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빈들에 나온 사람들
한때 유대 백성들에게 메시야로까지 알려졌던 '민중의 목소리'세례요한이 한 계집애의 희롱으로 목 베임을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예수님은 배를 타고 뱃새다 족으로 건너가 빈 들에 서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벳새다의 빈 들로 모여들었던 것이다(마 14:13)
혹시나 하고 그들의 가냘픈 소망을 걸었던 세례 요한마저 죽어 버리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셨듯이 '목자 없는 양'처럼 서글픈 무리가 되었던 것이다(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마 14:14) 그들을 영접하시고(눅 9:11)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눅 9:11) 병 고칠자들은 고치시고(눅 9:11)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막 6:34).
그러나 이 대목의 클라이막스는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되면서 고조되기 시작한다. 빈 들에 모인 사람들이 허기질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저물녘의 허기는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예수에게 엄청난 압력으로 그 결단을 요구하며 밀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다(막 6:30), 안드레가 한 아이를 데려왔다. 그 아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요 6:9), 예수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다(마 14:19∼21).
그것은 참으로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떡1인분의 무게를 2백그램으로 치면 떡의 총 중량은 2톤에 이르고 부피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트럭 2∼3대에 실어야 하는 분량이 된다.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떡이 불어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줄줄이 이어져 나왔을까, 아니면 한꺼번에 뻥! 하고 팽창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4개의 복음서에 이 사실을 공통으로 기록해 놓은 네 기자들도 어떻게 그것이 불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우선 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잔디 위에 앉히셨다(마 14:19). 헬라어에서 '앉는다(아나클리노)'란 말은 그냥 앉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전형적인 파티의 모습, 즉 비스듬히 모로 눕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넓다란 빈 들에는 50평씩의 큰 원이 그려졌다. 50평이 누었다면 1인당 2미터로 잡아 1백미터의 원주가 되었을 것이고 이를 π=3.14 로 나누면 그 직경이 약32미터가 된다.
남녀유별의 그들이 남자만 따로 누웠다면 직경 32미터의 원이 1백개 생겼을 것이고 여자, 노인, 어린이까지 합하면 2백개도 넘는 사람의 원이 빈들에 벌어졌을 터이니 시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직경 32미터의 원이 2백개 들어가려면 최소한 20만 평방미터(6만2천평)가 필요하고 이것은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그라운드(8천5백평)의 7배가 넘는 크기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것을 무리들 앞에 놓으라고 하셨다. 무리가 둘러앉은 직경 32미터의 원가운데 그 떡 조각 하나를 놓았으니 그 떡이 잘 보였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제자들은 2백개의 원 중에서 겨우12개의 원 가운데 떡 조각을 놓아두고 다시 예수께 돌아왔다. 그런데 예수의 손에는 아직도 떼던 떡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수는 또 떡을 떼고, 제자들은 다시 12개의 원을 향하여 달려가고 …그들은 무리들의 엄청난 대 연회를 목격했던 것이다. 즉 그들은 떡과 물고기가 어떻게 불어났는지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복음서에 묘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로부터 작은 떡 조각을 받아든 제자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그 보잘것없는 시작에 제자들은 실망하였을 것이다.
엄청난 큰 기적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다. 쌀의 결실이나 나무의 자람을 볼 수 없듯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는 보이지 않는 동안에 더 크게 밀려오는 것이다.
가난과 병마와 압제와 귀신에 찌들은 우리들…이제 모두가 예수를 만나러 빈들로 나가자. 비록 우리 손에 가진 것은 보잘 거 없고 초라하더라도 주께서 그 사랑으로 빈 들을 가득히 채우시리라.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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