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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 51장: 하나님의 의와 구원 - 60장: 영광스럽게 회복됨

영국신사77 2020. 4. 14. 18:44

제목차례

51장: 하나님의 의와 구원

53장: 메시야의 고난과 대속사역

54장: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

55장: 하나님을 청종하라

56장: 고자(鼓子)와 이방인도 받으심

57장: 우상숭배자들을 고치심

58장: 나의 기뻐하는 금식

59장: 하나님께서 자기 의로

60장: 영광스럽게 회복됨


51장: 하나님의 의와 구원

1-11절, 나의 의, 나의 구원

[1-2절]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차 회복시킬 이스라엘 백성을,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라고 표현하신다. 죄로 인해 멸망하였던 그들이 장차 회복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찾아 구하며 의를 좇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경건과 의의 회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고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고 복을 얻었고 창성하였음을 기억해야 했다.

[3절] 대저[참으로]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복주셨던 그 주권자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대저’라는 원어(키)는 ‘참으로’라고 번역될 수 있다(BDB, NASB, NIV). ‘시온’은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그 성이 지금은 황폐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실 것이다. 장차 에덴 동산같이 회복될 새 예루살렘 성은 복된 성이 될 것이다. 그 성 중에는 기뻐함과 즐거워함, 감사함과 창화[노래]하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4-5절]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 ‘내 나라’라고 친근하게 부르시며 “내게 주의하라, 내게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신다. 과거에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주의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법은 그의 의이다. 신약성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이다. 그 의는 만민의 빛이 될 것이다. ‘빛’은 지식과 의,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자기 백성에게 구원이 되는 하나님의 의가 이방인들에게는 심판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섬들, 곧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의 능력의 팔을 의지할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의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만의 부활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2-4,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방 나라들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6절]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사람의 죄로 인해 저주받은 현재의 하늘과 현재의 땅은 다 쇠해질 것이다. 죄는 인류의 죽음과 세상의 멸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영원한 구원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증거하기를,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의 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다. 베드로후서 3:10, 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7-8절]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의를 아는 자들,’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이라고 부르신다.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의로운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비록 세상에서 사람들의 비방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와 구원은 결코 실패하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다.

[9-10절]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救贖)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하나님의 능력의 팔은 옛날에 모세 시대에 라합[바다 괴물]과 용 같은 애굽과 애굽 왕 바로를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바다 깊은 곳, 넓고 깊은 물, 곧 홍해를 말리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큰 능력의 하나님을 깨우며 하나님께서 이제 그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기를 간구한다.

[11절] 여호와께 구속(救贖)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구원이다. 신약성경은 그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기쁨은 천국의 한 요소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의 복된 삶의 한 요소임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5:2-3,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평안]과 희락[기쁨]이라.” 갈라디아서 5:22,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와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의와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대속 사역을 이루심으로 우리의 의가 되셨다(롬 10:4; 고전 1:30).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구주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자.

둘째로, 구원받은 성도는 의롭게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경건하고 의롭고 율법에 순종하고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길로 행할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의를 행하는 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의의 길을 가야 한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도구로]로 하나님께 드리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기쁨의 구원이다. 성도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과 천국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성령의 도우심 때문에 항상 기뻐해야 한다. 항상 기뻐하는 삶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6-18).

12-23절, 하나님께서 분노를 거두실 것

[12-13절]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人子)를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죄의 징벌로 바벨론 나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슬픔과 곤고함이 가득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위로할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그는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정하신 천지만물의 창조자시요 인생을 지으신 자이시며 여호와 곧 영원자존자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 즉 바벨론 왕들의 분노를 항상 종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죽을 존재이며 풀같이 시들어버릴 존재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치시면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으시고 쇠잔하지 않으신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 곧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4-16절]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구덩이에서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KJV, NASB)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학대하는 이방 나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며 구덩이에서 죽지 않을 것이며 양식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능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곧 영원자존자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 곧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말”은 문맥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본다.

[17-20절]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羚羊)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예루살렘 성은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셨다. 그것은 그들을 비틀걸음 치게 만든 큰잔이었다. 그들은 그 잔을 다 마셨다. 그것은 그들의 많은 죄 때문에 내리신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쇠잔해져서 그때에 그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나서서 이스라엘 나라를 인도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닥친 재앙을 두 마디로 요약한다. 하나는 황폐와 멸망이며, 다른 하나는 기근과 칼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모든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황폐하여졌다. 또 거기에 살던 거민들은 전쟁과 굶주림에 죽어갔다. 그들의 남은 아들들은 피곤에 지쳐 그물에 걸린 영양(羚羊)같이 모든 거리 모퉁이에 누워 있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이런 예루살렘 성을 향해 이사야는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라고 외친다. 그는 예루살렘 성과 그 거민들의 회복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케 하심을 증거한다.

[21-23절]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伸寃)하시는(야리브)[위해 싸우시는, 변호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분노의 큰잔을 거두시고 그 큰잔을, 그들을 곤고케 하던 자들, 그들을 엎드리게 하고 밟고 지나갔던 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짓밟았던 그들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열쇠가 있고 거기에 모든 인생의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 곧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17, 20, 22절).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학대를 당했고 결박을 당했다. 그들에게는 인도자가 없었고 성들이 황폐하였고 거민들이 기근과 칼로 죽어갔다. 그들은 지금 곤비해 있다. 이것은 다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두려워하고 죄를 멀리하자.

둘째로, 우리는 학대자를 두려워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는 죽을 인생이며 풀같이 시들 인생이기 때문이다(12-13절). 우리는 지금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또 우리에게 닥친 어려운 현실도 겁내지 말고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바라자.

셋째로,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실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그는 영원자존하신 여호와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결박된 포로를 해방시키시는 자이시다. 그는 이스라엘에게서 분노의 잔을 거두실 것이며 또 그 잔을 그들의 원수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고 그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계명들만 순종하자.

52장: 구원의 좋은 소식

1-12절, 구원의 좋은 소식

[1-2절]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不淨)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잠드는 것은 징벌의 고통 속에 낙심하고 절망한 상태를 가리키고, 깨는 것은 그 낙심과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시온 성은 이제 그 낙심과 절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사야는 또 시온 성이 위로와 힘을 얻으라고 말한다. 또 지금은 비천해지고 누추해진 그 성이지만, 이사야는 그 예루살렘 성이 거룩함과 아름다움으로 회복될 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불경건과 부도덕이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이제 티끌을 떨어버리고 일어나 보좌에 앉을 것이다. 포로로 사로잡힌 시온 백성의 목에서 속박의 줄이 풀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놓여날 것이다.

[3-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베에페스)[까닭 없이](BDB, KJV, NASB)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킨남)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지었음으로 징벌을 받은 것이지만, 애굽 사람들이나 앗수르 사람들처럼 이방인들 앞에서는 그렇게 학대를 당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없었다. 이방인들은 까닭 없이 그들을 압박하였고 학대하였다. 그들은 떠들며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그 날에 그들이 이 말 하는 자가 하나님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며 자신을 알리실 것이다.

[7절]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구원의 복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다. 그들이 전하는 소식은 평화의 소식이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나타나며 이루어지는 일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도 전도자들의 발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하는 말로 인해 구원 얻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8-9절] 들을지어다, 너의 파숫군[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救贖)하셨음이라.

황폐했던 예루살렘 거민들은 소리 높여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주 하나님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뻐 찬송할 것이다.

[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회복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의 눈앞에서 친히 그의 거룩한 능력의 팔로 이루시는 일이며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일이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택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이다.

[11-12절]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不淨)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나라에서의 그 포로 생활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한 이방 세계의 환경을 떠날 것이다. 그 곳은 영적으로 심히 어두운 곳이며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곳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한다. 그들은 그 깨끗지 못한 환경을 떠나야 했고 더러운 것들을 만지지 말아야 했다. 특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솔선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12절은 특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나라로부터의 포로 귀환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안전하게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나라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행하실 것이며 또 그들 뒤에서 그들을 지키시고 호위하실 것이다. 이제 그들을 해치고 흐트러뜨릴 자들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고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는 줄을 알 것이다(6절). 구원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결과이다(7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고 구속(救贖)하셨다(9절). 여호와께서는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다. 구원은 사람의 누더기옷 같은 선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만방에 전파하자. 7절,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마 28:19-20; 막 16:15). 전도는 우리의 사명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찬송하자. 9절,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救贖)하셨음이라.”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교훈하였고(빌 4:4), 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다(엡 5:19). 또 히브리서 13:15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교훈하였다.

52:13-53:6,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사역

이사야 52:13부터 이사야 53장까지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 놀라운 예언을 한다. 특히 53장은 고난 당하실 한 인물에 대해 ‘그는’(2절), ‘그는’ ‘그를’(3절), ‘그는’ ‘그는’(4절), ‘그가’(4번)(5절), ‘그에게’(6절) 등으로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실 메시아이심이 분명하다.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놀랍게 성취되었다.

[1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21)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메시아의 형통하심과 존귀케 되심을 선포하신다. 여호와의 종이신 메시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형통하게 다 이루시고 존귀하게 되실 것이다.

[14-15절]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메시아께서는 그 얼굴이 다른 사람보다 상하시고 그 모양이 다른 사람보다 상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고난을 말씀하신다.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일은 고난을 통해 이루실 일이다. 메시아의 형통하심은 곧 그 고난의 일을 완성하시는 것을 말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메시아의 고난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메시아께서 그의 피, 곧 속죄의 피와 속죄의 복음을 열방에 뿌릴 것이다. ‘열방을 놀랜다’는 원어(얏제 고임)는 ‘열방에 뿌린다’는 뜻이다(KJV, NASB, NIV). 무엇을 뿌린다는 뜻인가? 그것은 다음 장(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내용에 비추어보면, 그의 피, 곧 속죄의 피를 뿌리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속죄의 복음을 만방에 뿌리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열왕들은 그를 인해 입을 닫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며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53장: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사역

[1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메시아의 속죄의 죽음과 그 속죄사역은 모든 성도와 전도자들이 전하는 내용이며 전해야 하는 내용이다. 메시아의 속죄사역은 복음의 중심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했고(고전 1:22-24), 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말했다(고전 15:3).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외모를 예언하며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를 상상케 만든다. 메시아의 모습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시며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시고 외모로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시다고 묘사되었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메시아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시며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실 것이다.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원어(이쉬 마크오보스)는 ‘고난의 사람’(a man of sorrows)(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또 ‘질고’라는 원어(콜리)는 ‘병’ 혹은 ‘병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4-5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병과 고통]를 지고 우리의 슬픔[간고, 고난]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고난, 곧 대속(代贖)의 고난이심을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는 것이다. 그의 속죄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같이 우리 자신의 뜻대로 그릇된 길로 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메시아에게 담당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주셨다고 말했다. 디모데전서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자. 사람은 피부가 곱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조화가 있을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곱고 사리분별력과 판단력이 있고 경건과 도덕성과 인격성이 있지 않다면 외적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 즉 그의 외모, 학력, 재산, 사회적 신분 등으로 그의 가치를 판단치 말고 그의 경건성, 그의 도덕성, 그의 인격성이 더 가치 있는 요소임을 알고 그것으로 그를 평가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 항상 거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피밖에 없다. 죄인은 오직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우리는 오직 그의 속죄의 피를 믿고 감사하며 오직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양으로 순종하며 충성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신앙의 길에 있는 고난을 두려워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눅 9:23). 히브리서 13:13은, 우리가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말하였고, 베드로전서 4:12-13은, 우리에게 닥치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교훈하였다.

7-12절,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屠獸場)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핍박을 당하시며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라는 말은 “그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했으나”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메시아께서는 핍박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나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는 마치 도수장(屠獸場) 곧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암양(라켈)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회 앞에서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들을 들으셨으나 잠잠하셨다. 마태복음 26: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8절]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는 말은 “그가 핍박과 심문을 받아 처단되셨다”(NASB) 즉 죽임을 당하셨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핍박과 심문을 당하고 처단되셨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셨다고 말한다. 메시아께서는 공적으로 정죄받으시고 죽으실 것이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죽음을 속죄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한다. 메시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대신 벌을 받으실 것이다. 또 그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실 것이다. 그의 죽음은 속죄의 죽음일 것이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께서는 강포를 행치 않으셨고 그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다. 그러나 그는 예언된 대로 악인과 같이 무덤에 묻히시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마태복음 27:57, 59-60,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메시아의 고난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이었다. 어린양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실 것이다.22) 속건제물(아솸)은 속죄제물(캇타스)과 비슷하나 죗값의 보상이라는 뜻이 강조된다고 보인다.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이 길 것이다. “그 씨를 본다”는 말은 구원받은 자녀들을 본다는 뜻이며, 그 날이 길 것이라는 말은 메시아 왕국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또 메시아께서는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이다(요 6:39-40).

[11절]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나의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신다. 그는 죄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제물이 될 수 있으셨다. 의로우신 메시아께서는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자기의 지식으로’라는 원어(베다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지식으로’라는 뜻이든지, ‘[택자들의] 그에 대한 지식으로’라는 뜻일 것이다. ‘의롭게 한다’는 원어(야츠디이크)는 ‘의롭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또 메시아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는 대속의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러하였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하였다(요 1:29). 예수께서는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메시아께서는 자기의 영혼을 버리시고 범죄자 중 하나처럼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또 그들을 위해 중재하심으로써23)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과 강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메시아의 중보사역은 지금도 계속되신다. 로마서 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깨닫고 감사하자.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것은 그가 택자들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었다. 그는 이런 대속 사역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주셨다. 죄인들은 그를 통해 의인들이 된다. 로마서 3:24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히 7:25; 9: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깨닫고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살자. 메시아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죽으셨다. 우리는 그를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산 우리가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죽도록, 죽기까지 충성하자.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25). 사도 바울도,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고 말했다(롬 14:7-8). 우리는 주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자.

54장: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

[1절]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劬勞)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장에는 ‘하나님의 말,’ ‘여호와의 말’이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1, 6, 8, 10, 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모습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여인, 구로치 못한 여인, 홀로 된 여인과 같다. ‘홀로 된’이라는 원어(쇼메마)는 ‘황폐한, 쓸쓸한’(desolate)(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황폐해진 이스라엘 나라가 장차 많은 자녀들을 가질 것이므로 노래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의 모습은 수적으로 번창하는 것이다. 구원받을 자들이 많을 것이다.

[2-3절]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수적으로 번창할 것이므로 그들의 장막터를 넓히고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고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케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가 좌우로 퍼지며 그 자손들이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거주하는 곳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4절]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의 형편을 ‘청년 때의 수치’와 ‘과부 때의 치욕’이라는 말로 표현하시지만, 이제 그들에게 그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5-6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남편이심이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少時)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미래의 영광스런 회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으셨고 그들의 남편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는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救贖)하신 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혹은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시는 자’이시다. 또 그는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열방과 열왕들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젊을 때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부르실 것이다.

[7-8절]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의 비천한 처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진노하심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로, 영원하신 자비로 그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며 영광스럽게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영원하신 자비로 인한 것이다.

[9-10절]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仁慈)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 때 홍수 심판 후 다시는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고 맹세하신 것같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노하지 않고 다시 그들을 책망치 않겠다고 맹세하시고,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않고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베리스 쉘로미)[나의 평안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하나님의 평안의 언약의 기초이다.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

[11-12절]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화려한 채색으로 돌들을 놓으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의 현재의 모습은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사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차 화려한 채색돌을 놓으시며 청옥으로 기초를 쌓으시며 홍보석으로 성첩(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성벽)을 지으시며 석류석으로 그 성문을 만드시고 그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미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것은 영광의 천국의 모습이다.

[13-15절]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그들이 모일지라도[심히 다툴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다투며]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교훈을 즐거이 받을 것이다. 경건과 순종의 회복이다. 또 그 자녀들은 평안할 것이며 의 안에 설 것이다. 그 의는 하나님에게서 얻은 의이다(17절). 죄는 죽음과 모든 불행, 수고, 수치를 가져왔으나, 의는 생명과 영광과 평안을 가져올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에게는 학대나 공포가 없을 것이다. 그와 다투며 그를 치려 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16-17절]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찰라크)(KJV, NASB)[형통치]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치려고 만든 기계가 형통치 못하게 하실 것이며 그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자들이 정죄를 당케 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의롭다고 여기시고 기업을 삼으실 것이다.

본장은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를 증거한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고 장차 천국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과 영원하신 자비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7-8절). 하나님께서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의 크신 긍휼과 영원하신 자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엡 2:4-5).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영원하신 자비를 기억하자.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의(義)로 서며 의를 얻을 것이다(14, 17절).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롬 10:4),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의 안에 항상 거하자.

셋째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평안의 언약 안에서 큰 평안을 누릴 것이다(10, 13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참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셨다(요 14:27).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그 큰 평안을 누리자.

넷째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아름다울 것이다(11-12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는 장차 영광을 누릴 것이다. 천국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새 세계이다(계 21:11-21).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자.

55장: 하나님을 청종하라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물과 포도주와 우유는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그러면 목마른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있고 하나님의 의와 기쁨과 평안이 없는 자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이며 사람을 살리고 배부르게 하는 귀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돈 없이 값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참 양식과 대조하여, ‘양식 아닌 것’ ‘배부르게 못할 것’은 헛된 이방종교들의 우상들이나 이 세상의 보기 좋고 안락한 물건들이나 육신의 쾌락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들은 다 헛된 것들이다(전 1:2).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참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좋은 것’ ‘기름진 것’ 곧 현세의 평안과 기쁨, 그리고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3-5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케세드)[자비]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못했던] 나라[나라들]24)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 영혼이 산다’는 말씀은 죄로 인해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서 기쁨과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실 영원한 언약, 곧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자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혜를 가리켰다(렘 23:5-6; 겔 34:23-24). 메시아께서는 만민에게 증거가 되실 것이며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가 되실 것이다. 그를 통해 많은 나라들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세계복음화를 가리켰다.

[6-9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나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때이다. 신약시대는 그 은혜의 시대이다(고후 6:2). 선지자가 전하는 바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 곧 회개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던 자들은 그 길과 그 생각, 즉 그들의 불경건한 생활방식과 죄악된 사고방식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보다 높다.

[10-13절]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다. 마치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 식물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하여 심는 자들에게 종자를 주고 먹을 양식을 줌과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기쁨과 평안을 줄 것이며 산들은 노래하고 나무들은 꽃을 피고 열매를 맺힐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의 양식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가치,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가치,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과 영생의 가치, 영광스런 천국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둘째로, 죄인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목마른 자들은 물로 나아와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하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불러야 한다. 그들은 과거의 모든 죄악된 생활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고 그가 보내신 메시아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기쁨과 평안이다. 12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세상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기쁨과 평안을 잃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기쁨과 평안을 얻는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참 평안을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받는다(요 14:27). 또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참 기쁨을 맛보며 산다(갈 5:22).


56장: 고자(鼓子)와 이방인도 받으심

[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미쉬파트)[공의]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의 행위의 기준이다. 양심은 그 계명의 반영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상숭배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고 탐내지 않는 것이 의이다.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그의 구원이 가깝고 그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메시아의 대속사역을 통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이론이 아니고 죄에서의 구원이며 회개와 순종을 동반하는 구원이며 의를 주고 의를 행하게 하고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구원이다.

[2절]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구약시대에 안식일은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다. 죄로 인해 수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죄사함을 받고 안식을 얻는다.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통한 참된 안식을 예표하였다. 구약시대에 안식일은 또한 하나님께 성회로 모이는 날 곧 예배하는 날이었다(레 23:3).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경건의 표시가 되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도 비슷하다. 주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는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소홀히 하는 자를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참된 경건과 의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과 모든 악을 버리는 삶으로 나타난다.

[3절]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鼓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시대에는 이방인들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또 마른 나무라고 표현된 고자(鼓子)들, 즉 육신적으로 자녀 생산 능력이 없는 그들도 영적으로는 다를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4:1에서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신의 자녀들은 낳지 못할지라도 영적인 자녀들은 많이 낳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구원과 그들을 통한 많은 영혼들의 구원을 가리켰다.

[4-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기쁘게 하는](KJV, NASB, NIV)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鼓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시며 중시하셨다. 그는 또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삶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선택하며 그의 언약을 굳게 잡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안식일을 지키며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선택하며 그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鼓子)들에게 그의 집 곧 그의 성전에서, 또 그의 성 곧 예루살렘 성안에서 자녀들보다 나은 기념물(야드 ד������)[표, 분깃(BDB); 지위(KJV)]과 이름을 주시며 영영한 이름을 주셔서 끊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고자(鼓子)들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총회에서는 제외되었으나(신 23:1), 신약교회에서는 포함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백성이다.

[6-8절]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聖山)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방인들 중에 하나님과 연합한 자들 곧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종이 된 자들, 또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는 자들 곧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 알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산(聖山)에 올라올 수 있고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수 있다. 그들은 구원받은 이방인들 곧 신약교회에 편입된 이방인 신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시고 기도하는 그의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실 것이며 또 그들이 그에게 바치는 제물들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그는 또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0:16). 로마서 11:17,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9-12절]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利)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들의 짐승들’과 ‘삼림의 짐승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할 이방 나라들을 가리켰고, ‘파수꾼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을 가리켰다.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은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그 시대의 처한 형편도 깨닫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재앙을 경고할 줄도 모르며 게으르고 불성실했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만 추구했고 육신의 쾌락만 좋아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의를 지키고 행해야 한다. 구원은 의의 회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의를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법이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2절).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둘째로, 우리는 참된 경건을 지켜야 한다. 본문은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2, 4, 6절). 신약교회의 성도들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즐거이 주일을 지킬 것이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한다(3, 6절). 연합은 믿음과 순종으로 표현된다. 하나님과 연합된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것이다. 또 본문은 굳게 잡는 것을 강조한다(2, 4, 6절). 굳게 잡는 것이 보수신앙이다. 우리는 정통 기독교 신앙을 굳게 잡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셋째로,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멸망하는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은 무지하였고 불충성되었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된 봉사자들이 되어야 한다(마 25:1-30).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분별하고 시대를 분별하고 모든 게으름과 불충성을 버리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계 2:10).

57장: 우상숭배자들을 고치심

[1-2절]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야보)[들어가리니] 무릇 정로로(네코코)[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배교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의인과 자비한 자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죽음이 복된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앙 전에 죽는 것이며 평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도 경건한 자는 죽을 때 평안에 들어갔다. 우리는 사람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경건하게 살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고 자비와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3-6절] 무녀(巫女)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그것이 곧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너희가 전제(奠祭)와 예물[소제=곡물제사]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이를 용인하겠느냐?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사회는 심히 우상숭배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녀(巫女)[마술하는 여자]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창녀]의 씨’ ‘패역의 자식’ ‘궤휼[거짓]의 종류[씨]’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떨어졌다. 그들은 육신적으로도 음란하였겠지만, 영적으로,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것은 영적 간음이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열광했다. 그들은 모든 상수리나무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에게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그들은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심지어 자녀들을 우상에게 불태워 드렸다.

[7-10절]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네가 또 네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네가 나를 배반하고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고 올라가며 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또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여 그 처소를 예비하였으며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使臣)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지옥에까지 네 자신을](KJV) 낮추었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아니함은 네 힘이 소성되었으므로 쇠약하여 가지 아니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높은 산 위에서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우상의 기념표를 자기 집 문과 문기둥 뒤에 두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신한 행위이다. 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에게 몸을 드러내고 그들과 교제하며 언약을 맺었다. 그들은 기름과 향품을 가지고 이방신인 몰렉에게 나아갔고 원방에까지 사신을 보내어 우상숭배를 배우니 지옥 형벌을 받을 일이었고 우상숭배하는 데는 피곤치 않았고 힘과 열심을 내었다.

[11-13절]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하여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치 아니함은 내가 오래 동안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너의 의(義)를 내가 보이리라. 너의 소위(所爲)[행위]가 네게 무익하니라.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으로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은 다 바람에 떠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를 두려워하여 거짓을 말하며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와 행위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헛됨을 보이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그들이 환난과 재앙의 날에 그들이 모은 우상에게 구원을 청해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차지할 것이다.

[14절]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이것은 구원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 곧 죄의 회개를 암시한다.

[15절]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시며 영원하시며 또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겸손히 자신의 죄를 통회할 때 그와 함께하신다. 그는 그의 영을 소성케 하실 것이다.

[16-17절]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하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과 영원히 다투지 않고 영구히 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이 너무 곤비할까봐 염려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패역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

[18-19절]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구원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그는 사람이 얼마나 부패하고 얼마나 무능한지를 아신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를 고쳐주실 것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위로와 평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우리는 소망 없는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받음으로 위로를 받았고 평안을 얻었다.

[20-21절]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심령의 참된 회개와 변화가 일어나지만,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은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바다와 같다. 죄 가운데 살며 회개치 않는 악인들에게는 참된 평안이 없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심히 부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녀의 자식’ ‘창녀의 씨’ ‘패역의 자식’ ‘거짓의 종류’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상숭배와 음란과 온갖 부도덕으로 더럽혀진 역사이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사람의 심히 죄악됨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12절, “너의 의를 내가 보이리라. 너의 소위가 네게 무익하니라.” 사람의 행위의 의는 무익하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내가 그를 고쳐주리라”고 두 번이나 강조해 말씀하신다(18, 19절).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딤후 1: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었고 구속(救贖)함을 얻었고 부르심을 얻었고 보호함을 얻었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믿음과 의로만 살아야 한다. 13절,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우리는 죄를 통회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죄 가운데 살며 죄를 회개치 않는 악인들에게는 참된 평안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롭게만 살아야 한다.

58장: 나의 기뻐하는 금식

[1절]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며 크게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선지자에게 목소리를 크게 외치며 아끼지 말고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보내라고 말씀하신다.

[2-5절]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너희의 모든 일꾼들을 엄하게 부리는도다](NASB).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너희는 오늘날처럼 너희 목소리로 높은 곳에 들리게 하려고 금식하지 말지니라](KJV, NASB).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교훈을 알기를 즐거워하며 마치 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으며 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는 자 같았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반문하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행하며 모든 일꾼들을 엄하게 부린다고 지적하셨다. 또 그는 그들이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고 악한 주먹으로 서로 친다고 하셨다. 그는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는 또 그들이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만 가지고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서 받으시는 일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금식은 종교적 형식과 외적 모양에 불과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진실한 마음의 금식, 즉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치 못했을 자신의 부족과 죄를 뉘우치며 상한 마음으로 하는 금식인데, 그들은 진실한 마음이 없는 종교적 형식만 지켰던 것이다.

[6-7절]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은 회개 기도의 표현이어야 한다. 금식은 금식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고,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바르고 선한 삶을 결심하는 데 의미가 있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죄를 버리는 것이다. 중생하기 전에 우리는 참된 회개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중생하였을 때 참된 회개를 했고 복음 신앙, 곧 속죄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을 학대하여 악하게 결박한 일이 있으면 그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야 한다. 또 굶주린 자에게 먹을것을 나눠주며 거처할 집이 없는 가난한 자를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어려운 친척을 보고 피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된 금식은 모든 죄를 뉘우치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면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8-12절]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修補)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기쁨과 행복, 건강의 회복, 재앙으로부터의 회복을 주시며 기도의 응답과 심령의 만족을 주시며 항상 인도해주시며 몸을 건강케 하시며 물 댄 동산 같게 하실 것이다. 또 그들의 자녀들은 황폐한 성읍들과 길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이와 같이 평안을 주실 것이다.

[13-14절]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聖日)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聖日)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회개의 한 내용이다. 그것은 도덕법으로 주신 열 가지 계명들 중의 하나이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이었고(출 31:16-17) 하나님께 성회로 모이는 날(레 23:3),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구별된 성일이며 구약 백성들의 신앙 훈련을 위해 매우 유익한 날이었다. 안식일에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고 육신적 오락을 행치 말아야 했다.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이었다. 출애굽기 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즐겁고 존귀한 날로 여기며 자신들의 길로 행하지 말고 자신들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안전한 곳에 거하게 되며 또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될 것이다. 안식일은 확실히 구약 성도에게 큰복이었다. 신약 성도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도 그 원리가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형식적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고 참된 회개와 계명 순종의 삶을 살자.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자.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이웃과 다투지 말고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 고난 당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자. 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자.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공의와 자비와 경건은 율법의 요점이다. 또 그렇게 행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비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금식하고 기도하자. 마태복음 17:21, “그러나 이런 유의 것은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전통사본).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 곧 모든 악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오락적으로 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큰복을 약속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시며, 건강의 회복을 주시며, 기도 응답을 주시며, 심령의 만족을 주시며, 항상 인도하심을 주시며, 물댄 동산 같은 복된 삶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사도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딤전 4:8).

59장: 하나님께서 자기 의로 친히 구원하심

[1-2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고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간격을 만든다. 죄가 사람의 근본문제이다. 죄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막는다. 죄는 신앙생활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죄밖에 없다. 

[3-5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남을 해치고 죽이고 거짓을 말하였다. 그들의 손에는 피가 있었고 그들의 손가락은 죄악에 더러웠고 그들의 입술은 거짓을 말하였고 그들의 혀는 악독을 발하였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법정이 부패하였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었다. 의와 불의,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고 판결해야 할 법정이 부패되어 거기에 불의와 악과 거짓이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는 거짓과 악독이 가득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독사의 알을 품은 것과 같아서 그 결과는 재앙과 죽음과 멸망일 것이다.

[6-7a절]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았다. 그들의 행위는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울 수 없었다. 그것은 곧 메말라 버리는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과 같았다.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요,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고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었다.

[7b-8절]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부패의 결과는 그 앞길에 황폐와 파멸이 있는 것이고 그들이 평안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의를 행치 않으며 그런 길을 걷는 자에게는 평안이 없다.

[9-11절]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우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의가 없기 때문에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었다. 빛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고 어두움은 슬픔과 불행을 상징한다. 그들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자와 같았다. 그들은 환난과 재앙 속에서 부르짖고 탄식하며 구원을 바라나 구원이 그들에게서 멀었다.

[12-15a절]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깨닫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정치 않았고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하였다. 그들에게는 의도, 진실도 없었다. 오히려 의인이 탈취를 당하는 일이 있을 정도이었다. 이스라엘 사회 곧 구약교회는 경건이 없고 의와 정직이 없는 심히 죄악된 교회요 사회이었다.

[15b-18절]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흉패]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報讐)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적 상황을 보시고 친히 자기의 팔로 또 자기의 의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주권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로 흉패(breastplate)(KJV, NASB)와 투구를 삼으시고 그 의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을 갚고 보응하실 것이다.

[19절]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다시 번역하면,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며, 원수가 홍수같이 올 때에 여호와의 영이 그를 대항해 기(旗)를 들리라(KJV)(혹은 그를 대항해 몰아대시리라).” 본문 하반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본다.

[20-2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救贖者)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罪過)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죄를 떠나는 자, 곧 회개하고 죄를 버리는 자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그의 언약을 지키실 것이며 그의 영과 그의 말씀을 그들에게 영원히 주실 것이다. 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에게 분노하시며 보복하실 것이며, 그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사람의 불행과 멸망이다. 범죄한 이스라엘 사회에는 평안과 행복이 없었고 황폐와 슬픔과 고통과 학대받음뿐이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도, 기도의 응답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불행과 멸망임을 보여주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죄가 많은 나라도 그렇다. 우리는 세상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큰 슬픈 사건들도 우연한 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악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이다.

둘째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긍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팔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다.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구주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사람의 의로운 행위들은 누더기 옷과 같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영과 그의 말씀이 그들과 그들의 자자손손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셋째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과 기도로 살며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얻을 수 있고 자자손손 평안과 복을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60장: 영광스럽게 회복됨

[1-3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의 구원의 빛을 받을 것이며 그 빛을 세상 모든 곳에 비출 것이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의 일을 보인다. 어두움은 죄와 불행과 죽음을 가리킨다. 세상은 어두움 즉 죄와 불행과 죽음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요 1:9; 8:1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추었고 온 세계가 이 빛으로 나아왔고 지금도 나아오고 있다.


[4-5절]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때에 네가 보고 희색(喜色)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포함하고 기쁨과 놀라움을 가질 것이며 열방의 풍부함과 물질적 풍요까지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이며 풍요로운 신약교회의 모습을 보인다.

[6-9절]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게 하실 것이다. 또 장차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이방인들과 그 자녀들이 교회로 들어올 것이며 그들은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10-12절]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전에는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징벌하셨으나 이제 그는 은혜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그들을 멸망시켰던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돌아와 교회를 건립하고 그들을 섬길 것이다. 신약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밤낮으로 닫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신약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이 교회에 속하고 이 교회를 섬기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13절]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잣나무’라는 원어(베로쉬)는 ‘삼나무’(cypress)라는 뜻이며(LXX, Syr, BDB), ‘소나무’라는 원어(티드하르)는 ‘느릅나무’ (elm)라는 뜻이며(시마커스역, Vg, BDB), ‘황양목’이라는 원어(테앗슈르)는 ‘회양목’ (box-tre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BDB, Vg, Targ, KJV). 이것은 신약교회에 많은 인재들 있음을 보이는 것 같다.

[14절]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며 멸시하던 이방인들의 자손들은 그들에게 굴복할 것이며 그들을 하나님의 성,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증거할 것이다.

[15-16절]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아비르)[용사]인 줄 알리라.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는 영영한 아름다움(가온)[뛰어남, 우수함]과 대대의 기쁨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은 세계적 교회가 될 것이며 이방 나라 왕들이 양식을 공급할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 즉 신약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7-18절]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신약교회는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도덕적으로 안정적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은금놋철이 풍성할 것이다. 또 그 교회는 평안과 의(義)가 다스리는 교회가 되며 강포가 없을 것이며 황폐와 파멸도 다시 없을 것이다. 그 성벽은 구원, 그 성문은 찬송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장차 천국에서 이루어질 교회의 모습을 가리키지만, 또 이 세상에서도 바른 교회는 그런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19-20절]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친히 영영한 빛이 되시고 영광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계 21:23). 해가 지지 않고 달이 기울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영한 빛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들의 슬픔의 날은 마칠 것이다.

[21-22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의롭게 만드실 것이며 또 그들로 영원히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들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자들이다. 그들은 약한 자라도 강건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그는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영한 빛이 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세계적이다. 본장은 세계복음화의 전망을 풍성하게 증거한다. 열방과 열왕은 이스라엘의 빛으로 나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은 원방에서 올 것이다. 바다의 풍부가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을 앙망할 것이다.


셋째로, 교회는 영광스러울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은 자들이다. 교회에는 빛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집’이라고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집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거기에는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있을 것이다. 신약교회에는 의와 평안이 있을 것이다. 신약 교인들은 의로운 자들이며 하나님의 심으신 자들이며 영원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며 또 강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됐다. 아직 충만한 영광을 보지는 못하지만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받았고 의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영광의 천국이 이루어지기까지 개인적으로 성화를 이루고, 바른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며, 교회들의 온전함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