과 포도주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며, 평안과 풍족함을 누릴 것이다.

[10-11절] 성문으로 나아가라[지나가라], 나아가라[지나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旗)를 들라.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길을 예비하고 대로(大路)를 세우라는 것은 메시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라고 본다. ‘돌을 제하라’는 말은 믿음에 방해가 되는 불신앙, 교만, 완고함, 온갖 탐욕, 물욕, 정욕, 명예욕 등의 죄를 제거하라, 즉 그것들을 회개하고 버리라는 뜻이라고 본다. 메시아의 복음은 만민을 위해, 땅끝까지 전파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임할 것이다. 메시아의 강림과 그의 대속 사역은 온 세상에 복음으로 전파될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계획된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상급과 보응이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때때로 구원과 관련해 상급과 보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2절]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버림받지 않은] 성읍이라 하리라.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는 ‘거룩한 백성’이며 ‘여호와의 구속(救贖)하신 자’이며 ‘찾은 바된 자’이며 ‘버림받지 않은 성읍’이라고 불릴 것이다. 신약교회가 바로 그러하다. 구약교회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으나,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역사로 세워지고 끝까지 보존되고 마침내 영광에 이를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회복될 예루살렘 성은 거룩하고 의로운 성이 될 것이다. 시온에는 공의가 빛같이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중생케 하심으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영육의 더러운 모든 죄를 버리고(고후 7:1)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과 의로 늘 항상 단장해야 한다.

둘째로, 예루살렘 성은 영광스런 성으로 회복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새 이름을 얻을 것이며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과 왕관이 될 것이며 또 평안과 식물의 풍족함도 누릴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며, 그 영광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자.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뻐하신 바 되며 그와 결혼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구속(救贖)하신 자,’ ‘찾은 바된 자,’ ‘버림받지 않은 성읍’이라고 불릴 것이다. 신약교회도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선택을 받은 자들이며 그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며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불리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을 사랑하자.

63장: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함

[1-2절] 에돔에서 오며 홍의(紅衣)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義)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에돔과 보스라에서 원수를 갚는 자이며 그의 옷이 피로 물들어 붉다고 묘사하신다. 또 그는 의(義)를 말씀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공의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의복이 붉으며 당신의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나이까?”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그가 공의의 심판자로서 이방 나라들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시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3-6절]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救贖)할(게울라이)[나의 구속(救贖)받는 자들의](원문, KJV)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열방을 심판하시며 홀로 원수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와 함께한 자가 없을 것이다. 그의 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며 그 피가 옷을 더럽힐 것이다. 또 열국에 대한 그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구속(救贖)이 되는 날이시도 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인류의 원수인 사탄과 악령들을 친히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며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7-9절]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베콜 차라삼 로 차르)[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대적자가 아니시고]25)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救贖)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모든 자비와 긍휼과 큰 은총을 찬송하며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사랑과 긍휼로 구원하셨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었다. 본문은 자비, 긍휼, 은총, 사랑 등의 동의어를 여섯 번이나 사용하였다(15절에 두 번 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와 긍휼과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된다.

[10-14절]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성령]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성령]을 두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 영광의 팔을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하시며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로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말이 광야에 행함과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여호와의 신[영]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11절의 ‘백성이 . . . 기억하였다’는 원문(와이즈코르)은 ‘그리고 그가 기억하였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을 가리킬 수 있고 그러면 11절부터 14절 전반부는 하나님의 하신 말씀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말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든지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긍휼을 베푸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죄악되고 연약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그러므로 출애굽 시대의 하나님의 능력의 손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셨으며, 홍해를 육지같이 갈라 통과하게 하시던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셨다. 사람은 참으로 죄악되고 연약하다.

[15-19절] 주여, 하늘에서 굽어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라 하셨거늘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컨대 주의 종들 곧 주의 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짓밟았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나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의 구원을 간구하며 “주여, 하늘에서 굽어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거듭 부르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며 그들에게로 돌아오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한다.

15절의 “간곡한 자비”라는 원문(하몬 메에카)은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창자들의 소리’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긍휼의 심정을 묘사하는 말이다. 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이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자이심을 확신하고 있다. 또 그는 이제 예루살렘 성의 구원과 회복이 오직 하나님께서 돌아오심으로써만, 즉 그의 자비와 긍휼의 개입하심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원컨대 주의 종들 곧 주의 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라고 간구한다. 이것은 예레미야 애가 5:21의 말씀과 비슷하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사람의 구원은 긍휼의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간곡한 자비와 크신 긍휼에 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말하는 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열국을 심판하시는 자이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긍휼로 구원하신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심히 죄악됨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곤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아무것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인간편에서는 높은 마음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겸손해야 하고 또 늘 깨어 조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긍휼과 자비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음을 고백하고(갈 6:14; 빌 3:8) 예수님만 귀중히 여기고 그의 십자가 의만 의지하고 천국만 소망하고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고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64장: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간구함

[1-2절]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숲, 나뭇가지]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선지자 이사야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산들을 진동시키며 내려오셔서 불이 나뭇가지를 사르며 물을 끓이듯이 그의 원수들인 이방 나라들을 엄중하게 심판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기를 호소한다.

[3-4절]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사건을 말한다고 본다. 출애굽기 19:18-19,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신명기 4:32-33,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5절]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들을 선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했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다. 또 그들은 그런 상태로 지낸 것이 벌써 오래 되었다. 그들이 구원을 얻고 회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6-7절]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부정하고 불결한 자와 같았다. 그들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죄악된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됨은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잘 증거한다. 사람의 행위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들어 버린 잎사귀와 같았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었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얼굴을 숨기셨고 그들이 그 죄 때문에 멸망을 당하게 하셨다.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가장 잘 증거한 책은 예레미야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된 존재이다.

[8-9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간구하는 근거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들이 다 죄악 가운데 빠졌으나 그들에게 분노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시기를 구한다.

[10-12절]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하시리이까? 주께서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과 유다 성읍들의 황폐함을 말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웠던 성전이 불에 탔고 황폐케 되었음을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잠잠하지 마시고 회복의 손길을 펴주시기를 갈망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산들로 진동하게 하셨고 불이 숲이나 나뭇가지를 사르고 불이 물을 끓이듯이 그의 위엄을 나타냈던 하나님이시다. 그는 대적들을 떨게 하시고 범죄자들에게 진노하시는 자이시다. 그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그를 섬기며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심히 부패된 존재이다. 6절,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람은 심히 부패하였고 선을 행하기에 무능력한 존재이다(렘 17:9; 13:23). 로마서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무능력해진 존재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만 의지해야 한다. 8-9절,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의존한다.

65장: 하나님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1-16절, 패역한 유대인들을 벌하심

[1절]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예언에서 갑자기 이방인의 구원을 암시하는 예언이 나온다. 이 구절은 로마서 10:20에 인용되었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호세아 2:23에서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2-5a절]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不善)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패역을 지적하신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좇아 사는 자들이며 선하지 않은 길, 곧 악한 길을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패역한 백성들(암 소렐)[반역적인 백성]이다. 그들은 동산에서 우상들에게 제사하며 벽돌을 쌓고 분향하여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그의 노를 일으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는다. 그것은 율법에 금지된 바이었다(레 11:7). 그들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거룩하다고 여기는 교만과 위선의 악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참으로 악한 자들이었다.

[5b-7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또 산 위에서 분향하며 하나님을 능욕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그 앞에 다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징벌하시고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8-10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 사론은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선언 중에서도 구원하실 남은 자들을 언급하신다. 그는 그의 종들을 남겨두실 것이다. 그는 야곱 중에 씨를 내시며 유다 중에 택한 자를 남기셔서 하나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축지인 사론과, 또 아간의 가족들을 처형했던 아골 골짜기는 양떼와 소떼의 눕는 곳이 될 것이다. 그 곳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소유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씨를 남겨두실 것이며 택한 자들을 남겨두실 것이다.

[11-12절]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聖山)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갓과 므니에게 상을 베풀고 섞은 술을 가득히 부었다. 갓은 바벨론의 ‘행운의 신’인데, 로마의 주피터 신과 같고, 므니는 바벨론의 ‘운명의 여신’인데, 로마의 비너스 신과 같다고 한다. 유다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 이방신들을 섬긴 것이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도 대답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그의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에 붙이실 것이며 그들이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칼에] 붙인다’는 원어(마나)는 ‘므니’라는 말과 어근이 같은 말로서 ‘운명짓다, 정하다’는 뜻을 가진다.

[13-15절]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택한 종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것이지만,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겼던 악한 자들에게는 주림과 갈함, 수치와 슬픔과 통곡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범죄하는 악한 자들을 죽일 것이고 하나님의 택하신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실 것이다.

[16절]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반역적인 유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중에도 남은 자들이 있어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엘로헤 아멘)[아멘의 하나님]이라고 두 번 말한다.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에 복을 주실 자는 바로 이 진리의 하나님뿐이시다. 그는 진실하시며 그의 모든 진리와 언약과 계명은 참되고 믿을 만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은 자기 생각을 좇아 우상들을 숭배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그는 ‘진리의 하나님’ 곧 ‘아멘의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시며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에 마음과 귀를 기울이고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선을 행하고 악을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를 내시고 보응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칼에 붙인 바 되어 살륙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는 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롬 8:13).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구원을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찾지도 않았던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을 구원해주셨다. 또 그는 우리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하셨다. 그것은 구약 백성의 이름과 다른 이름이며 새 이름이다. 또 그는 우리에게 장차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며 또 현세에서도 영육의 필요한 것을 풍성히 주셨고 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과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항상 올려야 한다.

17-25절, 새 하늘과 새 땅

[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내용을 말씀하실 때 듣는 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신다. 본문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대조된다. 이 세상은 벌써 6천년 이상이 된 세상이며, 특히 죄로 인해 심히 더러워진 세상이며 저주받은 세상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땅은 저주를 받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곳이 되었다. 창세기 3:17-18,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그러므로 노아의 부모는 세상이 하나님께서 저주하심으로 안식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안식을 갈망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었다. 노아라는 말(노아크 ������������)은 ‘안식’이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구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회복된 세상, 곧 죄와 저주와 불행이 없는 세상, 의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 세상이 바로 천국이다.

‘창조하나니’라는 원어(보레)는 ‘창조하고 있는’(분사)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고 계심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곧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새 창조의 역사이며 회복의 역사이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의 능력으로 회복하실 새 세상이 이 세상과 비교할 때 너무 현저히 변화된 세상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21:1도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증거하였다. 천국은 현재의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세상, 아름답고 완전한 세상일 것이다.

[18-19절]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는]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아니할 것임이며].

새 세상의 한 특징은 기쁨과 즐거움이다. 이사야는 이사야 35:10에서도 “여호와의 속량(贖良)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고 예언하였다. 현세는 눈물의 골짜기이지만, 장차 우리들이 들어갈 천국은 눈물이 없고 기쁨만 충만한 세상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므로 우리는 현 세상에서도 그 천국을 소망하며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기쁨의 생활을 힘써야 한다. 로마서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20절]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壽限)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이는 아이가 백세에 죽을 것이며 그 죄인은 백세에 저주를 받은 것임이라](KJV).

새 하늘과 새 땅의 다른 한 특징은 장수(長壽) 곧 긴 수명(壽命)이다. 죽음이나 저주에 대한 언급은 천국에서의 영생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적으로 말한 것이거나, 또는 천년왕국 때를 묘사한 것일 것이다. 천년왕국은 천국의 시식(試食)이기 때문이다. 22절도 “이는 내 백성의 수한(壽限)이 나무의 수한[즉, 수백 년]과 같겠다”고 말했다.

천국은 영생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디도서 1:2, “[나의 사도된 것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요한일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천국에서 죽지 않고 복되게 영원히 살 것이다.

[21-23절]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壽限)이 나무의 수한(壽限)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또 하나의 특징은 평안이다. 그것은 그들이 집을 건축하고 거기 거하며 포도원을 재배하고 그 열매를 먹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이 건축한 집을 타인이 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포도를 타인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이 낳은 자녀들도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24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빠르게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전에,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그들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25절]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聖山)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그것들은 나의 모든 성산에서 해하지도 아니하고 상하게 하지도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천국에는 사나운 짐승이 없을 것이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 이사야 11:6-9,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거기에는 우리를 시험할 마귀도, 우리를 해칠 악인도 없을 것이다. 천국은 오직 평안으로 충만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을 소망하자. 신약성경은 천국을 밝히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베드로후서 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천국은 기쁨과 평안의 나라요 영생의 나라이다. 우리는 그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며 믿고 바라며 기뻐하자.

둘째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잘 참자. 천국을 바라는 자마다 현재의 고난을 참을 수 있다. 로마서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셋째로, 우리는 경건하게 살며 의와 선만 행하자. 천국에는 악한 자들이 없다. 거기에는 사나운 짐승도, 남을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것들도 없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백성답게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베드로후서 3:11-1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66장: 하나님의 심판

1-14절,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들

[1-2a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형식적 종교의식의 무의미함을 지적하신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그의 발판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성전에 매이지 않으신다. 우리는 단순하게 성전 종교의식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무한하신 영이신 창조자 하나님을 땅의 집에서 감히 섬길 수 있겠는가?

[2b-3b절]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하나님께서는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권고(眷顧)한다’는 원어(나바트)는 ‘돌아본다’는 뜻이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뉘우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는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것이다.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 악에 물들지 않고 악과 타협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합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처럼(왕상 19:18), 사데 교회에 몇 명의 흰옷 입은 자들처럼(계 3:4), 오늘날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이라는 말씀은 영어성경들처럼 “다름이 없도다”라고 끝나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KJV, NASB, NIV). 이 말씀은 앞절의 말씀과 같이 종교의식만으로는 무의미함을 다시 증거하신 것이다.

[3c-4절]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타알룰림)[혹은 ‘변덕스런 일들’](BDB)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형식적 종교의식이 무의미한 까닭을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길로 가지 않고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이 가증한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택하였다.

[5-6절]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위선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광과 기쁨을 보이시라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적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그 심판으로 인하여 그 성읍들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것이다.

[7-9절] 시온은 구로(劬勞)[해산의 고통]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劬勞)하는 즉시에 그 자민[그의 자녀들]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비록 시온 백성이 매우 부패되었고 형식적이었지만, 시온의 회복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은 놀랍게도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맛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갑자기 세워졌고 성령의 강림과 사도들의 전도사역으로 힘있게 확장되었다. 바울의 회심(주후 35년경)으로부터 그의 순교 때(주후 68년경)까지는 약 33년에 불과하였으나, 그 동안 복음은 소아시아와 유럽, 로마, 그리고 확실히 스페인까지 널리 전파되었고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신약교회는 세계적 교회가 되었다.

[10-14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회복될 시온은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충만할 것이다. 12절의 ‘열방의 영광’은 신약교회의 영광을 암시한다. 천국은 기쁨과 평안이 충만한 곳이다. 신약교회에도, 신약 성도들에게도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넘친다.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식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 형식적 교회생활은 헛되다. 아름다운 예배당이나 엄숙한 예배 의식이 아무 소용이 없다. 심지어 충실한 교회 출석이나 봉사도 무의미할 수 있다. 그것들이 다 형식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은 내면적 경건을 상실할 때, 즉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함이 없을 때, 또 사람이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 길을 택해 악을 행할 때, 형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조심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가 되자.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가 어떻게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어떻게 성경을 진지하게 듣고 성경을 묵상하고 그것을 믿고 실천하고자 애쓰는지 보면, 우리는 그가 참된 경건을 소유한 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시온의 회복을 감사하며 그 완성을 소망하자. 시온의 회복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신약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서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복된 천국을 소망하자.

15-24절, 악인들과 의인들

[15-18a절]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케마)[격노함]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의 소위(所爲)[행한 바]와 사상을 아노라.

심판주인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강림하실 것이며 회리바람 속에서 오실 것이며 격노함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불과 칼로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베푸실 것이다. 그때 그의 칼에 죽임 당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칼은 전쟁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인들은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금한 돼지고기와 쥐 같은 가증한 것들을 먹었다(레 11:7, 29). 그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물론, 정결, 부정결의 음식법은 신약 아래서는 폐지되었고 신약 성도들은 더 이상 그 법에 속박되지 않는다(골 2:16-17).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악을 행한 자는 재앙을 당할 것이며 선을 행한 자는 평안과 형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공평하다.

[18b-19절]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列族)[모든 방언들](원문)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중에 징조[표적]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여러 지역의 이방인들을 불러 구원시키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곧 그의 신성의 영광(요 1:14)을 볼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고후 4:6).

유다 백성 중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자들,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뿔(MT, KJV) 혹은 풋(LXX 일부, NASB, NIV)은 아프리카 북동부를, 활을 당기는 룻도 아프리카의 한 지역이라고 본다. 두발은 소아시아 동부, 야완은 헬라 지역이라고 본다. 또 하나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그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은 그 외의 먼 이방 나라들을 가리킬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의 모든 이방 나라들에 복음이 증거될 것이다.

[20-2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轎子)[가마]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아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올 것이다.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과 같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 직무라고 표현했다(롬 15:16). 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 즉 복음의 일꾼들, 곧 전도자들과 교사들을 많이 일으키실 것이다.

[22-2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표현(20, 21, 22, 23절)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말씀들의 참됨을 확증하신다.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고 하나님 앞에 항상 있게 하시듯이, 회복된 이스라엘 곧 중생한 성도들로 구성되는 신약교회는 하나님 앞에 항상 있을 것이다.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라는 말은 “한 월삭부터 다른 월삭까지와 한 안식일로부터 다른 안식일까지” 즉 “달마다, 주마다”라는 표현이며, “모든 혈육[육체, 사람]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는 말씀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달마다, 주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24절]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거역하여 범죄한](KJV, NASB)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본문은 악인들 곧 심판받을 자들에 대한 예언이다. 악인들은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벌레는 죽지 않고 그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증거하신 지옥의 모습과 같다.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위해 지옥 불못을 예비하실 것이다(계 21:8).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옥 불 심판을 두려워하며 모든 악을 버리자. 마가복음 9:43-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지옥 형벌에서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큰 구원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널리 전하며 또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목표인 바른 교회 건립을 위해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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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아춰, 구약총론, 397쪽.

2) 한글개역성경에 ‘남은 자’라는 낱말은 이사야 10:20, 21, 22; 14:22, 30; 15:9; 24:6; 30:17에 8번 나오고, ‘남는 자’라는 말은 37:31, 32에 두 번, ‘남아 있는 자’라는 말은 4:3; 7:22; 37:4에 세 번 나온다.

3) ‘남아 있는 자’(4:3; 7:22; 37:4), ‘남은 자’(10:20, 21, 22; 14:22, 30; 15:9; 24:6; 30:17), ‘남는 자’(37:31, 32)로 모두 13번 사용되었다.

4) 옛날 영어성경(KJV)은 히브리어 본문에 쓰여진 대로(케팁) “그 즐거움을 더하게 아니(로) 하셨으므로”라고 읽었으나, 고대의 어떤 역본들(Syr. Targ)과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그 즐거움을 그에게(로) 더하게 하셨으므로”라고 읽는다(케레). 후자가 문맥에는 맞는 것 같다.

5) ‘그럴지라도’라는 원어(베콜 조스)는 영어성경들에 'in spite of all this'(NASB), 'yet for all this'(NIV) 등으로 번역되었다.

6) 이사야서 전체에는 약 14번 나온다. “남은 자”(10:20, 21, 21, 22; 14:22, 30; 15:9; 24:6; 30:17), “남는 자”(37:31, 32), “남아 있는 자”(4:3; 7:22; 37:4).

7) 원문에는 ‘앗수르 왕’ 대신에 ‘그가’라고만 되어 있다(KJV, NASB). 또 29절에는 원문에 ‘그들은’이라고 되어 있다.

8) ‘가지’라는 히브리어 네체르는 ‘나사렛’이라는 동네 명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사도 마태가 마태복음 2:23에서 “[예수께서]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9) 애굽 바다 곧 홍해는 북쪽 끝이 혀처럼 둘로 갈라져 있다. 오늘날에 서쪽(애굽 쪽)은 수에즈 만이라고 부르고, 동쪽은 아카바 만이라고 부른다.

10) 이 말은 옛날 영어성경(KJV)에서 ‘감사하다’는 말로 40회, ‘찬송하다’는 말로 53회 번역되었다.

11) 옛날 영어성경(KJV)은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를 ‘주’ (the Lord)라는 말로 번역하였으나 본절을 포함하여 네 곳에서는 ‘여호와’ (Jehovah)라는 말로 그대로 번역했다(출 6:3; 시 83:18; 사 12:2; 26:4).

12) ‘강포한 성’이라는 원어(마드헤바)는 ‘황금 도시’(KJV), 혹은 ‘금을 강요하는 자’(Langenscheidt)라는 뜻이든지, 아니면 ‘사나움, 난폭함’ (BDB) 혹은 ‘폭행’(KB)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마르헤바 )를 잘못 쓴 것(誤記)일 것이라고 본다(LXX, Syr).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격노함’(fury)이라고 번역하였다.

13) 키 (‘왜냐하면’)(KJV)라는 말이 여기에서는 문맥상 ‘참으로’(surely) (NASB) 혹은 ‘그러나’(but)(NIV) 등으로 번역된다.

14) 브라질의 아마존강은 6,516km이며, 중국의 양쯔강은 6,300km임.

15) ‘아름다운’이라는 번역은 몇 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헬라어 칠십인역, 아람어 탈굼역, 수리아어역을 따른 것인데, 그것은 본문을 케메드(소원, 기쁨)라고 읽었다고 보인다(BDB).

16) ‘도망하다’는 동방 원문은 ‘스스로 도망하다’(나스 로)로 읽으라고 제안되나(케레), ‘피하지 못하다’(나스 로)로 쓰여 있다(케팁).

17) 시온이 여성명사이고 ‘오르라’는 명령형이 2인칭 단수여성형이다.

18) ‘젖먹이는 암컷들’이라는 원어(알로스)는 ‘젖먹인다’는 동사(울)의 분사 여성복수이다.

19) 마소라 본문의 액센트는 이 번역을 지지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밑에 찍힌 분리액센트는 그 말과 ‘나의 영광’을 동의어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20) 전통적 히브리어 본문은, KJV의 번역대로, “비록 이스라엘은 모이지 못하였을지라도”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9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사해사본의 본문은, 아퀼라, 탈굼, 한글개역성경, NASB, NIV의 번역대로,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라고 되어 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21) ‘형통하다’는 원어(사칼)는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뜻도 있고 그렇게 번역되기도 했으나(KJV, NIV), ‘형통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성경의 많은 예가 있고(신 29:8; 수 1:7, 8; 왕상 2:3 등)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더 나아 보인다(NASB).

22) 원문에 ‘그가 드릴 것이다’라는 동사(타심)는 3인칭 여성이며 7절의 ‘잠잠한 양’[암양](라켈)이 주어라고 본다.

23) ‘그가 기도하였다’는 원어(야프기아)는 ‘그가 간구한다, 중재한다’는 뜻이다(BDB).

24) 본문에서 첫 번째 ‘나라’는 ‘알다’는 동사가 단수 3인칭이지만, 두 번째 ‘나라’는 ‘알다’나 ‘달려오다’는 동사가 복수 3인칭이다(KJV, NIV).

25) 한글개역이나 영어번역들(KJV, NASB, NIV)은 17개 히브리어 사본들과 더불어 마소라 본문의 케레의 제안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원문에는 로 쓰여 있고(케티브), LXX, Vg, Syr도 그런 뜻으로 번역하였다. 그것은 10절에 ‘그들의 대적이 되사’라는 말씀과 대조되는 것 같다.


성경강해[김효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