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포도원의 시간표
[1]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이 처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된 이후로 무턱대고 다메섹의 각 회당을 찾아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언했던 것처럼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전도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귀찮아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이따금씩 내 이야기에 반박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더욱 그에게 매달리며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설명해 보려고 애썼다.그러나 내게는 이따금씩 기가 꺾이고 풀이 죽는 경우가 있기도 했는데 그것은 어쩌다가 이미 '다른곳'으로 넘어가버린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였다."우리는 조상 때부터 불교 집안입니다.""우리 어머님께서 절에 나가시기 때문에 우리도 절엘 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효도가 아니겠습니까?""제 아내는 오랫동안 임신을 못하다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꼭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가는 데마다 이런 일에 부딪히다 보니 나는 그때마다 맥이 풀려서 주저앉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뜩 한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어떤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2천년 전부터 예수를 믿게 해 주시고…어째서 한국에는 이렇게 늦게야 오셨는가…?'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은 한국에 너무나 늦게 오시었다. 그것도 정식 선교사의 포교를 받은 것이 아니라 북경에 갔던 사신들이 가지고 들어온 천주실의로 공부하던 학자들이 사제를 보내달라고 탄원하여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것이 1795년이요, 일본에 갔다가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수정이 선교사 파송을 호소하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들어온 것이 1885년이니 이는 실로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부스러기를 개처럼 얻어먹던 것과 같은 꼴이 되었던 것이다.더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말세지말이라 부르고 있다. 이미 말세는 예수의 때부터 시작되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유예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서경의 모든 예언들이 대부분 다 성취된 이 긴박한 막바지에서 한국은 복음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간이 너무나 없는 것이다. 언제 재림의 나팔 소리가 들려올는지 모르는데 절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며 북한 땅에서 하나님을 모른 채 3만5천개의 김일성 동상에 아침 저녁으로 절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이렇게 안타까운 생각에 잠기다가 급기야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평으로 전환되었다.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늘 공평하신 분이라고 나오는데 나는 도무지 이런 불공평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대하 19:7)."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위에 열방들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시 67:4)."나는 공평으로 주를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사 28:17).그렇듯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또 그 순서를 어떤 기준에 따라서 매기신 것인지 나는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한국을 외면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공평하지 않으신가?
[2] 11시에 온 사람들
그렇게 한참동안 질문을 퍼붓고 있는데
찬송가가 시작되고
목사님의 성경강해가 시작되었다.
마태복음 20장이었다.
나는 목사님을 따라 성경을 교독해 내려가다가 깜짝 놀랐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 20:1∼7).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시간 계산 방법은 밤중을 기점으로 하는 로마식이지만
유대식 시간 계산은 해 뜰 때, 즉 새벽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해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를 12시간으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하며 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0장의 제 삼시는 우리시간으로 오전 9시이며
제 육시는 12시, 제 구시는 오후 3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바로 그 11시에 온 품꾼들에게 있었다.
유대식 시간의 11시라면 바로 오후 5시…즉 해 지기 한 시간 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포도원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부름을 받은 이 품군들은
바로 해지기 한 시간 전에 포도원에 들어왔던 것이다.
'…십일시에 온 사람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 사람들이야말로 이들처럼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부름받은 일꾼들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바짝 긴장하면서 다음 구절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십일시에 온 일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니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8∼15).
하나님께 마구 그 불공평하심을 따지며 대들던 나는
그만 유구무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주인은 십일시에 온 사람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하게 하고
그들에게 먼저 품삯을 지불했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그들에게
먼저 온 사람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조금전에 하나님께 대들던 일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우리는
마지막 때에 부름받은 일꾼들이라는 자부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계획의 끝을 마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국백성에게 맡기셨다.
이 백서들을 마지막에 들어서 쓰실려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발걸음을 서쪽으로 돌려놓으셨던 것이다.
겨우 한 시간을 남겨놓고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로부터 바튼을 넘겨받은 한국 사람들,
이제 한 시간 일하고
일찍 온 사람들과 같은 품삯을 받게 되는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부지런히, 더 극성스럽게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포도원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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