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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수건을 쓴 여자-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김성일 장로

영국신사77 2020. 1. 3. 22:42

26.수건을 쓴 여자

[1] 왜 여자만 머리에 쓰는 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34:16).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성경 속에서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은 대목들을 만나게 된다.여자는 머리에 수건,정확히 말하면 두건을 써야 한다는 바울의 고루한 주장도 그런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바울은 전혀 구원의 문제와 관계 없을 것 같은 머리 수건의 일을 가지고 고린도교회의 자매들을 섭섭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 놓은 것이었다.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전 11:6~10).


[2] 천사들로 말미암아

89년초의 어느 주일 새벽,

나는 새벽기도회에서 돌아와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도 유대의 여인들처럼 수건을 쓰면 

더 아름다와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영화에 나오는 유대 여인들을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가지 사실이 생각났다. 

유대에서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뿐만 아니라 아랍 사람들도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는 표범무늬의 케피예를 뒤집어쓴 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중동지역에 살고 있는 셈 계의 종족들은 모두 다 머리 수건을 쓰고 있었다. 셈 계의 종족들 뿐만이 아니었다. 함 계열에 속하는 고대 에집트 사람들도 변형된 머리수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벳 계열에 속하는 종족 중에 유브라데강 동쪽에 자리잡은 페르샤와 인도만 타번을 두르고 있을 뿐 서쪽의 바닷가로 진출한(창10:5) 헬라, 로마, 이스파니아의 백성들은 수건이나 모자가 없는 맨머리로 살았다. 

그들은 바다에 도전하며 살았기 때문에 머리 수건이 오히려 귀찮았을 것이며 물이 귀하여 머리감기도 어려운 중동지방과는 달리 날마다 물이 들어가 살았기 때문에 바람과 먼지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건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 수건이나 모자는 목욕문화와 관계가 있게 된다. 

목욕문화가 발달했던 헬라와 로마에는 머리수건이 없었고 오히려 여자들의 머리는 팻션과 장식의 대상이었다.목욕문화가 발달하게 되며 그와 함께 성적인 타락과 퇴폐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수건이나 모자를 쓰는 쪽의 문화가 교육, 절제, 경건의 하나님 중심인데 반하여 맨머리의 목욕문화는 외모, 탐욕, 향락의 인간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유대의 여자들 중에서 구식의 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바울은 그런 유대 여인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는지 모르지만 고린도교회 여인들의 경우에는 그 출신부터가 달랐다. 


고린도는 로마와 소아시아 사이를 오가는 상선들이 지나가다가 정박하는 항구도시였고 전세계의 뱃사람들과 장사꾼들과 건달들이 모이는 항구도시였다. 따라서 고린도에 모여든 여자들도 대부분이 창녀, 포주, 술장사가 아니면 장사꾼들이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의 여성 신자들도 모두 그렇게 남성들과 대결하는 생활의 최전선에서 뛰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비록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고루한 유대 여인들과는 달리 개화된 여인들이었다. 

이 고린도교회의 첨단여성들이 머리 수건을 쓰라고 권고한 바울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천사들을 인하여)바울은 '천사들을 인하여?)이것은 '엠마오 주석성경'에 보면 천사들의 면전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것을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고'류형기 단권주석'에는 예배에 임재하는 천사들 앞에서 남자의 권세 아래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왜 남자에게 권세 아래 있는 표가 필요 없으며 여자에게만 권세 아래있는 표가 필요한가?) 흔히들 이 여자의 '돕는 역할'을 밥 짓고 빨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범죄로부터 지켜주고 못한 하와에게 아기를 낳아서 아담의 생명을 연장해 가도록 예비하셨고 또 그로 말미암아 여자에게 태어나는 아기 가운뎨 그리스도의 소망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다(창:15,16).

이것이 바로 여자의 '돕는 역할'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여자는 인간에게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구원의 소망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여자는 인류의 구원들에 대한 소망을 잉태하고 구원을 해산할 책임을 받았던 것이다.즉 여자는 '사람'이라는 개념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엣센스인 '소망'의 부분이며 남자는 이 소중한부분을 지키기 위해 수건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의 권세와 함께 종말적 상황 속에 뛰어들어 싸우는 부분인 것이다.

여자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 그에게 순종하면 인류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있게 된다. 천사들 중에는 구원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선한 천사가 있고(히1:14)사탄의 반역에 동조한 악한 천사가 있다(계12:9).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우리의 진심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됨을 선언해야 할 것이며 우리를 유혹하려는 사탄의 동조자들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 우리의 결연한 정절을 시위해야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머리수건이었다.바울이 고린도의 자매들에게 부탁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인류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진심'인 이나라의 여인들에게서도 주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단호하게 선언하는 아름답고 선명한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 어려운 싸움을 싸우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이 용기를 얻으며 그런 모습을 보고 주님을 모르던 세상의 형제들이 더 많이 주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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