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운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관한 기독교인의 인식과 대처를 다룬 책이 나왔다. ‘대유행병과 기독교’(생명의말씀사)다.
‘코로나19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부제로 단 이 책은 황을호(63) 박사가 썼다. 서울대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생명의말씀사에서 40년 가까이 출판기획 총괄과 번역을 맡았던 출판인이다. 2017년 은퇴 후엔 기독 서적을 번역해왔다. 황 박사를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코로나19로 평소처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데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혼란을 느낄 기독교인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지난달 말 일주일간 자료를 취합해 소논문 형식의 글을 썼고, 출석교회 성도와 주변 출판인에게 이를 공유했다. 책은 여기에 살을 보태 완성한 것이다.
그는 세계 팬데믹의 역사(표)와 당대 기독교인의 대처를 연구하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역병 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기독교인이 많았다. 초대 그리스도인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가 그랬다. 로마제국을 포함해 고대 사회에서는 병들고 죽어가는 자를 내버리는 게 상식이었다. 3세기 북아프리카와 서로마엔 유행병이 돌아 수많은 환자가 길가에 버려졌는데 그리스도인만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돌봤다. 이런 보살핌은 약소한 조직이던 초대교회가 세상에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마르틴 루터는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적극 맞설 것을 주문했다. 루터는 ‘치명적인 전염병에서 도피해야 하는가’란 편지에서 ‘소명을 받은 자는 전염병에 다가가라’고 외쳤다. 목회자는 죽음을 두려워 말고 병든 자를 위로하며 성례를 집행해야 하고 시장과 법관, 의사와 경찰은 자리를 지켜 도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일반 시민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라면 흔들림 없이 자녀를 돌볼 소명이 있다고 했다.
츠빙글리는 사역지인 스위스 취히리에 흑사병이 돌자 타 도시에서 요양 중이었는데도 급히 돌아가 환자를 돌봤다. 그러다 흑사병에 감염됐지만, 극적으로 회복됐다. 이때 쓴 찬송이 ‘역병가’다. 여기엔 “주 뜻대로 하소서… 회복되든 멸망하든 저는 주의 그릇입니다”란 내용이 담겼다.
황 박사는 “혼란 속에도 평정심을 갖고 이웃을 돌본 신앙 선배를 보며 큰 힘과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큰 위기일수록 침착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독교인은 특히 위기를 해결하기보다 활용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위기를 해결하려고만 하면 생존에 그치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책에는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볼 때 기독교인이 주의해야 할 점과 역대하 20장을 참고한 기도문 등이 실려있다. 황 박사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팬데믹 극복 역사를 보며 침착히 이웃을 도울 것’을 당부했다. 그는 “코로나19는 치료법이 개발돼도 독감이나 에이즈처럼 여전히 인류의 곁에 있을 것”이라며 “심리적 공황은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우리의 반응에 불과하다. 평정심을 회복해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