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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메섹, 유대인 회당 내부의
벽화들. |
다메섹은 안티-레바논 산맥의 제벨 캇시운(표고 1220m) 산자락, 구우타 오아시스의 기름진 평원(표고 691m)에 자리잡고 있다. 이
평원은 바라다 강과 아와지 강으로 말미암아 곡창 지대를 이루고 있다.
도시 중앙에 아와지 강이 흐르고 있는 다메섹은 주전 10세기
무렵에는 아람 왕국의 수도였다. 주전 733년 이래로 앗시리아, 신바벨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의 순으로 지배를 받다가, 주후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속주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에 가자면 두 코스가 있다. 여리고로 내려가 요르단 골짜기를 거쳐 북쪽으로
향하는 동쪽 코스와, 사마리아에서 갈릴리 호수 서편 도시들을 지나 동북쪽으로 빠지는 서쪽 코스이다. 바울은 그 당시에 흔히 이용되던 서쪽 코스를
택했을 것이다.
바리새파의 간부들은 청년 바울의 열의를 흐뭇하게 생각하며, 다메섹으로 가는 데 필요한 소개장과 위임장을 바울에게
주었다. 바울은 성전 경비병 몇 명과 함께 나사렛 예수의 무리를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해 떠났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250km, 노새를 타고 실히 닷새는 가야 할 먼 길이었다. 청년 바울은 갈릴리 지역을 지나가며 나사렛 예수에 관해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스승 가말리엘의 발언을 상기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사도들이 유대교 지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을
때에 냉정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에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행 5:36~37).
청년 바울 일행은 마침내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 한낮의 햇볕이 내려쬐는
모랫벌 건너에 다메섹의 성벽이 눈에 띄었다. 청년 바울은 자기가 개선 장군이나 되는 듯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바로 그 때에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가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는 경위는 사도행전에 세번(9:3~9, 22:6~11,
26:13~18)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사도행전 9장 3~9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리라".
사흘 동안
계속된 캄캄한 어두움 속에 하나의 그림자가 빛을 띠고 점점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모습이었다. 청년 바울은 그 때의 상황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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