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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 민족은 바닷가에 치솟은 해발 3000m 높이의 레바논 산지 때문에 내륙과는 고립되어 일찍부터 바다로 진출했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수많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국제적인 장사꾼으로 명성을 날렸다. 최상품 목재인 레바논 백향목과 함께 페니키아 최고의 특산품은 자주 물감이었다. 순금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 자주 물감으로 물들인 자색 옷은 부유층의 상징이었고 로마시대에는 ‘왕궁 자색(royal purple)’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구석기 시대 말기에 이르러 철이나 구리 등의 여러 금속들이 산화되어 다양한 색깔을 띤 녹을 채취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서기전 1만500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 벽화들은 모두 이러한 물감을 사용한 것들이다. 서기전 4000년경부터 도시와 왕국이 생겨나 왕이나 제사장 등 특권층의 고유 의상이 필요하게 되면서 천의 염색을 위한 물감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주로 식물의 꽃, 잎, 열매, 껍질, 뿌리 등에서 추출한 물감이 사용됐다. 하지만 햇빛이나 세탁으로 쉽게 색이 바랬기 때문에 좀더 질이 좋은 물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자주 물감은 두로의 수호신 멜카르트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개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소라를 깨물은 개의 입이 처음에는 붉게 물들었다가 차츰 자주빛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페니키아’의 어원이 되는 ‘페닉크’는 ‘붉은 자주’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지중해에 서식하는 소라의 일종이다. 서기전 1500년경 기록된 누지 문서에는 자주 물감을 후리어로 ‘키나후’라고 표기했고 ‘가나안(크나안)’의 어원이라는 학설도 제기됐다. 자주색을 의미하는 영어의 ‘퍼플(purple)’은 원래 지중해에 서식하는 소라의 이름인 그리스어 ‘포르피라(porphyra)’와 라틴어 ‘푸르푸라(purpura)’에서 유래됐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남(藍)’이나 ‘쪽’이 원래 식물의 이름이지만 이로부터 추출된 색깔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서의 삼원색 구약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세가지 색깔은 염색한 천의 색깔을 기준으로 자줏빛의 아르가만과 푸른빛을 띠는 트켈렛트, 그리고 붉은색의 톨라앗트 쉐니가 있다. 이 중에서도 아르가만과 트켈렛트가 종교적으로 중요한 기물과 의상을 장식하는 색깔이다. 이 두 색은 모두 지중해 소라의 분비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소라의 종류와 성별, 그리고 염료를 만드는 공정에서 햇빛에 쏘이는 정도에 따라서 자주색 계열의 아르가만과 푸른색 계열의 트켈렛트로 구분된다. 톨라앗트 쉐니는 벌레의 분비물로부터 만들었다. 자색 천과 자색 옷은 구약시대부터 성막의 치장과 제사장의 옷, 그리고 왕과 귀족들의 의상으로 자주 사용됐다. 솔로몬은 성전 내부를 치장하기 위해서 자주 물감의 전문가들을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신약성서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의 옷 색깔이 자주색인만큼 자색 옷은 부유층의 상징이었다. 바닷가의 소라 무더기 자주 물감 제조의 고고학적 증거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수어진 소라들의 무더기이다. 소라를 단순히 식용으로 할 때는 끓는 물에 삶으면 되지만 자주 물감을 얻기 위해서는 소라의 껍데기를 깨내어 내장의 특정부위에서 분비액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깨진 소라들의 무더기는 모두가 자주 물감을 만들었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두번째 증거로는 자주 물감을 끓이거나 보관했던 토기들인데 이러한 토기 조각에는 자주빛의 흔적이 남아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세번째 증거는 물감을 제조했던 공장 터인데 지중해 연안에서 이 유적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텔 카브리, 악코, 텔 케이산, 쉬크모나, 도르, 가이사랴, 아폴로니아, 텔 모르 등지에서 소라 무더기와 자주빛 흔적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됐다. 지금까지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 세계 최초로 자주 물감을 만든 곳은 크레타 섬이었다. 이미 서기전 1800년경부터 자주물감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서기전 1600년 이후 크레타와 페니키아 사이에 무역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자주 물감 제조술이 함께 전수된 것으로 보인다. 페니키아 민족은 연안에서 대량으로 소라를 구할 수 있고, 자주 물감이 부피는 작지만 고가에 팔리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상품이기 때문에 이를 전문적으로 개발했다. 따라서 서기전 1500년경 이후에는 페니키아가 자주 물감의 중요 생산지가 된다. 물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로마시대의 자주 물감에 관한 정보는 플리니우스의 ‘자연사’와 스트라보의 ‘지리학’ 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품질의 물감을 만들 수 있는 소라는 페니키아의 두로에서 잡힌 것들이다. 소라의 내장 중에서 흰색의 분비물을 내는 부분만을 도려내 그릇에 모은다. 이 분비물은 산화되면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여기에 소금을 뿌리고 사흘정도 지난 후 납이나 주석으로 만든 가마솥에 물과 함께 넣고 끓인다. 이때 원료와 물의 비율은 1:1 정도로 하며 일정한 온도로 9일간 끓이면 비로소 자주 물감이 완성된다. 완성품의 색깔은 양털 뭉치를 담가서 확인하는데 붉은 색보다는 검은 빛을 띤 붉은 색이 더 좋은 물감이다. 양털을 염색할 때는 물감에 5시간 정도 담그며 양털과 물감의 비율은 무게로 따져 5:1 정도가 적당하다. 가장 최고의 색깔은 ‘응고된 피’의 색으로서 보통은 검게 보이지만 햇빛에 반사되면 선명한 붉은 색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색깔이 호메로스가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 자주 인용하는 ‘자줏빛 피(blood of purple hue)’라는 표현의 기원이 됐다. 최고급 두로산 자주 물감 신약시대에 시칠리아의 타렌툼에서 생산된 자주 물감은 1kg에 220데나리온(약 660만원)이었고 최고급의 두로산 자주 물감은 그 열배가 되는 2200데나리온(약 6600만원)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값이 비싼 이유는 1만2000개의 소라를 분해해야만 겨우 1.4g의 자주 물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로산 자주 물감으로 염색한 모직천을 ‘디바파’라고 부르는데 이는 ‘두번 담갔다’라는 뜻이며 두번에 걸쳐 염색하기 때문에 그 색이 절대로 바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두로산 색깔의 특징은 한 마디로 ‘응고된 피빛’으로 표현된다. 두로산 자주 옷감은 그냥 보면 단순한 검은 색깔이지만 햇빛에 비추면 검붉은 빛에서부터 보라빛까지 그 색상이 매우 화려한게 특징이었다. /김 성 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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