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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장 아하시야의 죽음-12장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함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유다 왕 요아스]

영국신사77 2020. 4. 14. 18:32


열왕기하

제목차례

1장: 아하시야의 죽음

2장: 엘리야의 승천

3장: 모압을 이기게 하심

4장: 엘리사를 통한 기적들

5장: 나아만의 나병을 고침

6장: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심

7장: 아람 군대를 물러가게 하심

8장: 여호람과 아하시야

9장: 예후의 반역

10장: 예후가 한 일

11장: 요아스가 왕이 됨

12장: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함

13장: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14장: 아마샤와 여로보암

15장: 아사랴(웃시야)와 베가

16장: 유다 왕 아하스

17장: 이스라엘의 멸망

18장: 유다 왕 히스기야

19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승리

20장: 히스기야가 죽을병에서 나음

21장: 유다 왕 므낫세

22장: 요시야의 율법책 발견

23장: 요시야의 개혁 운동

24장: 바벨론의 1, 2차 침공

25장: 유다의 멸망


열왕기하 1장: 아하시야의 죽음

[1-4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세바카)[격자 창문](KJV, NASB)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 그것은 아합과 그 아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신다. 그의 섭리 밖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세상에 없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격자 창문에서 떨어져 병든 것도 분명히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바알세붑’(바알 제붑)은 ‘파리들의 바알’ 즉 ‘파리들의 주(主)’라는 뜻을 가진 블레셋 신이다. 아하시야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사람을 보낸 것은 그의 신앙상태를 나타낸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지 않았고 바알을 섬기는 자, 곧 바알 숭배자이었다. 그는 그 부모의 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배웠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압의 배반과 자신의 병을 통해 징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닫지 못하고 바알세붑에게 묻는 죄악을 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그가 죽을 것이라고 전하셨다.

[5-8절]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저희가 고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엘리야는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9-12절] 이에 50부장과 그 50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50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50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50인을 살랐더라. 왕이 다시 다른 50부장과 그 50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저가 엘리야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50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50인을 살랐더라.

엘리야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고, 왕은 50부장과 그 50인을 그에게 보내었으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살랐다. 왕은 하나님의 능력과 참 선지자의 권위를 보고 악한 계획을 포기하고 뉘우쳐야 했으나 다른 50부장과 그 50인을 보냈고 그들도 불태움을 당했다.

[13-16절] 왕이 세 번째 50부장과 그 50인을 보낸지라. 셋째 50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50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50부장 둘과 그 50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저와 함께 내려와서 왕에게 이르러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세 번째로 보냄 받은 50부장은 지혜로웠다. 그는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자기들의 목숨을 귀히 여겨주기를 간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두려워 말고 함께 가라고 하셨다.

[17-18절]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2년이었더라.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격자창문에서 떨어져 병든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사람은 범죄하면 하나님의 노를 일으키며 그의 징벌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신약성도도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다.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고난 중에 하나님 대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사자들을 보내었다. 본장은 세 번이나 그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세상적인 방법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성경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야고보서 5:13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자.

셋째로, 사람은 회개치 않으면 결국 멸망한다.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경고를 대항하며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만 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죽고 말았다. 인생의 살 길은 회개뿐이다. 이사야 55:7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3:3, 5).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명에 순종해야 멸망치 않는다.

2장: 엘리야의 승천

[1-2절]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야를 하늘로 올린 회리바람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초자연적 바람이며, 엘리야가 올라간 하늘은 천국이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길갈에서 벧엘로 갔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심을 알았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였다. 

[3-4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그들의 큰 스승이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하늘로 취하실 줄을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여리고로 갔다. 벧엘에도 여리고에도 선지학교와 선지 생도들, 즉 오늘날 말로 하면 신학교와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두시고 훈련시키신 종들이었다.

[5-7절]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선지자의 생도 50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취하실 줄을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요단으로 갔다. 선지자의 생도들 50명은 멀리 서서 그 두 사람은 요단강 가에 선 것을 보았다. 엘리야의 승천은 여리고의 선지자의 생도 50명이 멀리서 바라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8-11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당신의 영의 갑절이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그의 영, 즉 그의 정신, 그의 생각과 사상, 그의 영감, 그의 능력의 갑절을 얻기를 구하였다. 엘리사는 이 소원 때문에 그의 스승을 끝까지 따라갔고 떠나지 않았다. 그의 중심은 진지하고 간절하였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의 갑절을 구한 것은 그의 시대가 스승의 시대보다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엘리사는 그의 스승보다 2배나 많은 수의 기적을 행하였고 약 66년 동안 영감 있는 사역을 하였다.

엘리사의 구한 것은 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엘리사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엘리야는 제자들의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웠다. 엘리야의 승천은 에녹의 승천과 더불어(창 5:24; 히 11:5)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예표이며 천국의 존재를 확증한 것이다.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이 확실히 있다.

[12-14절]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라고 부른 까닭은 엘리야가 병거들과 그 마병들처럼 이스라엘을 방어하고 보존하였다는 뜻이다. 엘리야의 기도와 조언과 하나님의 능력은 이스라엘에게 큰 힘과 능력이었다. 하늘로 올리운 그는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다. 엘리사는 돌아올 때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쳤는데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고 엘리사는 그 강을 건넜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사를 통해 동일한 능력을 나타내셨다. 그것은 엘리야의 영감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엘리사 위에 임하였음을 증거하였다.

[15-18절]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50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50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은 50명을 보내어 엘리야를 사흘 동안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였다. 엘리야은 확실히 승천하였다.

[19-22절]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엘리사가 한 물의 회복의 선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23-25절]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42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조롱하고 비난한 악을 크게 징벌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천국을 확신하자. 엘리야의 승천은 엘리사나 벧엘과 여리고의 선지 생도들이 미리 알고 있었고 친히 보고 증거한 사건이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어가지고 왔고 여리고의 생도들은 용사 50명을 보내어 사흘간 엘리야의 몸을 두루 찾았으나 발견치 못했다. 엘리야의 승천은 에녹의 승천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예표하며 천국의 존재를 확증한다. 성경은 천국을 밝히 증거한다(벧후 3:12-13; 계 21:1-7).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사상과 능력을 구하며 받자.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배교과 타협의 시대에 엘리야에게 주셨던 그 바른 영, 바른 정신, 바른 생각, 바른 영감, 바른 능력을 받기를 소원하였다. 그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면서 그의 영의 갑절을 받기를 원하였다. 우리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보다 더 어둡고 악한 시대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거짓된 종들을 분별하여 떠나고 참된 종들을 존중하며 따르자.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영원히 거하신다. 우리는 성경말씀의 바른 지식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늘 구하며 받자.

3장: 모압을 이기게 하심

[1-3절] 유다 왕 여호사밧의 18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2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통치 12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사람의 시간표와 다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 보기에 더딘 것 같다. 여호람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우상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 여로보암의 죄란 그가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 것이었다. 모든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그의 진노를 받을 만하다. 여호람은 약간 경건하였으나, 그의 믿음과 순종은 불완전하였다.

[4-5절]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10만의 털과 수양[숫양] 10만의 털[새끼양 십만과 숫양 십만과 그 털](KJV)5)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모압의 배반은 아합의 아들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6-8절] 그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저가 가로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여호사밧의 문제는 악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와 그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왕과 그 백성과 교제할 수 있는가? 잘못된 교제와 악의 용납이 그의 문제점이었다. 에돔 광야 길은 사해 서남부와 남부를 돌아 모압으로 가는 길이다. 모압 남쪽에는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이 있었다.

[9-12절]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 지 7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과 에돔 왕과 함께 행하였는데 7일이 지나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었다. 이스라엘 왕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여호사밧은 어려울 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함께 엘리사에게로 내려갔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선지자에게로 내려갔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으로 간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13-15절]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여호사밧은 아합이나 여호람과 교제하는 것이 잘못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고, 엘리사는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는 엘리사를 감동하셨다. 그는 때때로 음악을 사용하여 주의 종들을 감동하신다.

[16-20절]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도랑]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이었다. 그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베푸신 긍휼이었고 또 악한 여호람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긍휼이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21-25절]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압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주셨다.

[26-27절] 모압 왕이 전세(戰勢)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7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이에 자기 위(位)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이스라엘에 대한 큰 분노가 있었으며]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 왕이 맏아들을 번제로 드린 것은 참으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분노라는 말이 없으므로 이것은 모압 왕의 분노를 가리킨 것 같다. 모압 왕은 이스라엘에 대해 크게 분노하여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실 만한 악한 일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동맹한 왕들도, 아마 큰 충격을 받아 모압 왕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고 순종하자. 여호람의 문제는 순수하지 못한 믿음과 불완전한 순종에 있었다. 그가 부친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한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은 것은 잘못한 일이었다. 여호사밧이 아합이나 여호람과 교제를 계속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 사람은 다 부족이 많은 것 같다. 한가지 점에서 바른가 하면, 다른 점에서 잘못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흠과 점이 없는 인격과 삶을 원하신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였다(벧후 3:14).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늘 사모하고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악한 여호람과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고 여호사밧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의 구원도, 생존도, 평안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우리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닫고(고전 15:10) 항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고(행 13:43) 그 은혜를 항상 사모하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자. 그때 평강과 승리가 있다.

4장: 엘리사를 통한 기적들

1-7절, 기름병 기적

[1절]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債主)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선지자의 생도들, 즉 오늘날 신학생들의 아내들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말하였다. 선지자의 생도는 일반 신도들 중에서 특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 자이었다. 그 여인은 자기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한 자이었으며 그것을 선지자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선지 생도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이었다. 또 그 여인은 자기 남편을 ‘당신의 종’ 즉 선지자의 종이라고 두 번이나 표현하였다. 또 그는 뒤에 자기 자신도 ‘[당신의] 계집종’이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겸손과 스승에 대한 공경심과 순종심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경건한 선지 생도가 그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죽었다. 더욱이, 빚까지 남겨두고 죽었다. 이제 채주가 와서 그 아이들을 종으로 삼으려 했다. 그의 가정은 참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왜 이런 형편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단지 아는 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때때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할 수 있다. 경건한 다윗은 10여년간 자주 배고팠을 피난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의 종 바울은 전도사역을 하면서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이 다녔다(고전 4:9-13).

그 여인은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 선지자에게 찾아와 부르짖었다. 엘리사는 하나님과 동행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열왕기하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36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많은 사람, 또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곁에 있고 그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큰 행복이었다. 우리에게는 엘리사보다 더 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그는 위대하신 중보자이시며 구주이시다!! 그는 친히 우리에게 약속하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2-7절]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빌리라]. 빈 그릇을 빌되[빌리되] 조금 빌지[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그 죽은 선지 생도의 아내가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이웃에게 그릇을 빌려 기름을 그 모든 빌린 그릇에 부으라고 말했다. 기름을 다 채우자 기름이 곧 그쳤다. 그 여인은 모든 그릇에 채워진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였다. 그의 기름 한 병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그 가정을 돌아보셨다. 한 아이가 자기가 먹으려고 가지고 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 예수께 드렸을 때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났었다(요 6: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비록 그것이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기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은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자기 종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비록 외적 기적을 통해서는 아닐지라도,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때로는 예기치 못한 환경여건을 통해, 또 때로는 자신들의 부지런한 노력의 대가를 누리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돌보시고 도우시며 지키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종들과 백성들은 때때로 심히 어려운 처지에 있을 수 있다. 다윗도, 바울도, 우리 주님 자신께서도 그러하셨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시 34:19).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성도의 삶은 고난의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믿고 낙망치 말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과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도우신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섭리자이시며 전능하신 주님이시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하였다(시 23:1-2).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의식주의 필요]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셋째로,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자. 우리는 엘리사보다 더 크시고 더 능력이 많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고 있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7:7-8). 또 주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자(빌 4:6-7).

8-37절, 수넴 여인에게 주신 기적

[8-10절]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懇勸)하여[간절히 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수넴은 갈릴리 지방의 잇사갈 지파에 속한 마을로 이스르엘 성에서 북쪽으로 약 5킬로미터쯤 떨어진 성이다. ‘귀한 여인’이라는 원어(이솨 게돌라)는 ‘유력한 여인’(a great woman)(KJV)이라는 뜻이다. 신앙과 인품과 재력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녀가 없었고 그의 남편은 늙었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그 여인의 믿음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부족함이 있을 때 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된다.

그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았다. 그는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 간절히 권하여 음식을 들게 하였고 그 때문에 엘리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 집으로 들어갔다. 또 그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청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지붕 위에 조용한 방을 지었고 침상, 책상, 의자, 등잔대 등을 준비하였다.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라는 원어(나아센나 알리야스-키르 케탄나)는 ‘벽이 있는 작은 지붕방을 짓고’라는 뜻이며, ‘촛대’라는 원어(메노라)는 ‘등잔대’를 가리킨다. 그는 이렇게 정성을 다해 엘리사를 영접하며 대접하였다.

[11-13절]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카라드트 엘레누 엣-콜-하카라다)[네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배려로 배려하였도다](BDB, KJV, NASB).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그 여인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을 경외하고 정성껏 영접한 것뿐이었고 계산적인 세속적 욕심을 품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14-16절]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돐[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알고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존중하여 말하며 자신을 ‘당신의 계집종’이라고 겸손하게 낮추면서, 비록 그가 아들을 가지고 싶었겠지만 감히 그것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허망한 욕심의 소원을 갖기를 원치 않았다.

[17-20절]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그 여인이 아들을 낳은 것은 그의 믿음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여인에게 고통스런 위기가 찾아왔다. 그 아이는 어느 날 머리가 아파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었다. 이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높으신 뜻 가운데서 이런 저런 이유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다.

[21-25절]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초하루나 안식일에는 선지자의 집에 모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보인다(킴치, 델리취). 그 여인은 평소에 경건한 자이었다. 그는 나귀를 몰게 하여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갔다.

[25-28절] . . .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는 그 여인의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긴 사실을 깨달았다.

[29-31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보내려 했으나 그 여인은 선지자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일어나 그 여인을 따라갔다.

[32-35절]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의 힘이 자기 속에서 느껴졌고 그것을 전달한 의욕이 넘쳤던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다. 그가 아이의 몸에 엎드리자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그가 두 번 그렇게 하자 그 아이는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떴다. 그 아이가 살았다.

[36-37절]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수넴 여인의 신앙과 인품을 본받자. 우상숭배로 어두어진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경건하였다. 또 그는 하나님의 참된 종을 존중하였고 그를 정성껏, 항상 대접하며 그를 위해 작은 지붕방을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등잔대를 준비하였다. 불경건한 자들은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할 것이나,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의 참된 말씀을 사모할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오늘날 이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경건한 신앙과 인품을 가지자.

둘째로, 우리는 환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수넴 여인은 큰 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을 바라고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했고, 그 환난을 믿음과 기도로 잘 극복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종 환난이 닥쳐오지만, 엘리사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자.


38-44절, 국과 떡의 기적

[38-41절]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害毒)이 없어지니라.

길갈은 요단강 하류에 있는 도시이었다.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선지학교가 있었다(왕하 2장). 그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때때로 흉년을 주신다. 배교적인 시대는 더욱 그러했다. 엘리야 때에 3년 동안의 기근이 있었고 엘리사 때에도 흉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살길을 주신다.

그가 길갈에 오자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사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엘리사를 통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그 앞에 모여 앉았을 것이다. 옛 시대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이었다. 오늘날에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우리는 성경 앞에 앉아서 성경을 읽든지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 생도들의 육신의 필요도 아시고 공급하셨다. 그는 우리의 육신적 필요도 아시고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엘리사는 그들의 음식에 대해 배려하였다. 그들을 위한 식탁은 간단했던 것 같다. 선지 생도들의 삶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저축이 있는 유여한 삶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흉년을 이기기 위해 들에 나가 채소를 구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딤전 6:7-10).

그들은 한 동료가 국에 썰어 넣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선지자의 수종자는 그 국을 그냥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다. 그런데 무리가 그 국을 먹다가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라고 외치며 그것을 먹지 못하였다.

한끼 식사가 귀했을 그 흉년의 때에 큰솥의 국을 다 못쓰게 됐다. 선지 생도들은 국 없는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게 하여 솥에 넣어 해독(害毒)이 없어지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선지 생도들의 식탁을 위하여 긍휼의 기적을 베푸셨다.

[42-44절]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20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100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본문은 떡 기적을 증거한다. ‘채소’라는 원어(카르멜)는 ‘새 곡식 이삭들’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거기서 훈련받고 있던 선지 생도들이 100명이나 되었는데, 보리떡 20개는 그들을 위해 너무 부족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엘리사를 통해 주신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다 먹고 남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 생도들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비상하게 돌보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흉년을 견디게 하신다. 엘리야 때에도 3년간이나 흉년이 있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게 하시면서 까마귀들을 사용하셔서 떡과 고기를 가져오게 하셨다. 또 그 시냇물이 다 말랐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로 가게 하셔서 거기서 거하게 하셨다. 엘리사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선지 생도들을 굶지 않게 하셨다. 세상에는 때때로 기근이 있다. 우리는 기근의 때에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33:19에서, “[하나님께서]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고 증거하였다. 우리는 기근 때에도 견디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독이라도 피하게 하신다. 그들이 국에 넣었던 야등덩굴에 달린 들외에 사망의 독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그 죽음의 독을 제거해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기적을 구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위험한 일을 막아주시고 빠르게 의학적 조치를 받게 하신다고 믿는다. 시편 91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므로 우리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을 두려워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그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셨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10:29-31).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떡 20개를 가지고 100명의 선지 생도들이 먹고 남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넉넉하게 공급하시는 자이시다. 다윗은 시편 23:1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하였고, 또 시편 34:9-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찾는 자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말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엘리사보다 크신 분이시다. 그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성령으로 우리 개인과 교회 속에 영원히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하신다(엡 3:20).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자.


5장: 나아만의 나병을 고침

[1-3절]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에서도 역사하신다. 나아만은 나병 환자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작은 여자아이가 전해준 말 때문에 그는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4-7절]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10달란트와 금 6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은 10달란트, 약 300킬로그램과, 금 6,000개, 아마 6,000세겔, 약 68킬로그램과 의복 열 벌 등 그가 가지고 간 선물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의 편지를 읽고 너무 기가 막혀서 자기 옷을 찢으며 그가 고의로 시비를 걸어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사람으로서 그 누가 나병 같은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8-12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권력 앞에서 아부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그것은 어려운 요구사항이 아니고 단지 나아만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아만은 처음에 노하여 물러가려 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앞세웠다. 그것은 그의 교만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실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다. 사람들은 교만하여 자기 주관적 생각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13-14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의 종들의 말은 바르고 합당한 조언이었다. 다행히 나아만은 그 종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는 처음에 잘못 생각했던 생각을 고쳤다. 그는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는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병으로 지저분하게 상하였던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된 것이다. 그는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순종하였을 때 그 무서운 병의 고침을 받았던 것이다.

[15-16절]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固辭)한지라.

나아만은 모든 수행원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아와서 그 앞에 서서 나병을 고쳐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 그것은 그의 병고침을 통해 그가 깨닫고 확신케 된 신앙고백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놀라운 증거이었다.

엘리사는 그가 주는 예물은 거절하였다. 그는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물질적 탐욕을 품었던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나 이방 선지자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소망을 두는 모든 진실한 성도들은 다 그러해야 한다.

[17-19절]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나아만은 이제부터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결심을 고백하였다.

[20-24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부담을 주지 않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는 나아만의 뒤를 좇아가 거짓말로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요청하였다. 나아만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그에게 주었다. 게하시는 그 물건을 집에 감추었다.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었다.

[25-27절]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징벌의 선언은 무서웠다. 게하시는 나병에 걸렸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이 진리는 이방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통해 증거되었다. 나아만이 고백한 그 하나님이 바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오직 그 하나님만 믿고 섬겨야 한다.

둘째로, 나아만의 병고침은 구원의 모형이다. 모든 죄인은 나병환자와 같다. 구주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교만과 주관적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으며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만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는 실패자의 모형이다. 그는 물질적 욕심을 품다가 결국 나아만의 나병이 그에게 옮겨졌다. 하나님의 징벌은 무섭다. 욕심을 품으면 실패한다.

6장: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심

1-7절, 도끼를 물에 빠뜨림

[1-2절]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사의 지도 아래 많은 선지 생도들이 양성을 받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선지 생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현재의 장소는 그들이 생활하는 데 좁았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으로 가서 각각 통나무를 하나씩 취하여 집을 짓겠다고 제안하였다. 선지학교를 건축할 여유가 없었다. 어떤 이는 도끼까지 빌려 왔다. 그들은 일에 서툴렀다. 선지학교 건축공사는 자재들이 잘 준비되었거나 재정적으로 넉넉했거나 기술자들이 확보된 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는 공사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협력정신을 발휘하여 행하였다.

무엇보다, 그 공사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의 처소가 너무 좁았다. 필요성이 없는 데도 하거나 필요 이상의 것을 하는 건축은 사치요 허영이요 낭비이다. 세상 종교들은 그들의 신전(神殿)을 거대하고 호화롭게 건립하고 장식하였다. 중세의 천주교회들도 성당들을 크고 호화롭게 지었다. 그러나 사도 시대의 교회는 가정교회이었다. 예배당은 필요한 정도만큼의 규모로 짓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2-4절] . . .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문제뿐 아니라 먹는 문제도, 또 거처하는 곳의 문제도 무관심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들의 백합화에게 입을 것을 주신다. 그는 우리의 영육의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신다. 주께서는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32).

[5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빌려온] 것이니이다.

주의 일을 하는 데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함께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인 데도 사고나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날 때 큰 풍랑이 일어났던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상히 여기거나 낙심치 말아야 한다. 어려운 문제는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어떤 깊은 뜻이 계실 것이며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롬 8:28).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은 작지 않은 사고이었다. 여유 있는 자는 하나 사면 되니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닐지 몰라도 지금 그것은 빌려온 것이다. 그는 살 말한 여유가 없는 형편이었다. 또 그것은 친구나 이웃 등 아마 일반 사람에게서 빌려 왔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있는 일이었다. 선지 생도들의 거처를 짓는 좋은 일이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함께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인데 이웃에게 손실을 끼치는 사고가 나는가? 그러므로 인간적으로는 아마 낙심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6-7절]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인간의 이성적 이해와 판단을 넘어선 일들을 때때로 행하셨다. 나뭇가지는 기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위해 빈번히 도구를 사용하셨다. 모세의 지팡이는 기적을 위한 도구이었다. 엘리사는 이전에 소금을 던져 나쁜 물을 고쳤고 가루를 넣어 독을 제거했었다(왕하 2:21; 4:41). 그 선지 생도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체험하며 위로와 힘을 얻었을 것이다. 어렵고 낙망할 만한 환경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쁨과 위로와 격려를 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소원을 허락하시고 그 일에 함께하신다. 선지 생도들은 그들의 거처 확장을 소원했고 그것을 위해 건축의 일을 계획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셨고 그들은 그 일을 위해 협력했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했다(빌 2:13). 물론 그때 우리는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히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야 한다(빌 2:3).

둘째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때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다. 사탄과 악령들은 우리의 일을 방해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깊은 뜻 가운데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그것은 다 우리에게 신앙의 연단이 된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전도의 선한 일을 할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다. 그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었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고백했고(고전 4:11, 13)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였다(딤후 4:5).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당황하지 말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자기의 종들과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가난한 선지 생도가 빌려온 도끼가 물에 빠진 딱한 형편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기적을 베푸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의 능력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과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운 일의 해결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자.

8-23절, 불말과 불병거

[8-10절]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과 밀접히 기도로 교통하는 자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기이하게도 그에게 아람 왕의 계획들을 알게 하셨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알게 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기한 은혜이었다.

[11-13절]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內應)[내통하는 자]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엘리사에 대한 소문은 아람 왕의 신복들 중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아람 왕은 그를 잡기 위해 그가 있는 도단성으로 가려 했다.

[14-17절]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또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와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또 그는 하나님께 그의 수종자의 눈을 열어 그것을 보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수종자의 눈도 여셨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는 비상하게 일하신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은 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이다. 천사들은 특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도우며 보호한다.

[18-19절]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적 혹은 육적 눈을 밝게도 하시고 어둡게도 하신다. 그들이 엘리사를 잡으러 왔으나, 엘리사는 자기 때문에 도단 성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들을 사마리아 성으로 인도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사마리아 성에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충분한 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상 그 아람 군대를 죽이기를 원치 않으셨다.

[20-23절]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아람 군사들은 자신들이 사마리아 성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매우 놀라며 당황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그들을 치리이까 하고 묻자, 엘리사는 그들이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왕은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많이 베풀었다. 정말 은혜로운 장면이다.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온 아람 군대, 이스라엘과 전쟁 상태에 있었던 적군인 그들에게 엘리사와 이스라엘 왕은 공의의 보복 대신에 풍성한 식탁으로 대접했던 것이다. 이런 대접은 아람 왕과 그 군대를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밝게도 하시고 어둡게도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사에게 아람 왕의 계획까지 아는 지식을 주셨고 그를 보호하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셨고 그를 수종드는 자의 눈도 열어 그것을 보게 하셨다. 또 그는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도 하셨고 그들의 눈을 밝게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도 밝게 하실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종들을 보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이스라엘 왕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가 아람 군대의 습격을 여러 번 피하게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도단 성에 살던 엘리사를 비상하게 구원하셨다. 그는 자기 백성과 종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보호하신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고 말했다(고후 1:10).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그의 종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자. 엘리사는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온 아람 군대에게 음식을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얼마나 은혜로운 행동인가! 이것은 주께서 교훈하신 바이었다. 주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 너희를 모욕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마 5:44 전통본문; 눅 6:27-28). 우리는 성경의 이런 교훈을 따라 악한 자들에게도 선을 베풂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자.

24-33절, 사마리아 성의 극심한 굶주림

[24-30절]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약 910그램]이요 합분태 4분 1갑에 은 다섯 세겔[약 57그램]이라.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싼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재앙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후에도 회개치 않은 악한 왕이었다(왕하 3:2). 합분태는 비둘기똥을 가리킨다. 1갑은 6분의 1스아이며 약 1.2리터이다. 물가는 몹시 올랐고 먹을 식량은 심히 부족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굶주려서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은 역사상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한 징벌로 이미 예언된 바이었다(신 28:53-57).

[31-33절]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그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내가]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왕은 아직 하나님의 사람이 이 재앙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물리치지 않는다고 그를 매우 원망하였던 것 같다. 엘리사는 사자가 그를 잡으러 오는 것을 미리 알았다. 왕은 사자를 보낸 후 그를 뒤따라 왔던 것 같다. 아마 선지자를 죽이려는 그의 결정을 후회하면서 뒤따라 왔을지 모른다(델리취, 박윤선).

7장: 아람 군대를 물러가게 하심

[1-2절]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한 스아는 약 7.3리터이었고, 한 갑보다 여섯 배가 많은 분량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놀라운 일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못하실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능력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지금 하나님의 징벌로 극심한 굶주림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위로와 소망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에 있다. 시편 30:5는,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신 자이시다. 그러나 왕의 한 장관은 매우 불신앙적이었다.

[3-8절]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성문 어귀에 있던 네 명의 나병환자는 너무 굶주림이 심해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려 갔다. 그러나 아람 사람들이 그들의 장막들과 말들과 나귀들을 그대로 둔 채 정신 없이 다 도망치고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듣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의 도움을 청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나병 환자들은 아람 진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의복을 취하였고 그것들을 감추었다.

[9-15절]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저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저희가 왕궁에 있는 자에게 고하니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 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그 신복 중 하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소서.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저희가 병거 둘과 그 말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그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고하매.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선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아람 진영에 대한 일을 사마리아성에 알렸다. 이스라엘 왕은 그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는 그 일을 믿을 수 없어서 그것을 아람 사람들의 속임수라고 의심하였으나, 나중에 정탐꾼을 보내어 그것을 확인하였다.

[16-20절]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로라. 일찌기[일찍이]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즉 그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었으되 곧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죽었더라.

어제에 비둘기똥 4분의 1갑 즉 24분의 1스아에 은 다섯 세겔이었으나, 오늘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으니, 다섯 세겔이면 다섯 스아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양으로만 비교해도, 어제보다 무려 120배가 더 많고, 그것도 비둘기똥이 아니고 고운 가루로 그러했다. 다시 말해, 물가가 120분의 1 이상으로 떨어질 정도로 먹을 것이 넉넉해졌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쉽게 이 일을 이루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이스라엘이라도 범죄하고 악을 행할 때 무섭게 징벌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굶주림과, 율법에 경고한 대로 사람이 자기의 자녀를 삶아먹는 비극적인 일까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진노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사람들의 죄악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만 의지하자.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의지해야 한다. 예레미야 애가 3:19-23,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또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너무 굶주려 자식을 잡아먹는 일까지 생겼던 사마리아 성에 하룻밤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게 하셨던 하나님을 의지하자. 인생의 어려운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만 믿자. 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믿는 자가 되자. 왕의 장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불신앙적인 말을 했다.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롬 4:19-21).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요 3:16-18). 우리는 도마처럼 무엇을 보고 믿으려 하지 말고, 증거된 말씀에 의거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자(요 20:27-29).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자.

8장: 여호람과 아하시야

[1-3절]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7년 동안 임하리라.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7년을 우거하다가 7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본문은 엘리사가 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수넴 여인이 7년 기근을 피하고 돌아와 땅을 돌려받은 내용을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그 여인과 그 가족들에게 7년 기근이라는 무서운 기근의 때에도 피할 길을 허락하셨다. 그 후에 돌아와 그 집과 전토를 찾게 하셨다.

[4-6절]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성경의 기적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것은 증인들이 있는 사건들이었다. 여기에 엘리사의 많은 기적들 중 하나가 실감나게 기록되었다. 이런 일이 없어도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다 믿어야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더욱 그 기적이 확증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사건들을 믿어야 한다.

[7-15절]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하사엘이 드디어 맞으러 갈새 다메섹 모든 아름다운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가지고 약대 40에 싣고 나아가서 저의 앞에 서서 가로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어 가로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사엘이 가로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이까?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대답하되 저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정녕 나으시리라 하더이다.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은 엘리사가 아람 왕 벤하닷이 죽을 것과 하사엘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의 왕까지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대신해 아람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벤하닷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16-19절]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5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오히려 위(位)에 있을 때에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여호람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32세라. 예루살렘에서 8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본문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부패를 증거한다.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다. 왜냐하면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결혼은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또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종 다윗 때문에 유다를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

[20-24절]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그러나 그의 군대는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6)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였으며 그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은 여호람 때에 에돔과 립나가 유다를 배반한 일을 기록한다. 이렇게 에돔과 립나가 배반한 것은 유다 왕과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25-29절]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12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22세라. 예루살렘에서 1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본문은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의 부패를 증거한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것은 그가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교제는 종교적, 도덕적 부패를 가져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것들은 지어낸 신화적 이야기들이 아니다. 성경 저자들은 거짓 증인들이 아니다. 성경은 거짓 증언의 책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내용들의 진실한 증거성를 알고 그것들을 다 믿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인도하시고 먹이신다. 경건한 수넴 여인은 혹독한 7년 기근을 피했고 또 기근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와 자기의 집과 전토뿐 아니라, 그가 떠날 때부터 그때까지의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받게 되었다. 주의 말씀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마 6:3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열국들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왕 벤하닷의 죽음을 섭리하셨고 그의 뒤를 이을 자로 하사엘을 예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섭리하신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넷째로, 유다 왕국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원인은 잘못된 교제에 있었다. 여호사밧은 경건하고 선한 왕이었지만, 북방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교제했고, 그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과 결혼시키기까지 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아합의 집 길, 즉 우상숭배의 길로 행하였고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결혼은 교제의 대표적 예이다. 이방인들, 곧 불신자들과의 결혼은 신앙생활의 해이와 부패의 첩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나 이단자나 불순종자와의 교제를 멀리해야 한다.

9장: 예후의 반역

[1-10절]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예후가 반역하여 왕 여호람(요람)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국뿐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왕까지도 섭리하셔서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뿐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왕들을 주관하신다. 다니엘 4:17은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자라고 증거하였다.

[11-15절]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는 이렇게 요람을 배반하였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를 죽였던 아합과 이세벨을 향하여 선언된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그의 아들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16-20절]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이스르엘 망대에 파숫군[파수꾼]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파수꾼]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저희에게 가서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파수꾼]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21-24절]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아합의 아들 요람은 자기의 신하 예후가 반역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던 것 같다. 요람은 매우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25-26절]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지니라.

예후는 소년 선지자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이루려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될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을 향해 선언된 하나님의 심판 선고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악인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악인은 마지막 심판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천벌을 받는다.

[27-29절]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11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유다 왕 여호사밧은 악한 아합과 잘못된 교제를 계속하더니, 그의 손자 아하시야는 이렇게 무력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유다 왕국의 잘못된 교제와 우상숭배의 영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30-37절]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가로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가로되 저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가로되 가서 이 저주받은 계집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우상숭배자 이세벨은 자기 몸단장에 힘썼던 여인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자는 세상적이고 육체적이고 정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내시들이 그를 내려던지므로 죽임을 당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신명기 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반드시 징벌하신다. 그는 아합의 집을 다 멸망시키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과 의로운 백성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은 마지막 심판 날에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범죄치 말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바를 그대로 다 이루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여호수아 21: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어떤 약속의 말씀이 있는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약속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굳게 붙잡자.

10장: 예후가 한 일

[1-7절] 아합의 아들 70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位)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궁내 대신[비서실장]과 부윤[시장]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70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70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예후는 아합 집에 속한 사람들을 다 죽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이었다. 하루아침에 70명의 아들들이 몰살당하다니 참으로 가련한 아합 왕가이었다. 우리는 이 일에서 자식 많다고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아합 왕가를 치시니 하루아침에 그 훌륭하게 보였던 많은 자식들이 몰살되고 말았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면 자식 많은 것이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경건하고 의롭게 살며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훈하고 훈련시킴으로 그들이 복되게 해야 한다.

[8-11절]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심판은 준엄하며 철저하였다. 하나님의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빠짐 없이 성취되었다.

[12-14절]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42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사밧의 손자들 42명은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왔다가 다 죽임을 당했다. 경건한 여호사밧이 불경건한 아합과 교제하며 사돈 관계까지 맺은 결과는 이런 비극적인 일을 가져왔다. 그들은 아합 왕가와 일찍부터 교제를 끊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저 무지한 타협자들이 몰살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참으로 가련한 타협자의 후손들이었다.

[15-17절] 예후가 거기서 떠나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맞으러 오는 것을 만난지라. 그 안부를 묻고 가로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가로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예후는 사마리아에 가서 거기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도 다 죽였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합 왕가에 철저한 심판을 내리셨다.

[18-21절] 예후가 뭇백성을 모으고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치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오게 하라. 무릇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리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궤계를 씀이라.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하였더라.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두루 보내었더니 무릇 바알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당에 들어가매 이편부터 저편까지 가득하였더라.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멸하려고 속임수를 썼고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열었고 바알 숭배자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초청하였다. 새 통치자가 바알을 위해 큰 제사를 드릴 대회를 선포했으니 바알 숭배자들은 자기 세상이 왔다고 잠시 동안 기뻐했을 것이다.

[22-27절]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어다가 무릇 바알 섬기는 자에게 주라 하매 저희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으로 더불어 바알의 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80인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붙이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에게 예복을 입혔고 제사가 끝난 후 그들을 다 죽였다. 또 그들은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돌기둥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돌기둥을 헐었다. 한글개역성경 26, 27절에 ‘목상(木像)’이라고 번역된 원어(맛체바)는 ‘돌기둥’을 가리킨다(BDB, NASB, NIV).

[28-31절]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4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칭찬도 들었으나,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

[32-36절] 이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이스라엘을 찢으시매 하사엘이 그 사방을 치되 요단 동편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예후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모든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후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28년이더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엄중하고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그는 아합 왕가를 엄중하고 철저하게 심판하셨다. 아합의 아들들 70명은 하루아침에 몰살을 당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여호사밧의 잘못된 교제에 대해서도 징벌하셨다. 여호사밧의 손자 42명도 하루아침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아합이나 여호사밧에게는 자녀들과 손자들이 많음이 복이 되지 못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바알 숭배자들도 엄중하게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 엄하게 진노하시며 심판하신다. 아합의 우상숭배나 여호사밧의 잘못된 교제는 결코 간과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하자. 우리의 모든 죄들을 낱낱이 고백하고 회개하고 또 우리 자녀들도 죄를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교훈하자.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남김 없이 다 이루어진다. 예후가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들, 곧 그 아들들 70명과 이스르엘에서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 존귀한 자들과 가까운 친구들과 제사장들, 또 사마리아에서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남김 없이 다 죽인 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10절,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7절,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마태복음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즉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말씀을 다 믿고 다 소망하고 다 행하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점을 극복하자. 예후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우상숭배자 아합을 징벌하였고 바알 숭배자들을 다 죽였다. 그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4대까지 이어질 것이었고 그 자신도 28년이나 길게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죄악, 즉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연약이었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씩 약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한 회개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온전해져야 한다.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온전한 인격과 삶,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11장: 요아스가 왕이 됨

[1-3절]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6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는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들을 다 죽였다. 그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왕하 8:26) 곧 아합의 딸로서 우상숭배자이며 악한 여자이었고 그를 통해 유다 왕국에 우상숭배가 널리 퍼졌음에 틀림없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는 악한 일을 행한다. 그러나 그때 요람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 즉 요아스의 고모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훔쳐내었고 그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 여호세바(혹은 여호사브앗)는 경건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었다(대하 22:11). 그는 경건하고 선하였다. 그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아스를 건져내어 숨겼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그들 부부의 경건하고 바른 생각과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달랴는 고의적으로 왕의 어린 아들들을 다 죽이고 불의하고 악하게 왕권을 취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그 악한 여인의 결말은 가련하였다.

[4-8절] 제7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3분 1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3분 1은 수르문에 있고 3분 1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가리 사람들은 예전부터 다윗을 따라왔던 블레셋 사람들인 그렛 사람들(삼하 20:23)을 가리키는 것 같다.

[9-12절]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왕자 요아스는 7살이 되었을 뿐이다(21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을 유다의 왕위에 보존하셨다. 악인이 득세한 때에도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섭리는 기이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제사장이 그에게 율법책을 준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 것이었다. 신명기 17:18-20은, “그가[왕이]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했다.

[13-16절]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보매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저의 길을 열어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백성의 마음은 이미 악한 여자 아달랴에게서 떠나 있었다. 6년간 불법하게 왕노릇했던 아달랴는 이렇게 가련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17-21절]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호위병의 문 길로 말미암아 왕궁에 이르매 저가 왕의 보좌에 앉으니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7세였더라.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첫 번째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왕과 백성이 다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행할 것을 결심하고 약속한 것이었다. 모세도 광야 40년을 통과하고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재강론한 후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과의 언약을 재확인하였다(신 29:10-13). 후에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다 마치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언약을 새롭게 하게 하였다(수 24:25-27). 또 온 백성은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 2계명을 어긴 죄악을 회개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한 것이었다. 악한 여자 아달랴는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고, 온 국민은 요아스를 왕으로 기름 부은 것을 즐거워하였고 성중은 평온하였다(12, 14, 20절). 잠언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악한 여자 아달랴가 왕의 씨를 다 죽이고 6년 동안 통치하였을 때, 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다윗의 왕통을 보존하셨다. 그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 아내를 사용하셨다. 사람들이 악하고 이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이사야 46:9-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 .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아달랴 같은 악한 자가 되지 말자. 악인의 마지막은 가련한 죽음이다. 가인이나 고라나 아간이나 가룟 유다 등도 그러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남에게 악한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만 살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살자. 그러면 우리의 심령과 삶에 즐거움과 평강이 넘칠 것이다. 이사야 48:17-18,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게 살아 세상에서도 즐거움과 평안의 넘침을 경험하다가 복된 천국에 들어가자.


12장: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함

[1-3절] 예후의 7년에 요아스가 위(位)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40년을 치리(治理)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성경이 왕들의 모친을 말하는 것은 왕의 인격의 됨됨이가 그 모친과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여호야다의 교훈은 바른 성경적 교훈이었을 것이다. 왕이나 평민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바른 성경적 교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잠 22:6). 또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했다(엡 6:4). 우리는 성경적으로 바른 교훈을 사모하고 그 교훈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4-8절]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전(殿)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요아스 왕 23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殿)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저희로 전 퇴락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전 퇴락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응락하니라.

어린 왕 요아스는 성전의 갈라지고 낡은 부분을 수리하려는 선한 생각과 뜻을 가졌다. 그러나 요아스 왕 23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은 오히려 전의 갈라지고 낡은 부분을 수리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성전의 건물 관리에 너무 소홀하였다.

[9-16절]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취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 문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묶었고 세었으며]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저희는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전 퇴락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오직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또 그 은을 받아 일군[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묶었고 세었다’는 말은 동전이나 은전을 꾸러미로 묶고 세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 수리를 하게 한 책임자들은 깨끗하게 일한 충성된 자들이었다. 그것은 후대의 모든 교회 봉사자들에게 본이 된다. 성경은 감독이나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고 했다(딤전 3:8; 딛 1:7).

[17-21절]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 고로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역대하 24장은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말한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는 방백들의 말을 따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다. 그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의 감동으로 책망하는 말을 듣지 않았고, 왕의 명을 좇아 성전 뜰 안에서 그를 돌로 쳐죽였다. 선을 악으로 갚은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고, 요아스는 그 전쟁에서 크게 부상을 당했고, 그때에 그 신복들이 그를 모반하여 그의 침상에서 그를 쳐죽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아스의 슬픈 말로(末路)는 그의 배교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항상 바른 성경적 교훈을 사모하고 그 교훈을 받자. 어린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우리도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성경적 교훈을 받는다면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성전을 잘 수리하자. 본장은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한 일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증거한다. 성전 혹은 예배당의 건립이나 수리는 분명히 선한 일이다. 물론 우리는 오늘날 외적인 예배당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 성전, 곧 우리 개인이나 교회도 잘 건립하고 온전케 하며 또 부족한 부분을 잘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또 성전 건립 혹은 수리에 있어서 우리는 부지런하고 깨끗해야 한다. 우리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하며(롬 12:11) 또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외적, 내적, 개인적, 교회적 성전을 잘 세우고 수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배교에 떨어지지 말자. 요아스의 불행한 죽음은 그의 배교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교훈, 성경적 교훈을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자. 우리는 이 혼란한 말세에 옛신앙을 굳게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