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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방탕했던 청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하기까지/英 옥스퍼드대 고전학자가 쓴 아우구스티누스의 일대기

영국신사77 2020. 2. 9. 15:21

방탕했던 청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하기까지

입력 2020.02.08 03:00

英 옥스퍼드대 고전학자가 쓴 아우구스티누스의 일대기
성적 방종했던 젊은 시절 딛고 신에게 귀의해 '고백록' 쓴 성인의 삶과 사상 정밀히 서술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로빈 레인 폭스 지음|박선령 옮김|21세기북스|904쪽|4만8000원

지중해와 맞닿은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오늘날의 알제리 지역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세 정신문화의 설계자'다. 신학뿐 아니라 철학과 여타 학문을 연구했던 스콜라철학이 이 지적이고 명민한 종교 철학자에게서 비롯됐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으로 꼽히는 '고백록'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약 1700년 전, 그가 고해성사 하듯 신에게 바친 기도의 글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추악한 밑바닥부터 가장 숭고한 종교적 신성까지 두루 엿보게 된다. 고백록은 탐욕스럽고 비겁하지만 동시에 진리에 목말라하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정신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대사를 가르쳤고, 저명한 고전 연구가이기도 한 저자 폭스 교수가 쓴 이 책은 무엇보다 엄청난 분량으로 기존의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서책을 압도한다. 어린 시절의 성적(性的) 방종, 출세에 목말랐던 성년기를 지나 신에게 귀의하고 주교로서 고백록을 쓰기까지 기본 얼개에 숱한 이야기가 마치 천일야화처럼 붙어 가지를 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하기 전 심취했던 마니교만 해도 교의의 세세한 내용은 물론이고, 그가 마니교에 매료된 이유와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정밀하게 서술했다. 종교사와 철학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은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필리프 드 샹파뉴의 17세기 유화 '성 아우구스티누스'.
필리프 드 샹파뉴의 17세기 유화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청년기 방황과 종교적 탈선을 겪고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심취한 시절을 보낸 뒤 회심해 고백록을 썼다. /LACMA 소장
죄(罪)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찰은 심오할 뿐 아니라 참신한 혜안까지 담고 있다. 그는 "어린이의 잘못은 관습이나 이성으로 나무랄 수 없다"고 갈파한다. 아이들은 자기를 나무라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뇌과학은 10대 청소년이 무모하게 비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전두엽 미성숙 탓임을 밝혀냈지만, 서기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를 꿰뚫어봤다.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적 인물과 사건, 고전을 동원해 해석의 풍성함을 더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유년을 보냈고, 성에 탐닉하는 청년기를 거쳤다. 그러면서도 신앙심 깊었던 어머니의 가치관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였다. 저자는 이를 로런스의 장편 '아들과 연인'에 나오는 폴 모렐의 삶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친구들과 배나무를 서리했던 경험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악의(惡意)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이 사건을 회상하며 맛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배를 오직 재미 삼아 훔쳤다고 고백한다. 폭스 교수는 "반 고흐도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서 무화과 열매를 훔쳤지만 아무 죄의식이 없었다"고 꼬집음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가 얼마나 예리하게 자기 내면을 관찰했는지 밝힌다. 또 '이 늙은 수사학자 좀 봐, 하는 말마다 오류투성이에 시각까지 비틀어져 있어!'라며 비웃은 니체를 '부주의한 독자'로 규정한다. 배 서리 사건에선 작가 키케로를 인용하고, 세속적인 것들에 깃든 치명적 매력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플라톤 학파를 잣대 삼았는데도 니체가 이를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지된 마니교를 떠나 회심하는 과정도 극적이다. 13년간 동거하고 아들까지 둔 여인을 버리고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시도했던 일, 명예를 추구했지만 갑자기 닥친 가슴 통증으로 연설가의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좌절 등 굴곡 많았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진다. 회심 직전 아우구스티누스는 삶이 부과하는 온갖 무게에 눌려 신음했다. 특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팔아야 했던 수사학자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그 괴로움은 '참회록'에서 글쓰기에 대해 환멸을 토로했던 톨스토이의 번뇌를 떠올리게 한다고 저자는 썼다.

고전은 녹슬지 않는 쇠거울이 되어 오늘을 비춘다. 폭스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악용된 우정'의 위험성을 간파한 점을 주목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무리 지어 도둑질하거나 교회에서 여성을 유혹했다고 참회한다. 사제가 되어 성욕을 포기하는 게 싫어서 "제게 순결을 주십시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라고 기도하던 날들이 있었다는 고백은 너무도 솔직해 차라리 박수 쳐 주고 싶다. 속이 뻔히 보이는 위선의 갑옷을 두르고 부끄럼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7/20200207042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