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침묵의 오후 3시
[1] 흑암속의 절규
몇 달 전에 동경에서 '신앙계'를 구독하고 있다는 한 형제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이 있었다.
연재되고 있는 '성경과의 만남'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대해서 공감했다고 전제한 그 독자는
편지의 말미에 마태복음 27장 46절에 관한 나의 견해를 묻고 있었다.
"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느냐고 하나님께 소리 지르셨을까요?
그는 무엇을 기대했었기에
비로소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요?"
그 독자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내게 준 셈이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성경가운데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많은 신학자들이
이에 대해서 고심하고 연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제 육시로부터 온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5,46).
물론 여기서 유대 시간의 제 구시는
지금의 오후 3시를 가리키는 것이다.
온갖 모욕을 다 받으며 조롱당하던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갑자기 정오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
그 때에 갑자기 예수께서는 캄캄해진 하늘을 향하여
비통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의 이 부르짖음을 마가와 마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아람어로 기록하고
이를 다시 헬라어로 번역했는데,
이는 아마도 예수께서
평소에 아람어를 많이 사용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2] 골고다의 만남
그후로 나는 몇 달 동안이나 이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했다.
새벽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는 골고다의 언덕을 찾아가서 그분께 질문했다.
"주여, 당신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했던대로 당신은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징계 받으실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무엇을 기대하고 계셨길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는가고 반문하셨던 것입니까?"
그러나 십자가 위의 그분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
아무 말씀도 없이 침묵하고 계시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의 전후에는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예수의 절망적인 상황만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엔도 슈사쿠처럼 시편 22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뜩 나는 24절에서 눈을 멈추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이것은 예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구절은
예수 그분에게도 소망과 용기를 준 구절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그에게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감당시키게 하시려고
그를 나무에 달리게 하셨으나
결코 그 얼굴을 숨기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류형기 박사나 작가 엔도 슈사쿠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에 대해서 언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고
이 역사의 클라이맥스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일까?)
성경에는 제 육시, 즉 정오로부터 온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리셨다는 것,
즉 외면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대목에 대한 설명을
그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리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신명기 21장 23절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차마 볼수 없어서 얼굴을 돌리는 것은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단호하고도 냉혹한 외면(外面)인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를 향하여 외면하셨던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대상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오직 당신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요일 4:8)
결코 곤고한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실 수 없다.
그가 얼굴을 돌리셨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에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는 예수로부터
단호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얼굴을 돌리셨다.
그것은 바로 그의 아들인 예수 그분이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이 흑암의 비밀 속으로 진입하기 전에
부르짖었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일치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놀라운 카이로스의 언덕이었던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당신이 딱딱하고 험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나는 부드러운 침상위에 꿇어앉았나이다.
당신이 캄캄한 성문 밖에 외로이 달려 계실 때
나는 낮은 지붕에 안온한 벽 안에서 기도 하나이다
당신이 모든 것 벗기우고 부끄러움 당하실 때
나는 가릴 것 가리우고 당신앞에 나왔나이다.
당신이 온 몸을 다 찔리우시고 찢기시어 신음하실 때
나는 험한 세상길이 힘겨워 당신 앞에 호소하나이다.
당신이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목마르다 하실 때
나는 세상의 고초에 지쳐서 당신앞에 눈물 짓나이다.
당신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모두 버림받으실 때
나는 오직 당신의 아픔에 의지하여 위로를 바라나이다.
이제야 나는
아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당신의 절망이 없었으면 부활도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압니다.
그 무서운 어두움 속으로부터
당신의 피맺힌 음성이 이르러
나를 살리셨음을...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http://blog.daum.net/matsy/665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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