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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여명기 한반도에선…

영국신사77 2009. 2. 13. 15:44
개신교 여명기 한반도에선…
UCLA 옥성득 교수 사진집 출간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나귀 타고 전도여행 쪽복음과 소책자를 나눠주 며 전도하던 조선인 권서(勸書)가 나귀에 성경을 싣고 전도여행을 떠나는 모습(1905년). /홍성사 제공
지붕 위의 십자가 대신 흰 천에 붉은색 십자를 그려 긴 장대 끝에 매단 '십자기(旗)'를 세운 소래교회(1898), 정동감리교회 앞길을 고르기 위해 장정들이 함께 롤러를 굴리고 있는 모습(1897), 남녀 좌석을 분리하기 위해 중앙에 병풍을 친 예배당….

지금부터 100여 년 전 한국 개신교 여명기의 풍경들이다. 미국 UCLA 옥성득 교수(한국기독교사)가 최근 1900년부터 1910년 사이에 촬영된 사진 350여 장을 모아 《한반도 대부흥》(홍성사)을 펴냈다.

이 시기는 원산 부흥운동과 1907년 평양대부흥을 거치며 조선의 개신교세가 급성장하던 시절이다. 부흥의 '배경' '시작' '확산' '계절' '절정' '결과' '초월'로 구분된 장(章)을 넘기다 보면 당시 개신교 부흥이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 평양 장대현교회 남성신자들 대부흥 2년 후인 1909년 평양 장대현교회 앞에 모 인 남성 신자들. /홍성사 제공
1904년 제물포 내리교회 기념사진엔 이미 어린이 50명을 포함해 150여 신자가 운집해 있다. 비슷한 시기 전주 서문교회, 광주교회, 목포장로교회 등의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그 배경엔 길가에 앉아 끼니를 때워가며 전도에 나섰던 서양 선교사들과 나귀에 성경을 싣고 방방곡곡을 몇 달씩 순회하며 복음을 전한 조선인 동역자들의 땀과 정성이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대부흥' 2년 후인 1909년 평양 장대현교회 사진에서는 남녀 신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습을 볼 수 있다.
▲ 정동감리교회 길 고르기 작업 롤러를 이용해 정동감리교회 앞의 길을 고르고 있 는 조선인 신자들(1897년). /홍성사 제공

 

 

입력 : 2009.02.13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