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두증인
두 증인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나팔 소리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제목 : 두 증인의 사역 본문 : 계11:1-6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 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 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 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 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장입니다. 그러면 과연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 두 증인의 정체를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마 지막 때 살아서 온다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하늘을 향하여 비오지 못 하게 한 것은 엘리야이며,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은 모세이므로 두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견해 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종말의 종으로 보는데, 필자는 이 해석을 따르고 있습 니다. 즉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마지막 대 환란 때 일할 하나님의 종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말 라기 4장 5절 말씀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서의 전체적인 특징은 회개가 없다는 것 입니다. 회개의 촉구가 없어진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입니 다. 교회에서도 회개의 소리가 사라진 것은 저주예요. 전 성경을 통해서 회개의 성격이 없는 것은 말라기 하나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돌아오자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 시켜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타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날에 내가 와서 이를 심판할 터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일까요? 모든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로 봅 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초림과 재림으로 두 번 오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 이신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어쩌다 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게 되었는지 너무너무 감사 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큰 무리들이 다 떠나보내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 자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실로 크 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습니다. 과연 크고 두려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크고 두려운 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스라엘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종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가? 아니면 마지막 때 추수의 종이냐가 여기서 밝혀집니다. 예 수님 당시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일컬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 말씀에 “저가 또 엘리 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 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 성을 예비하리라”. 마태복음 11장 14절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 니라” 마가복음 9장 13절에도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바 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한 것입니 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엘리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 고 오는 세례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 바로 두 증인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온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등장 해서 오실 예수님을 예비했습니다. 그 황폐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독사 의 자식들아! 뱀들아!?라고 바리새인들 향하여 찔러대며 예수님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그 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예수님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두 증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종들입니다. 하나님 의 종들이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미리 예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왕이 행 차하는데 왕이 먼저 가서 ?나 왕이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비서들을 보내서 준비 시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데 느닷없이 갑자기 오 시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미리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는 신랑이 오실 때 신랑의 친구 가 먼저 가 있었습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에게 가서 신랑은 이렇게 생겼고, 신랑 성격 은 어떻고, 신랑 목소리는 어떻다고 알려주며 옷도 예쁜 옷을 입고, 이렇게 저렇게 준비 하라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종들이 나 타나서 재림하실 예수, 성도의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을 맞이할 재림을 준비시킵니다. 바로 이 것이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언급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입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 때 두 증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사이비 교주 박태선은 계시록에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했 습니다. 그래서 “내가 바로 두 증인이요, 내가 바로 주님이 보내신 감람나무”라는 해괴 망칙한 소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있으면 다 죽습니다. 혹시라도 연관이 되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야 됩니다. 엘리야가 바알 아세라 목상 450명과 싸울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엄청난 능력을 받 아서 혼자 다 무찔러 버렸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이 마귀 사탄, 용의 권세, 적그리스도 권세와 담대히 싸워서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할렐루야!
1) 요한이 받은 것
1절 =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요한이 사역을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지팡이 같은 갈대였습니다. 이처럼 두 증 인도 사역을 할 때 받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은 책 계시록입니다. 지팡이 같은 갈 대 는 작은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0장 10절에는 요한이 “작은 책을 먹어버리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들고 나타납니다. 갈대는 재는 것인데,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갈대는 캐논으로 쓰는데, 캐논은 정경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 러니까 지팡이 역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은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인도합니다. 목자 는 이 지팡이 하나만 가지면 맹수도 다 이깁니다. 이 지팡이 하나만 가지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밤에 맹수가 자주 나타나서 위험한데, 남자아이들이 막대기 하 나만 있으면 맹수하고 싸워 이긴다고 합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급소를 때리면 맹수들이 팍팍 넘어진다고 합니다. 열 몇 살 짜리 아이들이 이 막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맹수 들을 때리면 맹수들이 톡톡 떨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증인도 지팡이 같은 갈 대 하나를 가지고 맹수들과 싸웁니다.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지팡이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먼저 지팡이는 인도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 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뱀이 됐습니다. 목동이 지팡이로 양들을 인도하듯이 예수 그리스 도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인도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작은 책을 먹었다는 것과 두 증인들이 이 작은 책을 먹고 전한다는 것 사이에 연 결이 잘 안 된다는 의문 섞인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구조를 보면 쉽게 깨 달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95세에 요한계시록을 쓰고 죽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여러 백성 과 나라와 방백에게 이 작은 책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한번도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 간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요한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요한을 통하여 마지막 때 일할 두 증인을 말하 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면서 전도하라고 그러셨는데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제자들을 통하여 미래 에 이스라엘을 전도할 선교사들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요한에게 작은 책을 먹고 전하라고 하신 것은 종말의 두 증인들이 즉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작은 책을 먹고 전 세계 여러 나라와 백성과 방백과 모든 민족에게 계시록을 전하라는 것입니 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작은 책을 먹어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요한계시록만큼은 확실히 먹어버립시 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듭시다! 계시록 내용 몇 번 강의 들었다고 해서 먹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집에서 보고 완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계시록이 내 의식구 조 속에 싹 들어가는 순간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열려버려요. 말 씀으로 이 마지막 때를 조명하며 확실한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신앙을 지 키기 위해서는 계시록이 내 살이 되고 뼈가 되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별력도 생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절에 요한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았다는 것은 두 증인이 작은 책 요한계시록을 먹 어버린 그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24장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마태복음 24장이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임을 고려할 때 마지막 때 작은 책 계시록을 먹여주고 전할 전 세계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 것입니다. 참 종들이 계시록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는 이 작은 책을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반드시 먹는 종이 마지막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2) 받은 명령
1절 = ?…하나님의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하나님의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것은 상징적인 깊은 의미 가 있습니다. 성막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두 증인에게 성전과 재단을 척량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 다. 정말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자는 마지막 때 안됩니다. 지성소는 하나 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성소는 제사장들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제사장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바로 우리가 제사장급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에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집사들이 제사장들입니다. 일꾼, 집사, ‘디아코노스’가 다 그러한 의미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척량하라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마지막 때는 그런 자들을 이끌고 갑니다. “그렇 게 지성소와 성소 차원의 성도로 양육하라. 그런 자를 길러내라!” 아주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알곡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양들입니다. 마지막 때는 둘로 나눠 집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두 증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 그 말씀에 의해서 하 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절 =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 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두 증인이 받은 명령은 척량권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누구나 다 들어갑니다. 이 것은 대 제사장 차원이 아닌 제사장 차원의 보통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혼합종교에 다 들어갑니다. 이방인들도 여기까지는 들어가요. 뜰까지는 다 들어갑니다. 이는 교회 안 의 큰 무리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큰 무리들이 다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여기는 다 들어옵니다. 주님 성전의 마당만 밟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2절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저들이 성전 안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께 우상숭배하고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나를 버리고 나를 떠난 저들을 내 뜰만 밟았다고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마지막 때 내버려둬 라.” 그러니까 계시록이 오기 전까지는 끝까지 타락한자들도 회개시키고 하지만 계시록에 와서는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은 나둬라! 버려버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못된 것은 버려야지 절대 못된 것을 키우고 보호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 지막 때는 그물 속의 고기도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은 버려버려라.” 계시록 22장 에는 “거룩한자는 거룩 되게 하고 더러운 자는 더럽게 되게 내버려둬 버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 목회의 현실 속에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늘 후회합니다. 집사 직분을 너무 쉽게 주어서 집사 임명을 받고도 별 형태가 다 있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목회를 한다면 한 번 새롭게 해 보고 싶은데, 정말로 성전과 재단을 척량할 수 있는 그러한 성도로 기르 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여러분들 마지막 때는 성소와 재단 여기 가야지 주님의 마 당만 밟고 교회에 등록해서 예배만 한번씩 드리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큰 무리들이 표적의 그 떡을 보고 예수님을 쫓아다니고 열심을 냈습니 다. 그들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녔고 새벽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열심을 냈던 사람들이 생명의 떡을 말할 때는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 사람들도 제자라고 그랬어 요. 많은 제자들이, 제자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에는 목사명칭도 들어갈 수 있고, 장 로 명칭도 들어갈 수 있고, 권사 명칭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떠나버렸습니 다. 그 때 주님이 “너희도 가려느냐?”고 합니다. 그 때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영생 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는 절대 마당만 밟는 신자가 되 면 안됩니다. 정말로 제단 지성소 차원의 성소 차원의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이 알곡 성도예요. 이것이 거룩한 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마지막 재림 신앙을 가진 자들은 거기에 우리 신앙의 목표를 세우고 머물러야합니다. 지성소에 머무릅시다! 성소에 머무릅시다! 할렐루야! 성전은 지성소요, 재단은 성소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지성소의 신앙이 가장 높은 신앙 이라는 것입니다. 성소의 신앙은 제사장, 지성소는 대제사장, 이렇게 신앙의 단계를 보여 줍니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마당만 밟은 자, 아직도 제사장이 영적으로 되지 못한 자, 신앙이 연약한 자, 모자란 자, 이러한 사 람들은 그냥 두어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으니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오실 때 마지막 대환난 때 열매맺지 못한 곡식들은 다 버립니다. “그냥 두어 라! 버려라!” 그물 속의 고기도 좋은 고기는 담고 못된 고기는 버리고 버려버립니다. 똑 같은 거예요. 계시록의 방법으로 얘기했지만,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방법으로 하면 염 소를 말합니다. 한 달란트는 땅에 묻어버려요. 마당만 밟은 자를 버려 두어라. 이렇게 정확하게 신앙의 등급을 내용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서 강렬하게 와 닿아야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제단과 성소의 등급이 돼야지 교회의 마당만 밟고 다니는 신앙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 다.
3) 권세를 받는 두 증인
3절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예수님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종말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 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새 시대의 개념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그 리고 광야에서 가나안땅으로 빼내실 때, 타락한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 빼내실 때 그 다음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애굽은 종이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성막 시대와 가나안 땅의 성전 시대를 거쳐 타락한 이스라엘 속에서 새로운 신약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음녀 바벨론, 여 기서는 새 하늘과 새 땅, 세 번 새로운 영적 세계가 열립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이 세상가운데서 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약교회를 통 해서 다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갈 때 하나님이 첫 번째 하신 일이 무엇입니 까? 거기 보면 모세를 딱 세우셔요. 주의 종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신약교회를 세울 때 첫 번째 하신 일이 열두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주의 종 을 세우셨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가야할 좋은 나라인 천국을 갈 때 누구를 세우시는가? 바로 두 증인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구약이고, 신약이고, 종말이고 할 것 없이 다 같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주의 종이 얼마나 중요한가? 주의 종은 양들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바로 이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신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종을 모세 친구와 같이 대면했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너무도 사랑하셨습니다. 여기도 보면 예수님이 ?내가 나의 두 증 인에게?라고 그러십니다. 너무너무 중요하니까 두 증인 그러지 않고, 나의 두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6절에도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라고 했습니 다. 이것은 교회가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이야기할 때는 ‘내’자를 안 붙여요. ‘내 사자를 보내리니’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사랑하시고 종들을 통하여 구원 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무교회주의, 무목자주의는 전부 사이비들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니까 교회도 필요 없다, 목회자들이 자꾸 세속화되니까 목사들도 필요 없다. 제 아무리 교회와 종들이 타락 해도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종들을 통하여 진리를 계승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할렐루야! 마지막 때도 똑 같아요. 하나님의 종인데 명칭상 두 증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두 증인이라고 했는가? 이 두 증인이라는 것은 법적 승인수예요. 신19:15절 말씀에 “사 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 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요한복음 8장 17절에 “너희 율법에 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그러니까 두 증인이라는 것은 두 사람을 말 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진리를 외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법적으로 승인한다고 하 는 법정적 용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아니예요. 창세기 19장 1절에 소돔성이 멸망할 때 천사를 통해 하나 님 역사하시는데, 이 때 두 천사를 보냅니다. 이것이 모두 같은 개념이예요. 여호수아 2장 1절을 보면 여리고성에 정탐군을 보낼 때 열두 지파지만 두 사람씩 보냈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열두 제자를 두 사람씩 보냈다고 했습니다. 둘씩 보냈다. 그러니까 이것은 꼭 두 사람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절에 보면 70인을 파송할 때도 70명이었지만 두 사람씩 보냈습니다. 누 가복음 7장 19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낼 때도 두 제자를 보냈습니다. 누가복 음 24장 5절에 보면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 나타난 천사가 두 천사였어요. 그리고 사도행전 1장 7절에 주님이 승천하실 때 공중에 나타난 천사가 두 천사입니다. 천사는 원 래 날개가 없어요. 날개를 단 것은 다 가짜입니다. 저 헬라 신화, 헬라의 미신, 그런 우상 신전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카톨릭에서 날개를 달고 나는 천사는 잘못된 것 이예요. 천 사를 여자로 그린 것도 잘못입니다. 여신숭배, 마리아 숭배 다 잘못된 것입니다. 천사는 여자 남자 구별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계시록 13장 15절에는 거짓선지자의 권세가 나옵니 다. 마지막 대 환난 때는 거짓 선지자가, 용이, 짐승이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마귀 사탄들도 마지막 이 한 판에 전부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도 최후 한 판에 힘을 쏟을 때 어떻게 합니까? 이쪽의 모든 힘과 무기를 다 동원하고 저쪽에서도 남은 병력과 무기를 총 동원하여 완전히 쏟아버립니다. 그때는 자기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쓰러지든 어쩌든 전부 힘을 남김없이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이제 세상이 끝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마귀 사탄들도 거짓선지자들에게 엄청난 권세를 줍니다. 그래서 용의 권세, 짐승의 권세가 기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이 두 증인의 권세는 이 보다 월씬 더 무시무시한 엄청난 권세 로써 모세의 권세와 엘리야의 권세를 합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빼낼 때 모세에게 실로 엄청난 권세를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냈습니다. 말이 바로이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애굽의 문화로 왕 의 권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니까 모세를 물에서 건져낸 바로의 딸이 여왕이 되었어요. 아들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궁중에 있었으면 자연히 왕이 되요. 당 시는 애굽이 천하를 지배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버렸습니다. 모세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정만 60만 정도, 전체는 200만 이상 이끌고 나올 때는 모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의 권세를 주셨 고 바로 앞에 담대히 나가서 “바로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라고 하신 다.”라고 강하게 외칠 수 있는 이런 권세와 능력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권위가 다 무너져갑니다. 대통령의 권위, 목사의 권위, 부모의 권위도 다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별 사람이 다 있는데 이것을 이끌어가려면 보통권세를 주셨겠습니까? 12제자들도 이 세상 구약의 타락한 교회를 신약교회로 이끌어내는데, 로마의 핍박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심지 어 바위를 뚫고 가서 살았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이에 대항해 예수를 전하다가 잡히면 죽습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목사라고 지도자라고 가서 전도하고 예수를 전파하겠 습니까? 성도는, 양은 절대로 스스로는 못 삽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전면 해체되어 버립니다. 목자 없는 양은 존재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장로, 권사, 집사라도 목 자가 없으면 그 날로써 방해해버리고, 이렇게 양은 안 되는 것입니다. 12제자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이끌었겠습니까? 열두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어서 그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베드로잠스터’라는 돌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너무 핍박이 심하니 까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그랬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하니까 “네가 떠난 로마로 향하여 내가 가노라.”하며 환상 중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전해진 이야기로는 베드로가 “주여! 용서하소서 내가 다시 가겠나이다”하고 그리고 로마로 들어가서 전도하다가 잡혀서 죽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목을 단두대 같은 돌에 올려놓고 작두 같은 칼로 탁 친 자리가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교회, 목 이 탁 치니까 한번 톡 튀고 톡 튀고 이렇게 튄 자국마다 표시를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바 로 이러한 상황가운데 초대교인들을 교회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권세를 주시지 아 니하시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주의 종들이 도망가면 다 흩어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에게 권세를 주었던 것입니 다. 마지막 때도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시는데, 이 권세는 최고로 막강한 권세입니다. 예 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처처에 환난이 있으리니 창세 이래로 이후에도 이런 환난은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무엇이든지 최상 급입니다. 마지막 한판하고 끝내버리니까 주님 재림 때는 좋은 것도 최고이고, 나쁜 것도 최고입니다. 지금 악한 사람은 무지무지하게 악해지고, 좋은 사람은 진짜 신앙이 더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렇게됩니다. 그러므로 까불지 말고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권세를 준다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막연히 뭐 능력이나 받자고 하면 안됩니다. 적군은 신종무기인 대포를 가지고 막 싸우자고 나오는데 우리는 소총가지고 조준해서 “탕! 탕!”하고 쏘아서는 못이기는 것입니다. 저쪽에 대포가 나왔으면 그 대포보다 조금 위 에 있는 무기를 가지고 펑! 펑! 쏘아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이미 결정됐습니다. 아멘! 우리는 이겨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예요. 최 고 여러분들이 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을 구원시키고, 축복해 주시고,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어서 이끌고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좋은 권세 일곱 가지와 나쁜 권세 일곱 가지의 싸움입니다. 나쁜 권세는 계시록 13장 8절 만국을 다스리는 적그리스도 짐승권세, 14장 12절 짐승의 권세, 13장 용의 권 세, 9장 10절 황충의 권세, 9장 3절 전갈의 권세, 13장 5절 마흔 두 달 일할 권세, 13장 15절 거짓선지자의 권세입니다. 무시무시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쪽에도 만국을 다 스리는 권세 2장 26절, 12장 10절 그리스도의 권세, 16장 9절 하나님의 권세, 20장 4절 심판하는 권세, 20장 6절 둘째 사망을 다스리는 권세, 22장 14절 성안에 들어가는 권세, 11장 3절 마지막에 두 증인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도요한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초대교인들이 전부 에베소에서 도망가는데 거기서 사도요한이 교회를 하면서 로마와 싸우면서 이 복음 예수 하나 전하는데, 만일 권세와 능력을 주의 종인 요 한이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종말의 두 증인에게 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엄청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4) 두 증인의 복장
3절 =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이제 두 증인의 복장입니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굵은 베옷은 욘3:5절과 관련하여 볼 때 회개의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굵은 베옷이라고 그 랬습니다. 이것은 큰 회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옷을 찢을 때 베옷을 찢습니다. 회개할 때 막 찢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찢는 것에 대한 예표성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이 성전 터가 쭉 있는데 정말 로 거대해요. 그런데 전부 로마가 훼파해 버렸는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다고 그랬 습니다. 겨우 한쪽 벽, 서쪽의 통곡의 벽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을 왜 남겨놓았을까요?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터를 봄으로써 로마의 힘이 얼마 나 위대한지 깨닫기 위해서 이것을 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여기 와서 회개하 고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찢고 전 세계 통곡의 벽에서 막 우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옷을 찢다보니 양복이 다 찢어지고 옷이 다 찢어지니까 옷을 만들 어서 거기서 팝니다. 그래 판 옷도 갖다 찢어요. 그 정통파 사람들은 까만 옷을 보여서 연주복 같이 옷을 입고 계속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인줄 믿습니다. 감 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전 세계가 무너지니까 온통 기근과 지진 덩어리입니다. 그리스, 터키, 로마 가보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헤라가 지배했을 때 세계 곳곳에 신 전들을 세워놓았습니다. 헬라의 제우스신, 비느스신, 바카스신, 바카스신은 술신입니다. 황제신전들을 세워놓았어 요. 예수님이 딱 오셔서 로마가 기독교화 되니까 신전들을 전부 때려부수고 전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이 지배할 때는 교회가 전부 회교사원으로 다 바꾸어집니 다. 예수가 사라져 버립니다. 우 리 한국 땅에 예수가 머문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예수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전부입니다. 내가 미치도록 믿을 예 수! 예수 안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것이 바로 이 예수입니다. 예수 그 분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일곱 영의 역사, 즉 성령을 통한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회 개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무시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니까 회개가 최 고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용서를 빌면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오냐, 너 잘못했냐? 알았다. 너 한번 죽어봐라.” 이렇게 말하는 그런 부모는 절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의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때는 회개가 그렇게 너무너무 중요 합니다.
5) 두 증인의 사역 기간
3절 =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260일 예언하리라”고 했는데, ‘1260일’은 언제입니까? 마지막 대환난입니다. 마태복 음 24장에도 보면 환란 전반부가 “환난의 시작이니라”라고 언급됩니다. 그리고 환란 후 반부가 나와요. 그 다음에는 환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이렇게 나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여기가 환란의 중간입니다. 그때는 완전히 적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1260일은 이 부분입니다. 여기도 1260일이에요. ‘마흔 두 달’, 그러나 대게 좋은 것은 1260일을 씁니다. 나쁜 경우를 말할 때는 마흔 두 달, 후 삼년 반을 말할 때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흔 두 달이라고 이렇게 씁니다. 계 시록 11장 1절에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제단과 성전을 척량하며 마당은 마흔 두 달 동안 두어라.’ 그 말은 이 환난기 후반부에 짐승이 통치하면 이때 ‘그냥 두어라.’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두 증인들은 이 환난기 전반부에 활동하고 순교합니다. 그러면 1260일 동안 두 증인들이 활동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잠잤던 교회들이 다 깨어나고 감추었던 복음들이 확 드러나며 이 때는 양과 염소로 성도들도 갈라지고 진 리와 비진리로 빛과 어두움이 전부 갈라지는데, 하나님의 두 증인들이 권세를 받아 진리 의 횃불을 붙들고 1260일 동안 외치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구약 교회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렇게 타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열 두 제자들이 나타나서 진리의 횃불, 복음의 횃불, 예수 그리스도 횃불을 들고 격렬하 게 싸웁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과 그 사도들에 맞서 강렬하게 싸웠습니다. 마지막 때 는 두 증인들이 126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외칩니다. 두 증인은 때를 따라 양 식을 나눠줄 종말의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목자관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목자관은 올바른 믿음을 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목자가 있 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를 영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말씀과 예배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6) 두 증인의 상징적 표현
4절 =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4절에서는 두 증인을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묘사했습니다. 계시 록은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의 핍박을 연상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됩니다. 반드시 겹쳐 져 있어요. 이것을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라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떨어져있는 두 사건 이 공통된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일들을 예수님 당시로 먼저 생 각해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두 증인들은 구약교회가 말할 수 없이 타락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들 이 새로운 교회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를 사수하고 순교했던 예수님 의 열두 제자가 모델입니다. 마지막 때는 두 증인들이 베옷을 입고 회개운동을 일으키며 큰 권세를 받고 일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 증인을 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표현했을까요? 이것은 스가랴 4장 14절 을그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 니라.” 실제 인물로 보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에서 이스 라엘 백성들이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고 처참한 모습이 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영광을 드리고 하나 님을 찬양하면 그 땅이 기름지고, 범죄하면 그 땅이 아주 엉겅퀴로 척박한 땅이 되어 버 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우리의 심령의 땅과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 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배경으로 했을까요? 마지막 때 교회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잠을 잡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네 믿음을 보겠느냐? 한국교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국교회는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의 신앙 생활로 몸부림치는 것입니 다. 그런데 한국교회마저도 지금 이렇게 약해지는데 전 세계적으로보면 교회가 31억이라 고 합니다. 제 아무리 기독교가 많다고 할지라도 카톨릭은 완전히 배도했고, 희랍정교회 는 완전히 세속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는 인구의 98%가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교회 들은 많아도 심지어 98%가 기독교라고 해도 나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 나오시고, 주일성수 하시고, 새벽예배 나오신다는 것은 대단한 것 입니다. 신앙들이 다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꼭 새벽예배에 나가셔야합니다. 그러한 신앙 이 바로 그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는 교회의 진리가 어두워지고 믿음을 보겠느 냐는 것은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다 무너지는데 열 두 제자를 통하여 다시 교회를 일으키듯이 예루살렘 스룹바벨 대제사장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듯이 두 증인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시 회복하고 진리의 횃불을 다시 밝히는 그러한 배경을 계시록은 깔고 있습니다. 두 인물이라는 측면에서는 두 감람나무와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는 성령을 상징합니 다. 박윤선 목사님은 감람나무와 촛대는 교회의 성령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짭니다. 감람나무를 보면 별 나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유익해요.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입니다. 과일은 맛있는 열매요, 씨는 감람나무 기름이요, 이파리는 향유로 향기를 내는데 쓰입니다. 두 증인들을 감람나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종들이 마지 막 때 그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볼 때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정말 쓸모 있는 감람나무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람나무 기름에 불을 밝히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슬림도 덜 나고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리고 촛대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 복음의 빛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 회가 성령 충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널리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 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종들이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일으킬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 리의 빛을 만방에 비치게 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 야! 마지막 때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데 진리가 사라지고 혼합주의가 이렇게 세계를 지배할 때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가라지를 먼저 묶는 시대예요. 반드시 진리의 불이 밝혀질 것입니다. 반드시 작은 책 요한계시록이 여러 나라와 백성과 전 세계에 증거 될 것이고, 이 때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순교적 각오로 복음을 외칠 것입니다. 영적 으로 문을 닫았던 교회들이 다시 뜨겁게 주님을 부르짖고 그러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같은 그런 교회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계시록을 보면 절망이나 좌절, 공포가 아니라 소 망이요, 승리요, 화실한 해결책입니다. 할렐루야!
7) 두 증인의 권세
5절 =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이제 5절에서는 좀 더 강력해집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종들인 두 증인을 해하고자 하면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 이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입에서 불이 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불같은 말씀의 능력으로 사탄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예레미야 23장 29절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는 말씀에 그 해석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왜 보호하십 니까? 열 두 제자들이 사역을 마칠 때까지는 철통같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모세 도 바로의 군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호했습니다. 열두 제자를 보호하셨고, 마지 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열왕기하 1장10절을 보면 엘리가 “하늘에서 불이나서 오십인을 사를지로다” 하니까 실 제로 불이 내려와서 50인을 태워버립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해서 박윤선 목 사님은 이것을 여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을 건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입에서 불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 통같이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는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세력, 적 그리스도 세력, 거짓선지자들, 용의 권세를 말합니다. 마지막 대 환란때는 전 세계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이러한 원수들과 대항해서 싸웁니다. 144,000명의 하나님께 인침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두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목자관계를 확실하게 세워야 합니다. 철통같은 목자관계를 가 르쳐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해서 성막을 세우시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복음을 가르치시며 마지막 때는 “나 예수는 교회를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거케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뇌리에 꽉 박혀버려야 합니다. 목사의 방침을 어떻게 잘 받들고 그 방침대로 순종할 것인 가를 늘 생각하며 아론과 훌처럼 주의 종을 받쳐주는 그 일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 다. 민수기 16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 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명한 자, 택 함받은자가 오히려 주의 종을 힘들게 합니다. 무명한 자, 택함받지 않는 자는 주의 종들 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거스르며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금기사항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신앙생활에 좌우명으로 삼는 것이 복입니다. 11절에는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 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했습니다. 모세를 거스렸는데 그것은 여호와를 거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을 거스리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라는 겁니다. 주의 종을 흉보면 하나님을 흉보는 것이요, 주의 종이 불편하면 하나님 불편하신 것입니 다. 성경 전체적인 것이 다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16장도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험담하 니까 하나님을 험담했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받들면 하나님 을 받드는 것입니다. 절대 일을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목사가 방침을 세우고 나가면 그 방침대로 잘 순종해서 나가는 그것이 일 잘하는 것입니 다. 30절에는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땅으로 입을 열었다고 했어요. 고라 일당을 말합니다.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흉봤는데 여호와를 멸시했다고 했습니다. 고라 일당이 하나님 을 멸시한 적은 없어요. 하나님 앞에는 거룩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렇 지만 하나님의 종 모세를 거스리니까 하나님을 거스렸다고 하시며 하나님 멸시했다고 심 판하시는 것입니다. 31절에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 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켜버 렸습니다. 여러분들 절대 목사님을 거스르지 마시고 목사에게 순종하는 바른 신앙을 가지 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9장 18절에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했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재난과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있고, 염병이 있고, 꼭 그대로 있어요. 그러 면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괴롭힘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 다. “내가 그들을 쫓아내며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는” 그 이유는 19절에 나옵니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 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듣지 아니할 때 각종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4절에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하신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 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음란죄를 짓고, 간음죄를 짓고, 타락하고 막 그랬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죄는 주님이 보내신 주의 종들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아 니한 것입니다. 간음죄를 안 짓고, 사기죄를 안 짓고, 싸우지 않는다고 거룩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 나님의 종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보다 더 악하다고 더 심판받는다 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의 흐름을 꼭 아셔야합니다. 정말 아셔야합니다. 여러분들 의 모든 믿음의 목표는 어쩌면 하나님의 종과의 영적 관계를 좋게 맺는데 있습니다. 어떻 게 하면 아론과 홀처럼 받들고 목사님 하시는 일에 기도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복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두 증인들을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방법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세요. 목자와의 관계가 좋은 믿음은 그 믿음이 급성장하고 목자와의 불편한 관계는 믿음이 급락합니다. 이사가든 어디든 하나님께서 정 해주신 교회에서 그 목자를 잘 받드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요, 그것이 참 믿음 인 것입니다.
8) 권세(1)
6절 =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두 증인들, 즉 대환난 때 일할 하나님의 종들이 큰 권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 덟 번째 권세를 받는데 그것이 무슨 권세입니까?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엘리야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곱 번 기도할 때 무릎사이에 머리를 내리고 기도할 때 마지막 손바닥 만한 구름이 와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이스라엘을 적셨어요. 그러면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것은 엘리야의 능력을 말하는데, 열왕기상 17장 6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 로 말하면 성령의 권세를 말합니다.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해요. 엘리야와 관련된 것을 상 징적으로 보면 전부 성령이예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마지막 때 구름 위에 바람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바람 도 성령의 예표성이예요. 엘리야가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비도 성령의 단비를 부은 것과 관련됩니다. 아무튼 엘리야하고 관련된 것은 전부 성령과 연관돼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집에 갑니다. 거기 가서 기름이 떨어져요. 그 기름도 성령을 상징하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사건 하나 하나가 전부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환난 때 하나님의 종들은 성령의 일곱 영의 큰 권세를 가지고 사역합니다. 이것 이 엘리야 사역이예요.
9) 권세(2)
6절 =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홉 번째로 또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의 능력을 말합니다. 모세는 말 씀을 상징해요. 모세와 관련된 것을 보면 가장 대표적으로 홍해바다입니다. 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성령을 상징하고 하나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모세 쪽에서는 말씀 을 의미해요. 지팡이를 들었다는 것도 말씀을 예표합니다. 모세가 십계명받은 것도 말씀 이예요. 홍해바다를 가른 것도 말씀입니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말씀으로 죄를 씻는 것, 옛사람을 씻는 것, 그러니까 모세는 전부 말씀을 예표하는 것입니다요. 두 증인 은 엘리야의 성령권세와 모세의 말씀권세의 두 가지 권세를 가집니다. 초대교회 때도 열 두 제자가 오순절에 성령 받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영적 세계 변화가 왔 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무능력한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후 에는 엄청난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보세요. 은과 금은 내가 없으나 일어나라 그러 니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결국 순교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도 때 역사가 예표성을 보 여주는데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종들(두 증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능력의 권세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권세가 말씀과 성령의 권세입니다. 그러니까 나쁜 것도 가장 악하게 나오고, 좋은 것도 가장 좋은 것이 나옵니다. 마지막 때는 최후 것까지 다 쏟아버려요. 하나님도 다 쏟아버리십니다. 마귀들도 용의 권 세로 전부 쏟아버려요. 여러분들 성경을 보면 다 성령이고 말씀입니다. 구름기둥은 말씀 의 예표이며, 불기둥은 성령의 예표입니다. 두 증인도 말씀과 성령을 예표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았어요. 열왕기하 에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 동굴에 갑니다. 거기가 시내산이예요. 똑 같은 것입니다. 모세는 말씀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7장 보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갈 때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 야를 대동하고 나타나십니다. 여기서도 모세는 말씀을 그리고,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합니 다. 구약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러 갔어요.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모세와 엘 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을 강조한 것 이예요. 종말의 두 증인들이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하고 하늘에 비가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적 성 령의 역사와 모세적 말씀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큰 역 사가 일어나서 이 세상을 깨우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로 마지막 때입니다. 성경의 어디를 봐도 예수님의 재림이 나타나지 않는 부 분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마지막 때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잘 믿고 정말로 주님이 기뻐하 시는 대로 잘 믿어서 행복하고, 감사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장 강해(2) 두증인
제목 : 두 증인의 순교 본문 : 계11:7~14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 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 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여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 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 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 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 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 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 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 는도다”
1) 짐승과의 전쟁
7절 =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이렇게 함으로써 두 증인은 자신들의 증거와 사명을 마칩니다.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서 9장 해석을 할 때 나오는 용어입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주석에 이 부분을 계속 7년 대환난 전반부와 후반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증거를 마칠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대환난 전반부입니다. 환난의 전반부가 끝날 때 그러니까 대환난이 시작되면은 이 때는 엄청난 변화와 더불어 역사가 마감하는 기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들이 앞에서 본대로 모세적 권세와 엘리야적 권세를 받지 아니하면 이 대환난 때 를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을 통하여 증거를 마치셨습니다. 이 말은 사명을 잘 감당하 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루터가 거대한 교황청과 맞대응하여 싸웠습니다. 칼빈 이나 윌클리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이분들은 몇 번이나 고난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 지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완수하기 위해 칼빈은 제네바에서 쫓겨나기도 했 습니다. 칼빈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200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버금가는 고통을 당했습니 다.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쫓겨나기도 하고 어떤 형태로든지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 다. 칼빈이 승승장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곱 가지 병에 걸려 있어 서 ‘걸어다니는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잘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많이 아팠고, 제네 바에서는 그렇게 자기를 따랐던 사람에 의해서 의회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도 망갔어요. 물론 나중에 다시 복권은 됐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 속에서도 이분 들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두 증인들)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마24:45)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바로 그 종을 말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는 ‘양식을 나 눠주는 역할을 다 마칠 때에’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명을 확실히 완수한다 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그러면 누구에게 순교당합니까? 바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인데, 이것 은 박윤선 목사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적 그리스도로 말했습니다. “적그리스 도가 무저갱으로 왔다”는 말은 지옥에 그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지옥으로 이끌어 갈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짐승은 교황으로 보아야 합니 다. 여러분들 혹시라도 교황이 지금 참회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미혹되면 안됩니다. 요즈음 신 문마다 보니까 교황이 참회했다고 하고, 아주 세계적인 찬사를 동원해서 교황을 부각시키 며 신문마다 난리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참회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로 봐야합니다. 하나 는 자신은 진실하겠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예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스도를 파괴하며 우리의 진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면서 역사적으 로 회개한다는 것은 지나친 모순입니다. 회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서서 그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그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면서 자기 잘못을 회개해 야 그것이 회개지 교황의 이러한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교황의 회개는 한마디 로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 하나님과 무관한 회개입니다. 두 번째는 회개의 목적이 있어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종교통합입니다. 이 말이 제 일 중요해요. 지금 교황이 회개함으로로 이제는 종교간의 화합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신 문에 그렇게 나오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카톨릭은 십자군을 파송해서 회교도들을 무수히 죽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유럽의 십자군을 파송해서 다른 종교를 무참히 짓밟아버렸어요. 개신교도들도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그 모 든 것을 사죄하고 회개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종교간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져버리는 것입 니다. 그래서 결국은 교황권이 주도하는 종교다원주의, 세계 종교통합주의를 만들기 위한 사탄의 음모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바로 잡고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로 인한 구 원을 내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정통적인 신앙과 교리 안에서 회개했다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일이겠습니까? 이제 이 짐승이 등장하는 대환난 때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하는데 적 그리스도는 이 부분을 온화적으로 봅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잡고 이레의 절반에 그랬습니다. 이 때 적그리스도가 강력한 통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박윤선 주석에서는 "7년 대환난 기간 후 반부에 적 그리스도는 더욱 맹렬히 활동할 것이다"고 보았습니다.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의 복음, 그리고 종말의 계시록을 봅시다. 지금 역사 속에서 하나님 이 구약의 이스라엘 속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 고 홍해바다와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직접적으로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상이 바뀌었습니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미쳐버리고 생명까지도 다 버렸습니다. 왜냐하 면 자신의 조상들이 그것을 역사속에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지면서도 자기가 경험했던 그 하나님에 대한 감격,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 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올 것으로 믿고,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그대로 믿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동과 확신속에 역사적으로 처음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두 번째 진리의 세계인 복음의 비밀이 드러났 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눈으로 보고 만지는 그 하나님의 감격과 실체를 체험하고 이제는 생명을 바쳐버립니다.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삼층천을 보 고, 말씀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더 분명하게 깨달으니까 복음 으로 완전히 미쳐버린 것입니다. 이 복음을 대한 자들은 다 순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재림인데 계시록에 기록된 이 말씀들이 종말에는 이렇게 될 것이고, 두 증인이 나타나고 해 입은 여자가 나타나며 적그리스도 나타나고 결국에는 미 쳐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것이 다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 실 것이고, 언제 하실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까이 왔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확실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계시록을 통하여 재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세계를 우 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구약의 하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육적인 세계를 본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 진리의 세 계를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계시록을 통하여 새하늘과 새땅, 종말의 모든 세계를 확 실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미쳐야합니다. 계시록에 있는 사실들 이 성경구절 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 오실 때가 임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에 미쳐야합니다. 사도들이 순교했듯이 마지막에 계시록으로 무장한 재림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 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우리는 완전히 보고, 만지며,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 우 리는 또 하나 미칠 것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약 속에서 이스라엘 만난 그 하나님을 소유 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이루신 그 복음의 진리를 소유했는데 이제 우리는 계시 록을 통하여 이제 주님 오실 때의 이 상황과 새하늘과 새땅을 보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야 될까요? 계시록을 보면 아시아 일곱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 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말하는데,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정확하게 역사 속에서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도 미칠 노릇 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있으면서 천국을 보았고, 계시록을 ‘장차 될 일’이라 그랬습니다. 요한이 본 것을 다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연관지어 볼 때, 계시록 6장부터 흰말이 나타나고,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과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잦아지며, 물 때문에 앞으로 세계가 난리로 들어간다고 그랬습니다. 이 모든 지진 과 기근과 8장에 나오는 것, 9장에 거짓선지자들 활동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10장에서는 작은 책을 먹어버리라고 하고 잇습니다. 계속해서 11장에는 두 증인이 언급 되고, 이런 식으로 앞으로 될 것들이 전부 열리고 있는데, 사도들처럼 복음을 받고 미쳐 버리듯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 만나고 미쳐버리듯이, 우리도 마지막 종말에 될 이 사건 들과 새하늘과 새땅을 보고 미쳐버려야 됩니다. 꼭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장차 될 일 입 니다. 요한이 본 것을 기록했어요. 짐승을 적 그리스도로 보는데 교황과 똑같습니다. 13장의 짐승하고 적 그리스도는 똑같아 요. 이제 정말로 계시록으로 무장하고 난 여러분들이 장차 작은 책을 먹어버린 자가 복이 있다고 그랬고, 가르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랬고, 작은 책을 먹어버리라고, 여러 나라에 전하라고 그랬고, 장차 될 일이므로 꼭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받고 미 쳐버리고 순교해버렸고, 유대인들이 율법 안에서 하나님 만나고 미쳐버렸듯이 우리는 마 지막에 두 가지 가지고 미쳐야되지만 또 하나 계시록을 보고 장차 될 일에 미쳐서 정말 이 시대를 옳게 분별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짐승으로 더불어 일으키는 전쟁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알수는 없지만 그때가면 어떤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래도 로마 황제가 이스라엘 민족을 딱 무너뜨리겠지요. 아 마 이 때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2)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함
7절 =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두 번째 “저희를 죽일 터인즉”이라고 했습니다. 두 증인들이 순교합니다. 열 두 제자가 순교했던 모습 그대로 순교합니다. 순교의 제물 없이 복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음을 받았을 때 열두 사도가 순교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어느 민족이든지 복음이 들어갈 때 피를 얼마나 흘렸느냐 덜 흘렸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순교의 피를 많이 피를 흘린 민족은 기독교가 불꽃 처럼 일어나고, 피를 흘리지 않고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타락해 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한 지역은 기독교 거의 100%예요. 거기에 선교사가 가서 미개인들을 전도 하는데, 이 선교사가 피를 흘리면서 온 몸 오장육부를 전부 찢어서 널어놓았어요.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이 그 피를 보고 저주했어요. 그런데 그 피의 뒤를 또 다른 선교사가 이어 받아 거기 가서 또 피를 흘렸는데, 선교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 이 되었습니 다. 그런데 거기만 기독교가 거의 100% 신앙이 활활 타오릅니다. 고난은 현재 당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고난을 당했는가? 고난이 너무 아프니까 “주 여! 벗어나게 하소서!” 그렇지만 사실 고난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저는 목사님들을 생각 하면 육적으로는 큰 고통과 어려움, 삶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이 복음만 만나면 예수님 의 피 묻은 복음만 만나면 확 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튼 두 증인은 짐승과 싸우다 가 여기서 순교를 당합니다. 그것이 대환난 때, 열 두 제자가 순교 당한 것과 똑같아요. 이것은 이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습니까? 사도행전 12장 1절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 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이것 좀 보세요.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했습니다.
3) 두 증인의 시체가 있는 곳
8절 =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이 성이 영적으로 무엇일까요? 계시록 17장 18절에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 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했습니다.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죽습 니까? 적 그리스도와 큰 성은 음녀라고 했습니다. 바로 음녀에게 죽어요. 음녀를 저는 카 톨릭 교황권으로 봅니다. 제가 카톨릭 본부를 직접 보고 왔는데, 하나의 거대한 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큰 성을 음녀라고 그랬습니다. 음녀, 간음하는 교회, 타락하는 교회 이런 성 을 육적으로 갖추는 것은 카톨릭 밖에 없습니다. 교황청 밖에 없어요. 이것은 아주 분명 합니다. 여러분들이 큰 진리를 보고 하나님의 이 역사와 섭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세상의 모 든 고통과 아픔과 삶의 이런 모든 것들은 그냥 이겨버립니다. 큰 진리 앞에서 두 증인들 이 짐승과 이 음녀와 야합한 여기에서 죽어요. 그런데 음녀가 죽은 이 큰 성은 어떤 곳입 니까? “영적으로 하면 이 성은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합니다. 소돔은 베드로후서 2장 6-7절을 보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한 간음을 말합니 다. 소돔의 상징적인 의미는 간음이예요. 그러니까 두 증인들이 죽은 그 음녀 그 성은 아 주 더러운 간음하는 영적 비 진리를 가진 소돔으로 비교가 되고, 그 성은 애굽이라고도 하는데,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할 수 없이 노예로 괴롭히는 곳 이예요. 마지막 때 음녀는 애굽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 교회를 괴롭힌다는 것을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입 니다. 세 번째로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를 반대하고 핍 박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여지없이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카톨릭입니다. 이 는 영적으로 완전한 간음이요, 간음한 여자입니다. 두 번째 카톨릭은 영적으로 말하면 모 든 성도들 다 죽여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핍박했듯이 카톨릭이 타락하므로 말 미암아 교황청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말할 수 없이 사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바로 애굽이예요. 세 번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그랬 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파괴합니다. 지금 이 예수 진리를 다 깨뜨려 버립니다. 칼 빈이 왜 위대합니까? 칼빈은 이러한 음녀가 계시록 17장의 카톨릭이라고 쭉 봤습니다. 제가 박윤선 목사님 주 석을 쭉 보면서 거기서 깨달을 것을 것이 있나 봤는데, 참 안타깝게도 박윤선 목사님은 이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교회로 안 보고 이 세상으로 보아서 한국교회가 배도하는 이것 을 깨닫는데 아쉬움이 있어요. 칼빈이 보는 것이 맞습니다. 카톨릭이예요. 그대로 여기서 죽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을까요? 사도들이 복음에 미쳐버렸듯이 확신을 가지고 그랬듯이 저는 마지막 계시록을 통하여 종 말의 세계를 보고 주님의 새하늘과 새 땅을 보고 주님의 재림의 영광을 그 때를 보며 이 제 그렇게 될 것이며 하나하나 현세 속에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남은 것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누가 저는 저를 죽인다할지라도 이 진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것을 바꾸라고 칼과 위험이 온다 할지라도 생명을 빼앗긴다 할지라도 순교함으로 이 진리 를 지킬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증인이 짐승으로부터 죽고 난 후 그 시체가 어디에 있습니까? 죽는 곳이 음녀예요. 그 러니까 배교하는 혼합종교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서 순교하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사도들이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얼마나 고통당했고, 종교개혁가 들이 카톨릭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4) 멸시받는 두 증인의 시체
9절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9절은 멸시받는 두 증인의 시체입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라는 말 은 전 세계 모두를 말합니다. 두 증인들은 한국만, 이렇게 국부적으로 보는 것은 아주 잘 못된 것입니다. 백성과 족속과 방언과 여러 나라 중에서 전 세계에서 그 시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한다는 것입니 다. 목도란 말은 “몸소 직접 본다. 조롱한다.”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타난 것이에요. 예수님이 사흘동안 무덤에 계셨지요. 예수님 이 얼마나 조롱받았어요. 유대인들에게, 그런데 두 증인들을 보면은 복음을 전하고 순교 하고 이제 부활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 다” 똑 같아요. 조롱받고 비웃음 받고 “주여! 이 복음을 받는 자는 조롱도 받고 비웃음도 받고” 갖가지 고통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침 뱉음을 받으시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별소리를 다 들으셨어 요. 우리도 그것을 들어야돼요.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에요.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예수님도 보세요. 무덤을 막아버리고 로마 병정들이 무덤 을 지켰잖아요. 여기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시편 79편 3절에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 면에 물같이 흘렀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죽이고 그 시체들을 매장도 못하게 했어요. 그것이 배경입니다. 처참해요. 이 때는 그럴 것입니다. 진리는 사라졌을 것이고 무슨 놈의 예수냐? 무슨 놈의 재림이냐? 이렇게 비웃을 것입니다.
5) 두 증인의 시체가 조롱받는 이유
10절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두 증인 순교의 다섯 번째 모습은 두 증인 시체가 조롱받는 일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 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괴롭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일까? 진리를 선포한다. 열 왕기상 18장 17절 이것이 성경에 다 배경이 있거든요. 엘리야를 볼 때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그러면 엘리야가 육적으로 괴롭게했나요? “네가 언제까 지 그렇게 있을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 죄를 책망했고 진리를 선포했거든요. 그것을 괴 롭게 한 것이에요. 그래서 두 증인들이 이런 처참한 조롱과 아픔과 이것을 다, 진리는 강 력하기 때문에 반항도 이렇게 큰 것이에요. 꼭그대로 됩니다. 여러분들 그런 시각에서 보아야합니다. 꼭 이대로 됩니다. 아무리 봐도 주님 오실날은 가 까워요. 육신이여 내일 인류종말이 올 수도 있다. 썬 마이크로 창업자 조이가 경공인데 마이크로 창업자가 있어요. 그런데 앞으로 이렇게 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 물 때문에 세 상에 종말이 온다고 그러지요. 무엇을 읽어보면, 모든 면에 종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어요. 여기보세요. “기술의 발전이 현재처럼 급속하게 이루어질 경우 두 세대 안에 인류의 종말 과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더욱이 이같은 비관론이 정보화 시대에 개막을 주장한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에 공동창업자인 빌조이에게 서 나왔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고 미국 워싱턴퍼스트지가 12일 보도했다. 빌조이는 14일 인터넷잡지 와이워드에 발표할 24초짜리 건물에서 기술의 진보와 인류에게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는 유나바모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30년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현재보다 1백만배 이상 강해요. 컴퓨터가 지금보다 100만 배 강력해지고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으며 로봇을 우리 인간을 뛰어 넘어요. 스스 로 복제할, 스스로 복제까지 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60년 이후에 컴퓨터만 가져도 지구의 종말이 올 수 있습니다.
6) 조롱의 내용
10절 =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여러분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초대교회 종들이 조롱 받고 거기서 죽었잖아요. 사람들은 그 황제가 “죽여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자들을 보내서 황제의 손가락 동작 하나에 물어 뜯기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막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소리 지르고 환호성 을 지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에요.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두 증인들이, 이스라엘 보면 과거 주석들 보면 이스라엘 독립하리라고는 성경의 예언이 있는데도 주석가들이 한 주석도 이스라엘 독립하기 이전의 주석은 칼빈 뿐만 아니라 모든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독립할 것이라고 주석을 쓴 주석은 하나도 없어요.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상태를 보면 2000년전에 전세계 흩어져서 그 씨족이 말릴 상황이 고 그 땅은 터키가 지배했고 영국이 세계 다 지배하고 PLO가 거기서 살고 이런데 이스 라엘이 세계 지금 그때 100만 명까지 전세계에 흩어졌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것이지요. 그러니까 흩어져있는 사람들이 다 쫓겨다니고 600만명이 히틀러에게 몰 살당하니까, 이스라엘이 감히 독립한다는 것은 우리 성경 주석가들도 그것을 믿고 쓰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 버립니다. 이렇게 무천년이 굉장히 역사속에 강력했는데 주석을 쓴 사람이 대부분 무천년이 많아요. 그 사람들은 “이것은 재림의 확실성이다.” 이렇게만 해석했어요. 마태복음 24장 32절은 “재림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그 이론이 강력한 이론이예요.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이 아니예요. 재림의 역사성이예요. “이스라엘 무화과 나무가 싹이나면 그 무화과 나무를 보아라.” “그 무화과 나무”는 무 엇입니까? 앞에 있는 마태복음 21장에 “무화과나무를 보아라 싹이 나면”, “죽었다 살아 나면”, “독립하면” 틀림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내가 문밖에 곧 가까이 이른 줄 알라” 이것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 확 드러나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이 선지자는 무엇인가? 괴롭게 했다고 했지요?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왜 그렇느냐면 제사장은 백 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가거든요. 그 제사장은 늘 백성의 유익을 구해요. 백성을 위 해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요. 그러니까 제사장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약 400여명의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주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고 이러니까 얼마나 인기가 있겠습니까? 지금 교황보세요. 축복 기도해 주고, 평안을 빌고, 교황청의 문만 지나가면 죄가 다 없어 져버린다고 하니까 얼마나 인기가 하늘을 치솟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안그런단 말이예 요.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변해요. 하나님의 입장에 딱 서요. 그리고 성도들, 백성 앞에 나 가서 하나님의 유익을 구해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쫓는 것이예요. 그런데 마지막 때 활동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예요. 선지자예요. 그래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주일성수도 강조하고, 새벽마다 기도하자고 그러고, 세상의 모든 것에 회개하라고 합니다. 철통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선포합니다. 그래서 마 지막 대환난 때는 제사장적 종이 아니라 선지자적 종이예요. 그러나 제사장적 종은, 굉장 히 좋다고 그러고 부담이 없다고, 기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적으로 하면 고난과 아픔이 따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 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 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기억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그랬어 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선지자 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경고합니다. 제사장은 인기가 많아 요. 지금도 제사장적 목회자는 인기가 많아요. 사람이 좋다느니, 부담이 없다느니,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몰라요. 선지자는 독재한다느니, 강하다느니, 별소리를 다 듣습니다. 두 증인이 오늘 이렇게 조롱받고 마지막 역사속에 순교의 재물로 사라집니다.
7) 두 증인의 부활
11절 =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왜 “삼일 반 후”인가? 예수님은 우리가 그같이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습니다. 예수님 이 행한 것 같이 행했느냐? 하나님의 종들이니까 행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인들도 다 행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주님과 똑같은 삶의 과정을 살게 됩니다. 목사니까 신앙이 더 좋아야 하고, 평신도니까 안 좋아도 되느냐? 아닙니다. 7집사가 다 순교했습니다. 12사도 가 다 순교했습니다. 성경의 요구는 목사나 평신도나 똑같이 주님처럼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두 증인이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 때 초자연적 부활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특별한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엘 리야도 그렇습니다. 이것 다음에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생기’는 박윤선 박사님은 ‘생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될 일입니다. 꼭 이대로 믿 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기적이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입니다. 생기는 부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발로 일어섰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 시기도 하시고, 생명을 다시 살리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이 두 증인들이 발로 서게 하 셨습니다. 구경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에 이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일어설 때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립니다. 그 음성이 무엇일까? “이리로 올라오라” 했 으니까 하나님의 음성으로 봅니다. 요한도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큰 음성은 상상할 수 없는 음성, 천지가 진동하는 음성일 것입니 다.
8) 두 증인의 승천
12절 =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두 증인이 부활했고, 그 다음에 구름타고 올라갑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얘기합니 다. 구약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는 꼭 구름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성막을 짓고 나서 하 나님이 구름 가운데 임재하셨고, 시내산에서 구름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신약 도 예수님도 구름타고 올라가시고, 다시 오실 때도 구름타고 오십니다. 그런데 엘리야같 은 사람도 바람타고 올라갑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두 증인은 구름을 타고 영광스럽게 올라갑니다. 우리 믿음의 목표는 순교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순교적인 신앙으로, 수요예배를 드리는 것도,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도 순교적 각오로 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내 직무를 감당하는 것도 순교에 연결해야 합니다. 순교한 자에게 부활의 영광과 구름타고 올라가는 축복이 있습니다.
9) 원수들의 구경
12절 =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원수들은 조롱하고, 모욕하고, 배반하고,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계1:7절에 뭐라고 했습니 까? 주님이 재림할 때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다 예수 믿게 되겠느냐? 부활의 모습을 보고 누가 안 믿겠는가? 그러나 성령이 임하지 않으 면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어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어도 회개가 없습니다.
10) 큰 지진이 일어남
13절 = “큰 지진이 나서…”
두 증인들이 순교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지진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마태복음 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도 지진이 일어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각변동 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터키가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아시아 7교회마다 전부 지진을 맞았습니다. 터키가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교가 되어서 지금은 십자가가 아니라 모스크로 뒤덮였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때려 가지고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지 진이 하나님의 매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지진이 없는 것은 십자가 때문인 줄로 믿습 니다. 저 일본 보세요. 우상의 나라에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 습니까.
11) 지진의 피해
13절 =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문자적으로 칠천으로 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7이 만수이니까 만수의 의미인지, 문 자적 칠천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음녀 바벨론의 세력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 예수로 천국에 이른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승리합니다.
12) 남은 자들의 두려움
13절 =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남은 자들을 누구로 볼 것인가? 박윤선, 이상근 목사님은 참 회개로 보았습니다. 참 교회 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종들이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 다. 회개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회개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 님께 돌렸습니다.
14절에 여기까지 둘째 화가 지났습니다. 둘째 화는 유브라데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주석 가들의 이견이 없습니다. 계시록은 순서대로 장이 이뤄지지 않았고, 왔다 갔다합니다. 화 는 환난 후반부입니다. 마지막 셋째 화는 16장부터 나오는 대접재앙입니다. 11장 강해(3)
제목 : 일곱째 나팔에 이루어질 일 본문 :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이제는 다 끝납니다. 두 증인들이 마지막 돌 하나 던질 일만 남았습니다. 끝맺음의 모습 을 보여줍니다. 일곱째 천사가 부는 나팔이 마지막 나팔입니다. 끝나버립니다. 나팔을 불 때 하늘의 큰 음성이 나지요. 재림 때 나는 음성입니다. 살전4:16절에 보면 이 음성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주님의 호령이라고 했습니다. 호령의 내용은 없지만, “이 세상 사람들 아!” 어떤 말씀을 하실지 모르지요. 그 다음에 천사장의 소리와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팔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팔이 우주가운데 울리면서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백 마타고 오시지요. 믿어지십니까? 때로는 인생이 허무하게 생각되지만, 주님 재림하시고 천국 갈 생각하면 너무너무 좋지요. 재림, 천국 생각하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주 가운데 영광가운데 오실 때 죽은 자는 부활하고, 살아있는 자는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이 세상 나 라는 마귀가 왕 노릇하지만,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이제 그 나라는 우리 주님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나라가 됩니다. 11장 강해(4)
제목 : 이십 사 장로의 찬양 본문 : 계11:16~19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 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 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 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 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 찬양의 장소
16절 =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하늘의 큰 음성이 나니까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십사 장로들, 즉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 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통성기도 뜨겁게 하는 것과, 찬송 박수치며 뜨겁게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태복음에서 유다서까지는 찬송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가히 찬송장이라 할 만큼 찬송이 엄청납니다. 4장, 5 장, 7장, 11장, 19장 등 계시록은 계속 찬송으로 덮였습니다. 지금은 찬송에 은혜받지 못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 내가 그 속에 빠져들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 체험 을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가만히 앉았다 가면 안됩니다.
2) 찬양의 방법
16절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장로들이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경배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마지막 환난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 배입니다. 대환난이 왔다고 생각해봅시다. 교회는 굉장히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가정교회(구역회)에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 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중국도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통해서 그렇게 예수 믿는 자들을 죽 이고 핍박했는데도, 등소평이 나타나서 10년만에 조사해보니까 오히려 10배가 성장했습 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3) 찬양의 내용
17절 =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사명을 마치고 부활해서 올라가고, 예수님은 구원의 역사가 마감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라고 했는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석가들은 이제 재림 하시니까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찬양의 결과
19절 =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천국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의 원 형이요, 신약 교회의 원형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니까 닫혔던 하늘이, 닫혔던 천국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한 자들이 하늘 성전에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입니다.
가) 하나님의 언약궤
19절 = “…하나님의 언약궤…”
언약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맺은 언약의 실현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 요, 예수 안에서 일한 자는 그대로 갚아 줄 것이라는 이 모든 언약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 언약궤가 약속이기 때문에 언약궤만 잘 보관하면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보 1호가 언약궤입니다. 지금은 구약적 언약궤는 없습니다. 그것이 어디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언약궤를 맺었다는 것은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와 맺은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시한 것 가지고 우리 믿음 팔지 맙시다. 우리가 일부러 구차한 생활을 찾아 나설 것 까지는 없지만, 우리의 삶 에 어떤 아픔이 있을지라도 언약궤를 붙잡았기 때문에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나) 번개
19절 = “…번개…”
번개는 신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을 말합니다.
다) 음성
19절 = “…음성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권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라) 뇌성 19절 = “…뇌성…”
뇌성은 공의성,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 지진 19절 = “…지진…”
지진은 그 심판의 규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큰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바) 우박 19절 = “…큰 우박…”
우박은 재앙성입니다. 땅에 있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은 재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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