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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18장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함-22장 성전 건축의 재료를 준비함 [다윗의 성전건축준비]

영국신사77 2020. 4. 14. 18:35


18장: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함

[1-2절]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 또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1-2절은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을 쳐서 복종시켰음을 증거한다. “이 후에”라는 말은 앞장에 증거된 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약속하신 후에”라는 뜻이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이 있었다. 그것은 법궤 중심의 생활, 곧 하나님 중심의 생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생활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에게 복을 약속하셨고 그것을 주셨다. 그래서 다윗은 승리하였다고 본다. 사람이 범죄하면 고난이 있을 것이지만, 믿음과 순종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과 난관에서 승리케 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마 6:33), 그것도 같은 정신의 교훈이다.

[3-8절]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맛까지 이르고 그 병거 1천승과 기병 7천과 보병 2만을 빼앗고 그 병거 1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메섹 아람 사람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2만 2천을 죽이고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또 하닷에셀의 성읍 디브핫과 군에서 심히 많은 놋을 취하였더니 솔로몬이 그것으로 놋바다와 기둥과 놋그릇들을 만들었더라.

사무엘하 8:4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마병(파라쉼) 1,700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기병’이나 ‘마병’은 같은 원어를 번역한 말이다. 숫자의 차이는 포함의 범위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일 것이다. 혹은 필사상의 오류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나, 우리는 성경 원본의 무오(無誤)를 믿을 뿐 아니라, 전통적 사본들에 대해서도 신임성을 두기를 원한다. 다윗은 이렇게 소바와 다메섹 아람을 복종시켰다.

[9-11절] 하맛 왕 도우가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그 아들 하도람을 보내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이왕에 도우로 더불어 여러 번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하였음이라. 하도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온지라.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 등 여러 족속에게서 취하여 온 은금과 함께하여 드리니라.

다윗은 이웃 나라가 보내온 은금의 선물로 자신을 부요케 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로 승리케 하신 줄 아는 고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12-13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1만 8천을 쳐죽인지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본장은 6절, 13절에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말한다. 다윗의 모든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었다(삼상 17:47). 그것은 바른 믿음의 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주권자이시며 전쟁의 승패를 주관하신다. 사도 바울도 그의 전도 사역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비슷하게 고백하였다(고후 2:14).

[14-17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 장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史官)이 되고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비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사워사는 서기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왕을 모셔 대신(大臣)이 되니라.

다윗은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마음이 높아져서 자기 생각과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바르게 행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다윗은 하나님 중심, 법궤 중심으로 살았고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승리를 주셨다. 우리도 하나님 중심, 성경말씀 중심으로만 살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하나님의 뜻 실행하기 위해서만 살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 속죄신앙 중심으로만 살자. 그것이 복된 길이다. 이런 성도에게는 고난 많은 세상에서도 다윗같이 항상 승리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우리가 참된 믿음으로 살면 세상을 이길 것이다. 고린도후서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요한일서 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둘째로,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올바르고 선하게 처신하자.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公義)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범사에 올바르고 선하게만 살자.


19장: 암몬 자손들을 물리침

[1-5절]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가로되 하눈의 아비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고 사자를 보내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복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조상하매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혹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의 당한 일을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저희를 맞으러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그 후에” 즉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많이 안정되었을 때에(18장),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다윗은 사자를 보내어 그 아버지 죽은 것을 조문하게 했다. 그의 신복들은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조문하였다.

그런데 암몬 자손의 방백들은 다윗이 그 땅을 탐지하여 함락시키려고 사자들을 보냈다고 잘못 생각하였다. 그것은 오해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평소의 교만과 적개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눈은 그의 방백들의 조언을 듣고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볼기 즉 엉덩이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었다. 그것은 이웃 나라의 사신에 대한 무례하고 모욕적인 일이었다.

[6-9절]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이 암몬 자손으로 더불어 은 1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북서 메소포타미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곧 병거 3만 2천승과 마아가 왕과 그 백성을 삯 내었더니 저희가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 좇아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었더니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앞에 진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하눈과 암몬 자손들은 자신들이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알고 은 1천 달란트(약 34톤)로 아람 군사들을 삯 내었다. 그들은 용병을 위하여 막대한 돈을 사용하였다. 다윗은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었다.

[10-15절] 요압이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치고 그 남은 무리는 그 아우[형] 아비새의 수하에 붙여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치게 하고 가로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요압과 그 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 요압의 아우[형]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그 전쟁은 정당방위의 전쟁, 곧 정당성이 있는 전쟁이었다. 또 요압은 하나님의 선한 처분에 맡기는 믿음과 용기를 가진 자이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암몬 사람들은 패전하였다. 그들이 용병을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인 것은 헛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게 공의로 보응하셨다.

[16-19절]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자를 보내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장관 소박이 저희를 거느린지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저희를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저희가 다윗으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7천승의 군사와 보병 4만을 죽이고 또 군대장관 소박을 죽이매 하닷에셀의 신복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이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싫어하니라.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자를 보내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을 불러내었으나 그들도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했다. 다윗은 아람의 병거 7천승의 군사들과 보병 4만명을 죽였다. 사무엘하 10:18은 그가 병거 7백승과 마병 4만명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 두 자료의 숫자의 차이는 분류상의 차이일 것이다. 아마 사무엘하에서의 마병의 숫자 속에는 역대기에서의 병거의 숫자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20장: 암몬 자손을 멸함

[1-3절]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훼파하고 가서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여 달아보니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그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게 하니라.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모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해가 돌아와서, 혹은 봄이 되어(NASB, NIV),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자, 요압은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들의 땅을 파괴하였고 가서 수도 랍바를 에워쌌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 그 전쟁의 상황에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범죄하였다. 그것이 사무엘하 11장에 기록된 다윗의 범죄 사건이다. 그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수했다. 요압은 랍바를 함락시켰다.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 쓰던 보석 있는 면류관, 금 한 달란트 중량의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썼다. 다윗은 또 그 성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노략물을 내어왔고, 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과 써레와 도끼로 처형하였다(KJV, NASB).

[4-8절] 이 후에 블레셋 사람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죽이매 저희가 항복하였더라. 다시 블레셋 사람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 손과 매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 넷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능욕하는 고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가드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이 후에” 즉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이 있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 십브개는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죽이매 그들이 항복했다. 가드 장대한 자의 소생들은 다윗의 손과 그 신복들의 손에 다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에 용사들을 주셨고 그들은 비록 상대방이 장대한 자의 소생(4, 6, 8절)이며 어떤 이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어도(5절) 다 이겼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역대상 19-2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남의 호의를 오해하거나 무례히 행하거나 남을 모욕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자. 그것은 사랑이 없는(고전 13:5)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하게 행하는 자가 결국 실패함을 알자. 암몬 자손들은 악하게 행하다가 결국 큰 패배를 경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편에 계신다.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정의는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승리하게 하심을 알자. 다윗은 모욕을 당하고 도리어 선전포고를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군대에게 큰 승리를 주셨다. 비록 그에게 연약과 실수와 범죄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한 그와 그의 나라에 승리를 주셨다. 또 그는 다윗에게 믿음 있고 용감한 용사들을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자.

21장: 다윗의 인구 조사

본장은 사무엘하 24장에도 나와 있는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이다.

[1-8절]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남쪽 끝의 도시]에서부터 단[북쪽 끝의 도시]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100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1백 10만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47만이라.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절,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사무엘하 24:1은,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기록한다. 본문의 ‘격동하다’는 원어와 사무엘하 24:1의 ‘감동시키다’는 원어는 동일하다(수스 תוּס).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탄의 충동을 받아 범죄하도록 허용하셨다. 사탄은 존재하며 에덴 동산에서처럼 지금도 사람들을 범죄케 하려고 활동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도 격동시켜 범죄케 할 수 있다. 그는 욥을 시험하였었고(욥기) 베드로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었으며(마 16:23) 그를 밀 까부르듯하였고(눅 22:31) 지금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넘어지기 쉽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주의 은혜에 의지하며 조심해야 한다.

요압은 왕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였다. 사무엘하 24:8은 그 기간이 9개월 20일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110만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47만명이라고 다윗에게 보고했다. 그는 왕의 명령을 나쁘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들은 계수하지 않았다. 사무엘하 24:9는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80만명이요 유다 사람이 50만명이라고 기록하였다. 유다의 장정들의 숫자는 대략적인 것일 것이며, 이스라엘의 장정들의 숫자는 110만명 중에 담대한 자(카일 ל������������)[용사]의 숫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인구 조사의 일을 불쾌하게 여기셔서 이스라엘을 치셨다. 인구 조사는 군대의 숫자를 세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힘은 군인의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있었다. 그러나 인구 조사는 군대의 수를 자랑하는 교만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었다. 요압은 처음부터 그것을 느꼈고 다윗에게 그것을 하지 말기를 권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자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9-14절]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3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7만이었더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다윗에게 나아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징벌은 구체적이었고 엄중하였다. 3년 기근, 석달 피신, 3일 전염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죄의 징벌은 엄중하다. 다윗은 약 10여년 동안 사울의 칼을 피하여 고생스런 세월을 보내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3년 기근이나 석달 피신보다 3일 전염병을 원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셨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7만명이었다.

[15-19절]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다윗이 눈을 들어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가니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는데, 사자가 멸하려 할 때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고 멸하는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말씀하셨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받드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범죄한 자들에게 징벌하시지만,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 뉘우치셨다’는 말은 인간적인 표현이다.

다윗은 눈을 들어보니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과 땅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 아뢰었다.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이것이 회개하는 자의 바른 태도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말하게 하였다.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다윗은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갔다.

[20-30절]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마당에서 나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오르난이 다윗에게 고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의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그 기지 값으로 금 600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 이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

오르난은 경건하고 착한 성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왕과 백성을 위해 자신의 소들과 곡식 떠는 기계와 밀을 즐거이 드리려 했다. 사무엘하 24:24는 다윗이 은 50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샀다고 기록하였다. 두 기록의 차이는 아마 범위의 차이 때문이거나 혹은 물가의 변동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윗은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우리의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이며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하는 제사이었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

이곳은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바로 그곳이었다. 역대하 3:1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고 증거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의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라도 사탄의 충동에 넘어졌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깨어 있자.

둘째로, 우리는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다윗의 인구 조사는 그의 교만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는 잠시 이스라엘의 힘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 엄위함을 알고 범죄치 말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신약성도들에게도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잊지 말자.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넷째로, 우리는 죄를 깨달았을 때 겸손히, 철저히 통회자복해야 한다. 이것이 회개하는 자의 바른 태도이다. 징벌로부터 구원과 회복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고, 그의 긍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며 철저히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


22장: 성전 건축의 재료를 준비함

본장은 다윗이 죽기 전에 성전 건축의 재료들을 많이 준비하였고 그 아들 솔로몬과 모든 방백들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한 내용이다.

[1-5절]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石手)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못과 거멀못[죔쇠 혹은 연결장식]에 쓸 철을 한 없이 준비하고 또 심히 많아서 중수(重數)[무게]를 셀 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輸運)[운반]하여 왔음이라.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앞장의 내용에 이어서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가리켜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그곳은 후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곳이 되었다(대하 3:1).

다윗은 젊은 때만 주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고 늙은 때도 믿음이 약해져서 세상으로 기울어지거나 마음이 이기적으로 변하지 않고 끝까지 성전 건축의 마음을 간직하고 재료들을 준비하였다. 사도 바울도 노년에 순교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간증하였다(딤후 4:7).

[6-10절]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位)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그 성전이 건축되도록 뜻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들로 삼으시고 그 나라의 위(位)를 영원히 굳게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정하신 사람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11-16절] 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10만 달란트와 은 1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또 공장(工匠)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하셔서 그로 하여금 성전을 형통하게 건축케 하시고,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시고, 무엇보다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기원하였다. 이 세 가지 곧 성전 건축과 나라 통치와 율법 준행은 다 중요하며 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 중에도 세 번째의 내용인 율법 준행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다윗은 또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라고 말했다. 성도는 다른 무엇을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힘써 지키는 것을 조심하면 잘 될 것이다. 그것이 형통의 길이며 승리하는 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때 또 담대함을 누릴 것이다. 말씀의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한 과정과 내용일 뿐이다.

다윗이 성전 건축의 재료들을 준비한 것은 평시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이었다(14절). 그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했고 성전 건축을 생각하였다. 성도는 평안할 때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것이 아니고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

[17-19절] 다윗이 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하여 그 아들 솔로몬을 도우라 하여 가로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강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거민을 내 손에 붙이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에 드리게 하라 하였더라.

구약시대의 성전 건축은 신약시대의 전도와 교회 건립을 가리킨다. 교회 건립은 예배당 건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건립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3:10-15; 엡 2:20-22).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힘쓰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택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에 속하게 하고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케 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4:34). 하나님의 일은 만세 전에 택하신 영혼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39-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일을 힘써야 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또 우리가 죽기까지 이 일을 힘써야 한다. 우리는 전도와 교회 건립을 위해 기도로, 전도로, 헌금으로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부탁하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독생자 예수께 부탁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부탁하자. 하나님의 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들보다 귀하고 중요하다. 한 명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참된 교회를 건립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마태복음 4:20, 22,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전도와 교회 건립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며 우리는 그 일을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부탁하자.

셋째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힘써 지키자. 13절,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은 어느 때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빛 아래 해석해야 한다. 구약의 도덕법은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이 되지는 못하나 구원받은 성도가 오늘날에도 즐거이 지켜야 할 내용들이다.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그 내용을 힘써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