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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다락방 사건의 진상[1] 오순절의 대폭발,[2] 방언을 찾아서-성경과의 만남, 김성일

영국신사77 2020. 1. 3. 22:36


23.다락방 사건의 진상

[1] 오순절의 대폭발

물리학자들은 관측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은하계에 있는 별들 사이의 거리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팽창의 현상으로부터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처음이 

대폭발(Big Bang)로 시작되었다는 이론을 도출해 내었다. 

그들이 약 180억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이 대폭발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고 우주에는 질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초에 대폭발을 계획했던 그 의지(意志)는 어디서 온 것이며, 

그 의지에 의하여 양육된 '질서'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리학자들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主)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꾸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긍하리이다"(시 102:26.27)


홍수 이후에 아브라함을 길러내시고 

애굽에서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어내시고 그 '양육'이 끝나면 

천지는 모세를 담았던 바구니처럼 버려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일어난 우주의 대폭발 이후 

또 하나의 대폭발을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적 대폭발의 장소로 

예루살렘에 있는 한 과부의 집 다락방을 택하시고, 

폭발의 불씨가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지 49일째 되는 날을 

그  D데이로 잡으셨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경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方言)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성령은 시간과 공간의 안팎을 드나들며 

무소부재(無所不在)로 활동하시나 

주(主)께서 시간과 공간의 광추면(光錘面)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으로 들어와 계시므로 

그 동안은 성령도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 주께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 첫열매를 이루시고 승천하자 

마침내 성령의 대폭발은 일어난 것이었다.


이 대폭발의 기세는 엄청난 것이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이 세례를 받았고(행 2:41), 

미문(美門)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5천명이 예수를 믿었다(행 4:4). 


이 뿐만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이달리아 대(隊)의 장교 고넬료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로마선교의 기틀을 닦았고 

집사 빌립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아프리카에 복음을 심기 시작했으며, 

예수의 추종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의 음성을 듣고 거꾸러진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과 헬라에 이르기까지 

뛰어다니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마침내 예수의 복음은 

AD 313년 로마를 정복하였고 

로마가 닦아놓은 도로를 따라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실로 무서운 대폭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다락방의 사건에 압도되면서도 

내게는 하나의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어째서 성령의 폭발은 

 방언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2] 방언을 찾아서

나는 우선 성경에서 '방언'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처음 나오는가를 찾아보았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세아들 셈, 함, 아벳과 그 자녀들은 

각각 흩어져서 살게 되었는데

셈의 후손들은 주로 산지에서, 

함의 후손들은 주로 들판에서 살았으며 

아벳의 자손들은 바닷가로 밀려나가 살았다. 


창세기 10장에는 그 후손들의 계보가 나오고 있는데 

거기 방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창 10:5).


이 때의 방언은 '레쇼노탐'(원형은 라숀)으로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혀(Tongue)로 번역되고 있었다


(방언이 혀로 번역된다?)

나는 얼핏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창세기의 다음 장을 들여다 보았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하여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는 탑을 쌓자고 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서 

그 탑 쌓는 것을 못하게 하시었다. 

이 때의 '언어'는 '샤파트'(원형은 샤파) 

영어로는 그대로 언어(Language)였다.

그러고 보니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타난 다락방의 방언도

헬라어로 '글로사이' 즉 혀(Toungue)였다.

(혀에서…다시 혀로…)


흔히들 방언을 받은 사람들은 

혀가 꼬부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여러번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바로 창세기 11장에서 받았던 언어의 징계로부터 

 풀려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였던 것은 

그들의 반역에 대한 징계였다.

모든 족속의 언어를 혼잡케 했을 때 

그들이 갈라진 문화속에서 

하나님과 더욱 멀어진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조치를 결행하신 것은 

인류의 급속한 자멸을 지연시키기 위한 긴급 조치였던 것이다.


인생이 겪는 슬픔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언어의 단절'일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관계의 단절, 사랑의 단절로 이어졌고 

인간을 고독, 소외, 불안의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의 막힌 담으로 인하여 

세상은 눈물과 한숨의 골짜기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다락방의 대폭발은 

바로 그 단절의 담을 폭파하고 

인간을 단절의 고통에서 해방시킨 것이었다. 


그들의 방언으로 

엘람, 유대, 아랍 등 셈의 자손들과 

애굽, 구레네, 리비아 등 함의 후손들 

그리고 마대, 밤빌리아, 로마 등 야벳의 후예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기적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 형제가 

막힌 담을 허물고 다정했던 '방주의 추억'으로 돌아가는 감격이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그것이 바로 천국 공동체였다. 

천국 공동체란 

투쟁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단절과 자기 주장으로부터 벗어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바벨탑 이전의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http://blog.daum.net/matsy/6654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