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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마지막 성군 요시야/[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7. 4. 12. 21:26

2011.05.09 17:44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44) 마지막 성군 요시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다윗 다음으로 존경받은 왕이 누구일까? 

성경 저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요시야(‘야웨께서 주셨다’)였다.

“요시야가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야웨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요시야(640∼609 BC)는 악명 높은 므낫세의 손자요, 

우상숭배 속에(왕하 21:20∼21) 신복들에게 암살당한 아몬왕의 아들로서,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천지개벽 같은 종교개혁으로 야웨 신앙을 회복하고 

예배를 예루살렘에 집중시켜 

다윗 시절의 통일왕국을 재건한 성군(聖君)이다. 

재위 18년에 발견된 율법서로 인해 

개혁이 시작된 것으로 본 열왕기(왕하 22∼23)와는 달리 

역대기(대하 34∼35)에 의하면, 

재위 8년부터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그가 

12년부터 유다지역은 물론 

앗수르에 속한 벧엘, 사마리아, 갈릴리까지 이르는 

총체적 개혁에 착수하여, 

산당은 물론 이방신상들과 제사장까지 박멸했다.

 

재위 18년(622 BC)에는 

예루살렘 성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서(신명기?)에 따라 

거국적 계약갱신 집회는 물론, 

사무엘 당시의 유월절까지 부활시킨다.

 

중동 최강의 황제 앗수르 바니팔의 사후(630 BC) 

앗수르 제국이 붕괴직전에 이른 상태에서 

요시야는 민첩하게 독립운동에 착수, 

잃었던 북왕국 영토까지 회복하여 

잠시나마 다윗시대의 통일왕국을 재건한 것이다. 

그는 특히 성전금고에서 발견된 율법서를 정전화함으로써, 

40년 안에 망하기로 예정된 위기 상황에서 

왕국이 사라져도 성경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수립한 것이다. 

요시야에 대한 질문은 그의 죽음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므낫세의 죄로 유다가 망할지라도, 

의로운 왕 요시야는 평안히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 

여선지 훌다의 예언(왕하22:14∼20)과 대치될 뿐만 아니라, 

의로운 왕의 요절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의 대예언자 예레미야까지도 애도한 

충격(대하 35:25)이자 의문이었다.

 

역대기는 이 난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요시야가 애굽 황제 느고(2세)의 입을 통해 선포된 

야웨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즉 니느웨가 바벨론 연합군에게 함락됨으로(612 BC) 

앗수르 우발릿(2세)이 하란으로 후퇴하자, 

동맹국 애굽이 곤경에 처한 

앗수르를 돕기 위해(왕하 23:29 사역) 북진 중, 

바벨론과 동맹한 요시야는 

애굽군을 므깃도에서 저지하려 나서게 된다. 

개혁의 성공으로 자만에 빠졌던 요시야가 

느고의 입으로 전달된 야웨의 메시지(대하 35:21∼22)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에서 부상당했지만 

훌다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다윗의 묘지에 평안히 묻힘으로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지 않게 된다.

요시야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다윗과 요시야 같은 성군이라 할지라도 

오점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관자 야웨의 섭리로 

통일 저해 세력이 약화되고 훌륭한 지도자도 나타나 

분단된 한반도가 속히 통일되기를 기도드린다.

                                                                          장영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