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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임마누엘’의 예언자 이사야(1)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 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7. 4. 12. 21:19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 인물 탐구

입력 : 2011-04-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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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임마누엘’의 예언자 이사야(1) 
 
주전 8세기 고전적 문서 예언자들(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가운데 호세아보다 10여년 뒤, 즉 웃시야 왕이 죽던 해(주전 742년, 사 6:1)에 성전에서 소명을 받고 약 40여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이사야(히브리 본명은 이사야후, ‘야웨가 구원이시다’라는 뜻)는 자신의 이름처럼 일생동안 온몸으로, 심지어는 상징적인 말과 행동(8:1∼4, 20:3)을 통해 오직 야웨 하나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증언한, 그리고 왕족과 제사장 가문의 혈통을 동시에 이어받은 상류출신 예언자였다.  
 
이사야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제1이사야(1∼39장)와 제2이사야(40∼66장)로 구분한 주석가들의 연구를 무시할 수 없다. 제1이사야는 웃시야의 죽음부터 히스기야까지, 적어도 바벨론 포로기(BC 586∼516) 보다 120여년 전에 활동한 주전 8세기 예언자임이 분명한 반면에, 제2이사야는 그 내용에 있어 주전 6세기의 바벨론 포로기와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40:1∼11, 44:26∼28, 45:1∼4, 63:17∼18, 64:10∼11 등). 특히 유대교의 전통(‘이사야 승천기’)에서 그는 므낫세 때 톱으로 살해당한 순교자로 알려진다.  

제1이사야 당시의 정치 군사적 정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만군의 야웨만이 참된 구원자’라는 그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선 앗수르의 강력한 정복자 티글랏빌레셀(불) 3세(BC 745∼727)의 남하가 시작된 시점에서 다윗 이래 가장 강력한 황제인 웃시야의 죽음(6:1)은 모든 백성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성전에서 예배 중이던 젊은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만군의 야웨의 임재와 소명을 체험한 후, 인간적 왕을 의지하여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만군의 야웨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아하스(735∼715) 당시에는 반 앗수르 동맹 곧 아람(르신)과 에브라임(베가)의 군사동맹에 유다가 가입을 거부하자 두 연합군의 남침으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유다 국민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7:2) 떨며 두려워했다. 이때 이사야는 왕을 찾아가 두 연합군의 남침을 두려워 말고, 앗수르 왕(불)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말고, 오직 야웨만을 의지할 것을 권고했다(7:9). 아울러 그 유명한 임마누엘의 탄생, 즉 처녀 왕비에게서 태어날 임마누엘(히스기야?)을 통해 앗수르가 무참하게 패배할 것을 예고한다(사 36∼38).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뿌리쳤고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두 나라가 망하였으나, 유다는 엄청난 조공은 물론 앗수르의 종교가 예루살렘 성전까지 침투하는 비극이 초래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권고에 따라 앗수르의 멍에를 벗기 위해 앗수르의 우상들을 타파하는 대대적 종교개혁을 실시했다. 이를 좌시 못한 앗수르(산헤립) 군대가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까지 포위한 위기상황에서(BC 701) 이사야는 오직 만군의 야웨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왕에게 권고한다. 히스기야의 눈물어린 간구 속에(37:1∼4) 마침내 18만5000의 앗수르 군대가 하룻밤에 전멸하게 된다(37:36). 

전방위적으로 위기를 당한 오늘의 한국교회에게 이사야는 예수만이 참 구원이심을 온몸으로 전도할 것, 그리고 한낱 지렁이만도 못한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오직 만군의 야웨 곧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장영일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