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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10장 사울의 죽음-17장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다윗과 법계]

영국신사77 2020. 4. 14. 18:35


10장: 사울의 죽음

본장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죽었음을 증거한다. 이 내용은 사무엘상 31장의 증거에 약간의 내용과 설명이 보충되어 있다.

[1-6절]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窘急)하여[다급하여]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병기 가진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졌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해 사울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였다. 그들은 또 사울을 맹렬히 쳤고 활 쏘는 자는 그에게 따라 붙었다. ‘심히 다급하였다’는 원어(와야켈 ל������������������)는 ‘몸부림쳤다, 심한 고통 중에 있었다’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부상을 입었다’고 번역했다(KJV, NASB, NIV). 사울은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졌다.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었다. 사울과 그 집은 이렇게 몰락하였다. 그의 범죄는 온 나라에 패전과 큰 불행을 가져왔다.

[7-10절]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희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곧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모든 우상과 뭇 백성에게 광포하게 하고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이 도망한 것과 그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은 와서 거기 거하였다.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당한 자들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곧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였다. 또 그들은 그것들을(Amplified Bible)9)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모든 우상과 뭇 백성에게 알리게 했고 사울의 갑옷을 그 신(아스다롯)(삼상 31:10)의 전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전에 달았다. 사무엘상 31:10에는, 그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았다고 증거하였다.

[11-12절]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7일을 금식하였더라.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였고 7일 동안 금식하였다. 사무엘상 31:12에는, 그들이 그 시체들을 불살랐다고 증거하였다. 길르앗 야베스의 용사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들을 정성껏 장사한 것은 왕에 대한 예우이었을 뿐 아니라, 전에 사울이 자기들을 암몬 사람들로부터 구원해주었던(삼상 11장) 은혜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였다. 사울과 그 아들들은 이렇게 죽었다. 그의 죄는 왕위도, 그 영광과 모든 좋은 것도 다 가져가버렸다.

[13-14절]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마지막 두 절은 사울의 죽음의 이유를 증거한다. 이것은 사무엘상과 달리 역대기의 보충적 성격을 보인다. 본문은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고 증거한다. 역대기는 그 내용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무엘서에 자세히 증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울은,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 한 죄 외에도, 우선, 제사장이 아닌 데도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삼상 13:8-9, 13-14). 그는 또 아말렉 사람들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삼상 15:3, 9, 10-11). 그는 또 신접한 자에게 물었다(삼상 28장). 그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금하신 바이었다(신 18:9-1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지도자의 범죄는 온 나라에 실패와 큰 불행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왕 사울의 범죄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패전과 그와 그의 아들들의 죽음으로 끝났다. 왕의 범죄는 온 나라에 실패와 큰 불행이 되었다. 책임 맡은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로, 죄는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져갔다. 사울의 범죄는 그의 왕위도, 그 영광도, 또 이스라엘의 승리와 평안도 다 가져갔다. 한때 사울은 모든 좋은 것을 누렸지만, 그가 범죄하였을 때 모든 좋은 것을 다 잃어버렸다. 우리는 범죄하지 말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왕과 그 백성의 소와 양의 가장 좋은 것을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완전한 순종이었고 불완전한 순종은 불순종이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 불순종은 사람의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자기 숭배의 죄이다.


11장: 다윗이 왕이 됨

[1-3절]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가로되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니 다윗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온 이스라엘 백성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사무엘서에 보면, 사울이 블레셋 전쟁에서 죽은 후 유다 장로들은 헤브론에서 다윗을 왕으로 삼았고(삼하 2:4)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다스렸었다(삼하 5:5). 그 7년 6개월 동안 사울의 군장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었다.10) 그러나 이제 때가 되어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다(삼하 5:1-3).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범죄함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고 그 대신에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삼상 16:1, 13). 이 예언은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쳐죽인 지 약 17년 후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인다.11) 하나님의 뜻은 비록 더디게 보여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4-9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여부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다윗이 가로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두목이 되었고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성이라 일컬었으며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남은 성은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은 시온산 성 곧 다윗성을 빼앗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므로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 갔다.

[10-14절]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30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3백인을 죽였고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저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하였더니 블레셋 사람이 그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희가 그 밭 가운데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10절 이하는 다윗의 용사들, 특히 그를 도와 왕국을 건립한 자들에 대해 증거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한 자들이었다. 야소브암은 30인의 두목12)이었다. 그 다음은 엘르아살이었고 그도 세 용사들 중 하나이었다.

[15-19절] 30두목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진영]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가로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이 세 사람은 뒤에 언급된 아비새와 브나야를 포함하였다.

[20-25절] 요압의 아우[아마, 형](대상 2:16) 아비새는 그 3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3백인을 죽이고 그 3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저는 둘째 3인 중에 가장 존귀하여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째 3인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효용한[용감한] 일을 행한 자라. 저가 모압 아리엘의[혹은 ‘사자 같은’]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약 225cm)이요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저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30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3인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요압의 형제[아마, 형](대상 2:16) 아비새는 그 3인의 두목이었다. 그는 창을 들어 3백인을 죽이고 그 3인 중에 이름을 얻었다. 그는 둘째 3인 중에 가장 존귀하여 그들의 두목이 되었으나 첫째 3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 첫째 3인 중 둘은 야소브암과 엘르아살이었고 하나는 생략되어 있다. 브나야는 세 용사들 중에 이름을 얻고 30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3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다. 다윗은 그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다.

[26-47절] 또 군중의 큰 용사는 요압의 아우 아사헬과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하롤 사람 삼훗과 블론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십브개와 아호아 사람 일래와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렛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이대와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후래와 아르바 사람 아비엘과 바하룸 사람 아스마웻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기손 사람 하셈의 아들들과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요나단과 하랄 사람 사갈의 아들 아히암과 울의 아들 엘리발과 므게랏 사람 헤벨과 블론 사람 아히야와 갈멜 사람 헤스로와 에스배의 아들 나아래와 나단의 아우 요엘과 하그리의 아들 밉할과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베롯 사람 나하래와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헷 사람 우리아와 알래의 아들 사밧과 르우벤 자손 시사의 아들 곧 르우벤 자손의 두목 아디나와 그 종자 30인과 마아가의 아들 하난과 미덴 사람 요사밧과 아스드랏 사람 웃시야와 아로엘 사람 호담의 아들 사마와 여이엘과 시므리의 아들 여디아엘과 그 아우 디스 사람 요하와 마하위 사람 엘리엘과 엘라암의 아들 여리배와 요사위야와 모압 사람 이드마와 엘리엘과 오벳과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이더라.

26-47절은, 위에 언급한 이들 외에, 마흔 여섯 명의 용사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거기에 ‘아들들’이라고 된 것이 세 곳(34절, ‘하셈의 아들들’; 44절, ‘호담의 아들들’; 46절, ‘엘라임의 아들들’)이 있고, 또 42절은 ‘르우벤 자손의 두목 아디나와 그 종자 30인’이라는 표현도 있다. 그러면 46명에 적어도 33명이 추가되며, 또 처음에 언급한 다섯 명(요압, 야소브암, 엘르아살, 아비새, 브나야)을 포함하면, 다윗의 용사들은 모두 84명 이상이 언급된 셈이다. 이들이 다 하나님과 다윗을 위해 헌신하며 충성한 용사들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그의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윗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비록 더디게 보여도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편에서 볼 때 때때로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25년 후에야 비로소 아들 이삭을 얻었고, 요셉은 부모와 형제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을 것을 보이는 계시적인 꿈을 꾸었으나 13년이 지난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더딜지라도 참고 낙심치 말고 기다려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천국과 영생도 주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와 함께하셨고 그를 점점 강성케 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성도는 강건케 된다.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종들은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섭리적 훈련 속에서 강해졌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강건해져야 하고 항상 성경말씀의 묵상과 기도 중에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구하며 누려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신약교회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용사들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위해 많은 용사들을 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과 그 왕국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쳐 헌신하고 싸운 용사들이었다. 오늘날에 영적 전쟁터와 같은 세상의 현실, 교계의 현실에서 우리의 위대한 왕이시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해 한 목숨을 바쳐 일할 주의 일꾼들, 교회의 봉사자들은 누구인가? 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할 자들은 누구인가? 주의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자기의 일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며 일할 자들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슨 좋은 것을 드릴 것인가?

12장: 다윗의 용사들

[1-7절]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돕는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저희는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살도 발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그 두목은 아히에셀이요 다음은 요아스니 기브아 사람 스마아의 두 아들이요 또 아스마웻의 아들 여시엘과 벨렛과 또 브라가와 아나돗 사람 예후와 기브온 사람 곧 30인 중에 용사요 30인의 두목된 이스마야며 또 예레미야와 야하시엘과 요하난과 그데라 사람 요사밧과 엘루새와 여리못과 브아랴와 스마랴와 하룹 사람 스바댜와 고라 사람들 엘가나와 잇시야와 아사렐과 요에셀과 야소브암이며 그돌 사람 여로함의 아들 요엘라와 스바댜더라.

1-22절은 다윗이 사울을 인해 피해 다니는 동안 다윗을 돕기 위해 모여온 용사들을 증거한다. 1-7절에는,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 중에서 다윗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들을 증거한다. 그들은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활도 쏠 줄 아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히에셀을 우두머리로 한 24명이었다. 그들은 사울의 지파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바른 판단력을 가졌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8-15절]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그 두목은 에셀이요 둘째는 오바댜요 셋째는 엘리압이요 넷째는 미스만나요 다섯째는 예레미야요 여섯째는 앗대요 일곱째는 엘리엘이요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아홉째는 엘사밧이요 열째는 예레미야요 열한째는 막반내라. 이 갓 자손이 군대장관이 되어 그 작은 자는 1백인을 관할하고 그 큰 자는 1천인을 관할하더니(에카드 레메아 학카톤 웨학가돌 레 알레프)[그 작은 자는 일당백이요 그 큰 자는 일당천이더라](NASB, NIV) 정월에 요단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이 무리가 강물을 건너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로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8-15절은, 갓 사람들 중에도 다윗이 광야 요새에 있었을 때 그에게 돌아온 용사들이 열한 명 있었음을 말한다. 그들은 다 싸움에 익숙하고 사자같이 사납게 사슴같이 빠른 자들이었다.

[16-18절]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 다윗이 나가서 맞아 저희에게 일러 가로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와 연합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붙이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열조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 때에 성신이 30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장관을 삼았더라.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견고한 곳, 곧 앞에서 말한 광야 요새로 다윗에게 나온 자들이 있었음을 증거한다. 다윗은 범사에 의롭게 행하였고 하나님만 의지했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책망하시기를 원하였다. 성령께서는 30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셨고 아마새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셨고 그를 도우심을 확신했다. 다윗은 그들을 영접하여 세워 군대장관들을 삼았다.

[19-22절]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가서 사울을 치려 할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두어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다윗 등이 블레셋 사람을 돕지 못하였음은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서로 의논하고 보내며 이르기를 저가 그 주 사울에게로 돌아가리니 우리 머리가 위태할까 하노라 함이라.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적당(賊黨)을 쳤으니 저희는 다 큰 용사요 군대장관이 됨이었더라. 그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19-22절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 함께 가서 사울을 치려 할 때에 므낫세 지파 중에서 다윗에게 온 용사들이 있었음을 증거한다. 그들은 일곱 명이었다. 특히 22절은, 그때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다윗에게 주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교회에 많은 동역자들과 봉사자들을 주시기를 기도하자.

[23-37절] 싸움을 예비한 군대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유다 자손 중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예비한 자가 6천 8백명이요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7천 백명이요 레위 자손 중에서 4천 6백명이요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한 자가 3천 7백명이요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 족속의 장관이 22명이요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좇으나 그 중에서 나아온 자가 3천명이요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본 족속의 유명한 큰 용사가 2만 8천명이요 므낫세 반 지파 중에 녹명된 자로서 와서 다윗을 세워 왕을 삼으려 하는 자가 1만 8천명이요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2백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며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5만명이요 납달리 중에서 장관 1천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함께한 자가 3만 7천명이요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2만 8천 6백명이요, 아셀 중에서 능히 진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4만명이요,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12만명이었더라.

23-40절은, 각 지파 군대장관들이 헤브론에 모여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려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한 사실을 증거한다. 각 지파의 용사들을 합한 수효는 340,822명이었다. 특히 32절은 다른 지파와 비교해 매우 작은 수효인 잇사갈 자손 200명은 “시세(時勢)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들”이라고 표현되었다. 그들은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자들이었다. 또 33절은 스불론의 용사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들”이라고 표현되었다. 그들은 유능한 용사들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직무에 충실한 충성된 용사들이었다.

[38-40절] 이 모든 군사가 항오를 정제히 하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으로 온 이스라엘 왕을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일심으로 다윗으로 왕을 삼고자 하여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이는 그 형제가 이미 식물을 예비하였음이며 또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 식물을 나귀와 약대와 노새와 소에 무수히 실어왔으니 곧 과자와 무화과병과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군대장관들이나 온 백성은 다 성심으로 또 일심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고 사흘 동안 그 일을 행하며 잔치하고 기뻐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의 인도자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때만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약 17년 반을 묵묵히 기다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만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국에 좋은 용사들을 많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었다. 다윗의 피신 생활 때부터 다윗이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임을 알고 그와 뜻을 같이한 자들이 있었다. 또 후에는 싸움을 잘하는 용사들이 많이 그를 따랐다. 또 시세(時勢)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들이 있었다. 오늘날도 교회들에는 바른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맡은 일에 전심전력하고 충성하는 자들이 필요하다.

셋째로, 이스라엘은 다윗을 중심으로 단합되었고 그들에게는 기쁨이 있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교훈을 중심하고 또 목사의 성경적 교훈과 당회의 성경적 지도 안에서 일치단합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자.

13장: 법궤를 옮겨오고자 했으나 실패함

본장은 다윗이 법궤를 옮겨오고자 했으나 실패한 일을 기록한다.

[1-4절]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 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고자 할 때 우선 온 백성의 뜻을 모았다. 그는 모든 장수들과 의논하였고 이스라엘 회중의 뜻을 물었다. 그는 모든 백성이 그 일을 선하게 여기는 가운데 그 일을 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모든 백성을 모았고 그들의 뜻을 물었다. 그는 백성들의 뜻을 모아 그 일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그가 이 계획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이루기를 원하였다. 그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를 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한 것이다. 그의 계획은 신본주의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일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중시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빼앗았다가 돌려보내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 궤를 들여다보므로 5만 70명이나 죽임을 당한 후,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옮겨져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되었다. 그 후 사울이 왕이 되었고 약 40년간 통치하였다(행 13:21). 사무엘상 7:2는,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기록한다. 사울의 때에도 간혹 법궤가 사용되기는 하였으나(삼상 14:18), 그것은 오랫동안 방치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구약의 성막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이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출 34:28). 그것은 법궤이며 또한 언약궤이다. 또 법궤의 뚜껑은 속죄소라고 불리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궤는 법궤요 언약궤이며 속죄소로서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거룩한 기구이었던 것이며, 다윗은 그것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래서 그것을 다윗성으로 모셔 오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삶이 하나님 중심, 율법 중심, 언약 중심, 속죄의 피 중심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울의 삶과는 달랐다.

[5-8절]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할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회중들의 동의를 얻은 다윗은 애굽의 시홀 시내 곧 유대 땅의 최남단, 가사와 브엘세바 지역에서부터 최북단 유브라데 강 접경지역인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바알라(혹은 바알레유다) 즉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하였다(수 15:9, 60; 삼하 6:2).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었다. 그것은 그의 정성어린 행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기쁘고 의미있는 일을 위해 새 수레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가 그 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올 때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았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였다.

[9-11절]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뛰었다’는 원어(솨메투)는 ‘그들이 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였다’(BDB) 혹은 ‘소들이 넘어졌다’는 뜻이거나(KJV, NIV), ‘소들이 그것[그 법궤]을 떨어지게 하였다’는 뜻이라고 본다(아람어 탈굼역, NASB). 하나님의 법궤가 땅에 떨어지려 했던 것 같다. 그때 웃사는 손을 펴서 그 궤를 붙들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보기에는 정당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해 그를 치셨고 웃사는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셨으므로 다윗은 마음이 상했고 그곳은 오늘날까지 베레스 웃사라고 불리었다. ‘베레스 웃사’는 ‘웃사를 치심’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두려우시다. 전에 벳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보았을 때 5만 70명이 죽임을 당했었고, 이제 웃사가 궤를 붙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하셨다.

[12-14절]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물에 복을 내리셨다.

본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궤를 귀중히 여기자.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의 궤를 귀중하게 여겼고 사모하였고 기뻐했다. 그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온 백성들과 함께 그렇게 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를 짧은 3개월간이지만 맡아 섬겼던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 언약, 속죄를 나타내는 복된 기구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궤는 신구약성경이다.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 .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 법궤는 메어 옮겨야지 수레에 실어 옮겨서는 안 되었다. 역대상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우신 분이시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의도와 큰 열심을 가지고 좋은 일을 계획하고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방법대로 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도들을 통해 받은 바른 교리와 교훈, 즉 성경적 교훈을 지키기를 원하신다(딤후 1:13; 살후 2:15). 오늘날 배교와 타협, 포용주의, 은사주의, 세속주의 풍조가 교회에 심각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 교훈을 지키자.


14장: 블레셋을 물리침

[1-2절]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어 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진흥하게 하셨음이더라.

본문은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어 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음을 증거한다. 히람은 이방 나라 왕이어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것 같고, 다윗을 위하여 도움을 주었다. 열왕기상 5:1은,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고 말한다. 또 그때 히람은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오늘날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저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라고 했다(왕상 5:7). 다윗은 히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백성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가 진흥되었기 때문이었다(KJV). 불안했던 그의 긴 피신 생활은 그쳤다. 그는 왕이 되었고 이제 궁궐도 건축하였다.

[3-7절]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또 아내들을 취하여 또 자녀를 낳았으니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엘벨렛과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브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또 아내들을 취하여 자녀들을 낳았다.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엘벨렛과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브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다. 여기 13명의 아들들 중 처음 넷은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들이었다(대상 3:5).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 여섯 명을 합하면 다윗의 아들들은 모두 19명이었다. 다윗이 여러 명의 아내들을 취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며 다윗의 연약과 부족을 보이며 또 하나님께서 옛 시대에 이런 부족한 일을 일시적으로 허용하셨다고 보이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마음의 안정과 건강을 주셨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8-12절]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방비하러 나갔으나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를 침범하였는지라.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하나님이 물을 흩음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함으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주께서 치셨다]이라 칭하니라. 블레셋 사람이 그 우상을 그곳에 버렸으므로 다윗이 명하여 불에 사르니라.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치러 올라왔다. 다윗은 전쟁을 해야 하는 중대한 일을 앞에 두고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권한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그의 손에 붙이실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했다. 여호와께서는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65:2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고백했다. 예수께서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7:7). 전쟁은 하나님께 있고 승리도 하나님께 있다(삼상 17:47; 시 3: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홀로 주권자 하나님이시며 그 외의 모든 신들은 헛된 우상들에 불과하다.

[13-17절] 블레셋 사람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다윗의 명성이 열국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열국으로 저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했다. 어려운 일은 종종 반복하여 찾아온다. 이 세상은 환난이 많은 세상이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 물었다. 환난은 반복해 오지만, 환난을 대처하는 성도의 방법은 같다. 우리는 기도로 환난을 대처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 그에게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신명기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증거하였다.

다윗의 믿음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지시는 지난번과는 달랐다.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법은 달랐지만, 그의 주권적 행위는 동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서 행하시는 자이시며 우리의 모든 일들을 홀로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땅 위에서 또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다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의 하나님이시다(출 17:15).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블레셋 군대를 다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고 오직 그의 명령대로 행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그것을 잘 물리치고 항상 승리할 것이다. 다윗의 명성은 열국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열국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다윗처럼 주권자 하나님을 믿고 확신하자(2, 10-11, 14, 17절).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32:39에서,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6-7에서,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주권자 하나님이심을 믿고 확신하자.

둘째로, 우리는 다윗처럼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10, 14절).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50:15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약속하셨다. 주께서는 요한복음 14:13-14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운 문제는 성도에게 종종 있다. 세상에는 환난이 많지만,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 대처하며 항상 승리하자.

셋째로, 우리는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16절).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지시하신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주권 신앙과 기도는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성경말씀의 일반적 교훈을 통해 또 기도 중에 성경말씀의 교훈을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깨달은 후에, 그 뜻에 즐거이, 온전히, 그리고 인내하며 순종하자. 거기에 승리와 기쁨과 평안의 삶이 있다.

15장: 법궤를 메어 옴

[1-10절]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그핫 자손 중에 족장 우리엘과 그 형제 120인이요 므라리 자손 중에 족장 아사야와 그 형제 220인이요 게르솜 자손 중에 족장 요엘과 그 형제 130인이요 엘리사반 자손 중에 족장 스마야와 그 형제 2백인이요 헤브론 자손 중에 족장 엘리엘과 그 형제 80인이요 웃시엘 자손 중에 족장 암미나답과 그 형제 110인이라.

본장에는 ‘하나님의 궤’라는 말이 5번, ‘여호와의 궤’라는 말이 3번, ‘여호와의 언약궤’라는 말이 4번, 그냥 ‘궤’라는 말이 3번 나온다. 역대상 13장에서 읽은 대로,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고자 했으나 실패했었다. 법궤 곧 언약궤와 그 뚜껑인 속죄소는 구약 성막제도의 핵심이었다. 다윗은 법궤 중심의 삶을 사모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 하나님의 언약 중심, 속죄 중심의 삶을 상징한다. 신앙생활은 말씀 중심의 삶이며 속죄신앙은 그 핵심이다.

[11-15절]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장대]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다윗은 이전의 실패의 원인을 깨달았다. 그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바른 지식을 얻었다. 하나님의 궤는 소의 수레로 옮겨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레위인이 어깨에 메어야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규례이었다. 민수기 4: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들은 장대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었다.

[16-24절]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 동종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그 다음으로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여청[여창](女唱)(알라못, 아마 ‘높은 음’)에 맞추는 자요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쉐미닛, 아마 ‘낮은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더라.

다윗의 지시대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각종 악기들, 곧 비파(소형 현악기), 수금(작은 하프), 제금(심벌즈), 나팔 등을 연주하였고 또 노래하는 자들은 찬송을 불렀다. 그들은 각종 악기들과 목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렸다.

[25-29절]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角)[양의 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 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

다윗의 처 미갈은 다윗이 가진 것 같은 믿음이 없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궤 중심의 삶을 살자.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기를 사모하였다. 그것은 그가 언약궤 중심의 삶을 사모하였음을 보인다. 그것은 곧 하나님 중심, 언약 중심, 말씀 중심, 속죄 중심의 삶을 가리킨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에 교훈된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어 옮겨야 하였다. 그것은 율법의 규례이었다. 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멜 레위인들은 그 몸을 성결케 해야 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시편 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행사를 도우실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일을 도우셨다. 오늘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계신다. 그는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우리가 성경 교훈대로 바로 살고자 힘쓸 때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실 것이다.

16장: 다윗의 감사의 노래

[1-6절]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주었더라.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7-22절]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 모든 기사(奇事)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千代)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때에 너희 인수가 적어서 매우 영성(零星)하며[너희 인수(人數)가 적고 매우 적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8-22절은 시편 105:1-15의 말씀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하나님의 행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일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심히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또 하나님을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경건의 유익은 기쁨과 행복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과 그 능력을 구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사모하며 그의 은혜의 얼굴과 그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로이시며 우리의 힘과 기쁨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많은 기적을 보이셨고 친히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비록 그들의 수가 적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기름부은 자로 간주하시고 이방인들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다.

[23-33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하는도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 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다.

23-33절은 시편 96:1-13의 말씀과 같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과 행적을 온 땅에, 모든 민족들에게 날마다 선포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다. 그는 우리가 극진히 찬양해야 할 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신은 헛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지으신 창조자이시며 다른 신들과 달리 경외함과 경배함을 받으셔야 마땅하다.

다윗은 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증거한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영광과 권능을 그에게 돌리고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한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가야 하며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베하드랏 코데쉬), 즉 ‘거룩의 아름다움으로’(KJV)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또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므로 하늘과 땅과 온 세상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온 세상은 그의 심판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공의로운 심판일 것이기 때문이다.

[34-36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34-36절은 시편 106:1, 47-48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까닭은 특히 그의 선하시며 인자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되었고 또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열국 가운데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를 온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신다.

[37-43절]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오벧에돔과 그 형제 68인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로 문지기를 삼았고 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 제사장들로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항상 조석[아침과 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또 저희와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 남아 택함을 받고 녹명(錄名)된 자를 세워 여호와의 자비하심이 영원함을 인하여 감사하게 하였고 또 저희와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로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다윗은 아삽과 그 형제들을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날마다 섬기게 하였고, 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들로 하여금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고 항상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게 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법궤는 다윗성에, 성막은 기브온 산당에 서로 떨어진(약 10km) 상태로 있게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그의 행사를 증거하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은 그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뿐이다. 오늘 신약교회는 영적인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그의 택한 백성이며 그를 믿고 섬기는 자들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참 신(神)이시며 다른 신들은 헛것임을 알고 그를 칭송하고 감사하고 찬양하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그의 구원을, 그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가장 최상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극진히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리고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가며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그에게 경배하자. 또 우리는 날마다 그를 증거하며 선포하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일들을 온 세상에,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하자.

셋째로, 찬송의 유익은 기쁨과 힘이다. 10-11절,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힘이 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그렇지만, 그는 또 우리에게 기쁨과 힘을 주신다. 우리가 그를 찬송할 때 더욱 그러할 것이다.


17장: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1-2절]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고하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왕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는 천막 아래 있는 것을 죄송하게 여겼다. 그것은 경건한 성도가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편안과 행복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가 아닐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올 때처럼 지금도 하나님 우선주의, 하나님의 집 곧 성막 우선주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복된 마음이다. 다윗의 마음의 소원은 선한 것이었다. 성전 우선주의의 생각은 선한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 전(殿)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벽이 있는]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고 말씀하셨다(학 1:4).


[3-8절]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사사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고 연하여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못한다. 역대상 28:2-3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신 까닭에 대해 다윗은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치는 소년인 그를 취해 그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우셨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9-15절]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類)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네 수한(壽限)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位)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位)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가 주신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시며 그들을 해치려는 악한 자들이 없게 하시고 그 모든 대적자들을 복종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다윗의 자손 중 하나를 세워 그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케 하실 것이며 그의 나라가 견고하고 그의 위(位)를 영원히 견고케 세울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실 것이며, 또 그를 영영히 그의 집과 나라에 세울 것이며 그의 위(位)가 영원히 견고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 약속은 놀라운 사실을 담고 있다. 그것은 메시아 약속이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 예언의 예표적 성취에 불과하였다. 참으로 솔로몬과 그의 자손들은 실패자들이었다. 이 예언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었고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메시아 왕국의 주(主)로 오셨다.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지금부터]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누가복음 1:31-33,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6-20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나이다.

다윗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른다. 16-27절에는 ‘주의 종’이라는 말이 열 번 나온다(17, 25, 27절도 원문에는 ‘주의 종’임). 그것은 그의 겸손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보인다. 또 다윗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20절,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나이다.”


[21-24절]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救贖)하사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크고 두려운 일로 인하여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열국을 쫓아내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로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견고케 하시고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구속(救贖)하신 그의 백성임을 고백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들과의 바른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언약과 소유의 관계이며 통치와 순종의 관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목표이기도 하다. 예레미야 31:33,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5-27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감당할 수 없는 복된 약속을 감사히 받으며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다윗의 하나님 우선주의의 신앙을 본받자. 그것은 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마 6:33) 삶이다. 다윗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법궤 중심,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생활을 구하며 실천하였다. 우리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 또 성경적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음을 알자.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 마음은 선한 마음이었다. 성전 건축의 일은 선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다윗은 그 이유를 역대상 28:3에 말하였다. “오직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 행해야 함을 알자. 그러므로 야고보는 교훈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라”고 하였다(약 4:14-15).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 우리는 겸손히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의 의무를 행하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에 충성하자. 

솔로몬의 성전 낭실 앞의 두 기둥은 야긴과 보아스라 불리었는데(왕상 7:21-22), 

야긴(Jakin)은 ‘그가 세우리라’는 뜻이며, 

‘보아스’(Boaz)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것이며 그에게 세우시는 능력이 있다.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16:18), 바울은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했다(고전 3:6-7).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교회와 그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