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2장(강해) 계 시 록
계시록 2장 2장, 3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서 현재 4장 이하는 미래 계시입니다. 현재는 교회시대라고 봅니다. 2장부터는 일곱 교회에 대해서 기록하는데, 특별히 4개의 교회가 등장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일곱 교회는 요한이 있는 밧모 섬을 기점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교회사의 일곱 시대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의 역사로만 보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주로 세대주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이론입니다. 또 각 교회가 일곱 중의 하나에 속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는 전세계 어느 시대에나 각 교회가 일곱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으로 봅니다. 주로 무천년설 학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전세계 교회 전 시대에 주시는 말씀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하여 전세계 교회, 전 시대에 주시는 말씀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영적으로 어느 시대나 전세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만 해석하려는 이론입니다. 일곱 교회 외에 다른 의미로 보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 교회로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구약을 신약으로 연결하는 것에 질색합니다. 홍해바다면 홍해바다, 만나면 만나지 그것이 어떻게 신약과 연결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도 예수님 당시 그 교회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로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일곱은 완전수이니까 모든 지상교회를 말합니다. 또 예언적으로는 신약 시대를 일곱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의미를 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일곱 교회, 모든 교회, 예언적으로는 신약 일곱 시대를 예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역사신학 교수인 밀하임 박사 책에 보면 “신약시대를 계시록 2, 3장에 근거하여 일곱 시대로 나뉜다” 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절대 무리한 해석이 아닙니다. '예언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구약과 신약 크게 역사를 나누지만, 예수님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까지 포함해서, 구약과 신약과 천년왕국으로 나눠집니다. 2장, 3장을 통하여 신약 시대의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저는 여기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10여년전에는 이 일곱 교회를 가지고 너무 놀라서 저녁 부흥 집회를 했습니다. 신약시대가 오기 전에 예언된 것이 역사로 입증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정리해보면, 지역적으로는 당시의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예언적으로는 당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영적인 일곱 가지 시대적 상황을 구분하기 때문에 교회사의 일곱 시대적 특성을 영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각 도시의 화폐를 수집하던 중 각 도시 화폐의 다지인이 교회의 시대별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도시대를 예표하는 에베소 교회의 화폐 디자인은 나무 열매였습니다. 복음의 열매를 맺는 초대 교회를 예표합니다. 속 사도시대를 예언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서머나 교회는 면류관이 디자인 되어 있는데, 이는 극심한 박해 속에 믿음을 지킨 속 사도시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언적으로 국교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그려져 있으며, 이는 로마의 국교로 인정된 후 정교의 혼합시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또, 암흑 시대를 예언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는 주문(呪文)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국교로 인정된 후 이방 풍습을 답습하는 시대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적으로 개혁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사데 교회는 열린 두루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진리로 암흑기를 밝히는 종교 개혁 시대를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또, 예언적으로 선교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주도 아래 전세계로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을 예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언적으로 종말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닫혀진 문짝이 그 화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미지근한 신앙으로 전도의 문이 닫힌 현시대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제 에베소 교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서론 일곱 교회 중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한 소아시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였으며, 사도 요한의 모교회로서 초대 교회를 대표합니다. 이것은 예언적으로는 사도 시대를 예표합니다. 에베소가 제일 타락한 교회입니다. 세계적으로 항구도시는 매춘과 쾌락이 성합니다. 여기는 종교적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데미 신이 있습니다. 아데미 신은 달의 신입니다. 태양신은 아폴로 신입니다. 이 아데미는 풍요와 생식의 신입니다. 이 아데미에는 유방이 13개나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면 13개의 가슴이 달린 여자에게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성경은 지명, 기후, 땅, 토질까지도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인 것, 종교적인 것을 살펴보면 성경에서 황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아데미 신을 제사할 때는 로마의 황제가 와서 집례합니다. 그리고 이 신전에는 매춘을 위한 여자들 수천명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신전에 존재하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고 매춘으로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몇 개월간 끝없는 항해를 하던 선원들을 생각해 보세요. 오랜만에 배에서 내린 선원들은 여기에 다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언적으로는 에베소 교회는 이 사도들, 사도시대, 교회가 세워진 시대로 봅니다. 그러면 신약 교회가 세워진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를 예표하고, 서머나 교회는 순교시대를 예표하고, 버가모는 국교시대, 두아디라 교회는 암흑시대,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시대,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시대, 4장 이하는 대환난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음란문제를 해결 못하면 그 시대가 곧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타락한 곳을 지명해서 교회가 시작되는 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합니다. 이런 단어의 뜻까지라도 사도 시대를 그대로 반영해줍니다. 교회가 세워졌으니까 바랄만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미끄러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가 세워졌지만 그 신앙이 무너지고 미끄러지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절 한절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지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모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 나름대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교회', '사자', '편지'입니다. 교회는 교회관을 말해줍니다. 사자는 주의 종, 목자관을 말해줍니다. 편지는 말씀관을 말해줍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주는 방편이 있는데, 그것이 곧 교회와 사자와 편지입니다. 보십시오. 믿음은 교회를 통해서 생깁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것도 이 세 가지로 연결됩니다. 첫 번째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12사도, 주의 종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편지, 말씀을 남겼습니다. 모세, 주의 종을 부르고, 두 번째 십계명, 말씀을 주고, 성막, 교회를 줍니다. 신약에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첫째, 12제자를 부르십니다. 계 22: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를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거케 하였다" 고 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와 주의 종과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서 그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단순한 세상 조직이 아닙니다. 주의 몸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을 보내심으로 탄생했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은 교회입니다. 말씀은 깨소금 같습니다. 그런데 배부르면, 너무 흔하면 귀한지를 모릅니다. 일본에서 십자가를 찾아보려고 30분을 달려도 찾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 많으니까 귀한지를 모릅니다. 거기는 주의 종들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은 목사님들이 계셔서 도무지 귀한지를 모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통장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집문서, 땅문서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목자, 말씀이 귀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에서 멀어지면 바로 시험에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갈 때 어떻게 갔습니까? 성막이 앞에 가고, 그 다음에 제사장이 따라갑니다. 여기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제일 뒤에 가다가 타락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절대적으로 가까이해야 합니다. 목사와도 가까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까워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주님의 첫째 모습을 봅니다. 신약 시대 교회가 시작되니까 12 제자들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이 '붙잡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에코'입니다. 손목을 붙잡듯이 가볍게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라테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못 빠지도록 잡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붙잡아 주십니다. 목사님들은 이런 것을 실감합니다. 위험이 있을 때마다, 위기를 만날 때마다 주께서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께서 나를 붙드시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내 영혼이 힘이 생깁니다. 목사들은 외롭습 니다. 고독합니다. 정말 너무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을 것만 같은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힘이 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루 하루 목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께서 그 오른손에 주의 종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떡상은 생명의 떡 향단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이십 등대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전부 예수입니다. 성소는 창문이 없습니다. 외부 빛이 들어오면 큰일납니다. 교회는 세상 빛이 들어오면 큰일납니다. 빛은 요 1:4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곧 빛이라' 다시 말하면 기름은 성령, 불이 밝혀진 것은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번제단에 불이 꺼지면 큰일납니다. 이 불은 성령의 불입니다. 아론에게 붙여진 이 불은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커지면 큰일납니다. 이 교회는 교회의 목적은 예수의 생명의 빛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은 생명의 빛되신 주님 만나려고 온 것입니다. 교회 흉보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1:20절에 별은 주의
산 밑에 있는 코스모스는 가늘고 힘이 없고, 바람만 불면 햇빛을 덜 받는 곳에서는 자라지도 못하고 꽃도 못피운 것을 보았습 예수가 관통하지 못하면 믿음의 꽃을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것은 '코포스' 인내도 죽기까지 참는 에베소 도시 그런데 교회 세워졌다고 사람들이 나오 나오는 사람들은 바보 같지요. 얼마나 믿기가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끝까지 수고했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예언적으로는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는 '에비온파'입니다. 이 파는 율법만을 강조합 믿음보다 율법을 강조합니다. 토요일을 율법적으로 강조 또 하나는 노스틱', 영지주의입니다. 영과 육을 지금 최대의 이단은 무엇인가? 문선명, 박태선 말할 것도 정작 무서운 최대의 이단 이것은 생명을 걸고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 혼합주의는 교회안 한국 강단들에서 이 설교가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믿음이 따르지 못할망정 신앙적으로 철저히 배격하 우리 교회가 통합주의자들, 혼합주의자들, 성경을 떠난 자들,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자들과 싸우면 주의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무역로인 에베소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자칭 사도라'하는 것은 그 때 당시의'니골라당'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니콜라우스'라는 사람이 진리를 떠났습니다. 그래가지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당을 결성했는데 그것이 곧 니골라당입니다. 그러러면 교회에서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서는 안됩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꼭 뒷 탈이 생깁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우면 인간적으로 섭섭해 질 날이 옵니다. 우리는 누구와 가까워야 합니까? 주님과 가까워야 합니다. 성도들과는 어떻게 가까워야 합니까? 영적으로 가까워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관계가 되십시오. 진짜로 참는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든지 참지 않아도 되지만 참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닙니다. 육적으로는 이길 수 있지만 영적 승리를 위해서 참아 보세요. 그것이 승리입니다. 주께서 기억하십니다. 에베소 교회가 어떻게 참았던가 기가 막힌 상황에서 억울함을 누르고 참았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인내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명예 때문에 참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 지나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칭찬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이름을 위하여', 예수 이름 때문에 견디면 왕노릇하게 됩니다.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번 살다 가는 것, 정말로 예수님께 미 바울은 디모데에게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메시지입니다. 게으리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름은 죄악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때가 악합니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게으른 종은 악한 종입니다. 선한 종은 부지런합니다. 주의 일에 부지런하십시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바울이 세워서 그렇게 성장했는데, 나중에 열심이 식어 버렸습니다. 주위의 쾌락에 만연해서 열심히 꺼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특징과 일치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설교한번 하니까 '어찌할꼬' 통회 자복했습니다. 날마다 모였습니다.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죽도록 일했습니다. 그런데 5장 이하부터 보면 식어버립다. 5장에는 아나니아 삽비라사건, 6장은 구제 물자 때문에 옥신각신, 8장은 돈으로 성령을 사려는 시몬이 나옵니다. 15장은 율법이냐 복음이냐하는 무서운 이단 논쟁이 있습니다. 주의 은혜가 이 교회에 함께 하는데 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 버렸습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믿음이 식어진 원인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성도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계 22:14에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변하지 않는데 성도들이 변합니다. 말씀은 변함이 없는데, 말씀은 받는 이들이 변합니다. 회개하고 처음행위를 가지라고 합니다. 철저히 처음 그 열정과 믿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처음 오시면 말씀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2, 3년 먹다가 조금 식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목사님 말씀이 옛날에는 그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변한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흐르고 익숙해지면 좋은지를 모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사랑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가장 쉽게 떠올리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 처음 행위를 가져라' 처음 가졌던 신앙의 그 열심을 회복하라는 것이지요. 회개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처음 만났던 감격은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든 사랑도 흘러가 버립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를 기억해 보세요.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이 감격스럽지 않았 얼마나 순수했습니까?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얼마나 부지런했습니까? 얼마나 울며 찬양하고 기도했습니까? 얼마나 영혼을 쥐어 잡고 울었습니까? 예배와 말씀을 사모했습니까? 그 행위가 주께는 향기로운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축복과 사명을 옮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셨을 때, 나를 사용하고 계실 때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고, 처음 행위를 갖기 바랍니다. 니골라당의 주장은 이것입니다. '한번 믿은 후에는 어떠한 행동도 죄가 되지 않는다.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미화합니다. 이것은 교묘하게 속이는 말입니다. 사탄의 음성입니다. 기독교의 적입니다. 용인하면 안됩니다. 오늘 이 시대도 다원주의 사상, 혼합주의 사상, 잘못된 이단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싸움의 대상을 오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교우들이 아닙니다. 니골라당의 행위와 싸워야 합니다. 혼합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이 시대 부패한 어두움의 세력과 더불의 싸워야 합니다. 미련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미워해야 합니다. 잘못된 사상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미워하십시오. 싫어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에 유익합니다. 주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입니다. 범죄한 후 하나님은 에덴의 오른 쪽 문을 막았습니 거기 나오는 그룹은 천사들로서 주의 종을 예표합니다. 화염검은 성령과 말씀의 예 생명나무를 먹으면 영생합니다. 그런데 동쪽 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동쪽 문이 열려 있고, 에덴동산에 막혔던 영생의 길을 여시고 들어오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막혔던 동쪽 문을 여셨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하실 것을 보여 줍니다. 칼빈은 “생명나무를 예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통한 구원의 약속입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 교회를 기록한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예언적으로는 순교시대를 말하지만, 복음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순교의 신앙을 말하기 위해서 서머나 교회가 기록된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세속화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세속화의 대표적인 것이 정치와 결탁하는 것, 국교화되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영광입니다. 교회가 영광을 추구하면 암흑시대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영광을 다 가져간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지, 세상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데 교회는 개혁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는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매주일, 매주일, 매년 매년 교회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입니다. 교회는 성도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 라오디게아 교회는 타락입니다. 타락할 때 '내 입에서 토해버리리라' 심판받는다.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타락할 때 빨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전세계 교회에 전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이 일곱 가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지점에 있으며 에게 해 서안에 위치하여 또 '아시아의 지배자'와 '대도시'로 불리는 영예를 놓고 에베소와 버가모와 더불어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예언적으로는 순교시대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에베소 북방, 64Km가 떨어져 있습니다. 아시아 제일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주전 195년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로마나’라는 여신 순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 교부가 나왔습니다. 이 분은 유명한 한번만 예수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니까 “86년 평생을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모른다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모른다고 하겠오” 해 가지고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교회는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자연까지도 상징적으로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순교하는 이 교회의 신앙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동방박사가 세 가지 예물을 드렸는데, 거기 몰약이 선지자권을 말하고, 고난을 상징합니다. 아프리카 소마리아 산에서 나는 감람과에 속하는 것입니다. 칼로 나무를 벗기면 거기서 수약이 나옵니다. 그것을 고체화해서 소화제, 마취제, 방부제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이름 자체까지도 순교시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 부활의 주님 “이런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이지만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런것들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살려준다고들 하는데, 기독교는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도 순교해야 합니다. 고난당해야 합니다. 예수 때문이라면 참고 견뎌야 합니다. 육적으로는 못합니다. 성령이 하십니다. ?들립시스?라는 단어입니다. 물체의 중압에 눌려서 산산히 깨져버린 비참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칭찬들은 것입니다. '페네스'라는 것으로 상대적 가난입니다. 그런데 '프토케이아'이라는 것으로 절대적 가난을 말합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예수 하나, 믿음 하나 지키기 위해서 전부 날려 버렸습니다. 폴리갑도 그랬습니다. 예수 때문에 그렇게 가난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짐이 너무 많으면 수영 못합니다. 수영복만 입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누리고, 영광받고, 타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맡기기 위해 주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 환난과 궁핍으로 인해 칭찬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는 위로의 권면입니다. 여러분은 이 비밀을 경험하셨나 주께서 주신 힘으로, 주께서 주신 위로로 이기는 것입 그러나 두려워 말아라' 이 음성이 여러분 삶의 현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영적 눈과 귀를 말합니다. 둘째 사망의 해는 영혼이 심판받는 것입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 그것은 잠간입니다. 둘째 사망은 영혼이 불못에 가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는 고통입니다. 그러니까 서머나 교회에는 영원한 생명을, 면류관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순교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순교의 신앙을 주옵소서. 한번 죽는 것, 자동차 사고로 죽지 않고, 암으로 죽고, 주님 필요할 때 이 목을 가져가소서' 저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표현이 상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되어진 것을 보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본 것도 안 믿습니다. 하물며 아직 되어지지 않은 미래의 될 일을 믿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장차 될 일을 계시록을 통해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계시록은 크게는 두 부분입니다. 신약의 예언성인데, 초림부터 크게 나눕니다. 초림부터 재림까지, 그리고 재림이후 천년왕국입니다. 신약의 부분 중에서 또 둘로 나뉩니다. 대환난. 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는 신약시대, 교회시대입니다. 어느 교회에나 주신 말씀이지만, 예언적으로는 교회시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예언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보통 감격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오늘 2장은 대환난이 오기 전의 모습입니다. 계시록은 예언적으로 일곱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얘기해줍니다. 예언적으로는 신약시대를 일곱으로 구분합니다. 저는 지금을 라오디게아 시대로 봅니다. 무엇으로 보나 라오디게아 시대입니다. (2) 징조에 대해 알려줌 두 번째는 징조에 대해서 일러줍니다. 성경에 얼마나 많은 징조가 있습니까? 많은 징조가 요한 계시록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재림의 자세한 모습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다시 오시겠다는 예언만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오실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19장에서 하늘이 열리고, 백마를 타고, 이한 검을 가지고 오셔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 어디에도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조금 언급되어 있습니다. 계6장에 보면 어린양의 진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게헨나' 몰록 신을 섬겼던 잔인한 모습을 지옥을 연상시켜 줍니다. 밑에서 불을 타고 있는 곳에다 자식, 어린아이를 집어넣습니다. 부모가 보게 합니다. 거기는 연기가 항상 나고, 아이가 잿더미가 될 때까지 태웁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인간에게 이해시킬 방법이 없으니까 이것을 가지고 비교해서 보여 준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혀에 물 한 방울만 찍어달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자세히 기록합니다. 14장을 비롯해서 19장, 20장에서 보여줍니다. 지옥에 대한 얘기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배우면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2) 버가모 교회는 국교 시대를 예표함 버 예언적으로는 기독교가 로마 정부의 국교로 인정받아 타락하게 된 국교 시대를 예표합니다. 버가모’는 합성어입니다. ‘펠’ ‘가모’입니다. 설교자가 그 뜻 가운데 자기 지향하는 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가모는 버가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결혼한 곳”, “높여졌다.” 또는 “탑과 결혼”을 말합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는 교회가 세상과 결탁한 곳, 정치와 결합한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높아져 버렸어요. 교회가 이 세상에서 국교가 되어 버렸어요.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국교가 되니까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육적으로 권력, 물질,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권력과 물질, 영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로되, 이런 것들을 통해서 무섭게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그 자연환경, 정치, 경제의 구조까지도 예언적인 것을 뒷받침해 줍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0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갔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그 많은 사람이 이 말씀에 미쳐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고 신비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초대교인들이 생명을 무릅쓰고 노예로 끌려가서 그 어머니에게 전도한 것이 성령이 역사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을 잡으면 죽이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고관들이 믿으니까 죽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늘 얘기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막텐티우스와 싸울 때 십자가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박해 금지령을 선포했습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었는데, 여기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해 버렸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런 국교 시대의 배경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A.D. 133년에 로마에 귀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아시아 지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여기는 제우스 신을 섬겼습니다. 아데나 신, 지혜와 예술의 신도 있었습니다. 의학의 신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뱀 신입니다. 전국의 환자들이 뱀과 신체적 접촉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뱀과 신체적 접근을 했습니다. 사탄과 접촉한 것을 보여주기라도 합니다. 예언과 성취는 너무도 일치합니다. 놀랍습니다. 그래서 버가모를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탑과 결혼한 것은 정치와 결혼한 것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예언적으로는 암흑시대입니다. 교회는 중세의 깊은 암흑속에 잠깁니다. 풍요속에서 신앙이 죽어버린 시대를 예언적으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라는 단어는 합성어입니다. ‘두아’와 ‘디라’인데, 그 뜻은 “관 쓴 여자”, 반대로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수고의 향기”, “희생”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중세 교회가 핍박이 없고, 국교가 되었으니 모든 영광을 썼던 그 시대를 의미합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64Km쯤 떨어진 곳으로 7대 도시 중에서 좀 적습니다. 그런데 편지는 가장 길게 나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두아디라에 보내는 편지가 가장 길 듯이, 일곱 교회 중에서 중세 암흑시대가 가장 길었습니다. 그렇게 연관시켜 생각해 봅니다. 이 지역은 허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강을 연결하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도시는 전략적 위치로서는 물론 버가모와 사데, 서머나와 비잔티움을 잇는 중요한 연결 통로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주 부자였습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왕도 교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교황청에서 파면해 버린 굉장한 시대였습니다. 교황권이 세상을 지배했던 시대였습니다. 여기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고향입니다. 중세 기독교가 얼마나 영광을 누렸는가? 4세기, 5세기에 교회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어서 전 세계에 놀랍게 퍼져 나갔습니다. 웨스트 민스트 교회는 예술품입니다. 약 500년 이상 전성기를 이뤘습니다.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까지 교회는 화려했습니다. 좋은 건물에서 권력과 명예와 부를 다 가졌습니다. 모든 예술가들은 로마 교황청 하나를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신앙이 무너진 부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믿음이 떠난 물질은 흉기입니다. 영혼을 죽게 합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이것은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예수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아디라가 영적으로 자니까 예리한 눈으로 통찰하시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통찰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통찰하십니다. 감출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투시기를 만든다고 하면, 그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감춘다고 감춰지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투명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해줍니다. 또 무엇을 말해 줍니까? 악의 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이미 다 보신 주께서 무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말해줍니다. 빛난다는 것은 번쩍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심판의 발입니다. 이글 이글 불이 오르는 주석 발로 밟아 버리면 모든 생물이 죽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중세가 너무 너무 타락한 암흑시대이니까 주의 심판의 모습을 참으로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주석 발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는 계시록을 볼 때, 여기서 유일하게 나타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영적으로 잠자면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1949년에 아일랜드 카톨릭 성직자들이 교황 레오 12세에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 중재자이신 다른 예수”라고 했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정치도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신임해서 높여 놓으면 정치해서 구테타를 일으킵니다. 교회도 집사 때는 조용하다가 장로되면 교회를 좌지우지합니다. 인간은 높아지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 위치까지 높아져 버립니다. 미국의 청교도 신앙을 보고 하나님께서 각종 좋은 것을 주셨는데, 지금은 거기서 각종 나쁜 섹스 문화, 타락한 음악 문화, 전쟁 문화, 사탄 문화가 거기서 나옵니다. 처음에 먹을 것도 없던 그들이 하나님이 높이시니까 어느날부터 안주하면서 타락해 버렸습니다. 목사가 그렇게 되면 이 교회의 영이 다 죽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교황이 그랬던 시절, 예수님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영적으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부자니까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중세 암흑시대가 영적으로는 죽어 갔지만 많은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 사랑도 많았습니다. 고아, 가난한 자들 양로원, 고아원 만들어서 다 먹였습니다. 믿음, 섬김, 인내도 있었습니다. 큰 흐름은 타락했지만 그래도 한쪽 흐름은 이런 믿음의 형태가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수고한 모든 사업을 주님이 아십니다.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흔히 ?사업한다?고 하는데, 사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그리고 열심히 그 일을 감당합니까? 우리가 세상 사업보다 주의 사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하신 모든 것을 아십니다.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주제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노래합니다. TV에서도, 극장에서도, 공연장에서도, 책에서도, 컴퓨터에서도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기억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랑입니다. 주께서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을 아십니다. 큰 믿음을 소유하세요. 가나안 여인같은 믿음, 백부장 같은 믿음을 소유하세요. '말세에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 말세에는 믿음 보기가 어렵습니다. 풍랑이 일면 우수수 떨어집니다. 믿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섬김을 아십니다.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의 종이 되어 섬겼습니까? 그는 높아질 것입니다. 높아지지 마세요. 스스로 높아지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 주께서 높여주시는 사람이 되세요. 그렇다면 주께서 제자들을 섬김같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내 이 심정을 누가 알까?' 스스로 질문합니다. 아무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께서 네 인내를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내하는 것은 성격따라 잘하고 못하는 일로 접어 들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신앙과 관련된 열매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은 화려한데 나중이 형편없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용두사미'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교회는 나중이 처음보다 나았습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좋으면 가장 좋지만, 처음이 좋고 나중이 안 좋은 것보다는 이것이 좋습니다. 우리 주님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늘 한결 같으십니다. 여러분도 일향 변함이 없으신 주님을 닮으십시오. 신실한 사람들로 인정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처음 행위보다 좋아야 할 때입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이세벨은 왕상 17, 18장에 나옵니다. 아합왕의 부인입니다.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왕상18:19에 보니까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한 바알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 선지자가 4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우상의 땅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영이 떠나면 이렇게 됩니다. 온갖 기적을 다 체험한 그들이 한 여자가 우상을 가지고 오니까 다 넘어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언제 넘어질지 모르니까 항상 기도하고, 믿음 관리해야 합니다. 기독교 국가인 유럽에도 무당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와 로마 정치의 결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버려두면 황폐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의 밭도 그렇습니다. 어제 장미꽃이 피는 화단이라 할지라도 몇 개월만 가꾸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 지고, 타락해져 버립니다. 언어를 들어보면 영적인 상태가 어느정도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위대했던 초대교회가 중세에 와서 이렇게 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만나서 이스라엘을 행음하게 한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영적으로 말하면 이와 똑같습니다. 부요하면 찾아오는 것이 간음입니다. 이 도시가 돈이 많으니까 간음 천지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 한국도 살만하니까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하고 있습니까. 육적 간음도 간음이지만 영적인 간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약4:4에 “세상과 벗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예수 안에 빠져야 합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고나서 제물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죄를 지었더라도 회개만 해라. 그런데 그 음행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이세벨을 침상에서 창문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그래서 온 몸이 피로 왕하 10:25-28절에 보면 바알신을 섬긴 모든 자들도 같은 운명입니다.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심을 말합니다. 버가모 교회가 나중에는 어려움에 들어갑니다. 중세 교회가 나중에는 비참하게 됩니다. 지역의 후손들이 지배를 받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묻습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구약의 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간들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하나도 행위로는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의지한 자는 행위죄를 피로 씻어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피, 회개, 용서입니다. 그러니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참회록에 보면 어거스틴에게 성령이 임하니까 어머니 젖꼭지 물어뜯은 것 까지 회개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죄에 대해서 예민해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무뎌집니다. 그런데 예수가 없으면 용서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행위대로 맞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죄인중의 괴수'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한 자에게는 안길 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만 있으면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잘못한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끗하게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떠나면 과거 모든 죄부터 행위대로 묻는 것입니다. 재림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 때까지 그 믿음을 꼭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깊은 영은 마귀의 영이 알게 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은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이 시대는 풍랑을 만난 파산한 배와 같습니다. 잡고 있는 널판지를 놓으면 죽듯이, 우리가 이 시대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 천국이 이렇게 좋은 곳이기 때문에 천국에 갈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도 엄한 것입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바로에게는 세상 권력, 무기가 다 있습니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거기서 모세의 뱀이 먹혔으면 바로에게 모세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요16:33, 고후15:7을 보세요. 예수가 없으면 마귀가 지배하니까 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마귀는 공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힘으로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긴 예수 안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왕권 성도입니다. 창1:28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계 20:1에 “왕노릇하리라.” 그러니까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려고 해도 무너뜨려야 합니다. 철장권세 받은 사람은 마귀의 궤략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예수 권세가지고 써 먹지 못하면 안됩니다. 이겼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이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라' 우리는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요가 찾아올 때, 타락하고 음란하고, 우상숭배했던 것들을 너희가 회개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이길줄로 믿습니다. |
|
'▣ 요한계시록 > ◆ 요한계시록1'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장, 8장 /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0) | 2020.04.01 |
---|---|
★ 3장[사데,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 /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0) | 2020.04.01 |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8,11장 (0) | 2020.04.01 |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2-4장 (0) | 2020.04.01 |
계시록설교노트 3. - 이광복[17-22장] (0) | 2020.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