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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 40장: 이스라엘의 회복 - 50장: 메시야의 사역

영국신사77 2020. 4. 14. 18:44

제목차례

40장: 이스라엘의 회복

41장: 너를 도우리라

42장: 주의 종

43장: 하나님의 백성

44장: 유일하신 하나님

45장: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

46장: 하나님은 절대주권자

47장: 바벨론의 멸망

48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49장: 이스라엘의 회복

50장: 메시야의 사역


40장: 이스라엘의 회복

1-11절, 하나님의 오심

[1-2절]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체바아흐)[‘그의 전쟁’(KJV, NASB), ‘그의 고역’(NIV)]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회복될 날이 암시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신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징벌을 받아 멸망당하고 오랫동안 바벨론 포로생활로 고생할 것이지만, 이제 회복의 날이 올 것이다. 유다 백성은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징벌을 충분히 받았고 징벌로 받은 포로생활의 기간, 즉 전쟁 같은 고역의 기간은 찼고 그 죄악은 사함을 받았다.

[3-5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본문은 메시아의 강림을 준비하며 선포했던 세례 요한을 암시한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전파하며 메시아를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었다. 광야는 거친 세상의 현실이나 인생의 수고로운 삶을, 골짜기는 거짓과 미움과 탐욕과 음란으로 복잡한 사람들의 죄악된 심령을, 또한 산은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회복시키실 것이다. 악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만 영광의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는 말씀은 신적인 구주의 강림을 계시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인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메시아께서 사람으로 오심을 가리킨다고 본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적 메시아의 강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입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실제로 이루어졌다.

[6-8절]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본문은 사람의 생애와 세상 영광의 헛됨을 증거하며, 그것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한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고 떨어질 것이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것 위에 불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함은 그들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이스라엘 나라의 쇠잔함과 멸망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사야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 말씀은 헛되지 않고 영원히 서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9절]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시온이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예루살렘이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KJV, NASB).17)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에 대한 소식을 널리 전하라고 말한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는 말씀은 장차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실 것을 증거한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요 1:1, 14).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成肉身)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의 구주이신 그를 만방에 전해야 한다.


[10-11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본문은 오실 신적 메시아에 대해 좀더 말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며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는 선한 일을 행한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며 악한 일을 행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또 그는 좋은 목자이실 것이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는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들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실 것이다. ‘젖먹이는 암컷들’(NASB)18)은 아마 말씀의 사역자들인 목사들을 상징할 것이다. 양들을 모으시는 것은 그들을 구원하심을 가리키고, 양들을 안으시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심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간의 삶은 헛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하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세상의 모든 삶과 그 영광은 과연 헛되다. 그것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 믿고 소망하자.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신적 구주께서 오셨다.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요 1:1, 14).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썼다(딤전 1:15).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시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 우리는 이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마 28:19; 막 16:15; 행 1:8).


셋째로, 이제 우리는 신적 구주의 인도하심만 따르자. 신적 구주께서 능력의 팔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품에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며 마지막 날에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7).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본 14만 4천인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정절이 있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다(계 14:3-5). 우리는 오직 구주 예수님만 따르자.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되자. 그의 말씀이 성경에 있으므로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만 믿고 살자.


12-17절,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12절]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가 심히 크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산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온 세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구는 매우 크지만 온 우주에서 한 작은 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거대한 공과 같다. 그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가 된다. 표면 면적은 약 5억 천만 평방킬로미터, 그 중 바다가 육지보다 약 2.4배 많다. 육지의 넓이는 약 1억 5천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 8,848미터인 에베레스트 산이며,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은 깊이 약 11,000미터인 마리아나 해구이다.

그런데 이 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아홉 개의 행성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태양에서 가장 먼 행성인 명왕성은 태양에서 약 60억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러면 태양계의 직경은 약 120억 킬로미터이며 빛의 속도로 거의 12시간이 걸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약 1,000억개의 이런 별들이 모여 은하계라는 것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은하계의 직경은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1광년은 빛이 1년간 날아가는 거리로 약 9조 4,500억 킬로미터이다. 은하계의 직경은 그것의 10만 배라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우주에 이런 유의 은하계가 약 1,000억개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우주의 광대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누가 지구 표면의 거대한 바다들의 물의 부피를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지구의 흙을 되에 담아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저 높은 산들과 저 작은 산들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저 광대한 하늘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겠으며, 저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겠는가? 단지 상상해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지구, 이런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13-14절]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하나님께서는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우주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를 잘 나타낸다. 지혜가 있어서 창조자 하나님을 지도하고 가르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의와 지식을 가르친 자도 없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요 지극히 공의로우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욥기 12:13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다”고 말했고, 시편 147:5는,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고백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도덕적인 하나님이시다.

[15-17절]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세상에는 악인들이 권세가 있어 보이고 이스라엘 나라를 핍박하고 학대하는 이방 나라들, 곧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의 세력이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 나라들이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고,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며 이방 나라들의 권세들도 없는 것같이 여기신다. 그는 온 세상을 임의로 다스리신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다니엘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강조하여 말한다. 다니엘 4:17은,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고 말한다. 또 다니엘 4:35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 과정이다. 다니엘 2:44는, 로마 제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을 보인다.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또 하나님 나라의 임함과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을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씨와 같이 세상에 뿌려진다고 말씀하셨다(마 13장). 그것이 신약교회이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 중에 택한 자들을 다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것이다. 그는 그 뜻을 다 이루신다. 주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고(요 6:40), 또 그의 음성을 듣는 그의 양들이 있고 그가 그들에게 영생을 줄 것이며 그들이 영원히 멸망치 않으며 그들을 그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10:28).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들, 곧 하나님의 양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는 것이 구원이며, 구원받은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크시고 완전하시다. 이 광활한 세상과 끝없는 우주를 다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은 지극히 크셔서 피조물인 우리 인생은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완전하심을 깨닫고 그 앞에 굴복하며 그를 인정하고 그를 높이고 그에게 참된 찬송과 경배를 올리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나라들을 주관하신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그들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며 하나님께서 뜻 가운데 세우신 나라들이다. 세상의 모든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고, 실상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다. 전지전능하신 크신 하나님께서는 홀로, 주권적으로 온 세상과 모든 나라들을 통치하신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나라들을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의 뜻을 이루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 중에서 일부를 구원과 영생에 이르도록 택하셨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는 택자들의 구원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표를 다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원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이 광대한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셨고 홀로 통치하시며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구원하셔서 교회와 자기 나라를 세우심을 알고 오직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18-31절, 참 하나님을 섬기라

[18-20절]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선지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 없는 우상을 비교한다. 우상은 보통 놋쇠로 부어만들고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로 장식한다. 놋쇠와 금은을 살 여유가 없는 가난한 자들은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공교한 장인으로 조각하게 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현대인도 여전히 조상신을 숭배하여 제사나 차례를 드리며 심지어 부적을 소지하기도 한다. 죽은 선조의 영혼이 자손에게 복과 화를 내리겠는가? 부적 종이조각이 특별한 힘을 발휘하겠는가? 또 현대인은 인간을 숭배하고 자신을 높인다. 그들은 과학을 높이고 의지하고 돈과 몸의 쾌락를 최고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람에게 참 평안과 행복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 신이 될 수 있는가?

놋쇠, 금은, 돌, 나무 등으로 만들어지는 우상이 생명이 없고 능력이 없으며 그런 것을 섬기는 행위가 헛되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또 인간과 돈과 몸의 쾌락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것이 허무하다는 것도 너무 자명한 일이다. 원시적 우상들이나 현대적 우상들이나 그 어떤 우상도, 또 인간이 절대적 가치를 두려 하는 그 어떤 피조물도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 살아계신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어떻게 감히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21-24절]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쿠그)[둥근 천장]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遮日)[휘장]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신 자이시다. 그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이시다. 그는 하늘에 계신 자이시다. 땅의 거민들은 그 앞에 메뚜기 같아 보인다. 그는 하늘을 휘장같이 펴셨고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다.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자이시다. 창조자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10: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또 하나님께서는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귀인들을 폐하시고 세상의 재판관들을 헛되게 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25-26절]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그는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신다. 그의 존재 자체가 초월적이며 그의 도덕성이 이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신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홀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 수효대로 이끌어 내셨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셨다. 그의 능력이 크고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이 창조되었다. 이 세상의 어느 신, 어느 우상이 이런 능력을 조금이라도 가졌는가?

[27절]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낙심된 마음 상태를 지적하며 그들을 위로하려 한다. ‘내 사정’과 ‘내 원통한 것’은 그들이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의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을 말한다. 그들은 죄 때문에 당연히 고난을 받지만,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갈망하며 그들을 학대하는 이방 나라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호소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깊으신 뜻 가운데 자기의 백성을 고난 중에 버려두셨고 그들을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그는 때때로 그러하셨다. 시편 13:1-2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말했었다.

[28-29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가 자기 백성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지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피곤치 않으시고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신 자이심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고 행할 힘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한하신 명철과 능력으로 행하시며 피곤하고 무능한 사람에게 힘을 주신다.

[30-31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람은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는 소년이나 청년이라도 때때로 피곤하고 지친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피곤하고 낙망할 수 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실수하거나 낙심할 때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연약하지만, 창조자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그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려가고 곤비치 않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가 헛됨을 알자. 놋쇠나 나무로 만들고 금은을 입힌 우상은 아무 생명이 없다. 제사와 차례도 헛되고 가증한 우상숭배임을 알자. 또 돈 사랑과 사람 자랑과 몸의 쾌락 사랑도 헛된 것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사람 자랑, 돈 사랑, 몸의 즐거움 추구를 버리자. 그것들은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지 못하고 참 평안과 행복도 주지 못한다.

둘째로, 우리는 참 하나님만 섬기자. 태초부터 계셔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그는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시며, 피곤치 않으시는 자이시다. 그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는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많은 기적들과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과 3일 만에 자기의 무덤을 비우신 그의 초자연적 부활로 자신을 증거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며 소망하고 섬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새 힘을 얻자.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으로 피곤해졌고 낙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새 힘을 얻고 하나님 안에서 살자.




41장: 너를 도우리라

1-16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

[1-4절]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심판대 앞에 함께 나아가자](KJV, NASB, NIV).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義)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모든 시대]를 명정하였느냐[불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동쪽의 파사에서 고레스 왕을 일으키셔서 의로운 심판의 도구가 되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사야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46: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파사 나라의 왕 고레스는 넓은 영토를 점령하고 열국을 굴복시킬 것이다. 그는 열방을 멸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이처럼 선지자 이사야는 150년 내지 200년 후에 나타날 인물과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예언하였던 것이다. 창세 때부터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모든 시대를 작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5-7절]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메질꾼은 모루(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위에 놓인 쇠를 치는 자를 가리킨다. 열국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땅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숭배를 뉘우치고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더욱더 우상숭배에 빠지고 서로 격려하며 우상 만드는 일을 힘쓸 것이다. 그러나 우상숭배는 결국 다 멸망할 것이며 헛될 것이다.

[8-10절]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우대하신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었다(출 20: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징벌과 고난 중에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하시고 도우시고 붙드실 것이다. 즉 그는 그들을 마침내 구원시키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14절]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톨라아스)[벌레](worm)(BDB, KJV, NASB)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에 열국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향해 노하며 학대하던 열방은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되며 멸망할 것이다. 이방 나라들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될 것이다. 열방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벌레 같은 야곱, 고난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오른손을 붙드시고 그들을 도우실 것이다.

[15-16절]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셔서 이방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로 말미암은 구원 사역을 가리켰다고 본다. 다니엘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꿈을 해석하면서,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라고 말했다(단 2:34-35). 그 꿈은 로마 시대에 메시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고 그 나라가 모든 세상 나라들을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을 예언한 것이었다. 본문의 예언도 같은 내용이라고 본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복음 전파와 교회 건립의 일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예언된 내용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작정자, 창조자, 섭리자이시다. 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우리는 이 주권적 작정자, 창조자,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벌레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아브라함과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죄 많고 연약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제 붙드시고 도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고 시작하신 일을 다 이루실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실 것이다(요 6:39-40).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벌레 같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셔서 열국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세계복음화의 일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구원 사역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일을 시작하셨고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신다. 그것이 신약교회이다. 

17-29절, 내가 자산(赭山)에 강을 열며

[17-20절]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자산(赭山)[벌거숭이 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물을 구하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 물이 없어 갈증으로 혀가 마르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목말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것이다. 하늘의 비를 주관하시고 샘의 근원을 주관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비를 충분히 내려주시며 골짜기나 광야와 마른 땅에 샘을 터뜨리시면, 벌거숭이산에 강이 생기며 골짜기나 광야와 마른 땅에 샘이 나고 못이 생기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나 사막에도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 또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 등 건물이나 가구의 자재가 되는 나무들, 꽃과 향기를 주는 나무들, 기름을 주는 나무들, 또 그늘과 쉼을 주는 나무들을 자라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적으로 이미 성취되고 있다고 보인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수에 비유한다.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죄로 인해 황폐해지고 메말라진 심령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마음 속에서 샘솟아 흐르는 생수를 마시게 되었다. 그것은 성령님을 가리켰다. 또 죄로 인해 병들었던 무익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쓰실 만한 인물이 되었다(엡 2:10; 딛 2:14).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무들이다. 지금 이루어진 것은 장차 천국에서 충만하고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보고 알고 헤아리고 깨달을 것이다.

[21-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後來事)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神)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야곱의 왕’으로 표현하신다.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함을 보이는 명칭이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기념으로 주신 복된 이름이지만, 야곱이라는 이름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챘으나 그 일 때문에 하란에서 2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자의 이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며 훈련시키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아니 현재까지도 물들어 있는 우상숭배에 대해 그것이 허무함을 증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상들에게 그들이 신(神)인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두 가지 점을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는, 만일 우상들이 신이라면 장래 일들에 대해 예언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는, 만일 그들이 신이라면 사람들에게 복과 화를 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정말 신이라면, 그들은 장차 당할 일들을 진술하고 이후에 될 일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전의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역사적 지식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지만, 미래의 일들은 피조물로서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우상은 신이 아니므로 미래의 일들을 결코 예언할 수 없다. 또 그들이 정말 신이라면,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릴 수 있을 것이지만, 우상은 신이 아니므로 복도 화도 내릴 수 없다. 과연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바람이며 그 모든 행사는 공허하다.

[25-26절]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아프)[참으로] 고하는 자도 없고 [참으로](아프) 보이는 자도 없고 [참으로](아프)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회삼물’(灰三物)은 석회, 잔모래, 황토를 섞은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자는 파사 왕 고레스이다. 그는 메데와 파사의 연합군을 통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다. 에스라 1:2-3,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27-29절] 내가 비로소(리숀)[처음으로](BDB, KJV, NIV)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는 이 기적 같은 일에 대해 우상들 중에 누구도 말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다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들은 허무하며 그들의 모든 행사가 허무하며, 사람들이 부어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일 뿐이다. 우상들 중에 미래를 예언하거나 복과 화를 내릴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상은 헛되다. 우상들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지 못하고, 우상들은 인생에게 복과 화를 주지 못한다. 우상들은 생명이 없고 능력이 없다. 그것들은 헛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나 차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죽은 조상은 우리가 섬길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방 종교들의 헛됨도 알고, 금은보석의 헛됨도 알자. 그것들은 우리에게 환난에서의 구원과 영생을 주지 못한다.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의 재림을 소망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자. 이것이 참된 경건이며 경건한 삶에는 이생과 내생에 약속도 있다(딤전 4:8).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벌거숭이산에 강을, 골짜기에 샘을, 메마른 광야에 못을 주실 것이며, 사막에 각종 나무들을 자라게 하실 것이다. 그는 만유를 회복시키실 것이다(행 3:21).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새 세계를 소망하자.

42장: 주의 종

1-13절, 여호와의 종

[1-4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법]을 앙망하리라.

본문은 마태복음 12:17-2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인용되었다. 본문의 ‘여호와의 종’은 분명히 메시아를 가리켰다. 그는 특히 종으로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과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고(마 20:28), 하나님의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7-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영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받으셨다. 요한복음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9에서,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증거하였다.

본문은 메시아의 사역의 성격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선, 그는 공의를 베풀며 공의를 세울 것이다. 메시아의 사역은 공의의 사역이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실 것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또 메시아께서는 조용하게 사역하실 것이다. 그는 떠들썩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고 조용하게 일하실 것이다. 기독교는 시끄럽고 떠들썩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과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조용하지만 사람의 인격과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메시아께서는 또 사랑과 긍휼로 일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은 세상의 죄악된 풍조에 잘 흔들리고 꺾기고 상하고 그 기쁨과 행복은 꺼져간다. 그러나 메시아께서는 그런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악됨과 곤고함과 불행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며 구원의 은혜를 간구할 때 메시아께서는 그를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또 메시아의 사역은 세계적일 것이다. 섬들은 그 교훈 혹은 그 법을 앙망할 것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리, 곧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법칙이 되는 성경 진리가 온 세상, 모든 나라들에 전파될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계복음화를 암시한다. 주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고(막 16:15),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5-7절]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義)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間)에서 나오게 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들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의(義)로 부르셨고 그의 손을 잡아 그를 보호하시며 그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이 되게 하실 것이다. 메시아께서는 의를 이루시고 의를 주시는 자이실 것이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것은 새 언약의 내용이다. 누가복음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죄와 불행 가운데 살던 이방인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그 의를 받아 구원과 영생의 복을 누릴 것이다. 메시아께서는 소경의 눈을 밝히시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시며 흑암에 처한 자들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영적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죄와 어두움의 종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가리킨 예언이다.

[8-9절]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여호와’께서는 영원자존하시다. 여호와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일을 섭리하신다. 세상에는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모든 이방신들과 우상들은 다 거짓되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선포하신다. 그것은 메시아의 구원사역, 곧 신약시대의 복음운동과 세계복음화의 일을 가리킨다.

[10-13절]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은 온 세상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게달 사람’은 광야 유목민인 이스마엘 자손들을 가리키며 셀라의 거민들은 산 위, 바위 위에 거주하는 에서의 자손들을 가리킨다. 온 세상에 메시아의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그들이 힘을 다해 하나님께 찬송하고 노래하며 영광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용사같이, 전사같이 온 세상에 나가셔서 악한 세력들을 치시고 그가 친히 택하신 자들을 다 찾으실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일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본문에 예언된 ‘여호와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를 영접하는 자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 거하자.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송하자.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찬송하자.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14-25절, 귀머거리들아, 소경들아

[14절] 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고요하게, 잠잠하게 참으셨다는 것은 작게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가리키겠지만, 크게는 아담의 창조 이후 인류 4,000년의 긴 세월을 가리킨다. 평소에 조용하던 여인도 해산할 때는 고통 중에 부르짖듯이, 하나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시며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이실 것이라고 표현하신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파하시고 메시아의 왕국을 선포하시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인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가슴 벅찬 감격적인 일이며 시간이다.

[15절] 내가 큰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큰산과 작은 산’은 이스라엘 나라를 핍박하던 교만한 세력들, 즉 크고 작은 이방 나라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초목을 마르게 하시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시며 못들을 마르게 하신다는 말씀은 그가 이방 나라들의 거민들을 멸하시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과 그 종교들을 멸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 같다.

[16-17절]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소경’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은 소경과 같아서 하나님도 구원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거나 상상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끄시며 그들을 흑암에서 광명으로, 굽은 데서 곧은 데로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고 신약성도인 우리들도, 전에는 조각한 우상이나 부어만든 우상을 의지했었다. 그 헛된 것을 신이라고 섬겼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결과는 불행과 수치와 허무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우상의 헛됨을 알아야 하고, 모든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8-10,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것이 구원의 간증이다.

[18-20절]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메슐람)[화목한 자, 화평의 언약을 맺은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소경 같았고 귀머거리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 종’ ‘나의 사자’ ‘나의 화목한 자’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범죄함으로 영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많은 말씀들을 받았고 하나님의 하신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많은 말씀들과 기적들을 저버리고 지금 영적 소경과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21-22절]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그 백성을) 기뻐하셨고]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쉽게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의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로 주신 의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그 교훈과 율법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비천해졌다. 그들은 도적을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혔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를 통해 당할 포로생활과 학대와 고통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23-25절]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비참한 현실이 왜 왔는지, 누가 이것을 주었는지, 그들의 미래는 어떠할지에 대해 듣고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비참함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며 하나님의 명하신 길로 행하지 않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징벌이었다.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그들을 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소경과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이 보인다. 그들을 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을 회복시킬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구원 사역을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메시아의 강림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인류의 구원을 예언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은 온 세상에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에서 이제 시작될 것이다. 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선포되었고 시작되었다.

둘째로, 사람은 심히 무지하고 무감각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귀머거리들이며 소경들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죄악됨,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증거한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였다. 사도 베드로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복된 신앙고백을 하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셨다(마 16:17).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전도의 말을 듣게 하신 이는 주님이셨다(행 16:14).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비추어 주셨다(고후 4:6).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자. 사람의 실패는 하나님의 길로 행치 않은 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우리는 이제 죄를 멀리하고 거룩과 의를 실천해야 한다.

43장: 하나님의 백성

1-7절, 두려워 말라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복 주실 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너는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현재의 고난 즉 바벨론 포로생활의 고난과, 미래의 회복의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救贖)하셨기 때문이다. ‘구속(救贖)’은 값을 주고 사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핏값으로 사셨다.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요한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명하여 부르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로마서 1:6-7,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또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히 주께서 핏값으로 사신 백성은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속함을 얻었고 부르심을 받았고 주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고난의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인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또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물이나 불 가운데서도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약속이다. 누가 물 가운데서 빠지지 않고 행할 수 있으며, 누가 불 가운데서 타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통과하고 요단강을 건넜듯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서 타지 않았듯이, 보호함을 입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신다면, 우리는 평안과 안정을 얻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3-4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께서는, 파사 왕 고레스가 역사적으로 이방 나라들, 즉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다 점령하고 그 대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신 까닭은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신 7:7-8). 우리의 구원의 원인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이었다(롬 5:8; 딤후 1: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여 여기신다는 사실은 대제사장 아론의 에봇 견대에 단 호마노 보석 두 개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게 하신 것과 판결흉패에 물린 열두 보석에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게 하신 것에서 예표되었다(출 28:6-12, 15-21). 또 그것은,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대로, 주께서 하신 천국 비유들 중,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보화 비유, 진주 비유, 그물 비유 등에서 밝히 증거되었다. 주께서는 주의 택한 백성을 좋은 씨, 밭에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 좋은 물고기 등으로 비유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이다.

[5-6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현재의 고난 때문에나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동서사방에서 불러모으실 것이다. 동방에서도, 서방에서도, 또 북방에서도, 남방에서도, 아니 원방, 땅끝에서도 택한 백성들이 모여올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온 땅에 뿔뿔이 흩어졌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육신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암시한다.

[7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사람 창조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범죄하며 악하게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그에게 욕을 돌리는 자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고 흠과 점이 없는 자들이 될 때 우리는 그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는 택자들을 흠과 점이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가지신 이 구원의 뜻과 목표는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가 처한 수고와 고난의 현실만 바라보거나 우리들 자신의 부족과 연약만 생각하거나 마귀와 악령들과 세상의 많은 시험들만 생각하거나 미래의 불확실함만 생각하고 우리의 세상의 삶을 두려워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만 믿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救贖)하셨고 또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으셨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자.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다. 우리는 존귀하시고 영화로우신 구주 하나님을 항상 찬송하고 감사하며 그가 우리의 삶의 규칙으로 주신 계명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힘써 지켜 흠과 점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며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선한 일에 온전히 드려야 한다.

8-13절,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심

[8-9절]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본문은 이방 나라들의 무지함을 증거한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은 이방 나라 백성을 가리켰다고 본다. 이방 나라들이 모이고 그 민족들이 회집해도 그들 중에 ‘이 일’ 곧 앞에서 증거한 대로 장차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건져낼 일을 고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고 이전 일들 즉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이루신 일들을 보일 자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증인을 세워 우상들을 섬기는 자신들의 사상과 생활의 옳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자가 없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방 나라들은 다 무지하고 그들의 우상숭배적 사상과 삶은 다 헛되다.

[10-1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증거할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방 나라들은 무지하고 그들의 우상숭배는 헛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알며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하고 증거할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첫째로, 그는 여호와이시다.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아노키 아노키 예호와). ‘나’(아노키)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됨으로 강조되었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구원하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 즉 영원자존자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물질 세계와 영들의 세계를 포함한 존재의 세계를 초월하신 자, 시간의 시작 이전부터 존재하시는 자, 영원히 스스로 계신 자, 곧 영원자이셔야 하며, 과연 그러하시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물질 세계는 비이성적 물질로부터 나올 수 없다. 오묘막측한 우주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합리적이다. 온 세상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10절,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유일하신 구주이시다.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나라의 포로 상태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자, 곧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며 그 외에는 아무도 없다. 호세아 13:4,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넷째로, 여호와께서는 주권적으로 일하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천지창조의 일에나, 그가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는 주권적으로 일하는 하나님이시다. 13절,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의 일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자. 그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주권적 작정자, 창조자, 섭리자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는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 권세로부터 구원하셨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열왕기상 8:22-23,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이사야 37:15-16, 20,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으로 주만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예레미야 10:10-11,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우리는 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세상의 구주로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기며 따르자.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영생의 길이며 평안의 길이다.

둘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들과 종들이 되자. 이방 나라들은 그를 모르고 헛된 우상숭배에 빠져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를 증거할 자들이다. 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를 체험하고 그를 알고 믿고 섬기며 만방에 그를 증거하는 증인들과 종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구원받은 신약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그를 섬기며 그를 만방에 증거해야 한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마가복음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자.

14-21절, 새 일을 행하심

[14절] 너희의 구속자(救贖者)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宴樂)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희의 구속자(救贖者)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라고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즉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 분만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신 구주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며 죄와 악이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백성을 위한 구원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위해 누구를 바벨론에 보내셨다는 것인가? 메대 파사의 군대를 보내셨다는 뜻이다. 모든 갈대아 사람들은 이전에 배들 속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며 즐겼었으나, 그들이 멸망할 때 그들은 도망자들처럼 배들을 타고 도망할 것이다.

[15절]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자신이 ‘여호와’이시며 ‘그들의 거룩한 자’이심을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여호와 곧 영원자존자이시다. 또 그는 모든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며 죄와 악이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자신을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라고 부르신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야곱을 택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시작시킨 자이기도 하시다. 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서 그들을 친히 다스리시고 그들의 원수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신다. 이스라엘 나라의 원수는 바벨론 나라이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의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과 싸운다. 사탄과 악령들은 성도들을 범죄케 하고 낙심케 하며 참된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쇠약케 하고 흩어지게도 한다.

[16-18절]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심지]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등불’이라는 원어(피쉬타)는 ‘심지’(BDB, NASB, NIV) 혹은 ‘아마포 심지’라는 뜻이다(KB).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 왕 바로의 병거들을 멸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14:28은 그때의 상황을 증거하기를,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할 새 일이 너무 크기 때문에 출애굽 때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던 크신 구원의 일 조차도 잊어버리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19-20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승냥이]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란 14절에서 말씀한 대로 바벨론 나라를 패망시키는 일이 첫째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는 일이 둘째이다.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는 것, 곧 그들의 포로귀환을 암시한다. 또 광야에 물들이 흐르게 하고 사막에 강들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의 회복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와 징벌로 인해 심령이 메말라지고 목말라졌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수를 주시고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고 진리의 지식과 깨달음, 영적인 위로와 만족을 주실 것이다. 그는 광야에 물들과 사막에 강들을 내어 그 백성이 마시게 하시며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실 것이다. 들짐승은 이방인들을 가리킬지도 모르며, 그렇다면 이 구절은 이방인의 구원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세계에 구원이 선포되었고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충만히 들어왔다.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목적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해이다. 에베소서 1:6, 12, 14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에 대해]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심에 대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중생 곧 성령으로 인치심에 대해]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알자.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영원자존자’라는 뜻이다. 그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온 우주와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는 모든 피조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신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왕이시다. 그는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며(요 17:3) 행복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일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일’은 바벨론 나라를 패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영육의 구원을 암시한다. 또 들짐승도 하나님을 공경할 것이라는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을 암시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새 일을 행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놓여났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모든 사람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세계적 구원의 일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을 깨닫고 그 창조와 구원의 목적대로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심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고 섬기며 그의 율법과 계명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예비하실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 세상의 허무한 것에 많은 가치를 두고 살 때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만 믿고 소망하며 그의 계명대로, 즉 성경 교훈대로 의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자.

22-28절,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하심

[22-23절]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괴로워]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앞절에 증거한 하나님의 사람 창조의 목적과 동떨어지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셨던 많은 은혜와 구원을 저버렸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부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고 기도 드리는 행위를 가리킨다(창 4:26).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 예배를 드렸는지는 몰라도 진심의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괴로워하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부담으로 여겼다. 그들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있다. 시편 19:10, “[하나님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찬송가 82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찬송가 48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23-24절] . . .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헌금은 믿음과 자원함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하지 강요해서 드리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돈을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 그들의 불경건과 부도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기대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심히 배반하는 일이었고 배은망덕한 일이었다.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근거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신다. ‘도말한다’는 원어(마카)는 ‘지운다, 씻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깨끗이 지우시고 깨끗이 씻으시는 것은 그들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근거가 있다. 그들이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거나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에 근거한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것은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바이었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異像)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이 예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졌다.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 하나님께서 죄를 씻으심은 다시 기억함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씻으심이다. 죄는 죄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처분이신지! 미가 7:19도,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 말하였다.

[26-28절]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하였노라](원문, KJV).

실상,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의를 나타낼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반대로 심히 죄악되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신다. ‘네 시조’는 야곱을 가리킬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였다. ‘너의 교사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배반하고 범죄하였고 백성은 그들을 따랐다. 지도자들의 사상과 인격과 삶은 일반 백성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셨다. 그는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당케 하셨고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은혜와 그 믿음 안에 거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2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으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즉 그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사도행전 13:43,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곧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들](전통사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진심으로 섬기자. 우리는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지 말고 진심으로 섬기자. 우리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고 버리고 떠나야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선포하였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는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마태복음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러면 우리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44장: 유일하신 하나님

1-8절, 내가 복을 주리라

[1-2절] [그러나](웨)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정직한 자]아, 두려워 말라.

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 ‘나의 택한 자’ ‘여수룬’ 즉 정직한 자라고 부르시고, 또 자신을 “너를 지었고 너를 모태에서 만들었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라고 표현하신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드셨고 택하셨고 이제 도와주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나라를 두려워 말라는 뜻이다.

[3-5절]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본절은 하나님께서 앞절에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징벌로 인해 영육으로 황폐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한 회복을 내려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주시고 그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성령께서는 죄인들을 중생시키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시냇가의 버들이 솟아나듯이 심령과 인격의 변화를 얻게 될 것이다. 또 ‘혹은’(3번)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영접하고 섬김으로 그에게 속하는 자가 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6-7절]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救贖者)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의 구속자,’ ‘만군의 여호와’라고 표현하셨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신 영원자존자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으셨고 택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지키시고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또,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 다른 신은 없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옛날 백성’(암 올람)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세우신 후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많은 말씀들을 전하셨다. 그는 때때로 미래의 일들까지도 예언케 하셨다. 그것은 참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방신들에게 그들이 신(神)이라면 그 증거를 제시해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 있는 이방신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8절]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벨론 나라를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는 뜻이다. 바벨론 나라는 오늘날 사탄과 악령의 권세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졌고 그들이 바로 그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특히 모세 시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많이 들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불 가운데서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기적들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심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신 4:32-35).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많이 받은 민족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증인, 즉 하나님을 만방에 전파할 수 있는 증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다른 구주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르신다면 다른 신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사람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나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시다. 그가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다른 신은 없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그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한 분뿐이시다. 그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이시다. 그는 십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3). 성경은 이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밝히 증거한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과 행복이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셨고 택하셨고 다스리시며 그의 영과 그의 복을 주셨다. 그는 오늘날도 우리의 구원과 영생과 행복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과 영생과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와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9-20절, 우상숭배는 헛됨

[9-11절]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만든 자가 누구뇨?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그것의 증인들’은 우상숭배자들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 우상을 섬기는 자가 헛됨을 증거한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우상숭배자들은 우상을 기뻐하지만 그것은 무익한 것이다. 그들의 증인들 곧 우상숭배자들은 우상의 무익함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또 그들은 자신이 장차 수치를 당할 것도 알지 못한다. 우상은 ‘무익한 우상’이다. 신상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만든 장색은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이 우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들은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다. 본문은 ‘수치를 당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하였다.

[12-14절]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린다. ‘괄리다’는 말은 ‘불(火力)을 세게 하다’는 뜻이다. 그는 허기가 지고 기력이 다하도록 온갖 힘을 다하여 철을 가공한다. 목공은 나무를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자로 그어 아름답게 다듬고 조각하여 사람 모양의 상을 만든다. 그 재료는 백향목이나 디르사나무[삼나무나 너도밤나무]나 상수리나무(oak tree)[오크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등이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이런 나무를 선택하기도 하고 또는 나무를 심고 잘 자라게도 한다.

[15-17절]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火木)[땔감]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우상숭배의 허망함은 우상의 재료를 볼 때 확인된다. 우상을 만드는 데 쓰는 나무는 땔감으로 쓰는 나무와 동일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무를 가지고 우상을 만든다. 한편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데 쓰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따뜻한 화롯불을 위해 쓰인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그 나무를 가지고 우상을 만들고 그것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기도하며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18-20절]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우상은 ‘나무토막’ 또는 ‘거짓 것’이며 또 ‘가증한 물건’이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들은 눈이 가리워졌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며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어서 우상의 헛됨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깨달음이 있었다면, 한 부분으로 땔감을 삼고 떡과 고기도 구워 먹은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헛된 것을 먹고 마음의 미혹을 받아 그 영혼을 구하지 못하며 자기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의 헛됨을 알자. 우상은 헛되다. 그것은 헛것이며(9절) 무익한 것이다(9, 10절). 그것은 가증한 물건이다(19절). 그것은 거짓된 것, 곧 가짜 신이다(20절). 오늘날의 우상들과 우상숭배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지식, 과학, 돈과 물질, 육신의 쾌락 등이다. 특히 돈은 현대인의 대표적 우상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람에게 참된 행복을 줄 수 없고 또 참된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깨끗하게, 양심적이게, 부지런하게 일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 성경은 의롭게 번 적은 소득이 불의하게 번 많은 소득보다 더 복되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모든 우상들이 헛됨을 참으로 깨달아야 한다.

둘째로, 우상숭배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본문 9절과 11절은 우상을 만든 자와 우상을 섬긴 자들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드러난 죄를 지은 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그보다 더 큰 수치를 당할 것이며 영원한 멸망의 형벌, 곧 지옥 불못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계 21:8).

셋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자. 세상의 우상들은 다 헛되며 여호와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섬겨야 한다.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했다(출 20:3). 이사야 43:10-11은,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말했고, 이사야 44:6은,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자.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진리의 가치, 성경공부의 가치, 참된 교회의 가치를 알자.

21-28절, 사죄와 회복

[21절]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이 일’은 우상숭배의 헛됨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지으신 그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으며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지만, 여기에서는 특별한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바른 관계를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의 창조자시요 그들이 그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또 그는 그들이 결코 그의 잊어버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2절]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을 빽빽한 구름과 안개에 비교하셨다. 죄와 허물은 영적으로 그렇다. 그것은 심령을 어두움, 불안, 슬픔, 고통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그러나 죄의 도말 곧 죄사함은 구름과 안개가 사라짐같이 심령의 맑음과 밝음, 또 기쁨과 평안을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많은 죄와 허물을 도말하셨고 그들을 구속(救贖)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구속’(救贖)은 값을 주고 사셨다는 뜻이다. 값을 주고 산 종은 자유함을 얻는다.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는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얻는다. 하나님의 사죄와 구속은 역사적, 객관적인 일로 증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은 역사적으로, 객관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2천년 전에 그가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셨을 때 그 일을 다 이루셨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2). 그러므로 오늘날도 기독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3).

또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죄의 완전한 제거와 구속(救贖)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택자들의 죄를 대속케 하시고 그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요 기독교의 구원 원리이다. 죄사함은 우리가 돌아올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죗값은 이미 지불되었다(행 20: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요 1:29).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 역사적, 객관적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 죄인들의 개인적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자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는다. 죄는 순간적으로는 달콤한 유혹물이며, 돈이나 육신적 쾌락도 인생의 행복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죄는 하나님과 끊어지고 멀어지게 하고 우리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따라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행복의 길이며 그것이 구원과 영생의 길이다.

[23절]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救贖)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온 세상과 하나님의 하신 놀라운 구원의 일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노래할 것이다. 그것이 신약교회 교인들의 찬송의 이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해야 한다.

[24절]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고 그들을 구속(救贖)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그는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자이시다. 이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다 거짓된 것들, 다 헛된 것들이다.

[25절]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이방 종교들은 다 거짓말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양 말하기 때문이다. 점치는 자들도 다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거짓된 신비주의는 다 거짓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이런 거짓된 종교인들을 다 폐하시며 그들을 다 미치게 하시고 다 어리석게 하실 것이다.

[26-28절]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신다. 황폐된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것이며 유다 성읍들이 다시 복구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도 다시 기초가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친히 이루실 것이다. 그는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고레스라는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신다. 그는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부르며 그가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는 바를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파사 왕 고레스 때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 나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보이는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다. 이 예언은 에스라서가 증거하는 대로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신약교회와 미래의 천국을 예표하는 뜻도 담고 있다고 보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지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었다. 신약교회의 교인된 우리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특별한 소유와 그의 사랑하는 종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21절), 그들의 모든 죄를 도말하셨고 그들을 구속하셨다(22-23절). 또 그는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의 회복을 예언하셨다(26-28절).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자들의 죄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하셨고 예수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셋째로, 아직도 회개치 않은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22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는 택한 모든 자들 곧 그의 모든 양들을 찾으신다. 그들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그를 섬기며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양들이라면, 우리는 정말 그를 믿고 사랑하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


45장: 유일하신 구원자

1-13절, 고레스를 사용하심

[1a절]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장차 파사 왕이 될 고레스를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라고 부르신다. ‘기름 받다, 기름 부음을 받다’는 표현은 ‘택하다, 구별하다, 성령으로 함께하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파사 왕이 될 고레스를 택하시고 구별하시고 성령으로 함께하시고 그를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약 200년 전에 예언하신 것이다.

[1b-3절] . . .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고레스 앞에 항복하게 하시며 열국의 숨기운 보화와 재물을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를 도와 그로 강력한 군주가 되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지명하여 부르신 줄을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4절]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칭호를 준다’는 원어(카나)는 ‘영예의 칭호를 준다’는 뜻을 가진다(BDB).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를 들어 쓰시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그를 들어 쓰시기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항상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있다.

[5-7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너를 무장시킬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자기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증거하신다. 본문의 ‘너’는 고레스를 가리킨다.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무장시키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예언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참 하나님이시며 자기 외에는 신(神)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신다. 그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이사야 44장, 45장, 46장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그는 또 동방에서나 서방에서나 나밖에 다른 이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동양인이든지 서양인이든지 다 섬겨야 할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여호와이시며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을 만드셨고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 좋은 일들이나 나쁜 일들이나 다 주관하시고 관리하시고 처리하시고 다스리신다. 장차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과 같은 일을 예언하고 이루실 이는 이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시라는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세계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의 해답과 해결책은 오직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온 세상을 홀로 만드셨고 홀로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그에게 달려 있다.

[8절]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떨어지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궁창이 의를 비같이 내리고 땅이 구원과 의를 움돋게 하라고 표현하신다. 이 말씀은 그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사역이 의의 사역일 것을 보인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택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대속 사역이요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사역이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로마서 10:4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고 말했고, 고린도전서 1:30은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말했다. 그 의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롬 3:24). 그것이 구원이다.

[9-10절]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劬勞)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질그릇 조각 같은 자’는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이나 모두에게 적용된다. 사람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다투려 해서는 안 된다. 피조물이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그는 마치 자기를 낳으신 부모님을 부정하는 자식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11-13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親手)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萬象)[만물]을 명하였노라.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만들고 자기의 손으로 하늘을 펴고 만물을 명한 자이시며 특히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도 자신이 이스라엘을 지은 자임을 증거하셨다(사 43:7, 21; 44:21). 그는 또, ‘장래 일’ 즉 ‘내 아들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일과 ‘내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해’ 물으라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그를 공의로운 방법으로 일으키신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것은 그가 바벨론 나라의 죄악에 대한 징벌을 위해 고레스를 일으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중건케 하실 것이며 사로잡힌 하나님의 백성을 값없이 자유케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유일하신 섭리자이시다(1-13절)(사 44:6; 45:18, 21, 22; 46:9-11). 그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의 내용이며(출 20:3),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첫 번째 지식이다(신 6:4; 잠 1:7). 그것은 곧 영생의 지식이다(요 17:3).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특히 자기 백성을 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해 파사 왕 고레스를 불러 사용하실 것이다(4절).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투지 말자. 창조자와 다투는 사람은 마치 자기 부모와 다투는 자녀같이 화가 있을 것이다(9절).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엎드리며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에 순종하자.

14-25절,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구주이심

[14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애굽의 수고한 것(예기아)[생산물들](BDB, NASB, NIV)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구스와, 신장이 큰 스바 사람들의 무역한 것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애굽의 생산물들과 구스와 스바의 무역한 것들이 다 이스라엘 나라에게 속할 것이다. 그들이 사슬에 매인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굴복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복음화를 암시하는 것 같다.

[15절]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께서는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비상한 때에만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는 영이시며, 우상으로 형상화되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살아계시고 참되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6-17절]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헛된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참 하나님이시요, 모든 우상들은 헛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은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는 열방에 포로 되지 않고 다시는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되지 않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영원한 속죄이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異像)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히브리서 9:12,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8-19절]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여호와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시내산에서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듣는 데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19:17-19,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또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은 다 의로운 법들이며 정직한 내용들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은 헛된 우상숭배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자기를 경외하며 전심으로 찾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신다. 시편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0-21절]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무로 깎은 우상을 가지고 다니는 자들,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다. 그 우상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하신 여호와 참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는 이전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회복의 일을 선지자들을 통해 보이셨다.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 있는 자는 살아계신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다. 이 세상에는 그 하나님 외에 참 신이 없고 그 하나님 외에 참 구원자가 없다.

[22-25절]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땅끝의 모든 백성, 그를 앙망하며 의지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온 세계의 복음화를 암시한다. 모든 무릎이 하나님께 꿇을 것이며 모든 혀가 하나님 앞에 맹세할 것이라는 표현도 그러하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교회에서 성취되었다. 빌립보서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다. 사람에게는 의가 없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다(사 64:6). 우리에게는 율법을 행할 능력도 없다(롬 7:18, 24). 그러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성령께서는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는 힘이 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다른 구주가 없음을 알자. 18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 . .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절,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우상숭배는 헛되다.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무지한 자이다(20절). 하나님을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24절). 우리는 참 하나님만 알고 그를 섬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을 얻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을 감사하자. 17절, “이스라엘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라.” 25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자랑하리라.” 이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이다. 주 예수께서는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이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앙망하며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 22절,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 굴복하며 그에게 나아올 것이다.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의와 힘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앙망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만 거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의 힘과 기쁨과 위로가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

46장: 주권적 작정자, 섭리자

[1-2절]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갔느니라.

‘벨’은 바벨론의 으뜸신 곧 수호신으로 ‘므로닥’ 혹은 ‘말둑’이라고도 한다(BDB, NBD). ‘느보’는 벨의 아들이며 학문의 신이다(NBD). 바벨론의 신들은 엎드러졌고 구부러졌고 그 우상들이 짐승과 가축에 실려 나르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바벨론 종교는 멸망할 것이다. 또 바벨론 나라도, 그 백성들도 멸망할 것이다.

[3-4절]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집 곧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무서운 징벌 중에서도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남은 모든 자들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심을 증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태에서 날 때부터 품으셨고 그들이 노년과 백발이 되기까지 그들을 안으시고 품으시고 고난의 현실로부터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시편 71:9는,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또 주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8:20) 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약속하셨다(요 10:28).

[5-7절]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神)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우상들을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다. 우상은 사람들이 준 금이나 은을 가지고 장인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사람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여 세워 둘 곳에 세워야 되고 그것은 세워 둔 대로 그대로 세워 있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그것에게 부르짖어도 응답할 수 없고 고난에서 구원할 수도 없다. 우상은 생명 없는 것, 곧 죽은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전능자이시다.

[8-9절] 너희 패역한 자들[범죄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힛오솨슈)[마음을 굳게 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옛적 일은 모세 시대와 그 후 역사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참 하나님 되심과 유일하심을 풍성하게 증거하셨다. 신명기 4:32-35,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왕상 18장).

[10-11절]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아이트 )[맹금]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모든 일을 작정하신 자이시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도 그의 작정된 일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셨고 더욱이 그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가 동방에서 부를 독수리는 메데-파사 연합군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에 주권적 작정자와 섭리자이시다.

[12-13절] 마음이 완악하여(압비르)[완고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13절 후반은, “내가 시온에 구원을, 이스라엘에게 나의 영광을 주리라”(NASB, NIV)고 고쳐 번역해야 할 것이다.19)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완고하여 계명을 순종치 않고 의에서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주기를 원하신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구원은 자신들의 선한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에 근거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방신들은 다 헛되다. 그것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것이다. 그것들은 활동하지 못하고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에게 구원이나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과 그 신들을 마지막 날에 다 멸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 된 큰 성 바벨론은 마침내 무너질 것이 예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소망하지 말고, 온 세상이 다 지나가는 것이며 (요일 2:17) 불사르기 위해 간수되어 있음을(벧후 3:7) 알아야 한다.

둘째로, 여호와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주권적 작정자, 섭리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9절).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신명기 6:4-5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예레미야 10:10,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주권적 작정자,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오직 그를 의지하고 사랑하고 섬기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품으시며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이다(3-4절).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와 구원과 영광을 주실 것이다(13절). 신약성도가 장차 받을 복도 영광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9). 사도 바울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하였다(롬 8:30). 장차 우리가 들어갈 새 세계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곳이다(계 21: 10-11).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며 찬송하자(엡 1:6).

47장: 바벨론의 멸망

[1-3절]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락카 와아눅가)[부드럽고 우아하다](BDB, KJV, NASB) 칭함을 받지 못할 것임이니라.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머리 수건]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수(報讐)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바벨론은 대제국의 보좌에서 땅바닥에 내려앉는 것같이 될 것이다. 그 나라는 마치 부드럽고 우아한 귀부인이 더 이상 그렇게 칭함 받지 못하는 것같이 될 것이다. 바벨론 나라는 맷돌을 취해 가루를 가는 천한 여종들같이 될 것이다. 단정한 여성이 머리 수건을 벗고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부끄러운 것을 보이며 강을 건너듯이, 바벨론 백성들은 타국의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사람은 존귀한 존재이지만, 범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고 천한 자리에 던지신다. 시편 119: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4절]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바벨론 나라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될 것이다. 바벨론 나라의 멸망에 대한 두려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한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자유로이 사용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가리키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죄악들로부터 거룩히 구별되시며 또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들로부터 거룩히 구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5-7절]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主母)(게비라)[여주인, 여왕]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붙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여주인, 여왕]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바벨론 백성들은 재판정 앞에 말없이 앉은 죄인처럼 잠잠히 앉아 있어야 하며 흑암 안으로, 즉 슬픔과 고통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나라는 다시 ‘열국의 여왕’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 나라는 더 이상 세계의 최대 강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바벨론 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그들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유다 나라를 멸망시켰으나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노인들에게 너무 무거운 멍에를 지웠다.

[8-11절] 그러므로 사치하고(아딘)[관능적 쾌락에 빠져 있고](BDB, KB, NASB)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邪術)과 많은 진언(嗔言)[주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곁길로 가게 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재난]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바벨론 나라 멸망의 두 번째 원인은 그들이 관능적 쾌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관능적 쾌락에 빠져 있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에 대한 뉘우침 없이 안이하게 지내고 있었다.

바벨론 나라 멸망의 세 번째 원인은 그들의 자고(自高)하고 자만함이었다. 그들은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라고 했다(8, 10절). 그들은 자신들의 종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벌하셔서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들은 그 재앙의 원인을 알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물리칠 힘도 없을 것이고 그 실상도 파악하지 못한 채 멸망을 당할 것이다.

[12-13절]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진언(嗔言)[주문]과 많은 사술(邪術)을 가지고 서서 시험하여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원수를 이길 수 있을는지. 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바벨론 나라 멸망의 네 번째 원인은 거짓된 신비주의와 우상숭배이었다. 이것이 실상 근본적 원인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많은 주문들과 사술(邪術)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막아낼 수 없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헛될 것이다. 그 우상들은 그 날에 사람들에게 아무런 구원을 주지 못할 것이다.

[14-15절] 보라, 그들은 초개[지푸라기]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너의 근로(勤勞)하던[수고하던] 것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이 각기 소향(所向)대로[각기 자기 길로] 유리하고[떠돌며] 너를 구원할 자 없으리라.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지푸라기같이 불탈 것이다. 그 불꽃의 세력에서 아무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불이 아니다. 그들이 수고한 것들이 그들 앞에서 다 불타버리고 헛되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은 다 각기 떠돌며 방황할 것이다. 바벨론 나라를 구원할 자는 사람들 가운데도, 우상들 가운데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바벨론 나라 멸망의 원인은 네 가지이었다.

첫째로, 바벨론 사람들은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인정이 없었다. 그들은 노인들에 대해 자비를 베풀 줄 몰랐다. 로마서 1:31은 죄악의 목록 중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를 말했다. 디모데후서 3:3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의 특징들 중에도 무정함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에베소서 4:32는,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한다.

둘째로, 바벨론 사람들은 육체적 쾌락, 관능적 향락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향하신 조물주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죄악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제도를 주셨고 부부관계의 거룩함을 명하셨다. 출애굽기 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성적 문란은 이 명령을 어기는 죄악이다. 우리는 육체적 향락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3-4,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셋째로, 바벨론 사람들은 자만하며 자고하였다. 그들은 자기가 최고이며 전부인 줄 알았다. 교만은 사람의 죄악들 중 가장 큰 죄악이다. 그것은 마귀의 죄악이다(딤전 3:6). 우리는 자만하거나 자고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중요한 생활 교훈의 하나는 겸손하라는 것이다(잠 16:18). 겸손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중요한 덕목이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넷째로, 바벨론 사람들은 헛된 우상을 섬기며 의지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부도덕의 원인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죄에 빠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멀리하는 것이며(잠 8:13),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잠 16:6). 우리는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대적 우상인 돈과 육체의 쾌락도 사랑치 말아야 한다.


48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11절, 내가 나를 위하여

[1-2절]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치[진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로부터 특권 있는 은혜를 받았었다. 그들은 거룩한 성의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함이 없이 또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거짓되었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형식적이었으며 외식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실한 예배와 진실한 신앙고백과 진실한 기도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3-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成事)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 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장래일을 미리 고하신 후에 홀연히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셨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들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완악하고 완고하며, 자기의 주관과 고집이 세었다. 물론 그들의 고집은 성경적 확신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목의 힘줄이 무쇠와 같이 단단하였다. 그들에게는 겸손함이 없었고 순종심도 없었다. 또 그들의 이마는 놋이었다. 그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까지 있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미리 보이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신(神)의 행한 바라고 말했을 것이다.

[6-8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새 일’은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일이었다. ‘궤휼하고 궤휼하다’는 원문(바고드 티브고드)은 ‘심히 배신적이게 행하다, 심히 거짓되다’는 뜻이다. ‘패역한 자’라는 원어(포쉐아)는 ‘범죄자, 반역자’라는 뜻이다. ‘모태에서부터 범죄자’라는 말은 원죄를 증거한다.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즉 나기 전부터, 죄성을 가진 죄인이며 하나님께 범죄하고 반역한 존재이다. 거짓, 외식, 완고, 고집, 교만, 뻔뻔스러움, 배신, 반역--이것이 모든 인생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생의 죄악된 모습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계획하셨고 오래 전에 미리 예고하셨고 또 그가 주권적으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의 구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도 그러하다.

[9-11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죄악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 때문에 근심하시고 노하셨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영예를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실 것이며 그들을 오래 참고 멸절치 않고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다. 이것이 온 세상 모든 족속에게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며 그 긍휼과 은혜에 근거한 그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며 자기 영광을 다른 자들, 즉 다른 우상들이나 피조물들에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 본성의 죄성을 알자. 이스라엘 백성은 진실함과 의로움이 없는 외식적 예배와 신앙고백과 기도를 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목의 힘줄이 무쇠이며 이마가 놋같이 뻔뻔스런 자들이었다. 그들은 배신적이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죄성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심히 부패되고 무능력한 존재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어 은혜를 구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하고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오래 참으시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었고(사 43:7)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계명대로 경건하고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며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12-22절, 하나님의 구원 계획

[12-13절]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나는 그니”라는 말은 “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는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와 심판자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손으로 땅의 기초를 정하셨고 그 손으로 하늘을 펴셨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내가 부르면”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 창세기 1장이 증거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한글개역성경 창세기 1장에는 ‘가라사대’라는 말이 10번, ‘이르시되’라는 말이 1번 나온다.

[14-16절]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느뇨?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주 하나님과 그의 영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KJV).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는 파사 왕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앞으로 행하실 일을 미리 예언하셨었다. 그는 그것을 미리 알리시고 선포하셨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다른 이가 없음을 증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가 예언하신 대로 그는 고레스를 부르시며 확실히 인도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주권적 행위이다. 또 그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형통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거나 저항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는 성령으로 선지자들을 감동하셔서 자기의 뜻을 선포하며 예언하게 하셨다. 이사야도 그 중 하나이었다.

[17-19절] 너희의 구속자(救贖者)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행할 바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더라면 평안이 강물같이 넘쳤을 것이며 그의 의가 그의 앞에서 빛났을 것이며 그의 자손들도 번창하며 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그런 복을 누리지 못하였다.

[20-21절]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救贖)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갈대아 사람들에게서 해방되며 구속(救贖)받는 일을 즐거운 소리로 외치며 땅끝까지 반포해야 한다. ‘사막’은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칠고 메마른 세상에서 심령의 생수를 주실 것이다.

[22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로마서 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악인에게는 수고로움만 있다. 죄인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이다(마 11:28). 그는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슬프고 불안하며, 양심적으로 죄책에 눌려 고통을 받으며, 육신적으로도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경험하며,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당한다. 악인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 몸의 건강, 또 환경적 평안이 없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 처음과 나중, 곧 창조자와 심판자이시다. 그 하나님 안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다. 하나님 안에 사람의 구원과 의와 평안이 있고 또 영원한 생명이 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깨닫자. 첫째, 하나님의 율법은 인생의 마땅한 길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또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둘째, 율법은 인생의 유익을 위한 길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생명과 평안과 행복을 누릴 것이나, 그것을 불순종하며 슬픔과 고난, 불행과 죽음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순종하자. 그것이 인생의 마땅한 길이며 또 평안과 형통과 영생의 길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음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전파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죄악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속(救贖)하셨다(17, 20절).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다 이루셨다. 오늘 우리도 그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기회 있는 대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구원을 전하자.

49장: 이스라엘의 회복

1-7절, 여호와의 종

[1-3절]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섬들’과 ‘원방 백성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유다 백성뿐 아니라, 이방 백성들을 향해 말한다. 본문의 ‘나’는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이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모이게 하는 자’이고(5절), ‘이방의 빛’이 되고(6절), ‘백성의 언약이 되는 자’(8절)이다. 그는 메시아를 가리키며 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께 해당된다.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메시아 예언으로 이어진다.

여호와께서는 메시아께서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그를 부르셨고 그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20-21,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또 여호와께서는 메시아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그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그로 잘 갈아진 화살을 만드셔서 그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메시아의 말씀 사역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 같아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또 여호와께서는 메시아를 ‘나의 종,’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신다.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종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충성되이 이루실 것이다.

[4절]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그러나] 정녕히 나의 신원(伸寃)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것도 메시아의 말씀을 전한 것이다. ‘신원’이라는 원어(미쉬파트)는 ‘판단, 판결, 송사’라는 뜻이다. 메시아의 사역은 헛된 수고처럼 보일 것이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의 3년 간 전도와 제자 훈련은 헛된 수고처럼 보였다. 3년 동안 가르쳤던 제자 중 하나는 배신하였고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도망쳤고, 무리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충동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메시아의 사역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판결이 있을 것이며 그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셨고 그를 높여서 온 세상과 열왕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배하게 하셨다.

[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0)

메시아께서는 사람들 보기에는 보잘것없으셔서 멸시와 핍박을 당하시지만 여호와 보시기에는 존귀한 자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고전 1:8)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이 되셨다. 사람들이 그를 모르고 핍박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과 위로가 되셨다. 이 메시아께서는 야곱 자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그에게로 모이게 하기 위해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으셨다.

[6절] 그가[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輕)한[가벼운]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본문은 메시아의 구원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땅끝까지의 이방인들을 포함할 것을 보이는 놀라운 예언이다. ‘빛’은 지식과 의, 생명과 행복을 상징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신약시대에 이미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이 온 세상에 충만히 전달되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3에서, 사도시대에 이미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말하였다. 오늘날 세계복음화는 거의 이루어졌다.

[7절]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救贖者)’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즉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시는 자’라고 부르시며, 메시아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며 백성에게 미움을 받고 관원들에게 종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역사하셔서 열왕들이 메시아를 보고 일어서게 하시며 방백들이 그에게 경배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고난받은 메시아를 믿을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앞에 굴복하는 것은 기적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자.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또 그는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길에서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눅 24:27). 또 그는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4:44). 그는 구약성경의 성취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자. 그 발자취는 영광의 발자취가 아니고 고난의 발자취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였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수치와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 고난이 지난 후 그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영광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우리는 주께서 가신 그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사역을 계승하자. 메시아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땅끝까지 비추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의 사명이며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명을 신약교회에 주셨다. 세계복음화는 그가 주신 신약교회의 사명이다(마 28:19-20; 행 1:8). 사도행전 13:47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에게 적용하기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땅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사명과 이 일에 충실하며 충성해야 한다.

8-13절, 은혜의 때

[8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그 땅을 세워’(KJV) 혹은 ‘그 땅을 회복시켜’(NASB, NIV)]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신약시대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2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때에 메시아에게 응답하셨고 그를 도우셨다. 그는 메시아를 지키셔서 그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것이다. 또 그는 메시아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실 것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다. 히브리서 9:15는,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황무하였던 땅을 회복시켜 자기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9-10절]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赭山)[벌거숭이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잡혀 있는 자’와 ‘흑암에 있는 자’는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을 가리키겠지만, 그것은 또한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고, 무지와 죄와 불행에 빠져 있는 죄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오라’ ‘나타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은 죄와 사망과 파멸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또 그들은 길에서 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은 구원받아 천국을 향해 가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영육의 양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 모든 ‘자산(赭山)’ 곧 벌거숭이 산, 황폐한 산에도 그들을 위한 풀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먹을 양식 주심을 보이는 것 같다. ‘더위와 볕’은 환난과 시험을 가리킬 것이며, ‘샘물 근원’은 성령님을 가리킬 것이다.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않고 또 목마름이 없을 것이다.

[11-12절]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大路)를 돋우리니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산’은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만드실 것이다. 오늘날 높은 산들을 가로질러 터널과 고속도로를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천국 가는 대로를 내실 것이다.

어떤 이들은 원방에서, 어떤 이들은 북방과 서방에서, 어떤 이들은 시님 땅에서 올 것이다. ‘시님’이라는 원어(시님 םי������י������)의 뜻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BDB). 하나는 중국(China)이라는 견해이고(게세니우스, 델리취), 다른 하나는 스에네 사람들(이집트 남부 국경도시인 아스완 사람들)이라는 견해이다(NIV).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온 세계에서 올 것이다. 본문은 세계복음화에 대해 예언한다고 본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3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인해 하나님께 노래하며 기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고 그 고난 당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시대가 왔음을 감사하자.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이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이루셨다. 그는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한 의(義)와 영생이 되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실 것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길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모든 벌거숭이 산에 풀밭이 있게 하시며 모든 산을 길로 만드실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그는 우리의 영육의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또 육신의 양식도 주신다. 시편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고 찬송하자. 13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뻐하고 찬송하며 감사하자.

14-26절, 속히 돌아오리라

[14-16절]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여인은 자기가 낳은 젖먹이는 아기를 잊지 않고 자기의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혹 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그의 손바닥에 새기셨고 그의 성벽을 항상 그 앞에 두셨다. 손바닥에 새겨진 것을 항상 기억하듯이, 그는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17-18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속히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확실히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을 멸망시켰던 자들은 그들을 떠나갈 것이다. 온 세계에 흩어졌던 자들은 다 돌아와 교회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그의 말씀의 확실함을 강조하셨다.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지만, 그가 맹세하시며 선언하신 말씀은 더 확실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그의 확실한 약속이다.

[19-21절]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 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회복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거처는 좁게 될 것이다. 20절의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는 원어(베네 쉭쿨라이크)는 ‘무자(無子)할 때 낳은 자녀들’이라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낳은 자녀들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많은 자녀들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22-23절]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방 나라들에 시온의 자녀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은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품에 안고 올 것이다. 이것은 이방 세계의 구원를 암시한다. 이방 나라의 위정자들은 양부모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 앞에 굴복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교회를 존중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신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다.

[24-26절]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救贖者)요 야곱의 전능자[용사]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대한 바벨론 나라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은 자기의 고기를 먹고 자기의 피를 마시는 것같이 스스로 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이시며 야곱 자손들의 용사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항상 기억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나 인류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로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며 그가 택하신 영혼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충만한 수의 영혼들이 받는 구원이다.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는 그 거처가 좁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충만한 수의 영혼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받은 자들의 수는 많을 것이다. 천국은 결코 쓸쓸하고 한적한 곳이 아닐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은 세계복음화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온 세계에서 돌아올 것이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신약시대에는 온 세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계 7:9-10).


50장: 메시아의 사역

[1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들 자신의 범죄함 때문에 된 것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초래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것도 우리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즉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2-3절]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救贖)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魚族)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지만 그들은 그를 찾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와 불행과 멸망의 길을 택하였다. 물론 하나님께 구원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마르게 하실 수 있고 강물이 광야가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멸망한 것이 자신들의 죄악이 컸고 많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했다.

[4-5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본문은 일차적으로 메시아에게 적용된다고 본다. 메시아의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께 학자의 혀를 주실 것이다. ‘학자’라는 원어(림무딤)는 ‘가르침을 받은 자들, 제자들’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곤핍한 자’는 죄로 인해 곤핍한 자들,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마 11:28)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게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2:49-50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내 자의(自意)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고 말씀하셨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을 잘 배우고 바르게 깨달아야 잘 가르칠 수 있다. 또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친히 실행하실 것이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메시아를 본받아 먼저 자신이 그 말씀을 순종하고 실행해야 다른 이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다.

[6-7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메시아께서는 매 맞고 수염을 뽑히고 뺨을 맞고 수욕과 침 뱉음을 당하실 것이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낙심치 않고 그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실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는 얼굴에 침 뱉음을 받으시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때림을 받으셨으나(마 26:67) 참으셨다. 주의 제자들도 고난을 받았으나 낙심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8-9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간증하였다.

[8-9절]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메시아께서 고난 중에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변호하심을 확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옳음을 변호하실 것이다. 그는 그를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다투거나 그를 대적하고 정죄할 자가 없다. 그와 다투거나 대적하는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이런 확신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로마서 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10-11절]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본문에서 ‘흑암’은 슬픔과 불행과 고난을 가리키고, ‘빛’은 기쁨과 행복과 평안을 가리킨다. 지금 고난 가운데 사는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종 메시아의 음성을 듣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이름을 의뢰해야 한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참 신자의 모습이요 그가 사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의 걸음을 선하고 유익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의 행복만 추구하는 불신자들이 있다. 자기가 피운 불 혹은 횃불은 자기가 만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은 슬픔 중에 누울 것이며 그들의 등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그들은 슬픔 중에 멸망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는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얻은 불행이었다. 그러므로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원하는 자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사람이 선한 행위로 구원 얻지 못하지만, 사람은 결코 선한 행위 없이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한다. 참된 회개가 없이는 참된 구원도 없다.

둘째로, 메시아의 구원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에 정통하셨고 무리들에게 그 말씀을 잘 가르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그것을 알고 믿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메시아의 사역은 고난의 사역이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주님이시다. 또 그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그를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길을 갔다. 오늘날 우리도 고난을 각오하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넷째로, 참 성도는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이름만 

의뢰하며 따라가야 한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그것이 참 믿음의 길이며 참 신자의 가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참는 자는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