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2월 6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박종순 목사) 신임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박종순 목사는 이취임예배를 드린 뒤, 곧바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공원'을 찾았다. 대표회장 취임 첫 공식일정이었다. 박 목사는 100여 명의 한기총 관계자들과 한국에 처음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묘역에 헌화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선교사묘지공원'. 이곳은 한국교회가 성지로 내세우는 곳이다. 한국교회 연합기구인 한기총 대표회장이 취임 뒤 공식일정으로 처음 찾은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이곳은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해 헐버트와 헤론을 비롯, 16개국 나라 206기의 선교사와 가족들이 안장돼 있다.(양화진 서울외국인선교사묘지공원·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펴냄 참조)
양화진이 성지라고?
그러나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성지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관리는 매우 허술하다. 양화진 묘지를 찾은 이들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천주교의 성지 절두산 기념관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왜 그럴까. 우선 양화진 묘지를 관리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누구나 이용만 할 뿐 관리는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이 묘지의 관리는 2005년 7월 창립예배를 드린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가 맡고 있다. 100주년기념교회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이사장 강원용 목사)로부터 묘지 관리를 일임 받았다.
100주년기념교회는 앞으로 양화진 묘지를 마포구청과 연계해 대표적인 성지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100주년기념교회가 들어오기 전 양화진은 그야말로 '종(관리는 하지 않고)은 없고 주인(권리만 내세우는)만 많은' 곳이었다.
이곳 외국인선교사묘지의 소유권은 현재 '100주년기념사업회'쪽에 있다. 100주년기념사업회는 1985년 '경성구미인묘지회'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관리권을 유니온교회로 넘겼다. 외국인이 주로 다니는 유니온교회는 당시 예배당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사업회 쪽은 100주년기념관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대신 묘지의 관리권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100주년기념사업회는 이후 외국인선교사묘지 관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유니온교회 역시 관리권을 넘겨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강필 씨는 돈이 없어 제대로 묘지를 관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니온교회의 경우 들어오는 헌금이 너무 적은데다, 담임목사에게 들어가는 돈도 많아 최소한의 관리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 년에 1억 원이 교회 예산으로 들어온다면, 최소한 7000만 원에서 8000만 원에 가까운 돈이 담임목사의 사례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외국의 물가에 따라 사례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씨의 얘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덤
상황이 이렇다보니 50여 년간 묘지 관리를 맡아 온 이 씨 역시 묘지 관리소장이라는 직책이 있지만,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고작 잡초나 뽑고, 청소나 하는 정도다. 그나마 겨울에는 이런 일도 할 수 없다.
묘지 관리가 허술하다보니 정체 모를 사람도 다수 묻혀 있다. 현재 양화진에 묻혀 있는 묘지는 모두 517기다. 이중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무덤 수는 206기. 나머지는 선교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취재 결과 양화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묘들이 많았다. 일본 항공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묘지에 묻힌 사람도 있었고, 선교사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들도 묻혀 있었다. 100주년기념사업회가 펴낸 안내 책자에 따르면, 묘지에 묻혀 있는 외국인 중 직업인은 117기, 기타가 130기다. 141기는 아예 소재도 파악할 수 없다. 그만큼 관리가 소홀했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사랑의교회·인천내리감리교회 등 대형교회들의 기념비도 버젓이 서 있었다. 이들 교회의 기념비는 현재 100주년기념교회 쪽의 요청으로 모두 철거가 됐다.
이런 혼란 속에서 '양화진선교회'(대표 신호철 장로)사 이곳을 실질적으로 이용했다. 양화진선교회는 지난 2002년 설립됐다. 신호철 장로가 만들었고, 양화진을 찾는 이들에게 안내를 해주고 있다. 소위 말하는 '가이드'다. 또 양화진과 관련된 책도 여러 권 펴낼 정도로 이곳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다.
그러나 문제는 양화진선교회가 양화진 묘지를 이용만 하고 있지, 관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묘지의 관리는 원칙적으로 100주년기념사업회와 유니온교회가 맡아서 해야 하지만, 이곳을 이용한 신 장로에게도 최소한의 관리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양화진선교회를 통해 양화진을 찾은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 신호철 장로는 2006년 5월이 되면 5만 명이 넘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방문 예약을 받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안내를 해주고 있다. 안내에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물론 소정의 '안내비'도 받고 있다. 신 장로는 그 돈은 후원회비라면서도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는지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에게 '돈'과 관련된 얘기는 쓰지 말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묘지를 안내하는 데 확성기를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묘를 밟는 일도 허다하다. 이러다보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의 묘지를 경건하게 참배한다는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관리의 책임을 맡은 100주년기념사업회나 유니온교회 쪽은 이러한 사정 때문에 '과도한 안내'의 자제를 부탁했지만, 양화진선교회 쪽이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사업회와 교회 쪽은 밝혔다.
권리를 내세우며 이용만 할 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양화진 묘지.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이곳을 성지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