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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사장적 예언자: 에스겔(2)/[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7. 4. 12. 21:30

011.06.06 17:30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48) 제사장적 예언자: 에스겔(2)

에스겔을 ‘제사장적 예언자’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예언 가운데 제사장적 요소가 남달리 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또 다른 제사장 출신 선배 예언자 예레미야와 구별된다.
에스겔은 다윗 당시의 예루살렘 제사장
사독의 후예였고(삼하 8:17, 15:25; 겔 44:15)
예레미야는 북왕국에 속한 실로의 제사장 엘리의 후손이자
동시에 솔로몬 때 파문당한
아비아달의 후예였는데(삼상 22:20, 왕상2:26∼27, 렘 1:1)
이 같은 배경이 두 예언자의 차이를 초래했을 것이다. 


에스겔이 이전의 다른 예언자와 자신을 차별화하는,
주로 환상(visions)을 통하여 제시된 제사장적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야훼의 모습과
더럽고 추한 이스라엘 백성의 대조에서 드러나는 신론/인간론이다.
에스겔이 그발강가에서 목격한 거룩과 영광의 창조주 야훼,
곧 네 개의 얼굴(사람, 사자, 소, 독수리)을 가진
불같은 네 생물(그룹들)의 호위를 받으며
번개같이 빠른 황옥(바퀴)의 병거 위 남보석 보좌에
무지개 광채로 에워싸여 좌정하신
야훼의 영광스런 모습(1:4∼28)에 비교할 때,
한층 부정하고 음란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스라엘
곧 성전 안 은밀한 곳에서
담무스와 갖가지 우상들에게 절하고(겔 8:5∼18) 있는
70인 장로와 성직자들은 물론
두 창녀(오홀라, 오홀리바)로 상징되는
북왕국(사마리아)과 남왕국(예루살렘)이 함께
이방 민족들(앗수르, 애굽, 바벨론)과 저지르는
음탕한 행위들은(겔 16, 23)
정결(淨潔)과 부정(不淨)에 대하여
철저하게 의식화된 제사장의 안목에서
감지될 수 있는 신학적 관점이다.
거룩하신 야훼께서
이와 같은 부정함으로 가득 찬 성전에서 떠나야 함은
기정사실이었다(10:18, 11:23).


둘째는 구원론으로서, 본래부터(16:3) 부정하기 그지없는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야훼께서 동거하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은
야훼의 은혜에 기초한 새로운 창조의 기적밖에 없다.
이를 위해 야훼께서는
에스겔에게 해골 골짜기의 환상을 보여 주신다.
골짜기에 가득한 부정하기 그지없는 마른 뼈들이
야훼의 거룩한 생기(성령)에 접촉하여
군대를 이루게 되고, 분열되었던 남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으로 통일되어
온전한 야훼의 왕국이 세워질 뿐만 아니라
각자의 마음(심장)에 야훼의 법이 새겨져
더 이상 야훼의 언약(계약)을 어기고
야훼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셋째는 종말적 메시아 사상으로서,
종말에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 12지파가
공평하게 분배받은 거룩한 땅에서
그 중심에 세워질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겔 40∼48)
다윗 같은 왕적 제사장의 집례 하에 야훼를 예배하게 될 것이고,
그 성전 문지방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생명수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에스겔이 본 네 개의 생물(사람, 사자, 소, 독수리)을
각각 복음서(누가, 마태, 마가, 요한) 저자로 본
주석가들의 해석은 그렇다 치고,
90번 이상 ‘인자’(‘벤 아담’/비천한 인간)라는 칭호를
기꺼이 수용한 에스겔처럼
‘인자’로 자처하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생기)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며
주를 예배하는 모습 등을 고려할 때,
에스겔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꿈꾸며
기다린 위대한 예언자였다.
오늘의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자처하는 우리는 어떤가.


장영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