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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Samuel) 11장: 다윗의 범죄 - 18장: 압살롬의 죽음

영국신사77 2020. 4. 14. 18:29


제목차례

11장: 다윗의 범죄

12장: 나단 선지자를 통한 책망

13장: 압살롬이 암논을 죽임

14장: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15장: 압살롬의 반역

16장: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함

17장: 후새의 모략

18장: 압살롬의 죽음


11장: 다윗의 범죄

본장은 다윗의 범죄에 대해 증거한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실한 증거의 책이다. 성경은 옛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의 좋은 면만 증거하지 않고 그들의 실수와 범죄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성경은 진리를 증거하는 진실한 책이다.

[1절]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다윗이 그 군대장군 요압과 그 신복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어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 성을 포위하고 있었을 때이었다. ‘해가 돌아와서’라는 원어(릿슈밧 핫솨나)는 ‘봄이 와서’라는 뜻이라고 한다(BDB, NASB, NIV). 다윗이 범죄한 때는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 중이었던 때였다. 따뜻한 봄이 왔고 이스라엘의 군대가 출전하여 암몬 자손들을 쳐서 이기려던 때이었다. 사람은 고난 중에는 깨어 기도하지만, 평안할 때, 승리할 때 마음이 해이해지고 범죄하기 쉬우므로 그때도 깨어 기도하며 조심해야 한다.


[2-5절]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16)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인이 잉태하매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다. 전쟁 중인 때에 그가 낮잠을 잔 것은 왕으로서 충실한 생활은 아니었다. 다윗의 범죄는 보는 데서 시작되었고, 그 다음 알아보게 하였고, 그 다음 데려오게 하였고, 그 다음 더불어 동침하였다. 하와는 선악과를 본즉 따먹을 마음이 생겼다(창 3:6).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다(마 5:28). 사람이 범죄치 않으려면 보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 속에는 죄악성이 있다. 다윗 속에도 그런 죄악성이 있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6-13절]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의 어떠한 것을 묻고 저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우리아가 그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막사]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留陣)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또 다음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 (이튿날) 다윗이 저를 불러서 저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저가 나가서 그 주의 신복으로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왔으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 자기 아내와 함께 자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충성스런 군인이었다. 다윗은 그를 그 날과 다음날에도(원문, KJV, NASB, NIV) 예루살렘에 유하게 했으나, 그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윗의 계획은 실패하였다.


[14-17절]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부쳐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의 있는 줄을 아는 그곳에 우리아를 두니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아침이 되자 다윗은 한 무서운 편지를 요압에게 써서 우리아의 손에 보내었다. 그것은 우리아를 앞세워 죽게 하라는 지시를 담은 것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다가 충실한 신하 우리아를 고의적으로 죽게 하는 사악한 살인죄까지 범하였다. 그는 한가지 죄를 감추려다가 더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살인이 아니고 충성된 신하를 고의적으로 죽게 한 살인이었다.


[18-21절] 요압이 보내어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고할새 그 사자에게 명하여 가로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저희가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윗짝을 그 위에 던지매 저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22-25절] 사자가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의 모든 보낸 일을 고하여 가로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승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온 고로 우리가 저희를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신복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저를 담대케 하라 하니라.


[26-27절] 우리아의 처가 그 남편 우리아의 죽었음을 듣고 호곡하니라. 그 장사를 마치매 다윗이 보내어 저를 궁으로 데려오니 저가 그 처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사람은 평안하거나 승리했을 때 조심해야 한다. 다윗은 암몬 자손들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을 때 범죄했다. 그는 고난 중에는 크게 범죄한 것 같지 않으나, 평안할 때에 큰 죄를 범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고난의 때보다 평안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평안할 때에 마음이 해이해져서 범죄하기 쉽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속에 죄성이 있음을 깨닫고 늘 조심해야 한다. 다윗은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 속에 인간의 죄악성이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죄성이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베드로도 주님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으나, 주님의 예언대로 그 날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마 26:33-35; 69-75). 주께서는 그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6:41). 우리가 범죄하지 않으려면 늘 깨어 기도하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셋째로, 우리는 처음 범죄했을 때 그것을 숨기지 말고 즉시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더 큰 죄를 지었다. 그는 간음죄를 숨기려다가 살인죄까지 지은 것이다. 우리는 처음 죄를 깨달을 때 숨기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잠언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처음 범죄했을 때 그것을 숨기지 말고 즉시 회개하자.


12장: 나단 선지자를 통한 책망

[1-4절]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범죄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다윗을 버려두지 않으셨고 나단을 보내어 그 죄를 깨우치셨고 그로 회개하도록 도우셨다.


[5-6절]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4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사람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무디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고 분명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다윗은 그런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며 그가 빼앗은 양은 네 배나 갚아 주어야 마땅하다고 옳게 판단하였다. 세상에 그런 나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7-9절]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단은 참으로 충성되고 용감한 선지자이었다. 바른 판단을 못하거나 바른 판단을 해도 바른 말을 못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기분이나 맞추려는 아첨꾼들과 거짓 교사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나단은 하나님의 충성된 선지자이었다.

우리아는 암몬 자손의 칼에 죽었다고 표현되었다. 그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이라는 뜻일 것이다.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었다’는 표현은 전왕(前王)의 권좌를 취했다는 표현일 것이다. 다윗이 사울의 처들을 취했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또 성경이 그런 암시를 하지도 않는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임을 지적하셨다. 죄란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인격과 권위를 모독한 악한 일이다.


[10-12절]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災禍)[재앙]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나단은 다윗에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징벌은, 첫째, ‘칼이 네 집을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다. 다윗의 집안에는 형제간에 서로 죽임과 부자간에 서로 죽임이 있을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이 대낮에 네 처들을 범하리라’는 것이었다. 다윗은 후에 그런 고통스런 일을 당할 것이다.


[13-15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은 즉시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말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지적 앞에 겸손히 엎드렸다. 그는 참으로 회개하였다. 모든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제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라는 이 진실한 한마디의 고백이다.

나단은 즉시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고 회개하면 즉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가 모든 징벌의 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선포된 징벌은 그대로 시행될 것이다. 죄에 대한 징벌의 대가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미 선포된 징벌에 더하여,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했다. 그러한 징벌의 이유는 하나님의 원수들로 크게 비난할 거리를 얻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5-19절] . . .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그가 심히 앓았다. ‘우리아의 처’라는 표현은 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다윗의 아이이지만, 그가 우리아의 처이었을 때 가진 아이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불법적으로 잉태되어 낳은 아이를 죽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런 일을 행하신다.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7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마침내 그 아이는 7일 만에 죽었다.


[20-23절]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아이의 죽은 것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었다.


[24-25절]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다윗은 ‘그의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는데,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사랑하셔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 이름을 여디디야, 곧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고 하셨다. 그는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아내이었던 밧세바를 이렇게 위로하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26-31절]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王城)[수도]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 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약 34킬로그램]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17)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자. 다윗의 죄는 단지 우리아에게나 밧세바에게 지은 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긴 행위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이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긴 행위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이다. 우리가 죄의 이 성격을 깨닫는다면,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죄의 극악한 성격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무서움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한 다윗의 죄를 즉시 용서하셨지만, 그에게 선언한 징벌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칼이 그의 집을 영영히 떠나지 않게 하셨고 다른 사람이 그의 처들을 대낮에 범하게 하셨고 밧세바가 낳아준 아이가 죽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며 또 그의 선하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의 그런 징벌이 없다면, 죄성을 가진 인간은 또다시 죄를 반복하는 잘못을 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는 혹시 범죄했을지라도 다윗처럼 회개하자.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지라도 회개하자. 땅 위에서 받는 하나님의 징벌은 오히려 작고 가벼운 것이다. 장차 죄인들이 받을 지옥 형벌은 더 크고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혹 범죄했을 때라도 우리는 다윗처럼 겸손하고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벌과 훈련을 달게 받아야 한다.


13장: 압살롬이 암논을 죽임

[1-2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저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이 되니라.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는 말씀은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선언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한다. 암논이 여동생을 사랑한 것은 율법이 금하는 잘못된 일이었다(레 18:9).


[3-6절]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저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카캄)[약삭빠른(shrewd, NASB, NIV), 교활한(subtle, KJV)] 자라. 저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뇨?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뇨?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함이니라. 요나답이 저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말하기를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게 식물을 먹이되 나 보는 데서 식물을 차려 그 손으로 먹여주게 하옵소서 하라.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저를 볼 때에 왕께 고하되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가 보는 데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요나답은 암논에게 나쁜 친구이며 나쁜 조언자이었다.


[7-14절]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저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암논이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남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 가로되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라 하니 다 저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18)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네발라)[어리석은 악]을 행치 말라.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암논이 다말에게 행한 근친상간, 그것도 강제적 근친상간은 심히 어리석은 죄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가운데서 있을 수 없는 악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 어리석은 악을 행하였다.


[15-19절]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다말이 가로되 가(可)치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듣지 아니하고 그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암논의 하인이 저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19)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

암논의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고 육신적 욕망임이 드러났다.


[20-22절] 그 오라비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저는 네 오라비니 누이야, 시방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이에 다말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압살롬이 그 누이 다말을 암논이 욕되게 하였으므로 저를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23-29절] 2주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의 양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왕께 나아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컨대 왕은 신복들을 데리시고 이 종과 함께 가사이다.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우리가 다 갈 것이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압살롬이 간청하되 저가 가지 아니하고 위하여 복을 비는지라. 압살롬이 가로되 그렇게 아니하시려거든 청컨대 내 형 암논으로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저와 함께 보내니라.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맹을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사환들이 그 분부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압살롬의 미움은 2년이 지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사람의 미움의 감정은 참으로 오래가는 것 같다. 압살롬은 미움 때문에 보복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잘못을 행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나서서 죽일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며 왕이 해야 할 일이었다. 고의적 살인은 하나님 앞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악행으로 간주된다. 출애굽기 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謀殺)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30-33절] 저희가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왕이 곧 일어나서 그 옷을 찢고 땅에 엎드러지고 그 신복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고하여 가로되 내 주여, 소년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저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괘념하지 마옵소서.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였다는 잘못된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자 왕은 곧 일어나서 그 옷을 찢고 땅에 엎드러졌다.


[34-39절] 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소년이 눈을 들어 보니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더라. 요나답이 왕께 고하되 왕자들이 오나이다. 종의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대성통곡하니 왕과 그 모든 신복도 심히 통곡하니라.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한 지 3년이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그술 왕 달매는 압살롬의 외할아버지이다(삼하 3:3). 37절의 ‘그[그의] 아들’은 압살롬을 가리키기보다 암논을 가리킨다고 본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무서웠다.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선언대로 동생이 형을 칼로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의 마음의 고통은 심히 컸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징벌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친구를 잘 사귀자. 암논은 친구 요나답의 조언 때문에 범죄하였고 그 결과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실수에 대해 그는 이런 큰 대가를 받은 것이다. 잘못된 조언을 받은 것이 이런 큰 비극을 가져왔다. 잠언 13:20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범죄하지 말자. 암논의 이복여동생에 대한 잘못된 사랑과 근친상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또 압살롬의 보복도 하나님 앞에서 허용될 수 없는 악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적 처벌을 대신하는 개인적 보복을 금하셨다. 그런 보복은 살인죄에 해당한다. 이런 일들은 다 다윗의 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거울삼아 범죄하지 말자.

14장: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1-7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드고아에 보내어 거기서 슬기 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이르되 청컨대 너는 상제[상주 喪主]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같이 하고 왕께 들어가서 여차여차히 말하라고 할 말을 그 입에 넣어주니라. 드고아 여인이 왕께 고할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가로되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저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대답하되 나는 참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아들 둘이 있더니 저희가 들에서 싸우나 말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저가 이를 쳐죽인지라. 온 족속이 일어나서 왕의 계집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 동생을 죽인 자를 내어 놓으라. 우리가 그 동생 죽인 죄를 갚아 저를 죽여 사자(嗣子)[후사]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저희가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끼쳐두지 아니하겠나이다.

다음장의 사건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볼 때 요압의 이 생각은 성급하였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8-11절]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드고아 여인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비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왕이 가로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저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여인이 가로되 청컨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사 원수 갚는 자로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려워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여인은 왕에게서 맹세까지 이끌어내었다.

[12-14절] 여인이 가로되 청컨대 계집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으로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가로되 말하라. 여인이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도모를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셨으니 왕께서 죄 있는 사람같이 되심은 그 내어쫓긴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아니하심이니이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그 여인은 요압의 지시한 대로 다윗이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암시하였다. 그는 암논의 죽음이 이미 쏟아진 물 같으니 어찌 할 수 없으나 도피한 압살롬은 용납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그의 동정심에 호소한 것이다.

[15-17절]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계집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면 혹시 종의 청하는 것을 시행하실 것이라.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산업에서 끊을 자의 손에서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계집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컨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그 여인은 왕을 두려워해서인지 다시 그가 처음에 한 말이 사실인 것처럼 다음과 같이 얼버무리며 말하였다.

[18-20절]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묻는 것을 숨기지 말라. 여인이 가로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왕이 가로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여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 왕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무릇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하였고 저가 이 모든 말을 왕의 계집종의 입에 넣어주었사오니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하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다윗은 그의 말이 요압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21-24절]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소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받은 줄을 오늘날 아나이다 하고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왕이 가로되 저를 그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다윗 왕은 요압을 불러 그 일을 허락했고, 요압은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러나 왕은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왕의 얼굴을 보지 말게 하였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이 아직 그를 용납할 수 없었음을 보인다. 그의 의로운 양심은 살인자 압살롬을 아직 용납할 수 없었다.

[25-27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본즉 왕의 저울로 2백 세겔[약 2.6킬로그램]이었더라.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압살롬은 외모가 아름다웠지만 마음이 경건하고 착하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보다 그 중심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28-31절] 압살롬이 이태 동안을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사람을 보내어 부르되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압살롬이 그 종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놓으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놓았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와서 압살롬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놓았느냐?

압살롬이 2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아버지 다윗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다윗은 2년 동안이나 아들의 얼굴을 보기를 원치 않았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인 지 5년이 지났지만, 다윗의 양심은 아직도 아들의 살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32-33절]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 사람을 네게 보내어 너를 이리로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어 고하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때까지 거기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 말을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저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압살롬은 자신의 과거의 일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자신이 죽어야 마땅하였던 죄인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과분한 일이며 감히 아버지 다윗의 얼굴 보기를 원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인식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술에서 돌아온 것을 오히려 후회하고 원망했고 왕의 얼굴 보기를 강요했다. 다윗과 아들 압살롬은 겉으로 화목하게 되었으나, 다윗 왕이 압살롬의 살인 행위에 대해 공의로 처리하지 않은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압살롬이 불완전하게 회개한 사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후에 다윗 왕국에 재앙의 불씨가 될 것이었다.

다윗이 암논의 강간을 용납한 것이나 압살롬의 살인을 용납한 것은 실수이었다. 강간자와 살인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다(레 20:17; 출 21:14). 왕의 아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압살롬은 평생 도피 생활을 하든지 돌아와 사형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양심적으로 그것들을 용납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암논의 죄를 징벌치 않았고 압살롬도 공의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요압의 요청을 따라 압살롬을 돌아오게 허용했고 또 그와 화해하는 것 같은 모양까지 취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다윗의 실수이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처리할 때 동정으로 하지 말고 공의로 처리해야 한다. 또 압살롬은 자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또 우리는 지옥에 가야 했던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 얻었고(롬 3:22) 하나님과 화목하였고(롬 5:1)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특권을 회복하였다(요 1:12).

15장: 압살롬의 반역

[1-6절]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前陪)[경호원들] 50명을 세우니라. 압살롬이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했다. 그는 진실치 않았고 그의 말과 행동은 매우 계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속아넘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간사한 말과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런 사람을 복 주지 않으신다. 압살롬의 최후는 비참할 것이다.

[7-12절] 4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왕이 저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저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소리를 듣거든 곧 부르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그때에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2백명이 그 사기(事機)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으며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4년 만에’라는 구절(칠십인역의 일부, 옛수리아어역, 요세푸스)은 원문에 ‘40년 끝에’(믹케츠 아르바임 솨나)라고 되어 있다(MT, NASB; KJV는 ‘40년 후에’). 그것은 압살롬의 반역이 다윗의 통치 말년에 일어난 사건임을 보인 것 같다. 다윗의 나이가 많았던 것 같고, 그에게 반역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13-18절] 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고하되 이스라엘의 인심(人心)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 왕이 나갈 때에 권속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남겨 두어 궁을 지키게 하니라.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머무니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6백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

백성의 인심(人心)은 참 변화무쌍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과 그 측근의 신복들은 급히 궁을 떠나 피신하였다. ‘벧메르학에’라는 말은 ‘멀리 떨어진 곳에’라는 뜻 같다(KJV, NIV). ‘그렛 사람들’은 블레셋 출신 사람들이라고 한다(BDB). 반역의 때에도 그를 따르는 여러 사람들, 용사들과 신복들이 있었다.

[19-23절]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死生)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 종자들과 그와 함께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4-26절]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사독과 그와 함께한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왔다. 경건한 자들은 빠른 판단력을 가지고 다윗과 입장을 같이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이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의 처분만 바라며 그 처분에 순종하려 하였다.

[27-29절]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놓고 거기 유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사독과 아비아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들로부터 그곳의 소식을 전해 듣기를 원하였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조언대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유하였다.

[30-31절]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큰 슬픔과 고통의 심령을 가지고 울면서 감람산 길을 올랐다. 또 그는 고통스런 피신의 길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였다.

[32-37절]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이쉬타카웨)[경배하곤 하였던](NIV)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이왕에는 왕의 부친의 종이었더니 내가 이제는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고하라. 저희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저희와 함께 거기 있나니 무릇 너희 듣는 것을 저희 편으로 내게 기별할지니라.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후새가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을 보이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압살롬처럼 간사한 반역자가 되지 말자.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한 간사한 자이었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또 그는 아버지의 은혜를 반역의 악으로 갚았다. 형을 살해했던 그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형되어야 마땅하였다. 다윗의 처사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었지만, 당사자인 압살롬에게는 은혜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은혜를 반역의 악으로 갚았다.

둘째로, 우리는 다윗처럼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훈련은 참으로 혹독하였다. 아들 압살롬은 그를 반역했고 백성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그의 모사 아히도벨도 그를 배신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고난을 달게 받았고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섭리자 하나님을 의지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 되자. 다윗에게 사생결단하며 입장을 같이한 충성된 동료 잇대, 옷을 찢으며 산언덕을 달려온 후새, 바른 판단력으로 다윗과 뜻을 같이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 외에도 많은 신실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다윗보다 크신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뜻을 같이하며 목숨 바쳐 충성할 일꾼들과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16장: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함

[1-2절]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2백과 건포도 1백송이와 여름 실과 1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비록 사울 가문의 종이었지만, 시바는 자기에게 집과 일할 터전을 준 다윗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그 혼란스런 때, 그는 피난길에 오른 왕을 대접하기 위해 그런 음식물을 정성껏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이다.

[3-4절]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시바의 주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잠시 배은적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무엘하 19:24-27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했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했나이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므비보셋이 잠시 그러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것 같다.

[5-8절]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이쉬 합벨리야알)[벨리알의 사람, 무가치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사울의 집 족속이라도, 시바는 종의 신분이지만, 다윗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은혜를 보답하려 했고, 시므이는 다윗을 오해하고 멸시하며 저주했다. 시므이는 사울 가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윗에 대해 잘못된 지식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릇되이 그를 저주했다. 사람이 이처럼 잘못된 지식과 편견을 가지면 그릇되이 남을 저주할 수 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의 말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도 죽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사울 앞에서 잘못을 범한 것이 없었다. 그는 ‘벨리알의 사람’이나 ‘무가치한 자’가 아니었다.

[9-14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어려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 안에서 일어났음을 믿고 있었다. 그는 시므이의 저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셨다면, 그 일의 해결책도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고 있었다. 그것이 섭리 신앙이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답은 바로 섭리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15-19절]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저와 함께 이른지라.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아올 때에 저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후새가 여호와와 그 백성에게 속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진실일 것이다. 그가 압살롬을 섬기겠다는 말도 그에게 바른 조언을 주겠다는 뜻으로 본다면 반쯤 진실일 것이다.

[20-23절]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그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아히도벨의 모략과 압살롬의 행위는 얼마나 패륜적인 행위인가! 사람이 악해지면 이렇게 악해진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였고 그의 후궁들 곧 자기의 모친과 같은 이들을 범하였고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압살롬의 이런 패륜적 행위는 다윗의 범죄에 대한 징벌로 이미 선언된 바이었다. 사무엘하 12:10-12,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災禍)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白晝)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남을 저주하지 말자. 시므이의 저주는 잘못된 지식과 편견을 가지고 한 저주이었다. 그런 저주는 헛된 저주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우리는 남을 저주하지 말고, 특히 그릇되이 저주하지 말자. 그런 큰 죄를 범치 말자.

둘째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자. 시바는 비록 종이었지만 피난하는 다윗과 그 무리를 위해 정성껏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왔다. 혼란하고 어려운 그때에 그것은 사랑과 진실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주께서 전도하실 때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과 제자들을 섬겼다(눅 8:1-3). 사도 바울의 후년의 쓸쓸한 사역 시절에 오네시보로는 그를 자주 유쾌케 하고 로마 감옥에까지 그를 찾아와 위로가 되었다(딤후 1:16-18). 우리는 그런 자들처럼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자.

셋째로, 우리는 섭리 신앙을 가지자. 다윗은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의 저주까지도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일이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이며 그 해결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가지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에 순종하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승리할 것이다.

17장: 후새의 모략

[1-4절]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1만 2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과연 아히도벨의 머리는 비상하였다. 그는 바로 그 밤이 다윗을 죽이기에 절호의 기회라고 잘 판단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도 다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다윗에게 위기가 닥치려 했다.

[5-10절]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저의 말도 듣자 하니라.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저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히도벨이 여차여차히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않거든 너는 말하라.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때에는 아히도벨의 베푼 모략이 선치 아니하니이다 하고 또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부친과 그 종자들은 용사라.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이제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좇는 자 가운데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비록 용감하여 사자 같은 자의 마음이라도 저상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부친은 영웅이요 그 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에 압살롬에게 후새의 말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후새의 의견은 그럴 듯하였다.

[11-14절] 나의 모략은 이러하니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戰場)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저를 엄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저의 위에 덮여 저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저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곳에 한 작은 돌도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후새는 이어서 한 대안을 말했다. 그는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직접 전장(戰場)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을 들은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고 말했다. 본문 14절은,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고 말한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다윗이 얼마 전에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한 기도의 응답이기도 했다.

[15-16절]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고 나도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으니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 좇는 자들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후새는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말하였다. 그 반역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를 돕는 자들, 곧 후새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같은 이들을 주셨던 것이다.

[17-20절] 그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계집종은 저희에게 나와서 고하고 저희는 가서 다윗에게 고하더니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구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도무지 알지 못할러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하나님께서는 두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두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또 어떤 여종, 또 바후림의 어떤 사람과 그 집 여인 등이 다 다윗을 돕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었고 경건하고 선한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바후림의 그 집의 여인은 압살롬의 종들에게 거짓말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연약과 그 중심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던 것 같다. 우리는 선을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1-22절] 저희가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나이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다윗의 사람들은 새벽이 되어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윗과 그 일행들을 도피케 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그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였다.

[23절]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아히도벨은 판세가 기운 것을 예견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4-26절] 이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20)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치니라.

아마사는 요압의 이모의 아들, 곧 요압과 외사촌간이다.

[27-29절]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국한문, ‘바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바르실래는 나이 80세인 노인이며 큰 부자이었다(삼하 19:32). 그들의 방문과 세심한 배려의 마음과 구체적인 도움은 어려움에 처한 다윗과 그 무리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있다. 배은망덕한 반역자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모략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되어졌다. 14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 안에 있음을 믿자.

둘째로, 악한 자들은 망한다. 압살롬을 돕던 아히도벨은 아마 판세가 기운 것을 예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인의 마지막은 좋지 않다.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만 활개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망할 것이며, 장차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계 21:8).

셋째로, 성도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고난받는 다윗에게 후새, 사독과 아비아달과, 그들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히마하스, 한 여종, 바후림의 한 집 여인 같은 돕는 자들을 주셨고, 또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 같이 물질적으로 돕는 자들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며 신실하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도우실 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며 바르고 신실하게만 살아가자.


18장: 압살롬의 죽음

[1-5절] 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그 백성을 내어 보낼새 3분지 1은 요압의 수하에, 3분지 1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3분지 1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이제 다윗을 따른 백성과, 압살롬이 소집한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백성들은 압살롬의 목표를 이해하기 때문에 다윗이 직접 전쟁에 나가는 것을 간곡히 만류하였다. 왕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나를 위해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하였다.


[6-9절]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곳에서 살륙이 커서 2만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큰 용사인 압살롬이 머리털이 나뭇가지에 걸려 공중에 매달려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이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하셨다.

[10-15절]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21)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고, 압살롬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6-18절]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저희가 이스라엘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그 전쟁은 이렇게 다윗의 백성의 승리로 끝났다. 18절은 압살롬이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었다고 말하나, 사무엘하 14:27에 보면, 압살롬은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러면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징벌로 사고나 병으로 죽은 것 같다(Poole).

[19-27절]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저가 아무쪼록 달음질하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가로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숫군[파수꾼]이 성문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음질하는지라. 파숫군[파수꾼]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가로되 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저가 차차 가까이 오니라. 파숫군[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파숫군[파수꾼]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8-33절]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평안이니이다](KJV, NASB, NIV)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솰롬, ‘평안하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왕께서 좋은 소식을 받으소서] (MT, NASB).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솰롬, ‘평안하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심히 요동하여] 문루(門樓)(성문 위의 방)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원수 같은 아들이었지만,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며 그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징벌하셨다. 용감하고 패기만만한 반역자 압살롬은 큰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털이 걸려 공중에 매달렸고 요압의 작은 창에 심장이 찔려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의 은혜를 악으로 갚아 반역을 일으키고 왕위를 빼앗았던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하고 악한 아들 압살롬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죽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승리를 주셨다. 아히마하스와 구스 사람의 보고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한 자들을 패하게 하셨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그는 악인 압살롬을 징벌하셨고, 비록 실수와 흠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살려했던 다윗에게 승리와 회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만 살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그것이 인생의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이다(고후 2:14; 요일 5:3-4).


셋째로, 우리는 성도 다윗의 선한 심정을 본받자. 다윗은 하나님의 선한 심정으로 살았다. 그는 군장들에게 “나를 위해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부탁했고,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의 목숨을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마음이 심히 요동하고 아파 성문 위의 방에 올라가 울었다. 그는 그의 아들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고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반역자 아들에 대한 다윗의 선한 심정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눅 6:27-28), 사도 바울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교훈했다(롬 12:20). 우리는 다윗의 선한 심정을 본받자.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