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대선지서[강해]

★예레미야(Jeremiah)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영국신사77 2020. 4. 14. 18:45


예레미야강해

김효성 목사

2019년 7월 16일 수정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 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차례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2장: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름

3장: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4장: 임박한 심판

5장: 백성들의 죄악상

6장: 북방에서 파멸이 닥침

7장: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

8장: 이스라엘의 완고함

9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함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21장: 바벨론에게 망할 것임

22장: 예루살렘이 황폐케 될 것임

23장: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

24장: 무화과 두 광주리의 이상

25장: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

26장: 예레미야를 죽이려 함

27장: 바벨론 왕을 섬기라

28장, 하나냐의 거짓 예언

29장: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30장: 이스라엘의 회복

31장: 새 언약

32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33장: 다윗의 의로운 가지

34장: 자유 선언을 번복함

35장: 레갑 족속의 예

36장: 유다 왕이 책을 불태움

37장: 예레미야가 토굴 옥에서 나옴

38장: 진흙 구덩이에서 구출됨

39장: 예루살렘의 멸망

40장: 총독 그다랴

41장: 총독 그다랴의 죽음

42장: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43장: 남은 자들의 불순종

44장: 남은 자들의 우상숭배의 죄

45장: 바룩에게 하신 말씀

46장: 애굽에 대한 심판

47장: 블레셋에 대한 말씀

48장: 모압에 대한 말씀

49장: 암몬, 에돔 등에 대한 말씀

50장: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함

51장: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실 것

52장: 유다의 멸망


서론

본서의 저자는 예레미야이다. 그는 유다 왕 요시야 13년(주전 627년경)부터 시드기야 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약 41년간 사역했으나 유다 백성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비록 설교자의 사역의 결실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경우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이었고 그가 전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모습은,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여 성경적 교훈을 하고 성경적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대신, 교인수를 늘이는 일이라면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무슨 방법이라도 사용하려 하는 세속화된 목사들의 모습과 다르다. 성경은 성도들의 개인적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일 뿐 아니라, 목사들의 전도사역, 목회사역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예레미야서의 헬라어 70인역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8분의 1 정도나 짧고 장들의 배열도 다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성경의 본문에 관한 한 정통 유대교의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 권위와 신빙성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예레미야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칼’(71회), ‘기근’(33회), ‘황폐’ 혹은 ‘멸망’ 등(33회), ‘진노’(24회), ‘온역’(17회) 등의 말이 자주 나온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 시기에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본서에는 또 ‘안다’(73회), ‘이스라엘의 하나님’(47회) 등의 표현도 자주 나온다. 모든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의 공의의 심판을 알아야 하고 그의 긍휼의 구원을 알아야 한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마침내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이다. 다음 두 구절은 이 진리에 관하여 성경 전체 중에서 매우 중요한 요절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Langenscheidt Pocket Hebrew Dictionary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 주석

박윤선

박윤선, 구약주석.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1-10절, 예레미야를 부르심

[1-3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5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예레미야는 남방 유다 나라 멸망 시기에 사역했던 선지자이었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이었다. 히스기야의 손자이며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주전 627년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임했다. 그 해 5월에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예레미야의 선지자로서의 사역 기간은 약 41년간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므로 선지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자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선지자들이 받은 말씀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신약교회의 목사는 선지자가 아니다. 그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책인 성경에 정통하여 그것을 해석하고 전하는 자이다. 참 설교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지 않고 성경의 교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럴 때 그는 권위를 가진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그 모친의 복중에서 지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으신다. 사람의 몸과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로 쓰이며 자식들을 낳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그 모친의 복중에 지으시기 전에 그를 아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과 계획 속에서 예레미야를 아셨다. 에베소서 1:4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모든 사람을 만세 전에 아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아셨고 그를 구별하셨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심과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된 것이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직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

오늘날 목사도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6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이이며 말할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출 4: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아는 모세와 예레미야 같은 겸손한 자를 불러 쓰신다.

[7-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선지자의 사역이 무엇임을 지시해주셨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명하든지 말해야 했다. 그것이 선지자와 목사의 임무이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자에게라면 누구에게든지 가서 하나님의 명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전해야 한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동행자, 후원자, 보호자, 구원자가 되신다. 그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날 목사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교훈을 깨달았다면,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고 외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고 그를 구원하실 것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셋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오늘날 목사도 그러해야 한다. 목사는 자기의 생각이나 세상의 말들을 하지 말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 충실히 전해야 한다.

넷째로, 예레미야는 열방 만국 위에서 파괴하고 건설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시는 것은 그의 말씀 사역이 이방 나라들에게도 관계됨을 보인다.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은 그가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며, 건설하고 심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고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의와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문은 선지자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거기에 선지자의 사역의 권위가 있다. 오늘날 목사도 비슷하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그는 특히 성경에 정통해야 한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이 참 설교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목사의 권위가 거기에 있다. 목사는 성경적 교훈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이다.

둘째로, 본문은 선지자의 임무에 대해 증거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전해야 한다. 사도행전 20:20-21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없이 전하여 가르쳤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 오늘날 목사들도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성경적 설교를 해야 한다.

또 선지자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사도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목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는 악을 책망치 못하고 악과 타협하게 되고 설교 내용을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가감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지자는 파괴하고 건설해야 한다. 그는 사람의 죄악된 요소들을 지적하고 파괴해야 하고, 그는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할 덕들, 곧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의 덕을 건립해야 한다. 오늘날 목사도 똑같은 임무를 가진다. 그는 회개와 믿음과 온전함을 전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은 교인들의 의무도 보인다.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종이며 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인들의 의무도 분명하다. 그들은 그를 영접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오늘날 교인들은 성경적 설교를 하는 목사를 영접해야 한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알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설교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그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일이 될 것이다.

11-19절, 두 가지 환상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다. 본문은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내용이다.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예레미야가 본 첫 번째 환상은 살구나무의 환상이었다. ‘살구나무’라는 원어(솨케드)는 ‘지킨다’는 원어(솨카드 혹은 쇼케드 [분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신의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살구나무 가지를 보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지키시는 자이시다. 그는 말라기 3:6에서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약속하신 바를 변함이 없이 그대로 지키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여호수아 21:45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증거하였다. 또 여호수아 23:14에도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증거하기를,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24:35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도 하나도 헛되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되는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23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라고 권면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13-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예레미야가 본 두 번째 환상은 끓는 가마의 환상이었다. 그 끓는 가마는 그 면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나라들을 불러 유다 성읍들을 치게 하실 일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환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요한계시록 2:23에 보면, 부활하신 주께서는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고 거역의 죄를 범하지 말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한다.

[17-19절]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명 완수를 명하셨다.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불충성이고 그의 뜻을 묵묵히 행하는 것이 충성이다. 선지자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것이 충성이다. 그렇게 하려면 주의 종들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유다 땅과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고 그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를 치나 이기지 못하게 하셨다.

오늘날 목사들에게도 고난이 있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같이 용기와 담대함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4:1-5,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오늘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많은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견고케 하셨고 도우시고 지키셔서 승리케 하셨듯이 오늘날 목사들도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14-18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간증하였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많은 해를 주었고 그의 말을 대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지식과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굳게 믿자.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 . .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충성하자.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힘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마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며 바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는 자의 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굳게 서자.

2장: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름

1-13절, 이스라엘의 두 가지 악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주신 말씀들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신구약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친 음성의 말씀이며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듣고 묵상하고 깨닫고 믿고 확신하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2-3절]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聖物)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의’(友誼)라는 원어(케세드)는 주로 ‘자비’ 혹은 ‘인자(仁慈)’--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이든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람의 자비이든지 간에--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 혹은 ‘경건’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인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따랐다. 비록 그 백성이 목이 곧고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속히 하나님을 떠났으나, 적어도 그 지도자 모세와 수종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신실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성물(聖物)[구별된 물건]과 같이, 소산물 중의 첫 열매와 같이 여기셨다. 그를 삼키는 자는 벌을 받고 재앙을 받았다.

[4-5절]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허무하게 되었느냐?](KJV, NASB, NIV).

이스라엘의 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며, 둘째는 헛된 것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 불의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따랐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무슨 잘못을 행하지 않으셨으나 그를 배척하고 죽였고 또 사도들이 무슨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였다.

[6-8절]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시고 그의 기이한 손으로 그 거친 광야를 통과하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그를 찾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기름진 가나안 땅에 들여 그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셨으나, 그들은 이리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내 땅’과 ‘내 기업’이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법관들과 관리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그를 알지 못했고 대적하였고 헛된 것을 좇았다.

[9-11절]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神)을 신 (神)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하나님]을 무익한 것[우상들]과 바꾸었도다.

깃딤 섬은 지중해 동북쪽 끝에 있는 큰 구브로 섬(사이프러스 섬)을 가리키고,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유목민들(베두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어느 나라도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을 무익한 우상들과 바꾸었다.

[12-13절]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코르부 메오드)[매우 황폐할지어다](BDB, NASB).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긴 것은 매우 큰 악이기 때문에 하늘도 이 일을 듣고 놀랄 것이며 심히 떨 것이다. 하늘과 땅은 황폐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악은 두 가지라고 다시 요약된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다.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사람에게 죽음이다.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이다. 그것은 헛된 우상숭배를 가리킨 말씀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우리 구주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자.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기에 그들은 그를 멀리하고 그를 버리고 그를 떠났는가? 하나님께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나님께 무슨 불의가 있으며 무슨 부도덕한 일이 있는가?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무슨 잘못과 문제가 있으며, 성경적 교훈과 설교에 무슨 불의와 부도덕함이 있는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우리 구주 하나님, 우리에게 신구약성경을 주신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말고 성경적 교훈을 떠나지 말자.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 신명기 11: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附從)하면[그를 꼭 불들면].”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둘째로, 우리는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를 파지 말자.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는 하나님 아닌 것, 참으로 구원을 줄 수 없고 도움을 줄 수 없는 헛된 우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오늘날 돈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과학 등에 적용되며, 천주교회나 이단종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잘못된 교회연합운동이나 은사주의에도 적용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적 신앙, 역사적 기독교 신앙, 바른 신앙을 버리고 잘못된 사상을 구하며 따르는 것이 불경건이며 큰 악이다. 그것은 하늘도 놀라고 심히 떨 큰 악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가 주신 성경 교훈으로 만족하자. 시편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73:24-26,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갈라디아서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것이 옛 길과 옛 신앙이며 성경적 기독교다. 이것이 복된 길, 평안의 길, 영생의 길이다.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14-25절, 이스라엘의 황무함의 원인

[14-16절]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옐리드 바이스)[집에서 난 (종)]이냐? 어찌하여 포로(바즈)[약탈물]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뜯어먹었으니].

이스라엘 백성은 집에서 난 종처럼 되었고 약탈물처럼 포로가 되었다. 침략자들은 이스라엘 땅을 황무케 하였고 그 성읍들을 불태워 거민들이 없게 했다. 놉[멤피스]과 다바네스의 자손들 곧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을 죽였다.

[17-19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메슈바)[배교](BDB)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홀’은 나일강(사 23:3) 아마 나일강의 동쪽 지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하며(BDB), ‘그 하수’는 유브라데 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를 버린 것 곧 참 경건의 상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남방의 강대국인 애굽이나 북방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한 것이다. 선지자는 그것을 ‘배교’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배교와 그들 속에 하나님 경외함의 없음 때문이었다.

[20절]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이는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으나, 네가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KJV, NASB)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다”는 말씀은 출애굽 사건을 가리킬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에도 여러 번 이방 나라들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의 우상들을 섬김으로 영적인 간음을 행하였다.

[21절]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쇼레크)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을 순전하고 귀한 포도나무와 같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이 경건하고 의로운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저버렸고 악을 행하는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변질되었다.

[22-23a절]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그 많은 죄악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잿물이나 많은 비누로도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았고 바알들을 좇지 않았다고 변명할지라도 그들의 우상숭배의 자취들은 그들이 알 수 있도록 골짜기 속에 드러나 있었다.

[23b-25절]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그 발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발정한 들 암나귀들이 어지러이 달리며 헐떡거림같이 우상숭배의 일에 열심이었고 이방 신들을 섬기기에 열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적으로 행음하지 말고 헛된 갈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이 여기며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고 그것들을 따라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영적으로 행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났고 배교하였고 영적 행음 즉 우상숭배에 빠졌었다. 우리는 육적 행음은 물론이고 영적 행음 곧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 그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 제2계명, 그리고 제7계명을 어기는 큰 악이다. 십계명은 우리의 생활의 지침이 된다. 우리는 영원하신 여호와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성경을 주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교훈대로 이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요일 2:15-17). 우리는 하나님 대신에 돈과 세상의 부귀영광과 육신의 쾌락에 큰 가치를 두고 살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귀한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를 심으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21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2에서도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표현하시며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하셨으나 들포도를 맺었다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도 자신이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들이라고 비유하시며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여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5:1,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임을 깨닫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고 그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며 살자. 이것은 죄성을 가진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26-37절, 이스라엘의 죄악됨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됨과 그 결과로 받을 일을 증거한다.

[26절]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혹은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함께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김으로 다 수치를 당하였다.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수치를 당하였다. 범죄하는 자들은 다 이 세상에서도 마지막 심판 날에도 수치를 당할 것이다.

[27-28절]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이는]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같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나무와 돌로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들은 그 우상들이 자기들을 낳은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얼굴을 그에게로 향치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환난을 당한다고 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인가? 그들은 왜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인 죄악이었다. 그들의 신들의 수는 성읍 수같이 많았다.

[29-3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징책하여도 유익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징책을 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리어 사나운 사자들같이 그들의 칼로 선지자들, 곧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행위, 곧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었다.

[31절]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놓였다’는 원어(라드누)는 ‘유랑하였다,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친 들판과 같았었는가? 그는 그들에게 슬픔과 불행의 땅과 같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한 곡식을 주고 기쁨과 평안을 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그들은 왜 방황하였는가? 그들은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가?

[32-34절]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내가 그것을 은밀한 연구로 찾은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들에 있음이니라(KJV),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NASB, NIV)].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귀한 보화이신데, 그들은 하나님을 오랫동안 잊어버렸고 우상들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였고 그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다. 또 그들은 죄 없는 가난한 자들을 죽였다. 마지막 구절은, 그들의 우상숭배나 무죄한 자들을 죽인 죄가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공공연한 우상숭배자요 살인자들이었다.

[35-37절]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너와 변론하리라](원문).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그들은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를 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양심은 반복된 악행으로 인해 무디어졌고 마비되었다. 그들은 앗수르 나라로, 애굽 나라로 바삐 다녔었다. 그들은 한 종교와 한 신에 머물지 않았고 여러 종교, 여러 신들을 탐구하며 의지하였다. 오늘날 말로 그들은 혼합주의자들, 종교다원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과 그 신들을 징벌하실 것이며 그 신들을 의지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형통치 못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죄들 중에 첫 번째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첫 번째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 대신에 거기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근본적인 죄악이며 모든 사람들의 문제점이다. 현대인들도 이성과 과학, 돈과 육신적 쾌락, 세상적 명예와 세상 권세 등에 절대가치 혹은 많은 가치를 두고 산다면, 그것들은 다 우상이다. 그것들은 실상 헛된 것들이다. 우리는 모든 우상들을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났고 잊어버렸고 방황하였다. 그러나 전도서 12:13의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며 순종하자.

셋째로, 신약 성도인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주의 교훈대로 선을 행하고 서로 사랑함을 실천하자. 우리는 의가 없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셨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사랑을 실천하자.

3장: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1-13절, 이스라엘의 행음함

[1절]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本夫)[본 남편]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이혼한 아내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는데, 본 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렇게 되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마지막 문장은 어떤 영어성경들처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였으나 내게로 돌아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KJV, NASB).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 행음 즉 우상숭배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라고 본다.

[2-5절] 네 눈을 들어 자산(赭山)[벌거숭이 언덕들]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아라비아]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少時)의 애호자(알루프)[친구]시오니 노를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한마디로 행음함이었다. 이것은 영적 의미와 육적 의미를 다 포함하였다고 본다. 영적 행음은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육적 행음을 보이는 구절은 예레미야 5:7-8이다.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땅에는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모든 좋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더욱 악한 욕심을 이루었다. 그것이 죄인의 모습이다.

[6-10절]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메슈바)[배교한, backsliding, apostate]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바고다)[배신한, treacherous]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내게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배신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배신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의 죄도 역시 행음함이었다. 그들도 배역하고 배교적이었고 패역하고 배신적이었다. 남방 유다 백성들도 북방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하나님의 내리신 재앙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11-1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은 패역한[배신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데이)[알라, 인정하라(KJV, NASB, NIV)].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이 배신한 유다 백성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노를 한없이 품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우상숭배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행음치 말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7-18장은 말세가 큰 음녀의 시대, 곧 음란의 시대라고 예언한다. 그것은 육적인, 영적인 음행을 다 포함한다. 오늘날 영상물 문화의 급속한 발전은 현대사회를 음란사회로 심각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음란물과 음란풍조에 노출되어 있다. TV, 인터넷, 컴퓨터, 심지어 휴대폰까지 음란물들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또 현대인은 과학과 돈과 쾌락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영적인, 육적인 음행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죄악이다. 요한계시록 21:8은 행음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증거하고, 22:15는 행음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천국의 성 밖에 있으리라고 증거한다. 우리는 육적, 영적 음행을 멀리하고 그런 것이 있으면 철저히 회개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으로 살고 성경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고 또 성경적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

14-25절, 배교자여, 돌아오라

[14a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쇼바브)[배교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바른 진리로부터 떠나갔고 변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의 남편이라고 표현하시며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배교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14b-15절]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로임)[목자들]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또 그는 그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주셔서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게 하실 것이다.

[16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시대에는 언약궤 중심의 구약적 종교 형식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것의 실체 되신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는 폐지될 것이다.

[17-18절]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그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동행하며 그들이]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시대가 되면, 모든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악한 마음의 완고함으로 행하지 않을 것이며 분리되었던 이스라엘 나라의 남과 북도 함께 모일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이 예언은 신약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19-21절]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소리가 자산(赭山)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녀로 삼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지만, 이스라엘 족속은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배신하고 떠나감같이 하나님을 속이고 배신하고 떠나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재앙을 맞아 애곡하며 간구할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기도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려 하나님의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22a절]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나님께서는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신다. 회개는 사람에게 가장 요긴한 문제이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회개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의 계명을 저버렸던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회개는 사람이 자신의 불경건과 불의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그의 계명인 성경 교훈 중심으로 살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22b-23절]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그는 백성을 대신해 “우리가 주께 왔나이다”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는 우상숭배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에게 어떤 소망과 구원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다. 우상은 신이 아니며 우리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참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24-25절] [그러나]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의 산업인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는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열조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건국 초기부터 이제까지 많은 수치스런 일들을 당했다. 그들이 그 수치스런 일들을 당한 까닭은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14, 22절). 예수께서 전파하신 내용도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마 4:17; 막 1:15).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행 20:21).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지식과 명철을 얻어야 한다. 15절,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인 성경은 하나님의 충만한 진리의 지식과 명철의 보배로운 창고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우리는 성경책을 읽고 교회에서 시시때때로 성경적 설교를 들음으로써 진리의 지식과 명철을 넉넉하게 얻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수치를 당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의지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성경 속에 있고 성경을 통해 전달된다. 또 확고하게 성경에 근거한 성경적인 설교는 분명히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경적 설교를 겸손히 사모하며 달게 받고 그 말씀을 다 믿고 힘써 행해야 한다.

4장: 임박한 심판

1-18절, 임박한 심판

[1-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누드)[방황치](BDB)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혹은 “네가 만일 나의 앞에서 가증한 것을 버린다면 너는 방황치 않을 것이라. 또 너는 진실과 공평과 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할 것이며 열방은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며 그로 인하여 기뻐하리라”(KJV은 비슷함)].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 앞에서 유다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른 대책은 회개뿐이다. 그것만이 살 길이며 재앙을 피할 길이다. 그것은 특히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들, 즉 우상들을 버리는 것이다. 만일 유다 백성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방황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 그들은 진실과 의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다. 또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며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죄를 버리고 바르게 살라고 명령하신다.

[3-4절]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묵은 땅을 버려두거나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묵은 땅’은 죄로 길들여진 마음을 말할 것이며, ‘가시덤불’은 돈과 쾌락 등에 대한 세상적인 욕심들과 세상 근심 걱정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이 죄로 길들여진 마음에 할례를 받아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속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할례는 거듭남을 가리키며 그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노가 불같이 일어나 그들을 사를 것이며 아무도 그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다.

[5-6절]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북방으로부터 재앙과 큰 멸망이 예루살렘 성에 오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그것은 역사상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

[7-8a절]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유다 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등장하였다. 그는 수풀에서 올라온 사자같이 유다 성읍들을 황폐케 하고 거민이 없게 할 것이며 이 일을 때문에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애곡할 것이다.

[8b-9절]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우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왕과 방백들은 실심(失心)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유다 백성에게 내릴 재앙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이었다. 그 날에 유다 왕과 방백들은 낙심하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놀랄 것이다.

[10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네페쉬)[목](NASB, NIV)에 미쳤나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예언했었다.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의 평안을 예언하였으나, 이제 전쟁이 코앞에 다달았다.

[11-13절]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 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의 때에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선지자를 보내 주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그 재앙을 뜨거운 바람, 강한 바람, 회리바람 등으로 표현하셨다. 하나님의 재앙의 바람은 날렵하고 무서운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14절]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유다 백성과 특히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는 것이다. 즉 참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그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고 그 재앙에서 구원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는 것밖에 없고 그럴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용납하실 것이다.

[15-18절]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또 이방 나라들에까지 널리, 유다 나라의 멸망의 소식이 알려질 것이다. 마침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것이다. 그것은 유다 나라의 종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멸망의 이유도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들의 길과 행위들은 악했다. 그들은 불경건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였다. 또 그들의 행위와 삶은 악하였다. 오늘날도 참된 경건이 없는 세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음란하고 거짓되다. 때때로, 하나님의 교회도 부패하여 세상처럼 된다. 그 결과로,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마음 속에까지 미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려야 한다. 1절,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3절,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14절,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우리는 모든 불경건, 습관적 죄, 돈과 쾌락 등에 대한 욕심, 미움, 음란을 버리고,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로 자신을 단장해야 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구원을 못 받았든지 아니면 영적으로 심히 병든 상태일 것이다.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실 것이다. 4절,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경고이며 여전히 진리이다.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우리는 구원받은 지금도 하나님의 죄의 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부도덕 가운데 살다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그것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이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죄 문제는 우리의 행위와 불완전한 결심으로 해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된다.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우리 자신의 모든 죄들을 고백하고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하고 또 그를 순종하기를 결심해야 한다.

19-31절, 다가올 멸망을 슬퍼함

[19절]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슬프고 아프다’는 원문(메아이 메아이)은 ‘내 창자여, 내 창자여’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러울 때 ‘내 창자가 아프다’고 표현한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렇게 마음 속으로 슬퍼하고 아파하는 까닭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듣기 때문이었다.

[20-21절]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전쟁에서 연속하여 패전함으로 마침내 멸망하고 온 땅이 탈취를 당하고 모든 집들은 파괴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자의 눈과 귀로 침략군들의 깃발을 보며 나팔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

[22절] [이는]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자식임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명을 범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이며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엔 무지했다. 이것은 원죄의 죄성을 가진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은 참으로 무지하고 미련하다. 선은 잘 행하지 못하나 악은 잘 행한다.

[23-26절]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카르멜)[비옥한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예레미야는 땅과 하늘과 산들과 좋은 땅과 모든 성읍을 다 보았다. 땅은 전쟁으로 인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하늘들은 캄캄하고 빛이 없었다. 산들은 다 진동하고 요동하였다. 세상에 사람이 없고 공중의 새들도 다 날아가버렸다. 좋은 땅 곧 비옥한 땅은 황무지가 되었고 모든 성읍들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앞에 다 무너졌다.

[27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殄滅)하지는[완전히 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은 그들의 죄 때문에 온다. 사람의 모든 불행은 죄 때문에 온다. 온 땅은 슬퍼할 것이다. 이 재앙의 날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작정하신 것이며 그는 그의 작정하신 바를 후회하거나 돌이키지 않고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작정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그러나 비록 온 땅이 황폐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다 멸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내가 완전히 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그는 조금 남겨두실 것이다. 그것은 그의 긍휼이다.

[29-30a절]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훤화[떠드는 소리]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침략군들은 기병과 활 쏘는 자들로 올 것이다. 성읍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를 것이다. 각 성읍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30b절]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값비싼 붉은 옷을 입고 반지나 목걸이 등 장신구로 단장하고 눈을 그리고 꾸밀지라도 그들의 아름다운 단장은 헛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던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자들은 이제 그들을 멸시하며 그들의 생명을 찾으며 죽이려 할 것이다.

[31절]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육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그 날에 유다 백성은 해산하는 여인, 특히 초산하는 여인같이 고통스런 소리를 지르며 헐떡이며 손을 펴고 심령으로 피곤해 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들이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의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살고 있는지, 혹 우리 자신이 미련한 자가 아닌지 자신을 살피자.

둘째로, 멸망과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버리고 통회자복하는 것뿐이다. 죄인들이 멸망과 재앙을 피하는 길은 자신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을 위해 마음을 찢고 우는 것뿐이다. 회개치 않는 자는 다 망할 것이다. 요엘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주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3:3, 5). 죄를 뉘우치고 버리는 것이 사람이 살며 대 재앙을 피하는 길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자.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완전한 의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부족을 날마다 씻음 받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자.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물론, 우리는 이제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만 살고 순종으로만 살아야 하고, 또 이제는 거룩과 의와 선과 진실의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5장: 백성들의 죄악상

1-9절, 이스라엘의 패역함

[1-2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옛날에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비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창 18:32). 이제 예루살렘 성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 없어 멸망할 처지에 있다. 공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또 진리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을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못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만 바르게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가 될 것이다. 맹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공의의 심판자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행위에까지 거짓됨이 있었다.

[3-5절]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진실을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괴로워하지 아니하며] 그들을 거진[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고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거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의 멸하다시피 하였으나 그들은 고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죄에 대한 깨달음도,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완악하고 배교적이다. 그들은 영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천하고 미련한 것뿐이다.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사람의 정로다. 십계명은 그 요약이다. 이스라엘 귀족들은 하나님의 법을 알았으나 그것이 자신을 속박하는 멍에와 결박이라고 여겼다. 악인들은 성경의 교훈을 속박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사람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복과 영생을 위한 것이다(신 10:12-13).

[6절]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메슈보스)[배교]이 심함이니이다.

사자와 이리와 표범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죽이시는 재앙이었다. 그 형벌의 이유는 그들이 허물이 많고 배교가 심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허물이 많았다. 그것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사람이 한두 번 실수를 하여도 하나님께서 징벌하실 것이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마침내 최종적인 멸망이 올 수밖에 없다.

[7-9절]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마쉬킴)[원기왕성한]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 서술하신다. 그들의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이었다. 또 그들은 행음하였다. 그들은 창녀의 집에 허다이 모이며 살찌고 원기왕성한 수말같이 이웃의 아내를 취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라에 어떻게 징벌치 않으시겠는가?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했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였고(3절) 하나님의 법을 속박으로 여겼다(5절). 그들의 허물과 배교가 컸다. 6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배교함]이 심함이니이다.” 그들은 우상숭배하였고 행음하였다(7-8절).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에게 속박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행복을 위한 말씀이 아닌가?(신 10:13).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말씀이며 영생의 길을 보이는 말씀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벌하실 것이다. 그는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같이, 사막의 이리같이, 성읍들을 엿보는 표범처럼 악인들을 죽이시고 멸하실 것이다(6절).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밝히 드러났고 우리의 짧은 삶을 통해서도 확실히 체험되는 바이다. 그는 반드시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사람이, 특히 성도가, 범죄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이 있다. 그의 심판은 참으로 두렵고 그의 징벌은 심히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의 정로(正路)로만 가야 한다. 예루살렘 성에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없어서 그 성이 멸망하였다(1절).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며,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이 하나님의 길과 법이며(4절) 인생의 정로이다. 성경이 인생의 정로이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해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성경의 생활 교훈의 요점은 십계명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아야 하고 성경의 모든 교훈을 성심으로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 즉 돈이나 세상 명예나 육신의 쾌락 등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천국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10-19절, 하나님의 심판

[10절]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에게 이스라엘 성읍을 파괴하되 다 파괴치 말고 그 가지만 꺾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개치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 즉 그의 택하신 자들이 아니다. 가지만 꺾으라는 말씀은 나무 둥치를 남겨두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으실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본장 18절 하반절에도,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6:13에도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했다.

[11절] [이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이 내게 심히 패역(바가드)[배신, 변절](BDB)하였느니라[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 심히 패역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매우 배신적이었다.

[12-13절]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키케쉬)[거짓되이 행하며](BDB)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언하신 재앙, 곧 칼과 기근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바람 곧 허무한 존재로 간주했고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그들의 선언하는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라고 저주의 말까지도 하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구약교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거짓말이 혼동되고 있었다.

[14절]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입에 있는 그의 말씀이 불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무가 되어 불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의 말씀대로 불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먼 곳에 있는 바벨론의 군대를 불러오게 하실 것이다. 바벨론 나라는 당시에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라이었다.

[16-17절] 그 전통(箭筒)[화살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군대로 인하여 많이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화살통은 열린 무덤처럼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 것이며,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양식들, 고기들, 과일들을 빼앗아가고, 유다의 견고한 성들을 파괴시킬 것이다. 그 전쟁은 참혹한 불행이 될 것이다.

[18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10절에서 ‘가지만 꺾어버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완전하게 멸망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이며 남겨진 자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이다.

[19절]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들의 멸망의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는 죄악들 중에 가장 크고 근본적인 죄악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심히 배신적이게, 거짓되이 행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시하고 저주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장 크고 근본적인 죄악이다. 또 그럴 때 사람이 그의 계명을 무시하고 떠난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다.

둘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와 멸망 가운데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로 남겨두시고 회복시키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다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구원하시고 마침내 온전케 하신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멸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겸손히 받고 그 말씀을 붙잡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이 죄이다. 오늘 시대는 거짓된 교훈들이 난무하는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인간 목사들의 말들에보다 오직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20-31절, 이스라엘의 죄악

[20-21절]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에인 레브)[(바른) 마음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해야 했다. 죄를 지적하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준하고 지각이 없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바른 마음, 바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깨닫는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가 없었다.

[22-2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경계]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경계]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소레르 우모레)[완고하고 반항적인](BDB)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바닷가에는 보통 해안선을 따라 모래밭이 있어서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와도 그것을 넘지 못한다. 물론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일시적으로 넘어오기도 하지만 그 현상은 예외적이다. 해일이 지난 후에는 파도가 여전히 모래밭을 넘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갔다. 그들은 완고하고 반항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대적하였다. 자연은 자연법칙에 순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덕법칙을 거역한다.

[24-25절]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 곧 가을에 파종에 꼭 필요한 비를 주시고 늦은 비, 곧 봄에 결실을 위해 꼭 필요한 비를 주셨다. 이런 일들은 자연히 또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은택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의 주시는 자연 은택들을 물리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물리치고 막았다. 죄를 짓는 자는 스스로 불행을 가져온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57:21).

[26-29절]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군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악인들의 행위들보다 능가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악인들은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았고,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그들의 집들에는 속임이 가득했다. 그들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심히 악했다. 그들의 행위들은 세상의 악인들의 행위들을 능가했다. 남방 유다 백성은 멸망이 가까웠을 때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았고 가나안 원주민들보다 더 악을 행했다(왕하 21:9).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구했다. 그들은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않았고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않았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30-31절]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놀랍고 두려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권위]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이스라엘 땅에는 놀랍고 두려운 일이 있었다. 나라의 부패는 지도자들이 앞서서 행하였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성경대로 예언하지 않고 사람의 비위나 맞추는 거짓을 예언하였다. 제사장들은 성경의 권위로가 아니고 자신의 권위로 다스렸다. 또 백성들은 그런 일들을 좋게 여겼다.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 부패와 혼란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징벌의 채찍을 드실 것이며 그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준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른 마음이 없었고 우준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야 한다. 어떻게 그것들이 열릴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과 기도로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성경을 힘써 읽고 묵상하면, 우리는 무지하고 미련한 자가 되지 않고 지혜와 깨달음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우준한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마음이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마음이 완고하고 반항적이라는 말은 마음이 교만하고 굳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믿고 순종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거짓된 것을 예언하였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위로 다스렸고,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두려워하지 않았고 땅에 속한 헛된 것들만 구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건과 도덕의 경계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교훈하신 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십계명과 신구약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활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법을 넘어가는 것이 죄요 죄의 결과는 평안의 상실이다. 죄는 하나님께서 주실 복들을 물리치고 가로막는다. 그러나 의와 순종의 길에는 하나님의 평안과 복이 있다. 우리에게 의와 순종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6장: 북방에서 파멸이 닥침

1-8절, 재앙이 북방에서 옴

[1절]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5km)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4km)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예루살렘 성은 베냐민 자손들의 거주지이었다(수 18:28; 삿 1:21).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자손들에게 예루살렘 성 가운데서 피난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를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 주위 거주민들에게 다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킬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오기 때문이었다. ‘엿보아 온다’는 표현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북방에서 오는 재앙은 바벨론 나라의 군대의 예루살렘 성 침공을 가리킨다고 본다.

[2절]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

‘묘한’이라는 원어(나와)는 ‘우아한’이라는 뜻이다. 시온 성 곧 예루살렘 성은 큰 고생 없이 예쁘게 자란 딸처럼, 큰 고난 없이 평화로이 지내왔던 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성을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실 것이다. “내가 멸절하리라”는 원문은 “내가 멸절하였다”는 뜻인데, 이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멸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예루살렘을 확실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심판주이시다. 복(福)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있듯이, 심판과 재앙도 그의 손에 있다.

[3절]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온 바벨론 군대를 묘사한 것이든지, 혹은 멸망 후 예루살렘 성의 황폐함을 예견하며 묘사한 것일 것이다.

[4-5절] 너희는 그를 치기를 준비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볕 그늘이 길었구나. 일어나라. 우리가 밤으로[밤에] 올라가서 그 전각[궁궐]들을 헐자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대주재자이시다. 열방을 불러 예루살렘 성을 치라고 명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바벨론 군대를 불러 예루살렘 성을 치게 하실 수도 있고 또 치지 못하게 하실 수도 있다. ‘정오에 올라가자’는 말은 날이 밝을 때 성을 침공하자는 뜻이며, ‘밤에 올라가자’는 말은 밤에도 쉬지 말고 공격하자는 뜻일 것이다.

[6-7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을 쌓으라. 이는 벌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샘이 그 물을 솟쳐냄같이 그가 그 악을 발하니 강포와 탈취가 거기서 들리며 질병과 창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또 그 말씀대로 일들을 이루시는 자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주님, 곧 우리의 삶의 주인과 주관자와 왕이시다. 이제 예루살렘 성은 주권자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의 포학함 때문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치 않으면 거칠어지고 포학해지기 쉽다. 그들은 마치 샘이 그 물을 솟쳐냄과 같이 자기들 속에 숨어 있는 악을 노출시켰다. 그들 가운데는 강포와 탈취가 있었고 질병과 창상도 그 앞에 계속되었다. ‘질병’은 아마 구타로 인한 상해(傷害)를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결과는 온갖 부도덕한 죄악들이다. 그런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재앙과 멸망이 오는 것이다. 이제 그 성의 멸망이 임박하였다.

[8절]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혹은 ‘경고’]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떠나]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훈계와 경고를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훈계와 경고를 포함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 경고를 무시하고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시고 그 성을 황무케 하시고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훈계와 경고를 겸손하게,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 잠언 23:12는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교훈하였다. 시편 119:11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이제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겸손히 받고 실천하는 것뿐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멸절하실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죽음, 건강과 연약, 복과 화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는 홀로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온 우주의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리자.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원인은 그 거민들의 죄악 때문이다. 특히 그들에게는 포학함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고 남을 향해 온유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포학과 강포와 탈취와 구타의 악을 버려야 하고, 선과 온유와 사랑의 덕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훈계와 경고를 잘 받아야 한다. 8절,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혹은 ‘경고’]를 받으라.” 사람이 하나님의 훈계와 경고를 거절하면 희망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종류의 죄와 악을 버리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따라 정직하고 의롭게 살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한다.

9-15절,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그 멸망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들’은 확실히 이스라엘 백성 곧 유다 백성의 남은 자들을 멸망시킬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 포도를 따는 자들이 남은 것 없이 줍듯이, 그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다 멸할 것이다. ‘광주리’라는 원어(살실로스)는 ‘가지’(BDB, KB, NASB, NIV) 혹은 ‘광주리’ (LXX, Vg, KJV)라는 뜻이라고 한다.

[10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유다 백성의 죄악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경책을 듣기를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귀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표현된다. 그들의 귀는 닫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말로 여겼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11-12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남편]와 지어미[아내]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田地)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분노가 그에게 가득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를 선언한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가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어질 것이며 남편들과 아내들과 노인들이 다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다 백성이 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그들의 집들과 토지들과 아내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징벌의 선언이다.

[13-15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貪婪)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은 그들의 세 가지의 죄악을 언급한다. 첫째는 탐람(貪婪)이다. 이것은 돈을 사랑하고 물질적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시험거리이다. 그러나 탐람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말하였다(딤전 6:9-10).

둘째는 거짓을 행함이다. 이것은 특히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곧 그 당시의 종교인들의 죄악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고쳐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고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지 않고 대충 고쳐주며 너무 가볍고 빈번하게 평안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헛된 축원이었다.

셋째는 가증한 일들을 행함이다. 그들은 가증한 일들을 부끄럼 없이 행하였고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양심은 무디어졌다. 죄는 처음 짓기가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고 반복될 수록 더욱 쉬워진다. 죄는 습관성이 생긴다. 또 악한 습관들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모든 성도는 죄 짓지 않기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탐람과 거짓 행함과 가증한 일 행함 등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 징벌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들을 귀(신 29:4; 마 13:9)가 필요하고 할례 받은 마음(신 30:6) 곧 깨닫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곧 죽음이다. 사람이 영생을 얻고 복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우선, 탐심을 버리자.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탐심은 지옥 갈 죄이며 천국 못 갈 죄이다(고전 6:10). 또 거짓을 버리자. 에베소서 4:25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한다. 거짓도 지옥 갈 죄이며 천국 못 갈 죄이다(계 21: 8, 27; 22:15). 또 가증한 일을 버리자. 우상숭배는 물론 계명을 어기는 모든 것이 가증한 일이다. 특히 서로 미워함이나, 사람에게 있어서 결혼의 존귀함과 사람의 순결성을 저버리는 온갖 음란함이 가증한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녀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집도, 땅도 자랑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복되게 하시면 복이 되지만, 그가 그것들을 가져가시면 복이 되지 못한다. 지진과 전쟁 등을 보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16-30절, 옛길을 거절함

[16-1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쁜 일상생활을 잠시 멈추고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반성하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옛적 길’은 하나님께서 옛날부터 모세를 통해 밝히 명하신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길이 선한 길이며 심령의 평안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로 행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교훈의 옛길, 곧 선한 길을 거절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 위에 파수꾼들 곧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세우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나팔소리 곧 그들의 경계와 경고와 책망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것도 거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선언된 하나님의 교훈과 경고를 듣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였다.

[18-19절]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바벨론 군대의 침공과 예루살렘 멸망이 그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죄악된 생각의 결과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향해 패역했고 불순종적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당할 것이다.

[20-21절]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서도 먼 곳에서 유향과 향품을 가져와서 하나님 앞에 그럴듯한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인의 제사같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참 회개가 없고 말씀 순종함이 없는 제사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거침 곧 걸림돌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때 아비와 아들들이, 이웃과 그 친구들이 함께 넘어지며 멸망할 것이다.

[22-23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자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북방에서 한 군대 곧 바벨론 군대가 내려올 것인데,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을 것이고 말을 탄 전사같이 예루살렘 성을 치려고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4-26절]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행치 말라. 대적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침략자들이 온 땅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은 침략자의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해지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을 당할 것이다. 침략자들은 밭에도, 길에도, 즉 온 땅의 사방에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외아들을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다.

[27-30절]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바콘)[시험하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사레 소레림)[심히 반항적인]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마쉬키심)[부패시키는] 자라. 풀무를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하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으셨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살피는 자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요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심히 반항적인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다니며 남을 비방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놋과 철같이 완고하고 완악하였다. 또 그들은 남을 부패시키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실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고 부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본받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반항적이고 다니며 비방하며 놋과 철같이 완고하고 남을 부패시키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멀리하자.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면 그러해야 한다. 회개의 열매는 구원에 필수적 동반물이다.

둘째로, 우리는 옛적 길로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16절)고 말씀하셨다. 옛적 길은 하나님께서 옛부터 명하신 길, 성경에 증거된 길, 즉 역사적 기독교 신앙이다. 역사는 진리를 붙든 자들의 편이다. 그 길은 선한 길, 평안의 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 교훈을 분별하고 확인하고 확신하며 그 교훈을 가감하지 말고 그 길로만 가자.

7장: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

1-20절, 이스라엘의 죄악

[1-3절]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단어(헤티부)는 예레미야서에서 ‘바르게 하라’(7:3, 5), ‘선하게 하라’(18:11), ‘고치라’(26:13; 35:15)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그들이 그들의 길과 행위를 고치고 바르고 선하게 하면 그들이 이곳 곧 예루살렘 성에 거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4절]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것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신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헛된 말을 사람들에게 강조하였는지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이라도 예배하는 자들이 범죄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은 거기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이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 보존될 수 있다.

[5-7절]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그들이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자를 압제하지 않는 자는 모든 이웃을 압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웃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신다. 악행의 절정은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악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을 해롭게 하고 멸망케 하는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죄악으로부터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영원히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8-10절]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와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무익한 거짓말, 즉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의뢰하였다. 그들은 거짓된 소망, 거짓된 평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나 뉘우침이 없었고 헛된 소망뿐이었다.

[11절]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파리침)[난폭한 자들, 강도들](BDB, KJV, NASB, NIV)의 굴혈[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성전에 모이면서 강도의 소굴처럼 온갖 악을 행하고 난폭하고 강포했음을 다 보셨다.

[12-15절]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실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맨 처음 회막을 세운 곳이었다(수 18:1). 사사 시대 말에도 사람들은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했다(삼상 1:3). 그러나 엘리와 그 아들들의 범죄로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죽었다. 그 후, 실로는 더 이상 성지(聖地)가 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두셨던 실로라도 그들의 죄 때문에 버리셨고 황폐케 하셨다. 북방 이스라엘은 멸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도 같은 징벌을 내리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고 부르셔도 대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실로에 행하심같이, 유다 백성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16절]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그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그것은 그의 긍휼을 거두심이기 때문이다.

[17-18절]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奠祭)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유다 백성들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우상을 섬겼다. 자녀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고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해 과자를 만들며 이방 신들에게 전제를 부었다. ‘하늘 황후’는 달을 가리켰다. 바알은 해, 아스다롯은 달을 가리켰다.

[19-2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노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자취한 일이었다. 그는 불같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참으로 악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예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고 바알과 아스다롯과 여러 이방신들을 섬겼고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였다. 구약교회는 강도의 소굴로 변질되고 타락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와 부패를 통해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깨닫는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고 의와 선을 행하기에 너무 무능하고 무력하다.

둘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온다. 이것은 성경의 중요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거나 나라의 회복을 얻을 수 없었다. 사람의 행위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의 이치이며 대속의 원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셋째로,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길과 행위를 바르고 선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선과 진실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끝까지 악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실로같이, 이스라엘같이, 또 유다같이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라도 완전히 버리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살자.

21-34절, 살육의 골짜기

[21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번제물들이나 화목제물들이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 아니니 그들의 배나 채우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 제사를 요구한 적이 없으시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도,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었다(사 1:11-12). 믿음과 순종으로 드리지 않는 제물은 열납되지 않는다.

[22-26절]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번제나 다른 제사들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하나님의 목소리 듣기를 요구하셨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고한 마음으로 행하였다. 그들은 목을 굳게 하였고 그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그 등을 향하였고 그들의 열조보다 더 많이 악을 행하였다.

[27-28절]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이며 또 그들의 입에는 진리와 진실이 없었다.

[29-34절]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赭山)[벌거숭이 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하셨고 그들을 거부하고 버리셨다. 그 까닭은 그들이 가증한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로 성전을 더럽힌 죄는 큰 죄악이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들의 예배, 즉 설교와 찬송의 변질과 부패에 비교될 수 있다.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 사당에서 그 자녀들을 불태워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바요 그 마음에 생각지도 않으신 바이었다. 우상에게 자녀를 불태워 제물로 드렸던 도벳 곧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살육의 골짜기로 불릴 것이다. 거기에서 예루살렘 거민들과 유다 백성이 많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다. 범죄한 사람의 가치는 매우 낮아서 그들이 짐승의 밥이 될 것이다. 그때 유다 성읍들에는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가 없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교회에게 요구하시는 바도 성경을 읽고 그 말씀들을 마음에 두고 믿고 소망하며 그 교훈을 힘써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義)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 계명을 순종할 때 기쁨과 평안, 형통과 복을 누릴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꾀와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고함으로 행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죄악되며 사람은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매우 큰 악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선 자신을 부정해야 하고 자기 꾀와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더럽히지 말자. 우리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자.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적인 풍조들을 배격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경건하고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힘쓰자.

8장: 이스라엘의 완고함

1-12절, 유다 백성의 죄와 멸망

[1-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1절의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유다 땅을 정복하고 유다 왕들의 뼈들과 그 방백들의 뼈들과 제사장들의 뼈들과 선지자들의 뼈들과 예루살렘 거민의 뼈들을 그 무덤들에서 끌어내어 모욕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신들을 매장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 도리이며 예의인데, 바벨론 군인들은 그들의 뼈들을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해와 달과 별들 아래 쪼일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별들이지만 그것들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 뼈들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땅 위의 쓰레기와 같이 될 것이다.

[3절]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무섭게 이루어질 때에, 그 전쟁과 재앙에서 남아 있는 자들조차도 사는 것보다 죽음을 원할 것이다.

[4-5절]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메슈바)[배교, 변절]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시적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을 떠나 배교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을 고집하였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에게는 진심의 회개가 없었다.

[6절]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바른 말을 들으실 수 없었고 또 자기들의 악을 뉘우치는 말을 들으실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터의 말들처럼 자기들의 길로만 정신 없이 달려갔다.

[7절]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학’이라는 원어(카시다)는 ‘황새’를 가리키고(BDB), ‘반구’는 ‘멧비둘기’를, ‘제비’라는 원어(수스)는 ‘제비’(swallow)(KJV)나 ‘칼새’(swift)(NASB, NIV)를 가리킨다고 한다. ‘두루미’라는 원어(아구르)는 뜻이 분명치는 않지만, ‘두루미나 학’(crane)(KJV) 혹은 ‘개똥지빠귀’(thrush)(NASB, NIV)를 뜻할 것이라고 한다(BDB, KB). 황새나 멧비둘기나 제비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그 올 때를 지키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새들보다도 못하였다.

[8-9절]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다”는 원문은 “보라, 참으로 그가 거짓되이 하였도다. 서기관들의 붓이 거짓되도다”라는 뜻이라고 본다(MT, KJV). 하나님의 율법책을 필사(筆寫)하고 연구하는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으므로 지혜가 없었다.

[10-11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田地)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알 네칼라)[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BDB)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그들의 토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그들이 어른이나 아이나 다 탐욕적이고 선지자나 제사장까지도 다 거짓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탐욕과 거짓이 이스라엘 사회의 주요한 죄악이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하였지만, 실상 평안이 없었다. 평안은 단지 사람의 축원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얻을 수 있고 받을 만해야 받는다.

[12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그들의 심판 날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의 양심이 매우 무디어졌고 가증한 악을 행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다 엎드러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에는 보응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신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야 한다. 7절,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우리는 새보다 나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탐욕과 거짓을 추방하자. 세상의 것들은 허무하며 이 세상의 철학과 종교에는 참 평안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이며 그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생과 평안이 있다.

13-22절, 유다의 멸망을 예고함

[13-14a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그는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시다. 심판의 결과는 무엇인가?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먹을 것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는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포도나무의 과실인 포도나 무화과나무의 과실인 무화과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14b절]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멸망하자’는 원어(닛데마)는 ‘조용히 있자’(KJV, BDB)는 뜻이다. ‘멸하시며’라는 원어(하딤마누)는 ‘잠잠케 하시며’(KJV) 또는 ‘멸하시며’(NASB, NIV)라는 뜻이다(BDB). 유다 성읍들에 내리신 하나님의 재앙의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다. 죄가 근본적 문제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없애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독한 물, 사약(死藥) 같은 물을 마시우실 것이다. 그들은 사약을 마시며 죽게 될 것이다.

[15절]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베아사)[당황함, 낭패, 공포]뿐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과 회복을 원하지만, 회개치 않고 죄만 짓는 자들의 길에는 좋은 것이 없고 당황한 일과 낭패와 두려움뿐이다.

[16절]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단은 이스라엘 땅의 북방 국경 지역에 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군대의 말들의 소리가 북방 국경에서 들려온다.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요란한 탱크들과 장갑차들과 전투기들의 소리이다. 바벨론 군대들은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1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은 사람들의 수단과 방법으로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직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18절]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원문은 옛날 영어성경(KJV)과 비슷하다. “내가 슬픔 대신 기쁨을 바랐으나 내 마음이 심히 피곤하도다(혹은 ‘기절할 것 같도다’).”

[19절]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심히 먼 땅’은 포로로 잡혀간 땅을 가리킨다.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왕이요 온 우주와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였다. 왜 그러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악 때문이었다. 이사야 59:1-2도 말한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람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실 수 없고 기도 응답을 주시거나 회복시키실 수 없고 원수를 물리치실 수 없다.

[20-22절]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이스라엘 백성은 추수의 복 대신 화와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유향은 치료약 재료로 쓰였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많았고 자연히 의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실 때에는 치료할 약이 없을 것이다. 좋은 병원이 소용없고 좋은 약이 소용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돕지 않으시면, 죄로 인해 멸망케 된 그들은 고침을 받을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더욱 더 깨닫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며 죽이는 약을 주시며 친히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그들에게 보내실 것이다. 복과 재앙은 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재앙이 사람의 죄 때문에 옴을 알자.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죄임을 알고 죄를 철저히 회개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재앙이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음을 알자.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감으로만 회복될 수 있다. 예레미야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오늘날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의 살 길은 철저한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뿐이다.

9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함

1-11절, 선지자의 눈물

[1절]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눈물샘]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살육 당함을 인해 주야로 눈물로 통곡하기를 원한다. 사람의 죽음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슬픈 일이며, 민족의 살육 당함이라는 비극적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2절]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보게딤)[배신자들]의 무리가 됨이로다.

예레미야는 행음자들 즉 우상숭배자들과 배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그들을 멀리 떠나 광야에서 나그네처럼 한 곳에서 조용히 쉬기를 원한다. 그는 악인들과 함께 거하기를 원치 않는다.

[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으며](MT, KJV)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가지 악을 지적하신다. 하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였다. ‘활을 당김같이’라는 표현은 거짓말을 쏘아대고 뱉어댄다는 뜻일 것이다. 또 그들은 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거짓말을 책망하고 거절하고 혼자라도 진실한 길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그들은 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았고 비겁하고 비굴하게 거짓말을 용납하였다.

또 그들은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였다. 즉 그들은 악에서 시작하여 악으로 진행하는 자들, 곧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모든 죄악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거짓말할 수 없고 이웃에게 악을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진실의 하나님이시며 거짓말을 정죄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며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4-6절]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네 처소는 궤휼[거짓]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거짓]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거짓이 가득했고 또 남을 비방했다. 바른 말이라도 남을 비판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주의 종들이 진리와 교회를 위해 부득이 이단사설을 비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거짓말로 이웃을 비방하는 행위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일이다.

[7-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그들의 혀는 죽이는2)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害)를 도모하는도다.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讐)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만히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고난과 환난의 시련으로 녹이고 연단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과 같았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입으로는 화목을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였다. 그들은 말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었다. 사람이 거짓말로 악을 행하고 이웃을 해치는 것은 세상적 욕심 즉 물욕과 명예욕 때문이다(약 4: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인해 그들에게 벌하시며 보수(報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10-11절]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유다 땅은 전쟁으로 불타고 황폐케 되고 지나는 자들이 없고 가축도 다 빼앗기고 공중의 새나 들짐승도 놀라 도망칠 것이다. 예루살렘은 쓰레기 더미처럼 될 것이며 사나운 들짐승들의 소굴로 버려질 것이다. 유다 성읍들은 황폐케 되고 거기 거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讎)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인 동시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엄하게 벌하실 것이다.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행음과 배신, 거짓과 이웃 비방, 악행, 또 하나님을 알지 못함을 회개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도 불경건과 배신, 우상숭배, 돈 사랑, 세상 사랑을 회개하고 육신적 음행도 멀리하고 거짓말을 버리고 남을 비방하는 죄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과 평안과 형통함을 얻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회개치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에 곧 내리실 두렵고 불행한 멸망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통곡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온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닫고, 믿음 없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멸망하는 우리나라와 온 세상을 위해, 배교한 교회들과 타협적인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12-26절, 애곡하라

[12절]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예레미야는 유다 땅이 멸망하여 광야같이 되며 지나는 자가 없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의 말씀임을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없고 그 말씀을 받아 전파할 자도 없다.

[13-14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함(쉐리루스)[완고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유다 나라의 멸망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세우신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치 않고 그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이방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바알들은 그 이방신들이었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1, 2계명을 범하는 죄이었다. 우상숭배는 모든 죄의 뿌리이다.

[15-16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메로쉬)[독 있는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 있는 물을 마시게 하시고 그들을 열국 중에 흩으시고 칼을 보내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17-1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능숙한] 부녀를 불러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곡하는 부녀들을 불러와 곡하게 함으로 유다 백성으로 애곡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유다 나라의 멸망이 단지 말로 하는 엄포가 아니고 비극적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절]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예루살렘 성의 거민들은 애곡하며 우리가 아주 망하였다,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다고 말할 것이다. 또 그들은 침략자들이 그들의 주택을 다 헐었기 때문에 그 땅을 떠났다고 말할 것이다. 유다 나라는 멸망하고 그 백성은 산지사방에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20절]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여인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받고 그들의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고 이웃 사람들에게도 애가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확실히 있을 것을 말한다.

[21-22절]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배설물]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유대 땅에 사망이 가득할 것이다. 집집마다 죽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자녀들과 청년들이 많이 죽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체들이 배설물같이 들에 떨어져 널려 있을 것이며 추수하는 자들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곡식단과 같을 것이다.

[23-24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나 용기나 물질적 부요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전쟁 때에 헛되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고 또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또 하나님께서 인애와 공평과 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달은 것을 자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인애와 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25-26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관자놀이 위의 머리털을 깎은 자들(아랍인들, BDB, NASB)]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악된 나라는 망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세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다(13-14절). 그러므로 그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둘째로, 죄인들은 회개하고 애곡해야 한다. 그들은 죄의 값이 멸망인 것을 깨닫고 우상숭배와 음란을 버리고 기타 모든 죄악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 죄인들은 철저히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사는 어느 시대에나 상한 심령이다(시 51:17).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만 자랑하자. 23-24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나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그것들은 그 심판을 모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랑해야 한다.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1-16절, 우상 대신 참 하나님을

[1-3a절]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이는]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것임이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열방의 길’은 이방 나라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 즉 우상숭배의 행위를 가리킨다. 또 그는 그들에게 이방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의 징조’는 이방인들이 세상의 어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미신적으로 결부시키는 해와 달과 별들의 어떤 징조들을 가리킨다. 이방 사람들은 그 징조들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열방의 규례’ 즉 우상숭배의 풍습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3b-5절]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마치, 망치]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깎은] 기둥[오이밭의 기둥, 허수아비]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삼림에서 벤 나무들이며 기술자들이 도끼로 찍고 칼로 다듬고 거기에 은과 금으로 꾸미고 못과 망치로 단단히 고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오이밭의 깎은 기둥이나 허수아비 같아서(BDB, KB, NASB, NIV)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들이 메고 옮긴다. 그것들은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6-7절]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비교할 자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크시며 그 권능이 크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왕’ 곧 온 세상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홀로 통치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그를 경외치 않을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들 중에 하나님과 같은 자는 없다.

[8-9절]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道)는 나무뿐이라.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공장(工匠)과 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감으로 그 옷을 삼았나니 이는 공교한 사람의 만든 것이어니와.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증거한다. 우상숭배는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이며 우상숭배자들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우상은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에다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천으로 옷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만든 것이다.

[10절]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우상들은 가짜 신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한 왕이시며 실제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능력자이시다.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고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할 수 없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악인들의 악을 징벌하신다.

[11절]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본절은 원문에서 아람어로 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이방 나라 사람들이 듣고 깨달으라고 기록한 것 같다. 천지를 짓지 않은 신들은 온 세상에서 멸망할 것이다. 모든 우상들은 결국 다 망할 것이다.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자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창조자 하나님 외의 모든 신들은 사람들의 고안물에 불과하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고 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하셨다. 또 그 계시들을 책에 기록케 하셨다.

[12-13절]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람마타르)[혹은 ‘비올 때’(KJV, NIV)] 번개하게 하시며 그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여호와 하나님,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그의 지혜와 명철, 그의 권능으로 창조하셨다. 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는 친히 물과 구름, 비와 번개와 바람을 주관하신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친히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다.

[14-16절]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우상은 금장색이 부어만든 것이다. 그것은 신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다. 그것은 헛것이며 ‘망령되이 만든 것’ 곧 ‘조롱받을 작품’(NASB, NIV)이다. 그것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다르다. 그는 만물의 조성자 곧 창조자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자이시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는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소유하시고 사용하시고 동원하시고 능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의 헛됨을 알아야 한다. 우상은 나무일 뿐이다. 8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 우상은 나무에다 금이나 은을 입힌 것이다. 그것은 거짓 것이며 생기가 없으며 헛것이며 조롱을 받을 만한 것이다. 14-15절,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우상은 가짜 신이며 생명이 없는 죽은 물건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방 종교들과 그들의 우상숭배들을 배우지 말고 이방 종교들에서 통찰력을 얻으려 하지 말고 또 이방 신들이나 미신적 행위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하나님만 바로 섬기며 그의 뜻과 계명만 힘써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계의 왕이시다. 6-7절,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요 홀로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10-12절,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6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왕 곧 섭리자, 통치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곧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높이고 그를 섬기고 그의 뜻과 계명만 순종하자.

17-25절,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

[17절]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짐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이스피)[모으라].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는 장차 포위될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성의 거민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그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므로 짐을 싸서 이주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18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내어던지신다’는 것은 그가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성의 거민들을 내버리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고난을 당하며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인생의 바른 길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20절]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重傷)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帳)[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중상(重傷)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 자신과 유다 백성이 당해야 하고 겪어야 할 고난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장막들은 파괴되고 그 모든 줄들은 끊어질 것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떠나가 버려서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의 장막들을 세우고 그들의 휘장들을 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아야 할 당연한 징벌이었다.

[21-22절] [이는]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아니함이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오니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시랑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의 멸망의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유다 나라의 목자들, 곧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등 유다 나라 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불경건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또 유다 나라 지도자들의 죄 때문에 유다 백성들도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유다 나라 지도자들의 죄 때문에 유다 나라는 형통치 못하였고 그 모든 양떼 곧 모든 백성은 흩어졌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문이 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벨론 군대의 침공의 소문이었다. 바벨론 군대는 유다의 온 땅을 황폐케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범죄한 교인이 회개치 않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양들이 흩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 없는 자나 위선자나 악한 자는 교회에서 책망과 징계의 대상이며 예수님 때도, 초대교회 때도 그러했다. 또 어떤 교인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교인들의 실수와 위선과 부도덕함 때문에 교인들이 방황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책망을 들을 만한 문제이다.

[23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이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신앙 지식과 고백이며 성경의 진리이다. 인생의 길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잠언 16:9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했고, 잠언 20:24는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고 말했다. 사람의 길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사람의 악한 계획을 헛되게 만드신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 땅 위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다.

[24절]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베미쉬파트)[법도대로, 공의대로](KJV, NASB, NIV)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라도 범죄할 때는 그의 공의대로 징계하신다. 그러나 그를 죽여 없어지게 하지는 않으신다. 그는 그의 긍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케 하신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애가 3:22는,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다 죽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25절]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예레미야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는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그의 공의의 영원한 형벌로 벌하실 것이다. 그것은 특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었고 삼켰고 멸하였고 황폐케 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말자.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불경건의 죄와 그의 계명들을 어기는 부도덕의 죄를 멀리하자. 죄가 이방인들의 멸망의 이유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징계의 이유이다. 우리가 복되게 살려면 범죄치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범죄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자. 물론, 사람은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의 의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철저히 회개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뜻에 순종하자. 인생의 걸음은 자기에게 있지 않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모든 계명들에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