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어나서 따라 나섰다
신약성경을 펼치면 우리는 먼저 마태복음과 만난다.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그리스도의 길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 세례요한에 의하여 열려지고
세례와 시험의 과정을 거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늘나라의 복음이 선포된다.
위로와 소망의 산상수훈이 서늘한 샘물처럼 흘러내리고
귀신들이 쫓겨나며 병든자가 일어서고
바람과 바다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잔잔해진다.
이 감격의 순간들을 밀물처럼 적어내려가는 마태의 문장은
문뜩 9장9절에 이르러 갑자기 담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곳(가버나움)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나섰다"(마태복음 9:9 공동번역).
이것이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 자신이
예수의 부름을 받은 내용의 전부이다.
어떻게 마태는 "나를 따라오라"는 한마디를 듣고
그렇게 벌떡 일어나서 그 분을 따라갈 수 있었던가?
나는 우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같은 대목을 찾아보았다.
마태 본인이 아닌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는
좀더 상세한 설명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도
더 이상 상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서도
마태의 본명이 레위이며
그가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혔을뿐
그가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 한마디에
일어나서 따라나선 사실만이 간단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누가는 한 마디를 더 적어 넣음으로써 나를 더욱 자극하였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예수를 따라 나섰다…
레위라는 이름은
본래 야곱의 셋째 아들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창29:34).
어째서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는
그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던 것일까?
알패오 자신의 이름은 유대식의 이름이 아닌 헬라식의 이름이었다.
신약성경에는 이 알패오와 같은 헬라식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식 이름을 썼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알렉산더와 그 후계자들에 의하여
1백60여년간이나 헬라 정치 세럭의 통치를 받아온 유대인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헬라식 이름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도
세리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능하고 징세 성적이 좋은 세리는
그 직무의 세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알패오가 먹고살기 위하여
헬라식 이름을 지녔던 현실주의자라면
그 아들에게도 의당 헬라식 이름을 지어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알패오의 경우에는 그것이 거꾸로였다.
자기는 헬라식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아들에게는 '레위'라는 보수적 이름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알패오는 레위지파의 사람이었을 것으로 상정해 볼 수가 있다.
만일 알패오가 제사장의 가문인 레위 지파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어떻게 하여 세리가 되었던 것일까?
제사장들은 세 가지의 부류로 나뉘어졌다.
헬라식의 철학과 타협한 사두개파, 이들에게 결사적으로 항거한 바리새파…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참했던 것은
타협할 비굴도, 항거할 용기도 갖지 못했던 나약한 다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농사지을 땅도 고기잡는 기술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말단 공무원 같은 사무직뿐이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하여 세리가 된 사람도 있었다.
알패오도 그런 치욕의 인생을 사면서 그 아들에게 꿈을 걸었다.
너의 때에는 다시 하나님과 연합하자는 소망에서 레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율법서와 예언서들을 아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레위 역시 세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세관에 앉아 있을 때
한떼의 사람들이 자기 쪽을 향하여 오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받아낼 통행세를 계산하며 레위는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바로 예수와 그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었다.
레위는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당신이 비록 메시야라 한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당신도 나와 같이 되어 보라, 당신도 세리가 되었을 것이다!)
레위의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는 그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여, 나를 욕하려면 욕해 보라! 돌을 던지려면 던져 보라!)
예수는 계속해서 다가오더니 이윽고 레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말해보라,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자 예수의 입술이 가만히 열렸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던 것이다.
아마도 레위는 예수의 뒤를 따라가면서
마음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나는 세리가 되기를 잘했다.
내가 세관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그분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활전선에서 고달펐던 무럭한 지식인 레위…
그는 바로 나 자신이었고 우리 모두였다.
그는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기꺼이 자기의 이름을 '마태오'라는 헬라식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였고
마침내 그 이름은 신약 성경 첫 번째의 복음서에 녹명되었다.
"따라 오너라"한 말씀에 '일어나서 따라 나섰던'마태의 감격은
늘 사도들의 명단에서 하위로 처지는 천대 속에서도 줄기차게 이어졌고
마침내 미개인들의 고도에서 순교하기까지 그것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중에서>
http://blog.daum.net/matsy/6654695[은별나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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