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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한국을 도운 선교사들

영국신사77 2008. 11. 8. 14:12
 
[만물상] 한국을 도운 선교사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광주광역시 양림동 호남신학대 구내 선교사 묘역에는 20세기 초·중반 전라도에서 활동했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23명이 묻혀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1895년 한국에 들어와 호남에 개신교를 처음 전한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이다. 그는 교회 20여 개를 세웠을 뿐 아니라 광주에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웠고 광주기독병원도 만들었다.

 ▶유진 벨의 사위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전주 기전여고·신흥고 교장으로 일하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강제출국당했지만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왔다. 군산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 휴 린튼(한국명 인휴)은 부인 베티 린튼(한국명 인애자)과 함께 전라도 농촌과 섬에서 평생을 보냈다.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책을 펴낸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이 부부의 막내 아들이다. 린튼 가문은 4대째 한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첫 개신교 선교사는 1884년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이었다. 이듬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함께 들어와 새문안교회·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이화학당·경신학교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됐다. 이어 1890년 입국한 사무엘 마펫(한국명 마포삼열)이 평양에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고 유진 벨이 호남에 진출했다. 미국·캐나다·호주·영국 선교사들은 전국을 나눠 활동영역을 정했지만 하나같이 선교와 봉사를 동시에 한 것이 특징이다.

 ▶그제 서울 조선호텔에서 수십 년 한국에 봉사하다 미국으로 돌아간 은퇴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예배가 열렸다. 순천에 기독교진료소를 세워 20년 넘게 결핵 퇴치에 헌신한 베티 린튼(82), 전주 예수병원 간호부장으로 일한 메리엘라 프로보스트(86·한국명 부마리아) 등 백발이 성성한 4명의 선교사가 참석했다. 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땅이 제2의 조국"이라며 "가난하고 질병이 창궐하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데 놀라고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은 1970년대 이후 나라가 번영하고 개신교가 성장하면서 선교사 파견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한국을 거쳐간 개신교 선교사는 2000여 명. 이들은 특히 교육과 의료에서 지워지지 않을 큰 자취를 남겼다. 이제 한국도 세계에 1만5000명 넘는 선교사를 보내는 세계 2위 선교대국이 됐다. 우리가 서양 선교사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을 한국 선교사들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2008.11.06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