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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 선교의 개척자’ 해리슨(1866-1952, 86세) 선교사

영국신사77 2008. 11. 2. 23:04
              ‘장터 선교의 개척자’ 해리슨(1866-1952, 86세) 선교사

 윌리엄 B. 해리슨(William Butler Harrison, 하위염;河緯廉)은 1866년 미국 켄터키에서 출생하여 켄터키 센트럴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루이스빌 의대에서 1년간 수학하고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했다.

 1894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선교 준비를 위하여 서울에 머물다가 1896년 11월 전주에 도착했다. 1897년 전주 서문 밖 은송리 초가집에 약방을 차리고, 경미한 일반 환자를 진료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다.

 같은 해 11월 잉골드(Mattie B. Ingold) 선교사가 여성 환자를 위한 진료소를 설치하자, 해리슨은 환자진료를 점차 잉골드에게 인계하고 복음 전도에 주력하다가, 1898년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 선교사와 결혼했다.

 그는 특히 전주에서 매 5일마다 서는 장터에서 설교하였으며, 인근 장터마다 2개의 헛간을 지어 장터 선교를 계속했다. 전도하는 방법으로는 호별 방문보다, 장날에 모여드는 장꾼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장터선교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이유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구경을 하고 싶은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03년 부인 데이비스가 별세한 후에는, 선교지역을 군산으로 옮겼다. 전킨 후임으로 군산 영명학교 책임자, 남전교회(1904-1908 및 1916-1917), 개복교회(1905-1911), 담임목사를 비롯하여 웅포교회, 동연교회, 무주읍교회에서 활동했다.

 

 1909년 신축한 신흥학교에서 니스뱃, 레이놀즈에 이어 교장으로 봉직했다.

 1911년 10월 15일 전라노회가 서문교회에서 창립될 때에는 규칙위원과 해남, 강진, 장흥, 영암지역의 당회 권리를 위임받아 활동하였다.

 

 1917년 10월 10일 전북노회가 처음 조직될 때에는 규칙위원과 군산 시찰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1921년에는 사기편집위원으로 테이트(崔義德)와 호남지방 기독교역사를 기록하고 편집하는데 기여했다.

 1924년에는 익산 송산교회 재건에 협력하여 조왕리로 이전하고, 노회 진흥부 회계로 종사했다. 그 후에도 노회 총대, 규칙위원장, 전도위원, 사경부위원, 재판위원 등으로 폭 넓게 활동했다.

 1928년 1월 2일 구암교회에서 개최된 제21회 임시 전북노회에서 기도를 담당한 뒤, 34년간 모든 젊음을 한국에 바친뒤 미국으로 돌아가 1952년 별세했다.

 

 해리슨 부부의 한국 선교를 감사하며 합장 방안을 생각해 본다.

                                                                                                                 <양화진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