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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교회의 세례의식(마삿치오 그림,
15세기) |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유학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그는 4년 동안 당시의 유대 청년으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
때에 바울은 구브로 섬 출신인 요셉과 친하게 사귀었다.
바울은 열여덟 살 때 학업을 마치고 풋내기 율법사가 되어, 바리새파의 사회
체제 속에서 엘리트 코스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예루살렘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
있었다.
바울은 이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십자가의 극형으로 처형된 한 범죄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사렛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이 돌았으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그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다는 소문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오순절에
있은 사건은 바울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무식한 그들이 애굽어와
헬라어와 라틴어 등 여러 언어로 설교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베드로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고 하는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바울은 지난날의 학우인 구브로 출신의 요셉이 유대교를 떠나, 나사렛 예수의
종파에 입교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얼마 후에는 요셉이 자기가 소유하였던 밭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금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사도들은
요셉에게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나바라는 이름을 새로 주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은 유대교의 안전과 우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이라고 청년 바울은 판단하였다.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 때에 때마침 예루살렘 공회에서 바울에게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 관해 연구하여 그 이단성을 밝혀 달라고 의뢰하였다.
바울을 비롯하여 예루살렘 공회의 의뢰를 받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의 생활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행
2:42)
한편 나사렛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행 2:44~46)
날이 지나갈수록 나사렛 예수를 믿는 무리가 많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도 추종자가 많아지는 요건 중 한가지였다. 사도들은 구제를 전담할 사람으로 일곱 집사를 택하였다. 곧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다.(행 6:5)
바리새파의 젊은 율법사 바울이 볼
때에 나사렛 예수를 믿는 이 교파에는 아직 확고한 교리는 제정되지 않았다. 이 새로운 교단에서 사도들 못지않게 은사를 받아 활동하는 사람은,
헬라어를 능숙하게 말하며 설교에 뛰어난 스데반과, 신앙과 영감이 넘쳐 기적을 행하는 빌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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