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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퇴수한 아라비아
광야. |
청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였고, 나사렛 예수를 핍박하던 자로부터 주 예수를 우러러보며 따르는 자가 되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사렛 예수의 도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
9:21).
청년 바울의 이와 같은 표변에 관해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 9:22).
처음에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에 대하여 놀라워하던 다메섹 사회의
유대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워하게 되었다. 그 미움이 점점 커져서 청년 바울을 암살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다메섹에서 피하여
아라비아로 갔다. 그에게는 명상과 기도가 필요하였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6~17).
바울의 생애에서 "아라비아에 갔다"고 하는 기간은 수수께끼의 이력이 되고 있다. '아라비아'는
구체적으로 어디인가. 무엇 때문에 갔는가. 가서 얼마 동안 있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아라비아는 다메섹 동쪽의 아라비아라는 설, 먼
남쪽 시내 산이며 거기서 모세와 엘리야를 추모했다는 설, 전도하기 위하여 아라비아에 갔다고 하는 설 등이 있다.
주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의 강권으로 광야에서 지내셨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 1:13).
무릇 인생의 스승은 명상과 기도로 자기를 성찰하며 자기 정의를 내린다.
바울은 훗날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기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빌 3:5)이었다고 정의를 내렸다. 거기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는 우월감과 자신감 그리고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라비아에 가서 명상과 기도로 수련한 후에, 바울의 자기 정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행 21:39)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딛
1:1~2).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선구자라면 바울은 그 후계자이다. 요한이 광야의 고요함 속에 있은 반면, 바울은 번잡한
세속 사회에 있으면서 메뚜기와 석청만도 못한 것을 먹고 살았다. 요한은 헤롯 한 명에게 저항하였으나, 바울은 모든 권력자에게 맞섰다.
김희보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