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루스드라의 이변
[1] 칭찬받는 자 디모데
안디옥 교회의 열정적인 교사이며 전도대의 선봉장이었던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성읍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개척하고
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AD 49년경이었다.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흩어졌던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안디옥 교회가
차츰 복음의 기지로서 정착되고
갈라디아 지방에 새로운 교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던 그 즈음에
신앙의 선구자들이었던 유대출신 교우들 중의 일부가
갑자기 엉뚱한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갑자기 유대의 율법을 들고 나와서
이방인 출신 교우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함께 식사를 하면 안되며
이방인들은 우상의 제물 먹는 것과
음행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대 출신 선배 교우들이 이방 출신 교우들에게
이토록 심한 구박과 냉대를 드러내자
누구보다도 분노한 것은 바로 갈라디아 교회들을
고난 가운데 개척했던 바울이었다.
바울의 그러한 분노는 엉뚱하게도
예루살렘에서 탈옥하여 안디옥에 도착하였던 베드로에게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는 욥바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가이사랴 주둔군인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세례를 준 것이 있기 때문에
유대 출신 교우들이 일으키고 있는 말썽에 대해서
모른 체 하며 헬라인들과 함께 섞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조사단이 도착하자
베드로는 당황하였다.
그는 우선 주님의 수제자요
그리스도인의 최고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자신이
이 분쟁에 휘말리는 것에 대해서 겁을 내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예루살렘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감독은
주님의 아우인 야고보였다.
당황한 베드로는 슬그머니 식사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를 따라서 유대인들이 우루루 일어섰으며
바울의 동역자였던 바나바도 어물어물 일어섰다.
바로 그 때 바울의 벽력같은 호통이
베드로를 향하여 터졌던 것이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쫓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는가"(갈 2:14).
바울의 분노는 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즉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유대인 교우들의 부당함을 밝히는 한편
이 문제를 예루살렘 총회에 정식으로 제소한 것이었다.
"육체를 따라 난 자(이스마엘)가
성경을 따라 난 자(이삭)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쫓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 5:4,6).
이 교회의 분쟁사건은
어떠한 탄압이나 핍박보다 더 무서운
초대교회 최대의 위기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이며 주님의 아우인 야고보는
유대인들이 자존심을 상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혜로운 절충안을 제출했는데,
즉 우상의 제물 먹는 것만은 삼가고
믿는 자들이 음행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하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 총회는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으나,
결국 이 총회는
바울의 승리로 끝난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총회를 승리로 끝낸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먼젓번 여행 때
중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여
그의 동반자였던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갈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출발한 바울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라하는 청년을 만나는데,
바로 여기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푸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의 기라성 같은 지도자들을 상대로
겁도 없이 싸움을 벌였던 바울이
스스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실로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행 16:1-3)
어째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던 것일까?
누가는 이 일을
'유대인으로 말미암아'(행 6:3)라고 애매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과연 그것이 자신의 주장을 꺽게 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서슴치않고 대들었던 바울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손으로 할례를 행했단 말인가?
[2]고독한 그리스도의 선봉장
이 사건 전후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다시 읽으며
나는 마가의 다락방으로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선교전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대폭발을 점화하신 하나님께서는
박해로 흩어졌던 성도들을
안디옥에 끌어모아 복음의 기지를 삼으시고(행 9:19-26),
빌립집사를 광야의 길로 보내어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만나 세례를 주게 함으로써
아프리카 선교의 계기를 준비하시는 한편(행 8:26-39),
베드로를 가이샤라에 보내
로마의 엘리트 장교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게하여
로마 공략의 기틀을 마련하셨던 것이다.
이런 준비끝에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뛰어난 율법학자요 과격한 행동파인 바울을 회심시켜(행 9장)
아시아와 유럽 선교의 선봉장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필요에 따라
그 일꾼의 성격을 예비하신다.
과격하고 열정적인 바울의 성격이
하나님의 사업에 쓰이게 되니까
그것은 엄청난 충성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격하고 열정적인 바울의 성격이
하나님의 사업에 엄청난 충성으로 변화되었으나
바울은 그러한 성격 때문에 늘 외로워야 했다. 그는 자신의 열정만을 기준으로 마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떼어버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처음에 자기를 사도들에게 소개했고(행 9:27), 또 다소에 있던 자신을 불러 안디옥 교회에서 일하게 했으며(행 11:25), 늘 자기를 돌보아주고 보살펴주었던 바나바와도 다투고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바나바와의 헤어짐은 바울에게 큰 충격이었다.
결혼도 하지않고 독신으로 떠돌아다니는 그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운 성품의 바나바는
크나큰 위로자였던 것이다.
바나바와 다투고 헤어진 바울은
몹시 허전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바로 그때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착하고 진실한 청년 디모데를 만났던 것이다.
이 착한 청년 디모데가 고독한 바울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다.
특히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번째의 편지에는
그에 대한 바울의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3-5)
이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그것이 비록 믿음 안에서라 할지라도 거의 광적(狂的)이었다.
바울은 그에게 지독한 남성우월의 사상을 가르쳤는데,
이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하여
아마도 디모데가 여자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도 낳게 하는 것이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3,14)
바울이 디모데에게 독신을 권장했음은
디모데후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뿐만 아니라 바울은
디모데가 절대로 자기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배신자 알렉산더와 후메내오(딤전 1:20),
부겔로와 허모게네(딤후 1:15), 데마(딤후 4:10)등의 예를 들어가며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디모데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딤전 4:12),
그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보낸 적이 있으나(고전 16:10),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다시 그를
에베소 교회의 책임자로 임명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가 아무리 애매한 표현으로 얼버무렸다 하더라도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사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결국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난 디모데에게
유대인이 되는 의식을 행하여
그를 그의 헬라인 아버지로부터
빼앗아버렸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의 아들로서
유대인이 되는 의식인 할례를 받고
유대인인 바울을 따라 나섰으니
그의 헬라인 부친은 감쪽같이 그 아들을
바울에게 날치기 당한 셈이었다.
실로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를 그 아비로부터 빼앗아낸 이 할례사건은
염치도 체면도 없는 강탈이었고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를 당황케한 넌센스였으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아무런 꾸중도 내리시지 않았다.
하나님 그분도 외로우신 분이었다.
하나님은 외로우신 분이었기에
바울의 그 처절한 고독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안디옥에 있을 때에도
루포의 어머니를 그의 곁에 두시어서
그를 아들처럼 돌보게 했으며(롬 16:13),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시어서
그와 동행하게 했고(행 18:1-3),
자주 장사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로부터 시작된 빌립보 교회로 하여금
늘 바울을 돕고 위로하게 했다(빌 4:18).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바울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잘 알고 있었다,
격렬하고 교만했던 바울은
이 부끄러운 루스드라의 할례사건으로 인하여
언제나 온유하려고 애썼으며(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그는 이 일로 인해
이후로 저 어부 출신의 사도들 앞에서
절대로 교만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옛날 광야에서 모세에게도 그렇게 하셨듯이(민 20: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 20:11)
외로운 자의 실수를 꾸중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를 위로하시되
스스로 깨달아 겸비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교육방법을 깨닫고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충성하다가
에베소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천국에서 만난 두 사람이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
지금도 내 귓가에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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