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역사서[강해]

사무엘상(Samuel) 16장: 다윗에게 기름부음 - 31장: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

영국신사77 2020. 4. 14. 18:28


제목차례

[사무엘상]

16장: 다윗에게 기름부음

17장: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

18장: 사울이 다윗을 미워함

19장: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

20장: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함

21장: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들림

22장: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임

23장: 다윗이 광야 요새로 피함

24장: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벰

25장: 나발과 아비가일

26장: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함

27장: 다윗이 블레셋으로 내려감

28장: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물음

29장: 다윗이 참전(參戰)을 모면함

30장: 다윗이 아말렉과 싸움

31장: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


16장: 다윗에게 기름부음

[1-5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어느 날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6-10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11-13절]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이새의 말째 아들 다윗은 그 얼굴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용모가 보기에 좋았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다. 이 날 이후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14-17절]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사울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셨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했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령’(루아크 라아 메에스 예호와)이라는 원어나, ‘하나님의 부리신 악령’(루아크 엘로힘 라아)[악한 하나님의 영]이라는 원어(15, 16, 23절)는 악령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보인다. 욥기의 처음 부분에 증거된 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사람에게 재앙을 줄 수 있다(욥기 1:12; 2:6).

[18-23절]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 아들 다윗의 손으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은 수금 잘 타며 호기(豪氣)와 무용(武勇)과 구변(口辯)이 있는 준수한 자이었다. ‘호기’라는 원어(깁보르 카일)는 ‘힘있는 용사’라는 뜻이며, ‘무용’이라는 말(이쉬 밀카마)은 ‘전사(戰士)’라는 뜻이다. ‘구변이 있는 자’라는 원어(네본 다바르)는 ‘말에 지혜와 분별력이 있는 자’라는 뜻이며, ‘준수한 자’라는 원어(이쉬 토아르)는 ‘외모가 단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는 소년으로 발탁되었다. 그를 왕위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성도는 이제 교만하고 죄악된 마음을 버리고 경건하고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았음을 감사하자.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성령의 크신 감동을 받았다. 신약성도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시는 복을 얻었다. 우리는 영원히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위로 격려하시고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며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힘을 공급하시는 성령님께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자. 하나님의 영은 사울을 떠나셨고 그의 부리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하고 괴롭게 했다. 그것은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범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버리신 자는 비참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살고 하나님의 버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7장: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

[1-7절]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약 293cm]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魚鱗甲)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5천 세겔[약 60kg]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脛甲)[정강이 갑옷]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短槍)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6백 세겔[약 7kg]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왕이 범죄하면 나라에는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긴다. 의는 나라로 평안케 하지만, 불의는 나라의 평안을 잃고 쇠약케 한다.

[8-11절]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울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다. 범죄한 사울 왕과 그의 군사들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12-16절]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제3은 삼마며 다윗은 말째라.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좇았고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이 40일을 조석(朝夕)[아침저녁]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다윗의 나이는 아마 20세 이전이었을 것이다.

[17-23절]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 중이더라.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의 명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戰場)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하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이 항오를 벌이고 양군(兩軍)이 서로 대하였더라. 다윗이 그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고 골리앗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

[24-27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가로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여차 여차히 하시리라 하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하였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말을 들은 소년 다윗은 의분하였다.

[28-30절]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맏형 엘리압은 동생 다윗을 오해하여 그를 그릇되이 책망하였다.

[31-37절] 혹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용기로 골리앗과 싸워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사울에게 자기를 내보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는 큰 믿음을 가진 자이었다. 그의 믿음은 양 치는 일을 통해 자랐음에 틀림없다. 성도의 믿음은 일상생활에서 단련을 받고 성장한다. 신앙생활을 평소 생활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평소 실력이다.

[38-40절]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은 사울의 군복을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 자기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다. 다윗의 무기는 막대기와 물매와 물맷돌 다섯 개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진짜 무기는 그의 가슴속에 있는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믿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고 믿었다.

[41-44절]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47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短槍)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에게는 참 믿음에서 나온 거룩한 의분이 있었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모욕하는 자를 친히 징벌하실 것을 확신했다. 또 그는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칼과 창에 있지 않고 그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신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며 바른 믿음이었다. 그의 믿음은 모든 시대,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된다.

[48-54절]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甲冑)[갑옷, 투구]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다윗의 물맷돌은 한번에 명중하였다. 골리앗은 즉시 땅에 엎드러졌다. 이것은 다윗이 한 것이라기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다윗은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베었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얻었다.

[55-58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감을 사울이 보고 군장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아브넬이 가로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왕이 가로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의 앞으로 인도하니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평소에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며 평소에 기도 생활에 힘쓰고 평소에 죄 짓지 말고 말씀 순종을 실천함으로써 믿음이 진실하게 생기고 자라고 견고하게 되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믿음으로 싸워 승리해야 한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의분이 넘쳤다. 또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확신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어떤 골리앗과 같은 원수나 어려운 문제가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싸워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싸워 승리해야 한다.

18장: 사울이 다윗을 미워함

[1-5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다윗이 블레셋 장수를 죽인 후 사울 왕 앞에 불려와 자신의 가정에 대해 보고할 때 요나단의 마음은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고(니크쉐라 ‘연합되었고’) 요나단은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고 그와 언약을 맺었다. 요나단은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헌신의 일치된 심령 안에서 다윗과 친구가 되었다. 사울은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고 백성들도 합당히 여겼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참된 지혜를 얻을 것이다.

[6-9절]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솰리쉼)[아마, 트라이앵글]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무리가 돌아왔을 때, 즉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골리앗]10)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여인들은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였다. 사울은 여인들의 경솔한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말했다. 그는 그의 왕위가 다윗 때문에 위태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러한 마음은 다윗에 대한 미운 감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교만한 경쟁심은 큰 시험거리이다.

[10-12절]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난폭히 떠드는] 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다윗을 향한 사울의 미움은 그를 살해하려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셨고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다. 악인들은 실상 마음으로 의인들을 두려워한다.

[13-16절]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다윗은 자신의 직위의 강등에 연연하지 않고 백성 앞에 출입하며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다.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함께 계셨고, 사울은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다. 다윗에게 고난은 있었지만, 옛날 요셉이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셨고, 또 그는 지혜롭게 처신하였고 백성들은 그를 사랑했다.

[17-19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 바 되었더라.

다윗은 자신의 가문과 신분의 미천함을 아는 겸손한 자이었다.

[20-23절]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혹이 사울에게 고한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의 귀에 고하매 다윗이 가로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 한지라.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낮은 자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인물이었다.

[24-27절]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여차여차히 말하더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폐백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 다윗이 일어나서 그 종자와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2백명을 죽이고 그 양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사울은 여하튼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궁리하였으나, 다윗은 왕의 요구를 만족시켰고 미갈을 아내로 맞이했다.

[28-30절]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보고 알았고 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그는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그의 대적이 되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신하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으므로 그의 이름이 심히 귀중히 여김을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지혜와 믿음, 의와 겸손함을 사모하며 구하여 얻자. 잠언이 증거한 대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과 믿음, 또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대로 바르게 살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고 선하고 겸손하게만 살아가자.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그의 계명을 실천하는 의로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하시고 우리는 사람들의 사랑과 존중히 여김도 받을 것이다. 잠언 3:3-4,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역사상 경건했던 에녹과 노아와 요셉같이,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복은 모든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다. 또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미움과 핍박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는다.

19장: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

[1-3절]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사울이 딸들을 다윗에게 주겠다고 말했던 것은 그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삼상 18:17, 25). 그러나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매우 기뻐하므로 그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4-7절]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좋게 말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요나단은 그 조언의 근거로 다윗이 왕께 죄를 짓지 않았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매우 선했다고 말했고 그 증거로 다윗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인 것과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을 위해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셨었음을 들었다. 요나단이 제시한 바는 다 정당한 내용이었다. 그때 사울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8-10절]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울은 이와 같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다시 드러내었다.

[11-13절]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이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다윗을 죽이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즉시 시행하지 않고 ‘아침에’ 그를 죽이려고 지체하다가 죽일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사람의 작은 생각 하나, 계획 하나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하여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잠 16:9). 다윗의 아내 미갈은 그 밤에 그가 도피하도록 도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윗을 인도하셨다.

[14-17절]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 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미갈은 분명히 사울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나 그의 의도는 선하였다. 그는 부녀 관계의 정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다윗이 옳고 아버지 사울이 잘못되었다고 바르게 생각하였다.

[18-21절]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 고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다윗의 도피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무엘상의 나머지 부분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이 그를 피해 도피한 여러 해의 일들을 기록한다(삼상 20:1; 21:10; 22:1; 23:26; 27:1).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공개수배를 하였고 라마로 체포조를 조직하여 보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께서 임하셨고 그들이 예언도 하였다.

[22-24절]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으나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도 임하셨고 그도 예언을 하였다. 사무엘이 있었던 라마 나욧에는 하나님의 영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의 사자들을 보내고 심지어 자신이 직접 온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비상하게 역사하셔서 그 사자들이나 사울 자신이 다윗을 잡거나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비상하게 역사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아는 자들에게 인정받는 성도가 되자. 다윗은 친구 요나단에게 인정받는 자이었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께 그가 왕께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행했고 무엇보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왕도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고 말했다. 바울은 빌립보서 4:8에서 우리가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한 자가 되라고 교훈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핍박을 각오하며 살자. 비록 다윗은 착한 성도이었지만, 사울은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는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던졌고 그의 사자들을 보내어 침상 채 가져오게 하였다. 그는 다윗이 도피한 라마 나욧으로 그의 사자들을 세 번이나 보내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그를 잡으려고 갔다.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미움과 핍박을 각오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악한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셨다. 그는 다윗을 변호하는 친구 요나단을 주셨다. 그는 다윗의 아내 미갈이 민첩하게 그를 돕게 하셨다. 그는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의 사자들과 사울에게 직접 개입하셔서 그들로 다윗을 잡지 못하게 하셨다. 이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는 섭리의 일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종들과 성도들을 위기에서 보호하신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전도자로 보내시며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10:30-31). 시편 91:1, 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어려운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만 믿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20장: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함

[1-4절]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요나단은 그의 부친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말을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기를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라”고 했다. 다윗은 이처럼 죽음의 경계선에서 피신하는 삶을 살았다. 요나단은 다윗을 돕겠다고 말했다.

[5-11절]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3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갈 것이 무엇이뇨? 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다윗은 요나단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네 종’이라고 세 번이나 표현하였다. 요나단은 부친의 결심을 네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12-17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3절 원문은,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치기를 기뻐하신다면 여호와께서 요나단에게 그렇게 하시고 더 하실지어다. 그러나 나는 네 귀에 알려 너로 가게 하리니 네가 평안히 갈 것이며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KJV이 비슷함)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기했다. 사울은 다윗을 잡아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편이었고 다윗을 살게 할 생각을 확고히 하였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대적하는 자를 치시기를 맹세하며 소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칼날로부터 다윗을 이런 방법으로 보호하셨다.

[18-23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을 살리며 자유로이 도피하게 할 뜻을 분명히 하였고 그것을 알려줄 방책까지 제시했다. 요나단은 그것이 자기가 그를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신다”고 표현하였다. 그는 다윗을 위한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믿었다.

[24-29절]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월삭이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나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이튿날 곧 달의 제2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오히려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30-34절]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2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요나단은 아버지의 그런 정치적 염려나 그로 인해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는 불의하고 악한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나단의 항의하는 말을 들은 사울은 그를 치려고 단창을 던졌다. 요나단은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았다. 그는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났고 달의 제2일에는 먹지 않았다.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해 슬퍼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35-42절]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가로되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런지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요나단이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으로 가라.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다윗과 약속한 바를 그대로 지켰다. 그는 다윗을 평안히 가게 했다. 다윗은 일어나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었다. 다윗이 요나단보다 더욱 심히 울었다. 그런 후 그 둘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그들의 자손 사이에 영원히 계실 것을 맹세하며 떠났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왔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믿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라마 나욧까지 찾아왔고 다윗은 그를 피하여 다니는 신세이었고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니라”고 말할 정도이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요나단에게 격노하며 단창을 던졌을 때 더욱 분명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 다윗을 피신케 도우셨다.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다윗을 위하였고 다윗의 대적을 저주하였고 다윗을 평안히 가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이 모든 일이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시편 91:1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맹세를 지키자.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평안히 가게 할 것을 약속했고 맹세했고(12-13, 17절) 그 맹세를 지켰다. 42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후에 다윗도 요나단과의 맹세를 지켰다. 그는 요나단에게 남은 아들인 므비보셋을 선대하여 요나단 때문에 그에게 은총을 베풀었고 사울의 사환 시바와 사울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주었고 므비보셋은 항상 다윗의 식탁에서 먹었고 다윗은 그를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처럼 대우했다(삼하 9:1, 7, 10-11). 사람이 맹세를 지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증거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맹세를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진실한 우정, 진실한 인간 관계를 만들자.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신앙 안에서 맺어진 진실한 우정의 관계, 심히 아름다운 인간 관계이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요 15:1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의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18장에서 두 번(18:1, 3) 본장에서도 한번 증거했다(17절). 요나단은 왕권에 대한 이기적 욕심을 가지고 그릇된 판단을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또 다윗은 왕자 요나단에게 겸손한 예의를 가지고 대했다(7-8절, 41절).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세상적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신앙적, 사랑의 관계로서 우리의 본이 된다.

21장: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들림

[1-4절]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 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늘 먹는]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나쁘다. 특히 거짓말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자기의 도피가 알려질까 봐 염려한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아마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힘든 지경에 있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그 거짓말은 하나님의 긍휼로 용서함을 얻었던 것 같다.

‘거룩한 떡’은 성소의 떡상 위에 차려 놓는 열두 개의 떡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던 떡이었다(레 24:9). 그러나 아히멜렉은 떡 다섯 덩이를 요청하는 경건한 다윗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하여 그것을 주려 하였다. 그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편에서 정당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그는 그 일을 하나님께 물었고 그의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삼상 22:10, 13, 15).

[5-6절]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3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그릇’이라는 말은 ‘몸’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제사장은 그 거룩한 떡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것은 위법하게 보이는 일이었다. 법이 중요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사랑과 긍휼이 법보다 더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음으로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 사건을 인용하신 후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7).

[7절]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머물러 있다’는 원어(네차르)는 ‘구류된, 머물러 있는’이라는 뜻으로 도엑은 어떤 서원 때문에 성소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BDB). 그는 악하고 간사한 자이었고 후에 사울 앞에서 이 사실을 잘못 보고하여 사울로 오해케 함으로써 많은 제사장들을 죽게 했다.

[8-9절]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그 칼을 받았을 때 그는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골리앗을 죽였을 때의 일을 기억하며 힘을 얻었을지 모른다.

[10-11절]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이 다윗은 그 땅의 왕이 아니니이까?](원문의 액센트; KJV, NIV).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에게는 여전히 사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날에 그는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가드는 유대 땅의 서쪽 블레셋 지역에 있는 성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드 왕에게로 간 것은 실수이었다. 그의 두려움은 그로 실수케 하였다. 우리는 믿음이 부족할 때 두려워하게 되고 그 두려움은 우리로 실수하고 범죄하게 만든다. 가드는 다윗에게 안전하고 평안한 곳이 아니었다.

[12-15절]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끼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끼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다. 아기스의 신하들에게 갇힌 다윗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연약하여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연약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것을 용서하셨다 할지라도 그 거짓말은 잘못이다. 우리는 거짓말을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낙망치 말고 하나님만 굳게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며 신실하게만 행하자. 다윗은 부족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는 아기스에게서 쫓겨난 후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글을 썼다(시 34:4). 우리는 고난 중에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22장: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임

[1-2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4백명 가량이었더라.

[3-5절]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기 원하였으나 아직 그것이 분명치 않았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은 때때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기도 한다.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와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유다 땅은 다윗이 사울에게 잡혀 죽을 위험이 있는 땅이었으나, 성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을 떠나서는 안 된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는 그 옳지 않은 일은 유대 땅에서 백성들에게 알려져야 했다. 백성들은 다윗의 정당성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했었다. 다윗은 선지자 갓의 말에 즉시 순종했다.

[6-8절]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내 신하’는 다윗을 가리키며, ‘선동하다’는 말은 ‘북돋우다’는 뜻이다. 사울은 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의 신하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그를 대적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북돋우어 아버지 사울을 치도록 하지 않았다. 사울은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큰 실수이며 인격의 큰 결함이며 큰 죄악이었다.

[9-10절]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에돔 사람 도엑의 말은 사실을 말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은 마치 아히멜렉이 다윗과 공모라도 한 것처럼 오해를 줄 수 있는 말이었다. 만일 도엑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다면, 그는 다윗이 의롭고 충성된 자이며 사울에게 죽임당할 만한 악한 일을 하지 않은 자임을 알았을 것이며, 또 아무 잘못이 없는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울에게 충성했지만, 그것은 도덕적으로 악하고 잘못된 충성이었다.

다윗은 시편 52편에서 그에 대하여,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라고 말했다(시 52:2-3).

[11-13절]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사울은 뒤에 그 제사장들을 죽이는 죄목으로 역시 이 죄를 언급하였다(17절). 사울의 판단은 여기서도 잘못되었다.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사울을 대적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다윗에게 떡을 주었거나 골리앗의 칼을 준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판단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큰 잘못이요 큰 악이다.

[14-15절]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謀臣)[측근 참모]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

아히멜렉의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르지만, 다윗이 도피 중이었음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더욱이 다윗과 공모(共謀)한 것은 아니었다.

[16-19절]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85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사울 왕은 제사장 아히멜렉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에돔 사람 도엑을 시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85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다. 사울의 잘못된 판단들은 마침내 큰 실수와 큰 죄악을 범했다. 하나님의 백성 중 무죄한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인데, 무죄한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을 이처럼 죽이다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노여워하셨을까? 그러나 이 비극적 사건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엘리에게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고 말씀하셨었다(삼상 2:31). 그의 심판의 예언은 엘리의 증손자 때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히멜렉은 비느하스의 손자요 엘리의 증손이었다(삼상 14:3).

[20-23절]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이런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로 아히멜렉의 아들 하나가 피신하였다. 그가 아비아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많은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바르고 덕스러운 말을 하자. 도엑의 말 한마디가 무고한 제사장들 85명을 죽게 하는 참혹한 일을 가져왔다. 말은 인격의 표현이다.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 12:36). 우리는 항상 바르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온전한 인격자가 되기를 기도하자(엡 4:29).

둘째로, 우리는 건전하고 바른 판단을 하자. 사울의 판단은 항상 지나쳤고 잘못되었다. 그의 잘못된 판단은 마침내 제사장들 85명과 그 아내들과 자녀들을 살해하는 집단 학살의 참극을 가져왔다. 사울의 죄는 매우 컸다. 우리는 범사에 바른 판단을 하는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며 오직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죽은 제사장들은 불행하게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죽음은 불행이 아니다. 바르게 산 사람은 천국 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음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23장: 다윗이 광야 요새로 피함

[1-5절]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니라.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도피생활 중에서도 다윗과 함께하셨고 그의 사람들을 그에게 복종케 하셨고, 또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과 탈취로 어려움을 당한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는 선한 일을 하게 하셨다.

[6-12절]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로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에봇에는 판결 흉패라는 것이 달려 있고 그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출 28:30). 그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용도로 쓰였다(민 27:21; 삼상 28:6). 그러므로 에봇이 때때로 하나님께 어떤 일을 묻는 일에 언급된 것이다(삼상 23:9; 30: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안 사울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자기편에 계신 줄로 착각하면서 모든 백성을 군사로 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다. 그는 그일라를 돕고자 했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고, 사울이 그일라를 포위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다. 기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생활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시이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는 그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계획하든지 첫째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묵상하기를 힘써야 한다.

[13-14절] 다윗과 그의 사람 6백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다시 정처 없는 도피의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일라 사람들은 배은망덕했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해준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윗은 이곳저곳에서 안정 없는 도피 생활을 하였다. 14절,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다윗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

[15-18절]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있는 수풀에 들어가서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다[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힘있게 하였다](원문). 요나단은, 신앙의 친구요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격려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심신으로 피곤했을 다윗을 요나단을 통해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요나단은 그에게 말했다.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뜻을 아는 자이었고 겸손한 자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여호와 앞에서 다시 언약하였다(삼상 20:16). 

[19-23절]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

십 사람들은 사울과 다윗의 싸움에서 누가 옳고 그른 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요 단지 인간적으로 사울을 동정하였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사울 왕에게 잘못된 충성을 바치려 하였다. 그들에 대한 사울의 축복은 무익한 말에 불과하였다. 사울에게는 다윗을 반드시 찾아 죽이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24-29절]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로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곳을 셀라하마느곳[분리의 바위(고대 역본들, BDB), 도피의 바위(게세니우스, 델리취, 카일, NASB)]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다윗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으로 그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위급할 때 비상한 방식으로 그를 도우셨다. 다윗은 거기서 올라가 엔게디 요새에 거했다. 엔게디는 사해(死海) 중서부에 있는 곳으로 도피자들의 좋은 은신처로 사용된 곳이었다. 다윗은 피신의 고난을 통해 믿음과 거룩함의 선한 인격의 단련을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많은 고난의 여정을 통과했다. 그는 약 10여년 간의 피난 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메시아와 신약성도의 모형이 되었다.

둘째로, 성도에게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려두지 않으셨고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길을 지도하셨고 그를 사울의 칼날로부터 지키셨고 요나단을 보내어 그를 위로 격려하기도 하셨다. 그는 또 위기에 처한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침입을 통해 도우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는 신약성도들도 도우신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바르게 살자. 다윗은 고난 중에도 늘 하나님을 의지했고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후에 행하였다. 또 그는 양심에 거리끼는 죄악된 일을 멀리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와 함께하신다. 오늘날 우리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며 살자.


24장: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벰

[1-3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엔게디는 석회석 굴들이 많은 산이며 거기 있는 어떤 굴들은 수백 명 혹은 수천 명 들어갈 수 있는 큰 굴들이라고 한다. ‘그 발을 가리운다’는 원어(리하세크 엣 라글라우)는 ‘용변을 본다’(NASB)는 점잖은 표현이다(BDB).

[4-7절]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다윗은 자기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를 더 크게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는 하나님께서만 친히 폐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로마서 14:4에서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진리를 말하기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고 하였다.

[8-11절]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다윗은 사울이 신하들의 잘못된 보고를 듣고 있음을 말하며 자신의 결백을 당당하게 증거하였다. 그는 사울에게 악을 행치 않았다.

[12-15절]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판단을 구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나서서 왕을 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12절,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에 비교했다(14절). 그는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만 믿었다. 12절,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응하시려니와.” 15절,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16-19절]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의 선한 처신은 사울을 감동시켰고 울렸다. 그는 사울을 선대했고 사울은 다윗이 자신을 선대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윗의 선한 처신은 원수의 인정과 원수의 축복까지 이끌어내었다.

[20-22절]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다윗이 왕이 되고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견고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이었고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이었다. 긴 갈등과 싸움의 여정 속에서, 사울은 다윗에게 완전히 굴복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자. 다윗은 사울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다. 그것이 바른 태도요 우리가 본받을 만한 태도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4 전통본문; 눅 6:27-28).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교훈하였다(롬 12:17, 19).

둘째로, 우리는 모든 일을 공의의 하나님께 맡기자.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실 것을 믿었고 그의 억울함을 하나님께만 의탁하였다(12, 15절). 사도 바울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말했다(롬 12:19). 우리도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맡기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자. 다윗은 사울을 선대했고 겸손함과 예절을 지켰고 그러나 자신의 결백함을 정정당당하게 증거했다(17-18, 20절). 사도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교훈했다(롬 12:21). 우리도 끝까지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자.

25장: 나발과 아비가일

[1-3절]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NASB, NIV)11)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카쉐)[(성격이) 거칠고,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며 그는 갈멜 족속[갈렙 족속](원문)12)이었더라.

[4-8절] 다윗이 광야에 있어서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 함을 들은지라. 다윗이 이에 열 소년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고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로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9-11절]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다윗이 골리앗을 쳐죽인 일에서 그의 믿음과 충성됨이나 또 지금 그가 어떻게 애매히 고난을 당하고 있음에 대해 몰랐을 리 없었으나, 다윗을 존중하거나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12-13절]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이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서 이 모든 말로 그에게 고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4백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2백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14-17절]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사자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벤 벨리야알)[벨리알의 아들, 무가치한 자, 악한 자]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나발은 다윗과 그의 소년들을 모욕했다. 그는 자기 고집만 가득하고 남의 말을 듣거나 참고하지 않는 자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다. ‘제 고집대로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딛 1:7).

[18-22절] 아비가일이 급히 떡 2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유벽한 곳으로 좇아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LXX, NIV) [다윗의 원수들에게 벌을 내리시고](MT, KJV, NASB)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1세아(스아)는 약 7.3리터이었다. 아비가일이 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간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었다. 지혜는 사람의 바르고 민첩한 판단을 돕는다. 지혜로운 자는 바르고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다.

[23-28절]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좇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나발’이라는 원어(나발)는 ‘미련하다’는 뜻이다. 나발은 미련한 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롭고 겸손했다. 그는 본장에서 다윗을 향해 ‘내 주’[나의 주](아도니)라는 말을 열두 번이나 사용하며(원문) 또 자신을 여러 번 ‘여종’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부잣집 여주인이었으나 다윗 앞에 겸손히 처신했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지만, 교만한 자는 미련하다. 아비가일은 또 다윗이 어떤 자인지 알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을 알았고, 다윗이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알았고, 그의 삶 전체에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도 알았다.

[29절]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아비가일은 또 하나님께서 다윗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그의 원수들을 파하실 것도 알았다. 사람이 한 집에 살아도 한 사람은 다윗을 몰랐고 대접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욕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가 있어서 다윗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바르게 알았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너무 크다.

[30-3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 곧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았다. 그것은 선지자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 부었음을 듣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아비가일에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는 장차 왕위에 오를 다윗에게 흠이 되는 일이 없기를 소원했다.

[32-35절]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36-38절]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大醉)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소간 말하지 아니하다가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의인은 사자같이 용감하지만, 악인은 그렇게 용감하지 못하다.

[39-42절] 다윗이 나발의 죽었다 함을 듣고 가로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욕을 신설하사[억울함을 풀어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로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다윗의 사환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일러 가로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그가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가로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아비가일은 참으로 겸손하였고 봉사 정신도 있는 자이었다.

[43-44절]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취하였더니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아내가 되니라. 사울이 그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나발같이 되지 말자. 나발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거칠고 악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했고 다윗에 대해서도 몰랐고 그를 동정하거나 돕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모욕하였다. 그는 미련한 자이었다. 그의 생의 즐거움은 술취함이었다. 우리는 이런 불경건, 완고함, 악함, 술취함 등을 하나도 본받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아비가일을 본받자. 아비가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고 지혜가 있고 겸손한 자이었다. 그는 무슨 일을 당할 때 지혜롭고 민첩하게 대처했다. 또 그는 다윗을 바르게 알았고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다윗이 지금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마침내 그의 뜻을 다 이루실 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것은 놀라운 지식이며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또 그는 봉사와 섬김의 정신이 가졌다. 오늘 우리는 다윗보다 더 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자. 또 그의 뜻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선을 행하자.

26장: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함

[1-5절] 십 사람(핫지핌)[집 사람들]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광야 앞 하길라산 길가에 진치니라. 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닫고 이에 탐정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일어나 사울의 진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쳤더라.

[6-8절]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다윗은 또 한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9-12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戰場)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그에게는 범사에 범죄치 않고 의롭고 신실하게 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또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공의로우신 처분을 믿는 섭리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생애와 그의 평안과 불행을 홀로 주관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13-16절]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상거가 멀더라.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가로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17-20절]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다윗이 가로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또 가로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청컨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인자(人子)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그런즉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다윗은 겸손히 처신하였다. 그는 사울을 ‘내 주 왕이여’(17절), ‘내 주는’(18절), ‘내 주 왕은’(19절)이라고 높여 불렀고, 또 겸손하게 자신을 메추라기에 비유하고 벼룩이라고 표현하였다(20절).

[21-25절]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 다윗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은 큰 충격과 감동을 입었음이 분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의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었음을 인정하였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보응을 믿어야 한다. 사울은 엔게디 황무지에서 한 축복(삼상 24:19-20)에 이어 두 번째로 다윗을 축복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범사에 의롭고 선하게만 행하자. 다윗은 사울을 죽일 두 번째 기회를 얻었으나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가 그를 죽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의 태도이었다. 우리는 범사에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항상 겸손히 처신하자.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에게 ‘내 주 왕이여’라고 정중한 존칭어를 사용하였고 또 자신을 메추라기에 비교했고 벼룩이라고 겸손히 표현하였다. 그의 고난은 그를 더욱 겸손케 하는 훈련 과정이었을 것이다. 교만은 큰 죄악이다. 우리는 자신을 크게 여기지 말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자.

셋째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처분을 믿자. 다윗은 자신이 사울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을 믿었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를 갚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공의롭게 다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7장: 다윗이 블레셋으로 내려감

[1-4절]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일어나 함께 있는 6백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하였더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사울의 칼을 두려워하고 자기 사람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은 불신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그에게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하셨었다(삼상 22:5). 유다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다. 또 다윗은 벌써 여러 번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체험했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함 대신에 인간적 지혜를 사용하며 이방인 왕 아기스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두려움과 염려는 불신앙을 낳았고 불신앙은 자기 생각을 따라 행하는 인간적 지혜의 행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대신에 자신의 인간적 지혜를 의지함이요 결국 인간을 의지함이었다.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 이런 연약이 있었다. 휼륭한 믿음의 인격에게도 이런 연약이 있었다. 중생한 성도도 그 속에 이런 연약함이 있다. 아브람도 기근 때에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의 아내를 잃어버릴 뻔하였었다(창 12:10-20).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필요하다. 사무엘상 21:10 이하에 보면, 다윗은 전에도 한번 사울을 두려워해 아기스에게로 도망한 적이 있었다. 사람은 다 연약하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한 것을 듣고 다시는 그를 잡으려 뒤쫓지 않았다.

[5-7절]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8-12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로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다윗은 아기스를 속임으로 그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사무엘상 29장에 가보면, 다윗은 블레셋 땅에 거함으로써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참여할 뻔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하마터면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자기 손으로 치는 낭패를 당할 뻔하였었다. 불신앙은 인간적 행위, 곧 죄악된 행위를 낳고 그것은 또 추가적인 범죄를 낳는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내려간 것은 확실히 그의 연약이었다. 그러나 다음 장들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거기서도 다윗과 함께하셨고 사울과의 전쟁을 모면케 하셨고 사울은 그 전쟁에서 죽게 하셨다.

본장은 그 다음 몇 장이나 성경 전체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내려간 것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추가적 잘못을 범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우선, 첫째로, 우리는 블레셋 땅으로 내려가지 말자. 그 길은 시험의 길이며 범죄하는 길이며 실패의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떠나지 말아야 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 . .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다(사 31:1-3).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참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함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 교회 안에 거해야 하며 또 시시때때로 교회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 10:25).

둘째로, 우리는 범사에 진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의와 사랑과 진실이다. 중생한 자는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한다(요일 3:9-10). 또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성경은 경고하였다(계 22:15).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도 염려와 두려움이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의 공통적 연약성이다. 그 연약성 때문에 그는 블레셋 땅으로 내려갔다. 그것은 잘못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성을 극복하는 길은, 늘 기도함으로 깨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 없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마 26:41). 우리는 기도로 깨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자.

28장: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물음

[1-2절]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참으로]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다윗에게 어려운 시험이 왔다. 실상 그가 블레셋으로 내려간 것이 시험의 시작이었다. 그가 어떻게 자기 민족과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한 번 잘못된 길에 발을 디디면 또 다른 시험거리가 오는 것 같다.

[3-7절]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었더라.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크게 두려워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담력을 잃게 된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사울이 여호와께 간구했으나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우림’은 대제사장의 에봇에 넣는 물건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기도에 응답지 않으신 것은 그가 범죄함으로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잠언 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사울이 자신이 전에 그 땅에서 추방한(9절)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명령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울은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두려워했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고 이제 또 다른 죄, 더 큰 죄를 짓고자 한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귀신에게 묻는 것은 제1, 2계명을 범하는 참으로 큰 죄악이다.

[8-11절]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사울이 여호와로 그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사울은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밤에 그 여인에게로 갔다. 그는 그 일이 위법임을 알았고 양심적으로도 잘못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의 눈을 피해 변장했고 밤에 그 신접하는 여인에게로 갔다. 그는 그에게 신접한 술법으로 사무엘을 불러 올리기를 요청했다. 그는 여호와로 맹세하면서 여호와께서 금하신 일을 하였다.

[12-14절]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신접술은 악령들의 활동이다. 악령도 제한적으로 신기한 일들을 행한다. 그는 악령의 감동으로 사울을 알아보았고 한 신적 존재를 불러 올렸다. ‘신’이라는 원어(엘로힘)는 ‘신들’(KJV)이라는 말로서 ‘한 영’(NIV)이나 ‘한 신적 존재’(NASB)를 가리킬 것이다.

[15-19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본문은 그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을 불러 올렸고 그의 말을 대언하였다고 표현한다. 본문은 ‘사무엘이 . . . 이르되,’ ‘사무엘이 가로되’라고 표현하고(15, 16절), 또 그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그 다음날 죽을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다(19절). 또 20절에서도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그 여인이 불러 올린 자가 진짜 사무엘인가? 본문의 표현에 근거하여 그렇다는 견해도 있지만,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우리는 이것이 악령의 활동이었다고 본다.13)

매튜 풀은 그 이유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말한다. 첫째로, 신접술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방법이다. 신명기 18:9-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둘째로, 신접술로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의 경배를 받았다. 14절,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이것은 인간에게는 합당치 않은 일이라고 본다. 그가 진짜 사무엘이었다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렸던 고넬료에게 일어서라고 한 베드로처럼 말하였을 것이라고 본다(행 10:25-26).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후에 사울의 그 행위를 정죄하셨다. 역대상 10:13-14,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넷째로, 신접술에 의해 올라왔다고 하는 사무엘이라는 영은 땅에서 올라왔다. 13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러나 의인은 하늘의 안식에 들어간다. 전도서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구약 성도도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갔다. 또 하늘에 올라간 의인의 영은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 없고(눅 16:26), 또 하나님께서 악령의 활동인 신접술에 의해 사무엘을 땅으로 내려보내실 리도 없다.

다섯째로, 악령도 강한 추측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며 예견하기도 한다. 무당들도 신기한 일을 하며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며 예견한다. 마태복음 24:11, [종말의 징조들 중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20-25절]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사울이 거절하여 가로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사울의 앞에와 그 신하들의 앞에 드리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난 것은 그를 더욱 절망케 했을 뿐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거짓된 신비주의는 참된 해답이 아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회개에 있다. 사울에게는 철저한 회개가 없었다. 사람이 죄를 범할 수는 있으나 회개가 중요하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물론 회개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다 부족한 자이므로 때때로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으나 죄를 깨달을 때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청산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둘째로,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히 행해야 한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두려워 떨었고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갔다. 죄인은 위기 상황에서 두려워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럴 때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믿음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우리에게 닥친 세상의 모든 일들은 영적 전쟁과 같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다른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히 행하자.

29장: 다윗이 참전(參戰)을 모면함

[1-3절]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쳤더라.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두 진영은 전투를 위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참전(參戰)을 요구하였었다(삼상 28:1). 다윗은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장에서 ‘장관’(세렌)(2, 6, 7절)과 ‘방백’(사르)(3, 4절)은 동의어로 쓰이는 것 같다. 블레셋 장관들은 블레셋 다섯 성읍들의 통치자들이었을 것이다. 아기스는 그들에게 다윗이 블레셋 땅에 거하며 흠 없게 행하였다고 좋게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다윗은 블레셋 땅에 내려와 1년 4개월 이상 살면서(삼상 27:7) 자신과 자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아기스의 종으로 처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기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기를 요청할 때 거절할 수 없었고 그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동족과 싸우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다윗으로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다윗이 이런 상황에 떨어진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 생각으로 블레셋 땅으로 피하여 내려왔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는 전에도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피하려 하다가 미친 척하고 도망하다시피 나온 적이 있었고(삼상 21장), 또 모압 땅으로 피하였을 때도 선지자 갓이 그에게 와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삼상 22장). 성도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행하면 낭패를 당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교훈과 하나님의 주신 지혜를 따라 바른 길로 행해야 한다.

[4-5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아기스의 말을 들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그에게 노하였다. 그들은 다윗의 참전이 자기들에게 위태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판단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었다.

[6-8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아기스는 다윗에게 그가 정직하게 또 선하게 행하였다고 증거하였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라는 말은 아기스가 다윗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이는 것 같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충성을 고백했으나, 그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을지라도, 그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9-11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아기스는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와 같이 선하다고 좋게 증거하였다. 옛날 아브라함도 헷 족속에게 인정을 받았다(창 23:6). 다니엘도 그를 시기했던 동료 총리들과 방백들에게 아무 틈을 보이지 않았다(단 6:4-5). 다윗, 아브라함, 다니엘은 다 이방인들 앞에서 흠 없고 존귀한 인격자로 인정을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만 믿고 의지하자. 다윗이 자기 동족과 싸워야 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다윗을 도우시고 돌보시고 위기에서 건져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인도하심만 믿자.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신약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둘째로, 우리는 주위의 불신자들이 우리에 대해 선한 증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직 하나님만 진실히 믿고 순종하며 바르게 살기를 힘쓰자. 그러면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시고 건지실 것이다. 신명기 28장의 복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요한일서 3:21-22,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30장: 다윗이 아말렉과 싸움

[1-6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3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곤욕스러웠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사람들이 거했던 성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인생의 여정에는 때때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다행히, 아말렉 사람들은 시글락 거민을 하나도 죽이지 않고 다 끌고 갔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에서 제외되어 며칠만에 돌아왔으므로 그들을 뒤쫓아갈 수 있었다. 여러 날 전쟁을 치룬 후이었더면 그들을 뒤쫓는 일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렀을 때 성은 이미 불탔고 아내들과 자녀들은 사로잡혀간 후이었다. 사람들은 그 자녀들을 인해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는 말까지 했고 다윗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곤욕스러웠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어려울 때 그가 평소 섬겼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러므로 그는 시편 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다.

[7-10절]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6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2백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4백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다윗은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에봇은 거기에 붙은 판결흉패 속에 든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민 27:21; 삼상 23:9). 다윗은 여호와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 그들을 뒤쫓았다.

[11-15절]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우고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낮 사흘, 밤 사흘을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냐? 가로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그가 가로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이 군대에게로 인도하리이다.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다윗에게로 데려왔고 그가 밤낮 사흘을 굶었으므로 그에게 떡과 물을 주고 또 무화과로 만든 떡 한 덩이와 건포도 두 송이도 주어 먹게 하였다. 다윗의 사람들은 긍휼과 동정심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말렉 사람들을 뒤쫓는 중에서도 죽어가는 한 불쌍한 소년을 돌아보았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이방 소년에게 베푼 긍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원수들이 진친 곳으로 인도함을 얻는 일이 되었다.

[16-20절] 그가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탈취하였음을 인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다윗이 새벽부터14)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4백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다윗은 아말렉 사람이 취했던 모든 것을 도로 찾았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도로 찾아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도로 찾게 해주셨다. 그들은 또 수고에 대한 보상과 같이 아말렉 사람들의 양떼와 소떼를 다 취하였다.

[21-25절] 다윗이 이왕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2백인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온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다윗과 함께 갔던 자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다 가로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악한 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취한 노획물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며 또 백성의 다수가 똑같이 나누어야 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악한 자들의 주장을 눌렀다.

[26-30절]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탈취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가로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다윗은 시글락에 이르러 그 전쟁 노획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을 나눌 줄 알았고 그것으로써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시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 어려운 일들이 있음을 알자. 어려운 일들은 많은 경우 우리의 부족 때문에 온다. 히브리서 12:7-8,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그러나 때로는 까닭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 훈련을 위해 주시는 고난이 있다. 그것이 욥의 고난이고(욥 1:9; 2:3). 바울의 육체의 가시이었다(고후 12:7-10).

둘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으로 행하자. 다윗은 하나님으로 힘을 얻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써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좋은 결과를 주셨다. 다윗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깨닫고 증거하였다. 우리도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을 의지하며 행하자.


셋째로, 우리는 인간 관계에서는 너그러움으로 행하자.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버려진 애굽인 소년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전투에서 지쳐 뒤쳐졌던 200명에게 전쟁 노획물을 균등히 나누었고 유다 장로들에게 선물을 보내었다. 그는 인간 관계에서 선함과 너그러움이 있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선한 마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의 한 요소이다. 우리도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호의와 긍휼과 사랑으로 행하자.


31장: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

[1-3절]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었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였다. 3절에는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고 말한다. 다시 번역하면, “그 전쟁은 사울에게 힘들었으며 사울은 그 활 쏘는 자들을 인해 심각한 고통 중에 있었더라.” ‘중상(重傷)하다’는 원어(쿨 메오드)는 ‘심각한 고통 중에 있다’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중상(重傷)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KJV, NASB, NIV).

[4-6절]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사울은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의로운 용사의 모습은 아니다. 비록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롭고 선하신 판단과 처분에 달려 있다고 보지만, 자살은 성도들에게 합당치 않은 큰 죄악이다. 사울과 그 세 아들들은 그 날에 다함께 죽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무서운 징벌이었다.

[7-10절]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사자들을](NIV; 원문에는 없지만 뜻은 그러하다고 보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이스라엘 왕 사울은 목 베임을 당했고 그 시체는 성벽에 못 박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보다 더한 수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모욕적 패배로 징벌하셨다.


[11-13절]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7일을 금식하였더라.

요단강 건너편의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왕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용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였다. 길르앗 야베스는,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고 아직 임직되기 전 암몬 사람들의 침입을 당했을 때 사울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소집하여 구원해주었던 곳이다. 그 거민들은 그들의 왕 사울의 은혜를 기억했던 것 같고 그에 대한 선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사울의 결말은 전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죽음이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삶은 이렇게 슬프고 불행한 죽음으로 끝났다. 사울 왕 시대의 역사를 기술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역사책인 사무엘상은 이와 같이 사울의 부끄러운 죽음의 사건으로 끝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울의 죽음은 그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었다. 사울의 범죄들이 무엇인가? 첫째,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일.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었다(삼상 13:9, 13). 둘째, 아말렉을 다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아말렉의 왕 아각과 그 양들과 소들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을 남긴 일(삼상 15:9). 그의 부분적 순종은 불순종으로 간주되었다. 셋째, 죄 없는 다윗을 계속 죽이려 한 일(삼상 18-26장). 넷째, 제사장들 85명을 다윗과 합작했다고 잘못 판단하여 죽인 일(삼상 22장). 다섯째, 하나님께서 금하신 신접한 자에게 물은 일(신 18:10-11). 사울은 바로 이런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으로 결국 죽고 만 것이다. 죄의 값, 즉 죄의 보응과 결말은 죽음이다. 그가 지키려던 왕권 보존의 노력은 그의 죽음으로 허사가 되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다윗의 원수를 갚으셨다.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 한 사울의 죄는 의인을 핍박하고 죽이려 한 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울의 죽음으로 그 죄를 갚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갚으려 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자. 로마서 12:1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의롭게만 살자. 우리는 우리의 흠과 부족을 날마다 참되게 회개하고 고치며 결심하며 또 고난 중에도 두려워하거나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바라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바르게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가자. 그것이 지혜요 승리의 길이며 평안과 형통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여호수아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