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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기도의 황제 히스기야/[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7. 4. 12. 21:22

011.04.18 18:01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41) 기도의 황제 히스기야

젊은 나이(25세)에 즉위하여 

29년 동안(BC 715∼687) 통치한 유다의 13대왕 히스기야(‘야웨가 힘이시다’)는 

최악의 상황에서 창조주(왕하 19:15, 25) 야웨의 힘과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극적으로 증언한, 

다윗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왕하 18:5)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당대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그토록 찬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가 즉위할 당시 부친 아하스로부터 물려받은 부실(不實)왕국은 

총체적인 절망 상태였다. 

특히 아하스는 이방신에게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왕하 16:3) 

악명 높은 최악의 군주였다. 

아하스의 친 앗수르 정책 아래 매년 앗수르에 상납한 엄청난 조공으로 

국가재정은 바닥난 상태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야웨 예배는 물론 

최대의 국가절기인 유월절도 폐지된 상태였고, 

산당마다 앗수르의 신상으로 가득 찼다.

히스기야는 즉위 후 수년간 묵묵히 국방력을 키운 다음, 

때가 되자 반 앗수르동맹을 형성하는 한편(왕하 18:20, 21) 

종교개혁에 착수,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왕하 18:4), 

성전을 정화하여 

야웨 예배(대하 29:1∼36)와 유월절을 회복시킨다(대하 30:1∼27).

 

무엇보다도 유다의 46개 성읍을 함락시킨 후 

예루살렘까지 진격한 산헤립의 군대에 끝까지 저항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천사에게 18만5000명의 앗수르 군대가 전멸당하는, 

홍해의 기적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장면도 목격한다(대하 32:21, 왕하 19:35).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업적을 창출한 히스기야의 놀라운 지혜(잠 25:1)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우선 그 나이 18세 때(BC 722) 경험한 역사적 비극 

곧 북왕국의 멸망에서 큰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아모스와 호세아의 연속된 심판과 멸망 예언에도 불구하고 

끝내 야웨를 배반하고 풍요 우상을 섬긴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처참하게 멸망하고(왕하 17:1∼41) 

심지어는 포로로 끌려간 귀족들이 

껍질이 벗겨지는 잔인한 고문과 학살을 당했다는 사실(앗수르 기록)을 

알고 있는 왕세자로서, 

부왕의 친 앗수르 정책 아래 

야웨를 배반하고 있는 조국의 운명이 어떠할지 가히 예측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히스기야의 배후에는 

그보다 18년(?) 선배요 멘토인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그는 때때로 이사야의 멘토링에 갈등한 적도 있지만, 

결국 예언자의 메시지를 다윗처럼 경청하였다(사 37:1∼7). 

항복을 회유하는 앗수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야웨만이 구원”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믿고 

끝까지 저항할 수 있었다(대하 32:7∼8; 사 3:32,35).

히스기야의 배후로서 빼놓을 수 없는 최선의 비밀 병기는 기도였다. 

그와 관련된 자료에 ‘기도’라는 용어가 빈번하고(왕하 19, 대하 30, 사 37∼38 등), 

위기 때마다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왕하 19;4)은 

그가 얼마나 기도를 중요시했는지 말해준다.

 

특히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성전에 들어가 

산헤립의 편지를 펴 놓고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것과, 

중병에 걸려 벽 쪽으로 돌아누워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왕하 18:3, 사 38:3)은 

감동적이다.

눈물의 기도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기회로 역전시킨 히스기야를 생각하며,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도 이와 같은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특히 북왕국의 멸망에서 깨달음을 얻은 히스기야처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적 재난을 각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장영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