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예비된 아내 (계 19 : 1 - 10)
◆ 민병석 |
성경 분문 / 요한계시록 19 : 1 - 10
요절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8).
서론 : 일곱째 대접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끝나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
이 세계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다.
이 심판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로 진행되는데,
그 일곱 번째 대접으로 지구의 최종적인 심판이 끝나게 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는 말씀이 그때 성취된다(계 9:15).
천년왕국은 천년이란 시한은 명기되지 않았어도
이처럼 성경 여러 곳에 그 나라가 암시되어 있다.
1. 어린양의 혼인 기약
19장 초두에는 하늘의 허다한 무리의 찬양이 두 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음녀의 심판에 대한 찬양과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른 일에 대 한 찬양이다.
(1) 6절부터 나오는 찬양은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찬양이다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그 날에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장차 나타날 이같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면서
어린양에게 영광을 돌리는 소망의 생활을 하고 있다(계 22:20,21).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다고 했다.
우리는 잘못된 종말론 때문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7년 동안의 공중 휴거 기간"으로 오해하여,
"7년 공중 혼인 잔치"란 말로 소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공중 휴거 기간은 7년도 아니려니와,
환난 전에 휴거 되는 것도 아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말은
계 19:7절 한곳에만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 천년왕국"에서의 복된 생활을 의미해 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2) 그 아내가 예비하였다고 했다 :
예비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그 아내들을 예비하지 아니하시고는
일곱째 나팔로 이 땅을 심판하실 수 없다.
이들은 이미 흰옷 입은 무리들로 전세계에서 뽑아 내셨다(계 7:9,14).
하나님은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을 통해
이들 어린양의 신부될 아내를 이처럼 미리 예비하시고,
그들을 후3년 반의 대 환난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예비처로 인도하신다.
그후 일곱째 대접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건져내시기 위해
공중으로 끌어 올려 그곳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형성된 후,
새로운 왕국에 들어가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 예비된 아내에게 깨끗한 세마포를 입히셨는데,
그 세마포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세마포는 어린양의 아내들이 입을 옷이다.
이 옷을 입지 않고는 결코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세마포에 대하여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어린양의 아내가 될 자격자는
옳은 행실로 단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옳은 행실은
회개와 열매를 말한다.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해야 하며,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2. 어린양의 혼인 잔치
어린양의 혼인 기약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천년왕국에 대한 약속이요,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실현된 천년왕국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1) 천년왕국을 왜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부르는가? :
9절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하는 말이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고 했다.
이 나라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비유한 것은
이 나라의 지극히 아름다움과
그 나라에서 누릴 말할 수 없는 축복 때문일 것이다.
성도들이 왜 주의 재림을 그토록 갈망하는 것인가?
그것은 살아서 주님을 만남에 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성취되어
그 나라에서 주와 함께 천년간 살아갈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에덴의 완전한 회복이다.
아담이 쫓겨난 후, 에덴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졌었으나
홍수 심판으로 지상의 에덴은 살아졌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에덴을 잠시 동안 회복하시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영원한 본향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천년간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이 땅위에서 종말적인 환난을 거치며 살아온 성도들에 대한 위로이며
아담에게 주셨던 언약의 성취로 보아야 한다(창1:2 7,28).
그리고 이 나라에서 태어날 많은 백성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하나님이 이미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도 있을 것이다.
(2) 이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다 :
이 혼인 잔치 자리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죄악과 저주와 죽음이 없고
사단 마저 천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한 채로 가두어 두기 때문에
온전히 새로운 세상이 된다.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위의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모든 저주들이 살아져 버릴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개발하고 있는 모든 지하 자원은
모두 땅속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하나님께서 "뭍이 드러나라"는 말씀과 함께
지상으로 분출되어 솟아난 것들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이같은 명령을 다시 한번 내리신다면
그때 천년왕국은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 각가지 보석 등이 지상으로 올라와
이 세상은 각가지 금은 보화로 뒤덮인 찬란하고 화려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백성들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 같고
가옥도 새로 건축하여 그 영화로운 저택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들의 생산한 것이 그들의 소유가 되며
그들의 소생은 복된 자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사 65:20-25).
그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간 우리의 연약하고 병들고 저주받은 몸들이,
이제 그 저주에서 완전히 풀려
죄 없는 아담과 하와의 원래의 모습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고 했다 (사 25:5,6).
결론 : 이같은 세계에서 천년간의 생애를 누린다고 하는 이 사실은
분명히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9절).
이같은 천사의 말을 받은 요한은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말씀을 들으며 공부하는 여러분들에게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하는 이같은 말씀을 듣고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어린양의 아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복습문제>
①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나라는?
계 19 : 6
② 예비된 아내의 자격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계 19 : 7, 8
③ 누가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나?
계 19 : 9
<연구과제>
* 천년왕국(千年王國) /
천년왕국은 종말론에 있어서 반드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천년 왕국과 연관되지 않은 종말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에 유감스럽게도
"무 천년설" 이 머리를 쳐들고 천년왕국에 도전한다.
과연 천년왕국은 없는 것인가?
천년이란 말은 계 20:6절에만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설이 아닌가?
그러나 천년왕국이라 하여
반드시 천년이란 숫자가 붙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시한부적으로 세워진다면
그 나라를 천년왕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단 2:44 = 망하지 않을 영원한 한 나라
단 7:13,14 = 인자에게 주신 한 나라
단 7:22 = 때가 이르매 성도가 얻은 나라
슥 14:9-11 =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사 35:5-10 = 새로운 세계
사 65:17 =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
고전 15:24 = 주께서 불가불 왕 노릇하심
계 11:15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
계 20:6 =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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