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남왕국 멸망의 주범 므낫세
남왕국 유다의 역사에서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 하였더라면 좋을 뻔’했던(마 26:24) 인물로 평가되는, 아하스보다도 더 악명 높은 왕이 바로 므낫세(BC 696∼642)였다. 왜냐하면 므낫세가 범한 죄악 때문에 결국 남왕국이 바벨론에 멸망당하기 때문이다(왕하 23:26, 24:3∼4).
므낫세는 부친 히스기야가 사망 직전 하나님께 구하여 15년간 생명을 연장 받아 감사와 감격 속에 지어준 이름(“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하신다”, 창 41:51)인데, 선왕(아하스)의 바알종교를 타파한 성군(聖君) 히스기야와 정반대로, 친 앗수르 정책 아래 부친의 개혁을 백지화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야웨를 ‘잊어버리게’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므낫세야 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열왕기하의 저자가 므낫세를 최악의 군주로 평가한 것은 다분히 신앙적 이유에서다. 앗수르 제국의 지배가 가장 강력했던 시절,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여호와의 성전에 (앗수르) 제단들을 쌓고/또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야웨의 진노를 일으킨다(왕하 21:3∼7). 또한 “무죄한 자(의인)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함으로써(21:16) 므낫세 당시에는 단 한 사람의 예언자도 등장하지 못한다.
므낫세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최악의 군주가 어떻게 55년이라는 역사상 최장수 통치의 복을 누리게 되는지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성경이 제시하는 바, 므낫세의 두 가지 상이한 전승(왕하 21:1∼18, 대하 33:1∼20)에 관한 것이다.
우선 역대기 전승(33:1∼9)은 열왕기 하에서처럼 므낫세의 배도를 보도하지만, 후반부(33:10∼20)에서 열왕기에는 언급되지 않은 전승, 곧 므낫세가 앗수르를 반역한 후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야웨께 회개하여 용서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전격적으로 친야웨주의로 전향, 무너진 야웨의 제단을 수축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증축하며 죽기까지(약 9년 동안?) 선정을 베푼다는 사실을 추가한다.
주석가들은 대개 열왕기 하 전승을 역대기보다 더 객관적인 것으로 보며, 특히 후자가 므낫세를 두둔한 것은 신학적인 동기에서, 즉 므낫세의 최장수 통치를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보답이라는 포로기 이후의 신학에서 초래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전적 성경해석의 원리 아래, 이 둘은 상호 대치보다는 상호 보완의 관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전 6세기의 열왕기 저자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그 비극의 주범으로서 최악의 지도자 므낫세를 지목할 수밖에 없었지만, 100여년 뒤 에스라 당시(BC 450) 포로귀환의 상황에서, 특히 성전을 재건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역대기 기자는 과거 비극의 원인 규명보다는 회개하면 용서와 새롭게 시작할 능력을 주신다는 진리로, 우울한 유대인들을 위로 격려하는 차원에서 열왕기 저자가 제쳐놓았던 므낫세의 회개 이야기를 발굴, 소개했을 것이다.
므낫세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한 지도자의 잘못된 종교적 결단이 국가와 민족에게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 그리고 한 지도자가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면 주께서 반드시 과거의 복과 영광을 회복하도록 도우신다는 진리도 깨닫게 된다.
장영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