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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22장 요시야의 율법책 발견 - 25장 유다의 멸망

영국신사77 2020. 4. 14. 18:33


22장: 요시야의 율법책 발견

[1-2절] 요시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8세라. 예루살렘에서 31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핫야솨르)[올바른 것을]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요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또 요시야는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다. 다윗은 열왕들의 모범이 되었다. 또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은 율법의 교훈대로 온전하게 행하였다는 뜻이다. 악한 우상숭배자인 아몬에게서 경건하고 정직한 아들이 나온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친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요시야의 외가(外家) 쪽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었던 것 같다.

[3-7절] 요시야 왕 18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工匠)에게 주어 전(殿)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요시야의 경건함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수리할 부분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전 수리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성전 수리를 맡은 일꾼들, 즉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의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하는 것이 진실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왕에게 의롭고 충성된 신하들을 주셨다.

[8-11절]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復命)[보고]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殿)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왕은 율법책의 말을 듣자 그 옷을 찢었다. 그것은 통회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두려움으로 받았다.

[12-13절]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侍臣)[곁에서 섬기는 신하]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요시야 왕은 그 읽은 율법의 내용을 이해하였고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큼을 느꼈다.

[14-17절]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더불어 말하매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옛날 사사시대에 여선지 드보라를 일으켜 사용하셨듯이(삿 4:4), 심히 우상숭배적이고 배교적이었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여자를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제사장직이나 선지자직에 남자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것이지만, 특별한 경우 예외적이었다. 신약시대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여성을 목사나 장로로 세우지 않는 것이다(고전 14:34; 딤전 2:12). 여선지자 훌다는 왕이 보낸 자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을 전언(傳言)했다. 유다 백성의 죄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이었다. 그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징벌하실 것이다. 율법책에 증거된 공의는 불변적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와 심판은 참으로 무섭다.

[18-20절]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겸손한 요시야는 유다에 내리실 재앙을 보지 않는 은혜를 얻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만 살자. 성경의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요시야처럼 성경에 교훈하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자.

둘째로, 우리가 배교와 혼동의 시대에 바른 길 가려면 성경책을 가까이 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성경을 힘써 읽고 듣고 연구하고 배우고 묵상해야 한다. 또 교회는 성경을 성실히 강론하여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밝히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평강과 형통을 누릴 수 있고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어긴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과 배교한 교회를 보며 탄식하자.

23장: 요시야의 개혁 운동

[1-3절]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개인의 기본적 신앙고백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또 교회의 기본적 신앙고백과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특히 배교와 타협과 혼동의 시대에 요청되는 바른 신자의 태도는 오직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데서 온다. 성경은 개인과 교회의 신앙생활의 기준이요 지침이다.

[4-5절]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부]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그릇]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사방]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별자리들]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폐하다’는 원어(히쉬비스)는 ‘멸하다’는 뜻이다(BDB). 그는 우상의 그릇들을 제하였고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멸하였다.

[6-10절]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美童, 학케데쉼)[우상숭배 의식에 관계된 남창들]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유다의 최북단)에서부터 브엘세바(유다의 최남단)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시장 市長]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을 먹을 뿐이었더라.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아들과 딸]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불태우지] 못하게 하고.

[11-14절]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리고 또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왕이 또 석상(石像)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木像)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15-20절]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전에 이스라엘 열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이처럼 유다 왕 요시야는 벧엘뿐 아니라, 사마리아의 각 성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북방을 멸망시켰던 앗수르 나라가 북방 이스라엘에 미치는 세력이 쇠약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21-23절] 왕이 뭇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 18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4-30절]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가정수호신 우상]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요시야는 노아나 욥같이(창 6:9; 욥 1:1) 의롭고 온전한 자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향해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다.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진노케 한 그 모든 진노를 인함이었다. 참으로 슬프고 두려운 일이다.

[31-37절] 여호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23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1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바로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저가 바로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국민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늑봉[강제징수]하였더라.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히스기야처럼, 요시야도 자녀 교육에는 실패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결코 우상숭배에 떨어지지 말자. 유다 멸망 때에 유다 백성은 온갖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우상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모든 우상을 멀리하자.

둘째로,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살고자 결심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배워야 하고 또 그 모든 말씀을 다 믿고 다 순종하기를 결심하며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셋째로, 우리는 자녀 교육에 실패자가 되지 말자. 요시야는 경건했지만, 여러 다른 왕들과 같이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말씀으로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바르게 교육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선언된 바, 유다를 멸하기를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큰 두려움으로 받아야 한다. 요시야가 열심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정결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그 뜻은 므낫세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왕하 23:26).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제한적 긍휼에 달려 있음을 알자.

24장: 바벨론의 1, 2차 침공

[1-7절]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3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데(왕하 23:37) 그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왔다. 그것이 주전 605년경의 일이다. 통치자가 범죄하면 국력이 쇠해지고 전쟁이 나는 것은 역사가 보이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이었다. 역대하 36:6에 보면, 바벨론 왕은 올라와 예루살렘을 쳤고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결박해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다니엘 1:1-2도 유다 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고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자 그가 그것을 시날 땅 자기 신전에 두었다고 말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그때 포로로 잡혀갔다(단 1:1-7). 여호야김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것 같지만(렘 36:1, 9)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좋지 않았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이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예언했고(렘 22:18-19), 또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했다(렘 36:30). 그는 예루살렘 성밖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죽었던 것 같다.

유다 나라에 이 치욕적인 바벨론 1차 침공과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므낫세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3절).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속에는 특히 우상숭배의 죄가 컸다. 그것은 이미 열왕기하 21장에서 자세히 증거하였고 또 열왕기하 23장의 요시야의 개혁운동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므낫세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물론, 해와 달과 별들의 숭배, 몰렉에게 자녀들을 불태워 드리기, 또 점치고 사술 행하기 등을 했다. 또 그는 수많은 무죄한 자, 억울한 자의 피를 흘렸다.

[8-9절] 여호야긴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18세라.9)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긴은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부모의 실패를 보면 자식이 깨달을 법한데 그렇지 못했다. 사람은 모방을 잘하는 존재이다. 무슨 본을 받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10-17절] 그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8년이라. 저가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 기명을 다 훼파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1만명과 모든 공장[기술자들]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貧賤)한[심히 가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7천과 공장[기술자들]과 대장장이 1천 곧 다 강장하여[건강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삼촌]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이것이 바벨론 왕의 2차 침공이었다. 그때가 바벨론 왕 제8년이었다(주전 597년). 바벨론 왕은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18-20절] 시드기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먀의 딸이더라.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시드기야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다. 이와 같이 유다 멸망기의 왕들은 한결같이 악하였다. 유다의 멸망은 그 왕들의 악함으로 인해 더욱 재촉되었다. 죄의 대가는 멸망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개인도, 나라도 죽고 멸망시킨다. 하나님께서 죄악된 유다 나라를 심판하셨고 그 나라는 결국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죄를 멀리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본을 잘 받아야 한다. 사람이 누구의 본을 따르느냐가 그의 장래를 나눈다. 악한 선조의 본을 따른 왕들은 결국 악을 행하다가 멸망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본받자(빌 3:17).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천국만 바라자.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을 받았다. 주 예수께서 천국을 선포하셨고 신약교회는 그 천국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제 믿음과 순종으로 살며 참된 교회를 세워야 한다. 말세에 거짓 목사들이 많이 나타날 것과 배교와 거짓된 은사운동이 있을 것이 예언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항상 조심하며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세우고 장차 올 영광의 천국만 바라보자.


25장: 유다의 멸망

[1-7절]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4월 9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였고 갈대아 사람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은지라.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사가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 미치매 왕의 모든 군사가 저를 떠나 흩어진지라. 갈대아 군사가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저에게 신문하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11년 4월 9일에 성이 함락되었다(렘 39:2; 52:7).10) 성이 포위된 지 약 1년 6개월 만이다. 갈대아 군사는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 끌고갔고 그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어갔다. 시드기야 왕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고 왕은 극한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에게,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었다. 예레미야 52:11은, 시드기야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있었다고 전한다.

[8-12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 빈천(貧賤)한[매우 가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와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들의 집까지 불살랐다. 그러나 예레미야 52:12에 의하면, 그는 5월 10일에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과 귀인들의 모든 집을 불살랐다. 솔로몬이 지었던 영광스런 성전과 또 호화로웠던 왕궁들과 또 귀인들의 집들은 다 불타버렸다. 또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군대는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다. 이제 그 성은 주위 나라들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성이 되지 못했다. 또 느부사라단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다 사로잡아갔고 매우 가난한 백성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했다. 예루살렘 성은 이렇게 황폐케 되었다.

[13-17절]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시위대 장관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으며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취하였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그 한 기둥은 고가 18규빗[약 8.1미터]이요 그 꼭대기에 놋머리가 있어 고가 3규빗[약 1.3미터]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18-21절]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국민을 초모(招募)하는[소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60명이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저희를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종교적 부패와 결탁하여 한 동안 세상 권세를 누렸던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징벌로 비극적 생을 마쳤다.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나갔다. 이것이 제3차 포로 사건이다. 제1차 포로 사건은 주전 605년경 여호야김 때이었고, 제2차 포로 사건은 주전 597년경 여호야긴 때이었으며, 제3차 포로 사건은 주전 586년경 시드기야 때이었고, 이때 유다는 멸망하였다. 그 멸망은,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여러 가지 우상들을 숭배하고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린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22-26절]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그다랴]로 관할하게 하였더라. 모든 군대 장관과 그 좇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로 방백을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 좇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그달리야가 저희와 그 좇는 자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신복을 인하여 두려워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7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10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저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대소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남은 자들은 방백 그달리야가 죽임을 당함으로 안정을 잃었다.

[27-30절]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곧 주전 약 560 혹은 561년경 12월 27일에 바벨론 왕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였다. 그때 여호야긴은 55세쯤이었다. 또 바벨론 왕은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 직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직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의 남은 세월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했고, 그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게 했다. 에윌므로닥은 하나님을 경외한 자이었던 것 같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이처럼 바벨론 왕의 호의를 입은 것은,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암시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악과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린 죄악은 그들로 결국 망하게 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자기의 두 눈은 뽑혔고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옥에 갇혔다. 예루살렘 성전도 솔로몬의 왕궁도 다 불탔다.

둘째로, 참 선지자의 말들은 이루어진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못한다고 말했으나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그는 그 예언 때문에 미움과 핍박과 학대를 당하였다. 그러나 누구의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헛된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성경의 바른 교훈을 다 알고 다 굳게 믿고 그 교훈을 거역하지 말고 힘써 행하자.

셋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유다 왕 여호야긴은 37년 포로생활 후에 바벨론 왕에게 극진한 호의와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증표이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안에만 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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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이것은 38절의 ‘물두멍’과 달리 작은 물통들이었을 것이다. 45절은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고 말한다. 역대하 4:11에는 ‘솥’이라고 되어 있다.

2) 성경에서 스바(Sheb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셋이다. (1)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 라아마의 아들 스바(창 10:7), (2) 셈의 아들 아람의 아들 욕단의 아들 스바(창 10:28), (3) 아브라함과 그두라에게서 난 욕산의 아들 스바(창 25:3)이다. 이 중 스바 여왕은 두 번째 스바의 족속인 것 같다.

3) 역대하 2:7과 9:10, 11에는 알구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4) 본문은 “애굽과 쿠에(Kue)에서 내어왔는데, 왕의 상인들이 쿠에에서 값으로 산 것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NASB, NIV). 쿠에는 소아시아 동남부 길리기아를 가리킨다(BDB).

5) 원문을 직역하면, “새끼양 10만과 숫양 10만, 양털”인데, 옛날 영어성경(KJV)의 번역은 원문의 구조에 가장 맞는 것 같다.

6) ‘백성’이라는 원어는 ‘부대’라는 뜻이 있다(BDB). ‘그 백성’이라는 원어(하암)는 ‘그의 부대’라고 번역할 수 있다(NASB, NIV).

7) 산당은 사무엘 시대부터 있었다(삼상 9:12-14; 10:5; 왕상 3:2-3).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된 후에도 산당 제사는 없어지지 않았고 점차 우상숭배로 변질되었다(왕하 23:5; 렘 2:20). 아사나 여호사밧 같은 경건한 왕들도 산당들을 없애지 않았다(왕상 15:14; 22:43).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산당들을 제하였다(왕하 18:4). 그 아들 므낫세가 부친이 헐었던 산당들을 다시 세웠으나(왕하 21:3) 후에 요시야 왕은 대개혁을 단행해 모든 산당을 제거하였다(왕하 23:5, 8, 13, 15, 19).

8) ‘낭실’이라는 원어(무사크)는 본래 메사크라고 쓰여져 있는데, 그 뜻이 분명치 않으며 ‘덮인 구조물’이라는 뜻이 제안되어 있다(BDB). 영어성경들은 ‘피난처’(covert)(KJV), ‘덮인 길’(covered way)(NASB), ‘닫집, 차양’(canopy)(NIV) 등으로 번역하였다. 아마 ‘긴 복도’를 뜻하는 것 같다.

9) 역대하 36:9는 “8세”라고 되어 있으나 한 개의 히브리어 사본과 또 몇 개의 헬라어 70인역 사본들과 수리아역은 “18세”로 되어 있다.

10) ‘성벽에 구멍을 뚫었다’는 원어(와팁바카 하이르)는 ‘그 성이 뚫렸다’는 뜻이다(렘 52:7에도 똑같은 말이 있음). 예레미야 39:2도 같은 동사(호브케아)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