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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8,11장

영국신사77 2020. 4. 1. 00:41

[강해] 계시록강해 (이광복 목사 편) 8-11장|(강해) 계 시 록

agaser|조회 551|추천 0|2004.11.24. 06:35http://cafe.daum.net/agaser/G1Ie/36 

8장 
서 론 

이제 8장부터는 나팔을 떼는 환난의 극심한 모습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나팔과 인과 대 
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계시록에 7인, 7나팔, 7대접 3가지가 있는데 이것들은 모 
두 환난을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인이 무엇인가? 인은 “뗐다”고 표현했으니까 환난의 시 
작을 의미합니다. 환난의 전체적인 개요, 큰 그림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팔은 무엇 
인가? 나팔은 한참 전쟁을 할 때 붑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환난이 한참 진행중인 모습, 
즉 환난의 중심부를 의미합니다. 또, 대접은 쏟아버린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것은 마무리, 최종 심판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인, 7나팔, 7대접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것을 해석하는데 크 
게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히 순서를 따라 연속적인 사건으로 보는 해석이 
있고, 또 한가지는 병행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계시록 해 
석의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시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속적 해석은 사건이 순서를 따라 일어난다고 보는 것인데,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핸드릭슨이라는 사람이 계시록의 영향을 세계에 제일 많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박윤선 박사님이 이 핸드릭슨의 견해를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 한국에는 핸드 
릭슨의 견해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면 핸드릭슨은 어떻게 보느냐? 바로 점진적이고 
병행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저도 이것을 점진적이고 병행적으로 봅니다. 점진적이라는 
말은 한꺼번에 다 있는 것이 아니라, 환란이 시간을 두고 점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인하고 나팔하고 겹쳤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연속적이 아니 
고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핸드릭슨이 보는 것 하고 제가 보는 것 하고 모든 견해가 일치하는가? 물론 그건 
아닙니다.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입장이 같은데, 다른게 있습니다. 그것 
은 그 기간 문제입니다. 핸드릭슨은 초림부터 재림사이에 있어서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 
고 보는 것이고, 저는 초림부터가 아니라 대환난 기간 안에서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 하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차이가 계시록 하나를 좌지우지 
합니다. 핸드릭슨처럼 초림과 재림사이에 두고 이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자연히 다 초기사 
건으로 많이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핸드릭슨은 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도 초 
림부터 복음운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장차 될 일”이기 때문 
에 절대로 초림부터가 될 수 없습니다. 

계시록에는 세가지 재앙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인은 환난이 시작될 때 등 
장합니다. 첫째 인, 흰말, 둘째인, 붉은 말, 셋째, 검은 말, 넷째, 청황색 말, 다섯째, 이게 
환난이 시작될 때입니다. 그 다음, 여섯째하고 일곱째는 환난 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점 
진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팔도 첫째, 둘째, 셋째, 넷째까지는 환난이 시작될 때 분 것입니다. 환난 중간에 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 황충 재앙과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요. 그리고 끝에 일곱째 나팔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다 점진적이잖아요. 이렇듯 대환난 안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병행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환난이 시작 될 때 보면 인 다섯 개를 뗐고, 나팔을 
네 개 뗐어요. 그러니까 겹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병행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환 
난 후에 보면 인도 있고 나팔도 있고 대접도 있잖아요. 이것도 같이 나가니까 병행적인 
것입니다. 인과 나팔과 대접이 같이 나갑니다. 
그러니까 계시록도 그 순서가 1장부터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6장에서는 시작이 
됐다가, 6장 끝에는 재림이 있다가, 어린양의 진노, 재림이고, 7장은 또 시작 인을 칩니 
다. 그러니까 혼란스러워요. 모든 성경은 순차적, 시간적 개념으로 오잖아요. 사도행전도 
바울이 활동한 것을 순서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도 예수님이 오신 족보부터 시간 
적 개념을 가지고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시간적으 
로 가다가 중간쯤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이 나오다가, 또 조금 가다가 처음이 나오다가, 
이렇게 순서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체 내용 
에 대한 이해가 되면 그것이 싹 들어올 수 있습니다. 
8장 강해(1) 

제목 : 나팔 재앙의 직전 모습 
본문 : 계8:1~6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1. 일곱째 인을 뗀 결과 
1절 =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일곱째 인을 뗀 결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이 일곱째 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곱 번째 인이 무엇인가? 이것이 나팔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일곱째 
인이 있고, 일곱 나팔이 있으니까 나팔과 인은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 
데 그것이 아니에요. 일곱째 인은 나팔의 모든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인을 뗄 
때에 첫째 나팔, 둘째 나팔, 셋째 나팔 이렇게 돼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일곱째 나팔 
때는 나팔이 있지요. 나팔은 무엇인가? 이것은 대접이에요. 일곱째 나팔과 대접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에요. 여기까지는 구조상 아주 중요한 구조입니다. 7인, 7나팔, 7 
대접은 창세 이래에 없는 무시무시한 환난입니다. 이것은 역사속에 나타날 환난이기 때문 
에 우리가 살아있다면 실제로 겪게될 어마어마한 환난입니다. 
1절에 “일곱 인을 떼실 때”, 여기 “뗄 때에” 그 말은 “나팔을 뗄 때에” 그 말이에요. 나 
팔재앙 직전의 모습입니다. 나팔을 떼기 전의 모습을 여기서 기록하고 있어요. 너무 참담 
한 대환난이예요. 너무 무시무시한 대환난이예요.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창 
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주님 말씀한 것을 들어도 긴장하지 않거든요. 시대가 그 
본문을 읽어도 그냥 긴장하지 않거든요.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것이 너무 차지해버렸기 때 
문에 이러한 감동과 긴장의 말씀이 차지할 공간이 없는 것이에요. 
나팔 재앙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 첫째, 일곱째 인을 뗀 결과,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 
하더니” 나팔 재앙 전의 일시적인 고요, 폭풍전야로 보는 해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고 
요는 고요속에 무서운 하나님의 재앙이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이것은 좋은 고요가 아닙 
니다. 대환난 기간 동안에 천지가 진동하고 갖가지 환난의 내용들을 담고 쏟아버릴 그런 
적막함, 고요입니다. 내일 대 전투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병사들은 오늘밤 고요하고 침 
착할 것이에요. “내가 내일 살지 죽을지 모른다.” 이 부분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이것을 
스바냐 1장 7절이 잘 묘사하고 있어요.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자를 구별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날 
이 무엇이에요? 심판의 날이거든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렇게 떠들고, 화려하고, 우상숭배하고 지껄였던 것들을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구약적 배경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이 없다면 종말의 터널속에서 암흑속에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활짝 열어 
보여주므로 우리는 길을 보고, 미래를 보고, 현재를 봅니다. 제가 오늘 컴퓨터 1세대 집사 
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초기 대학에서 하고, 대학원까지 컴퓨터 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컴퓨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너무 컴퓨터에 대해서 모 
르고 있어요. 컴퓨터는 성경예언의 모든 것들을 반영시키고 있어요. 앞으로 10년만 견디 
라고 한답니다. 암은 주사 한 대로 다 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발표가 났는데, 10년 안에 
암은 주사 한 대로 끝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21세기 초반에 인간수명이 150세까지 연 
장된다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는 신문에 그런 게 나도 가볍게 보았는데요. 오늘 그 집사 
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긴장이 돼요. 
인터넷이 1997년, 2년 전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저희는 지금도 잘 모르니까 멍 
하지만 2년 전에 인터넷이 무엇인지 몰랐대요. 희미했대요. 그런데 지금은 전세계가 획기 
적으로 바꿔졌어요. 천만 명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몇 년 안에 그러면 할아버지 어 
린 아이 빼놓고는 어른들 여러분들은 전부 인터넷 속에서 산다는 것이에요. 
인터넷은 모든 타락이 지배하는 데 그것을 안 볼 수 없게 된답니다. 보면 영원히 해제가 
안된대요. 미국의 나쁜 것들을 보면 통장에서 들어오는데 영원히 해제가 안된대요. 그럼 
통장을 폐쇄시킬 수 밖에 없대요. 폐쇄시켜도 6개월 동안 돈을 내야한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요한계시록, 이런 자극적인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못 지킵니다. 하나님 
께서 마지막에 이렇게 될것이라고 예언해 놓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강팍 
해져 버렸어요. 그리고 세상이 마귀가 너무 많은 좋은 것으로 우리를 유혹해버리고 숨쉬 
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시대가 지금 와버렸습니다. 인간 수명이 150살까지 산다 
고 생각해보세요. 지상낙원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암이 주사 한 대로 다 처리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컴퓨터라는 가상의 세계가 이제는 장가가고, 시집가고, 소용이 없습니다. 
컴퓨터 하나만 들고 산 속에 살아도 아무 외롭지도 않고 뭐하지도 않고 그 속에 모든 것 
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서 다 주문하고 뭐하고 다 끝나버려요. 이런 세상이 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편리하지만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전부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 
리는 감동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열정도 다 빼앗아 갑니다. 무디게 만듭니다. 우리를 
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최대의 함정입니다. 아이들이 학교가면 지금 컴퓨터에서 유행하 
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안보고 가면 완전히 컴퓨터 왕따 당한다는 것입니다. 
너 그것 모르니 그러면 완전히 왕따 당해 버린대요. 아이들 세계에서요. 그래서 제가 “인 
간수명 길게 해봐라. 주님 오실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정말 제가 볼 때는 너무나도 가까이 왔습니다. 저는 재림신앙 하나를 위해서 너무 확실하 
게 보았기 때문에, 마치 바울이 삼층천을 보고 목숨을 바쳤듯이, 저는 이것 하나 보았기 
때문에, 시대를 보았기 때문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지요. 유럽 사람들이 성경 몰라서 저렇게 되어 버렸겠어요? 장차 될 일, 종말의 
될 사건들을 보고, 저들이 재림의 소망과 계시록과 천국과 지옥을 확신했다면, 정말 성경 
으로 무장됐다면, 저렇게 무섭게 타락 못 합니다. 무엇이든지 예수 이야기하면 안 들어요. 
듣지 않습니다. 
지금도 계시록은 마지막 때 우리를 깨우는, “신랑이렷다.”하고, 깨우는 음성입니다. 1900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우리 역사속에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다는 이 사실 
한 가지만으로 우리를 깨울 수 있고,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우리가 분명하게 신 
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인하여 감사하기 바랍니다. 나팔재앙이 너 
무너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반 시쯤 고요했다는 것을 봅니다. 모든 주석가들이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2. 천사가 받은 일곱 나팔 
2절 =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2절의 ‘일곱 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근 목사님은 7천사로 보았습니다. 확실한 것 
은 아니지만 일곱 천사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여러분들 천사들이 날개 달고 있는 것 집 
에 걸어놓지 마세요. 그것 큰일납니다. 이 날개는 희랍신의 아폴로의 아들 큐피트가 달개 
달린 천사같이 이렇게 생겼거든요. 이것이 교회가 타락하니까 날개 달린 천사로 둔갑한 
것이에요. 우리 문학가운데 참 위험한 것들이 카톨릭의 모들 것들이 엄청나게 지배해 버 
렸습니다. 결혼식 촛불 점화도 다 카톨릭 의식입니다. 기쁜 날에 그것 못하게 할 수 없고, 
지금은 진리의 불빛이 꺼져 가는 시대예요. 참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나팔재앙에서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랬습니다. 첫째는 “반 시쯤 고요하고” 일곱 나팔은 재앙이라고 그랬 
지요. 고요한 이것을 이상근 박사는 ‘새로운 환란’으로 얘기합니다. 
이상근 박사님이 발에 평생 고름이 생겨서 걸음을 못 걸어다니고, 멀리 못 다니셨고, 여 
행을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집에 계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 
많은 주석을 다 쓰신 것이에요. 칼빈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그랬어요. 아주 치명 
적인 병을 일곱가지 이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서재에 앉아서 기독교강요 책만 쓰 
는 것이에요. 이상근 박사님이 언제 돌아가신지 아세요? 주석을 다 끝냈을 때 입니다. 끝 
내고 2월 달에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그 발에 조그마한 철사가 박혔던 것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그 많은 검사를 했어도 철사가 박힌것을 몰랐답니다. 고름이 또 생기 
고, 또 생기고, 그러니까 지병으로 다니지 못하고 주석만 쓰신 것이에요. 그런데 주석을 
다 끝냈는데 금년 2월달에 그것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답니다. 수술을 하니까 이제는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셨는데, 6월달에 하나님이 불러 가셨어요. 
여러분들, 질병이나 고통이 절대로 불행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삶의 어떤 어려움도 절대 
로 불행이 아니에요. 그 안에 하나님 섭리가 있고, 이것을 깨닫는 자는 나중에 깨달아요. 
“아하 그랬구나. 아하 그때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 있어구나” 저는 이 얘기 
를 듣고 이상근 박사님 주석이 더 귀하게 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에게도 크고 작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다 있습니다. 자식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적으로 불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게 되면, 그러면 기쁨이 오고,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보이고 좌절하지 않아요. 고난이 해석이 되기 전까지는 고난으로 남아 있지만, 해석이 된 
뒤부터는 섭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팔 불기 전에 강조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또 하나는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 나팔은 재앙의 중심부로서 
처참한 모습들을 기록했습니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여러분! 절대로 범죄하지 마세요. 연약해서 그랬으면 빨리 회개하고 음란과 거짓과 혈기 
와 싸움과 남을 흉보는 것과 철저히 담고 있으면 안돼요. 절대로 안됩니다. 그런것들 때 
문에 내 신앙을 팔아먹으면 절대로 안돼요. 경고하고 7 나팔 재앙 때, 대환난 때 전부 두 
들겨 맞아버려요. 


3. 천사가 받은 금 향로 
3절 =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 

‘금향로’라는 것이 무엇인가? 금은 보배성을 의미하지요. 향로는 향을 담는 그릇, 향불 피 
는 그릇이지요. 그러니까 향로는 기도를 담는 그릇이에요. 즉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에요. 
“기도처럼 귀한 것이 없다.” 기도의 보배성, 금 향, 금은 당시로서 가장 귀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대환난 때는 기도가 가장 귀하다.” 여기서 강조한 것이 역시 세 가지 나와요. 
계시록에서 신앙이 세 가지 나와요. 첫째는 작은 책이에요. 이것을 “먹어버리라. 이것에 
축복이 있다.” 1장 3절에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마지막 절에 “이 
작은 책을 인붕하지 말라 열어 세계에 전해라.” 계시록, 이것은 말씀에 대해 아주 강조합 
니다.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해요. 5장 8절에 보면 “성도들의 향이 금대접에 담 
아서 하늘에 올라가는 데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라” 8장 3절에서도 그랬고, 계시록 11장 
3절에는 굵은 베옷을 입고 두 증인 회개의 기도운동이에요. 베옷은 금식과 회개와 그냥 
기도는 일반형 기도이지만, 베옷은 금식하고, 회개를 겸한 기도를 할 때 베옷을 입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니까 마지막 대환난 때는 금식하고 막 회개를 부르짖는 그런 몸 
부림치는 그런 기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기도가 너무너무 귀합니다. 기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언급하면 안돼요. 어떤 형태로든지 말하지 마세요. 기도한 사람 보호 
하고, 기도 많이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너무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이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 말은 대환난 나팔재앙을 이기려면 
보통 기도가 아니에요. ‘많은 기도’예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 말과 똑같은 것이지요. 에베소서 6장 18절 “무시로 기도하라.” 여러분들이 기도 않하 
시니까 예배시간이라도 20-30분해요. 찬송도 20-30분, 기도도 20-30분해요. 우리교회는 
기도가 많은 교회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강조해요. 
그 다음에 찬송을 강조해요. 계시록에, 신약에서 계시록만큼 찬송이 많이 나온 것은 없습 
니다. 4장도 5장도 7장도 19장도 계시록이 이렇게 찬송이 많이 나와요. 갑자기 세계가 
20세기오면서 찬양과 경배가 나타났어요. 지금은 찬송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요. 21 
세기는 교회가 찬양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찬양 못하는 교회는 죽어버리는 시대로 
바꾸어버렸어요. 이것이 불과 10년도 안돼요. 그렇게 바뀌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도 노래방이라는 것이 생겨서 노래, 옛날에는 노래를 수줍어 
했는 데 지금은 얼마나 노래들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영맥과 육맥이 같이 나가는 것입 
니다. 계시록 사건들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예요. 지금은 말씀을 막 풍성하게 
먹어버려야 되고, 매일 성경 읽어야 돼요. 여러분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하고는 이 시대에 
믿음을 절대로 못 지킵니다. 이것은 100퍼센트 제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매 
일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하고, 말씀 먹지 않고 믿음 못 지켜요. 정말 못 지킵니다. 여러 
분들 따라서 합시다. “우리 이기자!” 
지금 여기서 기도에 대해서 “많은 향을 담았다”고 하는 말은, 마지막 때 이 나팔 재앙이 
쏟아질 때는 기도가 많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하 카타콤에서 초대 
교인들이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거기서 꽃꽂이 
같은 것 했겠어요? 기도 많이 했을 겁니다.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성도들의 기도 
들과 합하여 보좌 앞 강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이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하나님 
앞에 받쳐집니다. 그러면 향도 기도요, 성도의 기도도 기도라는 것인데, 이것은 무슨 표현 
입니까? 깊은 본문의 의도가 있습니다. ‘향’은 구약적 기도 표현이고, ‘성도의 기도’라는 
것은 신약적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마지막 
때, 이 태풍 같은 대환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를 강 
조하기 위해서 ‘향’으로 이야기했고, “성도의 기도를 합하여” 이것은 신구약적 개념을 강 
조한 것입니다. 
‘24장로’는 구약의 열두 지파, 신약의 12제자를 합한 것입니다. 기도이상 좋은 것이 없어 
요. 말씀과 기도와 찬송, 매일 성경 읽어야돼요. 차안에서도 기도하시고, 아이들 보내면서 
도 기도하세요. 여기서 정말로 예수를 자기 생명을 바쳐서, 전 삶을 바쳐서 사랑하는 자 
만 골라내는 것이에요. 이것이 대환난입니다. “보좌 금단 앞에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여려분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기도에 전혀 힘썼다” 그랬잖아요. 여러분들, 종말 
론과 관련된 기도는 베드로전서 4장 7절이에요. 거기에는 분명하게 나와요. “만물의 마지 
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하여 기도하 
라” 

4절, ‘향연’이 연기지요. 향연, “기도의 연기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 
라가는 지라” 향연이 무엇인가? 향연이 기도예요. 레위기 16장 13절에 보면 “향연이 속 
죄소를 가리게 하라” 그랬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연기를 가득 채우지 않으면 제사장을 죽 
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연기는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향이 기도인 것을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통해 상징성이에요. 
기도는 루터가 말한대로 최대 무기예요. 성도의 최대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우리는 절망과 좌절뿐이에요. 소망이 없어요. 우리는 잘못되었다하더라도 기도라는 이 특 
권을 가지고 다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구약은 기도를 우리가 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 
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놀라운 특권을 우리에게 주셔서 어떠한 환란 
도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기도해 보세요. 마음이 너무너무 편안해요. 그러니까 이 향 
연이 올라왔다 그 말은 대환난 때부터 엄청난 기도운동이 일어납니다. 한번 초대교인들 
사도들 보세요. 열두 제자하고 초대교인들을 보세요. 기도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예 
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자니까 세 제자는 잤잖아요. 우리가 지금 그런 상태예 
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절대 우리 육의 
힘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기도하는 마 
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에요. 
여러분들 절대로 여러분들의 개인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예배 하는 것도 너 
무너무 감사해야해요. 절대 여러분의 의지가 아니에요. 의지는 작심삼일 밖에 못합니다. 
결국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대환난이 되면 그때는 
성령의 일곱 영의 역사가 있어서, 기도를 통해 성도들에게 작은 책이 확 열려집니다. 하 
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 
다. 그래서 절대로 교회 떠나면 안돼요. 교회 붙잡고 있어야 기도가 나오는 것이지, 세상 
으로 나가면 기도 못하는 것이에요. 오직 교회입니다. 오직교회! 할렐루야! 


4. 제단 위의 불을 쏟음 
5절 =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 기도가 딱 끝났습니다. 기도가 올라갔지요? “올 
라갔다” 그 말은 성도들의 기도가 막 올라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순절과 똑같은 
것이에요. 오순절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막 뜨거운 기도가 있었잖아요. 그 다음부터 핍 
박이 오잖아요. 만일에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해서 기도하지 않고, 제자들 그 모습에 
서 핍박이 왔으면 기독교는 세워질 수도 없었고,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무엇인가? 성령이 임하실 때 핍박이 가해지면 석유를 끼얹어 
버립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곳에 핍박이 있으면 죽어버려요. 그냥 물을 끼얹어버리는 
거예요. 물을 끼얹어 다 싸늘해 버려요. 
핍박이나 고난이 오면 기름을 뽑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은 불을 붙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데도 기도가 죽어버린 것은 물을 뿌려버 
리는 것입니다. 할헬루야!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기도를 
주셨다. 찬송을 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보세요. 7장과 똑같은 것이에요. 7장도 144,000 인치고, 딱 바람 불어버려서 흰옷 
입은 무리를 건져주지요. 이것도 같은 개념이에요. 8장에서도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 기도가 딱 끝나니까 쏟아버리잖아요. 대접을 쏟아버립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에 불을 담아다가”, 이 향로는 기도를 담는 향로가 아니에요. 
이것은 재앙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9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라”고 했습니다. 이불이 성령을 상징하기도 하고, 나쁜 쪽으로는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과 환난을 말하기도 합니다. 땅에 쏟았다면 이 세상에 다 쏟아버린 것이에요. 그랬더 
니 난리가 나버린 것이에요. 
향로를 쏟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 시골에서 화로 불 들고 가다가 숯불 이글거 
리는데 이불장 쌓인데 엎어버리면 뜨거워서 막 뛰고 도망가고 막 난리나지요. 그것을 지 
금 묘사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대환난이 시작되어 이 땅에 재앙이 내리면 이 땅이 난리가 
나버리는 것이에요. 대환난 때는 우리의 육과 고집과 혈기와 우리의 모든 못된 것들을 전 
부 빼내는 것이에요. 찌거기들을 다 빼는 것이에요. 
지금 영적으로 이 세상이 미쳐가요. 아이들을 보세요. 학교가 무너져 버려요. 일본은 신문 
에 보니까 더 무너졌어요. 일본 학교가 무너졌다 싶으니까. 이젠 미국 아이들이 서로 총 
을 들어 사람을 죽입니다. 한국도 이제 두고보세요. 똑같아요. 세계가 이렇게 돼버려요. 
지금 미쳐버리잖아요. 이것이 난리와 난리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을 통하여 이 
시대를 보는 것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온 염려 근심 걱정 미움 모든 
의심 다 버리고 이 말씀 안에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5. 뇌성 
5절 = “…뇌성과…” 

나팔이 불을 담아다가 쏟아버린 내용들이 첫째나팔, 둘째 나팔, 그 내용들로 쫙 이어집니 
다. 그랬더니 뇌성이 칩니다. 뇌성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뇌성이지만 그 특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뇌성이 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팔레스틴 당시에는 비가 안오거든요. 그 
래서 뇌성만 치면 난리가 납니다. 하나님의 진노성을 바로 이런것들을 들어 묘사하고 있 
습니다. 


6. 음성 

5절 = “…음성과…”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죽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을 향하 
여 뇌성을 치실 것입니다. 뇌성같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 땅을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뇌성같은 음성으로 권위있게 들려줄 것입니다. 


7. 번개 
5절 = “…번개와…” 

번개는 신속성이예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신속하게 번쩍이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7절의 예수님 말씀과 똑같이 연결해집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나더 
라” 지진이 터지고, 육적으로는 번개가 터지고, 뇌성과 음성과 번개, 지진 이런 것들은 이 
스라엘을 괴롭히러 온 자들을 향하여 내리치던 것들입니다. 그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 때, 이런것들도 있지만 큰 재앙들을 갖가지 심판하실 것입니다. 한번 이런 것 생 
각해봐요. 이 아파트에 이 잠실에 지진이 한번 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아니에 
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게 무시무시한 대환난을 지금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 

6절 =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죠지 레디는 참 멋있게 썼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에 대하여 경고의 나팔을 지금 
암시한다.” 여러분, 빛은 1초 동안에 일곱 바퀴 돌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참 
으셨는데 이제 신속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딘 것이 아니라 한사람이라도 회 
개시켜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지금껏 참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 차 
버렸어요. 그래서 전 세계에 이런 진노의 소리가 신속하게 퍼질 것입니다. 이제는 환난이 
임해서 멸해버리고, 주림이 재림하셔서 자기 택한 백성들을 새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검으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심판해서 음부에 집어 넣어버려요. 마지막 재림에 
서는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분 때문에 이런 환난에서 우리는 보호받고, 우리는 영원한 천 
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예수”, 그 이름이에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면 세상 것 이기지 못해요. 못이깁니다. 아스피린 효과에요. 
기도원 가서 조금 위로가 되도 그것 며칠 못 갑니다. 더 허전해요. 마음이 더 미칠 것 같 
아요. 이 마지막 때에, 재림에 대해서, 천국가 지옥에 대해서, 대환난에 대해서, 이런 말씀 
을 강력하게 선포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것에 이끌려 이렇게 정신 못 차 
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큰 소망의 대로를 다닐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 안에 있는 
자는 나팔재앙에서 보호하시고,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는 것을 깨닫고 승 
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첫째 나팔 
본문 : 계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 
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 
더라” 


8장은 나팔재앙이지요. 1절부터 6절까지 나팔재앙이 있기 전에 기도의 중요성을 얘기해 
줍니다. 7절은 첫째 나팔을 붑니다. 나팔은 대환난의 극심한 모습, 환난의 중심적인 모습 
을 말해줍니다. 구약은 육체 구원이에요.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구원시켜주는 것입니다. 
가난과 억눌림에서 해방시켜줍니다. 그래서 전부 육적 축복에 대해서 나오지요. 물론 그 
속에는 오실 예수로 구원받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전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육적으로 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요. 신약은 영혼구원, 구약은 전부 육적으로 역사하지요. 신약은 영적이예요. “마 
음이 온유한자는, 심령이 가난한자는”, 다 영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 계시록은 영육구원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영육구원이 이뤄집니다. 영혼도 구 
원받고 육체도 구원받아요. 육맥과 영맥 두 맥을 보아야합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첫째 나 
팔부터는 주석에 그대로 될 것이며, 또 그단어가 주는 영적 의미로도 보아야한다고 했습 
니다. 그의 주석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하고 똑같지요. 그대로 산이 불에 탔다 
면 화재로 봅니다. 그러나 또 산이 불붙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두 가지로 봐야합니다. 
이렇듯 계시록 자체도 영맥과 육맥으로 봐야합니다. 계시록은 첫째 예수님 초림 때의 사 
건을 배경으로, 때로는 구약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연결해 보면 
그 뜻이 드러납니다. 
오늘 마지막 대환난 속에서 그 뜻이 드러납니다. 대환난은 무서운 나팔재앙이 쏟아지는데 
여기서 자기 백성을 빼내는 작업입니다. 어린양의 신부들을 빼내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백성들 빼내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 다음, 구약의 율법아래 다 죽었고, 타락했고, 로마의 박해에서 초대교인들 빼내는 작업 
이에요. 지금은 교회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연약함과 잠자는 것과 어린아 
이와 바벨론 사상 또 세속화 사상 이런데서 빼내는 작업이에요. 마지막 대환난이라는 것 
은 음녀 바벨론 적그리스도에서 빼내는 작업이에요. 그러니까 무시무시한 환난을 빼내는 
작업이예요. 죽어야 분별이 돼지, 믿음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에요. 평상시에는 다 잘 믿 
는다고 다 그래요. 환난을 던져보면 다 아는 것이요. 여기서 나팔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느 
냐면 애굽에서 내렸던 재앙과 비교돼요. 


1. 피섞인 우박 
7절 = “…피 섞인 우박과…” 

첫째 나팔은 우박이 내리거든요. 무시무시한 우박으로 때리잖아요. 애굽의 일곱째 재앙이 
무엇입니까? 애굽에 우박으로 때리잖아요. 개국이래 이런 우박이 없었다고 그랬거든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빼낼 때, 애굽 전체를 하나님께서 두들겨 패야 꼼짝못하지요. 
이 세상을 때리는 것이에요. 둘째 나팔을 보면 바다 3분의 1이 피가 되는 데, 애굽의 첫 
째 재앙도 물이 피가 됐거든요. 그 다음 셋째 나팔은 큰 별, 해가 떨어졌거든요. 애굽에서 
별이 떨어다는 것은 없지요.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데 애굽의 아홉째 재 
앙이었어요. 흑암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흑암이 없고 애굽 전역만 흑암이 있었어요. 
그것을 지금 비교됩니다. 다섯째 나팔은 황충 재앙이에요. 애굽에서는 메뚜기가 지면을 
덮었어요. 메뚜기 재앙이, 그러니까 나팔과 애굽의 재앙과 비슷해요. 여섯째 나팔은 유브 
라데강의 3분의 1이 죽는데 애굽의 군대가 홍해바다에 빠져죽잖아요. 그것과 비교돼요. 
일곱째 나팔은 7대접 모두 이세상를 멸해버리지요.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잖아요. 구약 
의 애굽에 있던 대재앙과 비교가 됩니다. 
첫째 나팔 보시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나팔 내용를 열어봅니다. 첫째 나팔의 
내용입니다. “피섞인 우박이 내렸다.” 우박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심판할 때 때리는 것이 
예요. 이사야 30장 30-31절을 보면 앗수르를 우박으로 치십니다. 예루살렘을 괴롭히는 
저 적군 세력 마귀세력들을 우박으로 치시는 것이빈다. 이스라엘은 교회의 예표에요. 이 
스라엘을 공격한 사람은 마귀 사탄들의 예표에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이 세상을 향하 
여 피 섞인 우박으로 때립니다. 피가 무엇입니까?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도 말 안 
들으면 우박이 와서 칩니다. 갑작스럽게 농작물을 다 때려 부십니다. 갑작스러운 큰 재앙 
들이 막 일어납니다. 
지금 세계가 난리가 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목회는 힘들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목회는 확신을 갖고 마지막 종말의 예언들이 이렇게 이루어지니까 확신을 갖고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해요. 그래서 시편 18편 13절에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 
박과 숯불이 내리도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7장 4절에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 
라”고 했습니다. 비를 통해서 하나님이 회개치 않는 이 땅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될 일이에요. 이것은 공상이나 상상이 아니에요. 


2. 불 
7절 = “…불이 나서…” 

두 번째는 불을 쏟아버려요. 민수기 16장 18절에 모세를 거역한 고라 일당을 불로 심판 
합니다. 땅이 갈라져서 집어 삼켜버립니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예요. 이것은 진노 
의 불이에요. 영적으로는 무시무시한 재앙, 진노, 환난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마지막 때는 “창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을 것”입니다. 


3. 장소 
7절 = “…땅에 쏙아지매…” 

장소는 어디인가? 첫째 나팔 재앙은 땅에 쏟아버리는 데, 땅은 세상 전체 이땅 지구에 전 
부 쏟아버려요. 그래서 피할 곳이 없습니다. 숨을 곳이 없어요. 아무리 동굴 속에 들어간 
다해도, 어떤 사람들은 대환난 동안에 기근도 오고, 무시무시하니까 농촌에, 산 속에 들어 
가서 농작물 지어먹고 살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소용 없습니다. 지금은 무엇 
인지 모르고 기준이 분명치 않으니까 종말론이나 계시록을 알면 분명히 알아요. 이것인가 
그것인가 하니까 무슨말 들으면 분별력이 안 생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에 우리가 미혹되 
면 안돼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 가장 먼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 재앙을 쏟아버려요. 쏟았다는 것은 흘렸다가 아니예요. “쏟았다” 
그 말도 상징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전부 상징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될 일이에요. 
“쏟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한 진노예요. 


4. 땅이 받는 피해 
7절 =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불을 가져다 땅에 쏟으니까 땅 3분의 1이 타져버려요. 그러니까 육적 세계는 전부 무너져 
버려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가 원폭 하나 터지니까 3초 동안에 히로시마 인구 40 
만 인구 중에서 20만명이 3초 동안에 잿더미가 되버렸어요. 죽어버렸어요. 
계시록은 될 일이라고 네 번이나 말씀합니다. 1:1, 1:19, 4:1, 22:6절에 반드시 될 일이라 
고 그랬어요. 그냥 될 일이 아니예요. 반드시, 결코, 속히 될 일입니다. 꼭 이대로 될 것입 
니다. “아, 이렇게 살기가 좋고, 인권이 신장되는데, 무슨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어쩌고 
저쩌고 한다구요?”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 도적같이 우리 주님이 임하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밖에 없어요. 아무것 
도 없어요. 하나님 말씀밖에 없어요. 


5. 수목이 받는 피해 
7절 =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수목은 산불이 나는거예요. 육적으로는 그런데 세계적으로 산불 좀 보세요. 인도네시야는 
1년 내내 산불이 나고, 미국도 산이 다 타버리고, 세계적인 산불 재앙들이 엄청나게 일어 
납니다. 육적으로는 이 산불 이 땅들의 재앙들이지만, 대환난 때는 이 정도가 아닙니다. 
이 수목은 육적 권세자들을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 4장 22절에 보면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박윤선 박사님도 권세자들 
로 해석했어요. “우리는 글자 그대로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 
러나 이 계시의 요지는 이 어구의 상징적 의미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팔 
에 대해서 두 가지로 봐야된다고 해석하셨어요. 이것은 실제로 문자적으로 일어날 것입니 
다. 산불이 나고, 재앙이 일어나고, 우박이 터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볼 때, 수목은 
권세자들이예요. 


6. 푸른 풀이 받는 피해 
7절 =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푸른 풀은 믿음이 없는 성도들로 저는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타면 안됩니다. 재앙속에서 
타면 안됩니다. 저 육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나 우리 참 성도들에 
게는 환난입니다. 진노는 큰일난거예요. 환난은 좋은 거예요. 환난은 연단시키고 빼내고 
그런 차원입니다. 우리는 환난속에 집어넣어요. 그러나 진노속에는 안 집어넣어요. 그러니 
까 믿음이 없는 성도들 풀로 묘사한다. 저는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해요. 아무튼 대환난 
이 딱 시작되면 믿음이 없는 자들은 태풍처럼 다 날아가버려요. 추수 때 키질을 하면 알 
곡은 농부 앞에 떨어지고 쭉정이는 멀리 떨어져요. 다 날아갑니다. 
계시록 12장에 보면 하늘에 별들이 나오는데, 별들은 주의 종입니다. 3분의 1이 땅에 떨 
어진 것은 타락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것이예요. 계시록 11장에 영적으로 하면 마지막 대 
환난 때는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이라고 하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신 초림때 똑같다 
고 했어요. 제사장들 다 타락했듯이, 마지막 때도 “내가 다시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열 
처녀가 다 졸았어요. 그대로 보면 됩니다. 주님 오실 때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어요. 그 
래서 푸른 풀이, 풀 같은 성도들은 타져버립니다. 그래서 대환난은 정말 깨어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8장 강해(3)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 

제목 : 둘째 나팔 
본문 : 계8:8-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1. 내용 
8절 =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일까? 산은 세력이예요. 스가랴 4장 7절에 그렇게 나와요. 
“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리라.” 박윤선 목사님은 스가랴 4장 
7절의 큰산을 가리켜서 “성전재건 공사를 반대하는 세력” 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마귀 세력들이에요. 이제는 불붙는 큰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집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말한 것이에요. 큰산이 불에 타는 큰 바다에 던지지는데, 이것은 이 세상의 열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3분의 1이 피가 되고” 그랬습니다. ‘피’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예요.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서 일본의 종말론 권위자인 모리아마씨는 ‘신 병기’라고 했습니다. 
뱅겔은 전쟁의 모습이라고 그랬고, 박윤선 목사님은 천국의 원수로서 천벌 받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행스톤 볼가라는 사람은 영적으로 봤어요. 바다는 이 세계, 생물은 사람 ,배는 도시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대환난 때의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보니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 세상을 갔다가 지배해서 전부 거기에 죽어버려요. 



2. 바다 가운데 생명들이 입는 피해 
9절 =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바다 가운데 생명이 물고기들인데 영으로는 저는 성도들을 가리켜요. 성도들의 영이 다 죽어요. 이 적그리스도 세력 마귀세력 사탄세력 여기에 영들이 다 죽고맙니다. 물론 바다 의 생명이 죽는 것 공해지요. 지금은 공해가 굉장하지요. 환경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공기가 썩고, 바다가 썩고, 땅이 썩고, 물은 못 먹을 정도로 오염되잖아요. 지금 전세계의 최대 관심 중에 하나가 환경아닙니까. 과거 역사에 이런 일이 없었어요. 계시록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시대에 계시록이 열리는지 참 놀라워요. 정말 놀랍습니다. 
이 세력들이 불붙는 큰 산과 같은 세력들이 이세상에 마귀들이 던져버리니까 3분의 1이 죽어버려요. 영이 다 죽어버려요. ‘익두스’라고 해서, 초대교인은 물고기가 암호였어요. 그래서 세례 받으면 큰고기, 초신자들은 조그만 고기를 표현했습니다. 요즘 이 익두스를 자동차 뒤에 붙여놓고 예수믿는 사람 표시하지요. 그런데 고기들이 다 죽어버려요. 이 고기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배가 받는 피해 
9절 =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배가 깨졌다는 말은 교회들이 무너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배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노아 방주는 교회를 예표합니다. 마지막 때 두 증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회복 권세를 주 
셔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구원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오늘 여기서는 타락하는 
모습, 하나님의 재앙의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 3분의 1이 깨져버려요. 디모데전서 1장 19 
절에 보면 믿음이 타락한 것을 배가 파산했다고 표현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은 교회를 통해서 주십니다. 따라서 교회 밖에는 절대 구 
원이 없어요. 깨진 배는 절대로 사람들을 구원시킬 수가 없는 거예요. 파산한 배 안에 있 
는 사람은 다 죽어버려요. 열왕기상 22장 48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배 
가 오빌로 금을 캐러 갑니다. 금을 캐러 가다가 에시온게벨에서 배가 파손됩니다.. 에시온 
게벨은 ‘거인의 잔’이라는 뜻입니다. 금을 캐러 가다가 그만 배가 파손됩니다. 이 세상 금 
따라가다가 세상 영광 따라가다가 세속화 되는 것 따라가다가 파손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한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배가 깨져버려요. 예수가 있는 배는 절대로 안 깨집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 27절에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요. 풍랑을 만나요. 그것은 갈릴 
리 제자들의 사건이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풍랑을 갑작히 만났 
을 때 그 배안에 누가 계셨어요? 예수. 바람을 탁 꾸짖으니까 배가 잔잔해 다 살아잖아 
요. 이 배 안에,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만 모시면 어떤 풍랑이 갑자기 와서 뒤흔들리더 
라도 예수께서 “잔잔하라!” 하실 것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갑자기 바람이 불면 100프로 배가 파손돼요. 지금 세속화되고, 타락하고, 지금 이 
배가 교회들이 철선으로 바꾸지 아니하면 태풍 앞에 견디지 못합니다. 교회들이 튼튼한 
철선으로 바꿔야돼요. 그래서 세속적인 태풍이 쾅쾅 와도 선장은 버텨야돼요. 배와 함께 
죽어야돼요. 태풍 유라굴라가 와도 꽉 잡고, 철선 타고 가야합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 
가 철선이어야 합니다. 각종 적그리스도 세력이 태풍처럼 몰아쳐도 끄덕없이 가야 합니 
다. 목선 같은 것은 유라굴라 광풍이 오기도 전에 미풍이 와도 날아가버려요. 마지막 때 
는 교회선택이 최고로 중요합니다. 배가 지금 다 깨져버리잖아요. 그대로 돼요. 교회들이 
마지막 나팔재앙 불어버리면 유라굴라 같은 동남풍같은 무서운 바람이 붑니다. 
신문 좀 보세요. “예수는 뛰어난 경영자였다.” 예수에서 연구한 책이 하나 나왔는데 “예 
수는 뛰어난 경영자였다.” 이런 소리하고 금세기는 그리스도 교파들이 하나되어 평화하고 
묶습니다. 예수는 경영자라는 이런 생명 없는 소리가 왜 나는지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요. 예수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보혈입니다. 그런데 이 힘을 잃어버렸어 
요. 이것보다 더 좋은 용어는 없는 것이예요. 이것은 사실이요. 이제 이런 소리들이 목사 
님이 설교해도 예수님이 이땅에서 동정녀 탄생하고 그래도 그런가보다 그래요. “그런가보 
다 너나해라”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능력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계시록 같은 것 
도 ‘될 일’ 같은 걸로 팡팡 때려줘야 정신이 번쩍번쩍 납니다. 계시록이나 종말론은 우리 
가 갖은 복음을 지키게 해주고 깨우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신랑이렷다” 하니까 
전부 깨어났잖아요. 종말론과 재림관이 없어 이 시대가 다 잠자는 것이예요. 어찌 재림 
신앙이 있고, 재림, 종말론 사상이 있다면 잠잘 수 가 있습니까. 
제가 이 정도 몰랐다면 “순교한다”는 말하면서 프라이드 타고 살 사람이 못됩니다. 제가 
80년도에 운전 기사 두고 자가용 타고 다녔어요. 31살에 사장하고 삐까 삐까하게 살았어 
요. 그런데 이런 종말론과 재림신앙을 먹으니까 내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은 못 이겨요. 대환난 때는 연약한 교회들은 다 날아가버려요. 정말로 예수로, 말씀으로, 
초대교인 같은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예수 아니면 죽겠다고, 시대를 보고, 재림을 보 
고, 종말을 보고, 전통적인 교리와 신앙을 튼튼히 붙잡고 깨어있지 않으면 다 날아갑니다. 
 

8장 강해(4) 

제목 : 셋째 나팔 
본문 : 계8:10-11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 
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 
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별 
10절 =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이것은 유명한 종의 타락을 말하고, 육적으로는 공해예요. 강물과 샘들에 떨어져서 쓴물 
을 먹으니 공해입니다. 오늘 이 시대 공해가 틀림없어요. 그러나 영적인 면을 좀 더 강조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황으로 봐요. 횃불같이 타는 큰 별, 큰 별이 단수거든요. 
그러니까 밤하늘에 횃불같이 타는 별이니까 누구든지 보이는 인물이에요. 이 별은 계시록 
1장 20절에 주의 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유명한 종, 큰 종, 큰 별이니까, 이렇게 
도 하나님 감사해요. 이렇게도 정확하게 마지막 때 될 일을 보여주고 다 숨겨놓았어요. 
너무 너무 감사하고 미치고 싶고, 우리 주님께 빠져버리고 싶고, 우리의 심장을 예수에게 
그냥 다 녹여버리고 싶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참 놀라워요. 
교황이 지금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1962년 이전의 교황들은 그렇 
지는 않았어요. 혼합주의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타락했고 교리적으로 마리아 숭배니 연 
옥설이니 자체 내에서 타락했는데, 1962년 카톨릭이 종교회의를 한다음 부터는, 모든 종 
교와 대화한 다음부터는,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하나되자고 합니다. 전부 땅에 뚝 
떨어졌어요. 교황 한사람 떨어지니까 세계가 다 따라가잖아요. 지금은 모든 것이 모호해 
서 카톨릭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슬금 슬금 지나가고 “카톨릭은 괜찮다. 카톨릭 
은 너무 그러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들하고 다닙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 
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말까지 해대는 대도 이 시대는 가만히 
있고, 날마다 목사들이나 붙잡고 죽이려고 그럽니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런 측 
면도 있다는 말입니다. 


2. 별이 떨어진 장소 
10절 =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렇게 횃불같이 타는 별이 뚝 떨어지는데, 강들의 3분의 1과 여러 물샘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물샘과 강물이 오염됐다는 말이면서 영적으로는 진리가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 
다. 강단, 진리, 말씀들이 다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거짓선지자의 
상징과 말씀을 혼잡케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황으로까지 연결시켰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은 “악인에 대한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24장 29절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별들이 떨어진다 
고 그랬는데 여기는 큰별 하나가 뚝 떨어져요. 이사야 14장 12절 보면 계명성의 천사가 
“하나님 같이 비기리라”하고 뚝 떨어져버려요. 쫓겨나요. 바로 이 사건입니다. 
교황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에요. 마귀들이 다 들어간 것이에요. 예수님 당시는 대제사장 
이 타락했어요. 대제사장이 돈 받고 비둘기 판자 바꿔주고 다 타락했어요. 제사장들이 다 
타락했어요. 교회는 목사 하나 타락하면 성도들이 다 타락하는 것이에요. 그만큼 중요한 
것이에요. 큰별이 물 샘에 떨어지니까 전부 쑥물이 됐어요. 이것을 지금 말해주는 것이에 
요. 흔들리지 마세요. 신부하고, 중하고, 목사하고, 같이 가고, 무슨 공동 대표를 하는데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제 아내 친구가 아버님은 장로님, 어머님은 권사님인데 안 믿는 
곳으로 시집을 가더니 그렇게 교회 나가라고 그래도 안 가더니 이제는 나간데요. 그래서 
어떻게 나가냐고 그랬더니 천주교 나간데요. 아니 그 남편의 부인이니까 얼마나 놀랬겠어 
요. 왜 천주교를 나가느냐고 하니까 거기는 중들하고 다녀서 그것이 좋아서 간다고 그랬 
답니다. 장로님 딸이, 권사님 딸이 이렇게 분별을 못합니다. ‘하나’, ‘평화’, ‘사랑’ 그것이 
얼마나 멋집니까? 불교, 카톨릭, 기독교 할 것 없이 종교는 다 하나라고 합니다. 기가 막 
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계시록은 더럽고 가증하다고 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가증한 새들의 처소가 되었도다.”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환난 중심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나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니까, 성령이 임하니까, 예수님 
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예수의 부활하심을 눈으로 보니까 한 것이지요. 역사적인 사실이 
예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그 거룩한 천국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죽을 수 있었습니 
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 대환난, 재림, 천국, 새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계시록을 통하여 봤 
어요. 보았으니까 죽이려고 하면 “죽여버려라! 죽여라!” 그렇게 순교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예수는 나의 유일한 구세주요. 그래서 예수피로 내가 속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이 한방울 피까지라도 팔아서 복음을 외치고 싶습니다. 머리를 깍으라면 깍을 거예 
요. 성도들이, 교회가 왜 이렇게 타락하는가? 역사적인, 종말론적인 이런 사건들을, 성경 
의 이것을 무시하니까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장가로 
들리게 하나봐요. 그 귀한 복음, 복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닌데, 이 시대 이렇게 
악한 마귀들이 우리의 마음들을 다 뒤집어서 생명의 복음을 강단에 전해도 사람들이 이제 
는 귀도 안 엽니다. 


3. 별의 이름 
11절 = “이 별 이름은 쑥이라…” 

쑥 물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니까 비진리를 상징합니다. 이 물이 계시록 17장 음녀가 앉 
은 물이예요. 음녀가 타락한 교회가 “많은 물위에 앉았다”고 그랬잖아요. 그 물이 여러 
나라 백성과 열국과 방언들이에요. 전세계 종교를 통합한 물이지요. “이 별 이름은 쑥이 
라” 쑥물이예요. 
신명기 29장 18절에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새겨서 쑥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이 애굽에서 건져주셨지요. 홍해바다도 
건져주셨고,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도 주셨고, 정말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 
니다. 
여러분들이여! 정말로 성지는 꼭 가보십시오. 그 시내산 광야에서 하나님이 1분만 관심 
안주면 다 몰사해 죽어요. 40년 동안 지켜준 그 하나님께서 만나를 배불리 주시니까 먹을 
것이 풍족하니까 우상숭배 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징그러운 놈들인데,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이예요. 
우리도 징그러운 것이예요. 하나임을 보고 체험하고 이래도 또 하나님 떠난거예요. 그래 
서 여기 “독초와 쑥물이 너희들 속에 새겨있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하고 하 
나님을 떠난 가증한 더러운 사상들이 지금 너희 가슴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 
희들은 멸망받을 족속들이다”하고 하나님이 치는 거예요. 이것이 다 같은 거예요. 그래서 
구약을 연결시키면 확 드러나는 것이지요. 


4. 쑥물의 결과 
11절 =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스가랴 1장 3절에 짐승, 바다의 고기, 모든 사람을 멸절시켰어요. 이 큰 별 하나가 떨어 
지니까, 그 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버려요. 공해로 인해서 생물들이 죽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2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오는 데 마라의 쓴물이 있었지요. 그 쓴 물을 먹고 다 죽으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한 
나무를 꺽어서 던졌더니 단물이 되어서 다 살아났어요. 우리 속에도 예수의 단물을 집어 
넣지 않으면, 쓴물을 가지고 있으면, 전부 죽는 거예요. 
이 작은 책, 하나님 말씀이 장차 될 일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 열리고 있기 때문에 갈수 
록 더 확실해요. 그러나 말씀 떠나고, 교회 떠나면, 세상은 더 악해져서 숨도 못 쉴 정도 
로 타락합니다. 
정말로 시대에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복 받을 일 
인데 다 놓쳐버리면 됩니까? 지금 사람들은 축복 받지 못하고, 멸망 받는 조건들만 다 찾 
아 다닙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지, 양다리 걸치고 적당히 믿으면 안돼 
요. 정말로 내 삶을 바쳐 믿지 않으면 안돼요. 지금 이런 환난속에서 믿음을 지키려면 자 
기자신이 죽어야 되고, 정말 세상 사랑하지 않아야 됩니다. 우리는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100% 승리하며, 그 안에 머무는 자는 100% 승리하 
며, “오직예수”면 100% 승리합니다. 
 

8장 강해(5) 


제목 : 넷째 나팔 
본문 : 계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 
더라” 

마태복음 24장 예수님도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말 
씀과 똑같은 것이예요.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것이로다”하는 이사야 13장 10절이 배경이거든요. 
마태복음 24장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별들이 떨 
어지고, 모든 천체계가, 수억 억의 별들이 떨어져요. 주님 오실 때 난리들이예요. 예수님 
오실 때 별이 막 떨어져서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나 값없이 주신 그 예수 
믿기만 하면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음이 귀중합니까. 
3분의 1이 떨어진 것은, 침을 받은 것은, 다 어두워졌다는 것이 무엇일까? 저는 해를 진 
리로, 달은 교회로, 별들은 주의 종으로, 이렇게 영적으로 봅니다. 출애굽기 10장 22절 
23절, 애굽이 흑암의 권세가 덮었듯이, 마지막 대환난때는 비진리 혼합주의 영계의 혼합 
이런것들이 덮어요. 이 부분을 랑게는 “이단으로 진리가 음폐된다.”고 주석했습니다. 저도 
랑게 같이 이단사상으로 봐요. 캄캄하니까 아무리봐도 모르는 것이예요. 빛이 들어와야 
볼 수 있어요. 그 빛이 예수입니다. 그러니까 오직예수를 외쳐야 되는 것이예요. 유일한 
빛은 예수 빛, 생명의 빛, 말씀의 빛, 이런 빛 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를 붙잡지 않고, 말 
씀으로 진리의 등불을 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썼어요. “기독교는 오염과 공해로 인하여 대가리고 문드러지고 꼬 
리가 일그러진 고기와 같아서 방향없이 추진력도 없이 표류하는 형세인 것이다.” 대가리 
가 문드러지고 꼬리가 일그러진 고기 같아요. 하나님 말씀 단 한 절만 보세요! 성경 어디 
가 우리가 나태하게 믿는 것을 합리화하고 당연하게 여깁니까. 우리 믿음이 이렇게 힘없 
는 믿음으로 옹위되고 괜찮다는 곳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캄캄 
할 때 가려면 전등을 들고 가야됩니다. 그 전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8장 강해(6) 


제목 : 세 가지 화 
본문 : 계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 
다 하더라” 


1. 화를 받는 대상 
13절 =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성을 상징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육적인 소욕을 쫓는 자들입니 
다. 여러분,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지 마세요. 말 한마디라도 육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합 
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세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바 
라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하늘 가족이라는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세 가지 화 
13절 =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세가지 화가 있습니다.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재앙이고, 둘째 화 
는 여섯째 나팔 재앙이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재앙이예요.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왜 세 번 불까? 한꺼번에 때리지 않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 
다. 회개하라는 것이예요. 그런데 12장에 보면 그래도 “회개치 아니하더라” 그러거든요. 
16장에 셋째 화가 ‘화화화’, 그래도 “회개치 아니하더라” 무시무시해요. 
왜 ‘화화화’를 세 번 하느냐면, 바벨론을 멸망할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범죄 우상 
숭배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 다 보내도 회개 안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바벨론이라는 무기를 썼는 데 1차 공격이 606년입니다. 605년까지 그때 여호야김 
왕을 끌고 갔잖아요. 그 정도 되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돼요.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2차 공격이 597년 3월 15일 시드기야 왕을 허수아비왕을 세워놓으니 일 
만명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때라도 회개해야되거든요.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마지막 
587년 580년 시드기야 왕의 눈을 빼버리고 죽여요. 그 아들들은 왕 앞에서 죽이고, 이스 
라엘 백성은 짐승처럼 끌고 가요. 그러니까 여기도 ‘화화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세 번 
공격해서 무너진 것과 배경을 같이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보지만,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악 
인들에게도 그렇게 해서라도 회개시켜 한사람이라도 구원시키기 위함입니다. 나는 분명코 
말씀드립니다. 창세기나 마태복음이나 계시록 똑같이 다루어져야 됩니다. 지금 계시록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될 일을 못 보아서, 끝 부분이 흔들리는 것이에요. 다 왔다가 
십자가까지 잘 왔습니다. 로마서까지 잘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계시록을 안하고 덮어 
버리니까 갈바를 모르고 힘을 못 찾는 것이예요. 오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팔재앙이 
이렇게 무서운지 알고, 우리는 말씀에 있기 때문에 흑암의 권세속에서 예수의 빛을 단단 
히 붙들때 승리할줄 믿습니다. 




















11장  
두증인

제목 : 두 증인의 사역 
본문 : 계11:1-6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 
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 
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 
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 
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장입니다. 그러면 과연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 두 
증인의 정체를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마 
지막 때 살아서 온다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하늘을 향하여 비오지 못 하게 한 것은 
엘리야이며,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은 모세이므로 두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견해 
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종말의 종으로 보는데, 필자는 이 해석을 따르고 있습 
니다. 즉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마지막 대 환란 때 일할 하나님의 종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말 
라기 4장 5절 말씀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서의 전체적인 특징은 회개가 없다는 것 
입니다. 회개의 촉구가 없어진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입니 
다. 
교회에서도 회개의 소리가 사라진 것은 저주예요. 전 성경을 통해서 회개의 성격이 없는 
것은 말라기 하나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돌아오자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 
시켜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타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날에 내가 
와서 이를 심판할 터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일까요? 모든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로 봅 
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초림과 재림으로 두 번 오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 
이신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어쩌다 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게 되었는지 너무너무 감사 
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큰 무리들이 다 떠나보내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 자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실로 크 
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습니다. 
과연 크고 두려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크고 두려운 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스라엘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종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가? 아니면 마지막 때 추수의 종이냐가 여기서 밝혀집니다. 예 
수님 당시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일컬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 말씀에 “저가 또 엘리 
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 
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 
성을 예비하리라”. 
마태복음 11장 14절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 
니라” 마가복음 9장 13절에도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바 
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한 것입니 
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엘리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 
고 오는 세례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 바로 두 증인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온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등장 
해서 오실 예수님을 예비했습니다. 그 황폐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독사 
의 자식들아! 뱀들아!?라고 바리새인들 향하여 찔러대며 예수님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그 
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예수님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두 증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종들입니다. 하나님 
의 종들이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미리 예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왕이 행 
차하는데 왕이 먼저 가서 ?나 왕이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비서들을 보내서 준비 
시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데 느닷없이 갑자기 오 
시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미리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는 신랑이 오실 때 신랑의 친구 
가 먼저 가 있었습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에게 가서 신랑은 이렇게 생겼고, 신랑 성격 
은 어떻고, 신랑 목소리는 어떻다고 알려주며 옷도 예쁜 옷을 입고, 이렇게 저렇게 준비 
하라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종들이 나 
타나서 재림하실 예수, 성도의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을 맞이할 재림을 준비시킵니다. 
바로 이 것이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언급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입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 때 두 증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사이비 교주 박태선은 계시록에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했 
습니다. 그래서 “내가 바로 두 증인이요, 내가 바로 주님이 보내신 감람나무”라는 해괴 
망칙한 소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있으면 다 죽습니다. 혹시라도 연관이 되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야 됩니다. 
엘리야가 바알 아세라 목상 450명과 싸울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엄청난 능력을 받 
아서 혼자 다 무찔러 버렸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이 마귀 사탄, 용의 
권세, 적그리스도 권세와 담대히 싸워서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할렐루야! 



1) 요한이 받은 것 

1절 =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요한이 사역을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지팡이 같은 갈대였습니다. 이처럼 두 증 
인도 사역을 할 때 받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은 책 계시록입니다. 지팡이 같은 갈 
대 는 작은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0장 10절에는 요한이 “작은 책을 먹어버리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들고 나타납니다. 
갈대는 재는 것인데,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갈대는 캐논으로 쓰는데, 캐논은 정경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 
러니까 지팡이 역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은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인도합니다. 목자 
는 이 지팡이 하나만 가지면 맹수도 다 이깁니다. 이 지팡이 하나만 가지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밤에 맹수가 자주 나타나서 위험한데, 남자아이들이 막대기 하 
나만 있으면 맹수하고 싸워 이긴다고 합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급소를 때리면 맹수들이 
팍팍 넘어진다고 합니다. 열 몇 살 짜리 아이들이 이 막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맹수 
들을 때리면 맹수들이 톡톡 떨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증인도 지팡이 같은 갈 
대 하나를 가지고 맹수들과 싸웁니다.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지팡이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먼저 지팡이는 인도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 
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뱀이 됐습니다. 목동이 지팡이로 양들을 인도하듯이 예수 그리스 
도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인도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작은 책을 먹었다는 것과 두 증인들이 이 작은 책을 먹고 전한다는 것 사이에 연 
결이 잘 안 된다는 의문 섞인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구조를 보면 쉽게 깨 
달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95세에 요한계시록을 쓰고 죽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여러 백성 
과 나라와 방백에게 이 작은 책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한번도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 
간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요한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요한을 통하여 마지막 때 일할 두 증인을 말하 
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면서 전도하라고 그러셨는데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제자들을 통하여 미래 
에 이스라엘을 전도할 선교사들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요한에게 작은 
책을 먹고 전하라고 하신 것은 종말의 두 증인들이 즉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작은 
책을 먹고 전 세계 여러 나라와 백성과 방백과 모든 민족에게 계시록을 전하라는 것입니 
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작은 책을 먹어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요한계시록만큼은 확실히 먹어버립시 
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듭시다! 계시록 내용 몇 번 강의 들었다고 해서 먹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집에서 보고 완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계시록이 내 의식구 
조 속에 싹 들어가는 순간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열려버려요. 말 
씀으로 이 마지막 때를 조명하며 확실한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신앙을 지 
키기 위해서는 계시록이 내 살이 되고 뼈가 되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별력도 생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절에 요한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았다는 것은 두 증인이 작은 책 요한계시록을 먹 
어버린 그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24장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마태복음 24장이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임을 고려할 때 
마지막 때 작은 책 계시록을 먹여주고 전할 전 세계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 것입니다. 참 
종들이 계시록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는 이 작은 책을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반드시 먹는 종이 마지막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2) 받은 명령 

1절 = ?…하나님의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하나님의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것은 상징적인 깊은 의미 
가 있습니다. 성막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두 증인에게 성전과 
재단을 척량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 
다. 
정말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자는 마지막 때 안됩니다. 지성소는 하나 
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성소는 제사장들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제사장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바로 우리가 제사장급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에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집사들이 제사장들입니다. 
일꾼, 집사, ‘디아코노스’가 다 그러한 의미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척량하라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마지막 때는 그런 자들을 이끌고 갑니다. “그렇 
게 지성소와 성소 차원의 성도로 양육하라. 그런 자를 길러내라!” 아주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알곡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양들입니다. 마지막 때는 둘로 나눠 
집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두 증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 그 말씀에 의해서 하 
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절 =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 
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두 증인이 받은 명령은 척량권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누구나 다 들어갑니다. 이 것은 대 
제사장 차원이 아닌 제사장 차원의 보통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혼합종교에 
다 들어갑니다. 이방인들도 여기까지는 들어가요. 뜰까지는 다 들어갑니다. 이는 교회 안 
의 큰 무리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큰 무리들이 다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여기는 다 
들어옵니다. 주님 성전의 마당만 밟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2절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저들이 성전 안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께 
우상숭배하고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나를 버리고 나를 떠난 
저들을 내 뜰만 밟았다고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마지막 때 내버려둬 
라.” 그러니까 계시록이 오기 전까지는 끝까지 타락한자들도 회개시키고 하지만 계시록에 
와서는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은 나둬라! 버려버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못된 것은 버려야지 절대 못된 것을 키우고 보호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 
지막 때는 그물 속의 고기도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은 버려버려라.” 계시록 22장 
에는 “거룩한자는 거룩 되게 하고 더러운 자는 더럽게 되게 내버려둬 버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 목회의 현실 속에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늘 후회합니다. 집사 직분을 너무 
쉽게 주어서 집사 임명을 받고도 별 형태가 다 있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목회를 한다면 
한 번 새롭게 해 보고 싶은데, 정말로 성전과 재단을 척량할 수 있는 그러한 성도로 기르 
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여러분들 마지막 때는 성소와 재단 여기 가야지 주님의 마 
당만 밟고 교회에 등록해서 예배만 한번씩 드리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큰 무리들이 표적의 그 떡을 보고 예수님을 쫓아다니고 열심을 냈습니 
다. 그들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녔고 새벽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열심을 
냈던 사람들이 생명의 떡을 말할 때는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 사람들도 제자라고 그랬어 
요. 많은 제자들이, 제자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에는 목사명칭도 들어갈 수 있고, 장 
로 명칭도 들어갈 수 있고, 권사 명칭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떠나버렸습니 
다. 그 때 주님이 “너희도 가려느냐?”고 합니다. 그 때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영생 
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는 절대 마당만 밟는 신자가 되 
면 안됩니다. 정말로 제단 지성소 차원의 성소 차원의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이 알곡 성도예요. 이것이 거룩한 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마지막 재림 신앙을 
가진 자들은 거기에 우리 신앙의 목표를 세우고 머물러야합니다. 지성소에 머무릅시다! 
성소에 머무릅시다! 할렐루야! 
성전은 지성소요, 재단은 성소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지성소의 신앙이 가장 높은 신앙 
이라는 것입니다. 성소의 신앙은 제사장, 지성소는 대제사장, 이렇게 신앙의 단계를 보여 
줍니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마당만 밟은 
자, 아직도 제사장이 영적으로 되지 못한 자, 신앙이 연약한 자, 모자란 자, 이러한 사 
람들은 그냥 두어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으니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오실 때 마지막 대환난 때 열매맺지 못한 곡식들은 다 버립니다. “그냥 두어 
라! 버려라!” 그물 속의 고기도 좋은 고기는 담고 못된 고기는 버리고 버려버립니다. 똑 
같은 거예요. 계시록의 방법으로 얘기했지만,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방법으로 하면 염 
소를 말합니다. 
한 달란트는 땅에 묻어버려요. 마당만 밟은 자를 버려 두어라. 이렇게 정확하게 신앙의 
등급을 내용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서 강렬하게 와 닿아야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제단과 성소의 등급이 돼야지 교회의 마당만 밟고 
다니는 신앙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 
다. 



3) 권세를 받는 두 증인 

3절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예수님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종말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 
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새 시대의 개념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그 
리고 광야에서 가나안땅으로 빼내실 때, 타락한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 빼내실 때 그 
다음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애굽은 종이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성막 시대와 가나안 땅의 성전 시대를 거쳐 타락한 
이스라엘 속에서 새로운 신약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음녀 바벨론, 여 
기서는 새 하늘과 새 땅, 세 번 새로운 영적 세계가 열립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이 세상가운데서 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약교회를 통 
해서 다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갈 때 하나님이 첫 번째 하신 일이 무엇입니 
까? 거기 보면 모세를 딱 세우셔요. 주의 종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신약교회를 세울 때 첫 번째 하신 일이 열두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주의 종 
을 세우셨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가야할 좋은 나라인 천국을 갈 
때 누구를 세우시는가? 바로 두 증인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구약이고, 신약이고, 종말이고 
할 것 없이 다 같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주의 종이 얼마나 중요한가? 
주의 종은 양들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바로 이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신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종을 모세 친구와 같이 대면했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너무도 사랑하셨습니다. 여기도 보면 예수님이 ?내가 나의 두 증 
인에게?라고 그러십니다. 너무너무 중요하니까 두 증인 그러지 않고, 나의 두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6절에도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라고 했습니 
다. 이것은 교회가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이야기할 때는 ‘내’자를 
안 붙여요. ‘내 사자를 보내리니’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사랑하시고 종들을 통하여 구원 
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무교회주의, 무목자주의는 전부 사이비들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니까 교회도 필요 
없다, 목회자들이 자꾸 세속화되니까 목사들도 필요 없다. 제 아무리 교회와 종들이 타락 
해도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종들을 통하여 진리를 계승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할렐루야! 
마지막 때도 똑 같아요. 하나님의 종인데 명칭상 두 증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두 증인이라고 했는가? 이 두 증인이라는 것은 법적 승인수예요. 신19:15절 말씀에 “사 
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 
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요한복음 8장 17절에 “너희 율법에 
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그러니까 두 증인이라는 것은 두 사람을 말 
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진리를 외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법적으로 승인한다고 하 
는 법정적 용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아니예요. 창세기 19장 1절에 소돔성이 멸망할 때 천사를 통해 하나 
님 역사하시는데, 이 때 두 천사를 보냅니다. 이것이 모두 같은 개념이예요. 여호수아 2장 
1절을 보면 여리고성에 정탐군을 보낼 때 열두 지파지만 두 사람씩 보냈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열두 제자를 두 사람씩 보냈다고 했습니다. 둘씩 보냈다. 그러니까 이것은 꼭 
두 사람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절에 보면 70인을 파송할 때도 70명이었지만 두 사람씩 보냈습니다. 누 
가복음 7장 19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낼 때도 두 제자를 보냈습니다. 누가복 
음 24장 5절에 보면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 나타난 천사가 두 천사였어요. 그리고 
사도행전 1장 7절에 주님이 승천하실 때 공중에 나타난 천사가 두 천사입니다. 천사는 원 
래 날개가 없어요. 날개를 단 것은 다 가짜입니다. 저 헬라 신화, 헬라의 미신, 그런 우상 
신전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카톨릭에서 날개를 달고 나는 천사는 잘못된 것 이예요. 천 
사를 여자로 그린 것도 잘못입니다. 여신숭배, 마리아 숭배 다 잘못된 것입니다. 천사는 
여자 남자 구별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계시록 13장 15절에는 거짓선지자의 권세가 나옵니 
다. 마지막 대 환난 때는 거짓 선지자가, 용이, 짐승이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마귀 사탄들도 마지막 이 한 판에 전부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도 최후 
한 판에 힘을 쏟을 때 어떻게 합니까? 이쪽의 모든 힘과 무기를 다 동원하고 저쪽에서도 
남은 병력과 무기를 총 동원하여 완전히 쏟아버립니다. 그때는 자기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쓰러지든 어쩌든 전부 힘을 남김없이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이제 세상이 끝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마귀 사탄들도 거짓선지자들에게 
엄청난 권세를 줍니다. 그래서 용의 권세, 짐승의 권세가 기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이 두 증인의 권세는 이 보다 월씬 더 무시무시한 엄청난 권세 
로써 모세의 권세와 엘리야의 권세를 합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빼낼 때 모세에게 실로 엄청난 권세를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냈습니다. 말이 바로이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애굽의 문화로 왕 
의 권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니까 모세를 물에서 건져낸 바로의 
딸이 여왕이 되었어요. 아들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궁중에 있었으면 자연히 왕이 되요. 당 
시는 애굽이 천하를 지배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버렸습니다. 모세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정만 60만 정도, 전체는 200만 
이상 이끌고 나올 때는 모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의 권세를 주셨 
고 바로 앞에 담대히 나가서 “바로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라고 하신 
다.”라고 강하게 외칠 수 있는 이런 권세와 능력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권위가 다 무너져갑니다. 대통령의 권위, 목사의 권위, 부모의 권위도 
다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별 
사람이 다 있는데 이것을 이끌어가려면 보통권세를 주셨겠습니까? 12제자들도 이 세상 
구약의 타락한 교회를 신약교회로 이끌어내는데, 로마의 핍박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심지 
어 바위를 뚫고 가서 살았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이에 대항해 예수를 전하다가 
잡히면 죽습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목사라고 지도자라고 가서 전도하고 예수를 전파하겠 
습니까? 
성도는, 양은 절대로 스스로는 못 삽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전면 해체되어 버립니다. 
목자 없는 양은 존재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장로, 권사, 집사라도 목 
자가 없으면 그 날로써 방해해버리고, 이렇게 양은 안 되는 것입니다. 12제자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이끌었겠습니까? 열두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어서 그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베드로잠스터’라는 돌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너무 핍박이 심하니 
까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그랬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하니까 
“네가 떠난 로마로 향하여 내가 가노라.”하며 환상 중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전해진 이야기로는 베드로가 “주여! 용서하소서 내가 다시 가겠나이다”하고 
그리고 로마로 들어가서 전도하다가 잡혀서 죽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목을 단두대 같은 
돌에 올려놓고 작두 같은 칼로 탁 친 자리가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교회, 목 
이 탁 치니까 한번 톡 튀고 톡 튀고 이렇게 튄 자국마다 표시를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바 
로 이러한 상황가운데 초대교인들을 교회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권세를 주시지 아 
니하시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주의 종들이 도망가면 다 흩어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에게 권세를 주었던 것입니 
다. 마지막 때도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시는데, 이 권세는 최고로 막강한 권세입니다. 예 
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처처에 환난이 있으리니 창세 
이래로 이후에도 이런 환난은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무엇이든지 최상 
급입니다. 마지막 한판하고 끝내버리니까 주님 재림 때는 좋은 것도 최고이고, 나쁜 것도 
최고입니다. 지금 악한 사람은 무지무지하게 악해지고, 좋은 사람은 진짜 신앙이 더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렇게됩니다. 그러므로 까불지 말고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권세를 준다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막연히 뭐 능력이나 받자고 하면 안됩니다. 
적군은 신종무기인 대포를 가지고 막 싸우자고 나오는데 우리는 소총가지고 조준해서 
“탕! 탕!”하고 쏘아서는 못이기는 것입니다. 저쪽에 대포가 나왔으면 그 대포보다 조금 위 
에 있는 무기를 가지고 펑! 펑! 쏘아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이미 결정됐습니다. 
아멘! 우리는 이겨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예요. 최 
고 여러분들이 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을 구원시키고, 축복해 주시고,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어서 이끌고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좋은 권세 일곱 가지와 나쁜 권세 일곱 가지의 싸움입니다. 나쁜 권세는 계시록 
13장 8절 만국을 다스리는 적그리스도 짐승권세, 14장 12절 짐승의 권세, 13장 용의 권 
세, 9장 10절 황충의 권세, 9장 3절 전갈의 권세, 13장 5절 마흔 두 달 일할 권세, 13장 
15절 거짓선지자의 권세입니다. 무시무시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쪽에도 만국을 다 
스리는 권세 2장 26절, 12장 10절 그리스도의 권세, 16장 9절 하나님의 권세, 20장 4절 
심판하는 권세, 20장 6절 둘째 사망을 다스리는 권세, 22장 14절 성안에 들어가는 권세, 
11장 3절 마지막에 두 증인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도요한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초대교인들이 전부 에베소에서 도망가는데 거기서 사도요한이 교회를 
하면서 로마와 싸우면서 이 복음 예수 하나 전하는데, 만일 권세와 능력을 주의 종인 요 
한이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종말의 두 증인에게 
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엄청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4) 두 증인의 복장 

3절 =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이제 두 증인의 복장입니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굵은 베옷은 
욘3:5절과 관련하여 볼 때 회개의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굵은 베옷이라고 그 
랬습니다. 이것은 큰 회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옷을 찢을 때 베옷을 찢습니다. 회개할 
때 막 찢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찢는 것에 대한 예표성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이 성전 터가 쭉 있는데 정말 
로 거대해요. 그런데 전부 로마가 훼파해 버렸는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다고 그랬 
습니다. 겨우 한쪽 벽, 서쪽의 통곡의 벽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을 왜 남겨놓았을까요?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터를 봄으로써 로마의 힘이 얼마 
나 위대한지 깨닫기 위해서 이것을 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여기 와서 회개하 
고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찢고 전 세계 통곡의 벽에서 막 우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옷을 찢다보니 양복이 다 찢어지고 옷이 다 찢어지니까 옷을 만들 
어서 거기서 팝니다. 그래 판 옷도 갖다 찢어요. 그 정통파 사람들은 까만 옷을 보여서 
연주복 같이 옷을 입고 계속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인줄 믿습니다. 감 
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전 세계가 무너지니까 온통 기근과 지진 덩어리입니다. 
그리스, 터키, 로마 가보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헤라가 지배했을 때 세계 곳곳에 신 
전들을 세워놓았습니다. 
헬라의 제우스신, 비느스신, 바카스신, 바카스신은 술신입니다. 황제신전들을 세워놓았어 
요. 예수님이 딱 오셔서 로마가 기독교화 되니까 신전들을 전부 때려부수고 전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이 지배할 때는 교회가 전부 회교사원으로 다 바꾸어집니 
다. 예수가 사라져 버립니다. 우 
리 한국 땅에 예수가 머문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예수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전부입니다. 내가 미치도록 믿을 예 
수! 예수 안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것이 바로 이 
예수입니다. 예수 그 분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일곱 영의 역사, 즉 
성령을 통한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회 
개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무시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니까 회개가 최 
고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용서를 빌면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오냐, 너 잘못했냐? 
알았다. 너 한번 죽어봐라.” 이렇게 말하는 그런 부모는 절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의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때는 회개가 그렇게 너무너무 중요 
합니다. 

5) 두 증인의 사역 기간 

3절 =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260일 예언하리라”고 했는데, ‘1260일’은 언제입니까? 마지막 대환난입니다. 마태복 
음 24장에도 보면 환란 전반부가 “환난의 시작이니라”라고 언급됩니다. 그리고 환란 후 
반부가 나와요. 그 다음에는 환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이렇게 나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여기가 환란의 중간입니다. 그때는 완전히 적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1260일은 이 부분입니다. 여기도 1260일이에요. 
‘마흔 두 달’, 그러나 대게 좋은 것은 1260일을 씁니다. 나쁜 경우를 말할 때는 마흔 두 
달, 후 삼년 반을 말할 때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흔 두 달이라고 이렇게 씁니다. 계 
시록 11장 1절에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제단과 성전을 척량하며 마당은 마흔 두 
달 동안 두어라.’ 그 말은 이 환난기 후반부에 짐승이 통치하면 이때 ‘그냥 두어라.’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두 증인들은 이 환난기 전반부에 활동하고 순교합니다. 
그러면 1260일 동안 두 증인들이 활동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잠잤던 교회들이 
다 깨어나고 감추었던 복음들이 확 드러나며 이 때는 양과 염소로 성도들도 갈라지고 진 
리와 비진리로 빛과 어두움이 전부 갈라지는데, 하나님의 두 증인들이 권세를 받아 진리 
의 횃불을 붙들고 1260일 동안 외치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구약 교회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렇게 타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열 두 제자들이 나타나서 진리의 횃불, 복음의 횃불, 예수 그리스도 횃불을 들고 격렬하 
게 싸웁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과 그 사도들에 맞서 강렬하게 싸웠습니다. 마지막 때 
는 두 증인들이 126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외칩니다. 두 증인은 때를 따라 양 
식을 나눠줄 종말의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목자관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목자관은 올바른 믿음을 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목자가 있 
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를 영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말씀과 예배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6) 두 증인의 상징적 표현 

4절 =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4절에서는 두 증인을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묘사했습니다. 계시 
록은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의 핍박을 연상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됩니다. 반드시 겹쳐 
져 있어요. 이것을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라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떨어져있는 두 사건 
이 공통된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일들을 예수님 당시로 먼저 생 
각해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두 증인들은 구약교회가 말할 수 없이 타락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들 
이 새로운 교회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를 사수하고 순교했던 예수님 
의 열두 제자가 모델입니다. 마지막 때는 두 증인들이 베옷을 입고 회개운동을 일으키며 
큰 권세를 받고 일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 증인을 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표현했을까요? 이것은 스가랴 4장 14절 
을그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 
니라.” 실제 인물로 보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에서 이스 
라엘 백성들이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고 처참한 모습이 
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영광을 드리고 하나 
님을 찬양하면 그 땅이 기름지고, 범죄하면 그 땅이 아주 엉겅퀴로 척박한 땅이 되어 버 
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우리의 심령의 땅과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 
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배경으로 했을까요? 마지막 때 교회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잠을 잡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네 믿음을 보겠느냐? 한국교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국교회는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의 신앙 생활로 몸부림치는 것입니 
다. 그런데 한국교회마저도 지금 이렇게 약해지는데 전 세계적으로보면 교회가 31억이라 
고 합니다. 제 아무리 기독교가 많다고 할지라도 카톨릭은 완전히 배도했고, 희랍정교회 
는 완전히 세속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는 인구의 98%가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교회 
들은 많아도 심지어 98%가 기독교라고 해도 나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 나오시고, 주일성수 하시고, 새벽예배 나오신다는 것은 대단한 것 
입니다. 신앙들이 다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꼭 새벽예배에 나가셔야합니다. 그러한 신앙 
이 바로 그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는 교회의 진리가 어두워지고 믿음을 보겠느 
냐는 것은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다 무너지는데 열 두 
제자를 통하여 다시 교회를 일으키듯이 예루살렘 스룹바벨 대제사장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듯이 두 증인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시 회복하고 진리의 횃불을 다시 밝히는 
그러한 배경을 계시록은 깔고 있습니다. 
두 인물이라는 측면에서는 두 감람나무와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는 성령을 상징합니 
다. 박윤선 목사님은 감람나무와 촛대는 교회의 성령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짭니다. 감람나무를 보면 별 나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유익해요.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입니다. 과일은 맛있는 열매요, 씨는 감람나무 기름이요, 이파리는 
향유로 향기를 내는데 쓰입니다. 두 증인들을 감람나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종들이 마지 
막 때 그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볼 때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정말 쓸모 있는 감람나무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람나무 기름에 불을 밝히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슬림도 덜 
나고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리고 촛대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 복음의 빛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 
회가 성령 충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널리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 
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종들이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일으킬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 
리의 빛을 만방에 비치게 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 
야! 
마지막 때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데 진리가 사라지고 혼합주의가 이렇게 세계를 지배할 
때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가라지를 먼저 묶는 시대예요. 반드시 진리의 
불이 밝혀질 것입니다. 반드시 작은 책 요한계시록이 여러 나라와 백성과 전 세계에 증거 
될 것이고, 이 때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순교적 각오로 복음을 외칠 것입니다. 영적 
으로 문을 닫았던 교회들이 다시 뜨겁게 주님을 부르짖고 그러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같은 그런 교회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계시록을 보면 절망이나 좌절, 공포가 아니라 소 
망이요, 승리요, 화실한 해결책입니다. 할렐루야! 

7) 두 증인의 권세 

5절 =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이제 5절에서는 좀 더 강력해집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종들인 두 증인을 해하고자 
하면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 
이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입에서 불이 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불같은 말씀의 
능력으로 사탄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예레미야 23장 29절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는 말씀에 그 해석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왜 보호하십 
니까? 열 두 제자들이 사역을 마칠 때까지는 철통같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모세 
도 바로의 군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호했습니다. 열두 제자를 보호하셨고, 마지 
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열왕기하 1장10절을 보면 엘리가 “하늘에서 불이나서 오십인을 사를지로다” 하니까 실 
제로 불이 내려와서 50인을 태워버립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해서 박윤선 목 
사님은 이것을 여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을 건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입에서 불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 
통같이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는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세력, 적 그리스도 세력, 거짓선지자들, 용의 권세를 
말합니다. 마지막 대 환란때는 전 세계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이러한 원수들과 대항해서 
싸웁니다. 144,000명의 하나님께 인침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두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목자관계를 확실하게 세워야 합니다. 철통같은 목자관계를 가 
르쳐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해서 성막을 세우시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복음을 가르치시며 마지막 때는 “나 예수는 교회를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거케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뇌리에 꽉 박혀버려야 합니다. 목사의 방침을 어떻게 잘 받들고 그 방침대로 순종할 것인 
가를 늘 생각하며 아론과 훌처럼 주의 종을 받쳐주는 그 일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 
다. 
민수기 16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 
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명한 자, 택 
함받은자가 오히려 주의 종을 힘들게 합니다. 무명한 자, 택함받지 않는 자는 주의 종들 
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거스르며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금기사항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신앙생활에 좌우명으로 삼는 것이 복입니다. 11절에는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 
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했습니다. 모세를 거스렸는데 그것은 여호와를 
거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을 거스리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라는 
겁니다. 
주의 종을 흉보면 하나님을 흉보는 것이요, 주의 종이 불편하면 하나님 불편하신 것입니 
다. 성경 전체적인 것이 다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16장도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험담하 
니까 하나님을 험담했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받들면 하나님 
을 받드는 것입니다. 절대 일을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목사가 방침을 세우고 나가면 그 방침대로 잘 순종해서 나가는 그것이 일 잘하는 것입니 
다. 30절에는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땅으로 입을 열었다고 했어요. 고라 일당을 말합니다.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흉봤는데 여호와를 멸시했다고 했습니다. 고라 일당이 하나님 
을 멸시한 적은 없어요. 하나님 앞에는 거룩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렇 
지만 하나님의 종 모세를 거스리니까 하나님을 거스렸다고 하시며 하나님 멸시했다고 심 
판하시는 것입니다. 31절에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 
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켜버 
렸습니다. 여러분들 절대 목사님을 거스르지 마시고 목사에게 순종하는 바른 신앙을 가지 
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9장 18절에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했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재난과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있고, 염병이 있고, 꼭 그대로 있어요. 그러 
면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괴롭힘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 
다. “내가 그들을 쫓아내며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는” 그 이유는 19절에 나옵니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 
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듣지 아니할 때 각종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4절에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하신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 
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음란죄를 짓고, 간음죄를 짓고, 타락하고 막 그랬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죄는 주님이 보내신 주의 종들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아 
니한 것입니다. 
간음죄를 안 짓고, 사기죄를 안 짓고, 싸우지 않는다고 거룩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 
나님의 종을 영접하지 아니한 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보다 더 악하다고 더 심판받는다 
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의 흐름을 꼭 아셔야합니다. 정말 아셔야합니다. 여러분들 
의 모든 믿음의 목표는 어쩌면 하나님의 종과의 영적 관계를 좋게 맺는데 있습니다. 어떻 
게 하면 아론과 홀처럼 받들고 목사님 하시는 일에 기도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복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두 증인들을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방법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세요. 목자와의 관계가 좋은 믿음은 그 믿음이 
급성장하고 목자와의 불편한 관계는 믿음이 급락합니다. 이사가든 어디든 하나님께서 정 
해주신 교회에서 그 목자를 잘 받드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요, 그것이 참 믿음 
인 것입니다. 



8) 권세(1) 

6절 =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두 증인들, 즉 대환난 때 일할 하나님의 종들이 큰 권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 
덟 번째 권세를 받는데 그것이 무슨 권세입니까?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엘리야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곱 번 기도할 때 무릎사이에 머리를 내리고 기도할 때 마지막 손바닥 
만한 구름이 와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이스라엘을 적셨어요. 
그러면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것은 엘리야의 능력을 말하는데, 열왕기상 17장 6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 
로 말하면 성령의 권세를 말합니다.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해요. 엘리야와 관련된 것을 상 
징적으로 보면 전부 성령이예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마지막 때 구름 위에 바람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바람 
도 성령의 예표성이예요. 엘리야가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비도 성령의 단비를 부은 것과 
관련됩니다. 아무튼 엘리야하고 관련된 것은 전부 성령과 연관돼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집에 갑니다. 거기 가서 기름이 떨어져요. 그 기름도 성령을 상징하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사건 하나 하나가 전부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환난 때 하나님의 종들은 성령의 일곱 영의 큰 권세를 가지고 사역합니다. 이것 
이 엘리야 사역이예요. 



9) 권세(2) 

6절 =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홉 번째로 또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의 능력을 말합니다. 모세는 말 
씀을 상징해요. 모세와 관련된 것을 보면 가장 대표적으로 홍해바다입니다. 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성령을 상징하고 하나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모세 쪽에서는 말씀 
을 의미해요. 지팡이를 들었다는 것도 말씀을 예표합니다. 모세가 십계명받은 것도 말씀 
이예요. 홍해바다를 가른 것도 말씀입니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말씀으로 죄를 
씻는 것, 옛사람을 씻는 것, 그러니까 모세는 전부 말씀을 예표하는 것입니다요. 두 증인 
은 엘리야의 성령권세와 모세의 말씀권세의 두 가지 권세를 가집니다. 
초대교회 때도 열 두 제자가 오순절에 성령 받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영적 세계 변화가 왔 
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무능력한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후 
에는 엄청난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보세요. 은과 금은 내가 없으나 일어나라 그러 
니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결국 순교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도 때 역사가 예표성을 보 
여주는데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종들(두 증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능력의 권세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권세가 말씀과 성령의 권세입니다. 그러니까 나쁜 것도 가장 악하게 
나오고, 좋은 것도 가장 좋은 것이 나옵니다. 
마지막 때는 최후 것까지 다 쏟아버려요. 하나님도 다 쏟아버리십니다. 마귀들도 용의 권 
세로 전부 쏟아버려요. 여러분들 성경을 보면 다 성령이고 말씀입니다. 구름기둥은 말씀 
의 예표이며, 불기둥은 성령의 예표입니다. 두 증인도 말씀과 성령을 예표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았어요. 열왕기하 
에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 동굴에 갑니다. 거기가 시내산이예요. 똑 
같은 것입니다. 모세는 말씀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7장 보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갈 때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 
야를 대동하고 나타나십니다. 여기서도 모세는 말씀을 그리고,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합니 
다. 구약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러 갔어요.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모세와 엘 
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을 강조한 것 이예요. 종말의 
두 증인들이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하고 하늘에 비가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적 성 
령의 역사와 모세적 말씀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큰 역 
사가 일어나서 이 세상을 깨우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로 마지막 때입니다. 성경의 어디를 봐도 예수님의 재림이 나타나지 않는 부 
분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마지막 때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잘 믿고 정말로 주님이 기뻐하 
시는 대로 잘 믿어서 행복하고, 감사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장 강해(2) 두증인 


제목 : 두 증인의 순교 
본문 : 계11:7~14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 
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 
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여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 
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 
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 
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 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 
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 
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 
는도다” 



1) 짐승과의 전쟁 

7절 =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이렇게 함으로써 두 증인은 자신들의 증거와 사명을 마칩니다.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서 9장 해석을 할 때 나오는 용어입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주석에 이 부분을 계속 
7년 대환난 전반부와 후반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증거를 마칠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대환난 전반부입니다. 환난의 전반부가 
끝날 때 그러니까 대환난이 시작되면은 이 때는 엄청난 변화와 더불어 역사가 마감하는 
기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들이 앞에서 본대로 모세적 권세와 엘리야적 권세를 받지 아니하면 이 대환난 때 
를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을 통하여 증거를 마치셨습니다. 이 말은 사명을 잘 감당하 
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루터가 거대한 교황청과 맞대응하여 싸웠습니다. 칼빈 
이나 윌클리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이분들은 몇 
번이나 고난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 
지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완수하기 위해 칼빈은 제네바에서 쫓겨나기도 했 
습니다. 
칼빈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200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버금가는 고통을 당했습니 
다.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쫓겨나기도 하고 어떤 형태로든지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 
다. 칼빈이 승승장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곱 가지 병에 걸려 있어 
서 ‘걸어다니는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잘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많이 아팠고, 제네 
바에서는 그렇게 자기를 따랐던 사람에 의해서 의회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도 
망갔어요. 물론 나중에 다시 복권은 됐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 속에서도 이분 
들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두 증인들)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마24:45)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바로 그 종을 말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는 ‘양식을 나 
눠주는 역할을 다 마칠 때에’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명을 확실히 완수한다 
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그러면 누구에게 순교당합니까? 바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인데, 이것 
은 박윤선 목사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적 그리스도로 말했습니다. “적그리스 
도가 무저갱으로 왔다”는 말은 지옥에 그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지옥으로 
이끌어 갈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짐승은 교황으로 보아야 합니 
다. 
여러분들 혹시라도 교황이 지금 참회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미혹되면 안됩니다. 요즈음 신 
문마다 보니까 교황이 참회했다고 하고, 아주 세계적인 찬사를 동원해서 교황을 부각시키 
며 신문마다 난리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참회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로 봐야합니다. 하나 
는 자신은 진실하겠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예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스도를 파괴하며 우리의 진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면서 역사적으 
로 회개한다는 것은 지나친 모순입니다. 회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서서 그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그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면서 자기 잘못을 회개해 
야 그것이 회개지 교황의 이러한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교황의 회개는 한마디 
로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 하나님과 무관한 회개입니다. 
두 번째는 회개의 목적이 있어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종교통합입니다. 이 말이 제 
일 중요해요. 지금 교황이 회개함으로로 이제는 종교간의 화합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신 
문에 그렇게 나오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카톨릭은 십자군을 파송해서 회교도들을 무수히 
죽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유럽의 십자군을 파송해서 다른 종교를 
무참히 짓밟아버렸어요. 개신교도들도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그 모 
든 것을 사죄하고 회개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종교간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져버리는 것입 
니다. 그래서 결국은 교황권이 주도하는 종교다원주의, 세계 종교통합주의를 만들기 위한 
사탄의 음모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바로 잡고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로 인한 구 
원을 내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정통적인 신앙과 교리 안에서 회개했다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일이겠습니까? 
이제 이 짐승이 등장하는 대환난 때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하는데 적 그리스도는 이 부분을 
온화적으로 봅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잡고 이레의 절반에 그랬습니다. 이 때 
적그리스도가 강력한 통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박윤선 주석에서는 "7년 대환난 기간 후 
반부에 적 그리스도는 더욱 맹렬히 활동할 것이다"고 보았습니다.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의 복음, 그리고 종말의 계시록을 봅시다. 지금 역사 속에서 하나님 
이 구약의 이스라엘 속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 
고 홍해바다와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직접적으로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상이 
바뀌었습니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미쳐버리고 생명까지도 다 버렸습니다. 왜냐하 
면 자신의 조상들이 그것을 역사속에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지면서도 자기가 경험했던 그 하나님에 
대한 감격,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 
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올 것으로 믿고,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그대로 
믿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동과 확신속에 역사적으로 처음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두 번째 진리의 세계인 복음의 비밀이 드러났 
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눈으로 보고 만지는 그 하나님의 감격과 실체를 
체험하고 이제는 생명을 바쳐버립니다.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삼층천을 보 
고, 말씀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더 분명하게 깨달으니까 복음 
으로 완전히 미쳐버린 것입니다. 이 복음을 대한 자들은 다 순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재림인데 계시록에 기록된 이 말씀들이 종말에는 이렇게 될 
것이고, 두 증인이 나타나고 해 입은 여자가 나타나며 적그리스도 나타나고 결국에는 미 
쳐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것이 다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 
실 것이고, 언제 하실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까이 왔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확실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계시록을 통하여 재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세계를 우 
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구약의 하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육적인 세계를 본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 진리의 세 
계를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계시록을 통하여 새하늘과 새땅, 종말의 모든 세계를 확 
실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미쳐야합니다. 계시록에 있는 사실들 
이 성경구절 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 오실 때가 임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에 미쳐야합니다. 
사도들이 순교했듯이 마지막에 계시록으로 무장한 재림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 
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우리는 완전히 보고, 만지며,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 우 
리는 또 하나 미칠 것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약 속에서 이스라엘 만난 그 하나님을 소유 
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이루신 그 복음의 진리를 소유했는데 이제 우리는 계시 
록을 통하여 이제 주님 오실 때의 이 상황과 새하늘과 새땅을 보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야 될까요? 
계시록을 보면 아시아 일곱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 
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말하는데,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정확하게 역사 속에서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도 미칠 노릇 
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있으면서 천국을 보았고, 계시록을 ‘장차 될 일’이라 그랬습니다. 
요한이 본 것을 다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연관지어 
볼 때, 계시록 6장부터 흰말이 나타나고,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과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잦아지며, 물 때문에 앞으로 세계가 난리로 들어간다고 그랬습니다. 이 모든 지진 
과 기근과 8장에 나오는 것, 9장에 거짓선지자들 활동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10장에서는 작은 책을 먹어버리라고 하고 잇습니다. 계속해서 11장에는 두 증인이 언급 
되고, 이런 식으로 앞으로 될 것들이 전부 열리고 있는데, 사도들처럼 복음을 받고 미쳐 
버리듯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 만나고 미쳐버리듯이, 우리도 마지막 종말에 될 이 사건 
들과 새하늘과 새땅을 보고 미쳐버려야 됩니다. 꼭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장차 될 일 입 
니다. 요한이 본 것을 기록했어요. 
짐승을 적 그리스도로 보는데 교황과 똑같습니다. 13장의 짐승하고 적 그리스도는 똑같아 
요. 이제 정말로 계시록으로 무장하고 난 여러분들이 장차 작은 책을 먹어버린 자가 복이 
있다고 그랬고, 가르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랬고, 작은 책을 먹어버리라고, 여러 나라에 
전하라고 그랬고, 장차 될 일이므로 꼭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받고 미 
쳐버리고 순교해버렸고, 유대인들이 율법 안에서 하나님 만나고 미쳐버렸듯이 우리는 마 
지막에 두 가지 가지고 미쳐야되지만 또 하나 계시록을 보고 장차 될 일에 미쳐서 정말 
이 시대를 옳게 분별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짐승으로 더불어 일으키는 전쟁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알수는 없지만 그때가면 어떤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래도 로마 황제가 이스라엘 민족을 딱 무너뜨리겠지요. 아 
마 이 때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2)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함 

7절 =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두 번째 “저희를 죽일 터인즉”이라고 했습니다. 두 증인들이 순교합니다. 열 두 제자가 
순교했던 모습 그대로 순교합니다. 순교의 제물 없이 복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음을 받았을 때 열두 사도가 순교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어느 민족이든지 복음이 들어갈 때 피를 얼마나 흘렸느냐 덜 흘렸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순교의 피를 많이 피를 흘린 민족은 기독교가 불꽃 
처럼 일어나고, 피를 흘리지 않고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타락해 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한 지역은 기독교 거의 100%예요. 거기에 선교사가 가서 미개인들을 전도 
하는데, 이 선교사가 피를 흘리면서 온 몸 오장육부를 전부 찢어서 널어놓았어요.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이 그 피를 보고 저주했어요. 그런데 그 피의 뒤를 또 다른 선교사가 이어 
받아 거기 가서 또 피를 흘렸는데, 선교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 이 되었습니 
다. 그런데 거기만 기독교가 거의 100% 신앙이 활활 타오릅니다. 
고난은 현재 당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고난을 당했는가? 고난이 너무 아프니까 “주 
여! 벗어나게 하소서!” 그렇지만 사실 고난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저는 목사님들을 생각 
하면 육적으로는 큰 고통과 어려움, 삶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이 복음만 만나면 예수님 
의 피 묻은 복음만 만나면 확 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튼 두 증인은 짐승과 싸우다 
가 여기서 순교를 당합니다. 그것이 대환난 때, 열 두 제자가 순교 당한 것과 똑같아요. 
이것은 이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습니까? 
사도행전 12장 1절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 
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이것 좀 보세요.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했습니다. 



3) 두 증인의 시체가 있는 곳 

8절 =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이 성이 영적으로 무엇일까요? 계시록 17장 18절에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 
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했습니다.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죽습 
니까? 적 그리스도와 큰 성은 음녀라고 했습니다. 바로 음녀에게 죽어요. 음녀를 저는 카 
톨릭 교황권으로 봅니다. 제가 카톨릭 본부를 직접 보고 왔는데, 하나의 거대한 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큰 성을 음녀라고 그랬습니다. 음녀, 간음하는 교회, 타락하는 교회 이런 성 
을 육적으로 갖추는 것은 카톨릭 밖에 없습니다. 교황청 밖에 없어요. 이것은 아주 분명 
합니다. 
여러분들이 큰 진리를 보고 하나님의 이 역사와 섭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세상의 모 
든 고통과 아픔과 삶의 이런 모든 것들은 그냥 이겨버립니다. 큰 진리 앞에서 두 증인들 
이 짐승과 이 음녀와 야합한 여기에서 죽어요. 그런데 음녀가 죽은 이 큰 성은 어떤 곳입 
니까? “영적으로 하면 이 성은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합니다. 
소돔은 베드로후서 2장 6-7절을 보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한 간음을 말합니 
다. 소돔의 상징적인 의미는 간음이예요. 그러니까 두 증인들이 죽은 그 음녀 그 성은 아 
주 더러운 간음하는 영적 비 진리를 가진 소돔으로 비교가 되고, 그 성은 애굽이라고도 
하는데,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할 수 없이 노예로 괴롭히는 곳 이예요. 마지막 때 
음녀는 애굽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 교회를 괴롭힌다는 것을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입 
니다. 
세 번째로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를 반대하고 핍 
박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여지없이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카톨릭입니다. 이 
는 영적으로 완전한 간음이요, 간음한 여자입니다. 두 번째 카톨릭은 영적으로 말하면 모 
든 성도들 다 죽여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핍박했듯이 카톨릭이 타락하므로 말 
미암아 교황청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말할 수 없이 사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바로 애굽이예요. 세 번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그랬 
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파괴합니다. 지금 이 예수 진리를 다 깨뜨려 버립니다. 칼 
빈이 왜 위대합니까? 
칼빈은 이러한 음녀가 계시록 17장의 카톨릭이라고 쭉 봤습니다. 제가 박윤선 목사님 주 
석을 쭉 보면서 거기서 깨달을 것을 것이 있나 봤는데, 참 안타깝게도 박윤선 목사님은 
이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교회로 안 보고 이 세상으로 보아서 한국교회가 배도하는 이것 
을 깨닫는데 아쉬움이 있어요. 칼빈이 보는 것이 맞습니다. 카톨릭이예요. 그대로 여기서 
죽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을까요? 
사도들이 복음에 미쳐버렸듯이 확신을 가지고 그랬듯이 저는 마지막 계시록을 통하여 종 
말의 세계를 보고 주님의 새하늘과 새 땅을 보고 주님의 재림의 영광을 그 때를 보며 이 
제 그렇게 될 것이며 하나하나 현세 속에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남은 것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누가 저는 저를 죽인다할지라도 이 진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것을 바꾸라고 칼과 위험이 온다 할지라도 생명을 빼앗긴다 할지라도 순교함으로 이 진리 
를 지킬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증인이 짐승으로부터 죽고 난 후 그 시체가 어디에 있습니까? 죽는 곳이 음녀예요. 그 
러니까 배교하는 혼합종교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서 순교하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사도들이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얼마나 고통당했고, 종교개혁가 
들이 카톨릭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4) 멸시받는 두 증인의 시체 

9절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9절은 멸시받는 두 증인의 시체입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라는 말 
은 전 세계 모두를 말합니다. 두 증인들은 한국만, 이렇게 국부적으로 보는 것은 아주 잘 
못된 것입니다. 백성과 족속과 방언과 여러 나라 중에서 전 세계에서 그 시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한다는 것입니 
다. 목도란 말은 “몸소 직접 본다. 조롱한다.”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타난 것이에요. 예수님이 사흘동안 무덤에 계셨지요. 예수님 
이 얼마나 조롱받았어요. 유대인들에게, 그런데 두 증인들을 보면은 복음을 전하고 순교 
하고 이제 부활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 
다” 똑 같아요. 
조롱받고 비웃음 받고 “주여! 이 복음을 받는 자는 조롱도 받고 비웃음도 받고” 갖가지 
고통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침 뱉음을 받으시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별소리를 다 들으셨어 
요. 우리도 그것을 들어야돼요.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에요.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예수님도 보세요. 무덤을 막아버리고 로마 병정들이 무덤 
을 지켰잖아요. 여기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시편 79편 3절에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 
면에 물같이 흘렀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죽이고 그 시체들을 매장도 
못하게 했어요. 그것이 배경입니다. 처참해요. 이 때는 그럴 것입니다. 진리는 사라졌을 
것이고 무슨 놈의 예수냐? 무슨 놈의 재림이냐? 이렇게 비웃을 것입니다. 



5) 두 증인의 시체가 조롱받는 이유 

10절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두 증인 순교의 다섯 번째 모습은 두 증인 시체가 조롱받는 일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 
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괴롭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일까? 진리를 선포한다. 열 
왕기상 18장 17절 이것이 성경에 다 배경이 있거든요. 엘리야를 볼 때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그러면 엘리야가 육적으로 괴롭게했나요? “네가 언제까 
지 그렇게 있을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 죄를 책망했고 진리를 선포했거든요. 그것을 괴 
롭게 한 것이에요. 그래서 두 증인들이 이런 처참한 조롱과 아픔과 이것을 다, 진리는 강 
력하기 때문에 반항도 이렇게 큰 것이에요. 꼭그대로 됩니다. 
여러분들 그런 시각에서 보아야합니다. 꼭 이대로 됩니다. 아무리 봐도 주님 오실날은 가 
까워요. 육신이여 내일 인류종말이 올 수도 있다. 썬 마이크로 창업자 조이가 경공인데 
마이크로 창업자가 있어요. 그런데 앞으로 이렇게 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 물 때문에 세 
상에 종말이 온다고 그러지요. 무엇을 읽어보면, 모든 면에 종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어요. 
여기보세요. “기술의 발전이 현재처럼 급속하게 이루어질 경우 두 세대 안에 인류의 종말 
과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더욱이 이같은 비관론이 정보화 시대에 
개막을 주장한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에 공동창업자인 빌조이에게 
서 나왔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고 미국 워싱턴퍼스트지가 12일 보도했다. 빌조이는 
14일 인터넷잡지 와이워드에 발표할 24초짜리 건물에서 기술의 진보와 인류에게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는 유나바모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30년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현재보다 1백만배 이상 강해요. 컴퓨터가 지금보다 100만 
배 강력해지고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으며 로봇을 우리 인간을 뛰어 넘어요. 스스 
로 복제할, 스스로 복제까지 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60년 이후에 컴퓨터만 가져도 지구의 종말이 올 수 있습니다. 



6) 조롱의 내용 

10절 =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여러분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초대교회 종들이 조롱 받고 거기서 죽었잖아요. 사람들은 
그 황제가 “죽여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자들을 보내서 황제의 손가락 동작 하나에 물어 
뜯기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막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소리 지르고 환호성 
을 지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에요.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두 증인들이, 이스라엘 보면 과거 주석들 보면 이스라엘 독립하리라고는 성경의 예언이 
있는데도 주석가들이 한 주석도 이스라엘 독립하기 이전의 주석은 칼빈 뿐만 아니라 모든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독립할 것이라고 주석을 쓴 주석은 하나도 없어요.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상태를 보면 2000년전에 전세계 흩어져서 그 씨족이 말릴 상황이 
고 그 땅은 터키가 지배했고 영국이 세계 다 지배하고 PLO가 거기서 살고 이런데 이스 
라엘이 세계 지금 그때 100만 명까지 전세계에 흩어졌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것이지요. 그러니까 흩어져있는 사람들이 다 쫓겨다니고 600만명이 히틀러에게 몰 
살당하니까, 이스라엘이 감히 독립한다는 것은 우리 성경 주석가들도 그것을 믿고 쓰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 버립니다. 
이렇게 무천년이 굉장히 역사속에 강력했는데 주석을 쓴 사람이 대부분 무천년이 많아요. 
그 사람들은 “이것은 재림의 확실성이다.” 이렇게만 해석했어요. 마태복음 24장 32절은 
“재림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그 이론이 강력한 이론이예요.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이 
아니예요. 재림의 역사성이예요. 
“이스라엘 무화과 나무가 싹이나면 그 무화과 나무를 보아라.” “그 무화과 나무”는 무 
엇입니까? 앞에 있는 마태복음 21장에 “무화과나무를 보아라 싹이 나면”, “죽었다 살아 
나면”, “독립하면” 틀림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내가 문밖에 곧 가까이 이른 줄 알라” 
이것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 확 드러나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이 선지자는 무엇인가? 괴롭게 
했다고 했지요?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왜 그렇느냐면 제사장은 백 
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가거든요. 그 제사장은 늘 백성의 유익을 구해요. 백성을 위 
해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요. 그러니까 제사장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약 400여명의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주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고 이러니까 얼마나 인기가 있겠습니까? 
지금 교황보세요. 축복 기도해 주고, 평안을 빌고, 교황청의 문만 지나가면 죄가 다 없어 
져버린다고 하니까 얼마나 인기가 하늘을 치솟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안그런단 말이예 
요.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변해요. 하나님의 입장에 딱 서요. 그리고 성도들, 백성 앞에 나 
가서 하나님의 유익을 구해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쫓는 것이예요. 그런데 마지막 때 
활동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예요. 선지자예요. 
그래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주일성수도 강조하고, 새벽마다 기도하자고 그러고, 
세상의 모든 것에 회개하라고 합니다. 철통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선포합니다. 그래서 마 
지막 대환난 때는 제사장적 종이 아니라 선지자적 종이예요. 그러나 제사장적 종은, 굉장 
히 좋다고 그러고 부담이 없다고, 기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적으로 하면 고난과 아픔이 따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 
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 
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기억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그랬어 
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선지자 
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경고합니다. 제사장은 인기가 많아 
요. 지금도 제사장적 목회자는 인기가 많아요. 사람이 좋다느니, 부담이 없다느니,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몰라요. 선지자는 독재한다느니, 강하다느니, 별소리를 다 듣습니다. 두 
증인이 오늘 이렇게 조롱받고 마지막 역사속에 순교의 재물로 사라집니다. 



7) 두 증인의 부활 

11절 =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왜 “삼일 반 후”인가? 예수님은 우리가 그같이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습니다. 예수님 
이 행한 것 같이 행했느냐? 하나님의 종들이니까 행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인들도 다 
행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주님과 똑같은 삶의 과정을 살게 됩니다. 목사니까 신앙이 더 
좋아야 하고, 평신도니까 안 좋아도 되느냐? 아닙니다. 7집사가 다 순교했습니다. 12사도 
가 다 순교했습니다. 성경의 요구는 목사나 평신도나 똑같이 주님처럼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두 증인이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 때 초자연적 부활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특별한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엘 
리야도 그렇습니다. 이것 다음에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생기’는 박윤선 박사님은 ‘생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될 일입니다. 꼭 이대로 믿 
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기적이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입니다. 생기는 부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발로 일어섰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 
시기도 하시고, 생명을 다시 살리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이 두 증인들이 발로 서게 하 
셨습니다. 구경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에 이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일어설 때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립니다. 그 음성이 무엇일까? “이리로 올라오라” 했 
으니까 하나님의 음성으로 봅니다. 요한도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큰 음성은 상상할 수 없는 음성, 천지가 진동하는 음성일 것입니 
다. 



8) 두 증인의 승천 

12절 =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두 증인이 부활했고, 그 다음에 구름타고 올라갑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얘기합니 
다. 구약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는 꼭 구름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성막을 짓고 나서 하 
나님이 구름 가운데 임재하셨고, 시내산에서 구름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신약 
도 예수님도 구름타고 올라가시고, 다시 오실 때도 구름타고 오십니다. 그런데 엘리야같 
은 사람도 바람타고 올라갑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두 증인은 구름을 타고 영광스럽게 
올라갑니다. 
우리 믿음의 목표는 순교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순교적인 신앙으로, 수요예배를 
드리는 것도,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도 순교적 각오로 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내 직무를 
감당하는 것도 순교에 연결해야 합니다. 순교한 자에게 부활의 영광과 구름타고 올라가는 
축복이 있습니다. 




9) 원수들의 구경 

12절 =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원수들은 조롱하고, 모욕하고, 배반하고,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계1:7절에 뭐라고 했습니 
까? 주님이 재림할 때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다 
예수 믿게 되겠느냐? 부활의 모습을 보고 누가 안 믿겠는가? 그러나 성령이 임하지 않으 
면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어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어도 회개가 
없습니다. 



10) 큰 지진이 일어남 

13절 = “큰 지진이 나서…” 

두 증인들이 순교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지진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마태복음 
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도 지진이 일어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각변동 
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터키가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아시아 7교회마다 전부 지진을 맞았습니다. 터키가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교가 되어서 지금은 십자가가 아니라 모스크로 뒤덮였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때려 가지고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지 
진이 하나님의 매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지진이 없는 것은 십자가 때문인 줄로 믿습 
니다. 저 일본 보세요. 우상의 나라에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 
습니까. 





11) 지진의 피해 

13절 =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문자적으로 칠천으로 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7이 만수이니까 만수의 의미인지, 문 
자적 칠천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음녀 바벨론의 세력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 예수로 천국에 이른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승리합니다. 



12) 남은 자들의 두려움 

13절 =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남은 자들을 누구로 볼 것인가? 박윤선, 이상근 목사님은 참 회개로 보았습니다. 참 교회 
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종들이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 
다. 회개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회개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 
님께 돌렸습니다. 

14절에 여기까지 둘째 화가 지났습니다. 둘째 화는 유브라데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주석 
가들의 이견이 없습니다. 계시록은 순서대로 장이 이뤄지지 않았고, 왔다 갔다합니다. 화 
는 환난 후반부입니다. 마지막 셋째 화는 16장부터 나오는 대접재앙입니다. 
11장 강해(3) 


제목 : 일곱째 나팔에 이루어질 일 
본문 :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이제는 다 끝납니다. 두 증인들이 마지막 돌 하나 던질 일만 남았습니다. 끝맺음의 모습 
을 보여줍니다. 일곱째 천사가 부는 나팔이 마지막 나팔입니다. 끝나버립니다. 나팔을 불 
때 하늘의 큰 음성이 나지요. 재림 때 나는 음성입니다. 살전4:16절에 보면 이 음성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주님의 호령이라고 했습니다. 호령의 내용은 없지만, “이 세상 사람들 
아!” 어떤 말씀을 하실지 모르지요. 그 다음에 천사장의 소리와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팔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팔이 우주가운데 울리면서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백 
마타고 오시지요. 믿어지십니까? 때로는 인생이 허무하게 생각되지만, 주님 재림하시고 
천국 갈 생각하면 너무너무 좋지요. 재림, 천국 생각하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주 가운데 영광가운데 오실 때 죽은 자는 부활하고, 살아있는 자는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이 세상 나 
라는 마귀가 왕 노릇하지만,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이제 그 나라는 
우리 주님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나라가 됩니다. 
11장 강해(4) 


제목 : 이십 사 장로의 찬양 
본문 : 계11:16~19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 
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 
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 
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 
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 찬양의 장소 

16절 =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하늘의 큰 음성이 나니까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십사 장로들, 즉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 
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통성기도 뜨겁게 하는 것과, 찬송 박수치며 뜨겁게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태복음에서 유다서까지는 찬송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가히 찬송장이라 할 만큼 찬송이 엄청납니다. 4장, 5 
장, 7장, 11장, 19장 등 계시록은 계속 찬송으로 덮였습니다. 지금은 찬송에 은혜받지 못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 내가 그 속에 빠져들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 체험 
을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가만히 앉았다 가면 안됩니다. 


2) 찬양의 방법 

16절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장로들이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경배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마지막 환난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 
배입니다. 대환난이 왔다고 생각해봅시다. 교회는 굉장히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가정교회(구역회)에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 
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중국도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통해서 그렇게 예수 믿는 자들을 죽 
이고 핍박했는데도, 등소평이 나타나서 10년만에 조사해보니까 오히려 10배가 성장했습 
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3) 찬양의 내용 

17절 =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사명을 마치고 부활해서 올라가고, 
예수님은 구원의 역사가 마감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라고 했는데,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석가들은 이제 재림 
하시니까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찬양의 결과 

19절 =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천국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의 원 
형이요, 신약 교회의 원형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니까 닫혔던 하늘이, 닫혔던 천국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한 자들이 하늘 성전에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입니다. 


가) 하나님의 언약궤 

19절 = “…하나님의 언약궤…” 

언약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맺은 언약의 실현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 
요, 예수 안에서 일한 자는 그대로 갚아 줄 것이라는 이 모든 언약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 언약궤가 약속이기 때문에 언약궤만 잘 보관하면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보 1호가 언약궤입니다. 지금은 구약적 언약궤는 없습니다. 그것이 어디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언약궤를 맺었다는 것은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와 맺은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시한 것 가지고 우리 
믿음 팔지 맙시다. 우리가 일부러 구차한 생활을 찾아 나설 것 까지는 없지만, 우리의 삶 
에 어떤 아픔이 있을지라도 언약궤를 붙잡았기 때문에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나) 번개 

19절 = “…번개…” 

번개는 신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을 말합니다. 


다) 음성 

19절 = “…음성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권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라) 뇌성 
19절 = “…뇌성…” 

뇌성은 공의성,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 지진 
19절 = “…지진…” 

지진은 그 심판의 규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큰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바) 우박 
19절 = “…큰 우박…” 

우박은 재앙성입니다. 땅에 있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은 재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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