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1

★ 4장, 8장 /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영국신사77 2020. 4. 1. 00:51

 

4장 
하늘의 예배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시록 4장부터 19장까지는 대환난의 내용입니다. 


6장부터는 ‘흰말’, 적그리스 도가 나타남으로 환난이 시작됩니다. 

6장부터 환난이 시작되는데, 

바로 환난으로 들어가지 않고 하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간계시’라고도 합니다. 


계시록 4장과 5장은 천상의 모습입니다. 
요한이 그의 몸은 밧모섬에 있고, 영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하나님 보좌에 올라갑니다. 

성경 전체에서 영이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다는 것은 이곳이 최초의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삼층천을 보았는데 영이 올라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영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습니다. 
 

특히, 계시록 4장부터는 계시록의 외형적인 문체가 3장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기록 형식이 다른 서신서와 비슷해서 쉽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도 1장부터 3장까지는 쉽게 생각하고, 인용도 합니다. 

그런데 4장부터는 독특합니다. 

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가서가 상징으로 거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성경에서 아가서와 계시록을 가장 어렵게 생각합니다. 
 

계시록을 보다가 그 단어들을 하나 하나 생각하고, 연구하고, 정리해보면서 

그 하나님의 언어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속에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그 상징에 대한 것을 하나 하나 깨달을 때마다 너무 놀랍니다. 
 

4장은 천국의 모습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최초로 천국에 대해 공개한 

장엄하고, 축복된 천국 공개 사건이 4장과 5장입니다. 


요한은 ‘본 것’을 공개했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것은 ‘본 것’을 기록했는데, 

지금 그것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본 천국은 역사적인 사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가 본 세세토록 붉은 유황불 속에서 괴로움을 받는 지옥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적으로, 계시적으로 요한이 본 지옥을 

교황은 없다고 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1. 새로운 사명을 받는 요한 

1) 사명받는 시기 

1절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시간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끝나고 요한에게 될 모든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이전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종말 이전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라오디게아 시대라면 그 이후의 시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요한이 영안이 열려서 보았습니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그랬습니다. 이것은 천국문, 곧 신령한 세계를 말합니다. 겔1:1에도 ‘열린 문’이 나옵니다. 계 19:11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하늘 자체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있는데, 못 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맹인’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맹인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지요. 또, 눈이 있으되 시력이 안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조 기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식 수술을 받든지, 렌즈나 안경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돋보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눈은 있는데, 시력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실수가 많습니다. 다른 도움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 스스로 찬양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눈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시력이 좋아서 어지간한 것은 다 볼 수 있습니다. 모세도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참 감사하지요. 영적으로 시력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요한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입니다. 신비한 사건을 본다는 차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영적으로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 볼 줄 압니다. 사람을 볼 때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시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천국을 보았습니다. 천국을 본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본 
사람은 다릅니다. 영안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2) 사명받는 상태 

1절 = “…이리로 올라 오라…” 
요한이 그의 몸은 밧모섬에 있고, 영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결코 교회의 휴거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몇가지 첨예한 대립이 있습니다. 

논쟁의 강도로 볼 때, 첫째 논쟁이 무엇인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논쟁입니다. 

두 번째 논쟁이 무엇일까? 6장의 ‘흰말’입니다. 

세 번 째 논쟁이 무엇인가? 7장의 ‘144,000’에 관한 논쟁입니다. 

네 번째 논쟁은 오늘 본문의 “이리로 올라오라”는 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7년 전에 휴거해서 공중에서 혼인 잔치할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함께 온다고 합니다. 바로 이 근거를 오늘 본문의 “이리로 올라오라”에서 잡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교회의 휴거라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세대주의에서는 2장, 3장에서 ‘교회’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만 대환난 기간동안 남는다고 해석합니다. 또 한 부류가 있는데, 휴거되지 못한 믿음이 연약하여 남은 자들이 대환난속에 들어가 지독한 환난과 연단을 받아서 7년 후에 구원받을 자로 나누어진다고 해석합니다. 과거에 이 이론이 한국교회에 주 이론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개인적인 사건이지, 교회의 휴거라고 할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 개인은 밧모섬에 있고, 영만 올라가서 하나님 보좌에서 미래에 될 일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휴거는 살전4:16-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4:1-2절과 살전4:16- 17절은 공통점이 전혀 없습니다. 

왜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는가? 

(1) 소리로써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6절에 보면 교회의 휴거는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본문은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요한이 들었으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장면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6절에 보면 교회의 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내용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6절로 17절에 보면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도 요한만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하늘 보좌의 환상을 봅니다. 사도 요한을 교회의 대표로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4) 장소로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7절에 보면 교회의 휴거는 부활한 성도와 휴거된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지는 환희의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밧모 섬의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열린 문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5) 목적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7절에 보면 교회 휴거의 목적은 공중에서 영접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도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을 보여주신느 일시적인 것이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6) 기간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7절에 보면 교회 휴거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장차 될 일을 보여주시려는 의도로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일시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7) 결론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살전4:17절에 보면 휴거는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며 끝맺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도 요한에게 새로운 장면을 보이려는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리로 올라오라”는 교회의 환난전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것은 사도 요한에게 주신 말씀일 뿐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3) 사명받은 내용 

1절 =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될 일’을 보여주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후에’라는 말은 ‘라오디게아 교회 후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후에’라는 말입니다. 이 시대 후에 될 일을 예수님이 요한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는 대환난이고, 내용적으로는 상징이 아니고, ‘될 일’입니다. 
제가 요한계시록을 통해 생명을 걸고 주장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4 
장 이하부터는 대환난 때 될 일, 20장 이하는 재림이후에 될 일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4장 이하는 상징이 아니고,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철통같이 붙들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이렇게 확증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계1:1, 1:19, 4:1, 22:6절에, 그 스스로 ‘장차 될 일’이라는 것을 증거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상징이라고 우겨댑니다. 장차 될 
일과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우롱하는 것이고, 성경의 자증을 무너 
뜨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실제 될 사건입니다. 계시록은 종말에 될 일이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할 수 있는 것이고, 어 
떤 환난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계시록 
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지막 때 이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교황권이 지금 저렇게 혼합주의로 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이미 계17장 
에 될 일로 나타나 있고, 그 될 일이 지금 우리 앞에 너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 
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교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의 권세로부 
터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었는데, 어떻게 상징이 될 수 있습니까? 우 
리 주님이 마지막 때 친히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나타 
납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이전에는 요한계시록이 될 일로 해석하 
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중에 핵심적인 사건인 ‘음녀’, ‘흰말’, ‘적 
그리스도’ 등, 각종 재앙들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 
론 초대교회 이후로 징조들이 점점 강화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같이 계 
시록에 나타난 그 강도에 거의 버금가는 내용들이 해석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니까 과거에 나온 주석들은 이 시대적인 감각들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상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겠다고 한편으로 이해도 됩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건은 여러분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건으로 요한계시록 
이 해석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성경의 마지막, 
장차 될 일이, 계시의 말씀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대로 볼 수 있고, 만 
질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류역사상 최대의 축복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멋있게 예수 믿고 순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 
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이 시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천국의 하나님 모습 

1) 하늘 보좌 

2절 =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요한이 성령에 감동했습니다. 고통과 환난과 아픔과 죽음의 위기가운데 있던 요 
한을 붙들어 성령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를 통해 천국을 공개합니 
다. 성경 어디에서도 성경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성막을 통해 그 식 
양을 보여 준 적은 있습니다. 그 성막안에 천국의 무궁무진한 비밀이 있는데, 우 
리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준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여 준 것은 처음입니다. 
요한이 보니까 하나님이 있는데, 보좌에 있습니다. 나의 임금되신 하나님께서 천 
국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도 상징입니다. 그런데 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모습을, 이 땅에 왕이 임금으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는 것입니다. 
감히 백성 중에 누가 왕 앞에 들어가서 왕을 뵈올 수 있습니까? 임금이 옥좌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은 천국을 본 자가 없습니다. 신약은 바울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고 
는 14년 동안 말을 못 했습니다. 여기 바울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국을 본 바울은 생명을 바쳐 버립니다. 천국의 그 놀라운 축복과 그 황홀한 모 
습을 보고, 그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쳐버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고도 천국을 못 보기 때문에 이 땅에 것에 고민하고 메 
여 삽니다. 말씀에서 천국을 보아야 합니다. 14년 동안 바울의 말 문을 닫아놓은 
그 곳, 바울같이 유식하고 똑똑하고, 영적인 사람이 14년 후에야 인간의 말로 가 
히 이를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해야 했던 그 천국을 우리도 말씀 가운데서 만나 
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천국을 본 자가 생명을 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천국을 본 자는 생명이 아깝지 않습니다. 열 두 제자가 그랬습니 
다.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사는 문제로 고민합 
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는 문제 때문에 매여 살면 안됩니다. 저 
좋은 낙원이 기다리는 우리는 그 영원한 나라의 시민으로, 대사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서 장차 될 일을 보았기 때문에 어떠한 핍박과 아픔이 
와도 진리를 못 바꿉니다. 보았는데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볼 
때 껍데기만 보면 안됩니다. 문자나 형식보고 지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깊은 진리를 맛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석 같은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보았습니다. 요한은 보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계22:4에 보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랬습니다. 이 
것을 계시의 점진성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에 간 사람들은 더 큰 사 
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보고, 그가 예수님을 직접 보고 전하니까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국가면 요한이 어 
린아이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가장 작은자라 할지라도 천 
국에 간 자가 최고입니다. 천국은 분명히 있고,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할렐루야! 


2) 벽옥 

3절 = “…벽옥…” 

‘벽옥’의 ‘벽’자는 ‘푸를 벽(碧)’자입니다. ‘구슬 옥’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 
은 푸른 빛깔의 보석을 말합니다. 푸른 색, 파란 색은 거룩성을 말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천사들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 
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예표입니다. 천국의 모형을 최초로 갖다 놓은 것이 성막이고, 두 
번째 갖다 놓은 것이 성전이고, 세 번째 갖다 놓은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영 
적으로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천국이 있는데, 그것이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 
님이 좌정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못된 것 가지고 와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하나님의 좌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방자한 행동입니다. 적용 
적으로 지각한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나타나서 여기 앉아 계시 
다면 감히 누가 지각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밤낮 지각하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껌이나 씹고, 옷차림도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 
이십니다. 


3) 홍보석 

3절 = “…홍보석…” 

‘홍’은 ‘공의성’을 말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 
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천대까지 복을 주시고 천국 
으로 인도할 것이며,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거역한 자에게는 불심판, 영원한 지 
옥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공의성입니다. 정확히 판단하 
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랑하실 때는 자신을 이 땅에 생명까지 바쳐 십자가에 
서 피를 흘려, 홍보석 붉은 피를 흘리신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진노하실 때는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는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각자가 만난 하나님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한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모습에 하나님은 위로의 하 
나님이십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러나 그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동시에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 
게 하나님에 대해서 편협함이 없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간혹 신앙이 얕은 사람들 
은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다 용서하실 것이라고 둘러댑니 
다. 그러나 홍보석 하나님은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4) 보좌에 둘려진 무지개 

3절 =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무지개는 언약성을 말합니다. 창9:13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무지 
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구름속에 둔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였지 않습니까? 무지개는 언약성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받은 자들입 
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그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들이여! 믿으려면 멋지게 믿다가 갑시다.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남 
았는지 계수해 보세요. 멋지게 신앙 생활하다가 갑시다. 하나님의 영 불변하시는 
약속 있습니다. 약속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5) 녹보석 

3절 = “…녹보석…” 

녹색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보아도 천국이나 하나님을 묘사 
할 때 검정색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검정색은 마귀 사탄의 색깔이 
고, 종말, 죽음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정색 옷을 멋으로 입는 것은 괜 
찮지만, 의미로 입는 것은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시간에 입는 까운도 검정색 
을 입지 않습니다. 물론 장례식 때 검정색 옷을 입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니까 괜 
찮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형상이 아니며, 가짜 신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에게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을 통하여 이렇게 자세히 공개했습니다. 요한 
이 보니까 천국에 이런 하나님이 임재해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는 마지막에 이 하나님 보좌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분이 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잘 믿읍시다. 예수 후회 없이 믿다가 하나님 앞에 갑시다. 


3. 이십 사 장로 

1) 이십사 장로 

4절 = “…이십 사 장로들…” 

‘보좌에 둘려’, 첫 보좌는 하나님이 앉으신 영광스러운 보좌입니다. ‘이십사 보좌’ 
라고 했는데, 여기 ‘24’는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를 의미합니다. 저는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에는 12천사장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12 
영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열 두 영을 열두 천사장으로 봅니다. 
천국이 이 땅에 내려온 것이 성막입니다. 성막에는 열두 지파가 중심으로 살아갑 
니다. 신약에 와서 이것이 열두 제자로 나타납니다. ‘12’수는 교회 조직수입니다. 
하나님 보좌의 천사장의 수요, 구약의 열두 지파의 수요, 신약의 열두 제자의 수 
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장로들이 누구인가? 구원받은 
자의 대표입니다. 땅의 피조물의 대표입니다. 교회의 장로는 성도들의 대표입니 
다. 우리 장로님들은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그러면 천상에 이십사 장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갔는데, 그들의 대 
표성을 갖습니다. 
그러면 이십사 장로가 이십사 보좌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 보좌라는 것이 무엇인 
가? 보좌라는 것은 보배로운 자리입니다. 임금이 앉은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24개 보좌가 주위에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가 천상에서 
임금이 앉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엄청난 천국의 축복과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대표들이 가서 임금이 앉은 보좌에 앉아있다는 말 
로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축복과 영광을 이것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좋은 것은 말로 다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식장의 신 
랑, 신부가 너무 좋으면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을 보면 말을 못하고 
그저 탄성을 지릅니다. 천국이 그렇습니다. 그곳은 말을 못할 곳입니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12장에 바울이 천국을 보더니, “내가 몸 안에 있었는 
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 
습니다. 바울은 설명할 수 없는데, 요한에게 와서는 점점 더 열리는데, 그것을 상 
징으로 표현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 이 
상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보좌에 앉아있다는 것은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 
도 주님을 노래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육적으로 보면 손해나는 것 같지만, 이런 보좌의 영광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천국속에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보좌에 앉아있다는 말 한 
마디에서도 그 감동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이런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예수 믿을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오 
늘밤에라도 죽으면 이 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오늘이라도 우리 주님 
부르시면 그 영원한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이 피묻은 주의 복음을 하나님의 종 
들이 생명 걸고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교훈을 전하면 힘이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래서 영적 생활이 훨씬 전투적입니다. 저와 여러 
분은 알곡이 되어서 농부에게 바쳐질 수 있는 분명한 천국관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갈수록 천국개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이 세상 추운 일기가 화창한 봄날 
되도다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 산 위에서 보오니 먼 바다건너 있는 집 주 예비하 
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천국, 저 영원한 나라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가 힘들고 어려워도 저 천국만 생각하면 우리 안에서 새록 새록 기쁨과 희망이 
솟는 것은 우리에게 그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를 사모함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복장 

4절 = “…흰옷을 입고…” 

흰옷을 입은 모습은 거룩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계7:14을 보십시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 
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더러운 자가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죄인들 
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대속하신 주를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다 씻어 버리 
고 가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거룩해진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몸 
을 흠과 티가 없이 보존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 
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흠과 티가 없이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 
이 되는 것입니다. 


3) 머리치장 

4절 =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금’은 보배성입니다. ‘면류관’은 상급입니다. 계14:14에 보면 예수님이 흰 
구름 위에 면류관을 쓰고 계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 
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가졌더라"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교 
회를 섬기며, 복음대로 살며, 이제는 예수 따라 전도도 하며, 직분에 충성하며, 주 
님을 섬겼고, 사랑했던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계22:12절에 “내가 속히 오리니 내 
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이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래서 이 땅에서 주 
님을 위해 수고했던 모든 것에 대한 상급을 금 면류관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림픽에서 일위를 차지하면 금메달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천국을 우리가 약속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모든 것을 드리는 것 
입니다. 선교사들이 그토록 생명을 바쳐가며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선교사들이 그렇게 수고한 모든 노고가 만일에 천국 
이 없다면 부질없는 것이 됩니다. 이 땅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불행하게 생을 종 
결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감히 비길 수 없는, 인간의 말로 가히 
설명할 수 없는 저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습니까? 감동이 없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환희가 없습니까? 여러분의 천국관을 점검하십시오. 천국을 본 사 
람은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내게 있는 것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 
게 없는 것도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래서 다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계2:10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 
관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끝까지 믿음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4. 보좌로부터 나는 세 가지 

이것은 천국의 특성이며, 하나님 사역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 이 세 가지가 났습니다. 


1) 번개 

5절 = “…번개…” 

번개가 치는 것을 보셨습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가 칩니다. 번개는 신속성 
을 말해줍니다. 번개처럼 신속하게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벧후3: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천년이 하루 같다 
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판이 빠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속한 사역의 
특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번개는 만분의 1초만에 번쩍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천국의 예표입니다. 우리는 주의 몸된 교회에서 영적인 일, 하나 
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할 때 번개처럼 즉각 순종하며 해야 합니다. 아마 우 
리 교회 당회는 한국에서 제일 빠를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100불 선교비 주는데 
당회가 몇 번씩 모여도 그 결정을 못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 
는 일이라면 그렇게 미룰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주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신 
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음성 

5절 = “…음성…” 

여기, ‘음성’은 권위성을 말해줍니다.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죄인들을 구속 
하시고, 저 사탄 권세를 멸하신 하나님의 권위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 
나님의 권위 앞에서는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그의 친자녀들을 지키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할 때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다. 


3) 뇌성 

5절 = “…뇌성…” 

뇌성은 진노의 
공의성을 말합니다. 이사야 14:12절에 보면, 계명성의 천사가 하 
나님을 반역하니까 추방해 버립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 
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나님의 심 
판이 즉각 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은 같이 있습니다. 이 뇌성은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성입니다. 


5. 일곱 영 

1) 일곱 등불 

5절 = “…일곱 등불 켠 것…” 

‘일곱 등불'이라는 것은 구약시대 성소의 촛대를 의미합니다. ‘촛대’는 교회를, 
‘빛’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촛대의 기름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일곱’은 
완전 숫자이고, ‘등불’은 성령을 상징하니까, 일곱 등불은 성령의 완정성을 말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보좌는 성령이 충만합니다. 하나님 보좌에는 일곱 등 
불, 성령이 계십니다. 삼위가 다 계십니다. 성령이 일곱 등불 켠 것 같이 하나님 
사역의 완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일곱 영의 출처 

5절 = “…하나님의 일곱 영…” 

교회는 성령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는 성령께서 충만하게 덮어 버려야 합니다. 일곱 등불 켠 것, 일곱 영은 삼위가 
천국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일곱 영으로 충만하면 염려, 근심, 걱정 아무 
것도 없습니다. 


6. 유리 바다 

1)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 

6절 =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바다’라는 것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라는 말은 천국 
세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변성, 견고성, 보배성을 말합니다. 수정도 
보석입니다. 수정은 견고해서 견고성을 말합니다. 유리바다입니다. 이 세상 바다 
는 유리 바다와는 반대입니다. 이 세상 바다는 갈리리 바다입니다. 예수님이 왜 
갈릴리 바다의 사역을 하셨을까요? 바다는 이 세상, 이 세상에서 고기 잡는 것은 
어부들, 예수님이 그렇게 예표적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습니 
다. 세상 바다는 갑자기 풍랑이 몰아칩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행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 바다는 보석바다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귀하고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바다같은 유리 마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유리 바다가 얼마나 
투명했든지, 시바 여왕이 이 마루를 건널 때 마치 물을 건너듯 치마를 걷고 건넜 
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국 전체를 얘기하는데, 유리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7. 네 생물 

1) 네 생물의 모습 

6절 =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입니다. 네 생물은 겔10:20절에 보면 ‘그룹’ 천사들이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좌는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고, 성자님이 계시 
고, 그리고 또 두 종류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무리들이 앉아있고, 하늘 피조물의 
대표로서 천사들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 성전에서 스랍들의 영광을 보고 
거기서 무릎을 꿇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영광을 노래했습니 
다. 
5장에 가면 천사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했습니다. 왜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하 
지 않고,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했을까? 이것은 상징성으로 셀 수 없는 천사들을 
말하는데, 만, 수, 천, 백은 만수를 의미합니다. 많은 것부터 언급하는 것은 많다 
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고, 어린 양이 계시고, 구원받 
은 성도들이 있고, 그 셀 수 없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예 
수를 믿을 때, 뼛속 깊이, 살 깊이 믿어야 합니다. 말씀에 반드시 서야 합니다. 그 
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뒤에 눈이 가득했다’는 것은 하늘의 수종꾼들, 천사들은 앞에 뿐 아니라 뒤 
에까지 봅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이 수종꾼들처럼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충 
성스럽게 마음껏 하나님 위해 일해야 합니다. 


2) 첫째 생물의 모습 

7절 =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이제 네 생물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 보좌에서 천국의 피조물, 천사들의 모 
습에서 그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사자 같다는 것은 용맹성입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할 때 강하고 담개하게 합시다. 



3) 둘째 생물의 모습 

7절 =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둘째 생물, 송아지는 충성, 헌신입니다. 소는 순종하고, 충성하고, 생의 마지막에 
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우리도 내 삶을 깨끗하게, 내 생각을, 내 모든 
것을 깨끗하게, 송아지처럼 드립시다. 


4) 셋째 생물의 모습 

7절 =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얼굴이 사람 같다는 것은 지혜성입니다. 사람은 지혜의 상징입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면서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일 하면서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천국 동기 동창생입니다. 주 
의 일을 할 때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지혜롭게 하는 것도 중요합 
니다. 우리가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게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 
루야! 


5) 넷째 생물의 모습 

7절 =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넷째 생물의 모습은 날아가는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신속 
성입니다.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데 독수리처럼 신속하게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 신속하게 사역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 일을 하면서 마 
귀 사탄과 싸우면서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해야 합니다. 또 소처럼 순종하며 충성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또 독수리처럼 신속하게 해야 합 
니다. 


6) 여섯 날개 

8절 =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신속성을 말합니다. 날개가 
두 개만 되어도 빠른데, 여섯 개니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이사야 6:2절에 "스랍 
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 
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라고 합니다. 여기 ‘얼굴을 가렸다’는 것 
은 겸손을 말합니다. ‘발을 가렸다’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날아갔다는 것은 
열심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얼굴을 가리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을 가 
려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날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7) 가득한 눈 

8절 =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눈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눈’은 통찰력과 지혜의 영성, 영안을 얘기합 
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 보좌에서 만만 천천 그 셀 수 없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그 모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8) 천국 예배 모습 

8절 =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것은 그들이 하는 일, 예배입니다. 천국에서는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밤낮 쉬지 않는’ 예배입니다. 예배관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보좌에 가서 밤낮 예배할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성령이 임하니 
까 ‘날마다’ 모였습니다. 교회는 예배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과거 뜨거웠던 예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배가 줄어드는 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것이 곧 타락 
이요, 세속화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존귀와 감사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엄청난 
축복을 이 천사들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 
에서 누리는 것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숫자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좋다는 것으로 견줄 수 없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사람의 말로는 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누릴 천국의 축복은 너무 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우리를 하나님 주위에 보좌에 앉히겠습니까? 하나 
님이 계신 가장 가까이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천사들은 그 주변에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 주위에 있습니다. 우리와 천사들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주위에 있습니다. 천사도 거기까지는 오지 못합니다. 그 영광 
이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그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8. 이십 사 장로의 예배 

1) 경배의 대상 

10절 = “…보좌에 앉으신 이…”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당연한 말씀처럼 들리지만, 그러나 혼합주 
의 종교다원주의는 예배의 대상이 결코 하나님 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들은 모든 
신을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이,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평 
생에 하나님 한 분만 경배하시기를 바랍니다. 


2) 경배의 자세 

10절 =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 

하나님 앞에 가서 감히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면서, 너무 영광스럽고, 너무 감사해 
서 하나님께 엎드려서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 자세가 이런 것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앞에 엎드려서 예배해야 합 
니다. 감격해서 예배해야 합니다. 
부엌에서 일하다가 온 복장으로 아무렇게나 예배하지 마세요. 일터에서 온 그대 
로 성의없이, 준비없이 예배하지 마세요. 우리의 자세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예배입니다.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축복과 하나님의 영 
광이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에 엎드렸습니다.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니까 감히 보지를 못하고 천사에게 경배해 버 
립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나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예수님의 축복을 소유했을까요? 세상 고통이 많지만 이 천국의 영광으로 얼마든 
지 이기고도 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확실한 예수 구원과 천국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우리 나이드신 권사님들에게 부럽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 늙으 
려고 주름을 볏겨내고 늙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우리 중에 누가 세월을 
거슬릴 수 있습니까? 누가 늙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좋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 
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임종을 맞은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국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멘, 그렇게 좋은 곳이 있습니까? 빨리 가고 싶습니다”하는 것입니다. 다 죽 
어가던 사람이 천국에 대해 듣더니 빨리 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렇습니다. 천국이 이런 곳입니다. 


할렐루야! 


3) 방법 

10절 = “…경배하고…” 

방법은 경배입니다. 경배는 예배입니다. 그 영광의 하나님께, 존귀한 아버지께 예 
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백성입니다. 예배야말로 우리 성도들의 특권입니 
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속에 우리의 행복이 있습니다. 

4) 경배의 절정 

10절 =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졌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서 받은 상급까 
지도 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요? 천국이 너무 영광 
스러워서 면류관이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엄청난 것을 받으니 
까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너 
무 많은 것, 너무 귀한 것을 받으면 어떤 것도 드리게 됩니다. 헌금이 그렇습니 
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천국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것이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 
다. 헌금 드리고 아깝다고 하는 것은 천국에 대한, 구원에 대한 감격이 없기 때문 
입니다. 


5) 예배의 내용 

11절 =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천국에서 누리는 축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감격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람도 내게 많은 것을 주면 그 사 
람을 높이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천국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세세토록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좋은 낙원 소유했으니 땅에 것에 매이지 말고, 하늘의 영광 
을 소유했으니, 하늘 왕자답게 이 땅에서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기를 주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8장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 
서 론 

이제 8장부터는 나팔을 떼는 환난의 극심한 모습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나팔과 인과 대 
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계시록에 7인, 7나팔, 7대접 3가지가 있는데 이것들은 모 
두 환난을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인이 무엇인가? 인은 “뗐다”고 표현했으니까 환난의 시 
작을 의미합니다. 환난의 전체적인 개요, 큰 그림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팔은 무엇 
인가? 나팔은 한참 전쟁을 할 때 붑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환난이 한참 진행중인 모습, 
즉 환난의 중심부를 의미합니다. 또, 대접은 쏟아버린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것은 마무리, 최종 심판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인, 7나팔, 7대접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것을 해석하는데 크 
게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히 순서를 따라 연속적인 사건으로 보는 해석이 
있고, 또 한가지는 병행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계시록 해 
석의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시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속적 해석은 사건이 순서를 따라 일어난다고 보는 것인데,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핸드릭슨이라는 사람이 계시록의 영향을 세계에 제일 많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박윤선 박사님이 이 핸드릭슨의 견해를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 한국에는 핸드 
릭슨의 견해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면 핸드릭슨은 어떻게 보느냐? 바로 점진적이고 
병행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저도 이것을 점진적이고 병행적으로 봅니다. 점진적이라는 
말은 한꺼번에 다 있는 것이 아니라, 환란이 시간을 두고 점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인하고 나팔하고 겹쳤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연속적이 아니 
고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핸드릭슨이 보는 것 하고 제가 보는 것 하고 모든 견해가 일치하는가? 물론 그건 
아닙니다.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입장이 같은데, 다른게 있습니다. 그것 
은 그 기간 문제입니다. 핸드릭슨은 초림부터 재림사이에 있어서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 
고 보는 것이고, 저는 초림부터가 아니라 대환난 기간 안에서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 하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차이가 계시록 하나를 좌지우지 
합니다. 핸드릭슨처럼 초림과 재림사이에 두고 이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자연히 다 초기사 
건으로 많이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핸드릭슨은 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도 초 
림부터 복음운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장차 될 일”이기 때문 
에 절대로 초림부터가 될 수 없습니다. 

계시록에는 세가지 재앙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인은 환난이 시작될 때 등 
장합니다. 첫째 인, 흰말, 둘째인, 붉은 말, 셋째, 검은 말, 넷째, 청황색 말, 다섯째, 이게 
환난이 시작될 때입니다. 그 다음, 여섯째하고 일곱째는 환난 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점 
진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팔도 첫째, 둘째, 셋째, 넷째까지는 환난이 시작될 때 분 것입니다. 환난 중간에 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 황충 재앙과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요. 그리고 끝에 일곱째 나팔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다 점진적이잖아요. 이렇듯 대환난 안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병행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환난이 시작 될 때 보면 인 다섯 개를 뗐고, 나팔을 
네 개 뗐어요. 그러니까 겹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병행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환 
난 후에 보면 인도 있고 나팔도 있고 대접도 있잖아요. 이것도 같이 나가니까 병행적인 
것입니다. 인과 나팔과 대접이 같이 나갑니다. 
그러니까 계시록도 그 순서가 1장부터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6장에서는 시작이 
됐다가, 6장 끝에는 재림이 있다가, 어린양의 진노, 재림이고, 7장은 또 시작 인을 칩니 
다. 그러니까 혼란스러워요. 모든 성경은 순차적, 시간적 개념으로 오잖아요. 사도행전도 
바울이 활동한 것을 순서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도 예수님이 오신 족보부터 시간 
적 개념을 가지고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시간적으 
로 가다가 중간쯤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이 나오다가, 또 조금 가다가 처음이 나오다가, 
이렇게 순서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체 내용 
에 대한 이해가 되면 그것이 싹 들어올 수 있습니다. 
 

8장 강해(1) 
제목 : 나팔 재앙의 직전 모습 
본문 : 계 8:1-6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나팔 소리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1. 일곱째 인을 뗀 결과 
1절 =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일곱째 인을 뗀 결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이 일곱째 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곱 번째 인이 무엇인가? 이것이 나팔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일곱째 
인이 있고, 일곱 나팔이 있으니까 나팔과 인은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 
데 그것이 아니에요. 일곱째 인은 나팔의 모든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인을 뗄 
때에 첫째 나팔, 둘째 나팔, 셋째 나팔 이렇게 돼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일곱째 나팔 
때는 나팔이 있지요. 나팔은 무엇인가? 이것은 대접이에요. 일곱째 나팔과 대접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에요. 여기까지는 구조상 아주 중요한 구조입니다. 7인, 7나팔, 7 
대접은 창세 이래에 없는 무시무시한 환난입니다. 이것은 역사속에 나타날 환난이기 때문 
에 우리가 살아있다면 실제로 겪게될 어마어마한 환난입니다. 
1절에 “일곱 인을 떼실 때”, 여기 “뗄 때에” 그 말은 “나팔을 뗄 때에” 그 말이에요. 나 
팔재앙 직전의 모습입니다. 나팔을 떼기 전의 모습을 여기서 기록하고 있어요. 너무 참담 
한 대환난이예요. 너무 무시무시한 대환난이예요.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창 
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주님 말씀한 것을 들어도 긴장하지 않거든요. 시대가 그 
본문을 읽어도 그냥 긴장하지 않거든요.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것이 너무 차지해버렸기 때 
문에 이러한 감동과 긴장의 말씀이 차지할 공간이 없는 것이에요. 
나팔 재앙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 첫째, 일곱째 인을 뗀 결과,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 
하더니” 나팔 재앙 전의 일시적인 고요, 폭풍전야로 보는 해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고 
요는 고요속에 무서운 하나님의 재앙이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이것은 좋은 고요가 아닙 
니다. 대환난 기간 동안에 천지가 진동하고 갖가지 환난의 내용들을 담고 쏟아버릴 그런 
적막함, 고요입니다. 내일 대 전투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병사들은 오늘밤 고요하고 침 
착할 것이에요. “내가 내일 살지 죽을지 모른다.” 이 부분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이것을 
스바냐 1장 7절이 잘 묘사하고 있어요.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자를 구별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날 
이 무엇이에요? 심판의 날이거든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렇게 떠들고, 화려하고, 우상숭배하고 지껄였던 것들을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구약적 배경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이 없다면 종말의 터널속에서 암흑속에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활짝 열어 
보여주므로 우리는 길을 보고, 미래를 보고, 현재를 봅니다. 제가 오늘 컴퓨터 1세대 집사 
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초기 대학에서 하고, 대학원까지 컴퓨터 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컴퓨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너무 컴퓨터에 대해서 모 
르고 있어요. 컴퓨터는 성경예언의 모든 것들을 반영시키고 있어요. 앞으로 10년만 견디 
라고 한답니다. 암은 주사 한 대로 다 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발표가 났는데, 10년 안에 
암은 주사 한 대로 끝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21세기 초반에 인간수명이 150세까지 연 
장된다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는 신문에 그런 게 나도 가볍게 보았는데요. 오늘 그 집사 
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긴장이 돼요. 
인터넷이 1997년, 2년 전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저희는 지금도 잘 모르니까 멍 
하지만 2년 전에 인터넷이 무엇인지 몰랐대요. 희미했대요. 그런데 지금은 전세계가 획기 
적으로 바꿔졌어요. 천만 명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몇 년 안에 그러면 할아버지 어 
린 아이 빼놓고는 어른들 여러분들은 전부 인터넷 속에서 산다는 것이에요. 
인터넷은 모든 타락이 지배하는 데 그것을 안 볼 수 없게 된답니다. 보면 영원히 해제가 
안된대요. 미국의 나쁜 것들을 보면 통장에서 들어오는데 영원히 해제가 안된대요. 그럼 
통장을 폐쇄시킬 수 밖에 없대요. 폐쇄시켜도 6개월 동안 돈을 내야한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요한계시록, 이런 자극적인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못 지킵니다. 하나님 
께서 마지막에 이렇게 될것이라고 예언해 놓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강팍 
해져 버렸어요. 그리고 세상이 마귀가 너무 많은 좋은 것으로 우리를 유혹해버리고 숨쉬 
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시대가 지금 와버렸습니다. 인간 수명이 150살까지 산다 
고 생각해보세요. 지상낙원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암이 주사 한 대로 다 처리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컴퓨터라는 가상의 세계가 이제는 장가가고, 시집가고, 소용이 없습니다. 
컴퓨터 하나만 들고 산 속에 살아도 아무 외롭지도 않고 뭐하지도 않고 그 속에 모든 것 
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서 다 주문하고 뭐하고 다 끝나버려요. 이런 세상이 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편리하지만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전부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 
리는 감동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열정도 다 빼앗아 갑니다. 무디게 만듭니다. 우리를 
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최대의 함정입니다. 아이들이 학교가면 지금 컴퓨터에서 유행하 
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안보고 가면 완전히 컴퓨터 왕따 당한다는 것입니다. 
너 그것 모르니 그러면 완전히 왕따 당해 버린대요. 아이들 세계에서요. 그래서 제가 “인 
간수명 길게 해봐라. 주님 오실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정말 제가 볼 때는 너무나도 가까이 왔습니다. 저는 재림신앙 하나를 위해서 너무 확실하 
게 보았기 때문에, 마치 바울이 삼층천을 보고 목숨을 바쳤듯이, 저는 이것 하나 보았기 
때문에, 시대를 보았기 때문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지요. 유럽 사람들이 성경 몰라서 저렇게 되어 버렸겠어요? 장차 될 일, 종말의 
될 사건들을 보고, 저들이 재림의 소망과 계시록과 천국과 지옥을 확신했다면, 정말 성경 
으로 무장됐다면, 저렇게 무섭게 타락 못 합니다. 무엇이든지 예수 이야기하면 안 들어요. 
듣지 않습니다. 
지금도 계시록은 마지막 때 우리를 깨우는, “신랑이렷다.”하고, 깨우는 음성입니다. 1900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우리 역사속에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다는 이 사실 
한 가지만으로 우리를 깨울 수 있고,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우리가 분명하게 신 
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인하여 감사하기 바랍니다. 나팔재앙이 너 
무너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반 시쯤 고요했다는 것을 봅니다. 모든 주석가들이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2. 천사가 받은 일곱 나팔 
2절 =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2절의 ‘일곱 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근 목사님은 7천사로 보았습니다. 확실한 것 
은 아니지만 일곱 천사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여러분들 천사들이 날개 달고 있는 것 집 
에 걸어놓지 마세요. 그것 큰일납니다. 이 날개는 희랍신의 아폴로의 아들 큐피트가 달개 
달린 천사같이 이렇게 생겼거든요. 이것이 교회가 타락하니까 날개 달린 천사로 둔갑한 
것이에요. 우리 문학가운데 참 위험한 것들이 카톨릭의 모들 것들이 엄청나게 지배해 버 
렸습니다. 결혼식 촛불 점화도 다 카톨릭 의식입니다. 기쁜 날에 그것 못하게 할 수 없고, 
지금은 진리의 불빛이 꺼져 가는 시대예요. 참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나팔재앙에서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랬습니다. 첫째는 “반 시쯤 고요하고” 일곱 나팔은 재앙이라고 그랬 
지요. 고요한 이것을 이상근 박사는 ‘새로운 환란’으로 얘기합니다. 
이상근 박사님이 발에 평생 고름이 생겨서 걸음을 못 걸어다니고, 멀리 못 다니셨고, 여 
행을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집에 계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 
많은 주석을 다 쓰신 것이에요. 칼빈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그랬어요. 아주 치명 
적인 병을 일곱가지 이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서재에 앉아서 기독교강요 책만 쓰 
는 것이에요. 이상근 박사님이 언제 돌아가신지 아세요? 주석을 다 끝냈을 때 입니다. 끝 
내고 2월 달에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그 발에 조그마한 철사가 박혔던 것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그 많은 검사를 했어도 철사가 박힌것을 몰랐답니다. 고름이 또 생기 
고, 또 생기고, 그러니까 지병으로 다니지 못하고 주석만 쓰신 것이에요. 그런데 주석을 
다 끝냈는데 금년 2월달에 그것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답니다. 수술을 하니까 이제는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셨는데, 6월달에 하나님이 불러 가셨어요. 
여러분들, 질병이나 고통이 절대로 불행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삶의 어떤 어려움도 절대 
로 불행이 아니에요. 그 안에 하나님 섭리가 있고, 이것을 깨닫는 자는 나중에 깨달아요. 
“아하 그랬구나. 아하 그때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 있어구나” 저는 이 얘기 
를 듣고 이상근 박사님 주석이 더 귀하게 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에게도 크고 작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다 있습니다. 자식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적으로 불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게 되면, 그러면 기쁨이 오고,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보이고 좌절하지 않아요. 고난이 해석이 되기 전까지는 고난으로 남아 있지만, 해석이 된 
뒤부터는 섭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팔 불기 전에 강조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또 하나는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 나팔은 재앙의 중심부로서 
처참한 모습들을 기록했습니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여러분! 절대로 범죄하지 마세요. 연약해서 그랬으면 빨리 회개하고 음란과 거짓과 혈기 
와 싸움과 남을 흉보는 것과 철저히 담고 있으면 안돼요. 절대로 안됩니다. 그런것들 때 
문에 내 신앙을 팔아먹으면 절대로 안돼요. 경고하고 7 나팔 재앙 때, 대환난 때 전부 두 
들겨 맞아버려요. 


3. 천사가 받은 금 향로 
3절 =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 

‘금향로’라는 것이 무엇인가? 금은 보배성을 의미하지요. 향로는 향을 담는 그릇, 향불 피 
는 그릇이지요. 그러니까 향로는 기도를 담는 그릇이에요. 즉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에요. 
“기도처럼 귀한 것이 없다.” 기도의 보배성, 금 향, 금은 당시로서 가장 귀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대환난 때는 기도가 가장 귀하다.” 여기서 강조한 것이 역시 세 가지 나와요. 
계시록에서 신앙이 세 가지 나와요. 첫째는 작은 책이에요. 이것을 “먹어버리라. 이것에 
축복이 있다.” 1장 3절에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마지막 절에 “이 
작은 책을 인붕하지 말라 열어 세계에 전해라.” 계시록, 이것은 말씀에 대해 아주 강조합 
니다.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해요. 5장 8절에 보면 “성도들의 향이 금대접에 담 
아서 하늘에 올라가는 데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라” 8장 3절에서도 그랬고, 계시록 11장 
3절에는 굵은 베옷을 입고 두 증인 회개의 기도운동이에요. 베옷은 금식과 회개와 그냥 
기도는 일반형 기도이지만, 베옷은 금식하고, 회개를 겸한 기도를 할 때 베옷을 입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니까 마지막 대환난 때는 금식하고 막 회개를 부르짖는 그런 몸 
부림치는 그런 기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기도가 너무너무 귀합니다. 기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언급하면 안돼요. 어떤 형태로든지 말하지 마세요. 기도한 사람 보호 
하고, 기도 많이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너무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이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 말은 대환난 나팔재앙을 이기려면 
보통 기도가 아니에요. ‘많은 기도’예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 말과 똑같은 것이지요. 에베소서 6장 18절 “무시로 기도하라.” 여러분들이 기도 않하 
시니까 예배시간이라도 20-30분해요. 찬송도 20-30분, 기도도 20-30분해요. 우리교회는 
기도가 많은 교회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강조해요. 
그 다음에 찬송을 강조해요. 계시록에, 신약에서 계시록만큼 찬송이 많이 나온 것은 없습 
니다. 4장도 5장도 7장도 19장도 계시록이 이렇게 찬송이 많이 나와요. 갑자기 세계가 
20세기오면서 찬양과 경배가 나타났어요. 지금은 찬송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요. 21 
세기는 교회가 찬양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찬양 못하는 교회는 죽어버리는 시대로 
바꾸어버렸어요. 이것이 불과 10년도 안돼요. 그렇게 바뀌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도 노래방이라는 것이 생겨서 노래, 옛날에는 노래를 수줍어 
했는 데 지금은 얼마나 노래들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영맥과 육맥이 같이 나가는 것입 
니다. 계시록 사건들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예요. 지금은 말씀을 막 풍성하게 
먹어버려야 되고, 매일 성경 읽어야 돼요. 여러분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하고는 이 시대에 
믿음을 절대로 못 지킵니다. 이것은 100퍼센트 제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매 
일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하고, 말씀 먹지 않고 믿음 못 지켜요. 정말 못 지킵니다. 여러 
분들 따라서 합시다. “우리 이기자!” 
지금 여기서 기도에 대해서 “많은 향을 담았다”고 하는 말은, 마지막 때 이 나팔 재앙이 
쏟아질 때는 기도가 많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하 카타콤에서 초대 
교인들이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거기서 꽃꽂이 
같은 것 했겠어요? 기도 많이 했을 겁니다.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성도들의 기도 
들과 합하여 보좌 앞 강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이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하나님 
앞에 받쳐집니다. 그러면 향도 기도요, 성도의 기도도 기도라는 것인데, 이것은 무슨 표현 
입니까? 깊은 본문의 의도가 있습니다. ‘향’은 구약적 기도 표현이고, ‘성도의 기도’라는 
것은 신약적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마지막 
때, 이 태풍 같은 대환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를 강 
조하기 위해서 ‘향’으로 이야기했고, “성도의 기도를 합하여” 이것은 신구약적 개념을 강 
조한 것입니다. 
‘24장로’는 구약의 열두 지파, 신약의 12제자를 합한 것입니다. 기도이상 좋은 것이 없어 
요. 말씀과 기도와 찬송, 매일 성경 읽어야돼요. 차안에서도 기도하시고, 아이들 보내면서 
도 기도하세요. 여기서 정말로 예수를 자기 생명을 바쳐서, 전 삶을 바쳐서 사랑하는 자 
만 골라내는 것이에요. 이것이 대환난입니다. “보좌 금단 앞에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여려분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기도에 전혀 힘썼다” 그랬잖아요. 여러분들, 종말 
론과 관련된 기도는 베드로전서 4장 7절이에요. 거기에는 분명하게 나와요. “만물의 마지 
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하여 기도하 
라” 

4절, ‘향연’이 연기지요. 향연, “기도의 연기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 
라가는 지라” 향연이 무엇인가? 향연이 기도예요. 레위기 16장 13절에 보면 “향연이 속 
죄소를 가리게 하라” 그랬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연기를 가득 채우지 않으면 제사장을 죽 
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연기는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향이 기도인 것을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통해 상징성이에요. 
기도는 루터가 말한대로 최대 무기예요. 성도의 최대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우리는 절망과 좌절뿐이에요. 소망이 없어요. 우리는 잘못되었다하더라도 기도라는 이 특 
권을 가지고 다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구약은 기도를 우리가 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 
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놀라운 특권을 우리에게 주셔서 어떠한 환란 
도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기도해 보세요. 마음이 너무너무 편안해요. 그러니까 이 향 
연이 올라왔다 그 말은 대환난 때부터 엄청난 기도운동이 일어납니다. 한번 초대교인들 
사도들 보세요. 열두 제자하고 초대교인들을 보세요. 기도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예 
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자니까 세 제자는 잤잖아요. 우리가 지금 그런 상태예 
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절대 우리 육의 
힘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기도하는 마 
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에요. 
여러분들 절대로 여러분들의 개인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예배 하는 것도 너 
무너무 감사해야해요. 절대 여러분의 의지가 아니에요. 의지는 작심삼일 밖에 못합니다. 
결국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대환난이 되면 그때는 
성령의 일곱 영의 역사가 있어서, 기도를 통해 성도들에게 작은 책이 확 열려집니다. 하 
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 
다. 그래서 절대로 교회 떠나면 안돼요. 교회 붙잡고 있어야 기도가 나오는 것이지, 세상 
으로 나가면 기도 못하는 것이에요. 오직 교회입니다. 오직교회! 할렐루야! 


4. 제단 위의 불을 쏟음 
5절 =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 기도가 딱 끝났습니다. 기도가 올라갔지요? “올 
라갔다” 그 말은 성도들의 기도가 막 올라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순절과 똑같은 
것이에요. 오순절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막 뜨거운 기도가 있었잖아요. 그 다음부터 핍 
박이 오잖아요. 만일에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해서 기도하지 않고, 제자들 그 모습에 
서 핍박이 왔으면 기독교는 세워질 수도 없었고,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무엇인가? 성령이 임하실 때 핍박이 가해지면 석유를 끼얹어 
버립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곳에 핍박이 있으면 죽어버려요. 그냥 물을 끼얹어버리는 
거예요. 물을 끼얹어 다 싸늘해 버려요. 
 

핍박이나 고난이 오면 기름을 뽑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은 불을 붙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데도 기도가 죽어버린 것은 물을 뿌려버 
리는 것입니다. 할헬루야!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기도를 
주셨다. 찬송을 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보세요. 7장과 똑같은 것이에요. 7장도 144,000 인치고, 딱 바람 불어버려서 흰옷 
입은 무리를 건져주지요. 이것도 같은 개념이에요. 8장에서도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 기도가 딱 끝나니까 쏟아버리잖아요. 대접을 쏟아버립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에 불을 담아다가”, 이 향로는 기도를 담는 향로가 아니에요. 
이것은 재앙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9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라”고 했습니다. 이불이 성령을 상징하기도 하고, 나쁜 쪽으로는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과 환난을 말하기도 합니다. 땅에 쏟았다면 이 세상에 다 쏟아버린 것이에요. 그랬더 
니 난리가 나버린 것이에요. 
향로를 쏟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 시골에서 화로 불 들고 가다가 숯불 이글거 
리는데 이불장 쌓인데 엎어버리면 뜨거워서 막 뛰고 도망가고 막 난리나지요. 그것을 지 
금 묘사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대환난이 시작되어 이 땅에 재앙이 내리면 이 땅이 난리가 
나버리는 것이에요. 대환난 때는 우리의 육과 고집과 혈기와 우리의 모든 못된 것들을 전 
부 빼내는 것이에요. 찌거기들을 다 빼는 것이에요. 
지금 영적으로 이 세상이 미쳐가요. 아이들을 보세요. 학교가 무너져 버려요. 일본은 신문 
에 보니까 더 무너졌어요. 일본 학교가 무너졌다 싶으니까. 이젠 미국 아이들이 서로 총 
을 들어 사람을 죽입니다. 한국도 이제 두고보세요. 똑같아요. 세계가 이렇게 돼버려요. 
지금 미쳐버리잖아요. 이것이 난리와 난리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을 통하여 이 
시대를 보는 것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온 염려 근심 걱정 미움 모든 
의심 다 버리고 이 말씀 안에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5. 뇌성 
5절 = “…뇌성과…” 

나팔이 불을 담아다가 쏟아버린 내용들이 첫째나팔, 둘째 나팔, 그 내용들로 쫙 이어집니 
다. 그랬더니 뇌성이 칩니다. 뇌성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뇌성이지만 그 특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뇌성이 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팔레스틴 당시에는 비가 안오거든요. 그 
래서 뇌성만 치면 난리가 납니다. 하나님의 진노성을 바로 이런것들을 들어 묘사하고 있 
습니다. 


6. 음성 

5절 = “…음성과…”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죽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을 향하 
여 뇌성을 치실 것입니다. 뇌성같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 땅을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뇌성같은 음성으로 권위있게 들려줄 것입니다. 


7. 번개 
5절 = “…번개와…” 

번개는 신속성이예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신속하게 번쩍이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7절의 예수님 말씀과 똑같이 연결해집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나더 
라” 지진이 터지고, 육적으로는 번개가 터지고, 뇌성과 음성과 번개, 지진 이런 것들은 이 
스라엘을 괴롭히러 온 자들을 향하여 내리치던 것들입니다. 그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 때, 이런것들도 있지만 큰 재앙들을 갖가지 심판하실 것입니다. 한번 이런 것 생 
각해봐요. 이 아파트에 이 잠실에 지진이 한번 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아니에 
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게 무시무시한 대환난을 지금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 

6절 =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죠지 레디는 참 멋있게 썼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에 대하여 경고의 나팔을 지금 
암시한다.” 여러분, 빛은 1초 동안에 일곱 바퀴 돌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참 
으셨는데 이제 신속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딘 것이 아니라 한사람이라도 회 
개시켜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지금껏 참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 차 
버렸어요. 그래서 전 세계에 이런 진노의 소리가 신속하게 퍼질 것입니다. 이제는 환난이 
임해서 멸해버리고, 주림이 재림하셔서 자기 택한 백성들을 새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검으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심판해서 음부에 집어 넣어버려요. 마지막 재림에 
서는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분 때문에 이런 환난에서 우리는 보호받고, 우리는 영원한 천 
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예수”, 그 이름이에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면 세상 것 이기지 못해요. 못이깁니다. 아스피린 효과에요. 
기도원 가서 조금 위로가 되도 그것 며칠 못 갑니다. 더 허전해요. 마음이 더 미칠 것 같 
아요. 이 마지막 때에, 재림에 대해서, 천국가 지옥에 대해서, 대환난에 대해서, 이런 말씀 
을 강력하게 선포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것에 이끌려 이렇게 정신 못 차 
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큰 소망의 대로를 다닐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 안에 있는 
자는 나팔재앙에서 보호하시고,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는 것을 깨닫고 승 
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첫째 나팔 
본문 : 계8:7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 
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 
더라” 


8장은 나팔재앙이지요. 1절부터 6절까지 나팔재앙이 있기 전에 기도의 중요성을 얘기해 
줍니다. 7절은 첫째 나팔을 붑니다. 나팔은 대환난의 극심한 모습, 환난의 중심적인 모습 
을 말해줍니다. 구약은 육체 구원이에요.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구원시켜주는 것입니다. 
가난과 억눌림에서 해방시켜줍니다. 그래서 전부 육적 축복에 대해서 나오지요. 물론 그 
속에는 오실 예수로 구원받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전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육적으로 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요. 신약은 영혼구원, 구약은 전부 육적으로 역사하지요. 신약은 영적이예요. “마 
음이 온유한자는, 심령이 가난한자는”, 다 영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 계시록은 영육구원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영육구원이 이뤄집니다. 영혼도 구 
원받고 육체도 구원받아요. 육맥과 영맥 두 맥을 보아야합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첫째 나 
팔부터는 주석에 그대로 될 것이며, 또 그단어가 주는 영적 의미로도 보아야한다고 했습 
니다. 그의 주석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하고 똑같지요. 그대로 산이 불에 탔다 
면 화재로 봅니다. 그러나 또 산이 불붙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두 가지로 봐야합니다. 
이렇듯 계시록 자체도 영맥과 육맥으로 봐야합니다. 계시록은 첫째 예수님 초림 때의 사 
건을 배경으로, 때로는 구약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연결해 보면 
그 뜻이 드러납니다. 
오늘 마지막 대환난 속에서 그 뜻이 드러납니다. 대환난은 무서운 나팔재앙이 쏟아지는데 
여기서 자기 백성을 빼내는 작업입니다. 어린양의 신부들을 빼내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백성들 빼내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 다음, 구약의 율법아래 다 죽었고, 타락했고, 로마의 박해에서 초대교인들 빼내는 작업 
이에요. 지금은 교회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연약함과 잠자는 것과 어린아 
이와 바벨론 사상 또 세속화 사상 이런데서 빼내는 작업이에요. 마지막 대환난이라는 것 
은 음녀 바벨론 적그리스도에서 빼내는 작업이에요. 그러니까 무시무시한 환난을 빼내는 
작업이예요. 죽어야 분별이 돼지, 믿음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에요. 평상시에는 다 잘 믿 
는다고 다 그래요. 환난을 던져보면 다 아는 것이요. 여기서 나팔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느 
냐면 애굽에서 내렸던 재앙과 비교돼요. 


1. 피섞인 우박 
7절 = “…피 섞인 우박과…” 

첫째 나팔은 우박이 내리거든요. 무시무시한 우박으로 때리잖아요. 애굽의 일곱째 재앙이 
무엇입니까? 애굽에 우박으로 때리잖아요. 개국이래 이런 우박이 없었다고 그랬거든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빼낼 때, 애굽 전체를 하나님께서 두들겨 패야 꼼짝못하지요. 
이 세상을 때리는 것이에요. 둘째 나팔을 보면 바다 3분의 1이 피가 되는 데, 애굽의 첫 
째 재앙도 물이 피가 됐거든요. 그 다음 셋째 나팔은 큰 별, 해가 떨어졌거든요. 애굽에서 
별이 떨어다는 것은 없지요.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데 애굽의 아홉째 재 
앙이었어요. 흑암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흑암이 없고 애굽 전역만 흑암이 있었어요. 
그것을 지금 비교됩니다. 다섯째 나팔은 황충 재앙이에요. 애굽에서는 메뚜기가 지면을 
덮었어요. 메뚜기 재앙이, 그러니까 나팔과 애굽의 재앙과 비슷해요. 여섯째 나팔은 유브 
라데강의 3분의 1이 죽는데 애굽의 군대가 홍해바다에 빠져죽잖아요. 그것과 비교돼요. 
일곱째 나팔은 7대접 모두 이세상를 멸해버리지요.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잖아요. 구약 
의 애굽에 있던 대재앙과 비교가 됩니다. 
첫째 나팔 보시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나팔 내용를 열어봅니다. 첫째 나팔의 
내용입니다. “피섞인 우박이 내렸다.” 우박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심판할 때 때리는 것이 
예요. 이사야 30장 30-31절을 보면 앗수르를 우박으로 치십니다. 예루살렘을 괴롭히는 
저 적군 세력 마귀세력들을 우박으로 치시는 것이빈다. 이스라엘은 교회의 예표에요. 이 
스라엘을 공격한 사람은 마귀 사탄들의 예표에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이 세상을 향하 
여 피 섞인 우박으로 때립니다. 피가 무엇입니까?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도 말 안 
들으면 우박이 와서 칩니다. 갑작스럽게 농작물을 다 때려 부십니다. 갑작스러운 큰 재앙 
들이 막 일어납니다. 
지금 세계가 난리가 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목회는 힘들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목회는 확신을 갖고 마지막 종말의 예언들이 이렇게 이루어지니까 확신을 갖고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해요. 그래서 시편 18편 13절에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 
박과 숯불이 내리도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7장 4절에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 
라”고 했습니다. 비를 통해서 하나님이 회개치 않는 이 땅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될 일이에요. 이것은 공상이나 상상이 아니에요. 


2. 불 
7절 = “…불이 나서…” 

두 번째는 불을 쏟아버려요. 민수기 16장 18절에 모세를 거역한 고라 일당을 불로 심판 
합니다. 땅이 갈라져서 집어 삼켜버립니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예요. 이것은 진노 
의 불이에요. 영적으로는 무시무시한 재앙, 진노, 환난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마지막 때는 “창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을 것”입니다. 


3. 장소 
7절 = “…땅에 쏙아지매…” 

장소는 어디인가? 첫째 나팔 재앙은 땅에 쏟아버리는 데, 땅은 세상 전체 이땅 지구에 전 
부 쏟아버려요. 그래서 피할 곳이 없습니다. 숨을 곳이 없어요. 아무리 동굴 속에 들어간 
다해도, 어떤 사람들은 대환난 동안에 기근도 오고, 무시무시하니까 농촌에, 산 속에 들어 
가서 농작물 지어먹고 살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소용 없습니다. 지금은 무엇 
인지 모르고 기준이 분명치 않으니까 종말론이나 계시록을 알면 분명히 알아요. 이것인가 
그것인가 하니까 무슨말 들으면 분별력이 안 생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에 우리가 미혹되 
면 안돼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 가장 먼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 재앙을 쏟아버려요. 쏟았다는 것은 흘렸다가 아니예요. “쏟았다” 
그 말도 상징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전부 상징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될 일이에요. 
“쏟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한 진노예요. 


4. 땅이 받는 피해 
7절 =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불을 가져다 땅에 쏟으니까 땅 3분의 1이 타져버려요. 그러니까 육적 세계는 전부 무너져 
버려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가 원폭 하나 터지니까 3초 동안에 히로시마 인구 40 
만 인구 중에서 20만명이 3초 동안에 잿더미가 되버렸어요. 죽어버렸어요. 
계시록은 될 일이라고 네 번이나 말씀합니다. 1:1, 1:19, 4:1, 22:6절에 반드시 될 일이라 
고 그랬어요. 그냥 될 일이 아니예요. 반드시, 결코, 속히 될 일입니다. 꼭 이대로 될 것입 
니다. “아, 이렇게 살기가 좋고, 인권이 신장되는데, 무슨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어쩌고 
저쩌고 한다구요?”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 도적같이 우리 주님이 임하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밖에 없어요. 아무것 
도 없어요. 하나님 말씀밖에 없어요. 


5. 수목이 받는 피해 
7절 =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수목은 산불이 나는거예요. 육적으로는 그런데 세계적으로 산불 좀 보세요. 인도네시야는 
1년 내내 산불이 나고, 미국도 산이 다 타버리고, 세계적인 산불 재앙들이 엄청나게 일어 
납니다. 육적으로는 이 산불 이 땅들의 재앙들이지만, 대환난 때는 이 정도가 아닙니다. 
이 수목은 육적 권세자들을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 4장 22절에 보면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박윤선 박사님도 권세자들 
로 해석했어요. “우리는 글자 그대로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 
러나 이 계시의 요지는 이 어구의 상징적 의미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팔 
에 대해서 두 가지로 봐야된다고 해석하셨어요. 이것은 실제로 문자적으로 일어날 것입니 
다. 산불이 나고, 재앙이 일어나고, 우박이 터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볼 때, 수목은 
권세자들이예요. 


6. 푸른 풀이 받는 피해 
7절 =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푸른 풀은 믿음이 없는 성도들로 저는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타면 안됩니다. 재앙속에서 
타면 안됩니다. 저 육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나 우리 참 성도들에 
게는 환난입니다. 진노는 큰일난거예요. 환난은 좋은 거예요. 환난은 연단시키고 빼내고 
그런 차원입니다. 우리는 환난속에 집어넣어요. 그러나 진노속에는 안 집어넣어요. 그러니 
까 믿음이 없는 성도들 풀로 묘사한다. 저는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해요. 아무튼 대환난 
이 딱 시작되면 믿음이 없는 자들은 태풍처럼 다 날아가버려요. 추수 때 키질을 하면 알 
곡은 농부 앞에 떨어지고 쭉정이는 멀리 떨어져요. 다 날아갑니다. 
계시록 12장에 보면 하늘에 별들이 나오는데, 별들은 주의 종입니다. 3분의 1이 땅에 떨 
어진 것은 타락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것이예요. 계시록 11장에 영적으로 하면 마지막 대 
환난 때는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이라고 하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신 초림때 똑같다 
고 했어요. 제사장들 다 타락했듯이, 마지막 때도 “내가 다시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열 
처녀가 다 졸았어요. 그대로 보면 됩니다. 주님 오실 때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그 
래서 푸른 풀이, 풀 같은 성도들은 타져버립니다. 그래서 대환난은 정말 깨어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8장 강해(3)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 

제목 : 둘째 나팔 
본문 : 계8:8-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1. 내용 
8절 =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일까? 산은 세력이예요. 스가랴 4장 7절에 그렇게 나와요. 
“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리라.” 박윤선 목사님은 스가랴 4장 
7절의 큰산을 가리켜서 “성전재건 공사를 반대하는 세력” 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마귀 세력들이에요. 이제는 불붙는 큰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집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말한 것이에요. 큰산이 불에 타는 큰 바다에 던지지는데, 이것은 이 세상의 열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3분의 1이 피가 되고” 그랬습니다. ‘피’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예요.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서 일본의 종말론 권위자인 모리아마씨는 ‘신 병기’라고 했습니다. 
뱅겔은 전쟁의 모습이라고 그랬고, 박윤선 목사님은 천국의 원수로서 천벌 받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행스톤 볼가라는 사람은 영적으로 봤어요. 바다는 이 세계, 생물은 사람 ,배는 도시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대환난 때의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보니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 세상을 갔다가 지배해서 전부 거기에 죽어버려요. 



2. 바다 가운데 생명들이 입는 피해 
9절 =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바다 가운데 생명이 물고기들인데 영으로는 저는 성도들을 가리켜요. 성도들의 영이 다 죽어요. 이 적그리스도 세력 마귀세력 사탄세력 여기에 영들이 다 죽고맙니다. 물론 바다 의 생명이 죽는 것 공해지요. 지금은 공해가 굉장하지요. 환경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공기가 썩고, 바다가 썩고, 땅이 썩고, 물은 못 먹을 정도로 오염되잖아요. 지금 전세계의 최대 관심 중에 하나가 환경아닙니까. 과거 역사에 이런 일이 없었어요. 계시록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시대에 계시록이 열리는지 참 놀라워요. 정말 놀랍습니다. 
이 세력들이 불붙는 큰 산과 같은 세력들이 이세상에 마귀들이 던져버리니까 3분의 1이 죽어버려요. 영이 다 죽어버려요. ‘익두스’라고 해서, 초대교인은 물고기가 암호였어요. 그래서 세례 받으면 큰고기, 초신자들은 조그만 고기를 표현했습니다. 요즘 이 익두스를 자동차 뒤에 붙여놓고 예수믿는 사람 표시하지요. 그런데 고기들이 다 죽어버려요. 이 고기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배가 받는 피해 
9절 =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배가 깨졌다는 말은 교회들이 무너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배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노아 방주는 교회를 예표합니다. 마지막 때 두 증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회복 권세를 주 
셔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구원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오늘 여기서는 타락하는 
모습, 하나님의 재앙의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 3분의 1이 깨져버려요. 디모데전서 1장 19 
절에 보면 믿음이 타락한 것을 배가 파산했다고 표현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은 교회를 통해서 주십니다. 따라서 교회 밖에는 절대 구 
원이 없어요. 깨진 배는 절대로 사람들을 구원시킬 수가 없는 거예요. 파산한 배 안에 있 
는 사람은 다 죽어버려요. 열왕기상 22장 48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배 
가 오빌로 금을 캐러 갑니다. 금을 캐러 가다가 에시온게벨에서 배가 파손됩니다.. 에시온 
게벨은 ‘거인의 잔’이라는 뜻입니다. 금을 캐러 가다가 그만 배가 파손됩니다. 이 세상 금 
따라가다가 세상 영광 따라가다가 세속화 되는 것 따라가다가 파손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한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배가 깨져버려요. 예수가 있는 배는 절대로 안 깨집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 27절에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요. 풍랑을 만나요. 그것은 갈릴 
리 제자들의 사건이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풍랑을 갑작히 만났 
을 때 그 배안에 누가 계셨어요? 예수. 바람을 탁 꾸짖으니까 배가 잔잔해 다 살아잖아 
요. 이 배 안에,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만 모시면 어떤 풍랑이 갑자기 와서 뒤흔들리더 
라도 예수께서 “잔잔하라!” 하실 것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갑자기 바람이 불면 100프로 배가 파손돼요. 지금 세속화되고, 타락하고, 지금 이 
배가 교회들이 철선으로 바꾸지 아니하면 태풍 앞에 견디지 못합니다. 교회들이 튼튼한 
철선으로 바꿔야돼요. 그래서 세속적인 태풍이 쾅쾅 와도 선장은 버텨야돼요. 배와 함께 
죽어야돼요. 태풍 유라굴라가 와도 꽉 잡고, 철선 타고 가야합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 
가 철선이어야 합니다. 각종 적그리스도 세력이 태풍처럼 몰아쳐도 끄덕없이 가야 합니 
다. 목선 같은 것은 유라굴라 광풍이 오기도 전에 미풍이 와도 날아가버려요. 마지막 때 
는 교회선택이 최고로 중요합니다. 배가 지금 다 깨져버리잖아요. 그대로 돼요. 교회들이 
마지막 나팔재앙 불어버리면 유라굴라 같은 동남풍같은 무서운 바람이 붑니다. 
신문 좀 보세요. “예수는 뛰어난 경영자였다.” 예수에서 연구한 책이 하나 나왔는데 “예 
수는 뛰어난 경영자였다.” 이런 소리하고 금세기는 그리스도 교파들이 하나되어 평화하고 
묶습니다. 예수는 경영자라는 이런 생명 없는 소리가 왜 나는지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요. 예수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보혈입니다. 그런데 이 힘을 잃어버렸어 
요. 이것보다 더 좋은 용어는 없는 것이예요. 이것은 사실이요. 이제 이런 소리들이 목사 
님이 설교해도 예수님이 이땅에서 동정녀 탄생하고 그래도 그런가보다 그래요. “그런가보 
다 너나해라”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능력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계시록 같은 것 
도 ‘될 일’ 같은 걸로 팡팡 때려줘야 정신이 번쩍번쩍 납니다. 계시록이나 종말론은 우리 
가 갖은 복음을 지키게 해주고 깨우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신랑이렷다” 하니까 
전부 깨어났잖아요. 종말론과 재림관이 없어 이 시대가 다 잠자는 것이예요. 어찌 재림 
신앙이 있고, 재림, 종말론 사상이 있다면 잠잘 수 가 있습니까. 
제가 이 정도 몰랐다면 “순교한다”는 말하면서 프라이드 타고 살 사람이 못됩니다. 제가 
80년도에 운전 기사 두고 자가용 타고 다녔어요. 31살에 사장하고 삐까 삐까하게 살았어 
요. 그런데 이런 종말론과 재림신앙을 먹으니까 내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은 못 이겨요. 대환난 때는 연약한 교회들은 다 날아가버려요. 정말로 예수로, 말씀으로, 
초대교인 같은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예수 아니면 죽겠다고, 시대를 보고, 재림을 보 
고, 종말을 보고, 전통적인 교리와 신앙을 튼튼히 붙잡고 깨어있지 않으면 다 날아갑니다. 
 

8장 강해(4) 

제목 : 셋째 나팔 
본문 : 계8:10-11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 
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 
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별 
10절 =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이것은 유명한 종의 타락을 말하고, 육적으로는 공해예요. 강물과 샘들에 떨어져서 쓴물 
을 먹으니 공해입니다. 오늘 이 시대 공해가 틀림없어요. 그러나 영적인 면을 좀 더 강조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황으로 봐요. 횃불같이 타는 큰 별, 큰 별이 단수거든요. 
그러니까 밤하늘에 횃불같이 타는 별이니까 누구든지 보이는 인물이에요. 이 별은 계시록 
1장 20절에 주의 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유명한 종, 큰 종, 큰 별이니까, 이렇게 
도 하나님 감사해요. 이렇게도 정확하게 마지막 때 될 일을 보여주고 다 숨겨놓았어요. 
너무 너무 감사하고 미치고 싶고, 우리 주님께 빠져버리고 싶고, 우리의 심장을 예수에게 
그냥 다 녹여버리고 싶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참 놀라워요. 
교황이 지금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1962년 이전의 교황들은 그렇 
지는 않았어요. 혼합주의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타락했고 교리적으로 마리아 숭배니 연 
옥설이니 자체 내에서 타락했는데, 1962년 카톨릭이 종교회의를 한다음 부터는, 모든 종 
교와 대화한 다음부터는,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하나되자고 합니다. 전부 땅에 뚝 
떨어졌어요. 교황 한사람 떨어지니까 세계가 다 따라가잖아요. 지금은 모든 것이 모호해 
서 카톨릭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슬금 슬금 지나가고 “카톨릭은 괜찮다. 카톨릭 
은 너무 그러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들하고 다닙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 
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말까지 해대는 대도 이 시대는 가만히 
있고, 날마다 목사들이나 붙잡고 죽이려고 그럽니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런 측 
면도 있다는 말입니다. 


2. 별이 떨어진 장소 
10절 =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렇게 횃불같이 타는 별이 뚝 떨어지는데, 강들의 3분의 1과 여러 물샘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물샘과 강물이 오염됐다는 말이면서 영적으로는 진리가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 
다. 강단, 진리, 말씀들이 다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거짓선지자의 
상징과 말씀을 혼잡케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황으로까지 연결시켰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은 “악인에 대한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24장 29절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별들이 떨어진다 
고 그랬는데 여기는 큰별 하나가 뚝 떨어져요. 이사야 14장 12절 보면 계명성의 천사가 
“하나님 같이 비기리라”하고 뚝 떨어져버려요. 쫓겨나요. 바로 이 사건입니다. 
교황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에요. 마귀들이 다 들어간 것이에요. 예수님 당시는 대제사장 
이 타락했어요. 대제사장이 돈 받고 비둘기 판자 바꿔주고 다 타락했어요. 제사장들이 다 
타락했어요. 교회는 목사 하나 타락하면 성도들이 다 타락하는 것이에요. 그만큼 중요한 
것이에요. 큰별이 물 샘에 떨어지니까 전부 쑥물이 됐어요. 이것을 지금 말해주는 것이에 
요. 흔들리지 마세요. 신부하고, 중하고, 목사하고, 같이 가고, 무슨 공동 대표를 하는데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제 아내 친구가 아버님은 장로님, 어머님은 권사님인데 안 믿는 
곳으로 시집을 가더니 그렇게 교회 나가라고 그래도 안 가더니 이제는 나간데요. 그래서 
어떻게 나가냐고 그랬더니 천주교 나간데요. 아니 그 남편의 부인이니까 얼마나 놀랬겠어 
요. 왜 천주교를 나가느냐고 하니까 거기는 중들하고 다녀서 그것이 좋아서 간다고 그랬 
답니다. 장로님 딸이, 권사님 딸이 이렇게 분별을 못합니다. ‘하나’, ‘평화’, ‘사랑’ 그것이 
얼마나 멋집니까? 불교, 카톨릭, 기독교 할 것 없이 종교는 다 하나라고 합니다. 기가 막 
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계시록은 더럽고 가증하다고 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가증한 새들의 처소가 되었도다.”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환난 중심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나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니까, 성령이 임하니까, 예수님 
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예수의 부활하심을 눈으로 보니까 한 것이지요. 역사적인 사실이 
예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그 거룩한 천국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죽을 수 있었습니 
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 대환난, 재림, 천국, 새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계시록을 통하여 봤 
어요. 보았으니까 죽이려고 하면 “죽여버려라! 죽여라!” 그렇게 순교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예수는 나의 유일한 구세주요. 그래서 예수피로 내가 속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이 한방울 피까지라도 팔아서 복음을 외치고 싶습니다. 머리를 깍으라면 깍을 거예 
요. 성도들이, 교회가 왜 이렇게 타락하는가? 역사적인, 종말론적인 이런 사건들을, 성경 
의 이것을 무시하니까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장가로 
들리게 하나봐요. 그 귀한 복음, 복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닌데, 이 시대 이렇게 
악한 마귀들이 우리의 마음들을 다 뒤집어서 생명의 복음을 강단에 전해도 사람들이 이제 
는 귀도 안 엽니다. 


3. 별의 이름 
11절 = “이 별 이름은 쑥이라…” 

쑥 물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니까 비진리를 상징합니다. 이 물이 계시록 17장 음녀가 앉 
은 물이예요. 음녀가 타락한 교회가 “많은 물위에 앉았다”고 그랬잖아요. 그 물이 여러 
나라 백성과 열국과 방언들이에요. 전세계 종교를 통합한 물이지요. “이 별 이름은 쑥이 
라” 쑥물이예요. 
신명기 29장 18절에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새겨서 쑥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이 애굽에서 건져주셨지요. 홍해바다도 
건져주셨고,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도 주셨고, 정말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 
니다. 
여러분들이여! 정말로 성지는 꼭 가보십시오. 그 시내산 광야에서 하나님이 1분만 관심 
안주면 다 몰사해 죽어요. 40년 동안 지켜준 그 하나님께서 만나를 배불리 주시니까 먹을 
것이 풍족하니까 우상숭배 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징그러운 놈들인데,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이예요. 
우리도 징그러운 것이예요. 하나임을 보고 체험하고 이래도 또 하나님 떠난거예요. 그래 
서 여기 “독초와 쑥물이 너희들 속에 새겨있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하고 하 
나님을 떠난 가증한 더러운 사상들이 지금 너희 가슴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 
희들은 멸망받을 족속들이다”하고 하나님이 치는 거예요. 이것이 다 같은 거예요. 그래서 
구약을 연결시키면 확 드러나는 것이지요. 


4. 쑥물의 결과 
11절 =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스가랴 1장 3절에 짐승, 바다의 고기, 모든 사람을 멸절시켰어요. 이 큰 별 하나가 떨어 
지니까, 그 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버려요. 공해로 인해서 생물들이 죽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2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오는 데 마라의 쓴물이 있었지요. 그 쓴 물을 먹고 다 죽으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한 
나무를 꺽어서 던졌더니 단물이 되어서 다 살아났어요. 우리 속에도 예수의 단물을 집어 
넣지 않으면, 쓴물을 가지고 있으면, 전부 죽는 거예요. 
이 작은 책, 하나님 말씀이 장차 될 일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 열리고 있기 때문에 갈수 
록 더 확실해요. 그러나 말씀 떠나고, 교회 떠나면, 세상은 더 악해져서 숨도 못 쉴 정도 
로 타락합니다. 
정말로 시대에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복 받을 일 
인데 다 놓쳐버리면 됩니까? 지금 사람들은 축복 받지 못하고, 멸망 받는 조건들만 다 찾 
아 다닙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지, 양다리 걸치고 적당히 믿으면 안돼 
요. 정말로 내 삶을 바쳐 믿지 않으면 안돼요. 지금 이런 환난속에서 믿음을 지키려면 자 
기자신이 죽어야 되고, 정말 세상 사랑하지 않아야 됩니다. 우리는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100% 승리하며, 그 안에 머무는 자는 100% 승리하 
며, “오직예수”면 100% 승리합니다. 
 

8장 강해(5) 


제목 : 넷째 나팔 
본문 : 계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 
더라” 

마태복음 24장 예수님도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말 
씀과 똑같은 것이예요.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것이로다”하는 이사야 13장 10절이 배경이거든요. 
마태복음 24장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별들이 떨 
어지고, 모든 천체계가, 수억 억의 별들이 떨어져요. 주님 오실 때 난리들이예요. 예수님 
오실 때 별이 막 떨어져서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나 값없이 주신 그 예수 
믿기만 하면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음이 귀중합니까. 
3분의 1이 떨어진 것은, 침을 받은 것은, 다 어두워졌다는 것이 무엇일까? 저는 해를 진 
리로, 달은 교회로, 별들은 주의 종으로, 이렇게 영적으로 봅니다. 출애굽기 10장 22절 
23절, 애굽이 흑암의 권세가 덮었듯이, 마지막 대환난때는 비진리 혼합주의 영계의 혼합 
이런것들이 덮어요. 이 부분을 랑게는 “이단으로 진리가 음폐된다.”고 주석했습니다. 저도 
랑게 같이 이단사상으로 봐요. 캄캄하니까 아무리봐도 모르는 것이예요. 빛이 들어와야 
볼 수 있어요. 그 빛이 예수입니다. 그러니까 오직예수를 외쳐야 되는 것이예요. 유일한 
빛은 예수 빛, 생명의 빛, 말씀의 빛, 이런 빛 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를 붙잡지 않고, 말 
씀으로 진리의 등불을 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썼어요. “기독교는 오염과 공해로 인하여 대가리고 문드러지고 꼬 
리가 일그러진 고기와 같아서 방향없이 추진력도 없이 표류하는 형세인 것이다.” 대가리 
가 문드러지고 꼬리가 일그러진 고기 같아요. 하나님 말씀 단 한 절만 보세요! 성경 어디 
가 우리가 나태하게 믿는 것을 합리화하고 당연하게 여깁니까. 우리 믿음이 이렇게 힘없 
는 믿음으로 옹위되고 괜찮다는 곳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캄캄 
할 때 가려면 전등을 들고 가야됩니다. 그 전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8장 강해(6) 


제목 : 세 가지 화 
본문 : 계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 
다 하더라” 


1. 화를 받는 대상 
13절 =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성을 상징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육적인 소욕을 쫓는 자들입니 
다. 여러분,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지 마세요. 말 한마디라도 육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합 
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세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바 
라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하늘 가족이라는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세 가지 화 
13절 =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세가지 화가 있습니다.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재앙이고, 둘째 화 
는 여섯째 나팔 재앙이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재앙이예요.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왜 세 번 불까? 한꺼번에 때리지 않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 
다. 회개하라는 것이예요. 그런데 12장에 보면 그래도 “회개치 아니하더라” 그러거든요. 
16장에 셋째 화가 ‘화화화’, 그래도 “회개치 아니하더라” 무시무시해요. 
왜 ‘화화화’를 세 번 하느냐면, 바벨론을 멸망할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범죄 우상 
숭배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 다 보내도 회개 안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바벨론이라는 무기를 썼는 데 1차 공격이 606년입니다. 605년까지 그때 여호야김 
왕을 끌고 갔잖아요. 그 정도 되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돼요.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2차 공격이 597년 3월 15일 시드기야 왕을 허수아비왕을 세워놓으니 일 
만명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때라도 회개해야되거든요.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마지막 
587년 580년 시드기야 왕의 눈을 빼버리고 죽여요. 그 아들들은 왕 앞에서 죽이고, 이스 
라엘 백성은 짐승처럼 끌고 가요. 그러니까 여기도 ‘화화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세 번 
공격해서 무너진 것과 배경을 같이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보지만,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악 
인들에게도 그렇게 해서라도 회개시켜 한사람이라도 구원시키기 위함입니다. 나는 분명코 
말씀드립니다. 창세기나 마태복음이나 계시록 똑같이 다루어져야 됩니다. 지금 계시록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될 일을 못 보아서, 끝 부분이 흔들리는 것이에요. 다 왔다가 
십자가까지 잘 왔습니다. 로마서까지 잘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계시록을 안하고 덮어 
버리니까 갈바를 모르고 힘을 못 찾는 것이예요. 오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팔재앙이 
이렇게 무서운지 알고, 우리는 말씀에 있기 때문에 흑암의 권세속에서 예수의 빛을 단단 
히 붙들때 승리할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