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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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부활과 선교의 모형, 요나 예언서 끝부분의 12소선지(호세아∼말라기) 가운데 하나인 요나서를 알레고리나 비유로 봐야 할지, ‘요나’가 실제 인물인지 등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구약은 그를 실제 인물로 소개하며(왕하 14:25, 욘 1:1), 예수께서 요나의 경험을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하셨다는 사실(마 12:39∼41, 눅 11:29∼32), 특히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갇혀 있다가 살아나온 사건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표적으로 이해하셨음을 고려할 때 요나의 역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요나서를 읽고 있는 소년에게 한 어른이 “아직도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얘기를 믿느냐”고 묻자 “궁금하면 제가 천국에 가서 요나에게 물어보지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천국에 가서 요나가 없으면 어쩔래?”라는 어른의 질문에 소년은 “그럼, 아저씨가 지옥에서 물어보시지요”라 대답했다지 않은가? 일부 주석가가 요나서를 특이한 예언서로 보는 건 거기엔 한 마디(욘 3:4) 심판예언 밖에 없고, 그 어떤 예언자도 요나처럼 하나님의 소명을 거역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의 고향 가드헤벨(왕하 14:25) 근처의 나사렛 출신이신 예수께서 요나의 물고기(‘케토스’/Sea Monster/마 12:40) 뱃속 경험을 자신의 무덤(음부/행 2:31) 속 경험에 대한 예표로 해석하셨고, 특히 이스라엘인 최초로 요나가 외국 선교사로 소명을 받아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 백성이 짐승까지 동참시켜 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요나서는 예언서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요나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예언하기를 꺼린 동기는 우선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조국을 멸망시킨 철천지원수였기 때문이다. 야웨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신지라(욘 4:2), 설령 야웨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을지라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면 용서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나가 우려한 대로 예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유대인보다 더 의로운 사람으로 칭찬하셨다(마 12:41). 요나는 이 꼴을 보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거역하고 니느웨와 정반대쪽 다시스로 도망하여 벌 받아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으로, 풍랑 속 선원들에게 자기를 바다에 빠뜨려 달라고 요청한다. 요나서를 예언서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주인공 요나(비둘기)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고한 때문이다. ‘비둘기’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시 74:19, 호 11:11), 그 존재 목적이 인류를 위한 선교적 사명(출 19:6)에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보증한다. 포로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미 국제결혼한 사람들까지 강제 이혼시킬 정도로 이방인 혐오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요나서는 그와 같은 교만한 선민주의 역사관과 편협한 국수주의를 경계하고,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이 이방 나라에서 수행해야 할 원심적 세계 선교야말로 이방의 어린이(4:11)는 물론 짐승과 피마자 덩굴(4:6)까지도 아끼시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에 순응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예언자 요나를 통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요나같이 교만하고 편협한 목회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특히 하나님은 심판만 행하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국가든 개인이든 회개하면 결코 꾸짖지 않으시고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분으로서 큰 자비와 긍휼 가운데 우주적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한국 교회를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장영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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